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4장 황궁대풍운(皇宮大風雲) ① 밤(夜). 황궁(皇宮) 깊숙한 곳. 밀전(密殿)의 밤은 유난히도 적막하다. 백수범은 밀전에서 두문불출하면서 금갑천경(金甲天經)을 연마하고 있었다. 불과 한 달이었다. 그러나 그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그는 개세의 절학인 금갑천경의 무학을 거의 연마해가고 있었다. 금갑천경의 무공은 실로 고심막측하기 이를 데 없었으나 그의 뛰 어난 오성(悟性)으로 어렵지 않게 연마할 수 있었다. 금갑천원단공은 금갑천경 중에서도 정화(精華)였다. 백수범은 본 바탕의 내공에 힘입어 이미 금갑천원단공을 십 성까지 익혔다. 그로 인해 일단 진기를 운용하면 그의 몸은 눈부신 금광(金光)에 덮혔다. 가슴의 거궐혈과 머리 위 백회혈, 발바닥 중심 용천혈을 제외하고 그는 금강불괴지신을 이룬 것이다. 그밖에도 금갑천경에는 여러 종류의 기오한 무학이 실려 있었다. 백수범은 그 중에서 특별히 한 가지 검법(劍法)을 주력하여 연마했다. - 천황구무종(天皇九武宗). 모두 구 초로 이루어진 이 검법은 실로 상상을 불허할 정도의 위력이 있었다. 지금까지 백수범이 익힌 검법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천마삼검(天魔 三劍)과 천형삼식(天形三式)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천마삼검은 지 나치게 패도적이었으며 천형삼식은 사도(邪道)의 냄새가 났다. 이에 반해 천황구무종은 광명정대(光明正大)하며 웅혼무비할 뿐만 아니라 천지간의 모든 정기를 품은 개세검학이었다. 더우기 천황구무종의 최후 초식인 개세천무종(蓋世天武宗)은 천형 삼식의 뇌우령, 또는 천마삼검의 천마어기강보다도 한 단계 위로 써 검학의 도에서는 더이상 오를 수 없는 경지의 검법이었다. 백수범은 밀전의 연단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깊은 명상에 잠겨 있었다. 오묘한 금갑천경의 무학을 참오하는 것일까? 그런데 이때였다. 스스스스....... 극히 미세한 음향이 들렸다. 백수범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그는 미소를 짓더니 담담히 입을 열었다. "한형(韓兄), 장난하지 말고 어서 나타나시오." "흐흐흐! 과연 대단하구나! 수범, 천하에서 나의 경공을 눈치 챈 자는 오직 너뿐일 것이다." 허공에서 무형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더니 한 명의 비쩍 마른 중년인이 나타났다. 그는 바로 토지묘 칠우 중의 한상위였다. 그는 칠절신보 중의 절 정경공인 무흔환영종(無痕幻影宗)의 경공을 펼친 것이다. 백수범은 그를 보며 담담히 물었다. "한형, 일의 진척은 어느 정도 되었소?" 한상위는 살집이라고는 전혀 없는 몸을 흔들며 괴소를 흘렸다. "흐흐흐, 돌팔이 의원 냉가와 연옥 그 계집이 기가 막히게 처리하 고 있다. 냉가는 천마잠룡 공손기로 변장해 지금쯤 감숙성을 휩쓸고 있을 것이다." 그는 우스워 죽겠다는 듯 배꼽을 쥐었다. "우헤헤헤! 천하의 그 누구도 네가 이곳에서 이렇게 편히 지내고 있는 줄은 모를 것이다." 한상위는 백수범을 바라보며 갑자기 정색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너는 정말 대단한 놈이다. 대체 언제 공주까지 유혹하였느냐?" "유혹하다니?" 백수범은 짐짓 익살맞은 표정을 지었다. "아니, 유혹하지 않았다면 어째서 그렇게 예쁜 공주가 너같이 별 볼일 없는 놈에게 푹 빠졌겠느냐?" 백수범은 피식 웃었다. "후후, 농담마시오. 한형." 이어 그는 표정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음, 마침 잘 왔소. 한형께 내 한 가지 중요한 부탁이 있소." 그 말에 한상위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너와 나 사이에 부탁이라니 무슨 어울리지 않는 소릴 하는 거냐? 냉큼 말이나 해 봐라." 백수범은 빙그레 웃으며 물었다. "만형(萬兄)은 지금 어디에 있소?" "그 가짜 잘 만드는 귀신은 이 근처에 와 있다." "잘 됐소. 만형에게 연락하여 몇 가지 중요한 문서들을 감쪽같이 진짜로 만들어 주시오." "중요한 문서?" 백수범은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자 한상위는 모두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마침내 긴 탄식을 불어냈다. "휴우. 수범, 너의 머리는 진정 대단하다고밖에 할 수가 없구나." 