제10장 출성(出城) 밤(夜). 눈(雪)이 천마부의 어느 곳을 막론하고 고르게 소리없이 내리고 있다. 낮부터 내린 눈은 천마부는 물론 천마성의 전체, 아니 무이 산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백수범이 천마부에 들어온 지도 일 년이 넘었다. 그 동안 그는 자 신의 처소인 호심각 밖으로 나간 적이 드물었다. 그는 무엇을 하 는 지 호심각 속에서 계속 칩거하고 있었다. 내실 안. 탁자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던 백수범은 손뻑을 딱딱 쳤다. 그러 자 방 안에 한 인물이 들어왔다. 그는 백의를 입고 허리에 금검을 찬 중년인(中年人)이었다. 금검인도(金劍人屠) 곽도양, 그는 바로 백의수호무사대의 수좌령 이었다. 곽도양은 들어오자마자 방바닥에 부복했다.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백수범의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가 어렸다. "도양, 오늘 밤 육노인(陸老人)을 만나 보겠나?" 곽도양의 얼굴에는 기쁨이 떠올랐다. "무슨 뜻인지 알겠습니다. 공자님." 백수범은 한 달 전 천마성주에게 한 가지 부탁을 했다. 그것은 금 검인도 곽도양을 직속 수하로 삼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천마성주는 그 자리에서 승낙했다. 천마성주는 다소 의아한 표정이었다. 왜냐하면 곽도양보다 더 무 공이 고강한 황의무사나 금의무사 중에서 수하를 고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굳이 묻지는 않았다. 그는 도리어 곽도양의 밑에 딸려 있는 백 명의 무사대까지 함께 백수범에게 주었다. 백수범은 바닥에 부복해 있는 곽도양에게 물었다. "네 밑에 있는 백 명 무사들의 근황은 어떠냐?" 곽도양은 공손히 답했다. "그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호심각 주위에 은밀하게 배치해 놓았 읍니다. 또한 공자님의 은혜로 무공이 전보다 훨씬 고강해졌습니다." 백수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도양, 내가 너에게 전수해준 천환검법십팔식(天幻劍法十八式)은 어느 정도 익혔느냐?" "네, 속하는 전력으로 연마하여 구 성(九成)까지 터득했습니다." 천환검법십팔식. 그것은 백수범이 천마삼검과 전진파의 무공, 그 리고 천면신개와 우내삼괴 등으로부터 전수받은 검법 등을 종합하 여 실전(實戰)에 맞도록 새롭게 창안한 검법이었다. 그는 금검인도 곽도양을 심복으로 두기 위해 천환검법십팔식을 전 수해 주는 한편, 그의 수하 백 인에게도 골고루 체질에 맞는 무공을 전수해 주었다. 그로 인해 그들의 무공은 짧은 한 달 사이에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고 있었다. 백수범은 고개를 끄덕인 후 말했다. "호심각 주위에 열두 개의 진식(陣式)을 배치해 놓았다. 그러나 만일을 위해 조금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네, 공자님!" "그리고 소군, 채홍, 아영 그 세 시녀들이 절대 내 방에 접근치 못하게 해야 한다." "알겠습니다. 공자님!" "음, 물러가 있거라." 곽도양은 공손히 고개를 조아린 후 방을 나갔다. 백수범은 한 동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는 천마사후공(天魔邪侯功)을 운기했다. 그러자 즉시 그의 몸에 서 푸른 기운이 흘러나와 그의 전신을 뒤덮었다. 그의 얼굴도 완 전히 청면(靑面)이 되어 마존(魔尊)의 형용을 방불케 했다. 그는 내심 중얼거렸다. '이것으로 팔십이 번째 시도다. 천마사후공을 운공한 뒤 전진(全 眞)의 기환술 중 육체의 허상을 만들어 놓고 빠져나가는 천령이체 술(天靈離體術)을 시전하는데 지금까지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이 갑자기 그는 전신이 갈라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동시에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스스스스....... 푸른 기운 속에서 한 줄기 인영이 유령같이 빠져나오는 것이 아닌 가? 그 인영은 다름아닌 백수범이었다. 백수범은 그 푸른 기류의 덩어리를 보고 있었다. '성공이다! 