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검황성(劍皇城) 검각(劍閣)의 예봉(銳峯) 위로 뇌룡(雷龍)이 떨어져 내리고 있다. 대지를 갈라 버릴 듯한 기세로 떨어져 내리는 거섬(巨閃). 버언- 쩍-! 사위(四圍)를 휘황찬란하게 밝히며 떨어져 내리는 푸른 날(刃)의 거대한 도 끼날 아래 밤의 장막(帳幕)은 베어지고… 아아, 하나의 성(城)! 둘레가 이십팔 리(里). 십삼 개(個) 성(城)을 상징하는 십삼대문(十三大門)에, 천하구주(天下九州) 에 군림(君臨)하는 것을 뜻하고 있는 웅대무비한 십층대루(十層大樓) 구 개. 이십팔숙(二十八宿)이 천중(天中)을 따라 회전함을 뜻하는 이십팔전(二十八 殿)을 향해 쭈욱쭉 뻗어 나가는 대로(大路). 십팔만 강호인의 의혼(義魂)을 상징하는 십팔만 개의 풍운오색번(風雲五色 幡)이 펄럭이고… 오십일 파(派)의 충렬(忠烈)에 대한 상징으로 건립된 십오 장 높이의 거대 한 석궁철루(石宮鐵樓)가 방사형의 진도(陣圖)에 따라 세워져 있는 위대한 축조물(築造物)! 콰앙-! 흑궁(黑穹)이 울부짖는 가운데에서도 성(城)은 의연하게 서 있었다. 일섬(一閃)이 가해질 때 십삼 개 문 가운데에서 가장 거대한 철문(鐵門)이 찬연하게 빛을 발했으며, 뇌전(雷電)이 일대를 뒤흔들 때 억조창생(億兆蒼 生)의 우상으로 군림하기 시작한 거성의 횡액(橫額)이 가늘게 흔들렸다. 그 위. <검황성(劍皇城)> 아아, 이 곳이 바로 중원의 하늘(中原天)이라는 검황성인가? <그대 영웅(英雄)의 길을 걷는 자여! 오직 세 가지를 지니고 여기 들어오라! 하나의 검(劍)과, 하나의 야망(野望)과, 하나의 혼(魂)을 지니고 있다면, 그대가 비록 죄인이라 하더라도 본성은 그 대를 거부하지 않겠다. 중원(中原)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자, 검(劍)의 진실을 알고 있는 자, 검(劍)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자여! 여기 검황성에 들라!> 십 년에 걸쳐 검호의 야망에 불을 질렀고, 후기지수(後起之秀)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던 풍운의 서(書)가 성문에 쓰여 있다. 변황무림(邊荒武林)의 준동을 미연에 방지하고, 방문좌도(傍門左道)의 발호 를 힘으로 응징하며, 백도방파의 절대적인 우위를 증명하기 위해 십 년 전 에 이룩된 위대한 무사들의 집단. 검황성! 하늘은 바로 그 위대한 검황성의 고공(高空)에서 울부짖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꽃가지였다. 활짝 피어난 백목련(白木蓮) 한 송이가 매달려 있는, 밤새 퍼부어진 폭우 (暴雨)로 인해 매우 영롱한 이슬을 희고 우아한 꽃잎 사이에 살짝 머금게 된 백목련화. 가지째 잘려 자단목(紫檀木) 탁자 위에 놓인 한 송이 백목련화. 거기 두 줄 기 시선이 모아지고 있었다. 질투와 경악이 범벅이 된 시선이다. 나이 서른 정도 되었을까? 태사의(太獅椅) 깊이 등을 파묻고 있는 흑포거한(黑袍巨漢)의 안색은 유난 히도 푸르렀다. 번쩍-! 뇌(雷). 창(窓)은 푸른 도끼날에 찢어지고 있고, 흑포거한의 얼굴은 뇌전이 떨어져 내릴 때마다 창백하게 물들어 갔다. "살아 있다! 꽃은… 아직도…!"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 어둠 저편에서부터 흘러 나오는 듯한 목소리다. 흑포대한은 입술을 거의 벌리지 않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드넓은 대전(大殿)이다. 