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망혼령(亡魂嶺)의 혈사(血事) ① 정교하게 지어진 한 채의 전각(殿閣). 이곳은 마도장이 빈객을 위해 만든 곳으로써 마도장의 후장(後莊)에 위치했다. 일 년 전 마도장을 증축하면서 마도혈수 공손령은 특별히 신경을 써 후장에 이러한 전각을 십여 채나 건축했다. 또한 여러 채의 별원과 방사(房舍)도 지어 놓았는데 그것은 훗날 마도장이 무림의 패도지주로 군림할 것에 대한 준비로 공손령의 야망을 보여주는 일면이었다. 천화각(天花閣). 이것이 전각의 이름이었다. 유일하게 이 전각은 여인(女人) 빈객을 위해 건립한 것이다. 석양이 마도장이 위치한 백간산을 붉게 물들일 무렵. 후장으로 들어서는 한 홍의청년이 있었다. 그는 마도장의 소장주 (少莊主)이자 천마성의 사공자인 공손기, 즉 백수범이었다. 백수범은 성큼성큼 천화각으로 들어갔다. 그를 보자 즉시 두 명의 청의시비가 달려나와 맞이했다. "공자님께서 어인 일로?" "사란(思蘭) 아가씨는 안에 계시냐?"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천비가 전갈을 하겠습니다." "필요없다. 내가 직접 안으로 들어가겠다." 백수범은 오만하게 소매를 떨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은 오직 공손기만의 독특한 성격이요, 태도였다. 그가 알기로 월동문(月洞門)의 안 쪽은 규방이었다. 백수범은 월동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 뒤 낭랑한 음성으로 외쳤다. "사란, 안에 있소?" 안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백수범은 아무런 망설임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과연 안으로 들어서자 여인의 독특한 체향이 물씬 풍기는 규방이었다. 취의(翠衣)를 입은 한 절세미녀가 단목향 탁자에 다소곳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섬세하고 우아한 몸매에 피부가 옥(玉)같은 미녀였다. 그 가 들어서자 여인은 고개를 돌렸다. 순간 백수범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여인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해맑은 피부는 그렇다 치고 봉 황(鳳凰)의 눈처럼 크고 둥근 눈은 차가운 느낌을 주면서도 고혹 적인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사란, 오랫만이오." 그는 나직이 헛기침하며 말했다. 독고사란은 그를 잠시 바라 보았 다. 그러나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은 냉랭한 표정이었다. "무례하군요. 아무리 당신의 장원이라고 하지만 허락없이 함부로 규방까지 침입하다니." 백수범은 여유를 보이며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사란, 오랫만에 만난 사인데 그토록 냉정할 것은 또 뭐요?" 독고사란은 더욱 차갑게 내뱉았다. "흥! 그걸 몰라서 묻나요? 당신은 진정 철면피예요." "하하하!" 백수범은 호탕하게 웃었다. "사란, 아무래도 당신은 큰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소. 그때 일을 가지고 아직도 그렇게 토라져 있다니." 백수범은 사실 그때 일이라는 게 무엇인지 몰랐다. 단지 흑삼객으로부터 공손기가 평소 여색(女色)을 밝혀 품행이 방 정치 못하다고 들은 것이 그가 아는 전부였다. 그러므로 독고사란 에게도 좋지 않은 행동을 취하려다 사이가 벌어졌으리라는 짐작은 쉽게 할 수 있었다. "흥!" 독고사란은 코웃음치며 고개를 돌렸다. 공손기라는 사내는 그녀의 안중에서 이미 멀리 떠나 있는 모양이었다. 백수범은 그녀에게 다가가며 담담하게 말했다. "사란, 벌써 삼 년이 지났소. 그 정도 기간이면 어느 정도 화를 풀 때도 되지 않았소? 더군다나 당신과 나는 혼약을 맺은 사이가 아니오?" 그러나 독고사란의 반발은 거셌다. "닥쳐요! 당신같이 비열한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어요." 그녀는 쌀쌀맞게 말을 이었다. "비록 아버님의 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오긴 했지만 당신 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에요." "사란." 