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천마출정(天魔出征)과 인과응보(因果應報) ① 호심각. 백수범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때 밖에서 시비 소군(素君)의 음성이 들렸다. "공자님." 소군, 채흥, 아영 등 세 시비의 주인은 이제 두 말할 것도 없이 백수범이었다. "무슨 일이냐?" "사황(邪皇)께서 오셨읍니다." 백수범은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들라 해라." 문이 열리며 한 명의 깡마르고 키가 큰 흑의 노인이 들어섰다. 눈 빛은 암청색이고 전신에서는 사기(邪氣)가 물씬 풍기는 노인으로 천마성의 쌍궁 중 사황궁(邪皇宮)의 궁주인 막북사였다. 막북사는 들어서자마자 괴소를 흘렸다. "흐흐흐....... 개봉부(開封府)에서 만난 지 사 년이 넘었소이다." 무슨 말인가? 언제 백수범이 사 년 전에 개봉에서 그와 만난 적이 있었단 말인 가? 그러나 백수범은 빙그레 미소를 띄우고 있었다. 사황 막북사는 약간 격동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역시 노부의 안목이 틀리지 않았소. 공자의 호목천원상(號目天元 相)은 노부를 배반하지 않는구려. 과연 짐작대로 아니, 그 보다 더 크게 공자는 성공했소." 이렇게 말하는 사황 막북사를 보며 백수범은 낭랑하게 웃었다. "하하하! 천면신개 노선배님, 정말 오랫만이오." 사황은 바로 천면신개가 변장한 분신이었다. "사황은 어찌 되었소이까?" 천면신개 악비양은 신비한 표정을 지었다. "후후! 물으나 마나 아니오? 노부가 여기 와 있는 바에야 사황이 아직 살아있을 수 있겠 소?" 백수범은 알고 있으면서도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세 아우와 노부에 의해 사황을 비롯한 사황삼마(邪皇三魔)는 모두 제거되었소." 백수범은 빙긋 웃었다. "그럼 사황삼마 역시 삼괴로 대치되어 있겠군요." "물론이오." 백수범은 만족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천마각의 팔마신 중 살아남은 오마신(五魔神)과 천성주의 심복인 삼령(三靈)을 제외하면 천마성을 평정한 것이나 다름없겠구려." "그렇소. 백공자." 백수범은 눈빛을 번쩍였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부터 내 말 한 마디면 천마성이 좌지우지 된다고 할 수 있겠구려." 천면신개의 얼굴에 탄복의 빛이 떠올랐다. "대단한 성취요. 이 정도까지는 예상치 못했는데." 백수범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악노선배는 과거의 일을 후회하시오?" 천면신개 악비양은 흠칫하더니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모든 것이 하늘의 뜻인데 후회라니 당치 않소. 오직 호 생지덕만 잊지 않기를 바랄 뿐이오." 백수범은 고개를 돌렸다. "노선배, 일개 낙척서생에서 천하를 굽어볼 수 있는 천마성의 주 인이 되고자 했음은 나름대로 까닭이 있었소. 그 까닭이 뭔지 아시오?" 백수범의 진지한 말에 악비양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천의(天義), 바로 천의를 시행하려는 것이 목적이었소." 천면신개의 얼굴이 밝아졌다. 사실 그는 백수범에 대해 완전히 안 심하지는 못했다. 행여나 그가 무서운 힘을 이용하여 천마성주에 버금가는 패도를 추구할까 내심 한 구석으로 저어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의 깊은 뜻, 천하창생에 복이 될 것이오." 악비양은 진심으로 고개를 숙이고 싶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백수 범은 걸음을 옮겨 밖으로 걸어나가고 있었다. "천마성주를 만나겠소이다. 이제부터 일은 시작될 것이오." 천면신개는 안색이 굳어지고 있었다. 그는 도무지 백수범의 행동 을 예측할 수 없었다. 그는 멍하니 사라져가는 백수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내심 중얼거리고 있었다. '기인(奇人)이다. 그것도 불세출의 기인이야.......' 천마각 오층에는 네 명의 인물이 있었다. 중앙에는 천마대제 탁무영이 태사의에 앉아 있었고 그의 앞에는 백수범이 부복하고 있었다. 또한 좌우로는 사황과 독황이 역시 부복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기아." 탁무영은 담담히 물었다. 백수범은 신중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한 가지 요청이 있어 왔습니다." "요청?" 백수범은 낭랑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본성(本城)은 내부적으로 안정을 찾았습니다. 남은 것은 외부의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일뿐이라 생각합니다." "외부 세력이라면?" "전진파, 혈영마존, 천형괴객 등 최근 본성에 도전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탁무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수범은 눈빛을 번쩍이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그들을 제거하기 전에 먼저 정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그것이?" 탁무영은 궁금한 표정을 지었다. 백수범은 차갑게 덧붙였다. "바로 금천성과 남궁신풍입니다." 탁무영의 안색이 홱 변했다. "그들을 정리한다고?" "그렇습니다." 탁무영의 눈에서는 순간적으로 무서운 살기가 치솟았다. "그들이 너의 사형임을 잊었느냐?" 백수범은 침착하게 대꾸했다. "잊지 않았습니다. 그때문에 더욱 빨리 그들을 정리하려는 것입니다." 탁무영은 두 눈이 가늘게 좁혀졌다. "어째서지?" "그 두 사람은 본성을 떠났습니다." "알고 있다." "사부님께도 저에게도 아무 말없이 임의로 떠났습니다." "알고 있다." "그들은 권토중래를 노리고 있습니다." "당연하겠지." "그들의 목표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탁무영의 안색이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그들은 제자를 원수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최종목표는 바로 본성입니다." "그래서?" "과거 그들의 목표는 천마성의 후계자였으나 지금은 다릅니다. 그 들은 이제 천마성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럴만한 증거라도 있느냐?" 천마성주는 날카롭게 반문했다. 