백수범은 싱긋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상위는 한숨을 내쉬며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난 요즘 들어 하늘에 감사하고 있다." "뭘 말이오?" "수범, 너와 적(敵)이 되지 않은 사실을 말이다." "으음?" "너와 적이 된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물들이 될 것이다." 백수범은 손을 내저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 부탁이나 잘 이행해 주시오." 한상위는 괴상하게 웃었다. "헤헤헤...! 걱정마라. 만가 놈의 솜씨는 천하제일이다. 또한 나 의 잠입술도 자신이 있으니 틀림없이 네 계획을 성공시킬 것이다." "부탁하오." 한상위는 어깨를 으쓱 했다. "자, 그럼 난 가겠다." 백수범은 갑자기 생각난 듯 그에게 당부했다. "참, 연옥에게도 안부 전해 주시오." 그 말에 한상위는 짐짓 냉랭하게 코웃음쳤다. "흥! 그래도 연옥을 생각하긴 하느냐? 연옥은 자나깨나 너뿐인데 너는 미인 공주의 달콤한 품에서 늘어지고 있으니, 연옥 그 계집도 참......." 백수범은 쓴 웃음을 지으며 내심 중얼거렸다. '연옥, 날 이해해라.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음을. 그러나 나 백 수 범은 결코 박정한 사람이 아니다. 조금만 기다려라.' 한상위는 번뜩 신형을 움직였다. "수범, 연옥을 결코 슬프게 해서는 안 된다......." 그는 다시 안개로 변해 사라지고 있었다. 동창(東廠)과 서창(西廠). 이는 역대 황궁의 수비 및 역모자들을 감시하는 기관으로 주로 황 제 직속인 금궁시위들의 특별 조직이었다. 창에 속한 무인들은 대부분 높은 무공을 지니고 있었으며 은밀하 고도 물샐 틈 없는 조직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당금 동창의 영반(領班)은 금검패장(金劍覇掌) 단목강(丹木岡)이 었다. 그는 황궁 최강의 고수로 온갖 부귀영화를 한 몸에 누리고 있었다. 서창의 영반은 낙수유재(落水有才) 서문경(西門京)이었다. 그는 금검패장 단목강과 쌍벽을 이루는 무인이었으나 최근 사오 년 전부터는 동창에 모든 실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자신은 물 론 그가 이끄는 서창 자체가 유명무실한 존재로 전락한 것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당금의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공 천왕(公天王)이 동창을 심복으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그에 반해 서창은 전통에 따라 오직 황제만을 보위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하여 동창과 서창의 반목(反目)은 나날이 심화되어 갔다. 상대적으로 동창은 막강한 실권을 장악하여 황궁 내에서 점차 무력을 떨쳤다. 밤은 모든 음모를 성숙시킨다. 편안하게 휴식을 누려야할 밤이건만 천하 정복과 일신의 영달을 꿈꾸는 자들은 이 밤에도 음모를 진행시키고 있었다. 동창(東廠). 황궁의 중궁(中宮)에 위치한 동창의 건물은 항상 환하게 불이 밝혀져 있었다. 전각(殿閣). 동창의 영반인 금검패장 단목강이 기거하는 곳. 방 안에서는 지금 쾌락에 도달하기 위한 남녀의 흥분된 기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하아......." 추잡했다. 넓은 침상 위에서 두 명의 전라여인이 한 털투성이 건장한 노인을 상대로 질탕한 육체의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노인의 명호는 금검 패장 단목강이었다. 즉 동창의 대영반이었다. 그는 색(色)을 몹시 탐하는 위인으로 오늘도 황궁의 궁녀(宮女)들 을 불러들여 쾌락을 만끽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 궁녀는 그의 밑에 깔려 있고 또 한 궁녀는 그의 위에서 해괴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도저히 눈 뜨고 볼 수 없는 가경이었다. "조금만 더, 조금 더!" 단목강은 거친 숨을 토하며 정점을 향해 궁녀들을 재촉했다. 꽝--! 우지끈! 방문이 박살나며 십여 명의 금의무사들이 들이닥친 것은 그때였 다. 한창 열이 올라있던 단목강은 대경하여 벌떡 일어났다. "누, 누구냐?" 방 안에 쳐들어온 금의무사들은 다름 아닌 서창의 무사들이었다. 