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펌 or 스크랩 3.1올레 가이드

[지은]

서울의 3.1운동 올레길

3.1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각계각층이 대중적으로 참여하여 벌인 민족해방운동입니다. 1919년 3월 1일, 서울의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운동은 4월 말까지 전국에서 이어졌습니다. 주요 도시는 물론이고 시골 장터가 무대였습니다. 노동자는 파업으로, 상인들은 상가 철시로 일제에 항거했고, 농촌에서는 산에 올라 횃불을 밝히고 봉화를 피워 올리기도 했습니다. 한반도만이 아니라 만주와 간도, 연해주, 미국 등지에서도 조국독립을 위해 모두 한마음으로 일어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 지역의 만세시위를 다른 지역으로 전달하고, 새로운 시위를 조직하는 유관순 열사와 같은‘만세꾼’들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3.1운동은 독립운동의 큰 분수령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우리 민주주의 역사에서도 중요한 기점이기도 합니다. 3.1운동의 성과를 발판 삼아 각지에 흩어져 있던 독립운동 지사들이 상해에 모여 임시정부를 수립할 수 있었고, 임시정부에서 처음으로 국민이 주권을 가진 나라 즉, 민주공화국이 천명되었습니다. 고종 황제의 승하라는 봉건시대의 마지막을 알리는 시점을 빌어 거족적으로 3.1독립운동이 일어났고, 이를 토대로 민족해방운동의 방향으로서 민주주의 국가 수립 운동이 시작된 셈입니다. 그래서 제헌 이래 우리 헌법의 전문에는 3.1운동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3.1운동은 여전히 우리에게 살아 있는 현재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서울은 독립만세운동이 처음 준비되어 3월 1일에 대규모 시위가 시작된 곳입니다. 그래서 서울의 3.1운동 올레길은 만세시위가 모의되어 실행되기까지의 과정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코스로 구성해보았습니다. 민족대표들이 모여 운동을 준비한 곳, 학생대표들이 만세시위를 모의한 주요한 장소들, 독립선언서가 인쇄되고 뿌려진 곳, 만세시위가 벌어진 주요 장소, 당시 민족 지도자들이 투옥된 감옥 등을 둘러보게 됩니다. 우리가 무심코 찾는 북촌 한옥마을 일대, 인사동과 종로통의 뒷골목, 덕수궁 돌담길, 서대문 성곽을 따라 독립문에 이르는 길이 바로 3.1운동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곳들입니다.

이른바‘한일병합조약(경술국치, 1910년 8월 22일)’이래 우리 민족은 일제의 헌병과 경찰이 모든 행정과 사법을 담당하는 강압적 지배하에 놓여 있었습니다.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과 같은 기본권은 철저히 박탈되고, 민족교육은 억압받고 있었습니다. 토지조사사업으로 불법 침탈한 일본인의 토지소유가 인정되고, 광대한 토지가 총독부 소유로 편입되면서 농민들은 몰락하여 일제의 소작농으로 전락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도시로 흘러든 사람들은 빈민 노동자로서 가혹한 노동조건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극소수의 친일파를 제외한 거의 모든 계급과 계층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은 고조되고 있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국외에 독립군기지를 건설하기 위한 운동, 국내에서의 비밀결사운동, 교육문화운동 등을 통해 독립운동의 역량은 강화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1918년 1월, 미국의 윌슨 대통령이 제1차 세계대전의 강화조건으로서 민족자결주의를 주창하고 나섰습니다. 국내외 독립운동 지사들은 윌슨의 민족자결의 원칙에 조선도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1919년 1월로 예정된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하여 세계열강에게 조선의 독립의지를 알리고자 했습니다. 상해에서 여운형이 중심이 된 신한청년단이 가까스로 대표단 파견에 성공하여 김규식을 파리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한편 강화회의를 앞두고 조선인의 자주독립의지를 밝히고 세계에 알리기 위하여 각지에서 독립선언이 발표되었습니다. 먼저 1918년 12월(음력 무오년)에 북만주와 중국, 연해주, 미주 등지에서 활동하던 독립지사 39명의 이름으로 무오독립선언이 발표되었고, 곧이어 동경유학생을 중심으로 2.8독립선언이 이어졌습니다.  

국내에서 3.1독립운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천도교와 기독교의 입장이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천도교는 민족대표가 독립선언을 하고 대중적인 독립선언운동을 함으로써 독립의지를 만방에 알리는 동시에 일본 상하의원, 조선총독부 및 파리강화회의 열국위원 및 미국 대통령 윌슨에게 조선독립에 관한 요구와 의견을 제출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일본 정부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자는 입장으로 이를 위해 독립청원 서명운동을 비밀리에 펼치자는 주장을 폈습니다. 2월 24일에 천도교의 병행론 방식으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천도교와 기독교, 학생 세 갈래의 흐름이 통합되어 거사 준비는 급물살을 타게 됩니다. 고종 황제의 인산일인 3월 3일에 거사를 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예의에 어긋난다 해서 3월 1일로 결정됩니다. 이 과정에서 천도교의 최린(친일파로 변절), 기독교의 이승훈과 함태영, 불교의 한용운, 학생계의 박희도(친일파로 변절)가 큰 활약을 했습니다.

총독부 기관지격인 매일신보가 보도를 시작한 것은 3월 7일부터입니다. 매일신보를 통해 본 3월 1일의 상황은 이렇습니다. 3월 1일 오후 2시 30분에 파고다 공원에서 행진을 시작은 만세시위대는 대한문 앞에서 고종의 문상행렬과 결합하여 대규모 행렬이 됩니다. 만세시위대는 여러 갈래로 나뉘는데 한 대열은 소공로를 따라 남대문과 서울역을 거쳐 충정로 프랑스 대사관에 이르고, 한 대열은 종로를 거쳐 창덕궁 앞으로, 한 대열은 태평로와 세종로를 지나 광화문 앞으로 진출합니다. 또 한 대열은 덕수궁 안으로 들어가 덕수궁 후문을 빠져나와 정동로터리 방향으로 나오고, 다른 대열은 소공로를 통해 충무로를 거쳐 남산 자락에 있던 조선총독부로 향하기도 합니다. 일제는 광화문과 한국은행 앞 로터리에서 강력한 진압에 나서는데 시위대들은 외곽으로 빠져 나가 마포의 전차종점과 신촌 연세대 앞에서 시위를 벌였습니다. 밤이 깊어 자정이 넘은 시간에는 다시 종각 앞에 모여 독립만세를 외칩니다. 이 같은 만세시위가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 그 준비과정부터 따라 가보기로 하겠습니다.

1. 3.1운동이 처음 논의된 장소 : 계동 중앙고 숙직실

3.1운동의 거사준비는 1919년 1월 하순, 동경 유학생 송계백이 계동 중앙고보 숙직실로 중앙고보 교사인 현상윤을 찾아간 데서 시작된다. 송계백은 사각모 안에 비단으로 쓴 ‘2.8독립선언서’초안을 숨겨 들여와 현상윤에게 동경유학생들의 거사계획을 알렸다. 현상윤은 이를 중앙고보 교장 송진우와 친구 최남선에게 보였고, 다시 송계백과 함께 보성고보 교장인 최린을 만나, 손병희에게도 전달했다. 이를 본 손병희는 지금까지의 독립운동 추진 계획을 가속화하고, 나아가 다른 종교계와 접촉하여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모색하도록 했다. 송계백은 국내와 공동으로 독립운동을 추진하기로 협의한 후 일본으로 돌아갔다. 1919년 2월 8일 오후 2시, 동경의 조선기독교청년회관에서 조선유학생학우회 총회를 명목으로 4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유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고 독립만세 시위행진을 하다가 출동한 일본경찰에 해산되고, 27명이 체포되었다. 송계백은 7개월 15일의 금고형을 선고받고 동경감옥에서 복역하다가 옥사했다.