백수범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연이어 말했다. "그 두 사람은 힘을 합쳤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새외 삼대세력 중 혈붕도와 유명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금천성은 또 하나의 비밀세력을, 남궁신풍은 남궁세가와 그밖의 무시못할 지지 세력을 갖고 있습니다." "음,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잔여 세력들을 합치면 충분히 본성과 대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네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냐?" "저는 그들이 세력들을 정비하고 본성에 반기를 들기 전에 이 쪽에서 먼저 그들을 제거해 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야만 본 성의 명예와 사도(師道)가 제대로 지켜질 것입니다." 탁무영은 묵묵히 듣고 있다가 낮게 깔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네 뜻은 알겠다. 그러나 그들이 반심(返心)을 품었다는 명확한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백수범의 입가에는 신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물론입니다." 그는 품 속에서 몇 통의 서찰을 꺼내 두 손으로 올렸다. 탁무영은 그 서찰들을 받아 차례로 읽어 내려갔다. 그러는 동안 그의 표정 은 수십 차례나 변해가고 있었다. 이윽고 탁무영의 두 눈에서는 무시무시한 살광(殺光)이 줄기줄기 뻗어나왔다. "이럴 수가? 이 놈들이 감히!" 도대체 서찰에는 무엇이 적혀 있길래 그가 그토록 분노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금천성과 남궁신풍이 각기 혈붕도와 유명부, 아울러 신비세력과 남궁세가에 보내는 전서구의 내용이었다. 그곳 에는 놀랍게도 천마성을 공략하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백수범은 그 전서구들을 흑루(黑樓)의 조직들을 이용해 가로챈 뒤 만홍결로 하여금 내용을 수정했다. 지금 탁무영에게 건네진 것이 진짜요, 변조된 내용을 다시 전서구 에 묶어 날려준 것이었다. 백수범은 담담하게 말했다. "남궁신풍은 제자에게 있어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그는 제자의 본가인 마도장을 무너뜨렸습니다." 탁무영은 안색이 가볍게 변했다. "그게 사실이냐?"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비록 증거를 찾지는 못했으나 마도장은 남 궁세가에 의해, 마도장과 동맹관계인 혈응보는 유명부에 의해 멸절되었습니다." "단지 짐작만으로 어찌 단정할 수 있단 말이냐?" 백수범은 두 눈에 형형한 신광을 발산시키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당시 희생된 시체들은 모두 남궁세가의 무공과 유명부 의 무공에 당한 흔적들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 탁무영은 눈을 감았다. 잠시 정신이 혼란스러워진 것이었다. 그가 수십 년 간에 걸쳐 키운 제자들이 서로를 죽이기 위해 혈전을 벌이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최강자(最强者)를 천마성의 후계자로 만들기 위해 그 스스로가 계획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이 이쯤 되고보면 허 탈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일대의 마도종주인 그의 이런 심경 변화는 자신조차도 예기치 못 했던 것이다. 백수범은 마치 채근하듯 말하고 있었다. "허락해 주십시오. 그들을 제거하도록." 탁무영은 문득 그를 내려보며 괴이한 표정을 지었다. "독하구나. 너는......." 백수범은 도리어 냉연한 미소를 지으며 잘라 말했다. "독하지 않으면 장부(丈夫)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탁무영은 내심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이 녀석, 과거의 나와 너무나도 흡사하구나. 독하지 않으면 장부 가 아니라고? 지난 날 천마성을 일으키던 천마대제 탁무영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지.' 그의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한 가닥 효웅의 심리가 불끈 치솟아 오른 것은 그때였다. 그는 고개를 돌려 사황 막북사에게 물었다. "사황, 그대의 의견은?" "사공자의 말씀이 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독황, 그대는?" 독황 서래음은 눈알을 교활하게 굴리더니 대답했다. "역시 사공자의 의견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마침내 천마대제 탁무영은 태사의에서 벌떡 일어섰다. "좋다!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기겠다. 너에게 천마성의 전 인원을 움직일 수 있는 천마부(天魔符)를 주겠다!" "감사하옵니다. 사부님!" 백수범은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순간 그의 눈빛이 무섭게 번쩍 이는 것은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② 천마성(天魔城)의 대출동(大出動). 시월 초하룻 날이었다. 천마성의 후계자로 내정된 것이나 다름없 는 천마잠룡 공손기를 필두로 하여 천마성의 쌍궁인 사황궁, 독황 궁의 전 고수, 천마칠로(天魔七老), 금의수호무사, 철기대(鐵騎 隊), 천랑단(天狼團), 그 외에도 천마성의 일류고수 이백여 명 등 근 일천 명에 달하는 방대한 인원이 총출동되었다. 두두두--- 두두----! 그들의 출동은 무이산 전체를 진동시켰다. 인근 현성의 백성들은 전란이라도 닥친 듯 대경실색하여 공포에 질리고 말았다. 천여 기의 인마(人馬)는 엄청난 황사 구름을 일으키며 무이산을 떠났다. 그들이 어느 쪽으로 가는지 아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 것은 오직 천마잠룡 공손기, 그의 머리 속에만 들어있었다. 호남성(湖南省) 무진성(武進城). 두두두--- 두두---! 이곳에 위풍당당한 천여 인마가 먼지구름을 일으키며 들이닥쳤다. 성 내의 백성들은 문을 걸고 깊이 숨어 버렸다. 무진성의 관병(官 兵)들조차 아예 관아를 닫아 걸었다. 미리 통보가 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아무튼 천마성의 고수들 은 호호탕탕하게 무진성으로 입성한 것이다. 그야말로 유아독존 격이었다. 백수범은 선두에서 천리흑주마의 마상에 올라 있었다. 전신에는 홍포를 걸쳤으며 허리에는 금띠를, 이마에는 역시 금두건을 두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위풍당당한 일대 효웅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기세에 비해 그들의 행진에는 말발굽 소리말고는 일체 소 음이 없었다. 