백여 명이 들어차고도 남을 바닥은 주홍색 융단으 로 뒤덮여 화려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으며, 모든 집기는 자단목으로 이루어 져 있어 고귀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검황제일좌(劍皇第一座) 천룡좌(天龍座). 검황성 안에서 가장 지고한 자리이다. 검황성은 지극히 독특한 체계를 지니고 있다. 여타한 방파와 가장 대비되는 점은, 검황성을 대표하는 인물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라는 것이었다. 검황성에는 성주(城主)가 없다. 검황성은 백도계에서 가장 위대한 신위를 갖고 있으되, 검황성에는 유일무 이한 절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검황성을 창립한 중원사성(中原四聖)의 안배(按配)에 의한 공존의 율법에 의해 나타났다. - 검황성은 전 백도인(白道人)의 의지로 만들어진 집단이다. 성주가 없다 는 것은, 우리 모두가 그 곳이 주인이라는 것이다. 검황성은 이미 전 무림을 지배하고 있다. 마도의 몇몇 문파가 그 권위를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그들 중 누구도 검황 성과의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고 있다. 성주가 없다는 것. 그것은 바로 누구라도 성주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꽃가지는 단 일 검에 잘리었는데, 잘려진 단면에서는 철기(鐵氣)가 느껴지 지 않는다! 그것은 놈이… 검신(劍身)이 아니라, 검강(劍剛)으로 꽃가지를 베어 냈다는 증거이다. 놈은… 선천검강(先天劍剛)을 이미 터득했다!" 시선은 일그러지고 있다. 백목련화(白木蓮花). 거기에 맑고 화사한 향기가 풍기고 있다. "게다가…!" 우두둑- 뚝-! 흑포대한의 주먹은 드세게 거머쥐어졌다. "꽃은 가지가 잘리고 한 시진이 지났는데도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상태 와 마찬가지로, 활기(活氣)와 생기(生氣)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놈이 도가 (道家)의 활천검결(活天劍訣)마저 얻었다는 증거이다!" 두 주먹은 더욱 드세게 거머쥐어졌다. "무옥(武玉)! 그 천한 놈의 무공은 이미 절정(絶頂)에 이르렀다! 게다가 놈 은 제원로(諸元老)와 젊은 층의 지지를 받고 있다. 압도적으로! 그 천한 마 부(馬夫) 출신 애송이가…!" 탁자 위. 세 장의 밀지(密紙)가 뒹굴고 있다. 백목련화와 함께 전해진 세 장의 밀지. 그것은 한 인물에 대한 자세한 기록 이고, 흑포거한이 십 일에 한 차례씩 받고 있는 비밀의 서찰이었다. 첫 번째 밀지. 제일 먼저 펼쳐졌고, 제일 먼저 구겨졌다. 그 위, 이러한 글이 초서(草書)로 휘갈겨 적혀 있었다. <풍운제검대주(風雲帝劍隊主)의 무도수업(武道修業)에 대한 것은 종잡을 수 가 없습니다. 그는 타인이 보는 앞에서는 무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의 눈빛으로 보아 그는 이미 삼화취정(三花聚頂)의 경지에 이른 듯하며, 그의 내공은 일백 년(年) 수위에 육박했다고 사려되옵니다. 여기 하나의 꽃가지를 동봉하는데… 그것은 풍운제검대주가 일천 풍운제검 사들 앞에서 검도(劍道)를 설명하며 일 초 시범을 보인 결과, 만들어진 낙 화(落花)외다. 무옥(武玉), 그 분은 이미 자신에게 주어진 일백팔검경(一百八劍經)을 완전 히 터득했다고 사료됩니다. 그는 오 년 전 마부(馬夫)로 검황성에서 가장 비천한 내력이었던 시절과는 비교도 되지 못할 정도로 극강(極强)해졌는데, 자신의 일로정진 이외에 여 타한 기연(奇緣)은 한 번도 없음이 확실합니다.