서창 영반 낙수유재 서문경이 엄숙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또한 그의 옆에는 한 청년이 백의장삼을 입고 표표히 서 있었다. 준수하기 이를 데 없을 뿐 아니라 은은한 기품이 엿보이는 청년의 두 눈은 형형한 위엄을 발하고 있었다. 그는 바로 백수범이었다. ② 백수범은 서릿발같은 음성으로 외쳤다. "역신(逆臣) 단목강은 어명(御命)을 받아라!" 단목강의 얼굴에서는 일시에 핏기가 싹 가셨다. 그는 미처 흉한 알몸은 가릴 생각도 못하고 서 있다가 곧 반발하듯 외쳤다. "대체 무슨 일이오?" 그러자 낙수유재 서문경이 호통쳤다. "어서 무릎을 꿇지 못하겠느냐? 감히 천군어사대인 앞에서 불경하다니." 그러나 단목강은 오히려 두 눈으로 흉광을 쏘아냈다. "백대인, 노부는 동창의 영반이오. 어찌 이렇게 함부로 대할 수가 있소?" 백수범은 그 말에 허리춤에서 금빛의 영패를 꺼냈다. "이것을 보고도 무릎을 꿇지 않을 텐가?" "천, 천군어사령!" 단목강은 그제서야 안색이 노랗게 질려 후들후들 떨었다. "대, 대체 노부에게 무슨 죄가?" 백수범은 차갑게 일갈했다. "역모에 가담한 죄(罪)다!" "뭣이?" 단목강은 펄쩍 뛰었다. 그는 이내 고함치듯 부인했다. "말도 안 되오! 그건 누명이오." "누명인지 아닌지는 곧 밝혀질 것이다." 백수범은 금궁무사들을 향해 명령했다. "저 자를 포박해라." "넷." 두 명의 금의무사가 앞으로 썩 나섰다. 그러나 단목강은 냉소를 흘렸다. 그는 뒤로 물러나 대충 옷자락으로 몸을 가리더니 살기띈 음성으로 말했다. "공천왕께 이 사실을 알리겠다. 백대인, 그대가 아무리 천군어사 대인이라해도 동창의 영반인 노부를 감히 이렇게 마구 대할 수는 없다." "닥쳐라! 역적." 백수범을 대신해 낙수유재가 호통쳤다. 이 기회를 빌어 평소에 쌓 였던 울분이 폭발한 것이다. "뭣들 하느냐? 어서 냉큼 저 역적을 포박해라." 그의 명령에 두 명의 무사는 즉각 단목강을 포위했다. 단목강은 여전히 기세가 등등하여 냉소를 흘리고 있었다. "흥! 절대 이대로 당하지 않을 것이다. 공천왕 전하 앞에서 백대 인과 너, 서문경의 죄를 물으리라!" 단목강은 그와 동시에 침상 머리 맡에서 금검(金劍)을 쑥 뽑더니 그대로 번개치듯 두 무사를 향해 휘둘렀다. "으--- 악!" 금광이 번뜩하는 순간 두 개의 목이 피보라와 함께 떨어졌다. 실 로 놀라운 무위였다. 그의 행위는 백수범을 분노하게 했다. "어사령에 반기를 들다니, 용서할 수 없다." 창---! 그의 허리에서 번쩍 무지개빛이 일며 천궁검이 발출되었다. "역도, 본 어사의 검을 받으라!" 츠츠츳--- 파팍! "흐윽!" 너무도 빠르고 현란한 공격이었다. 단목강은 헛바람을 들이키며 급급히 금검으로 막아냈다. 쨍그랑! 검이 맞닥뜨린 순간 그의 금검은 반 동강이가 나고 말았다. 찰나 백수범의 우수가 번뜩였다. "으윽---!" 단목강은 가슴이 뻐개지는 듯한 고통을 느끼며 뒤로 연달아 오 보 나 물러났다. 그는 대경실색하고 있었다. '미, 믿을 수가 없다. 이 자의 무공이 이렇게 높다니!' 다시 백수범의 왼손 중지(中指)가 튕겨졌다. 금빛지력이 전광석화처럼 쭉 뻗었다. 그것은 금갑신경 상에 나오는 금천신지(金天神指)였다. "크윽!" 단목강은 비명을 질렀다. 지력이 그의 왼쪽 어깨에 관통되자 피화 살이 솟구쳤다. 그는 전신의 진기가 한순간에 빠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털썩 무릎을 꿇고 말았다. "역도를 포박하라." "넷!" 백수범의 명령에 또 다른 서창무사들이 달려들었다. 그리하여 동 창의 영반인 금검패장 단목강은 더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마침내 오랏줄로 꽁꽁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 백수범은 침상 위에서 아직도 알몸인 채 공포에 떨고 있는 두 궁 녀의 혈도를 찍었다. 그런 연 후 그는 방을 나갔다. 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불과 몇 시진에 걸쳐 공천왕의 수족과 같던 수하들이 모조리 천군 어사대인에 의해 포박당한 것이다. 동창의 영반인 금검패장 단목강을 비롯하여 금궁시위대장 이광리 (李廣利), 어영통감사 장탕(張湯), 태보사(太保史) 제갈연(諸葛 挻), 그리고 상서부(尙書府), 병부(兵府), 관사부(官史府) 등의 기라성같은 고관대작들이 모두 포승에 엮였다. 공천왕(公天王). 이 야심만만한 인물은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이 놀라운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쾅! 공천왕은 탁자를 내리치며 분성을 질렀다. "백어사! 대체 이 무슨 짓인가? 왜 그들을 가두었는가?" 