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 아가씨』(작사 한산도, 작곡 백영호)는 1964년 제작된
'엄앵란'과 '신성일' 주연의 동명(同名) 영화의 주제곡 으로
만들어져 「이미자」가 부른 곡입니다.
영화 주제가인 『동백 아가씨』는 국내 최초로 음반 판매 100만 장
시대를 기록한 노래이지만, 倭色(일본풍)가요로 금지의 낙인이
찍혀 '해적판'까지 탄생 되는 사연 많은 곡이기도 합니다.
이후 『동백 아가씨』는 35주 동안 인기 차트 1위를 점령하는 가요사
(歌謠史)상, 전무후무(前無後無)한 진기록(珍記錄)을 세웠으며,
「이미자」는 일약 '신데렐라'로 떠올랐습니다.
당시 영화관 주인들은 그때까지 2,000원이던 극장 쇼 출연료의
20배가 넘는 파격적인 금액을 제시하며 「이미자」 모시기에
사활(死活)을 건 출혈 경쟁을 벌였죠. 「이미자」(1941년생)는 1년
남짓 사이에 부(富)와 명예(名譽)를 동시 (同時)에 거머쥐었습니다.
몸 값 폭등과 더불어 성남 극장, 우미관, 노벨 극장, 금호 극장 등
하루에 "극장 쇼" 네 곳을 도는 귀한 몸이 되었습니다.
작곡가 백영호는 생전(生前)에 “그땐 술집에서 술값 대신 『동백
아가씨』 음반을 한 장 구해 달라고 했을 정도였다”고 당시의
열풍(熱風)을 회고 했었습니다.
온 나라가 『동백 아가씨』 노래 열풍(熱風)으로 후끈 달아오른 1964년
겨울. '트로트' 를 천시(賤視)하고 외국 팝 을 선호했던 충무로 음악
감상실 '세시봉', '서린', '동경' 음악실의 젊은이들이 『동백 아가씨』를
합창하는 진풍경(珍風景)이 벌어졌습니다.
「이미자」는 파월(派越) 장병들이 손꼽는 "초청 희망 1순위 가수"로도
등극했습니다. 1965년 첫 월남 파병 부대 위문(慰問) 공연단에 뽑힌
이후 5년 동안 장병들에게 『동백 아가씨』를 노래했습니다.
애절한 노래 가락은 장병들의 눈물샘을 자극 시켜 눈물 바다를 이루었죠.
이처럼 『동백 아가씨』는 계층을 초월해 사랑 받는 국민 가요였습니다.
이때의 공로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치하는 물론, 1973년 방한한
베트남 티우 대통령으로부터 최고 문화 훈장을 받았습니다.
최초로 외국의 문화 훈장을 수여 받은 가수로 기록된 그녀는 이후
국내 외에서 3번이나 훈장을 받은 최다 서훈(敍勳 )가수로 등극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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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 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 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오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