> 또 하나의 밀지. 두 번째 펼쳐졌고, 그 즉시 찢어진 밀지 위에도 글이 적혀 있었다. <검황성의 젊은 고수들은 검황성제일인이 풍운제검대주 무옥이라고 공공연 히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번 혈사마군(血死魔軍)을 단신으로 격파하고, 대강남북(大江南北)을 종 횡하던 천마살검대(天魔殺劍隊)를 열두 명의 수하와 더불어 완전 멸살시킨 것을 비롯해… 지금까지 이룩한 스물다섯 가지 패업(覇業)으로 인해 그는 이미 영웅 중의 영웅으로 판명이 되었습니다. 또한 공사가 분명하며, 지극히 검소하고 소탈하며, 과묵한 성품이 노소 고 수들의 인간적인 흠모를 받고 있으며…> 세 번째 밀지. 그것은 방 안의 그를 가장 격노시킨 바 있었다. <신룡경(神龍卿) 환대공자(桓大公子)는 무옥을 의형(義兄)이라고 칭하기 시 작했고, 탄금화(彈琴花)와 철호접(鐵蝴蝶)… 두 분 나으리는 무옥 나으리의 애정(愛情)을 독점하기 위해 묘한 알력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더 지속된다면, 검황제일좌는 그에게로…> 콰앙-! 하늘이 찢어지고 땅이 갈라지는 듯, 가공할 낙뢰와 더불어 밤이 깊어 가고 있다. 대한의 두 눈에선 질투의 불꽃이 쉬지 않고 일렁거렸고, 불끈 쥐어진 열 손 가락에서는 쇠젓가락 부러지는 소리가 계속 터져 나왔다. 대한의 눈은 아직도 맑은 향기를 뿜어 내는 백목련화 가지에 고정되었다. "좋아, 천한 놈! 네놈에게 세상이 집념(執念)과 몸뚱이만으로는 겪어 내지 못할 장소라는 것을 알게 해 주마!" 입술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위대한 세가의 후예들마저도 경(卿)의 자리에 오르지 못하고 좌하(座下)로 만족을 하거늘… 무옥, 네놈은 맨몸뚱이로 경의 자리에 올랐다. 게다가… 네놈은 오 년에 걸쳐 위대한 패업을 이룩했다." 뇌전이 방 안을 푸르게 물들이는 가운데 차디찬 목소리가 흘렀고, 우레 소 리가 요란한 가운데 시선은 더욱 잔혹해졌다. "네놈은 방해 없이 성장했다. 네놈은… 행운아였다. 하나, 그 행운도 이제 는 네놈을 지켜 주지 못할 것이다." 열 손가락은 하나로 모이기 시작했다. 맑고 화사한 향기를 뿜어 내던 백목련화가 손에 쥐어졌고, 힘이 불끈 주어 지는 순간 그것은 찢어지고 말았다. "네놈은 이제부터 알게 될 것이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흰 이빨이 유난히도 차가운 빛을 발한다. 번개는 낮은 하늘을 난도질하기 시작했고, 흑포거한의 안면 근육은 푸들푸 들 떨리기 시작했다. "무옥! 이제까지는 순탄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네놈이 과연 어떠한 존 재인지를 알게 해 주겠다. 천하디천한 놈! 네놈이 네놈에게는 어울리지 않 는 귀족의 옷을 걸치고 있다는 것을… 뼛속으로 느끼게 해 주겠다!" 폭우(暴雨)는 십 일(日) 내내 내렸다. 끝없이 퍼부어지던 빗발은 새벽에 이르러서야 말끔히 거두어졌다. 폭우가 심했던 탓일까? 새벽은 유난히도 청신(淸新)하게 밝아 왔다. 연보라색의 안개가 반투명한 능라 휘장마냥 산허리를 휘감았고, 풀잎 끝에 대롱대롱 매달린 이슬방울 위 로 조양(朝陽)의 햇살이 편린으로 반짝인다. 푸릇푸릇하게 살아나는 신록(新綠)의 계절. 산(山)은 안개 속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나는 늘 산(山)의 호흡 소리를 듣는다!" 모옥(茅屋) 안이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창 밖의 새벽을 보고 있었다. 