근 천 명에 달하는 인원이었으나 질서가 정연한 나 머지 조금도 번잡하거나 시끄럽지 않았다. 백수범은 그들을 영도하여 성내의 가장 큰 객점 앞에 당도했다. 대성루(大成樓). 붉은 깃발이 펄럭이는 그 객점은 무진성에서 가장 큰 곳으로 객점 과 주루를 겸한 곳이었다. 일행이 대성루 앞에 멈추자 살찐 주인이 부들부들 떨며 나왔다. 그는 백수범 앞에 납작 엎드렸다. "고, 공자 대인 나으리, 어인 일로?" 백수범의 뒤에 있던 묵룡철심 흑강이 물었다. "이 객점은 한꺼번에 몇 명을 수용할 수 있느냐?" "유, 육백 명 정도입니다." 흑강은 그 말에 냉엄하게 명령했다. "좋다. 그럼 식사와 방을 준비하라 일러라. 너는 지금 즉시 남은 사백 명이 들 수 있는 성내의 다른 객점을 찾아 안내해라. 은자는 충분히 주겠다." "넷, 네네......." 객점 주인은 정신없이 이마를 땅에 박아댔다. 이어 그는 부리나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대성루에 들었던 여타의 손님들은 모두 겁 을 먹고 사라져 버렸다. 백수범은 대성루 삼층에 특별히 마련된 주석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앞에는 사황과 독황, 천마칠로, 흑강, 철탑용신 기철극, 천 량야효 묘유량 등 절정고수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물론 독황 서래 음과 천마칠로를 제외한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가짜들이었다. 대성루의 주루와 각 객방들에는 식사준비가 부산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육백 명에 달하는 인원의 식사 준비는 실로 거창했다. 대 성루가 생긴 이래 이렇게 큰 손님은 처음이었다. 이윽고 삼층에 식사와 주류가 완비되었다. 그런데 이때였다. 계단으로부터 한 명의 오십 대 황의노인과 두 명의 장한이 헐레벌떡 뛰어 올라왔다. 그들은 올라오자마자 황망히 바닥에 엎드렸다. "공자님께 무진성 분타주 황패수(黃貝手) 진효(陳梟)가 인사드립 니다. 마침 밖에 나가 있던 중이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용서를......." "일어나라." 백수범은 담담하나 위엄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가, 감사합니다. 공자님." 그는 황패수 진효를 지그시 바라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밤 이곳에 머무를 것이다. 그대는 만전을 기하여 대사에 차 질이 빚어지지 않게 하라." "알겠습니다. 공자님." 백수범은 이내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요리와 주류는 모두 쉽게 맛보기 힘든 산해진미였다. 천마성의 고수들은 다가올 혈전에 대비하여 마음껏 포식했다. 밤이 되자 그들은 교대로 경비를 서는 한편 숙면에 들어갔다. 화려하게 꾸며진 객실. 이곳은 대성루에서 고귀한 신분의 손님만을 맞아들이는 곳이었다. 이 객실은 삼십 년 전 무진성을 지나던 당금의 황제 공명왕이 하 룻 밤 유했을 뿐 그 후 한 번도 손님이 든 적이 없었다. 객실의 화려함은 극에 이르고 있었다. 침상만 해도 상아로 기둥을 세우고 조각한 것으로, 황제의 용상과 비교해도 그다지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백수범은 침상에 누워 있었다. 밤은 깊어 어느덧 이 경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문득 가볍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대답이 없었다. 백수범은 눈쌀을 찌푸리며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때 방문이 사르르 열리며 두 명이 들어섰다. 그들을 보 자 백수범은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두 명의 미녀(美女). 전신에 속이 환히 비치는 나의만을 걸친 스물이 채 못된 두 명의 여인들이었다. 그녀들은 둘 다 뛰어난 미색과 늘씬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너희들은 누구냐?" 백수범의 물음에 두 미녀는 공손히 절을 했다. 그순간 앞가슴의 나의가 살짝 벌어지며 두 쌍의 젖무덤이 환히 들여다 보였다. 육 감적이고도 풍만한 젖가슴이었다. "천녀는 소월방(蘇月芳)이라고 하나이다." "소녀는 진교아(陣喬峨)라고......." 소월방이라는 미녀는 몸매의 굴곡이 뚜렷하고 전신에서 색기가 물 씬 풍겼다. 반면에 진교아는 청순하고 앳되었으며 몸매도 가늘고 섬세했다. 소월방이 달콤한 음성으로 말했다. "오늘 밤 공자님을 뫼시려고 왔습니다." 백수범은 눈썹을 곤두 세웠다. 그는 이런 일을 당부한 적이 없었다. 이때 소월방이 일어나더니 춤추듯이 걸어왔다. 그러자 처음부터 띠를 매지 않은 듯 나의가 좌우로 벌어지며 젖가슴과 배꼽, 그리 고 하복부의 은밀한 부위까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호호, 공자님, 천녀가 공자님을 즐겁게 해드리겠어요." 소월방은 서슴없이 백수범의 품에 기대왔다. 야릇한 방향과 뭉클한 느낌이 전해졌다. 그러나 백수범은 그때까지도 내내 진교아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얼굴을 빨갛게 붉힌 채 가늘게 떨고 있었던 것이다. 백수범은 침중하게 물었다. "교아, 너는 이런 일이 처음인가?" "네?" 진교아는 깜짝 놀란 듯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백수범은 그녀에게 손짓을 했다. "이리 가까이 와 보라." 진교아는 더욱 몸을 떨었다. 그러나 감히 명을 거역할 수 없었던 지 그녀는 침상으로 멈칫멈칫 다가왔다. 백수범은 갑자기 그녀의 가는 허리를 우악스럽게 안았다. "아!" 진교아는 가냘픈 신음을 발하며 눈을 꽉 감았다. 백수범의 손이 나의를 뚫고 들어가 그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백수범답지 않은 우악스런 행동이었다. 진교아의 얼굴에 고통스런 빛이 드러났다. 그녀의 동공에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백수범은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그는 슬며시 손을 뺀 후 담담히 말했다. "누가 너희들을 보냈느냐?" 그 말에 진교아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백수범은 차갑게 안색을 굳히며 다시 물었다. "누가 보냈느냐고 물었다." 교아의 얼굴에 공포심이 어렸다. 갑자기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 으며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소녀는 아버님의 명으로...... 소성주님을 뫼시기 위해......." 