과연 천령이체술은 신비막측한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저 운무를 건드리면 나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라진다.' 휙---! 백수범의 모습은 방 안에서 사라졌다. 백령비마(白靈飛魔) 육견불(陸見佛). 그는 현재 나이 육십 세였다. 그러나 그는 평소 성격이 매우 고지 식하고 괴팍하기까지 했다. 때문에 그는 무공이 고강함에도 불구하고 천마성 내에서 백의수호 무사의 통령(統領)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것은 곧 그가 남과 같이 권모를 부리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가 쓰는 무기는 혈천쌍두사(血天雙頭蛇)였다. 그것은 가는 쇠사슬에 두 개의 뱀모양 머리가 달린 괴형병기였다. 그밖에도 그는 경공술이 일품이었다. 그는 외성(外城)의 백의전(白衣殿)에 있었다. 지금 그는 서탁에 앉아 열심히 공무를 보고 있는 중이었다. 스스스스....... 경미한 음향과 함께 방 안에 백수범의 모습이 나타났다. 육견불은 흠칫했다. 그러나 이내 그를 알아보고는 급히 몸을 일으켰다. "공자." 백수범은 슬쩍 소매를 저었다. "예를 거두시오. 육통령." 육견불은 굽히려던 허리가 저절로 펴짐을 느꼈다. 백수범은 빙긋이 웃으며 그의 맞은 편 의자에 앉는 즉시 물었다. "그 동안의 일은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소?" 육견불은 미소를 지었다. "천마성 내의 삼십 명 백의수좌령들은 한 마음 한 뜻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칠성 (南七省) 각 분타에 흩어져 있는 삼십 명의 수좌령들도 호응하고 있습니다." 백수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육통령의 노고는 잊지 않겠소." 육견불은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씀을......" "한 가지 물을 게 있소. 황의수호무사의 통령인 마불(魔佛) 공화승(孔和昇)은 어떻소?" 육견불은 공손히 답변했다. "아직 그에게 모든 것을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역시 불만이 많은 자인지라 조만간 공자님께 마음이 기울어질 것입니다." "음, 수고 많았소." "별 말씀을 다하십니다." 백수범은 부드럽게 말했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은 육통령께 한 가지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말씀하십시오. 공자." "며칠 전 독황 서래음이 나를 찾아왔었소이다. 그는......." 백수범은 독황 서래음과 금차신녀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했다. 그 얘기를 모두 듣고 나자 육견불의 안색은 침중해졌다. "음, 독황의 무공과 독술은 실로 무섭습니다. 그러나 더욱 무서운 것은 그의 지략입니다. 천마성 내에서 그의 세력은 대단합니다. 결코 아무 이유없이 진심으로 공자님께 접근할 리가 없습니다." 백수범은 빙긋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육견불도 마주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다고 그의 제의를 완전히 거부할 필요도 없다고 봅니다. 오 히려 적절히 이용한다면 큰 힘이 될 것입니다." "후후후후....... 육통령." 느닷없는 백수범의 기묘한 웃음에 육견불은 의아했다. "나는 천마성의 모든 인물들은 사람보는 안목이 형편없다고 생각 하오. 육통령이 지모를 쓸 줄 모른다고 하나 내 보기에는 독황 못지 않다고 느끼오." "별 말씀을.... 노부가 어찌 감히 그와 비교되겠습니까?" 그러나 겉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육견불의 얼굴에는 희색이 떠오르 고 있었다. 사람은 칭찬에 약한 법이다. 게다가 자신을 알아주고 신임해 준다면 목숨까지도 바치는데 인색하지 않은 자도 있었다. "아니오. 이건 사실이오." 백수범이 진지하게 말하자 육견불의 얼굴에는 희색이 떠올랐다. 그는 백수범에게 급격히 마음이 끌리는 것을 느꼈다. 백수범은 더욱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육통령, 한 가지 더 묻고 싶소. 