단정하지 않은 머리카락이 어깨를 덮고 있다. 별로 변화하지 않은 단아한 표정을 지닌 청년. 그는 겉보기 그리 두드러지 는 특징이 없는 자였다. 키는 조금 큰 편이고, 체격은 여위었다 싶을 정도였다. 눈길은 차분하고 맑았고, 걸치고 있는 의복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빨아 댄 나머지 빛이 퇴조가 된 백포(白袍)에 불과했다. 그의 체취는 매우 기이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심(幽深)한 눈과, 단아한 가운데 강인한 의지를 지니고 있는 아래턱과, 큰 동작은 없으나 압도감을 주는 신비한 기품. "새벽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각이다. 또한…" 그의 눈길은 천천히 돌리어졌다. 환하게 타오르기 시작하는 하늘로, 그는 머나먼 고공장천(高空長天)을 향해 말로는 형언하지 못할 맑은 시선을 끝없이 폭사시켰다. "저 하늘은 늘 나를 부르고 있다. 내가 무인(武人)이 된 후, 하늘은 나의 혼(魂)을 부르고 있다!" 차분하고 강인한 음성이다. 오랫동안 절제된 생활을 한 흔적이 역력하고, 고독한 가운데 무도수업(武道 修業)을 계속한 체취가 풍기는 청년. 그는 무옥(武玉)이라 불리고 있었다. "한 가지 슬픈 일은 내게 주어진 일이 너무나도 많아, 강호의 길을 자유스 럽게 걸어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의 입가에는 엷은 미소가 흘렀다. "무사가 되는 것이 이처럼 쓸쓸한 것인 줄 알았더라면… 후후, 돌아가신 노 선생(老先生)들이 나의 근골(筋骨)이 백년제일(百年第一)이 아니라, 천년제 일(千年第一)이라고 부추겼더라도 이 곳에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뜨락에는 꽃이 가득하다. 그것은 바로 순결한 흰빛으로 다소곳이 내려앉은 천상화(天上花) 같은 백목 련화(白木蓮花)였다. "검(劍)이란 녀석은… 꽤나 예민한 녀석이지. 단 하루라도 정(情)을 주지 않으면 무디어지거든. 후후… 놈이 그런 성질을 지니고 있지만 않는다 하더 라도, 조금 더 평온해질 텐데!" 그의 눈빛은 하늘빛을 닮아 가고 있었다. 검황제이좌(劍皇第二座) 비룡경(飛龍卿), 풍운제검대주(風雲帝劍隊主), 무옥(武玉). 그는 벌써 오 년째 이런 새벽을 맞이하고 있었다. 무사(武士) 무옥(武玉). 나이 스물에 강호천하의 모든 무림인이 부러워할 만한 위업을 이룩한 일대 (一代)의 기린아(麒麟兒). 그는 이미 검황성에서는 신화가 된 인물이었다. 무옥은 나이도 출신도 불분명한 강호의 천민 출신이었으나, 검황성에서는 이미 제이인자가 되어 있었다. 검황성에서의 지위는 신분 출신을 가리지 않는다. 하나 전통이 지배하는 강호계의 집단이고, 변황의 침공에 대비한 중원대동 맹(中原大同盟)인 이상 위계질서는 지독히 철저하다. 그러나 무옥은 오 년 만에 제이인자로 인정받은 것이다. 검황성은 중원사성(中原四聖)에 의해 세워졌다. 무천선생(武天先生), 소림(少林) 고해불(苦海佛), 무당(武當) 벽진자(碧眞子), 연월성모(燕月聖母). 이들은 검황성을 이룩하는 데 자신들의 만년을 희생했다. 이들의 영도력 아래 구파일방은 천 년 만에 하나로 뭉쳤고, 남북십삼세가 (南北十三世家)와 이십팔동심무림회(二十八同心武林會)가 하나로 뭉쳐서 검 황성이라는, 사상에서 가장 거대한 방파를 형성하게 되었다. 검황성의 지배를 받기를 자청한 무사들의 수는 십팔만여(十八萬餘)에 달했 으며, 자신들의 장원(莊園)을 검황성의 분타(分舵)로 기증한 사람이 수천을 넘었다. 이들은 대의를 표명하고는 있으되, 이들의 가슴 속에는 절대로 꺼지지 않을 야망의 불이 하나씩 있다. 