독고사란은 날카롭게 그를 노려보았다. "만약 당신이 계속 추근대면 아버님께 혼나는 한이 있어도 따끔한 맛을 보여 주겠어요." 백수범은 쓴 웃음을 지었다. "성격은 여전하군. 사란." 그는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과연 당신이 나의 상대가 될 수 있을까?" 그 말에 독고사란은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 천마성의 넷째 공자가 되었다고 자만하시는군요. 흥, 그 렇게 너무 으시대지 말아요. 당신의 무공이 아무리 높다고 해도 영원히 나의 상대는 될 수 없으니까." "후후! 그럴까? 사란." 백수범은 미소지으며 슬쩍 그녀의 섬섬옥수를 잡았다. 독고사란은 재빨리 손을 빼며 노기 띤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공손기! 천마성이나 마도장에서는 너의 직위가 하늘같이 높을 지 는 모르나 내겐 어림도 없다! 더이상 이러면 그때는......." 백수범은 크게 웃었다. "핫핫핫! 당신이 화내는 모습이야말로 평소보다 몇 배나 아름답구 려. 정말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요." 백수범은 말을 마치자 두 손으로 독고사란의 날씬한 허리를 안으려고 했다. 독고사란의 두 눈에서 드디어 표독한 살기가 솟았다. 그녀는 교족 을 움직여 피하며 번개같이 손목을 뒤집었다. "이 악당! 하늘 위에 하늘 있음을 보여 주겠다." 그녀의 활짝 펼친 장심(掌心)이 옥(玉)빛같이 투명해졌다. 그와 동시에 장심의 한가운데에서 은은한 홍색(紅色) 기운이 떠올랐다. "내 너에게 소녀잔양신공(素女殘陽神功)의 맛을 보여 주겠다." "소녀잔양신공!" 백수범의 안색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소녀잔양신공(素女殘陽神功). 그것은 천축(天竺) 최대의 밀교인 뇌정신문(雷霆神門)의 비전 이 대절기(二大絶技) 중 하나였다. 첫째는 뇌절파천공(雷霆破天功)이 었고 또다른 절기가 바로 소녀잔양신공인 것이었다. 소녀잔양신공에는 특징이 있었다. 오직 여인(女人)만이 익힐 수 있었는데 그것도 세 살 때부터 시작 해야만 했다. 또한 십 성(十成)에 이르기 전에는 순음지체를 지켜 야만 한다는 조건도 포함하고 있었으니 익히기가 지극히 어렵고 까다롭다할 수 있었다. 그러나 반면에 소녀잔양신공은 그 성취도가 급속도로 빠른가 하면 천하의 그 어떠한 강기( 氣)라도 파괴할 수 있는 절세의 무공이었다. 백수범은 독고사란이 옥장(玉掌)을 펼치자 일단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놀란 음성으로 물었다. "사란, 그대가 어떻게 소녀잔양신공을?" 독고사란은 매섭게 그를 노려보며 다시금 교소를 터뜨렸다. "호호호호! 공손기, 네가 천마의 무공을 익히는 동안 나는 그저 놀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했느냐?" 백수범은 내심 침중하게 중얼거렸다. '천마성주의 말에 의하면 소녀잔양신공과는 절대 부딪치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천마교의 무공과 극성이기 때문이라고 했지. 비록 소녀잔양신공이 천마사후공보다 수준이 높은 것은 아니나 천마사 후공을 극성까지 익히지 않은 한 대결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무서운 무공인지 능히 알만 하다.' 그러나 백수범은 입가에 기이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사란, 당신은 진정 그 소녀잔양신공으로 나를 공격할 작정이오?" 독고사란의 두 눈은 더욱 짙은 살기를 뿜어냈다. "네 놈이 이때까지 저지른 가증스런 행동은 사실 죽어 마땅하다." "후후후! 정말로 날 이긴다고 생각하오?" 그말에 독고사란은 오만하게 웃었다. "호호호! 소녀잔양신공은 뇌정신문의 무서운 저주가 담겨 있는 마 공(魔功)이다. 말해 줄까? 칠백 년 전 천마교의 일대교주 천마대 조종(天魔大祖宗)에게 버림받은 뇌정신문의 한 여제자가 창안해 냈지. 그러므로 천마교의 무공을 능히 깰 수 있다." 백수범은 아연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로 대단하구나. 이 여인은 용기도 가상하거니와 이미 천마성이 천마교의 후신이라는 것까지 아는구나. 대체 이 여인에게 소녀잔 양신공을 전수한 자는 누구일까?' 