백수범은 지금 공천왕의 왕부에 불려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공천 왕의 불길같은 분노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태연했다. 그는 길게 읍하며 담담히 말하고 있었다. "역모자(逆謀者)들은 곧 참수될 것입니다. 그들은 용서의 여지가 없습니다." 공천왕의 음침한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다. 그는 태사의를 박차고 일어서며 외쳤다. "그들이 역모를 했다는 증거라도 있는가?" 백수범은 빙긋 웃었다. "증거가 없다면 어찌 제가 이런 행동을 했겠습니까?" "무엇이? 증거가 있다고? 어디 있느냐!" 백수범은 공손히 말을 이었다. "전하께옵서는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고 계시옵니다. 또 너무 그들 을 두둔하고 계시온데, 혹시 그들에 대해 친히 아시는 바라도 있으시옵니까?" 공천왕의 안색이 홱 변했다. 정곡을 찔렸기 때문이었다. '교활한 놈!' 그러나 내심 이를 갈 뿐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백수범은 기이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후후후....... 모든 진상은 형부(刑府)에서 낱낱이 가려질 것이 옵니다. 제가 친히 그 자들을 문초할 것입니다. 그러나 증거가 뚜 렷한데 어찌 그들이 발뺌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공천왕은 역시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그는 등줄기가 축축히 젖고 있었다. 열흘이 지났다. 무서운 적막이 황궁과 북경을 휩쓸고 있었다. 그리고 열 하루째 되는 날. 삼백 예순 네 개의 목이 황궁 밖 형장에서 효수(梟首)되었다. - 대천역모지죄(大天逆謨之罪)를 저지른 역신(逆臣)들을 만 인의 본보기로 효수하노라. 대역사(大逆事)는 이렇게 되어 성사 직전에 허리가 끊기고 말았다. 역모의 주모자는 물론 공천왕이었다. 다만 황궁의 체모를 감안하 여 그는 더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대대적인 역사의 치 죄로 공천왕의 세력 기반은 뿌리째 뽑히고 말았다. 그는 이제 황궁에서 완전히 고립(孤立)되었다. 삼백 육십 사 명의 역신들의 자리는 신속하게 공명황제의 측근으로 대치되었다. 그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백수범의 수훈이었다. 천군어사대인 백수범의 활약은 신속하고도 완벽했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에 대명의 기강을 바로 잡아놓은 것이었다. 내전(內殿). 백수범은 영락공주 주약금을 품에 안고 있었다. 한 차례의 감미롭 고 짜릿한 정사(情事)를 치른 후였다. 주약금은 백수범의 품에 안겨 새근새근 잠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백수범은 눈을 뜬 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입가에 불현 듯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그의 뇌리에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도 아무 말 못하던 공천왕의 푸 른 얼굴이 떠오르고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공천왕과 손을 잡았던 비무강이다. 비무강은 공 천왕의 역모를 도운 뒤 황권을 빌어 무림천하를 장악하려 했다.' 그의 눈이 반짝 빛을 발했다. '필시 공천왕은 비무강에게 도움을 청할 것이다. 그러나.......' 이때였다. 문득 천장 위에서 가느다란 전음이 그의 귓전을 파고들었다. (수범.) (한형이오?) 백수범은 누운 채 역시 전음으로 물었다. (그렇다. 듣기만 하게.) 한상위의 전음이 계속 들려왔다. (공천왕은 자네의 출현과 역모의 실패를 알리기 위해 비무강에게 전서구를 날렸네.) 한상위는 키들거리며 계속 말했다. (낄낄, 물론 그 전서구야말로 비무강의 목을 칠 증거인데 내가 놓 칠 리가 있겠는가? 염려말게.) (후후후..., 역시 한형답소.) (그런데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네.) (무엇을 말이오?) (공천왕은 자네를 증오한 나머지 한 명의 무서운 자객을 기용해 자네를 제거하려고 하네.) 백수범은 흠칫하며 반문했다. (그 자객이 누구요?) (나도 모르네. 단지 공천왕의 말을 엿들으니 그 자를 푸른 거미(靑蜘蛛)라고 부르더군.) (푸른 거미?) 