그것은 바로 검황성의 주인이 되어 보겠다는 야심이었다. 검황성에는 성주(城主)가 없으되, 천하(天下)가 바란다면 성주가 탄생할 수 가 있다. 검황성주가 되는 자. 그는 바로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다. 강호인들은 검황성 제일인의 자리를 꿈의 자리로 여기고 있다. 검황성 제일인이라는 지위는 언제고 대륙을 넘볼, 변황의 사대세력 총사(總 師)들과 비견되는 지위이다. 마교총림(魔敎總林)의 지옥사령(地獄司令). 일명, 패엽혼(貝葉魂)이라 불리우고 있는 악마와 죽음의 이름이다. 그는 이백 년 전, 기문육가(奇門六家)와 동귀어진(同歸於盡)한 바 있다. 마교총림의 칠십이마류(七十二魔流)는 그 후 일 갑자(甲子) 동안 와해가 되 어 지지부진한 바 있었으나, 사십여 년 전부터는 암중에 하나로 뭉치고 있 었다. - 다시 한 번… 천하를 갖겠다! - 우리에게는 이미… 완벽 이상의 패권(覇權)이 있다! - 중원! 우리를 기다려라! 마교총림은 되살아났다. 죽음과 악마의 이름 아래… 그들이 다시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검황성은 구축되지 않았을 것이다. 두 번째의 이름. 그 이름은 지옥사령보다 신비한 이름이다. 봉황천주(鳳凰天主) 단장화(斷腸花). 언제고 한 번은 대륙무림계에 군림의 깃발을 꽂고자 하는 해중무림고수들이 우상으로 섬기는 일세기녀(一世奇女)를 말한다. 그녀는 지금도 고고한 자세로 검을 다듬고 있다. 단장화! 가장 차고 가장 아름다운 꽃. 그녀의 치마 아래에는 십만여 정병(精兵)들이 있다. 이들은 거선(巨船)으로 하루에 오천 리씩을 운항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죽는 순간에도 단장화에 대한 충성심을 버리지 않는다. 세 번째의 이름. 천마무후(天魔武侯) 달단양(達旦陽). 나이 이십팔 세에 새북십삼천(塞北十三天)의 절대자(絶代者)로 등극한 변황 제일인이다. 그는 백도도 아니고 흑도도 아니다. 그는 검도(劍道)를 추종하는 승부사이 다. 그는 풍류(風流)를 알고, 또한 병법(兵法)을 안다. 그는 중원(中原)을 정복하려 하면서도 중원을 흠모하고 있다. 천마무후 달단양. 그는 포달랍궁(包達拉宮)과 소뇌음사(少雷音寺)와 천룡사원(天龍寺院), 홍 황쌍모교(紅黃雙帽敎), 천산신궁(天山神宮), 북해설영궁(北海雪影宮) 등 변 황 거파의 비전(秘傳)을 완성한 자다. 천 년 간 분열되어 있던 변황이 그로 인해 하나로 뭉쳐졌다 할 수 있었다. - 중원인이 아닌 자로 중원을 얻은 자는 없다! 적어도 나 천마무후 이전에 는! 후후… 기다리게, 중원의 검호(劍豪)들이여! 내가 그대들을 찾을 그 순 간을! 그대들의 보검(寶劍)이 꺾이고, 중원이 내 무릎 아래 굴복할 날을! 천마무후는 꽤 오랫동안 폐관에 들었다. 그는 하나의 폭풍이고, 검황성이 요주의 인물로 꼽고 있는 가장 위대한 승 부사(勝負士)였다. 마지막 이름. 야월화(夜月花). 그 이름은 검황성이 치욕으로 여기는 이름이었다. 야월화는 일백팔 인(人)의 살수(殺手)들의 지지 아래 이룩된 사산무련(四山 武聯)의 지하세력으로, 이들은 중원천하의 철저한 이단자(異端者)들이다. 검황성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검황성이 창건되어 사마외도(邪魔外道)를 도륙내건 말건 개여하지 않고… 자신들의 세력 확보에만 전념하고 있는 무 리들. 그들은 검황성의 이름에 오점을 남기는 바가 컸다. 하나, 현재의 검황성으로서는 척살(擲殺)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검황성의 외단(外壇)이나 순찰고수(巡察高手)들에게 세력이 발각당 하는 것을 철저히 숨기고 있었다. 