중앙고보 숙직실은 1917년 완공된 중앙고보 본관 동남쪽 언덕에 세워져 있었다. 1937년 9월 신본관이 완공될 때 같이 지어진 강당 자리가 중앙고보 숙직실 자리였다. 중앙고보 숙직실은 다른 곳으로 옮겨가 있다가 강당 북쪽에 3.1운동 기념관으로 복원되었다.

2. 만해 한용운 옛집 - 천도교, 기독교, 불교계 통합 모임이 이루어진 곳

만해는 1918년 9월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 교양 잡지 <유심(惟心)>을 창간하였다. 서울 계동 43번지에 유심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인쇄는 최남선이 운영하는 신문관에서 했다. 1918년 10월에 2호, 12월에 3호까지 발간되었다. 1919년 2월 24일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의 합작교섭을 마무리 지은 최린은 만해 한용운을 찾아가 불교계의 민족대표 참여를 내락 받았다. 천도교계와 기독교계, 불교계 지도자들로 이루어진 민족대표의 골격이 비로소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불교계의 대표로서 한용운은 해인사 승려 백용성만 민족대표로 참여시킬 수 있었다. 유림에 대한 포섭도 한용운의 몫이었다. 거창으로 내려가 영남 유림의 거유 면우 곽종석을 만나 승낙을 얻었다. 그러나 곽종석은 3월 1일 직전 급환이 생겨 아들 편에 인장을 주어 만해를 찾아가도록 하였으나 3.1전야의 분망 속이라 만나지 못하였다. 곽종석은 민족대표로 서명하는 기회를 놓치게 되고, 이를 분통하게 여기어 뒷날 파리장서(1919년 유림들이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장문의 서한을 보낸 사건)를 주도하게 된다. 그리고 불교계의 '독립선언서' 배포 책임을 맡은 만해는 2월 28일, 선언서 3000매를 인수하여 그날 밤 자신의 거처로 중앙학림 학생 10여 명을 불러 독립운동에 대한 소신을 알리고 학생들이 담당할 역할을 알려주었다.

계동43번지 한용운 옛집은 지금 아무런 문화재도 아니다. 이 집이 가지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마땅히 정부에서 매입해서 만해 한용운 기념관을 세워야 할 것이다. 3.1운동의 현장이 대부분 사라진 현실에서 이 조그마한 옛집이 주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만해 한용운이 계동 43번지에 거처할 때 쓴 에세이를 통하여 이 장소가 주는 의미를 한번 새겨보자. <전가의 오동(前家의 梧桐)>이란 에세이인데 1919년 당시에는 한용운 옛집 앞집에 오동나무가 있었다. 처음 한 구절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나의 우거(寓居)는 계동 막바지의 여두소옥(如斗小屋)이라, 지면이나 건물로 말하면 심히 협소하여 매우 갑갑할 듯하다. 그러나 그렇게 몹시 갑갑하지 아니한 이유는 지형이 초고(稍高)하여 비교적 일광을 많이 받고, 공기가 청신하여 청풍이 시래(時來)하며, 주위에 수목이 있어서 그 양음적취(凉陰積翠)가 족히 고염(苦炎)의 번민을 소각(銷却)하는 까닭이라. 그러므로 협착(狹窄)한 소옥에서 성하(盛夏)를 지냈으되 그다지 염열(炎熱)의 고를 감각치 못하였도다.”

3. 가회동 손병희 옛집 터 - 민족대표 33인이 처음 서로 얼굴을 마주한 곳

2월 28일 저녁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양전백, 길선주, 이명룡, 김병조, 정춘수, 나인협, 홍기조, 양한묵, 백상규를 제외한 23인이 서로 얼굴을 익히고 독립선언식의 절차를 협의하기 위해 손병희의 집에서 회합을 가졌다. 일제의 감시가 항상 미치는 손병희 집에서 이런 모임이 가능했던 것은 손병희 집이 워낙 넓었고, 천도교 쪽의 고종 문상인파가 지방에서 많이 올라와서 손병희 집에 손님 수백 명 들락거리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박희도가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독립선언식이 가져올 만일의 사태를 우려하는 의견을 제기하였다. 그 결과 독립선언 장소는 당초 예정했던 탑골공원에서 평소 손병희가 자주 찾던 요리점인 인사동의 태화관으로 장소를 급작스럽게 변경하게 되었다.

4. 천도교 중앙총부 옛터 - 천도교와 기독교의 합작, 현 덕성여중

천도교계와 기독교계 사이에는 독립운동의 방식을 놓고 상당한 의견의 차이가 있었다. 1919년 2월 21일, 최남선이 이승훈의 숙소로 찾아가 이승훈과 최린의 회담을 전격적으로 성사시켰다. 이 회합으로 기독교 측과 천도교 측의 합작교섭은 다시 급물살을 탔다. 이승훈과 함태영은 2월 24일, 최린과 함께 송현동 34번지 현 덕성여중 자리에 있던 천도교 중앙총부로 손병희를 방문하여 양측의 독립운동 일원화 방침을 최종확정하였다.

5. 보성사 옛터 - 3.1 독립선언문 인쇄 장소, 현 조계사 자리

3.1독립선언문의 인쇄 과정을 당시의 재판 판결문에 의거해서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다.  최남선은 자신이 직접 경영하는 인쇄소인 신문관 직공에게 활자를 짜게 해서 완성한 활자판을 최린의 집으로 보냈다. 보성사 사장 이종일은 공장 감독 김홍규에게 지시를 내려 그것을 가져오게 했다. 공장 감독 김홍규는 다시 보성사 인쇄 직공 신영구에게 인쇄를 명하여 독립선언서 2만 1천매를 27일 밤 11시 경에 인쇄 완료하였다. 3월 1일 당일 아침에는 천도교월보 편집인인 이종린이 편집한 <독립신문>이 보성사에서 인쇄되어 오후 2시에 파고다공원에서 배포되기도 했다. 이 <독립신문> 인쇄도 이종일이 공장 감독 김홍규에게 지시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6. 경운동 이종일 옛집 터 - 3.1 독립선언문을 배포한 곳

보성사 사장이던 이종일은 2월 27일, 보성사에서 인쇄한 독립선언서 2만 매를 자신의 집으로 운반해 와 2월 28일 전국 각지로 배포함으로써 거족적인 독립운동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이종일의 집은 지금 표지석이 서 있는 수운회관 앞이 아니라‘세계어린이운동발상지’라는 방정환 선생의 어린이운동 기념비가 서 있는 곳에 있었다. 3.1운동 당시 방정환은 손병희의 사위로서 천도교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종린을 도와 <독립신문>을 발행하여 중학생들의 도움으로 돌리다 일본경찰에 체포되었으나 1주일 만에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왔다. 같이 독립신문 발행에 동참한 청년구락부 동료들은 일경의 고문으로 옥사하였으며 방정환도 고문을 당했다. 1921년 "천도교 소년회"를 만들어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자는 내용으로 순회강연을 다니기 시작했다. 1923년에는 한국 최초의 순수 아동잡지인 월간 《어린이》(1923년 창간-1934년 7월 통권 122호 발간)를 창간하였다.