그러나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만약 사란, 그대가 패하면 어쩌겠소?" "흥, 그럴 리가 없다. 나는 벌써 일 년 전 하북에서 정체를 숨기 고 남궁신풍과 대결해 본 적이 있다." 백수범의 눈썹이 꿈틀했다. "호호호호! 그 자 역시 너처럼 날 얕보다 한 번 혼이 났다. 설마 하니 네가 그보다 강하리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후후! 그래도 내가 이긴다면?" 독고사란은 비웃듯이 말했다. "그때는 네가 하자는 대로 하겠다." 그녀는 말이 끝남과 동시에 펼쳤던 옥장을 벼락같이 뻗었다. 위잉---! 괴이한 음향과 함께 담홍색 강기가 날아갔다. 손바닥을 떠난 홍색 강기는 일직선으로 백수범을 향해 뻗었다. 백수범은 급급히 마주쳤다. 펑---! "윽!" 백수범은 뒤로 다급히 한 걸음 물러나며 경악해 마지 않았다. '놀랍구나! 이 여인의 내공은 이미 백 년이 넘는구나! 어찌 이렇게 강할 수가 있단 말인 가?' 그의 놀라움이 채 가시기도 전에 독고사란은 득의에 찬 교소를 날렸다. "호호호! 이번엔 진짜 소녀잔양신공의 위력을 보여주겠다." 위--- 잉! 홍광이 일직선으로 백수범의 가슴을 쳤다. 위기의 순간에 백수범은 내심 부르짖었다. '전진(全眞) 기환술! 분심환영(分心幻影)이다.' 분심환영술. 그것은 마음(心)을 둘로 나누고 아울러 몸을 분리시켜 여러 개의 허상(虛像)을 나타내는 절묘한 기환술이었다. 스스스스....... "아, 아니?" 독고사란은 당황성을 토해냈다. 자신의 장력이 아무 것도 쳐내지 못하고 허망하게 소멸되는 것을 느낀 것이다. 기이하게도 백수범의 몸은 네 개로 분리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독고사란의 두 눈에서는 매서운 독기가 흘러 나왔다. 그녀 는 잠시 공격을 멈춘 채 정신을 집중했다. 스스스....... 네 명의 백수범이 그녀의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무슨 사술을....... 저것이군!' 독고사란은 좌측의 인영을 포착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녀 는 미세한 호흡을 들은 것이다. 위잉---! 그녀의 소녀잔양신공이 다시 홍광을 뿜으며 뻗었다. 그러나 이번 에도 그녀의 공격은 허탕을 치고 말았다. 파스스슷! 백수범의 신형이 안개처럼 스러져버린 것이다. '이럴 수가?' 독고사란은 믿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왼 쪽 옆구리 가 뜨끔해지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그만 맥이 쑥 빠지는 것을 느 꼈다. 어느새 그녀의 몸은 백수범의 품 속에 안겨 있었다. "놔...... 놔라!" 그녀는 놀라 날카롭게 부르짖었다. "하하하! 사란, 그대는 패했소." 백수범의 낭랑한 웃음이 그녀의 귓전을 울렸다. 독고사란은 안간 힘을 써보았으나 안타깝게도 혈도를 제압당한 터라 꼼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입술만은 맹렬히 움직일 수 있었는지 그녀는 이를 갈며 외쳤다. "바른대로 말해라! 네...... 네가 방금 펼친 것은 천마성의 무공이 아니다!" 백수범은 빙그레 웃으며 여유있게 말을 받았다. "어쨌든 당신은 졌소. 약속대로 난 당신을 내 마음대로 하겠소."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의 입술이 독고사란의 붉은 입술을 그대로 덮었다. "우...... 웁!" 독고사란은 깜짝 놀라며 발버둥쳤다. 그러나 어찌 하겠는가? 그녀는 혈도가 제압되었고 상 대는 굶주린 이리나 다름 없었다. 그녀는 양(羊)이 되어 젯상 앞에 놓여진 상태였다. 백수범은 그녀의 입술을 빨아 들이며 두 손으로 거칠게 그녀의 양 쪽 젖무덤을 더듬어 들어갔다. 그야말로 전형적인 색한의 태도였다. 독고사란은 기겁을 하며 혼신의 힘을 다해 반항했다. "색마(色魔), 이...... 색마! 놓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백수범은 들은 척 만 척 이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취의를 헤치고 안으로 들어가더 니 뭉클한 젖가슴을 덥썩 움켜 쥐었다. 그뿐 아니었다.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둔부를 마구 쓰다듬어 내리고 있었다. "이...... 이...... 악마! 흐흐흑!" 독고사란은 기절초풍할 지경이었다.