한상위는 진지하게 당부했다. (자네가 당할 리가 있겠나만 아뭏든 조심해야 할 걸세.) 백수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한형.) "으음, 백랑......." 이때 주약금이 잠꼬대를 하며 두 팔로 그의 목을 휘감아왔다. 그 바람에 금침이 흘러내려 그녀의 뽀얀 젖가슴이 드러났다. 그러자 천장 위에서 한상위의 괴소가 들렸다. (흐흐흐! 재미 많이 보게. 수범, 그럼 나는 가네.) 백수범은 금침을 끌어다 주약금의 나신을 덮어주며 내심 중얼거렸다. '푸른 거미라.......' ③ 두두두두두----! 요란한 말발굽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오백여 기의 기마대(騎馬隊)가 지나고 있었다. 마상 위에는 모두 화려한 금의경장을 입은 용맹무쌍한 무사들이 타고 있었다. 선두 의 한 금의무사가 거대한 금색 깃발을 들고 있었다. - 천군(天軍). 이 기마대는 바로 황제(皇帝)의 명을 받고 출정하는 어영군(御營軍)이었다. 그들의 맨 앞에는 잡털 한 올 섞이지 않은 오추마 위에 천군어사 대인 백수범이 타고 있었다. 그는 금룡포(金龍袍)를 입고 있었으 며 머리에는 학건(鶴巾)을, 왼손에는 학우선(鶴羽扇)을 쥐고 있었 다. 실로 위풍당당하면서도 고고한 모습이었다. 황궁을 나와 북경을 빠져나가는 어영군의 위용에 행인들은 너나할 것 없이 땅바닥에 부복했다. 그들은 한결같이 감탄과 존경을 표하 며 어영군이 개선할 것을 축원하고 있었다. 백수범, 그는 어영군을 끌고 어디로 가는 것인가? '기다려라, 천마성(天魔城)! 내가 돌아간다.' 어영군은 북경을 빠져 나오자 일로 남하하기 시작했다. 그 행렬은 장중하고도 용맹스러운 것이었다. 천마성(天魔城). 백수범이 이끄는 어영군은 마침내 무이산까지 왔다. 어영군은 말을 탄 채로 곧장 천마성의 외성(外城)으로 향했다. 외 성을 수호하던 백의수호무사대의 수좌 금검인도 곽도양은 오백여 명의 기마병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아니! 어떤 놈들이 감히 말에서 내리지도 않고 본 성으로 온단 말인가?" 구름처럼 흙먼지를 일으키며 외성을 향해 질주해 오는 오백여 기 마병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위풍당당했다. 한 수하가 걱정스러운 듯이 옆에서 말했다. "수좌, 비상고를 두들기는 게 어떻겠습니까?" 곽도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고를 울려라!" 둥-- 둥-- 둥-- 둥---! 둔중한 북소리가 천마성의 외성에서 내성(內城)으로 울렸다. 그러 자 내성에서도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어영군은 천마성의 외성에 당도했다. 백수범은 여전히 마 상에 있었다. 그는 허리춤에서 천군어사령을 꺼내 높이 들어 올렸다. "본인은 어명(御命)을 받고 파견된 천군어사대인 백수범이다! 천마성주를 만나고 싶다." "어명?" 곽도양은 대경실색했다. 천마성의 위세가 설사 하늘을 찌른다한들 그것은 어디까지나 무림(武林)에서일 뿐이었다. 곽도양은 당황한 음성으로 마주 외쳤다. "알았소이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잠시 후, 그는 천마부로부터 온 전갈문을 받았다. 그것을 급히 읽 고 난 곽도양은 외성문을 활짝 열었다. "들어오십시오. 대인." "고맙소." 백수범은 어영군과 함께 외성 안으로 들어갔다. "소인을 따라오십시오." 곽도양은 고개도 들지 못했다. 백수범은 어영군에게 몇 가지 당부 를 한 후 다섯 명의 어영무사만을 대동한 채 곽도양을 따라 내성으로 들어갔다. 그는 내성을 지나고 천마부를 지났다. 안내자는 천마부에서 용로 (龍老)로 바뀌었다. 백수범은 용로에 관해 환히 알고 있었지만 반 면 용로는 그를 전혀 알아보지 못했다. 드디어 일행은 천마각이 있는 봉우리로 올랐다. 그러나 팔대마신 (八大魔神)이 일행을 가로막았다. 첫째인 온마(瘟魔)가 차갑게 내뱉았다. "그대 혼자만이 들어갈 수 있소." 그 말에 다섯 금궁무사들은 대로했다. "뭣이?" "우리는 어명을 받고 온 사자들이오. 그 무슨 무엄한 말이오?" 그러나 온마는 완강했다. "이곳의 규칙이니 할 수 없소." 금궁무사들 중 천장신담 패륵이 분성을 터뜨렸다. "닥쳐라! 한낱 무림인들이 감히 어영군을 거역하다니? 황상의 진 노가 두렵지 않단 말이냐?" 그 말에 온마를 비롯한 팔대마신의 눈에서 흉악한 기운이 번쩍였 다. 백수범이 그들 사이를 막았다. "패륵, 조용히 해라. 본 어사 혼자 들어가 보겠다." 패륵은 펄쩍 뛰었다. "대인, 아니되옵니다." 백수범은 담담히 미소지었다. "염려 말아라. 누구도 본 어사를 어쩌지 못할 것이다." "하, 하지만......." "자, 그대는 안내하라." 