7. 인사동 태화관 옛터 - 민족대표들이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곳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29인이 참석한 가운데 독립선언식을 거행한 장소다. 이곳은 본래 인조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인데 이후 세도가인 안동김씨 김흥근의 저택이었다가 헌종의 후궁 김씨의 순화궁으로 그 주인이 바뀌었다. 그리고 1907년 친일파 이완용의 소유가 되었다. 이완용은 이곳에서 5년간 살다가 요리집인 명월관에 집을 빌려주고 떠났다. 그때부터 명월관 지점이 되었다. 태화관은 명월관 지점으로 3.1운동을 맞았고, 이후 1938년 남감리교 세계 선교부가 매입하여 태화관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태화기독교사회관이라는 절충식 2층 건물을 1939년 7월에 준공하였다. 태화기독교사회관 건물도 1979년 8월, 재개발 바람에 헐려버렸다.

지금 태화관 옛터 자리에는 3.1독립선언 유적비가 서 있다. 하지만 그 장소가 주는 역사성을 느낄 만한 아무런 유적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느낌이 나지 않는다. 만해 한용운이 3.1운동이 일어난 지 13년이 지난 1932년 1월에 쓴 <평생 못 잊을 상처>란 글을 보면 태화관 옛터가 주는 의미가 달리 다가온다.  

 “지금은 벌써 옛날 이야기로 돌아갔습니다마는 기미운동이 폭발할 때에 온 장안은 '대한 독립 만세' 소리로 요란하고 인심은 물 끓듯 할 때에 우리는 지금의 태화관에서 독립선언 연설을 하다가 경찰부에 포위되어 한쪽에서는 연설을 계속하고 한쪽에서는 체포되어 자동차로 호송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나도 신체의 자유를 잃어버리고 마포경찰부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입니다. 열 두서넛 되어 보이는 소학생 두 명이 내가 탄 차를 향하여 만세를 부르고 또 손을 들어 또 부르다가 일경의 제지로 개천에 떨어지면서도 부르다가 마침내는 잡히게 되는데, 한 학생이 잡히는 것을 보고는 옆의 학생은 그래도 또 부르는 것을 차창으로 보았습니다. 그때 그 학생들이 누구이며, 왜 그같이 지극히 불렀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을  보고 그 소리를 듣던 나의 눈에서는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눈물이 비 오듯 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소년들의 그림자와 소리로 맺힌 나의 눈물이 일생을 잊지 못하는 상처입니다.”

8. 인사동 승동교회 - 3.1운동 학생지도부가 구성되어 역할을 배분한 곳

현재의 승동교회 건물은 1902년 11월에 준공되어 1958년 12월에 증개축 하였다. 승동교회는 3.1운동의 현장이 그대로 보전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를 더하는 곳이다. 승동교회는 대갓집 소실로 있던 여인네들과 백정, 장인이 많이 다닌다고 해서‘첩장(妾匠)교회’로 불렸던, 피맛골 사람들의 이른바 ‘민중교회’였다. 승동교회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이가 백정 출신의 초대 장로 박성춘이다. 그는 1898년 10월 독립협회 만민공동회의 연사로 나서, 양반사족만이 아니라 사농공상 모두를 합하여 나라의 기둥으로 삼을 때 나라의 힘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는 요지의 연설을 하여 세인의 주목을 받았던 인물이다.

승동교회는 3.1운동 당시 전문학교 학생대표단 거사의 거점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당시 이 교회에 다니던 연희전문의 김원벽, 보성전문의 강기덕, 경성의전의 한위건을 비롯한 시내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은 1919년 2월 20일 여기서 첫 모임을 갖고 독립운동을 이끌어갈 학생 지도부를 구성하였다. 그리고 3.1운동 전야인 2월 28일 다시 모여 학생 동원을 최종검검하고 독립선언서 배포 등의 역할을 분담함으로써 이어지는 탑골공원에서의 독립선언식과 만세시위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9. 탑골공원 - 3.1독립운동 발화지

탑골공원에는 고려시대부터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다. 1464년(세조10) 불교에 대한 신앙심이 깊었던 세조가 원각사로 이름을 고치고 큰 규모로 중건하였다. 연산군 때는 기생방이 되기도 했지만 사찰 건물은 그대로 있었다. 하지만 중종9년 사림의 원각사 철거 주장이 받아들여져 원각사 10층 석탑과 비만 남고 사찰 건물은 다 없어졌다. 사찰이 없어진 원각사 터에 민가들이 들어선 채 조선후기까지 유지되었다. 이 터에 근대식 공원을 조성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개항 이후 5대 총세무사를 역임했던 브라운이었다. 1897년 고종이 러시아영사관에서 경운궁으로 돌아오면서 공원으로 조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은 파고다 공원으로 지었다. 그 1910년 일제의 강제합병 이후 일제는 이 자리에 정자, 의자, 화단, 연못, 산책길, 전등, 수도 등을 설치했다. 파고다공원이 우리역사에 의미가 있게 된 것은 이곳이 3.1독립선언식이 거행된 장소라는 점이다. <독립운동사>에 묘사된 그날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

“우리 민족운동사에서 가장 뜻 깊은 날인 1919년 3월 1일을 드디어 맞이하게 되었다. 이날 새벽 이미 독립선언식을 예고하는 비라가 집집마다 뿌려졌고, 시내 주요한 곳에는 벽보가 나붙었으며, 국민을 격려하는 <조선독립신문> 창간호가 ‘독립선언서’와 함께 배달되었다. 오후 2시 정각 서울 인사동 명월관 지점인 태화관에서 손병희 등 29인은 33인 명의로 된 독립선언서를 선포하였다. 원래 학생들과 33인이 같은 자리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자 하였으나, 원로격인 33인은 파고다공원에서 함께 독립을 선언하게 되면 일제 당국의 방해로 오히려 시위에 혼란을 일으킬까 염려하여 태화관에서 별도로 선언서를 발포하였다고 한다.

독립선언식은 극히 간소하게 거행되었으니, 불교측 민족대표의 한 분인 한용운이 일어나 한국 및 한국인이 독립국임과 자주민임을 선언하고, 그의 선창으로 일동이 ‘대한독립만세’를 일제히 불렀다. 그리고 그들은 이승에서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축배를 올리며 비장한 분위기에 감싸여 오직 일념 조국의 앞날에 영광 있기를 마음 속 깊이 빌었다. 다음 태화관 주인 안순환으로 하여금 조선총독부 경무총감부에 전화를 걸어 민족대표 일동이 독립 축하연을 여기서 베풀고 있다고 통고케 하였다.

이와 동시에 파고다공원에서도 거의 같은 시각에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다. 이에 앞서 학생대표 강기덕, 김원벽, 한위건 3인은 태화관에 가서 민족대표 33인을 모셔 오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민족대표가 예정을 변경하여 여기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기다리던 끝에 군중 속에서 정재용(경신학교 졸업생)이 자진하여 8각정 단상으로 올라가 선언서를 낭독하였다. 꿈속에도 그리던 태극기의 모습을 다시 보는 감격과 천지를 진동하는 만세의 광경을 한 목격자는 대략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이때에 ‘단의 정면에는 10년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태극기가 그 아름답고 씩씩한 자세를 돌연히 나타내어 서울 중앙의 창공에서 포근한 봄바람을 맞아 유유하게 휘날렸다. 이때에 군중의 머릿속은 형용할 수 없는 감격과 흥분으로 가득 찼다. 끓는 피의 붉은 물결은 전신에 가득 찼고, 충천의 기백은 대지를 삼킬 듯 토할 듯, 바로 이 때다. 단상에 뛰어 오른 해주 사람 정재용은 한조각의 접은 종이를 손에 들고 감격에 넘치는 흥분한 어조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갔다. “선언서,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꿈속같이 고요한 장내에는 흥분에 사로잡힌 흐느낌만이 점차로 높아갔다. 읽는 이의 음성도 때로는 말귀가 명백히 들리지 못하였다. 어디선가 ‘대한독립만세!’가 우뢰같이 터져 나왔다. 장내는 천만의 병마를 몰아 달리는 듯하였다. 선명하게 인쇄한 독립선언서와 수기(손깃발)는 각처에서 쏟아져 나왔다. 마치 영산회상에서 하늘 꽃이 비 오듯이. 학생들의 검은 모자는 잘 받은 풋볼처럼 공중으로 올라갔다. 미친 듯 취한 듯 장내의 군중은 어쩔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학생만으로 모이었던 군중이 어느 사이에 서울 시민,·지방 농민, 발을 옮길 수 없으리 만큼 모였다.’