그녀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고 있었다. "그가 누구냐?" "이곳 분타주이신 황패수 진효...... 입니다." 백수범은 눈썹을 와락 접었다. 그는 마음 속으로 분노를 금치 못했다. '아무리 출세가 좋다지만 자신의 딸을 제물로 바치는 자가 있다니.....!' 그는 얼마 전에 본 무진성 분타주 황패수 진효의 얼굴을 떠올렸 다. 그 자는 아부 근성이 있는 인물이었다. 백수범은 이번에는 소월방이란 여인을 바라보며 물었다. "넌 어디서 왔느냐?" 소월방은 진교와는 근본적으로 틀렸다. 그녀는 교태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호호.... 천녀는 이곳 정화원(精花院)의 기녀예요." 백수범은 표정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정화원에 기녀가 많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다. 넌 그 중에서 도 꽤 이름이 있겠지? 그렇기에 진분타주가 널 보냈겠지. 맞느냐?" "호호! 공자님은 정말 모르시는 것이 없군요." 소월방은 요염하게 웃으며 어깨를 슬쩍 움직였다. 그러자 간신히 걸치고 있던 나의가 스르륵 흘러내려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나 의 속에 아무 것도 입고 있지 않아 순식간에 알몸이 되었다. 숙련된 기녀답게 그녀의 육체는 놀랄 만큼 풍만했다. 진교아는 그 녀의 대담한 행동에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떨구었다. "쓸만한 몸이다. 이리 가까이 오너라." "호호......!" 소월방은 코먹은 소리로 웃으며 다가왔다. 둔부를 야릇하게 흔들 어대자 커다란 젖가슴이 아래위로 출렁였다. 그야말로 사내의 시 선을 홀리게 하는 걸음걸이였다. 백수범은 그녀의 가는 허리를 낚아채듯 껴안으며 진교아에게 말했다. "본좌는 본래 능숙한 계집이 좋다. 그러니 넌 물러가도 좋다." "......!" 진교아의 양 뺨에 눈물이 흘렀다. 그녀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걱정마라. 진효의 정성을 받아 들이겠다. 차후 천마성으로 불러 들이겠다고 전해라. 알겠느냐?" "네.... 흑흑!" 진교아는 마침내 울음을 터뜨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뛰쳐 나갔다. 그녀가 막 문을 넘어 서기도 전이었다. "호호호.... 아이......." 진교아의 귓전에 소월방의 코먹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진교아는 감히 뒤 돌아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비록 순진한 그녀였지만 침 상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백수범은 소월방을 쓰러뜨린 채 낯 뜨거운 행위를 벌이고 있었다. "흐응, 공자님." 소월방은 뱀처럼 사지를 벌려 백수범의 몸을 휘감고 있었다. 백수 범의 손은 그녀의 터질 듯이 팽팽한 젖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그러나 진교아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졌을 때, 그의 손가락이 소월 방의 유근혈을 지그시 누르고 있었다. "아......." 소월방은 신음과 함께 축 늘어지고 말았다. 백수범은 아무런 감흥 도 없는 얼굴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사지를 벌리고 누워 있는 소월방을 내려보며 중얼거리고 있었다. '전진의 기환술에 이런 것이 있지. 환상을 실제처럼 착각하게 만 드는 환몽대유술(幻夢大幽術)이 바로 그것이다. 따라서 넌 천마잠 룡 공손기와 뜨거운 정사를 치른 것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백수범은 소월방을 향해 손가락을 몇 차례 튕겼다. 가느다란 경기 가 그녀의 혈도를 건드리자 소월방은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하아아......." 그녀는 두 손을 들어 허공을 끌어안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두 다리를 좌우로 벌린 채 마구 몸을 비틀어대며 열띤 신음을 내는 것이 아닌가? 실로 기묘한 일이었다. 그녀는 둔부를 좌우로 흔들어 대며 숨이 넘어갈 듯 기성을 지르고 있었다. 백수범은 눈살을 찌푸리며 금침을 들어 그녀의 나신을 덮어 버렸 다. 그는 돌아서며 손뼉을 두 번 쳤다. "부르셨습니까?" 기척도 없이 방 안에 한 명의 흑의복면인이 내려섰다. "저 여자를 데려가게." 복면인은 지체없이 소월방을 안아 들었다. 금침에 둘둘 말린 소월 방은 그때까지도 몸부림치며 신음을 발하고 있었다. 복면인은 그 녀를 둘러메고 밖으로 사라졌다. 복면인 흑루의 인살수(人殺手)중 한 명으로 백수범의 주변을 경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공연히 잠만 허비했군.' 백수범은 내심 중얼거리며 침상에 벌렁 누웠다. 그는 비로소 편안 한 마음으로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그때였다. 펑---! 폭음과 창문이 박살나며 한 줄기 인영이 빛살같이 방 안으로 날아 드는 것이 아닌가? 백수범은 눈을 번쩍 떴다. 그순간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침입자의 장심(掌心)이었다. 장심 으로부터 홍광(紅光)이 일직선으로 날아온 것이다. "소녀잔양신공(素女殘陽新攻)!" 백수범은 경악하여 부르짖었다. 과거 그는 소녀잔양신공에 크게 당해 죽을 뻔한 적이 있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공력이 부족해 절명의 위기에 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랐다. 그는 여전히 침상 위에 누워 있었 다. 소녀잔양공은 그의 가슴을 적중시켰다. 퍽....... 묘한 음향과 함께 침상에 구멍이 뻥 뚫렸다. 그순간 백수범의 모 습이 연기처럼 꺼져 버렸다. 실상 그는 이미 침상 위에 허상(虛 像)만을 남겨 놓고 인영의 뒤로 돌아가 있었던 것이다. 백수범은 번개같이 손을 놀려 인영의 손목을 나꿔채고 있었다. "앗!" 인영은 완맥을 잡히는 순간 몸이 붕 떠올라 침상에 내팽개쳐졌다. 인영의 입에서 나온 비명은 여인 특유의 높은 음성이었다. 백수범은 침상에 던져진 여인을 바라 보았다. 침상 위에는 산발을 한 남루한 차림의 흑의소녀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 무서운 독기가 서려 있었다. 백수범은 그녀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보았다. 그는 놀라 부르짖었다. "독고사란(獨孤思蘭)!" 그녀는 바로 혈응보의 무남독녀이자 공손기와 약혼한 처지였다. 독고사란의 갑작스런 출현에 백수범은 의혹을 금치 못했다. 이때 독고사란은 이를 부드득 갈며 외쳤다. "공손기! 널 죽이지 못하다니, 하늘이 원망스럽구나." 백수범은 더욱 의혹을 금치 못했다. "아니, 대체 왜 날 죽이려는 것이오? 