현재 금천성이나 비무강, 남궁신풍의 세력은 어느 정도 요?" 육견불의 안색은 금세 침중히 가라 앉았다. "노부 역시 추측하기가 힘듭니다. 그들은 이미 십 년 이상 기반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 동 안 아무도 모르게 각자의 세력을 다져와서 천마성의 고수는 물론 그밖의 중원무림에도 무서 운 동조세력을 갖고 있습니다. 우선 현재 우리의 세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음." "첫째 공자로 말할 것 같으며 금의수호무사가 드러나 있는 세력입 니다. 그는 심기가 깊고 침착할 뿐 아니라 이십 년 동안 천마성의 요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가장 무서운 힘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둘째공자 비무강은 비록 겉으로는 무공광(武功狂)으로 밤낮없이 무공만 연마하고 있는듯 하지만 역시 암암리에 세력을 구축하고 있습니다. 일 년 전 그는 왜국무사(倭國武士) 두 명 을 초청해온 적이 있는데 그들은 고도의 첩자술(諜者術)을 익힌 인자(忍者)들입니다. 무슨 목적으로 그들을 데려왔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첫째 못지 않게 무서운 인물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육견불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남궁신풍은 유일하게 가세(家勢)를 지닌 자입니다. 그는 중원무 림에서 수백 년 전통의 명문세가인 호남(湖南) 남궁세가(南宮勢家)의 소가주(小家主)입니 다." "남궁세가라면... 정파(正派)가 아니오?" 백수범은 뜻밖의 사실에 크게 놀랐다. "그렇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유일한 명문정파 출신입니다. 성주님 께서는 도량이 넓으셔서 제자를 선택하는데 출신을 가리지 않으십니다." "으음, 남궁세가 출신이라......." 백수범의 안색은 침중해졌다. 남궁세가야말로 오백 년 가까운 전 통을 지닌 중원의 대세가가 아닌가? "어쩌면 남궁신풍의 세력은 안과 밖으로 가장 클 지도 모릅니다. 또한 그는 겉으로는 온화 하고 부드러우나 내심은 독랄하고 음흉한 자로써 공자님께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입니 다." "으음." 육견불은 그를 응시하다가 문득 물었다. "공자님, 혹시 새외(塞外)의 사대세력을 아십니까?" "새외 사대세력?" 육견불은 내친 김이라는 듯 침을 삼킨 후 설명했다. "새외 사대세력은 천마성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는 무시못할 세력입니다."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이오?" "동해(東海)에 있는 혈붕도(血鵬島), 서(西)쪽의 구천마궁(九天魔 宮), 남(南)쪽의 유명부(幽冥府), 북해(北海)의 빙백전(氷魄殿)을 말하는 것입니다." 백수범은 안색이 굳어졌다. 그는 사대세력 중 일부는 들은 적이 있었다. 과거 천면신개를 합공했던 자들이 바로 구마신(九魔神), 즉 구천마궁(九天魔宮)의 인물들이었다. 또한 마도장의 공손기를 습격한 세력은 유명부(幽冥府)의 유령인마(幽靈人魔)였다. 나머지 혈붕도와 빙백전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그는 눈을 빛내며 물었다. "그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요?" 육견불은 침중한 어조로 대꾸했다. "그들은 중원의 동서남북에 흩어져 근 사백 년 동안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그들의 실력은 상세히 알려진 바는 없지만 상상을 불허 한다고 합니다. 비록 천마성에는 못미치나 결코 무시 못할 존재들입니다." 육견불은 갑자기 음성을 낮추었다. "특히 경계해야 할 것은 그들 사대세력이 수십 년 전부터 천마성 의 세력다툼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육견불의 음성은 더욱더 낮아졌다. "금천성은 동해의 혈붕도(血鵬島)와 손을 잡고 있으며, 비무강은 구천마궁(九天魔宮)을 포 섭했습니다. 또한 남궁신풍은 남쪽의 유명부(幽冥府)와 관계하고 있습니다." 