무옥(武玉). 그는 천천히 벽 쪽으로 걸어갔다. 새벽 바람에 옷자락이 가볍게 펄럭였다. 그의 걸음은 매우 미묘한 걸음으 로, 내디딜 때에도 미진(微塵)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더욱이 걸을 때 의당 있어야 할 소리 또한 없는 허무보행(虛無步行)이었다. 벽(壁)에는 안족(雁足)이 두 개 있고, 그 위 한 일자로 고검(古劍) 한 자루 가 걸려 있었다. 무게 삼십칠 근(斤). 길이 사 척(尺) 오 촌(寸). 이름, 비룡무(飛龍舞). 무옥은 손을 천천히 내밀어 검 허리를 쥐었다. "네 분 노선생은 오 년 전, 이 녀석을 하사하시며 부탁하시었다. 천하제일 이 되기 전에는 이 녀석을 버리지 말라고!" 무옥의 입가에는 가는 그늘이 드리워진다. 그는 문득 네 줄기 창노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무옥, 너는 진흙 속의 보석이다. - 네가 비록 멸문(滅門)한 학자(學者)의 후예로, 현재로서는 가진 것이 하 나도 없는 떠돌이 마부(馬夫)이기는 하나… 너의 몸 안에는 무사혈(武士血) 이 있고, 투혼(鬪魂)이 있다. 그것은 네가 무사의 숙명을 지닌 녀석이기 때 문이다! - 우리와 더불어 성(城)으로 가자! 그 곳에는 용(龍)과 봉(鳳)이 있다. 너 는 그들 가운데서도 가장 거대한 용이 될 것이다! - 무옥, 네녀석은 남자다. 남자라면… 검을 쥐어야 하지 않겠느냐? - 네 비록 천한 신세이나 너의 천품이며 근골로 볼 때, 너는 십 년 안에 대성(大成)할 수 있다! 무옥을 강호인으로 만든 네 사람은 이미 흙이 되었다. 그들은 백 년 만에 준동한 패엽혼(貝葉魂)의 휘하(麾下)들과 싸우다가 화탄 (火彈)에 폭사당했다. "그 분들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악마의 무리들을 모두 척살(擲殺) 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다!" 무옥은 짙붉은 입술을 흰 이빨로 강하게 악물었다. '나는 마도 무리들을 척살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 나는 검을 쥐었다. 하 나, 이곳 사람들은 아직 모르고 있다. 세월이 너무 평화롭기에…' 그는 천천히 검을 거머쥐었다. '나는 풍운제검대주(風雲帝劍隊主)로 천하감찰(天下監察)의 역할을 하기에 마도 세력이 대준동하기 시작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 수 있다. 한데, 그는 나의 말을 불신하고 있다.' 그라니…? 무옥이 그라고 칭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번쩍-! 무옥의 눈에서는 찬연한 혜광(慧光)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나를 질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내가 휘하에 많은 무사를 거느리 고자 하는 것이, 오직 나의 야망을 위한 것이라고 오해하고 있다. 어리석은 사람! 그는 나를 패왕(覇王)으로 여기고 있다. 자신을 몰아낼…" 무옥은 검을 쥐며 벽을 바라봤다. 진흙 벽 위에는 오 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 덩그라니 매달려 있었다. 세 소년(少年)과 두 소녀(少女). 한 어머니, 한 아버지의 자식들마냥 다정(多情)한 자세로 서 있는 다섯 아 이들은 모두 젊고 아름다우며 순진한 얼굴을 갖고 있다. 첫 번째 아이는 조금 뾰루퉁한 표정을 지닌 미소녀이다. 두 갈래로 땋아 내 린 댕기머리가 귀엽고, 흑진주(黑眞珠)처럼 둥그스름한 눈에는 지혜(智慧) 가 가득하다. 