백수범은 온마를 재촉했다. 그러나 온마는 손을 들어 천마각의 일층을 가리킬 뿐이었다. "저 석로를 걸어가시오." 그의 태도에 금궁무사들이 모두 분노의 빛을 띄웠으나 백수범은 묵묵히 오색석로를 따라 걸어갔다. 문 앞에 당도하자 소리없이 문이 열렸다. 이층, 삼층, 사층....... 백수범은 단번에 오층까지 올라갔다. 오층의 대전은 예전과 달라 보였다. 대청 중앙에 태사의가 있었으 며 천마대제 탁무영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항상 곁에 있던 소설 도, 비응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어서 오시오. 백대인." 천마성주 탁무영은 앉은 채 말했다. 백수범은 그의 오만한 태도에 눈썹을 찌푸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천마성주의 눈빛은 무섭게 백수범을 쏘아보고 있었다. 그러나 백수범은 조금도 동요되지 않았다. 백수범은 탁무영의 맞은 편에 준비된 의자에 앉았다. 그런데 일부 러 안배한 듯 탁무영의 자리가 약간 높게 만들어져 있었다. 백수범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천마대제 탁무영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천마성주는 설사 황제가 직접 왔다 해도 자신을 낮추지 않았을 것이다. "백대인, 대체 무슨 일로 어영군을 몰고 본 성에 오시었소?" 천마성주는 무겁게 가라앉은 음성으로 물었다. "이것을 보시면 알 것이오. 성주." 백수범은 품 속에서 한 통의 서찰을 꺼냈다. 탁무영은 서찰을 받 아 읽어 보았다. 서찰을 읽는 동안 그의 안색은 전례없이 크게 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공천왕이 비무강에게 보냈던 전서구로부터 탈취한 서 찰이었다. 모두 읽은 탁무영의 눈썹 끝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백수범은 담담하면서도 위엄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성주의 제자인 비무강이란 자가 역모에 가담했소이다. 그래서 어 명을 받들어 그를 체포하러 온 것이오." "체포?" 탁무영의 안색이 일변하자 백수범은 그에게 물었다. "성주의 의견은 어떻소이까?" "음, 백대인이 노부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오?" "본인은 무림에서의 천마성의 위세를 알고 있소이다. 그러므로 굳이 황명을 빌미로 천마성 을 핍박할 생각은 없소이다. 그 대신 성주께서는 역적 비무강을 천마성에서 축출해 주시기 바라오." 탁무영의 안색이 무섭게 굳어졌다. 그는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 "결국 노부로 하여금 제자를 죽음으로 내몰란 말이오?" 백수범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성주는 그를 축출하기만 하면 되오. 이후의 일은 본인이 알아서 할 것이오." "허허허허......!" 탁무영은 느닷없이 너털웃음을 웃었다. 그는 갑자기 웃음을 뚝 그 쳤다. 이어 기이한 표정으로 물었다. "노부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이다. 과연 백대인이 노부의 제 자를 잡을 능력이 있는지가 말이오." 백수범은 담담히 말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염려하지 마시오.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임무외다. 설사 어명을 수행하던 중 불상사가 난다해도 성주께 책임을 묻지는 않을 것이 오." 그 말에 탁무영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담았다. "좋소. 노부는 백대인의 말을 믿겠소." 이어 그는 손뼉을 딱딱 쳤다. "사령(邪靈)." 그러자 어디선가 한 줄기 음산한 음성이 들렸다. "부르셨습니까? 성주님." "가서 무강을 데려 와라." "알겠습니다." 백수범은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령? 처음 듣는 이름이다. 게다가 이렇게 가까이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 전혀 눈치채지 못했으니.... 이 자의 경공과 무공이 놀랍 구나. 대체 천마성주는 이런 고수를 얼마나 많이 휘하에 두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백수범은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끼며 입을 한 일 자로 꾹 다물었 다. 