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그녀가 아니던가? 하지만 지 금은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는 상태로 속수무책으로 유린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약속은 약속이니 너무 서러워 하지 마시오. 후후......." 백수범은 현재 공손기로 변장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완벽한 공손기의 흉내를 내야 만 했다. 그는 내심 갈등이 없지 않았으나 큰 일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내키지는 않았으나 공손기다운 행동을 취해야만 했다. 그의 손은 마침내 독고사란의 취의를 반쯤 풀어 헤치고 소담스럽게 부풀어 오른 젖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동시에 입술로 그녀의 얼굴을 애무해 갔다. 그러다 문득 무엇인가 축축한 것이 느껴져 살펴보던 그는 흠칫했다. '눈물을......?' 그는 뜻밖이라는 느낌이었다. 표독스럽고 앙칼진 독고사란이 뜻밖 에도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안면에는 온통 무서운 증오가 어려 있었다. 백수범 은 문득 가슴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여인은 정말 공손기를 증오하고 있구나.' 잠시 생각하던 그는 독고사란을 놓아 주었다. '......?' 독고사란은 갑자기 놓여나면서 혈도가 풀림을 느끼자 눈을 떴다. 상대방은 저만치 떨어진 채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의아한 느낌이었다. 그가 왜 갑자기 자신을 놓아 주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때 백수범은 그녀를 바라보며 탄식하고 있었다. "사란, 당신이 날 이토록 증오할 줄은 몰랐소." 백수범은 짐짓 엄숙하게 신색을 바로잡으며 말했다. "우리들의 정혼은 지금 이 순간부터 없었던 것으로 합시다." "......!" 독고사란은 이 뜻밖의 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백수범의 어투는 더할나위 없이 진지했다. "아울러 이 순간부터 과거의 나에 대한 모든 기억들을 함께 잊어 주기 바라오. 단 우리 사이는 사이고 마도장과 혈응보의 관계에는 영향을 미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오." 백수범은 신비한 미소를 보이며 덧붙였다. "우리 둘 사이를 공사와 결부시킨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오. 어찌 되었건 마도장과 혈응 보가 영원한 동맹(同盟)을 유지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이오." "......." 독고사란은 꿀먹은 벙어리인 양 아무 말도 못했다. 그녀의 아름다 운 얼굴에는 극심한 혼란이 일고 있었다. 백수범은 그녀에게 가볍게 포권했다. "자, 독고낭자. 그럼 훗날 봅시다." 그는 이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방 안에 혼 자 남게 된 독고사란은 멍한 표정을 지으며 넋을 잃고 있었다. 지금 그녀의 정신은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하기 그지 없었다. '알 수 없는 일이야. 저자에게 이런 면도 있었다니.......' 그녀는 문득 공손기에 대한 자신의 판단에 대해 회의를 느꼈다. 지금의 공손기의 태도야말로 완전히 정인군자(正人君子)요, 일세 기남자의 모습이 아닌가? 그것은 이제까지 그녀가 보아왔던 공손기의 모습과는 달라도 너무 나 다른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어찌 상상인들 할 수 있겠는가? 마도장의 소장주가 백수범으로 대치되었음을 꿈에도 모르는 그녀 였기에 이 상황은 아무리 머리를 짜보아도 애당초 이해가 될 상황이 아니었다.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만 고개를 설레설레 내 젓고 말았다. 더이상 아무 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문득 그녀는 열려진 월동문을 바라보며 웬지 가슴이 허전함을 느꼈다. 