습관처럼 옥적(玉笛)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데, 걸치고 있는 자삼(紫衫)에 는 나는 연자(燕子)의 그림 하나가 그려져 있다. 연월지(燕月芝). 아름답고 고결하나, 너무도 차가운 소녀이다. 별호는 철호접(鐵蝴蝶). 성격이 오만해 사람들이 접근하기 힘든 성격이다. 연월세가(燕月世家)를 비롯해 남무림칠대세가(南武林七大世家)의 절대적인 추대 아래 경(卿)의 지위에 오른 소녀이다. 두 번째 아이는 무옥이다. 지금보다 훨씬 작고 초라해 보이고, 지금보다도 훨씬 귀엽고 순진한 인상이 다. 세 번째 아이는 연월지만한 미소녀로, 연홍색 궁장을 걸치고 있다. 가슴에 작은 거문고를 안고 있고, 연월지와는 대조적인 상냥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 고 있다.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상냥해 보이는 인상. 연월지의 강한 아름다움과는 다 른, 고전적인 여성미를 갖고 있는 미소녀이다. 탄금화(彈琴花) 예운령(芮雲玲). 북무림육대세가(北武林六大世家)의 추대 아래 경의 지위에 오른 소녀이다. 그녀는 천하의 모든 기문기관학(奇門機關學)에 정통했고, 취미로 익힌 원예 술에 입신(入神)의 성취를 이룬 나머지… 화수를 이용해 거대한 진세를 펼 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녀는 검황성의 젊은 영웅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네 번째 자리에는 고집이 아주 세어 보이는 흑의소년이 쌍검을 멘 자세로 서 있다. 환류(桓流). 천하제일인이 되기 위해 검황성에 왔다고 선언한 패혼(覇魂)의 풍운아(風雲 兒). 그는 이십팔 방파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고향에 가면 이미 사처(四 妻)가 있고, 십대(十代)가 쓰고도 남을 천만금(千萬金)이 창고에 그득한 귀 족의 후예이다. 하나 그는 분명 무사의 피를 지니고 있고, 도저히 지우지 못할 승부의 근성 을 갖고 있기에 검황성에 입문했다. 다섯 번째 자리에는 표정이 온화한 청년이 서 있었다. 무숙아(武叔牙). 뇌천후(雷天侯) 천룡경(天龍卿)이라고 칭송받고 있는 검황성의 최고 실력자 이다. 뇌천장군부(雷天將軍府)와 무천류(武天流), 구파일방(九派一幇)의 노명숙들 에게서 진공비기(眞空秘技)를 전수받은 천하제일의 귀골(貴骨). 그는 이곳 검황성의 제이대(第二代) 태상호법(太上護法)이고, 검황성 제일 좌에 오른 사람이었다. "사형은 달라졌소. 과거 내가 풋내기였던 시절만 하더라도, 늘 내게 웃음을 보내 주었는데… 최근 사형은 나를 사갈시하고 있소!" 무옥은 무숙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다. 무숙아, 그는 점잖고 과묵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그는 십팔만 무림인의 지지를 받고 검황성의 태상호법 자리에 올랐다. 그는 천하사마류(天下四魔流)를 꺾고, 검황천하를 이룩하리라 피를 내어 맹세를 한 바가 있다. "내게 검을 쥐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내게 강호인으로 사는 법을 슬쩍 가 르쳐 주어… 내가 처세하는 데 어려움이 없게 도와 준 대사형. 아아, 그런 데 대사형은… 내가 풍운제검대주가 된 후부터 나를 싫어하고 있다." 무옥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무숙아를 지극히 흠모하고 있다. 