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바람 일각(一刻) 후. 무옥은 지난 수년 간 늘 해 왔던 대로 검황성 안에서 가장 견고하게 건축된 석루(石樓)를 찾아 들고 있었다. 석루는 자색 기와를 이고 있는데, 자룡(紫龍)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그 거대 한 석루 주위에는 사상진세(四象陣勢)에 따라 네 개의 철전(鐵殿)이 세워져 있었다. 네 개의 철전은 하나하나 거대한 규모이고, 그것들은 바로 검황성에서 가장 강한 무사 집단인 풍운제검대의 팔천(八千) 영웅(英雄)들이 거처로 삼는 곳 이었다. 흑사검대(黑獅劍隊). 천선신검(天旋神劍) 사마군량(司馬軍亮)이 이끌고 있는 풍운제검대의 제일 검대이다. 인원은 이천(二千). 이들은 모두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고, 십팔반병기(十八班兵器)를 자유자 재로 다룰 줄 안다. 풍비검대(風飛劍隊). 천유옥(天遊玉)이 이끄는 이천 영웅들의 모임으로, 이들은 무숙아가 친히 이끌고 있는 천풍대(天風隊)와 은밀대(隱密隊)를 능가하는 지혜와 무공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바로 무옥의 눈이고, 귀였다. 용행검대(龍行劍隊). 가장 용감한 무사들의 집단이다. 우두머리는 무옥과는 벌써 삼년지기인 혁 천후(赫天吼). 혁천후는 무옥에 대한 충성심을 용형검대를 천하에서 가장 강한 집단으로 만드는 것으로 입증했다. 용형검대의 장기는 구파일방을 비롯한 강호 수십 개 방파의 기문병진(奇門 兵陣)을 자유자재로 펼친다는 데에 있다. 양의진(兩儀陣)에서 삼재(三才), 사상(四象), 오행(五行), 육합(六合), 칠 성(七星), 팔괘(八卦), 구궁(九宮)의 진세. 이십팔숙진(二十八宿陣), 삼십육천강진(三十六天剛陣), 칠십이지살진(七十二地煞陣), 소림백팔나한대진(少林百八羅漢大陣), 오백항마진세(五百降魔陣勢), 일천탕마검진(一千蕩魔劍陣), 이천대주천검진(二千大週天劍陣)까지… 용행검대의 무사들은 집단적으로 싸우는 데에는 강호제일이었다. 이들은 지 난 삼 년 간 단 한 번의 패배도 경험하지 못했다. 뇌궁검대(雷穹劍隊). 화기(火器) 제조술(製造術)의 일인자인 등발(登發)이 이끌고 있다. 등발은 화염세가(火焰世家)의 가주로, 몹시 고집스럽다. 그는 무숙아에게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데 오직 일 인(人), 무옥에게만은 자 신이 이십 세가 연로한 데에도 불구하고 총대주(總隊主)로 깍듯이 섬기고 있었다. 뇌궁검대의 장기는 구대화병(九大火兵)을 자유자재로 쓰는 데에 있다. 뇌화신전(雷火神箭), 굉화뢰(宏火雷), 연환천화궁(連環天火弓), 비폭열도(飛爆熱刀), 유엽벽력전(柳葉霹靂箭), 연쇄천뢰탄(連鎖天雷彈), 이화무궁탄(離火無窮彈), 대벽력궁(大霹靂弓), 검황만리화(劍皇萬里火). 뇌궁검대는 풍운제검대가 화려한 역사(歷史)를 이룩하는 데에 가장 큰 역할 을 했다. 강호의 사마외도(邪魔外道)가 가장 두려워하는 집단은 풍운제검대이고, 그 중에서도 가장 공포를 전하는 조직이 바로 뇌궁검대였다. 검황성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천마장(天魔莊)이 뇌궁검대의 방문을 받은 지 불과 일개 시진도 지나기 전에 초토화된 것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사건 으로 되어 있다. 벌써 수년 간 사대 휘하 검대는 무수한 희생자를 내어 가면서 남북무림계 (南北武林界)의 방문좌도(傍門左道)를 격파했다. 모두 무옥의 용병술(用兵術)과 탁월한 지휘력, 그리고 개인적인 무공의 뛰 어남에 힘입은 바 크고… 그로 인해 검황성의 토대는 안전해졌다고 할 수 있다. 천하에서 가장 강한 무사들의 집단이라는 풍운제검대. 