공손기가 사라진 것은 그녀로 하여금 무엇인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듯한 기분이 들게했 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것이 무엇 때문인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② 망혼령(亡魂嶺). 이름도 으시시한 고개는 늘 황량했다. 하북(河北) 석문(石門)에서 북으로 칠십 리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망혼령은 고원(高原) 지대였다. 때는 사월. 대지에 춘색이 완연할 때였으나 망혼령은 아직도 스산한 겨울날씨 였다. 어지럽게 자라난 잡초는 여전히 누런 빛을 띈 채 스산한 바 람에 어지럽게 흔들리고 있었다. 스스스스....... 잡초가 바람에 쓸리는 길을 백수범은 일정한 속도로 걷고 있었다. 홍의에 죽립을 깊숙히 눌러쓴 모습이었다. 마도장(魔刀莊)에서 십여 일을 머물고 떠나온 그의 행선지는 바로 북해(北海)의 빙백전이었다. 그는 걷는 동안 내내 마도혈수 공손령을 떠올렸다. '공손령의 성격은 완전히 파악했다. 그는 아들을 이용하여 무림패 권을 움켜쥐려는 야망의 화신체다.' 백수범의 입가에는 문득 신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후후후....... 그러나 공손령, 그대는 잘못 생각했다. 얼마 후면 그대는 그 야망이 얼마나 덧없는 꿈이었나를 알게 될 것이다.' 그의 뇌리에 또다른 인물이 떠오르고 있었다. 여인, 즉 마도장의 천화각에서 만났던 독고사란이었다. '소녀잔양신공은 과연 대단한 무공이었다. 그녀는 그 마공을 어디서 배웠을까? 그녀의 소 녀잔양신공은 아직 육성(六成)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력이 그 정도였으니 만약 절정까지 연마한다면 이후로는 큰 위협이 될 것이다.' 백수범은 규칙적으로 걸으며 이번에는 천마성에 대해 생각을 돌렸다. '천마성은 무적(無敵)의 철옹성이다. 그러나 지금 무림에서는 수 많은 고수들이 그 철옹성을 깨기 위해 무서운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다. 어쩌면 독고사란에게 소녀잔양공을 전수한 신비의 인물도 그 중 한 명일지도 모른다.' 휘--- 잉! 망혼령을 스치는 바람은 봄이 무색할 정도로 쌀쌀하기만 했다. 백 수범은 쉬지 않고 걸었다. 휘적휘적 걷는 그의 걸음은 빠르게도 느리게도 보이지 않았으나 실은 무척 빠른 속도였다. 스스스....... 갑자기 그의 예민한 청각에 사방에서 들리는 음향이 포착되었다. 그것은 단지 잡초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와는 전혀 틀렸다. '누군가 접근하고 있다.' 백수범의 눈빛이 죽립 밑에서 반짝 빛났다. '하나, 둘...... 모두 일곱 명이다. 대체 어떤 자들인가?' 그는 걸음을 우뚝 멈추며 음산한 투로 물었다. "밝은 대낮에 두더지 흉내를 내는 자들은 누구냐?" 그러자 사방에서 으스스한 괴소가 터졌다. "크흐흐흐......!" 동시에 땅으로부터 솟아오르 듯 불쑥불쑥 나타나는 인영들이 있었다. 그들의 숫자는 도합 일곱 명. 모두 흑의에 복면을 쓰고 있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살기가 감도는 눈뿐인 자들이었다. 그들 중 백수범의 맞은 편에 서있는 복면인이 괴소를 흘렸다. "흐흐흐! 공손기, 과연 소문대로 대단하구나. 지금까지 우리의 추 적술을 발견해낸 자는 아무도 없었는데." 백수범은 죽립을 등 뒤로 벗었다. 그는 복면인들을 둘러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추적술의 달인 일곱 명이라?" 그의 입가에 기묘한 웃음이 매달렸다. "그렇다면 그대들은 천리칠행랑(千里七行狼)이겠군?" 그 말에 복면인들은 모두 움찔했다. 전면의 복면인이 다시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흐! 그렇다. 공손기." 그는 두 눈에 살광을 뿜으며 물었다. "우리의 정체를 알았으니 목적도 알겠지?" 백수범은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되물었다. "흠, 나의 목숨을 노리는 건가?" "그렇다." "호오, 나는 그대들과 원수진 적도 없는데?" 복면인은 차갑게 대꾸했다. "그러나 네 목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다." 스스스스....... 