백수범은 언뜻 느껴지는 것이 있었다. '남궁신풍이 유명부와? 그렇다면 과거 공손기의 마차를 습격하게 한 것은 남궁신풍이 틀림없구나.' 육견불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단지 북해의 빙백전(氷魄殿)만이 아직 아무와도 손을 잡지 않고 있습니다." 육견불은 문득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천의(天意)입니다. 공자님께서 천하를 얻으시려면 그 첫 걸음으로 빙백전과 손을 잡아야 할 것입니다." "음." 백수범은 그의 말에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육통령, 혹시 구마신을 아시오?" 육견불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구천마궁의 궁주인 구천마군(九天魔君)의 아홉제자들입니다. 그들은 각기 한 가지씩의 특기를 가지고 있으 며 무공이 절정급들입니다. 구천마궁에서 손가락을 꼽는 고수들입니다." 백수범은 내심 놀라고 있었다. '음. 천면신개 악비양은 구마신 중 다섯 명을 해치웠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의 무공은 실로 대단하구나.' 육견불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참, 이년 전 구마신 중 다섯 명이 정파의 전대 기인인 천면신개 에게 죽었다고 합니다. 그 일로 구천마궁에서는 혈안이 되어 천면 신개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면신개의 종적은 감감하기만 합니다." "음, 구마신 중 오마신이 죽었다면 그들의 세력은 무척 약해졌겠구려?" "그렇지도 않습니다. 실상 죽은 오마신의 무공은 구마신 중에서도 낮은 자들이며 구천마궁에는 그 정도의 고수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백수범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하며 안색이 침중해졌다. "고맙소. 육통령." 그는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덧붙였다. "육통령, 이틀 후 나는 천마성을 나가게 될 것이오." 육견불의 얼굴에서 당혹감이 일었다. 백수범의 다음 말이 이어졌다. "이것은 사부님의 뜻이니 어길 수가 없소. 그 동안 사부님의 무공 을 이어 받았고 성내에서 자리도 잡았으니 이제 강호에 나가 각 분타를 돌면서 경험을 쌓으라는 것이오." 육견불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없는 동안 성내의 모든 일은 육통령께 맡길 테니 잘 부탁하오." 육견불은 진지하게 말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그러나 강호에 나가시면 극히 조심해야 합니다. 그 렇게 되면 그들 세 명의 제자들이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 본격 적으로 암수(暗手)를 펼칠 것입니다." "알겠소. 육통령의 충언을 유념하겠소." 백수범은 부드럽게 말한 뒤 그의 손을 잡았다. "육통령, 그럼 그대만 믿겠소이다." 육견불은 황급히 그의 손을 놓으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는 엄숙한 신색을 갖추고 있었다. "공자, 예로부터 신하(臣下)는 자신을 알아주는 주군(主君)을 위 해 목숨을 바친다고 했습니다. 제가 공자님을 만난 지는 일 년도 채 안 되나 공자님은 저를 인정하셨습니다. 저 역시 공자님을 진 정한 주군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맙소. 육통령." 두 사람은 뜨겁게 서로의 손을 꽉 잡았다. 실리(實利)를 떠나 그들 사이에는 진정한 사나이의 정이 오가고 있었다. 천마각(天魔閣) 오층. 천마대제 탁무영은 태사의에 앉아 지그시 백수범을 내려보고 있었 다. 백수범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흠, 아무도 데리고 가지 않을 작정이냐?" "그렇습니다." 천마성주는 일말의 염려를 드러냈다. "위험할 텐데?" 백수범은 공손히 대답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가겠다는 것입니다." 천마성주의 눈이 차츰 기묘한 빛을 띄었다. 그는 한동안 백수범을 응시하더니 담담히 말했다. "컸구나." 백수범은 움찔했다. 