이리하여 3~4천 명의 학생들을 포함하는 수많은 군중들은 자기들끼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시가행진으로 들어갔다. 한편 태화관에 있던 민족대표 29명은 이날 오후 4시경에 헌병과 경찰 80여 명에 의해 자동차에 실려 남산 중턱 왜성대에 있는 경무총감부로 호송되어 갔다.”

10. 종로 중앙기독교청년회 - 3.1운동 초기 학생대표자 모임 장소

YMCA회관은 1908년 12월 준공되어 옆에 있는 한미전기회사와 더불어 1900년대 초기 종로의 전통적인 경관을 근대적인 경관으로 바꾸는데 일등 구실을 하였다. 중앙기독교청년회 강당에서는 자주 시국강연회가 열려 장안에서 많은 청년들이 모이는 장소가 되었다. 종로의 대표적인 경관이었던 중앙기독교청년회 건물은 1950년 전쟁으로 소실되었다. 현 YMCA회관은 1960년부터 1967년에 걸쳐 준공된 건물이다.

중앙기독교 청년회가 3.1운동에서 했던 역할은 1919년 1월 27일 중앙YMCA 회우부 주최의 대관원(종로구 관수동 144, 중국음식점)모임을 주도했던 것이다. 중앙기독교청년회 간사 박희도의 주도로 모인 이 모임에는 강기덕, 주종의, 윤자영, 한위건, 김원벽, 한창식 등이 참여했다. 이 모임에서‘지금이 조선독립운동을 할 호시기가 아닌가?’에 대해서 협의를 했다. 이 모임을 계기로 학생단지도부가 태동되었다. 2월 17일 경에 박희도는 천도교와 기독교의 독립운동 계획 과정에 대해 학생지도부에 전달했다. 이에 강기덕과 한위건은 2월 20일 승동교회에서 김형기, 김대우, 김원벽 등과 함께 모임을 가지고 천도교와 기독교에서 진행시키고 있는 독립운동에 참가하는 문제를 논의했다.

11. 옛 종로경찰서 터 - 3.1운동 당시 독립투사들이 고문당한 곳

1900년, 한미전기주식회사의 사옥으로 근대식 건물이 준공되었다. 이 건물은 1915년, 회사가 일본인 경성전기회사로 넘어간 이후 1915년부터 1929년 8월까지 종로경찰서로 사용되었다. 이 건물이 종로경찰서로 쓰일 때인 1923년 1월 12일 김상옥 열사가 폭탄을 투척했다. 당시 종로경찰서에는 ‘염라대왕’이라 불리는 고등계 주임 미와 경부가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미와는 수많은 조선인 독립 운동가를 체포, 악랄한 심문을 가해 독립 운동가들은 치를 떨었다. 이 건물은 6.25로 소실되어 그 자리에 장안빌딩이 들어섰다.

3.1운동이 낳은 독립운동 영웅, 김상옥(1890~1923) 열사는 서울의 어의동(지금의 효제동)에서 출생했는데 아버지는 구한말 군인이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났는데 14세부터 낮에는 철공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하는 한편 기독교 신자가 되었다. 23세(1912)부터 철물상회를 자영하고 물산장려운동을 전개했다. 3.1운동이 일어나자 본격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는데, 1919년 4월 동대문교회 안의 영국인 피어슨여사 집에서 혁신단이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고 <혁신공보>를 발간하여 독립사상을 계몽, 고취하였다. 3.1운동의 열기가 가라앉자 1919년 12월 민족반역자 처단 암살단을 조직했다. 1920년 4월에는 친일민족반역자 수명을 처형하고 오성 헌병대분소를 습격하여 장총 3정 등을 탈취하였다. 1920년 8월 미국의원단이 동양 각국을 시찰하는 길에 내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환영 나오는 사이토 총독을 암살한다는 거사계획을 세웠지만 일본경찰에게 사전 탐지되어 동지들이 붙잡히고 말았다. 단독 거사를 추진했으나 여의치 않아 1920년 10월에 상해로 망명했다.

상해에 도착한 직후인 1920년 11월 의열단에 가입했다. 1921년 7월에는 독립운동자금 마련을 위해 국내로 들어와 충청도, 전라도 등지에서 자금을 마련해서 다시 상해로 들어갔다. 1923년 1월 사이토 총독이 일본제국의회 참석차 동경 행을 하는 것을 기회로 암살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국내로 잠입했다. 압록강철교를 건너면서 경비경관을 사살하고 신의주에서는 세관검문소 보초를 권총으로 때려눕혔다. 상해 주재 일본 경찰의 통보로 서울은 이미 삼엄한 경비에 들어가 사이토 총독 암살은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그러는 중 1923년 1월 12일 밤 종로경찰서에 김상옥 열사가 던진 폭탄이 터졌다. 건물 일부와 행인7명이 중경상을 입는 소동이 일어났다. 일본 경찰은 폭탄 투척을 누가했는지 처음에는 몰랐다. 하지만 은신하고 있던 후암동 매부 고봉근 집의 행랑채에 살던 여자가 종로경찰서에 근무하던 친정 오빠에게 밀고를 해버렸다. 1923년 1월 17일 새벽 3시에 종로경찰서 우메다, 이마세 두 경부의 지휘 아래 20여명의 경찰이 은신처를 포위했다. 김상옥 열사는 단신으로 두 손에 권총을 들고 총격전을 벌여 형사부장 다무라를 사살하고 수명에게 중상을 입힌 뒤 추격하는 일본경찰에게 사격을 가하면서 눈 덮인 남산을 넘어 금호동에 있는 안장사에 이르렀다. 여기서 승복과 짚신을 빌려 변장하고 산을 내려왔다. 1월 18일 수유리 이모집에서 유숙하고 19일 자신의 고향 마을인 효제동 이혜수의 집에 은신, 동상도 치료하면서 거사계획을 새로 구상하고 있었다. 1월 22일 효제동 은신처마저 종로경찰서 미와 형사에게 탐지되고 말았다. 일본경찰당국은 4개 경찰서 총비상령을 내려 기마대와 무장경관 수백 명으로 은신처를 겹겹이 포위했다. 김상옥 열사는 이번에도 단신으로 두 손에 권총을 쥐고 대총격전을 3시간 반에 걸쳐 전개하여 10여명을 사살했으나 탄환마저 다하여 마지막 남은 권총 한발로 벽에 기댄 채 대한독립만세를 부르면서 자결, 순국하였다.

12. 공평동 옛 경성지방법원 터 - 독립투사들이 재판받던 장소

1920년 7월 정동에 본격적인 법원이 세워지기 전에 있던 경성지방법원 자리이다. 통감부가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 이후 고종을 강제 퇴위시킨 후‘정미7조약’으로 사법권을 뺏어간 후 1908년에 재판소 건물을 공평동 163번지에 지었다. 이 건물은 1929년 9월부터 종로경찰서가 이전해와 사용했다. 해방 이후에도 1957년까지 계속 종로경찰서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화신백화점 사장으로 유명한 박흥식이 신신백화점을 현 제일은행본점 자리에 지으면서 헐렸다. 옛 경성지방법원 건물은 1911년 105인 사건, 3.1운동 독립투사들이 재판을 받았던 곳이다. 3.1운동의 중요유적지인 것이다. 6.25때도 살아남은 중요한 역사유적이 1957년 재개발 과정에서 파괴되어 버렸다.