대체 무슨 원한이 있다고?" "흥! 아버님은 네 놈 때문에 마도장과 손을 잡았다. 하지만 그때문에 죽음을 당하셨다." 백수범은 기가 막힌 듯 반문했다. "혈응보는 유명부에 의해 멸망하지 않았소?" "흥! 물론 아버님은 유명부주인 유명천겁마(幽冥天劫魔)에 의해 돌아가셨다. 또 사부님은 유명부의 태상호법인 구유살혼(九幽殺魂)의 손에 돌아가셨다." 백수범은 흠칫하며 반문했다. "그대의 사부는 백한문이란 여인인가?" "네 놈이 그걸 어떻게......?" 백수범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마터면 백한문이란 여인의 소녀잔양 신공에 죽을 뻔했던 기억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녀가 죽었다는 말 에 그는 가볍게 탄식하며 말했다. "그건 참 안 된 일이군. 그러나 마도장도 화를 당하기는 마찬가지요." 독고사란은 여전히 독한 표정이었다. "흥! 그거야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아버님은 악랄한 네 애비에 의해 독(毒)으로 금제(禁制)를 당하신 터라 무공도 제대로 발휘하 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게다가 사부님께서는 인질로 잡힌 날 구출하시려다 그만......." 여기까지 말한 독고사란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백수범은 동정심을 금치 못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정말 안된 일이오." "흥! 위선 떨지 마라! 그 애비에 그 아들이니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속지 않는다!" 위윙! 하는 파공성과 함께 다시 홍광이 작렬했다. 독고사란은 침 상에서 퉁기듯 몸을 날리며 공격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백수범은 그녀를 상대할 마음이 없었다. 그의 신형은 흐릿 해 지더니 독고사란의 공격권 밖으로 물러났다. "사란 낭자." 하지만 독고사란은 틈을 주지 않았다. "널 죽여야만이 한이 풀리겠다!" 독고사란은 이를 갈며 계속 소녀잔양신공으로 공격했다. 그러나 백수범이 당할 리 없었다. 지금 그의 무공 수위는 설사 그녀의 사 부인 백한문이 덤빈다 해도 거뜬히 이길 수 있을 정도였다. 독고사란은 수십 초를 공격했으나 번번이 백수범의 옷자락 하나 건드릴 수가 없었다. "으흐흐흑......!" 결국 그녀는 제 풀에 지쳐 울음을 터뜨리며 침상에 쓰러졌다. 백수범은 그런 그녀를 바라 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위로한들 그녀를 이해시키기는 쉬운 일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 다. 잠시 후, 독고사란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내 널 죽이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돌연 그녀는 번쩍 손을 들더니 자신의 천령개를 내려치고 있었다. "무슨 짓이오?" 백수범은 깜작 놀라며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놔라, 놔! 이 악마!" 독고사란은 마구 몸부림쳤다. 백수범은 부드럽게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던 당신은 나의 약혼녀요." 그 말에 독고사란은 충격을 받은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곧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부르짖었다. "그것은 이미 네 놈 스스로가 파혼......." 백수범이 그녀의 말을 막았다. "사란, 그 당시에는 내 정신이 아니었소." 그는 다정하게 독고사란의 어깨를 두드렸다. "사란, 내 기필코 유명부를 응징하여 그대의 복수를 해주겠소. 다 소나마 죄를 벗도록 노력하겠다는 뜻이오. 뿐만 아니라 그대는 변 함없이 나의 약혼녀요. 그러므로 내게는 당신을 보호할 책임도 있소." "당신이......." 독고사란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그를 보았다. 그녀의 몸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사란, 내 눈을 보시오." 느닷없는 말에 독고사란은 자신도 모르게 그의 눈을 마주 보았다. 백수범의 눈(眼). 그것은 형용할 수 없는 기이한 힘으로 그녀를 사로잡고 말았다. 그러나 그 마력의 정체는 진실(眞實)이었다. 결코 거짓이거나 사술을 부린 것이 아니었다. "......!" 독고사란의 표정이 겉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그녀는 결코 우매한 여인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녀는 그 진실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흐흐흑......." 독고사란은 오열을 터뜨리며 백수범의 품에 몸을 던졌다. 백수범 은 그녀를 안고 묵묵히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③ 독룡보(毒龍堡). 호남성 일대에서 가장 큰 세력을 꼽으라면 누구를 막론하고 이 독 룡보를 꼽는다. 그만큼 독룡보의 세력은 막대했다. 또한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독룡보주인 독룡신군(毒龍神君) 매철한은 호남 일대의 최고 고수 였다. 그의 가문절예인 십팔 초 독령검법(毒龍劍法)과 독룡장법 (毒龍掌法)은 무림의 일절이었다. 게다가 독룡보의 인원은 모두 팔백 명이 넘었다. 그들도 모두 녹 녹치 않은 무공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독룡보가 유명한 이유는 바로 천마성이 전 무 림에 설치한 이백팔 개 분타 중 가장 큰 분타가 바로 독룡보였기 때문이다. 독룡보는 천마성의 일당(一堂) 이상의 위치를 갖고 있었다. 실상 독룡보 산하의 분타만도 삽십 개 이상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독룡보주의 무남독녀인 미면나찰(美面羅刹) 매국 령이 천마성의 삼공자(三公子)인 남궁신풍의 약혼녀라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었다. 가히 일파지세(一派之勢)를 자랑는 독룡보, 무림에서의 그 위치로 말하자면 섬서의 마도장이나 감숙의 혈응보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두두--- 두두----! 천여 인마(人馬)들은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독룡보를 향해 질주 해갔다. 그들은 백수범이 이끄는 천마성의 고수들이었다. '남궁신풍! 네가 독룡보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번엔 절대 놓치지 않는다.' 