천마성주는 무릎에 앉아 있는 소설(小雪)의 흰 털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무척 컸다. 네가 이곳에 들어올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구나. 모든 것이 너의 세 사형 못지 않게 성장했구나." "과찬이십니다. 사부님." 천마성주는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노부는 쓸데없는 칭찬을 하지 않는다. 노부의 말은 엄연한 사실이다." 천마성주는 계속하여 백수범을 내려다 보았다. 그의 담담한 표정에서는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백수범은 천마성에 들어온 이래 그를 모두 다섯 번 보았다. 그러나 볼 때마다 천마성주는 더욱더 멀리 있는 존재였다. 항상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천마성주의 눈빛은 담담했고 어린애같이 맑기까지 했다. 그는 한 번도 안색을 찌푸리거나 음성을 높인 적도 없었다. 그러 나 바로 그 점이 더욱더 천마성주를 무섭게 느껴지게 하는 면이었다. 천마성의 인물들은 그를 하늘같이 떠받들었다. 그의 앞에서는 기 지도 그 무엇도 내세우려 들지 못했다. 모든 것은 천마성주의 손바닥 안에 들어 있었다. 천마성주는 불세 출의 대효웅(大梟雄)이었다. 백수범은 무릎을 꿇은 채 그가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좀체로 천마성주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윽고 향 한 자루가 탈 시간이 지 나서야 천마성주는 입을 열었다. "가거라. 강호에 나가거라." "사부님......." "강호에 나가 네 마음대로 돌아다녀라. 어디에 가든, 무슨 행동을 하든 너를 간섭할 자는 없다. 너는 너의 모든 역량을 발휘하여 마 음껏 강호를 주름 잡아라." "아!" "이것은 천마성의 후계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발걸음이다. 천마 성의 후계자는 독패천하(獨覇天下)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노부 는 두고 보겠다. 강호에서 너에 대한 소문이 어떻게 날 것인가를 지켜보겠다." 백수범은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점차 가슴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혈기(血氣). 그것은 젊음만이 지니고 있는 야망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강호(江湖)! 드디어 드넓은 강호계로 그는 첫 발걸음을 딛게 된 것이다. 그것도 당당한 천마성의 후계자로서의 제 일 보였다. 천마성주는 다시 말을 이었다. "강호의 어느 곳을 가든 분타(分舵)가 설치되어 있다. 너는 그곳 에서 무엇이든 지시할 수 있다. 네가 지니고 있는 천마영부는 곧 노부가 직접 현신한 것과 같은 효력을 발생한다." "명심하겠습니다." "또한 전 중원에는 수천 개의 본성 제자들이 운영하는 전장(錢莊) 이 있다. 너는 그곳에서 얼마든지 은자를 쓸 수가 있다." 백수범은 고개를 숙였다. 탁! 하는 가벼운 소리와 함께 그의 앞에 한 권의 얇은 책자가 떨어졌다. "그것은 전국 이백팔 개 분타의 명부다. 그리고 각 전장의 위치와 책임자들이 수록되어 있다. 너는 그 모든 것을 필요에 따라 유용할 수가 있다." "고맙습니다. 사부님." 백수범은 책자를 받아들었다. 야- 옹! 이때 천마성주의 품에 안겨 있던 소설이 울었다. 천마성주는 소설 의 하얀 털을 쓰다듬으며 자애스럽게 웃었다. "허허! 네가 배가 고픈가 보구나. 알겠다, 알겠어. 조금만 참아 라. 영영(瓔瓔)이 곧 올 것이다." 캬- 악! 캬아- 악! 이번에는 그의 어깨에 앉아 있던 금응이 날카롭게 울부짖었다. "오냐, 오냐. 너도 배가 고픈 모양이구나." 천마성주는 마치 두 마리 짐승과 대화를 나누듯 말하고 있었다. 이미 백수범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린 것 같았다. 백수범은 한숨을 내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큰 절을 한 번 올린 후 방을 물러나왔 다. 무이산(武夷山)의 한 이름없는 산봉(山峯). 그곳은 천마성의 웅장한 모습이 한 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휘--- 이--- 잉! 