13. 비전 - 3.1운동 독립만세 시위 현장

이 비는 ‘대한제국대황제보령망육순어극사십년칭경기념비(大韓帝國大皇帝寶齡望六旬御極四十年稱慶紀念碑)’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다. 대한제국의 대황제, 곧 고종황제의 연세가 망육순에 왕으로 즉위한 지 40년이 되는 것을 경축하기 위한 기념비라는 뜻이다. 고종은 1852년생으로서 1863년 12세에 왕위에 올랐다. 1902년은 그러니까 그의 나이가 망육순, 곧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 다시 말하자면 51세가 되는 해이자 어극, 곧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는 해이다. 1901년 12월부터 황태자가 주동이 되어 이를 기념하는 존호를 올리고, 잔치를 베풀 것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이듬해에 이런 행사를 벌였다.

1902년(광무6) 5월 4일에는 고종이 기로소에 들었다. 기로소는 정2품 이상 된 고위 관원으로서 나이가 일흔이 넘은 사람들에게 경로하는 예우를 갖추기 위해 설치한 관청이었다. 임금도 나이가 많으면 특별히 기로소에 드는 경우가 있었는데, 태조가 60세, 숙종이 59세, 영조가 51세에 기로소에 든 전례가 있었다. 1902년에도 영조의 예에 따라 고종을 기로소에 들도록 한 것이다. 기로소는 육조거리의 동쪽 끝, 바로 오늘날의 광화문 네거리 교보빌딩 자리쯤에 있었다. 그 기로소 한 모퉁이에 이러한 사실을 기념하기 위한 비석을 세우고 이를 보호하기 위한 보호각으로 세운 것이 오늘날의 ‘비각’이다.

이 건물은 그러므로 왕이 아닌 황제로서 고종의 장수와 오랜 재위를 기념하기 위한 목적에 걸맞은 치장을 갖추고 있다. 지면에서 이중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3간의 다포식 건물을 지었다. 그 둘레에는 돌난간을 두르고 난간 기둥에 돌로 상서로운 짐승을 만들어 앉혔으며, 남쪽 정면에는 홍예문을 세우고 그 가운데 ‘만세문’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었고, 문짝은 철로 격자문을 해달고 가운데에 태극 문양을 넣었다. 비석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건물을 흔히 ‘비각’으로 부르는 데 지금 이 보호각은 비각이 아닌 ‘기념비전’이라는 편액이 붙어 있다. 건물에 붙는 이름 가운데 ‘전(殿)’자는 왕이나 왕에 버금가는 인물과 관련된 건물에만 붙인 이름이었다. ‘비각’이라는 이름 자체에 일제의 조선왕조 낮추기 정책이 숨어 있는 것이다. 이 비전에 3.1만세운동 당시 육조대로를 질러 광화문 앞까지 진출한 시위대를 구경하기 위해 군중들이 모여들었다. 그 장면이 사진으로 남아 3.1당시 상황을 오늘에 구체적으로 전한다.

만세문은 일제시기에 어떤 일본인이 그 문을 떼어다가 충무로에 있는 자기 집의 문으로 사용하였다. 6.25의 와중에 일부 파손되었던 것을 1954년 7월 ‘비전’을 보수하면서 다시 찾아다 달았다.

14. 대한문 - 3.1운동 만세시위 현장

대한문의 본래 이름은 대안문이다. 대안문은 경운궁의 정문이 아니라 동쪽 문이었다. 1896년 경운궁을 중건할 때 경운궁의 정문은 인화문이었다. 하지만 인화문은 경운궁의 남쪽에 있었는데 남쪽 언덕에 가로 막혀 답답했다. 그리고 대안문 앞으로 도로가 나면서 대안문이 자연스럽게 경운궁의 정문 구실을 했던 것이다. 덕수궁도 본래 이름은 경운궁이다. 덕수궁이란 호칭은 고종이 헤이그밀사 사건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퇴위되면서 일제가 고종에게 붙여준 이름이 ‘덕수’라는 궁호였다. ‘퇴위당한 임금 고종이 사는 궁’이란 뜻의 ‘덕수궁’이 본래 이름 ‘경운궁’을 대체하여 그 이후 쓰이게 되었다. 이 ‘덕수궁’에서 고종이 승하한 날짜는 1919년 1월 21일이었다. 일제 당국은 하루 지난 뒤에 고종은 뇌일혈로 급서하였다고 간단히 발표하였다. 하지만 고종의 승하는 독살에 의한 것이라는 소문이 그 당시 국민들 속에 이미 퍼져 있었다. 1월 말을 기해 대대적인 국민대회를 열어 고종 독살의 진상을 공개적으로 규명하기 위한 전단 '고 국민대회 격고문'이 손병희 명의로 나돌아 고종의 독살설을 더욱 정설화하였다. 고종 독살설은 국민들의 배일감정을 극도로 높였고 전국에서 사람들이 서둘러 망곡하기 위하여 상복을 입은 채 서울로 집결하고 있었다.

고종에 문상하러 올라온 지방 사람들이 대부분 대한문 앞 광장에 모여 있었다. 이들에게 파고다 공원에서 독립선언문을 읽은 만세부대들이 들이닥친 것이다. 문상객들도 자연히 만세시위대가 되었다.

15. 미국영사관 앞 - 3.1운동 만세시위 현장

미국영사관 앞 3.1운동 독립만세 시위대의 모습은 대한매일의 3.1만세 시위에 대한 기사 중 “대한문 앞의 단체에서 나누인 일단은 미국총영사관으로 가서 만세를 부르고,”부분과 일치하는 사진이다. 대한문 앞에 모였던 만세 시위대 중 일부가 덕수궁 안으로 들어갔다가 덕수궁 후문으로 해서 나오는 모습이다. 1919년에는 미국영사관 앞에서 신문로로 통하는 길이 나 있지 않았다. 길 대신 미국영사관 북쪽 언덕 위에는 아관파천의 현장이었던 2층으로 된 서양식 건물 돈덕전이 위치하고 있었다. 덕수궁은 고종이 살아 있을 때까지는 궁의 체면을 유지했지만 고종이 떠나가고 나자 일제는 본격적으로 덕수궁 축소에 나서 덕수궁을 동서 분단시켜 동쪽만 살려 놓고 서쪽은 궁궐의 흔적을 없애버렸다. 돈덕전도 덕수궁의 동서분단 과정에서 사라져 버렸다.

16. 정동제일교회 - 기독교계 민족대표 서명 장소, 고보학생 대표 모임터

1876년 일본에 강제 개항당한 조선은 1880년대 들어 서구열강들에게 연이어 문을 열어주게 된다. 미국은 1882년 조선과 수호조약을 맺었다. 이때부터 미국 내 개신교단들은 조선의 선교에 서구열강 중 가장 열심을 보이게 되었다. 그 결과 1885년 미국 북감리회 선교사 아펜젤러가 개신교 선교사로서 가장 먼저 조선에 입국하게 되었다. 아펜젤러는 1885년 7월에 서울에 들어와서 정동 외국인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곧 이어서 한옥으로 된 교회를 열었다. 그것이 1885년 10월 11일 일이다. 지금 정동제일감리교회 옆에 100주년 기념관이 있는데 시점이 바로 위 날짜, 아펜젤러가 한옥교회에서 처음 예배 본 날짜이다. 늘어나는 신도수를 감당하기 위해 한옥교회는 1895년 일본인 요시자와 토모타로의 설계로 새로 교회를 세우게 되는데, 1898년에 준공을 보았다. 그것이 빅토리아 시대의 전원주택 풍으로 지은 현재의 정동제일감리교회이다. 현재 19세기 교회건물로서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건물이다.