탁무영도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바람에 방 안은 질식할 듯이 무거운 침묵에 휩싸였다. ④ "부르셨습니까? 사부님." "음, 무강. 게 앉거라." 부름을 받고 나타난 비무강은 백수범의 옆 자리에 앉았다. 그는 처음부터 백수범의 존재에 대해 일말의 관심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만큼 자신만만한 태도였다. 탁무영은 담담히 말했다. "비무강이 왔소. 말하시오. 백대인." 백대인이란 말에 비무강의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제서야 그는 백수범을 노려 보았다. 그런 그의 눈에는 으시시한 살기가 어리고 있었다. 백수범은 그를 향해 엄숙히 입을 열었다. "본인은 황궁의 천군어사대인 백수범이라 하오." 비무강의 안색은 더욱 차갑게 굳어졌다. 백수범은 그를 직시하며 물었다. "묻겠소. 왜구이괴란 자들을 알고 있소?" 비무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백수범을 노려볼 뿐이었다. 백수범은 개의치 않고 이야기했다. "본인은 그대가 공천왕과 결탁하여 역모에 가담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소." 비무강은 역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본인이 무슨 일로 이곳에 왔는지는 그대가 더 잘 알 것이오." 마침내 비무강의 안면이 미미하게 경련을 일으켰다. "날 체포할 셈이오?" "그렇소." 비무강은 갑자기 무서운 괴소를 흘렸다. "흐흐흐......! 감히 천마성 내에서 내게 손댈 수 있다고 믿소?" 그 말에 탁무영이 차갑게 일갈했다. "무강, 너는 가만히 있거라." 비무강은 천마성주의 말에 입을 다물었다. 천마성주 탁무영은 백 수범에게 시선을 돌리더니 음산한 표정으로 말했다. "백대인, 이 천마각에는 백팔 개의 무서운 기관장치가 되어 있소. 이것을 발동하면 신(神)이라 해도 뼈도 못추릴 것이오." 백수범의 음성도 싸늘하게 변했다. "성주, 그건 무슨 뜻이오?" 탁무영은 대답하지 않고 이번에는 비무강을 쏘아 보았다. "무강, 노부는 너에게 대단히 실망했다." 그 말에 비무강의 안색은 삽시에 흙빛이 되었다. 탁무영은 다시 백수범을 바라보았다. "백대인, 노부는 이미 결정을 내렸소." 백수범과 비무강은 모두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먼저 탁무영은 비 무강을 직시하며 입을 열었다. "무강." "네, 사부님." "네가 뿌린 씨앗은 네 스스로 거두어라." "사, 사부님!" 비무강은 안색이 하얗게 질리며 부르짖었다. 그러나 탁무영은 냉정했다. "내일 해 뜨기 전까지는 너를 제자로서 보호해 주겠다. 그러나 그 이후로는 나의 제자가 아니다. 그때부터 널 지키는 것은 오직 너 자신의 힘(力)일 뿐이다." "우우......." 비무강은 괴이한 신음을 발하며 몸을 떨었다. 탁무영은 담담히 말을 계속했다. "명조의 백성된 사람으로서 노부는 황실과 대적할 수 없다. 자, 그만 나가 보아라." 비무강은 문득 고개를 치켜 들었다. "사부님." "무엇이냐?" "사부님의 뜻은 이해하겠습니다. 그러나 제자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 청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비무강은 입술을 물었다. 그의 눈에서는 한 줄기 기이한 광망이 스치고 있었다. "제자가 제명되기 전까지 어떤 일을 저지르던 단 한 번만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탁무영의 눈에도 일순 기광이 떠올랐다. 그러나 일편 그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좋다. 허락하겠다. 그러나 단 한 번 뿐이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탁무영은 이번에는 백수범을 향했다. "백대인, 어떻소? 내일 해뜨기 전까지 기다려 주겠소?" "좋습니다. 성주." 백수범도 순순히 응낙했다. 그러자 비무강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 키며 그를 향해 음산하게 웃었다. "흐흐흐! 백대인, 당신은 결코 나를 잡지 못할 것이오. 천하에서 날 잡을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분밖에 없소. 그 분은 나의 사부님 이시오. 사부님을 제외하고는... 흐흐! 나의 적수는 없소." 