일곱 명의 복면인, 즉 추적술의 고수들인 천리칠행랑은 신형을 움직였다. "그가 누구냐?" 백수범의 질문에 복면인은 음흉하게 답했다. "알 것 없다. 넌 단지 죽어 주기만 하면 된다." 그는 나머지 육행랑을 향해 외쳤다. "공격해라!" 천리칠행랑은 번개처럼 동시에 쌍장을 가격했다. 우르릉---! 칠인의 합공은 가공할 뇌음을 불러 일으켰다. 백수범의 두 눈에서 섬뜩한 살기가 솟았다. "너희들은 아직 천마잠룡의 소문을 듣지 못했나 보군." 그의 전신에서 푸르스름한 천마사후공의 강기가 발출됐다. 꽈르르릉---! 천지를 진동하는 폭음이 울리며 사방으로 흙덩이와 잡초가 뿌리째 뽑혀 날아갔다. "억---!" 천리칠행랑은 모두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며 뒤로 튕겨나갔다. 그 들의 두 눈은 한결같이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으하하하! 천마구장을 받아 봐라." 백수범은 광소를 터뜨리며 연속 쌍장을 뒤집어 뿌렸다. "천마탈정(天魔奪情), 천마탈혼(天魔奪魂), 천마탈명(天魔奪命)!" 천마구장 중 공격 위주의 중삼식이 한꺼번에 펼쳐지니 그 위력은 실로 엄청났다. 콰르릉---! 퍼--- 펑! "으--- 아악!" 연달아 터지는 단말마의 참혹한 비명이 망혼령을 울렸다. 순식간 에 천리칠행랑 중 네 명의 전신이 갈라지며 즉사했다. 사태가 이 렇게 되자 우두머리 복면인은 공포에 질려 더듬거렸다. "여...... 영주의 말은 틀렸다! 천마잠룡, 네 무공이 이 정도일 줄이야......." 백수범은 어깨를 흔들지 않았음에도 그의 앞으로 스르륵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너희들을 보낸 자가 누구냐?" "으으......." 우두머리 복면인은 비칠비칠 뒤로 물러났다. 그는 곧 발악하 듯 외쳤다. "죽어라!" 그와 동시에 그는 죽기살기로 덮쳐 들었다. 나머지 두 명도 좌우 에서 한꺼번에 공격을 개시했다. "후후후....... 죽음을 택하려는가?" 백수범이 오른손 중지를 뻗자 푸른 섬광이 치뻗었다. 번쩍! 그것은 바로 공포의 뇌전지(雷電指)였다. "크--- 악!" 두 명이 이마가 관통되어 피화살을 쏘며 날아갔다. 우두머리 복면 인도 가슴에 동전만한 구멍이 뚫린 채 비틀거렸다. 그는 가슴을 움켜쥔 채 숨가쁘게 부르짖었다. "우... 우리가 지나치게 널 얕봤다. 애당초부터 칠랑살혼진(七狼 殺魂陳)을 폈어야 했는데......." 복면인의 눈이 촛점을 잃어 갔다. "하지만...... 너도 이 망혼령(亡魂嶺)을 넘지 못할 것... 삼십육 명의 고수들이 너를 죽일...... 큭!" 복면인은 마침내 피를 토하며 거꾸러졌다. 백수범은 무심한 눈으 로 그의 시체를 내려다 보았다. "삼십육 명의 고수들이 또 있다고?" 잡초 우거진 주위를 살피며 백수범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의 얼 굴에는 묘한 표정이 어리고 있었다. '분명 천마성의 삼 인 중 한 명의 짓이겠지.' 백수범은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 자리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전진의 대법 중에는 백 리 밖의 개미가 기는 소리도 듣는 백리섭 성술(百里攝聲術)이라는 것이 있다.' 그는 눈을 감고 온 몸의 기를 청각에 집중시켰다. 이윽고 그의 눈 썹이 가늘게 흔들렸다. '서쪽 이십 리 밖에서 삼십육 명의 고수가 다가오고 있구나.' 백수범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입가에는 보일듯 말듯 괴이한 미소가 어리고 있었다. 휙---! 그의 신형이 허공을 향해 일직선으로 치솟아 올랐다. 천마충소(天 魔沖消)의 절정경공이었다. 그의 모습은 허공 아득한 곳에서 사라져 버렸다. ③ 망혼령(亡魂嶺). 삼백 년 전, 사도제일의 거마(巨魔)였던 혈영천마(血影天魔)는 정 사 육백인의 고수들을 한 자리에서 전멸시킨 바 있다. 그로 인해 이름없던 하북의 한 고원지대에는 망혼령이란 이름이 생겨났다. 이후로 삼백 년이라는 유구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 하고 망혼령에는 아직도 피가 마르지 않았다. 단지 바람만 조금 강하게 불어도 악귀(惡鬼)의 호곡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두두두두두....... 지축을 울리는 것은 일단의 말발굽 소리였다. 도합 서른 여섯 필의 말이었다. 