기독교 민족대표 정동제일교회 이필주 목사 방은 3.1운동 전 기독교계와 학생들의 모임 거점이었다. 2월 25일, 26일 전문학교 학생대표들이 모여 3.1일 만세운동과 제2만세운동에 대한 계획까지 이야기 되었고, 27일에는 기독교 민족대표 서명자 10명이 모여 회합을 갖고 최남선의 독립선언서 초안을 돌려보고 기독교 민족대표 서명자 명단을 최종 확정하였다. 28일에는 중등학생대표자 모임이 이필주 목사 방에서 개최되어 3월 1일 파고다 독립선언식의 최종 점검과 각 학교별 독립선언서 배포계획이 짜여졌다.  

17. 배재고보 기숙사 - 3월 5일 남대문역 앞 학생연합시위 예비모임 터

1885년 4월에 조선에 들어온 북감리교회선교사 아펜젤러는 7월에 서울에 들어와 8월에  배재학당을 설립했다. 처음에는 한옥 한 채를 구입해 두 칸 벽을 헐고 교실을 하나 만들었다. 1886년 6월 8일에는 고종으로부터 배재학당이라는 교명을 받게 되는데, 이날이 배재중ㆍ고등학교 개교기념일에 해당한다.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남자학교였다. 전국에서 배재학당으로 학생들이 몰려와서 새로운 교사를 신축할 필요성을 느낀 아펜젤러는 1887년 8월에 한옥교사를 대신할 양옥교사를 착공하여 그해 12월에 준공을 보게 된다. 이 양옥교사를 배재학당 구교사라 하는데 르네상스식 건물로서 벽돌조 1층의 연면적 100평의 교사였다. 설계는 일본인 건축가 요시자와 토모타로였다. 배재학당 구교사는 1932년 대강당 건축을 위해 헐렸다. 배재학당에서 두 번째로 지은 건물은 동관으로 1914년 5월에 착공하여 1916년 3월에 준공되었다. 붉은 벽돌로 쌓은 지상2층, 반 지하 1층의 건물로서 현재 배재학당 건물로서 유일하게 현장에 보존되고 있는 건물이다. 지금은 배재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세 번째로 지어진 건물은 서관인데 1922년 4월에 착공하여 1923년 3월에 준공되었는데 건축약식은 동관과 동일하게 쌍둥이 건물로 지어졌다. 배재학당 서관은 1984년  배재고등학교가 고덕동으로 이전해 갈 때 같이 이전해 갔다. 배재학당 네 번째 건물로서 배재학당 구교사를 헐고 지은 대강당은 1932년 9월에 착공하여 1935년 5월에 완공된 400평의 철근 콘크리트 벽돌도 2층 건물이었다. 좌석은 1,3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다. 현 배재공원 조성과정에서 헐려버렸다. 중요한 근대건축물 하나가 사라졌다.

배재학당은 우리나라 정치사에서도 중요하는 역할을 했다. 그것은 이승만 초대대통령이 아펜젤러가 가장 아끼는 학생 중 한명이었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 해방 후 미국이 남한의 권력을 장악했을 때 이승만이 미군정에 의해 선택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배재학당에서부터 시작하는 그의 오랜 미국과의 인연이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아래 글은 만민공동회 사건으로 이승만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아펜젤러가 그의 가족을 도운데 대해 감사를 표시하는 편지다. 1899년 12월 28일자 아펜젤러의 일기 속에 끼어 있었다.

“저희 가난한 가족들을 위해서 값비싼 담요와 쌀, 그리고 땔감 등을 보내주신 데 대해서 무슨 감사의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동시에 저와 같이 비참하고 죄 많은 몸을, 감옥에 갇혀 있는 가망 없는 상태로부터 구원해 주시고, 더욱이 의지할 데 없는 제 가족들에게 먹고 살아갈 양식을 주신 하나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내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 얼마나 놀라운지요. 제 부친께서 편지로 선생님의 크신 도움에 감사한다고 하셨습니다.”

배재학당 터는 우리나라 신교육의 발상지이고 교회사, 정치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배재학당 터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무게를 감안해서 배재학원재단에서는 몇 년 전 배재학당 터에 배재학당을 다시 복원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대신 배재학당 구교사 터에 배재빌딩이라는 현대식 빌딩을 세워버렸다. 60년이 넘은 근대건축물인 배재학당 대강당까지 헐고서 그 자리에 신교육의 발상지 건물을 복원할 절호의 찬스를 맞이했음에도 우리는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배재고보 기숙사에서는 1919년 3월 4일, 그 다음날 있을 남대문역 학생연합시위 준비모임이 있었다. 3월 1일 탑골공원에서는 학생지도부들이 앞장서지 않았지만 남대문역 학생연합시위에서는 학생지도부들이 앞장을 서기로 계획하였다. 고종인산을 끝내고 지방으로 내려가려는 사람들로 붐비는 남대문 역으로 만세시위 장소를 잡았다.

18. 유관순 열사 우물터 - 이화학당

배재학당이 개설된 바로 옆 땅에 아펜젤러와 같은 미국 북감리회 소속 여선교사 스크랜턴이 1886년 5월 31일, 이화학당을 설립하였다. 1887년 명성황후는 스크랜튼 부인의 노고를 알고 이화학당이라는 교명을 내리고 외무독판 김윤식을 통해 이화학당 편액을 보내기도 했다. 이화학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자학교이다. 초기 한옥교사는 ‘ㄷ’자 한옥교사였는데, 수용시설의 한계 때문에 1896년 헐리고, 1897년 본관이 착공되어 1899년 12월에 완공을 보게 된다. 이 본관은 6.25전쟁 때 파괴되어버렸다. 본관 다음으로 지어진 건물은 1914년 착공하여 1915년 3월에 준공을 본 교사 심프슨기념관이다. 지하1층, 지상3층으로 세워진 벽돌조 건물로 현관이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좌우 비대칭적인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화학당 건물로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물이다. 심프슨기념관은 2002년 2월 ‘정동 이화여고 심슨기념관’이란 명칭으로 등록문화제 제 3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현재 이화역사관으로 쓰이고 있다. 이화학당 세 번째 건물은 ‘손탁호텔’자리에 세워진 프라이홀이었다. 프라이 홀은 1922년 8월에 착공하여 1923년 9월에 준공되었다. 프라이홀은 15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 교실10개, 실험실3개, 선생님들의 숙사 등과 수도, 전기, 스팀 시설을 갖춘 최신식 건물이었다. 이 건물은 6.25전쟁에서도 살아남았지만 1975년 불의의 화재로 소실되었다.