백수범은 묵묵히 그의 말을 들을 뿐, 일 점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 "흐흐흐흐......! 당신과 나, 둘 중 한 명은 영원히 이 천마성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오." 백수범은 묵묵히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러나 조금도 겁을 먹는 표정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반박하지도 않았다. "크하하...... 크하하하하......!" 비무강은 길게 광소를 터뜨리며 대전 밖으로 사라졌다. 백수범은 입가에 신비한 미소를 지으며 탁무영에게 포권했다. "성주의 협조에 본인은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바이오." "별 말씀을." 탁무영은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이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의 눈빛이 번쩍 빛났 다. "참, 노부는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소." "무엇이오?" "백대인의 사문(師門)이 어디인지 밝혀줄 수 있겠소?" 백수범은 담담히 웃었다. "실례지만 밝힐 수 없소이다. 용서하시오." 그 말에 탁무영의 얼굴이 무섭게 경직되었다. 문득 그는 벼락치듯 우수를 뻗었다. 전혀 움직인 것 같지도 않은 순간에 이미 그의 손을 떠난 무형의 경기가 백수범의 가슴에 닿았다. 백수범은 너털웃음쳤다. "하하하! 성주, 손이 매섭습니다." 그의 전신에서는 눈부신 금빛 광채와 함께 호신막이 일어나고 있었다. 펑---! 탁무영의 경력이 가슴에 닿자 폭음이 일었다. 탁무영은 부지중에 부르짖었다. "금갑천원단공(金甲天元丹功)! 그대는 황실의 비전인 천황자(天皇子)의 금갑천경을 얻었 군!" 백수범은 흠칫 놀라는 기색을 보였다. "역시 성주의 안목은 대단하군요." 탁무영의 안색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덮치고 있었다. 그는 내심 뇌까리고 있었다. '으음. 자칫하면 무강이 당하겠구나. 이 자가 천황자의 비공을 얻었을 줄이야.......' 역시 일대의 효웅(梟雄)이자 대마종다운 안목이요, 식견이었다. 사실 천황자의 무학은 강호에 아는 자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데 탁무영은 단 한 번 시험해 보고 알아낸 것이다. 이때 백수범은 몸을 일으켰다. 그는 호기롭게 덧붙였다. "성주, 비무강은 반드시 본인이 체포할 것이오. 아니면 역도로서 처단되든가. 핫핫핫......!" 그의 호탕한 대소가 대전을 울렸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천마각을 빠져 나갔다. "......." 혼자 남은 탁무영의 노안에는 잠시 음울한 갈등이 스쳤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는 결심한 듯 낮게 중얼거렸다. "사령(死靈)." "넷." 어딘가에서 예의 음침한 대답이 들렸다. "이 길로 천마동으로 가 혈로상문만석대진(血路喪門萬石大陣)을 발동시켜라." "넷." 혈로상문만석대진. 그것은 바로 오백 년 전 귀기자(鬼機子)가 창 안한 천하제일의 절진이 아닌가? 구백구십구로(九百九十九路)의 사문(死門)과 단 한 개의 생문(生 門)밖에 없어 진을 설치한 자조차도 들어가길 꺼리는 공포의 마진 (魔陣)이었다. 그런데 혈로상문만석대진을 발동하라니? 탁무영은 태사의에 깊숙히 몸을 묻으며 염두를 굴리고 있었다. '백대인이 금갑천경을 완전히 연성했다면 무강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탄식했다. '이것은 사부된 도리로써 너에게 주는 마지막 호의(好意)다.' 탁무영의 입은 한 일 자로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내심은 비분으로 끓어 오르고 있었다. '사천오검혼(死天五劍魂), 그들이면 충분히 백대인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 혈로상문만석대진 속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합공은 천하의 그 누구도 당하지 못한다.' 사천오검혼. 그들은 천마동을 지키는 오 인의 맹인검수들이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독 ㄳ
잼 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