마상에는 하나같이 음침한 인상의 사십대 중년인들이 사신(死神) 처럼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짧은 흑의장삼을 입었으며 어깨에는 똑 같은 모양의 바람막이를 두르고 있었다. 특이한 것은 등 뒤에 모 두 핏빛의 긴 창(槍)을 메고 있다는 것이다. 인마는 망혼령의 벌판에 이르러 멈추었다. "대가! 놈의 흔적이 사라졌습니다." 한 중년인이 말했다. 그러자 선두에 선 오순 가량의 흑의인이 주위를 둘러 보며 투덜거렸다. "빌어먹을! 천리칠행랑 놈들이 공(功)을 세우려 설치면서 일을 그 르쳤다. 오히려 놈에게 경계심만 불러 일으킨 꼴이 됐다." "어떡할까요?" "흐흐흐! 우리 사신곡(死神谷)은 예나 지금이나 무림이 어찌 돌아 가든 상관하지 않는다. 댓가만 주면 무슨 일이라도 한다. 놈의 목 에는 황금 일만 냥이 걸려 있지 않느냐?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 다." 사신곡(死神谷). 그들은 공포의 살수(殺手) 집단이었다. 강호에서 흑루(黑樓)와 함 께 이들은 이대 살수 집단으로 불리운다. 특히 사신곡은 잔악무도하기로 치자면 가히 전율스러운 단체였다. 흑루가 주문받은 대상에 한해서만 귀신도 모르게 살수를 쓰는데 반해 사신곡의 사신(死神)들은 그 대상의 식솔과 동조자들까지 모 두 피로 씻어버리기 때문이었다. 우두머리 흑의인은 전면을 노려보며 차갑게 내뱉았다. "놈은 북상하고 있다. 반드시 예상대로라면 사혼협(死魂俠)을 통 과할 것이다. 지름길을 택해 그곳으로 가자!"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말 옆구리에 박차를 가했다. "이럇!" 두두두두......! 삼십육 필의 인마는 잡초를 허공으로 휘날리며 질풍같이 망혼령을 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은 망혼령의 정상 부근에 당도했다. 정상의 고개에는 한 그루의 거대한 고목(古木)이 말라 죽어 있었 다. 마치 삼백 년 전의 혈사(血事)를 상징하기라도 하듯. 그 고목 아래 한 명의 괴인이 앉아 있었다. 백색천을 칭칭 감고 있는 괴인의 전신에서는 가공할 사기(邪氣)가 물씬 풍겨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것은 어쩌면 피와 죽음의 냄새 같기도 했다. "멈춰라!" 사신곡의 우두머리는 괴인을 발견하자 뒤를 향해 일성을 발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삼십육 필의 말들이 일제히 멈추어섰다. 흑의노인은 괴인을 노려보며 물었다. "이것 봐, 친구. 혹시 이곳으로 한 명의 홍의청년이 지나는 것을 보지 못했느냐?" 그러나 괴인은 그의 말을 못들은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흑의노 인은 이내 분갈을 토했다. "이놈! 귀머거리냐?" 문득 괴인이 소름끼치는 괴소를 흘려냈다. "흐흐흐......!" 사신곡의 흑의인들은 모두 등골이 오싹해짐을 금치 못했다. 괴인 의 몸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갑자기 그의 전신에서 담담한 혈무(血霧)가 피어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괴인은 낮으면서도 으스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흐흐흐....... 네 놈들은 이곳이 어딘지나 알고 있느냐?" 흑의노인은 눈살을 찌푸렸다. "망혼령인 줄 누가 모른다더냐?" 괴인의 몸에서 혈무가 더욱 짙어졌다. "크흐흐! 망혼령인 줄 알면서도 그런 태도를 보이다니. 흐흐! 네 놈들은 삼백 년 전 이 자리에서 혈영(血影)이 한 말을 잊었느냐?" 괴인의 말에 흑의인들은 대경했다. "뭣이? 혈영?" "크하하하! 삼백 년 전 이 자리에서 정사 육백 명의 고수가 피를 뿌렸다. 크하하하! 혈영의 뜻은 이제 다시 시작될 것이다." "네, 네 놈은?" 괴인은 서서히 일어났다. "크흐흐! 망혼령의 피냄새가 사라지기도 전에 다시 오늘 일곱 명 의 피가 잠자던 혈영을 깨웠다. 크흐흐흐! 혈영은 혈풍에 되살아났다." 흑의노인은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는 곧 노성을 발했다. "이 미친 놈이 광언으로 우리를 겁주려 하다니, 헉!" 그는 말을 다 하지 못했다. 갑자기 숨이 꽉 막히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놀랍게도 그는 괴인의 몸에서 발출된 짙은 혈무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크하하하......!" 