유관순(1904~1920) 열사는 충남 천안에서 출생했다. 1916년 기독교감리교 공주교구의 미국인 여자선교사 도움으로 이화학당의 교비생으로 입학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이화학당 고등과 1년 생으로 참가하였다. 3월 5일 남대문역 앞 학생연합시위에 참가한 후 학교가 휴교하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에서는 음력 3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가 일어났다.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는 지령리 교회(현 매봉교회)의 두 기둥이었던 조병옥의 아버지 조인원과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 유중권이었다. 수천 명이 모인 만세시위에서 유관순 열사는 선봉에 섰다. 이 아우내 만세시위를 일본헌병은 잔인하게 진압했는데 이 과정에서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일본헌병의 총칼에 피살당했다. 유관순 열사는 아우내 장터 만세시위의 주동자로 검거되어 무자비한 고문을 당했으나 굴하지 않았다. 공주지방법원에서 3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이에 불복, 항소하여 경성복심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재판 과정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일제의 한국침략을 규탄, 항의하고, 일제법률에 의하여 일제법관에게 재판받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역설하다가 법정모욕죄가 가산되어 징역7년형을 선고받았다.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에도 틈만 있으면 독립만세를 외쳤다. 그때마다 간수에게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불굴의 투혼으로 옥중투쟁을 계속하다 1920년 17세의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19. 경교장

옛날 돈의문(서대문)에서 인왕산 능선으로 서울성곽이 올라갔던 길을 따라 30m정도 걸으면 현대식 강북삼성병원 건물 밑에

김구 선생이 개인자격으로 동포의 환영도 받지 못하고 김포비행장부터 미군 장갑차에 밀폐되어 처음 도착한 곳이 경교장이었다. 김구 선생이 경교장을 표현할 때 ‘새문 밖’이라고 했다. 김구 선생의 세대에겐 서울도성의 관념이 분명히 있었다. 경교장은 1936년 8월에 짓기 시작하여 2년 만에 완공한 건물이다. 당시 금광을 경영하여 거부가 된 최창학이 지은 최고급 주택으로서 원래 이름은 죽첨장이라 했다. 죽첨은 갑신정변 당시 일본 공사였던 다케조에 신이치의 성인데 일제가 지명으로 썼다.

최창학은 해방이 되자 친일행위를 뉘우친다면서 이곳을 김구 선생의 거처로 제공했다. 김구 선생은 이 집의 이름을 근처에 흐르던 만초천 위에 놓인 다리 이름, 경교에서 이름을 따 경교장으로 바꾸었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1,584평의 이 건물은 경성제국대학 본관 건물을 지은 한국인 건축가 김세연이 설계했다.

경교장은 파란 많은 해방정국에서 임시정부 공관, 한국독립당의 활동, 반탁운동의 중심지로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48년 4월19일 김구 선생이 반공학생들의 반대 시위 속에서도 남북협상을 위해 길을 떠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김구 선생이 서거한 후 경교장은 김구 선생의 정치노선만큼이나 많은 곡절을 겪게 된다. 김구 선생 서거 직후 경교장은 자유중국 대사관저로 사용되다 ６·２５전쟁 때는 미특수부대가 주둔하기도 했다. 또 휴전 후에는 월남 대사관저로 사용되는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다 1967년에 삼성 소유로 넘어갔다.

경교장이 삼성 소유로 넘어가면서 두 번이나 헐릴 위기가 있었다. 1968년 경교장 뒤에 9층짜리 고려병원을 지으면서 경교장을 철거할 계획이었지만 여론에 밀려 철거하지 않고 내부 수리만 해서 ９층짜리 병원건물과 연결해 본관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지금도 건물 포치에 보면 본관이라는 글자를 붙인 흔적이 남아 있다. 두 번째는 1996년 2월 강북삼성병원이 경교장을 철거하여 효창공원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에 17층 규모의 병원을 세운다는 계획서를 서울시에 제출할 때였다. 이때에도 여론의 압력에 밀려 경교장을 철거하지 못하였다.

2001년 4월 6일, 서울시는 경교장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9로 지정하였다. 그리고 2009년 12월 말 서울시는 그 동안 김구 선생의 집무실만 복원하여 공개하던 경교장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소유자인 삼성과 협의를 통해 건물 전체를 원형 복원하기로 하였다. 2011년 11월 완공되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라고 한다. 사실상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현재 남아 있는 김구 선생의 유일한 유적인 경교장이 시민의 품에 돌아오는 것이다. ‘삼천만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선생의 글 한 구절을 인용해본다.

“현시에 있어서 나의 유일한 염원은 3천만 동포와 손목잡고 통일된 조국. 독립된 조국의 건설을 위하여 공동 분투하는 것뿐이다. 이 육신을 조국이 수요(需要)한다면 당장에라도 제단에 바치겠다. 나는 통일된 조국을 건설하려다가 38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일신에 구차한 안일을 위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는 데는 협력하지 아니하겠다.”

조국을 사랑한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아이들에게 백 마디 설명하는 것보다 경교장 앞에서 ‘삼천만동포에게 읍고함’ 한 구절 읽어주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3.1운동으로 세워지게 되는 상해임시정부를 조국의 광복 때까지 실질적으로 짊어지고 간 백범 김구는 3.1운동 정신을 가장 잘 체현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20. 딜큐샤

경교장에서 곧장 1km정도 걸으면 홍난파 옛집이 나오고, 홍난파 옛집에서 200m 정도 걸으면 ‘딜큐샤’가 나온다. ‘딜큐샤’는 행복한 마음, 기쁨, 이상향을 뜻하는 힌두어다. '딜큐샤‘에 어떤 내력이 숨어있는지 알기 위해서는 테일러 가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알버트 와일드 테일러(Albert Wilder Taylor, 1875~1948)는 금광을 개발하기 위해 우리나라에 온 아버지를 따라 1897년에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알버트 테일러는 아버지처럼 금광기술자였는데, 무역업에도 손을 대 동생 빌과 함께 서울 태평로에 '테일러 상회'를 운영하면서 미국산 자동차부터 만년필까지 그리고 영화 필름 수입, 배급까지 다양한 물품을 취급했다. 알버트 테일러는 광산업, 무역업만 한 게 아니라 UPI통신 서울특파원도 지냈다.

알버트 테일러는 무역업을 하는 중에 1917년 당시 상하이, 요코하마 등에서 활약하던 미모의 영국 연극배우 메리 린레이(Mary Linley)를 만나 결혼하게 된다. 알버트와 메리 부부 사이에 1919년 2월 28일, 3.1 독립만세운동 하루 전날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난 아들이 브루스 테일러였다. 만세운동 준비로 어수선했던 그날, 갓 태어난 아들 브루스의 침대 밑에는 독립선언문이 숨겨져 있었다. 바로 그날 밤 알버트는 동생 빌에게 독립선언문을 구두 뒤축에 숨기고 서울을 떠나 도쿄로 가게 했다. 선언서 발행 금지 조처가 내려지기 전에 알버트가 쓴 기사와 함께 미국으로 전송하기 위해서였다. 메리테일러의 책에는 이 부분이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바로 그날 첫 아들이 태어났다.

나는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서도 병원에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병실 문이 계속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은 속닥이다가 고함을 지르고, 쿵쿵거리며 뛰어가다가 발끝으로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일들을 반복했다. 나중에는 내 방에 사람들이 숨어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눈을 떴을 때 수간호사 선생님이 아이가 아니라 종이 한 뭉치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는 그 종이 뭉치를 내 침대보 밑에 밀어 넣었다. 병원 밖 도로는 혼돈 그 자체였으며, 비명소리와 총성이 때때로 들렸고 노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끝없이 반복되는 커다란 외침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만세! 만세!'소리였다. 마치 사자가 포효하는 소리 같았다. 만세!

"여기 사람들이 병원 침대보를 보관하던 곳에 인쇄기를 숨겨두었는데, 일본 경찰이 병원을 급습해 수색했어요. 결국 인쇄기를 발견하고 한국 직원들도 몇몇 체포했는데 끝까지 인쇄물을 못 찾았죠"

"혹시 선생님이 제 침대 밑에 집어넣은 그 종이뭉치를 말하는 거예요?"

병실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잠에서 깼는데, 알버트가 침대 옆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남편은 내게 키스하고 어색하게 아이를 안다가 내 침대 밑에 숨겨져 있던 종이 뭉치를 발견했다. 그는 갑자기 아이를 내려놓더니 급히 아직 빛이 남아있는 창가로 가 그 문서를 읽기 시작했다. "이건 독립선언서잖아!" 그는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장담컨대, 그날 밤 신참특파원 알버트는 자기 후계자, 첫 아들이 태어난 것보다 독립선언서를 발견한 일에 더 흥분하고 있었다.