윙----! 차가운 한풍이 산봉을 할퀴듯 몰아쳤다. 그에 따라 산봉에 하얗게 쌓여있는 눈이 마구 흩날렸다. 백수범은 부는 바람에 홍의자락을 휘날리며 우뚝 선 채 천마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수범의 눈에서 무서운 신광이 뻗어 나왔다. '이제 시작이다. 이 백수범, 뜻을 펼 때가 되었다.' 그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어렸다. '후후후! 천마성, 너의 웅장한 모습도 당분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곧 돌아오리라. 왜냐하면 너, 천마성을 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백수범은 하늘을 향해 일진광소를 터뜨렸다. "으핫핫핫핫......!" 그의 광소는 우렁차게 창공으로 퍼져 올라갔다. 휙---! 그의 신형은 일직선으로 창공을 향해 솟아올랐다. 천마충소(天魔 沖宵)의 신법으로 천마교가 자랑하는 경공절학이었다. 붉은 신형 은 허공으로 무려 백 장(百丈)이나 치솟았다가 한 순간에 꺼져버렸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잔결방(殘缺 ). 이는 산동성(山東省)에 자리잡은 괴이한 방파였다. 괴이하게도 잔결방의 방도들은 방주 잔결신마(殘缺神魔) 웅천표 (雄天票)를 위시하여 모두 불구자(不具者)들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잔결신마 웅천표. 그는 사도무림의 일제이황삼존사마 중 사마(四魔)에 속해 있었다. 그는 양 팔은 물론, 양 다리, 그리고 한 쪽 눈까지 없는 불구자였다. 그러나 무공은 개세적이었다. 그러기에 사마(四魔) 중의 일인의 서열에 들게 된 것이다. 그는 성격도 매우 괴퍅했다. 그가 이끄는 잔결방도는 약 이백 인(二百人)으로 잔결방은 산동성 일대에서 가공할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잔결방의 방도 이백인과 방주인 잔결신마 웅천표 가 갑자기 실종되고 말았다. 잔결방의 총단은 산동성 태산에 있었다. 바로 태산의 음사곡(陰沙 谷)이었다. 그러나 음사곡은 텅 비어 버렸다. 삼월회(三月會). 이는 안휘(安徽) 일대에서 커다란 세력을 갖고 있는 문파였다. 삼 월회는 세 명의 쌍동이 형제들이 이끌고 있었다. 육십 년 전부터 삼월회의 이름은 안휘성 제일문파로 부각되었다. 삼월회의 세 회주(會主)는 각기 다음과 같았다. 금월(金月) 구양중(歐陽仲). 은월(銀月) 구양서(歐陽書). 반월(半月) 구양전(歐陽典). 그런데 그들 세 쌍동이 형제가 이끄는 삼월회는 산동의 잔결방이 실종된 지 한 달 후 역시 원인 모르게 안휘성 일월산(日月山) 총 단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강호는 크게 술렁거렸다. 이 몇 달 사이에 심상치 않은 공기가 감돌았다. 잔결방과 삼월회 의 실종, 이것은 결코 범상한 조짐이 아니었다. 여기에 또 하나의 충격파가 전해졌으니....... 흑루(黑樓). 이는 강호에 알려진 최대의 비밀조직이었다. 흑루는 일종의 무서운 엽살수(獵殺手), 즉 살인청부업자들의 조직 이었다. 이들에게는 은자(銀子)만 걸면 누구든지 살인을 위탁할 수가 있었다. 일검섬예(一劍閃猊). 이것이 흑루의 주인인 흑루주(黑樓主)의 명호였다. 그는 공포의 살수로 알려져 있었으나 아무도 그의 진실한 내력이 나 모습을 본 자가 없었다. 그를 본 자는 모두 죽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잔결방과 삼월회가 실종된 지 한 달 후 흑루주는 갑작스레 강호에 폐업(廢業)을 선언했다. 그와 동시에 호북(湖北)의 천문산(天門山)에 있는 흑루(黑樓)가 불타버리더니 그 날부터 흑루의 엽살수들은 일제히 강호상에서 자 취를 감추고 말았다. 대체 어찌된 일인가? 무림인들은 이 연이은 의문의 사건에 아연함을 금치 못했다.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머지 않아 가공할 혈풍(血風) 이 일어나리라고 막연히 추측할 뿐이었다. 겨울(冬). 대륙의 겨울은 이렇게 끝나가고 있었다. 심상치 않은 의문과 공포 (恐怖)를 내포한 채로.......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즐독 ㄳ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