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별명이 ‘기브스’였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검사 시절 그의 인터뷰를 보면 당시 그의 업무 스타일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반면 돈의 유혹이나 청탁에는 절대 넘어가지 않는 꼿꼿한 검사라는 평도 많았습니다.
최연소 사법고시 합격, 우수한 연수원 성적, 든든한 처가의 배경까지. 그렇게 탄탄대로를 달릴 줄만 알았던 우 검사의 행보에 한 번 브레이크가 걸린 적이 있다고 합니다.
경주지청에 있던 우 검사가 다시 지방으로 좌천되는 일이 벌어진 겁니다.
과거 검찰 내부 인터뷰에서도 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이 때 그는 권력의 쓴맛을 단단히 본 걸까. 이후 우병우 검사는 큰 시련 없이 검찰 조직 내의 중요한 자리로 승진하며 승승장구하게 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서울중앙지검 부장 검사에서 대검 중수부 수사 1 과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됩니다. 이레적인 인사 조치였습니다.
그곳에서 우병우 검사는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된 혐의를 받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하게 됩니다. 당시 그는 미리 준비한 200여 개의 질문을 들고 노 전 대통령을 직접 심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뉴스 속보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오늘 아침 서거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은 오늘 아침 6시 40분 쯤……
그런데 검찰 조사를 받은 지 20여 일만에 노 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하고 만 것입니다. 우 전 수석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친구는 당시 수사에 대해 직접 물어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당시 검찰은 정권을 의식해 무리한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힘들었습니다.
거센 검찰의 책임론에 수사책임자가 사퇴했지만 우 전 수석은 이후 핵심 요직에 잇따라 영전하며 날개를 달게 됩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검찰의 꽃이라 불리는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하자 그는 2013년 4월 검사 생활을 마감합니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검사장에서 탈락했을 당시의 심경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검사직에서 물러난 뒤 변호사 일을 시작한 우 전 수석. 그런데 1년 후 그의 측근들에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갑자기 민정 비서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우 전 수석은 이듬해 2월 박근혜 정부 최연소 민정수석으로 초고속 승진까지 하게 됩니다.
우 전 수석이 도대체 어떤 배경을 바탕으로 청와대에 들어갔는지를 두고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여러 추측들이 무성했다고 합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우 전 수석은 무려 27년이나 차이나는 법조계 선후배 관계인데다 평소에 특별한 친분이 있었던 사이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과연 그를 선발하는데 누구의 역할이 작동한 걸까. 그런데 곪아터진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힌트 하나가 알려지게 됩니다.
우연히 드러난 우 전 수석의 장모 김장자 씨와 최순실의 관계. 하지만 그는 이를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하지만 국정조사 청문회 위원들이 조사한 내용은 달랐습니다.
지금 우병우 전 수석은 최 씨의 도움으로 공직에 발탁돼 직권을 남용하고 최 씨 일가를 비호했다는 의혹의 한 가운데 서있습니다. 하지만 그의 측근조차도 최순실과의 친분은 없더라도 비선실세였던 최 씨의 존재를 우 전 수석이 몰랐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병우 전 수석이 청와대 민정비서관으로 임명된 뒤 한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최순실, 이화여대 교수, 우 수석의 장모 김장자 씨가 참석한 골프 회동. 그리고 몇 달 뒤 체육 특기자 전형을 통해 최순실의 딸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합격한 것은 우연일까요. 우 전 수석은 민정비서관이 되고 얼마 되지 않은 무렵 세월호 수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해경서버 압수수색을 제제시켰다는 의혹을 받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각종 인사개입을 통해 비선실세 최순실과 그 주변인물의 전횡을 비호한 것이 아니냐는 비난에 직면했지만 그는 자신이 최순실의 존재를 몰랐던 업무 과실에 대해서만 인정할 뿐 본인에게 쏟아진 모든 의혹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는 그렇게 무능한 엘리트였던 걸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그가 민정수석 자리에 있는 동안 청와대 안에서는 믿기 힘든 일이 한 가지가 더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가 항상 감찰하고 관리해야 할 사정기관에서 발생한 중대 사건에 대한 자료를 입수했습니다.