그는 오 년 전만 해도 무옥의 무공교 두(武功敎頭)였다. 무옥을 검황성 직전제자로 거둔 중원사성은 당시 젊은이 중 가장 강했던 무 숙아를 통해 무옥을 가르쳤던 것이다. 한데,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 두 사람은 한 달에 한 번도 볼까 말까 한 사이가 되고 만 것이다. "사형은 내게 말했소. 나는 처지가 뻔한 녀석이니, 배경이 있을 수 없다고! 그러하기에 집념으로 살아나가야 한다고!" 무옥은 중얼거리며 벽 쪽으로 다가섰다. '사형은… 예전부터 나를 적(敵)으로 여기고 있고, 최근 들어서는 나의 방 문마저 피할 정도이다. 아아, 사형과 내가 거리가 멀어진다면… 나는 아름 다운 과거를 잃는 것이고, 검황성에는 내분의 씨앗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무옥은 입술을 더욱 악물었다. '조만간… 나의 마음을 밝히리라! 내가 성주 지위에는 욕심이 없다는 것을 사형에게 말하리라. 나는 척마멸사(拓魔滅邪)의 선봉이 되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지, 군림의 지위에는 욕심이 없다는 것을 그에게 말하리라.' 무옥의 숨결이 고조된다. 그리고 한순간. 무옥은 일순 호흡을 끊었다. '누군가 왔다.' 무옥은 무사의 육감으로 기(氣)를 느꼈다. 상승무학을 지닌 사람에게는 육감 이상의 감각이 있다. 그것은 철저한 수련 가운데 성장이 되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가운데 어떠한 느낌을 준다. 지금 무옥은 어떠한 기세가 다가섰음을 느낄 수 있었다. 차갑고도 힘찬 기운, 그 기운은 그늘 속에서부터 흘러 나왔다. 무옥은 호흡을 끊고 기도(氣度)를 살피다가는 빙그레 웃었다. "은허환형공(隱虛幻形功)을 이리도 잘 쓸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단 한 사 람뿐이지, 그는 바로 검황성의 총순찰(總巡察), 환류(桓流)!" 무옥은 말하며 신형을 틀었고, 바로 그 순간 모옥 밖의 백목련(白木蓮) 그 늘에서 황포를 걸친 청년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슷-! 허리에 헝겊으로 둘둘 만 장도(長刀)를 지닌 깡마른 청년. 그는 무옥의 시 선 안으로 들어오며 피식 웃었다. "훗훗… 무옥형의 감각은 이미 완전해졌구려? 속는가 속지 않는가 알아보기 위해 정말로 조심스레 다가섰는데… 알아차리다니!" 허름한 옷을 걸친 청년. 무옥에 비해 한 살 아래이나, 무도(武道)에 든 경 력은 무옥보다 칠 년이나 앞선 검황성의 후기지수이다. 환류(桓流), 검황신룡경(劍皇神龍卿). 그는 검황성의 총순찰 지위에 있었다. 그는 여타한 수법은 버리고, 도법만 익혔다. 그는 천 가지 도법을 터득했 고, 결국 자신의 도법을 얻었다. 일컬어 환류도(桓流刀). 그것은 환류의 승부사적인 기질과 잘 어울리는 극패극쾌(極覇極快)의 절세 도초(絶世刀招)였다. "어이해 왔는가?" 무옥이 웃으며 마중할 때. "일이 있소. 정녕 큰일이오. 그래서 호위무사도 대동하지 않고 몰래 왔소!" 환류의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졌다. 차다찬 기운이 흐르기 시작하고, 그의 눈에서는 섬 할 정도로 강한 안광이 폭사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단 둘만이 알아야 하고 단 둘이서 결정해야 할 일이오. 그래서… 왔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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