바로 그날 밤 알버트는 동생 빌에게 독립선언서 사본을 구두 뒤축에 숨기고 서울을 떠나 도쿄로 가게 했다. 선언서 발행 금지 조치가 내려지기 전에 알버트가 쓴 기사와 함께 미국으로 전송하기 위해서였다.”

이처럼 우리나라 독립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알버트는 수원 제암리 학살 사건이 발생하자 언더우드와 스코필드 등의 선교사들과 함께 제암리로 내려가 그 학살 현장을 취재하였고, 일제의 만행이 담긴 사진들을 당시 총독이던 하세가와에게 내보이며 학살을 중지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20년 알버트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있는,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 전투에 승리한 권율(權栗, 1537-1599)장군의 소유였다는 행촌동1-18번지 터를 구입했다. 그 자리에 1923년 ‘희망의 궁전 딜큐샤’를 지었다. 메리 테일러 부인은 자서전에서 ‘딜큐샤’ 건축과정을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딜큐샤’를 건축하는 초기에 은행나무 아래 있는 우물은 대대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우물이라며 집짓는 것을 반대하는 마을 사람들에게 앞으로 우물 하나는 계속 개방하겠다며 마을 사람들을 달래야 하는 어려움, 땅이 경사진 바위로 이루진 곳이라 발파로 땅을 고르면서 주춧돌 놓아야 하는 어려움 등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1923년 집이 준공되었을 때 메리 테일러 부인은 이렇게 썼다.

 “모든 준비가 끝났을 때 머릿돌에 우리 집 이름을 새겼다. 나는 인도에서 '딜큐샤 궁전'을 본 순간부터 우리 집에 '딜큐샤'라는 이름을 붙이는 순간을 꿈꿔왔다. '희망의 궁전, 딜큐샤!' 커다란 화강암 주춧돌 위에 올라서면 한국이 화강암처럼 단단한 나라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하지만 이 희망의 궁전에서 알버트 부부의 삶은 영원히 계속 될 수 없었다. 1941년 12월 7일 일제의 진주만습격이 벌어진 후 미국과 적대국이 되자 미국 국적의 사람들을 일제는 가만두지 않았다. 알버트는 한국을 떠나기를 거부한 대가로 6개월 동안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어야 했으며 결국 1942년 5월 강제 추방당했다. 강제 추방된 알버트는 1948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알버트는 ‘내가 사랑하는 땅 한국, 아버지의 묘소 옆에 나를 묻어 달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메리 테일러 부인은 남편의 마지막 소원을 1948년 한국에 정부가 수립된 후 지킬 수 있었다. 메일 테일러 부인은 1982년 93세 일기로 영국에서 사망하면서 한국에서의 생활에 대한 자서전을 남겼다. 어머니가 남긴 원고를 아들 브루스 테일러가 다시 베껴 쓰면서 원고 정리를 하여 1992년 초판을 찍은 것이 <호박구슬 목걸이(Chain of Amber)>이다. 메리 테일러 부인의 자서전은 브루스 테일러의 딸 제니퍼에 의해 지금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2006년 2월 6일 브루스 테일러는 그의 부인과 딸 제니퍼와 함께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시로부터 명예시민증을 수여받았다. 할아버지에서 시작된 한국과의 인연은 이제 증손녀 제니퍼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4대에 걸친 한국과의 인연은 그냥 책 한권으로, 영화 한편으로 남았다면 우리의 기억에서 쉽게 잊혀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딜큐샤’가 아직 그 자리에 거의 본 모습 그대로 살아 있어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잊지 않게 된 것이다. 건물이 살아있다는 매력은 그 건물이 간직하고 있는 이야기를 그 건물을 찾을 때마다 들을 수 있다는 데 있지 않을까.

21. 독립문

독립문 건립은 서재필의 발의로 시작되어, 1896년 6월경 고종이 재가를 하자, 다음 달 7월에 독립협회를 창설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에 들어갔다. 독립문은 왕실과 관료, 일반민중의 기부금을 받아, 1896년 11월 21일 정초식이 이루어지고, 만 1년 1개월 후인 광무 2년(1898) 1월 중순에 완공되었다. 건축양식은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을 모방하였다. 독일공사관에 근무했던 스위스 기사가 설계를 하고, 공역은 한국인 기사 심의석이 담담했으며, 노역은 주로 중국인 노무자를 써서 완공하였다. 독립문 아치 이마 돌에는 조선왕실의 문장인 이화문이 새겨져 있고, 그 위의 앞뒤 현판석에는 각기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고 새져져 있다. 글씨는 매국노로 유명한 이완용이 썼다. 독립문은 몇 번 수리를 하였다. 1917년 수리를 하였고, 1928년에는 기초에 문제가 발생하여 크게 수리를 하였다. 6.25전쟁 때 난간 일부가 파괴되어 1958년 2월에 또 수리하였다. 1979년 성산대로 공사를 하면서 효율만 앞세운 개발지상주의로 인해 독립문이 서북쪽으로 옮겨지는 만행이 저질러졌다. 원래 독립문 자리에는 ‘독립문지. 이전일자 1979. 7. 13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지표석이 묻혔다. 이전 공사는 1980년 1월에 완공되었다. 독립문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마지막 문화재파괴 행위였다.

22. 서대문형무소

1907년의 제3차 한일협약에서 일본은 대한제국의 사법권을 빼앗아 버렸다. 이후 대한제국 정부의 감옥은 통감부의 감독 아래 들어간다. 서대문 감옥은 일본인 시텐노 가즈마가 고안‧설계하여 5만 엔의 공사비로 1907년에 준공했다. 처음에는 옥사와 부속 건물로 면적이 480평, 수용인원 500여 명 규모로 처음에는 경성감옥으로부터 기결수를 이감했다. 1908년에는 경성감옥으로 개칭하고, 1912년에는 경성감옥을 공덕동에 신축했기 때문에 영천의 감옥을 서대문감옥으로 개칭했다.

3.1운동 때에는 검거자가 급증하면서, 서대문감옥에는 독립선언서의 첫 번째 서명자 손병희 등 30여 명이 미결수 3000여 명과 함께 수감되었다. 만 15세의 여학생 유관순이 서대문감옥에 수감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일제는 1923년‘감옥’을‘형무소’로 개칭하고, 18세 미만의 여성 수형자는 서대문형무소로, 무기와 10년 이상의 남성 수형자는 경성형무소와 대전형무소로 수용하였다. 해방 후 1945년 10월 13일 미군정은 경성형무소를 서대문형무소로 합쳤다. 1961년에는 서울교도소로, 1986년에는 서울구치소로 개칭되었다. 서울구치소는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사해 갔다.

서울구치소가 이사해 가자 서울시는 법무부로부터 이를 매입. 85억 원의 예산을 들여 1988년 12월부터 조성공사를 시작, 1992년 8월 15일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개원했다. 1992년 4월 15일에 착공하여 7월 27일에 완공한 유관순 열사 지하옥사 보호각은 한눈에 봐도 왜색이 짙은 건물이다. 왜 하필이면 유관순 열사 지하옥사 위를 덮은 건물을 이렇게 지을 필요가 어디에 있었던가? 노태우 군사정권 말기에 이루어진 참으로 생각이 없는 졸작이다. 일제하 독립운동과 1970,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중요한 유적인 서대문형무소는 군사독재정권 후예들이 공원화사업의 주도권으로 쥐고 추진함으로써 1970년대, 80년대 민주화 흔적은 하나도 남기지 않는 역사 말살의 현장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