처음 제보자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을 때, 우리는 그가 얼마나 큰 용기를 낸 것인지 미처 짐작하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내용이라며 먼저 제보내용이 담긴 사진 파일을 우리에게 보낸 제보자.
그가 보낸 파일은 총 11장의 문서를 사진으로 촬영한 것이었습니다. 수많은 이름들과 경찰 직위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는 노트. 경호실의 실훈이 적혀있는 그것은 한 청와대 경호실 고위간부가 사용했던 업무 노트였습니다.
노트 안의 내용들은 언뜻 보기에도 경찰 조직의 인사와 관계있어 보이는 이름과 단어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최순실과 주변 인물의 이름도 등장합니다. 이 노트가 청와대 경호실 고위간부의 것임을 감안할 때, 그곳에 적힌 메모는 매우 충격적이었습니다.
지난해 10월, 박근혜 정부 초기 청와대에 수시로 드나들던 최순실을 알아보지 못하고 경호경찰들이 원칙대로 검문검색을 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내 경비책임자가 경질된 적이 있다는 의혹이 보도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 노트가 촬영된 것은 보도보다 훨씬 앞 선 2016년 초반. 메모를 한 경위는 알 수 없지만 지금 비선실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는 관계자들의 주장과 달리 청와대 내부에서 비선실세의 존재를 분명 알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트의 주인과 함께 근무했었다는 제보자는 민감한 내용으로 추정되는 노트를 어떻게 촬영한 것일까.
더욱 충격적인 건 경찰의 정기인사와 특진에 영향을 미쳤을 걸로 보이는 문구들이었습니다. 우린 이 노트에 적힌 대로 인사가 이루어졌는지 확인 가능한 선에서 검색을 해봤습니다. 그런데 몇 건만 검색해봐도 실제 적힌 내용대로 인사가 이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노트 속 청탁으로 추정되는 인물의 인사와 실제 근무지를 확인해보니 상당수가 일치했습니다. 게다가 그런 경찰 인사는 서울, 충남, 제주 등 전국에 걸쳐 이루어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과연 인사청탁과 개입이 실제로 일어났던 것일까.
실제로 이 노트의 주인은 당시 청와대 경호실 고위 경찰간부로 민정수석실의 인성검증대상인 동시에 민정수석실의 사정과 감찰을 받는 위치였습니다. 3급 이상의 고위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청와대 내에서 버젓이 이런 인사청탁이 오가고 누군가 개입이 됐다면 이건 무엇을 뜻하는 걸까.
최고의 공직기강을 확립해야할 청와대 안에서 믿기 힘든 인사농단이 정말 있었던 걸까. 우리는 노트의 주인이자 인사청탁으로 추정되는 내용을 작성한 당사자를 직접 만났습니다.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하던 기간에 과연 그는 어떤 목적으로 경찰조직의 인사청탁과 관련 있어 보이는 내용을 작성한 걸까.
제작진: 그 밑에 “ㅇㅇ남부 강력계 김ㅇㅇ 경위님 10월 말 경찰청 특진” 이것과 관련된 박ㅇㅇ 씨 아시죠?
당시 청와대 내 경찰 고위 간부: 네. 이때는 경찰청 차장이었습니다.
제작진: 여기 심ㅇㅇ 경위님 (추천한) 이ㅇㅇ 씨는 누구예요?
당시 청와대 내 경찰 고위 간부: 제 동기입니다.
제작진: 경찰대 동기신가요?
당시 청와대 내 경찰 고위 간부: 네
작성자는 추천을 받게 된 좋은 인재들을 단지 참고로 적었을 뿐이라는데 추천한 사람들 중에는 경찰고위직, 경호실 관계자, 심지어 현역 국회의원까지 적혀있었습니다.
더 문제가 심각한 건 청와대를 경호하는 101경비단과 대통령을 경호하는 22경찰경호대에 관한 메모 내용입니다.