한데, 오늘따라 일대에는 아주 이상한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천선신검(天旋神劍) 사마군량(司馬軍亮), 철사자(鐵獅子) 천유옥(天遊玉), 천외비룡(天外飛龍) 혁천후(赫天吼), 열화후(熱火侯) 등발(登發). 네 명의 역전노장들은 무옥이 취의청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다리기가 지 루한 듯, 연무장까지 무옥을 마중 나왔다. 이들 모두 전과는 달리, 안색에서 평정을 잃고 있었다. 하나같이 침통한 기색이고, 성질이 가장 급한 등발은 막 폭발이라도 할 듯 이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인 채 사지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대체 말도 아니되는 일이외다, 총검대주(總劍隊主)!" "우라질! 그 나으리가 이제야 마각(馬脚)을 드러낸 것이오. 검황성을 중원 의 방패로 만드는 데 피를 흘린 풍운제검대를… 우라질! 하룻밤 사이에 삼 류무사 집단으로 전락시키다니!" 툴툴거리는 사람들, 이들은 무옥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무옥은 이들과 더불어 강호를 돌며 무수한 업적을 이룩했다. 사도무림(邪道武林) 이십사 개 방파(幇派), 지하세력(地下勢力) 십칠 개 방파(幇派)… 풍운제검대는 삼 년에 걸쳐 무수한 마도조직을 격파하고, 거마(巨魔)를 생 포해 검황탑(劍皇塔)에 가뒀다. 사검대주(四劍隊主). 성질이 불같은 강호의 검호(劍豪)들이다. 이들은 역전노장들로, 어지간한 일로는 화를 내지 않는다. 한데, 이들은 지금 지극히 분노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무옥은 숨을 약간 멈췄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분노하는 것을 본 일이 없는데, 설마 이 곳에도…?' 무옥은 사검대주를 하나하나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늘 유심(幽深)했다. 그것은 그를 따르는 팔천여 무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눈빛이었다. 펄럭거리는 백포(白袍), 허리에 걸려 있는 삼십칠 근 무게의 비룡무검(飛龍 舞劍). 무옥은 벌써 수년째, 매일 아침이면 이러한 모습으로 풍운대전(風雲大殿)으 로 들어섰다. 한데, 풍운대전의 분위기는 전과는 말할 수 없이 달랐다. 풍운제검대의 무사들은 무옥이 사대검주와 만나는 것을 보자, 우르르 몰려 들어 겹겹의 장벽을 만들었다. 그들의 호흡 소리는 유난히도 거칠고 흉폭스럽게 들렸다. "총검대주,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새벽 철저히 무시당했소이다! 총검대주도 없는 사이에!" "대체 우리들이 왜 그러한 대접을 받아야만 합니까?" 슷- 슷- 슷-! 꾸역꾸역 모여드는 팔천여 무사들. 이들의 손에는 강호로 나아갈 때에나 손에 쥐어지게 되어 있는 진검(眞劍) 이 쥐어져 있었다. 풍운제검대에 속한 이들은 체질적으로 복잡한 것을 싫어한다. 이들은 무옥을 사랑하고, 무옥의 지시에 따라 강호의 마도 세력을 격파하는 것을 일생일대의 영광으로 아는 삼산오악(三山五嶽)의 고수들이다. 이들이 지금 하나같이 흥분하고 있었다. "침착하게나. 무슨 일인지 모르나!" 무옥은 짧게 끊어 말하며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었다. 사대검주는 그 뒤를 따랐고, 그 뒤로 십육부대주(十六副隊主)들이 살기등등 한 기세로 뒤따랐다. 취의청 안. 온통 남자(男子)들의 체취로 가득 찬 곳이다. 장식이 없고, 집기도 별로 없다. 머물러 있는 것은 사내들의 풋풋한 체취뿐 이었다. 