백수범은 천리오추마 위에서 신비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잡털 한 올 섞이지 않는 한혈마(汗血馬)를 탄 한 명 의 금의 백발노인이 따르고 있었다. 괴이하게도 푸르른 눈을 가진 노인. 그는 바로 북해 빙백전(氷魄 殿)의 전주인 북천존자(北天尊子) 백리극이었다. 백리극의 좌우에는 빙백이로(氷魄二老)를 비롯하여 오십여 명의 빙백전 고수들이 따르고 있었다. 본래 그들은 백수범의 전갈을 받고 중원으로 와 있었다. 그러다 천마성의 무리들이 무진성을 떠난 후 합류한 것이다. 두두두두두----! 천여 인마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독룡보를 덮쳤다. 독룡보의 거대한 보문을 지키던 무사들이 대경실색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비상고를 울릴 여유조차 없었다. 쉬쉬쉬...... 쉭! "으아......악!" 십여 명의 독룡보 수하들은 한결같이 이마 한가운데에 검은 화살 이 박힌 채 외마디 비명과 함께 쓰러졌다. 독황 서래음의 흑오살 혼전(黑烏殺魂箭)에 적중된 것이다. 꽈꽈--- 꽝! 보루 전체가 일시에 무너졌다. 동시에 수백 명의 인마가 밀물처럼 독룡보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적(敵)이닷! 으악---!" 독룡보의 수하들은 일거에 들어닥친 천마성 고수들에 의해 미처 반항할 겨를도 없이 속속 황천으로 갔다. 전권으로부터 백수범의 낭랑한 외침이 울렸다. "금의수호무사와 철기대, 천랑단은 독룡보를 포위하여 한 놈도 도망가지 못하게 하라!" 그의 명령 한 마디에 독룡보는 완전히 포위되었다. 한편 독룡보 안은 안대로 오백여 명의 천마성 고수들이 닥치는 대 로 독룡보의 고수들을 주살하기 시작했다. "크--- 아---- 악!" 아비규환의 소용돌이였다. 지옥(地獄)이 따로 없는 참경이 독룡보 를 피의 폭풍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독룡전(毒龍殿)에서는 독룡신군 매철한을 비롯하여 독룡보의 중심 인물들이 최후의 방어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 속에는 미면나찰 매국령의 모습이 보였다. 무림사공자(武林四公子)도 또한 함께 있었다. 그들은 백여 명의 천마성 고수들에게 포위되어 악전분투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애당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대결이었다. 백수범 은 그들을 바라보며 차갑게 일갈했다. "모두 손을 멈추어라!" 그의 한 마디 말에 천마성 고수들은 일제히 병기를 거두고 물러났 다. 독룡보의 인물들은 그제서야 모두 한숨을 내쉬었다. 독룡신군 매철한이 음성을 돋구었다. "여러분! 왜 본보를 공격하는 것이오? 대체 누구의 명(命)이오?" "나 천마잠룡 공손기의 명령이다." 백수범이 앞으로 성큼 나섰다. "천마잠룡!" 매철한과 독룡보 인물들의 안색은 그만 흑빛이 되고 말았다. "사, 사공자! 대체 무슨 연유로 본보를 핍박하는 것이오?" 매철한의 말에 백수범은 섬뜩한 안광을 발했다. "본성의 반도인 남궁신풍이 이곳에 있다고 들었다. 속히 그를 불러라." 그 말에 매철한은 삽시에 안색이 핼쓱해졌다. "또 한 가지가 있다. 본인이 갚아야 할 빚이 있다." 백수범은 미면나찰 매국령과 무림사공자를 쏘아보았다. 그는 결코 잊지 않고 있었다. 그의 기억 속에도 생생한 사건이었 다. 그는 사 년 전 대강루(大江樓)에서 당한 굴욕을 아직도 가슴 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 날의 치욕을 잊지 않고 있는 것은 개인적인 원한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는 그렇게 옹졸한 위인이 아니었다. 다만 그는 인간의 오만과 경박함에 대해 반드시 응징이 필요하다 고 느끼고 있었다. 만일 당시 그가 아닌 다른 청년이었다면 그 날 의 일로 평생을 불구가 되거나 불행 속에 살아갈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는 독룡보로 오는 동안 그 점을 염두에 넣고 있었다. 세도를 업 고 약자를 괴롭히는 자에 대해 일벌백계(一罰百戒)로 심판할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더구나 그는 현재 천마잠룡 공손기의 신분이었다. 천마잠룡은 결 코 인격과 순후함으로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다. 천마잠룡답게 굴어야 하는 것이다. 백수범은 매국령과 무림사공자를 향해 다가가며 으스스한 음성으로 말했다. "매국령, 무림사공자! 너희들은 본인을 기억하겠느냐?" 매국령과 무림사공자는 온통 불안과 공포가 어린 표정이었다. "......?"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은 천마 잠룡 공손기를 만난 적이 없었다. 백수범은 눈썹을 꿈틀하며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지금으로부터 사 년 전 일이다. 너희들은 대강루에서 한 못생긴 청년에게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수모를 주었다. 벌써 그 일을 잊었단 말이냐?" 그 말에 일남사녀는 일제히 안색이 급변했다. "으하하하핫......!" 백수범은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그 못생긴 청년이 바로 나다. 이 공손기가 천마성으로 들어가기 전에 변장했던 모습이라면 믿겠느냐?" "아......아니! 그럴 수가!" 매국령과 무림사공자는 모두 안색이 새파랗게 질린 채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그들의 얼굴에는 사신이라도 본 듯 공포와 절망이 떠오르고 있었다. '으으, 꼼짝없이 죽었구나! 그때 그 놈이 공손기였다니....... 하 필이면 호랑이 콧수염을 건드렸을 줄이야.' 그들은 전신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백수범은 그들을 노려보며 으시시한 음성으로 말했다. "자, 이제 그때의 빚을 돌려주마." "으으, 도, 도망가자!" 일이 이쯤되면 선택은 빠를수록 좋았다. 무림사공자의 첫째 금의 공자 남악비의 말에 나머지도 일제히 신형을 날렸다. "흐흐흐! 어딜 가느냐?" 그들이 막 신형을 날렸을 때 누군가 앞을 가로 막았다. 독황 서래음이었다. "비켜라! 늙은이." 남악비는 쌍장을 뻗쳤다. 삼공자도 동시에 서래음을 향해 장력을 뻗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찌 알겠는가? 상대가 천마성의 절정고수 인 이황(二皇) 중의 한 명인 독황일 줄을. "흐흐흐! 젖비린내 나는 애송이 놈들이 가소롭게 날뛰는구나." 우우웅! 괴이한 파공성과 함께 독황의 곰방대가 펼쳐진 순간, 사공자는 눈 앞에 어질해지는 것을 느끼며 추풍낙엽처럼 가공할 경기에 밀려 나가 떨어졌다. "허억!" 그들이 나동그라진 곳은 애초에 그들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그들 은 어느새 모두 혈도를 제압당해 있었다. 