괴인은 광소를 터뜨렸다. 그 순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괴인 의 몸에 두르고 있던 흰 천이 갑자기 조각조각 갈라져 날아가고 전신에 섬뜩한 혈의(血衣)를 걸친 혈영인(血影人)이 나타난 것이다. "아니, 저럴 수가!" 사신곡의 사신들은 대경실색했다. 그러나 혈영인은 또다시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본좌는 혈영문(血影門)의 이대 문주인 혈영마존(血影 魔尊)이다. 삼백 년 전 혈영의 뜻을 잇기 위해 다시 무림에 나왔다." 혈영인, 즉 혈영마존은 혈무에 싸인 채 서서히 신형을 움직였다. "크크크! 우선 네 놈들을 모두 죽여 망혼령을 피로 적신 다음 혈 영의 출현을 전 무림에 알리겠다." 우--- 웅! 공기를 진동하는 괴음이 일어났다. 동시에 혈영마존의 핏빛 형체 는 허공으로 치솟았다. "피, 피해라!" 흑의노인은 기겁을 하며 외쳤다. 그러나 삼백 년 전 무림을 피로 물들인 가공할 혈영마공은 여지없이 그들을 덮치고 말았다. "혈영파천(血影破天), 혈영멸지(血影滅地)!" 허공에서 냉성이 울린 찰나, 무수한 핏빛 광망이 흑의인들의 머리에 떨어졌다. "으--- 아--- 악!" 히히--- 힝! 말이고 사람이고 분간할 수 없었다. 오로지 사방은 피보라만이 피 어 오를 따름이었다. 혈영마존은 한덩이 피구름으로 화해 흑의인들을 닥치는 대로 핏덩 어리로 만들고 있었다. 우두머리 흑의노인은 다급히 등 뒤의 혈창 을 끌러 전력으로 혈영마존을 공격했다. 파팟! 혈창은 정통으로 혈영마존의 목에 적중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 챙! 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부러져 나간 것은 그의 목이 아니라 혈창의 끝이었다. '헉, 놈은 금강불괴였단 말인가?' 흑의노인은 공포에 떨었다. 바로 그 순간 일 섬의 혈장(血掌)이 스치며 그의 왼팔이 날아갔다. "으악!" 그뿐이 아니었다. 이미 그의 수하들은 전멸한 후였다. 실로 가공 할 사태에 그는 안색이 허옇게 탈색되었다. "으으! 이럴 수가......!" 그의 맞은 편에서 혈영마존의 모습이 나타났다. 혈무에 가려져 용 모조차 알아볼 수 없는 가운데 혈영마존은 소름이 오싹 끼치는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네 놈만은 살려 주겠다. 가라, 무림에 나가 알려라. 혈영의 전인(傳人)이 나타났다고 말이다. 으하하하! 이제부터 무림은 혈영이 지배할 것이 다." "으으으......." 흑의노인은 전신을 와들와들 떨었다. 혈영마존의 앙천광소가 뒤를 이었다. "으하하하하......!" 혈영마존의 신형은 마치 핏빛 광선처럼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었 다. 그것은 실전된 경공 혈영어기비(血影御氣飛)로써 혈영마존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자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혈영마존이 사라진 방향은 북쪽이었다. "우우....... 이럴 수가!" 흑의노인은 마치 일 장의 악몽을 꾼 기분이었다. "도, 도저히 있을 수 없다. 이런 일은......." 그는 피바다가 된 망혼령 주위를 돌아보며 새삼 전율을 일으켰다. 그러나 곧 이를 부드득 갈며 부르짖었다. "혈영마존이라고 했던가? 좋다, 두고 봐라. 사신곡(死神谷)의 원 한은 이대로 사그러들지 않는다." 그는 두 눈에 무서운 분광을 줄줄이 쏟아냈다. "곡주님께 알려 네 놈을 반드시 갈기갈기 찢어 죽이겠다." 흑의노인은 주위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한 필의 말이 살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그는 말의 등에 오른 뒤 힘껏 궁둥이를 때렸다. "이럇! 가자, 사신곡으로." 따가닥, 따가닥......! 말은 질풍같이 내달아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 망혼령(亡魂嶺). 과연 악마의 저주가 어린 곳인가? 삼백 년의 혈 사(血事)를 간직한 이곳에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혈풍이 닥친 것이다. 휘-- 이--- 잉---! 바람이 분다. 피의 바람이.......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