실제 22경찰경호대 특진 내역을 살펴보니 일반 경찰 특진보다 100배나 유리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01은 국가원수 경호는 100%를 넘어 1% 더 완벽해야 한다는 의미로 101경비단의 유대감과 자부심은 유명합니다. 그런데 승진인사가 보장되는 101경비단과 22경찰경호대에 고위인사가 누군가를 추천한다는 것이 과연 정당한 행동일까. 노트에 적힌 101경비단과 22경찰경호대에 관련한 이름은 모두 8명이었습니다.
제작진이 공식 입수한 경찰 인사 기록을 통해 이름을 확인해본 결과 8명 중 6명이 일치합니다.
우린 경찰 인사에 대한 노트를 개인이 단독으로 작성한 것인지 알고 싶었습니다.
노트를 작성할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그는 그 이후 어디로 인사이동이 됐을까. 확인 결과 그는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아들에게 이른바 꽃보직을 보장했다는 서울청 고위간부의 후임으로 영전했습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 직무 정지 이틀 전 야당의 비판을 무릅쓰고 단행했던 경찰 인사 때도 다시 한 번 승진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전산 조작 의혹까지 드는 이유는 노트에 적힌 의미심장한 숫자들 때문입니다. 경호실 업무와는 관련 없는 경찰공채 관련된 수험번호에서부터 면접이나 체력시험 등 시험 일정을 파악한 흔적이 보입니다. 심지어 공채시험의 점수 조작까지 의심되는 내용이 발견됩니다.
제보자는 이 노트에 적힌 내용을 보는 순간 우병우 전 수석 아들의 운전병 특혜 논란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막상 노트 안에 담긴 내용을 보니 일부 의경의 선발과 배치 문제도 정말 공정한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는 겁니다.
청와대 비밀 노트에 기록된 수십 건의 인사 청탁 의혹. 과연 그들이 말하는 충성은 누구를 향한 것이며 그들이 지키고자했던 명예는 어떤 명예를 말하는 걸까.
경쟁에서 남을 잊고 그 대가로 주어지는 권력에 취해 괴물이 되어버린 엘리트들. 우리가 청와대 경호실 고위간부의 노트를 통해 들여다보고 국정 농단 사태를 통해 만난 건 우리 사회 엘리트들의 충격적인 민낯이었습니다.
비선실세의 움직임이 한창이었을 때 작성된 청와대 고위간부의 비밀노트. 그것을 보고 청와대 권력이 경찰을 서서히 장악하려는 의도 속에서 민정수석실이 동참하거나 묵인했다는 추정을 한다면 과한 상상인 걸까.
그는 자신이 모셨던 대통령 위에 국민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잊어버린 듯 보였습니다.
이제 마지막 국정조사 청문회가 남았습니다. 과연 우 전 수석이 이번에는 진실을 말할 준비가 돼있을까.
그는 끝내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만난 엘리트들에게 던지는 국민들의 질문은 계속될 겁니다.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비선실세들이 보안손님이라는 이유로 정식 검문도 받지 않고 청와대를 드나든 사실이 밝혀지면서 대통령 경호실에도 비판과 질책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요. 이 문건의 내용을 보면 정작 청와대 경호실에 얼굴에 먹칠을 한 건 경호실에 근무하는 경찰 고위간부 자신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신의 원래 임무가 무엇이었는지, 자신은 법과 원칙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지켜야하는 경찰이라는 사실을 단 한 번이라도 생각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원칙을 지키는 일보다 힘 있는 자의 비위를 맞춰 더 높은 자리로 가려는 욕심이 더 중했던 건 아닌지도 함께 묻고 싶습니다. 이 문건과 관련해 다른 곳도 아닌 경찰 고위층의 조직적인 인사개입이라는 사안의 중대함을 생각할 때 이 개인 뒤에 숨은 더 큰 권력은 없는지 분명히 밝혀져야 한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게 묻겠습니다. 경찰 인사를 감찰하고 관리하는 책임을 지고 있던 자신이 이번에도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하시겠습니까.
광장에선 지금도 촛불이 켜지고 있습니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이것이 그저 정권을 바꾸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이번엔 정말 다른 세상이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원칙을 무시하고 도덕에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성공만을 향해 달려온 일그러진 엘리트가 더 이상은 사회의 높은 자리에서 우리를 내려다보지 못하는 그런 세상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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