독황은 괴소를 흘리며 물었다. "공자, 이 놈들을 어떻게 할까요?" 백수범은 으시시하게 말했다. "사람 보는 눈이 썩었으니 썩은 눈을 뽑아내야 하고, 알량한 무공 을 믿고 날뛰었으니 두 다리를 자르는게 낫겠지. 또한 하늘 위에 하늘 있음을 몰랐으니 손목을 잘라 댓가를 치르도록 하는게 좋을 것 같소." "흐흐흐....... 알겠습니다." "흐윽! 큭!" 참담한 비명이 연달아 터졌다. 독황 서래음의 곰방대가 번뜩이자 사공자는 일시에 광명을 잃어 버렸다. 그들의 눈알은 정확히 뽑혀나가 버렸다. 뿐만 아니라 선혈이 난무하는 가운데 손목과 발목이 눈 깜짝할 사 이에 잘려져 나가 바닥에서 펄쩍펄쩍 뛰고 있었다. "으아아아......!" 참혹한 비명이 울렸다. 무림사공자는 그야말로 비참한 모습이 되 어 땅바닥을 마구 구르고 있었다. 실로 잔혹무비한 정경이었다. 그 광경에 독룡보의 인물들은 한결같이 진저리를 치고 있었다. '과, 과연 천마잠룡이 냉혹하다더니....... 우우! 소문보다 백 배는 더하구나!' 그러나 이때 백수범의 차디찬 눈은 한 쪽에서 멍하니 있는 미면나찰 매국령을 향했다. "고, 공자. 제발 딸아이만은......." 독룡신군은 울상을 지으며 애원하다시피 간청했다. 그러나 백수범 은 역시 냉랭하게 내뱉았다. "본인에게는 한 가지 규칙이 있다. 그것은 은혜를 입으면 십 배로 갚되 원한은 백 배로 돌려 주는 것이다." "고...... 공자!" 독룡신군은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자신의 애원이 전혀 통하 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며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백수범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넌 달리 할 말이 있느냐?" 그야말로 매국령은 기절할 지경이었다. 그녀의 미면나찰이라는 별 호 답게 아름답되 매서운 성격의 소유자 였다. 그러나 지금 그녀 의 얼굴은 백짓장 처럼 질려 있었고 만면에 절망이 서려 있었다. "이리 오너라." 백수범은 손을 뻗었다. "아악!" 매국령은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놀랍게도 한 줄기 무서운 흡인 력에 끌려 그녀는 백수범에게 날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헉! 저럴 수가?" 중인들은 그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오 장 거리를 두고 단순 히 허공섭물로 사람을 끌어들이다니, 다른 인물들은 차치하고라도 독룡신공과 독황 서래음의 안색조차 크게 변하고 있었다. 그들은 공손기의 무공이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듯 머리끝 이 쭈뼛해지는 느낌이었다. 백수범은 코 앞으로 끌려온 매국령을 바라보며 음산하게 물었다. "과거 넌 본인에게 어떤 선물을 했는지 기억 나느냐?" "저, 저는......." 매국령은 사시나무 떨듯 전신을 떨며 더듬거렸다. 이때 백수범의 입에서 추상같은 일갈이 터졌다. "버릇없는 계집! 본인은 네게 하늘 위에 하늘 있음을 알려 주겠 다. 아울러 인과응보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가르쳐 주겠다." 백수범은 말을 마친 후 손바닥을 뻗었다. 그러자 매국령의 허리에 둘러져 있던 은빛 채찍이 마치 살아있는 물체인 양 절로 풀어지며 백수범의 손으로 빨려 들어왔다. "당시 넌 이 채찍으로 날 쳤었다." 백수범은 채찍을 쥐고 매국령을 가리켰다. 그러자 채찍은 꼿꼿이 일어서며 그녀의 얼굴로 뻗었다. 그러나 매국령은 절망한 듯 꼼짝 도 못한 채 전신을 사시나무 떨 듯 흔들 뿐이었다. 이때였다. 보다못한 독룡신군이 신형을 날렸다. "딸아이를 건드리지 마라!" 그러나 어림 없는 일이었다. "흐흐! 어딜 감히?" 용로(龍老)가 그를 가로막으며 일 장을 날렸다. "욱--!" 독룡신군은 신음을 토하며 두 걸음 뒤로 떠밀려났다. "흐흐흐! 딸년 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못한 죄로 너는 구경이나 하고 있거라." 용로의 말에 독룡신군은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의 능력으 로 도저히 매국령을 구할 재간이 없었다. 그는 그만 고개를 푹 떨구고 말았다. 백수범은 빳빳이 일어선 채찍을 치켜들었다. "과거 네가 나에게 한 것과 똑같이 해 주마." 위--- 잉---! 찰싹---! "아악!" 매국령은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채찍 자국이 옷자락을 찢고 선명하게 왼쪽 어깨에 찍혔다. "그것이 바로 네가 남에게 가했던 고통이다. 스스로 당해 보니 맛이 어떠냐?" "고, 공자님. 제발 용서를, 아악!" 매국령은 빌다말고 비명을 질렀다. 채찍이 다시 한 번 그녀를 휘 감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백수범은 전혀 멈출 기색이 아니었다. 그가 재차 채찍을 들었을 때였다. "잠깐만요! 공자님." 한 녹의여인이 뛰어 들어 자신의 몸으로 매국령을 가로막았다. 백수범은 막 내치려던 채찍을 멈추고 상대를 바라 보았다. 그녀는 바로 과거 대강루에서 그에게 따뜻한 정을 베풀었던 소녀 하설연이었다. 그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하낭자, 오랫만이구료." 하설연은 그의 앞에 무릎을 끊었다. "공자님, 제발 언니를 용서해 주세요. 네?" 백수범은 눈썹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낭자, 이 일은 낭자가 참견할 일이 아니오." 그러나 하설연은 눈물을 흘리며 애원했다. "공자님, 원한이란 풀어야 없어지는 것이 아닌가요? 그러니 제발 너그러이 언니를 용서해 주세요. 그게 아니 된다면 차라리 저를 때려주시던가요." 백수범은 안색을 굳히며 채찍을 움켜 쥐었다. 그러나 결국 그는 채찍을 내던지고 말았다. "낭자, 내가 졌소." 그러나 그는 한 마디 하는 것만은 잊지 않았다. "매국령, 너는 하낭자 때문에 용서를 받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철저히 댓가를 치뤘을 것이 다." "흐흑......." 매국령은 땅바닥에 엎어져 오열을 터뜨렸다. 백수범은 그녀를 거 들떠 보지도 않고 독룡보의 사십여 명에 달하는 인물들을 둘러보며 외쳤다. "남궁신풍! 지금 내 말을 듣고 있겠지. 본인은 네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독룡보의 인물들은 삽시에 모두 안색이 굳어졌다. 백수범은 음산하게 말을 이었다. "만약 네가 나오지 않는다면 본인에게도 생각이 있다."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매국령을 노려본 후 다시 말했다. "네 약혼녀에게 최대한의 모욕을 가하겠다. 네가 사내라면 그런 모욕을 참아서는 안 되겠지. 그 전에 앞으로 썩 나서라." 그러나 아무도 앞으로 나서는 자가 없었다. 이제 매국령의 얼굴에 는 전보다 더욱 심한 공포가 서렸다. 백수범의 입가에는 으스스한 미소가 짙어졌다. 그는 매국령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전의 원한은 상쇄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무정한 약혼자를 둔 댓가를 치뤄야할 것 같 다." "아아! 제발......." 매국령은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었다. 이때 하설연이 다시 나섰다. "공자님." 그러나 백수범이 손을 살짝 흔들자 그녀는 혼혈을 짚혀 쓰러지고 말았다. 백수범은 독룡보 인물들을 쏘아보며 냉엄하게 명령했다. "독황." "네, 공자." "저 계집의 옷을 벗기시오." "흐흐, 알겠소이다. 공자." 독황은 음침하게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매국령은 수치와 분노에 그만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윽고 그녀는 울부짖듯 외쳐댔다. "신풍(神風)! 당신은 제가 이렇게 되어도 상관 없단 말인가요?" 그러나 남궁신풍은 여전히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흐흐흐! 이 계집의 살결은 제법 탐스럽겠는 걸?" 독황은 음소를 흘리며 매국령의 몸에 손을 댔다. 매국령은 마침내 원독에 찬 음성으로 부르짖었다. "남궁신풍! 네가 진정 그렇게 나온다면 나도 어쩔 수 없다. 네가 있는 곳을 밝히겠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남궁신풍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독황 의 손이 매국령의 가슴 속으로 쑥 들어가고 있었다. 매국령은 황급히 외쳤다. "공자! 남궁신풍은 바로 저, 아--- 악!" 매국령은 손가락을 들다말고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그녀의 새 하얀 목, 바로 그곳에 한 자루의 비수가 자루까지 깊숙히 박혀 푸르르 떨고 있었다. "아앗! 저, 저럴 수가!" 중인들은 대경했다. 매국령은 눈을 까뒤집으며 허우적거렸다. "나, 남궁, 네, 네가......?" 매국령은 입에서 피를 뿜으며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녀는 한을 품은 채 세상을 뜨고 만 것이었다. 창졸지간에 딸을 잃은 독룡신군이 처절한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중인들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남궁신풍, 이 비열한 놈! 내 너를 죽이겠다." 독룡신군은 곧장 몸을 날리더니 독룡보 인물들 중 청의를 입은 한 명의 중년장한을 향해 쌍장을 날렸다. 그러나 중년장한은 냉소를 치며 슬쩍 신형을 움직였다. 그 순간 그의 몸은 무섭게 환영으로 분산(分散)되었다. 그것은 바로 천마백팔변의 보법이었다. "크악---!" 독룡신군은 어이없게도 등 뒤로 가공할 장력을 맞았다. 그는 혈육 이 뭉개어져 산산조각나고 말았다. 실로 끔찍한 죽음이었다. "바로 네 놈이었구나." 백수범은 일갈하며 몸을 날렸다. 그는 허공에서 천마사후공을 끌어올려 장력을 날렸다. 중년인, 즉 남궁신풍도 마주 장력을 날렸다. 꽈--- 꽝---! "크윽!" 장력이 부딪치자 남궁신풍은 기혈이 뒤집히는 것을 느끼며 뒤로 세 걸음 물러났다. 백수범은 바닥에 떨어져 내리며 차갑게 외쳤다. "남궁신풍! 이곳이 곧 너의 무덤이 될 것이다." 그러나 백수범이 바닥에 내려서는 동안 반대로 남궁신풍은 천마충 소의 경공으로 허공 높이 신형을 솟구쳤다. 푸드드득---! 문득 괴조의 울음과 날개짓 소리가 동시에 들리며 한 마리 거대한 혈붕(血鵬)이 갑자기 날아들었다. 남궁신풍은 즉시 혈붕의 등 위로 올랐다. 휘-- 이--- 잉! 혈붕은 허공으로 높이 치솟았다. 백수범은 물론 중인들 모두 이 뜻밖의 사태에 경악을 금치 못했 다. 이때 허공으로부터 음침한 외침이 들려왔다. "공손기! 오늘의 이 원한은 반드시 백 배, 아니 천 배로 갚겠다." "교활하구나, 남궁신풍!" 백수범은 두 눈에 무서운 살기를 띄었다. 그러나 혈붕은 마치 그 를 조롱이라도 하듯 독룡보의 상공을 계속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혈붕의 위에서 일진광소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하하하! 공손기, 내 네 놈에게 한 가지 좋은 소식을 전해 주겠다." "무슨 소리냐?" 백수범은 흠칫하여 위를 바라보며 물었다. 남궁신풍의 득의만만한 음성이 혈붕 위에서 다시 들려왔다. "금사형과 혈붕도, 유명부의 고수들은 북해의 빙백전을 치러 간 다. 이제 며칠 안으로 빙백전은 세상에서 영원히 자취를 감추게 될 것이다. 으하하하......!" "뭣이?" 백수범은 크게 놀랐다. "으하하하! 훗날 보자." 남궁신풍의 음성이 점차 멀어졌다. 혈붕은 쏜살같이 북 쪽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이때 백수범의 곁에 있던 북천존자 백리극이 황망히 부르짖었다. "큰일이군! 놈들이 그런 수를 쓸 줄이야!" 그는 다급히 한혈마에 올랐다. "사위, 난 먼저 가겠네!" 백수범도 재빨리 천리흑추마 위에 올랐다. "빙장 어른, 같이 가겠소이다. 전력으로 달리면 혈겁을 방지할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사황과 독황에게 몇 가지 당부를 남기고는 말채찍을 무섭게 휘둘렀다. "이럇!" 천리흑추마는 한혈마와 함께 하루밤 새에 천리 이상을 달릴 수 있 었다. 흑추마는 벌써 앞서서 독룡보를 빠져 나간 한혈마를 ㅉ아 질풍같이 내달았다. 그들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독황 서래 음의 눈빛이 기묘하게 반짝였다. 그는 내심 이렇게 뇌까리고 있었다. '흐흐흐....... 드디어 놈도 빙백전으로 떠났다. 모든 것은 계획 대로 되어 간다. 분명 빙백전에서의 싸움으로 놈들은 양패구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흐흐.......' 그러나 그는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사황 막북사, 즉 천면신개가 바짝 붙어 서있었다. 천면신개는 암중으로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서래음의 눈빛이 음산하게 변하자 천면신개는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과연 백공자의 당부는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놈은 분명 딴 마음 을 먹고 있는 것이 틀림없구나.' 천면신개는 내심 코웃음 치고 있었다. '흥! 서래음, 너무 좋아하지 말아라. 모든 것이 네 뜻대로는 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영원히 백공자의 손 아래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독황 서래음이 그러한 천면신개의 심중을 알 리가 없었다. 그는 입가에 연신 음침한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