무옥은 태사의(太獅椅)에 몸을 파묻고 있었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하나의 석상(石像)으로 화했다. 그의 손. 햇살에 녹아 버릴 듯 흰 손은 의자 모서리를 불끈 거머쥐고 있었다. 두두둑- 뚝-! 어떠한 일에도 냉정을 잃지 않는 무옥이었으나, 지금 정녕 분노하고 있었 다. 호흡 소리는 매우 거칠어졌고, 흔들림이 없던 시선은 흐트러지고 있었 다. "다시 한 번 말해 보게!" 무옥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고, 이제껏 그에게 열변을 토했던 풍비검대주 (風飛劍隊主) 철사자(鐵獅子) 천유옥(天遊玉)이 부복한 채 말했다. "지난 새벽, 훈령이 내려왔습니다!" "으음…!" "태상호법(太上護法)의 친필로 내려온 훈령에는 세 가지 사항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철사자 천유옥은 몸을 떨고 있었다. 나이 서른여섯, 과거 한때에는 영웅검회(英雄劍會)의 수석검사(首席劍士) 자리를 맡고 있던 남무림계의 표파자( 把子)였다. 그는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강호계에서의 사적인 기반을 모두 버 리고 검황성에 투신했다. 이유는 하나, 그의 사랑하는 아내가 패엽혼(貝葉魂)이 이끄는 마교총림(魔 敎總林)의 하수들에게 윤간(輪姦)을 당하고 죽었기 때문이었다. 철사자 천유옥의 눈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그 눈은 무옥이 새벽에 보았던 환유(桓流)의 그 눈과 동일했다. 분노로 이글이글거리는 대장부(大丈夫)의 눈, 그리고 차고 강인하게 퍼져 나가는 사자후(獅子吼) 소리. "그 안에는 풍운제검대주에 대한 검황성의 전체적인 지원을 현재 수준에서 삼 단계 낮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삼, 삼 단계?" 무옥은 안면 근육을 떨고 있었다. <거처를 내성(內城) 풍운대전(風雲大殿)에서 외성(外城)의 석룡대(石龍臺) 로 옮길 것. 사흘 안에!> <무장(武裝)을 초특급에서 삼급으로 조정한다. 만에 하나, 반검(反劍)한다 하더라도… 검황성을 전복할 수 없게끔, 이후부 터는 화기(火器)의 제조와 소지를 금함!> <풍운제검대의 난폭한 행동으로 인해 검황성의 전체적인 명성이 빛을 잃었 기에 그것을 질책하는 뜻에서, 이후 풍운제검대는 새로운 요원(要員)을 충 원받지 못할 것임.> 무숙아(武叔牙). 무옥의 재능을 질투하고 있는 검황성의 태상호법. 그는 십여 일에 걸친 폭풍우(暴風雨) 가운데 무엇인가를 결정했고, 그 중 하나를 새벽에 실천에 옮긴 것이다. 풍운제검대는 그 누구라 하더라도 부정하지 못할 첨병정예(尖兵精銳) 고수 들이다. 풍운제검대가 가공할 활약을 하지 않았다면, 그리고 무옥이 헌신적으로 검 업(劍業)을 이행하지 않았더라면… 오늘날의 검황성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무숙아는 그것을 증오했고, 결국 마각(馬脚)을 드러내고야 만 것이다. "총검대주, 어떻게든 해야 합니다." "이 일대는 태상호법의 사병(私兵)이나 다름없는 삼대조직의 이만(二萬) 무 사(武士)들에 의해 암중에 포위되고 있습니다!" "저희들은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그 자들은… 저희들을 벌레로 여기고 있습니다. 저희들이 검황성을 떠날 경우, 검황성의 힘이 반으로 준다는 것을 모르고… 저희들을 농락하려 하고 있습니다! 크으으…!" 풍운제검대의 무사들은 치를 떨고 있었으며, 어떤 사람은 분노한 나머지 당 장이라도 발검을 해댈 기세였다. 취의청 안은 용광로 안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무시당한 영웅들, 이들은 지금 극도의 인내심으로 모욕을 참아 내고 있는 것이다. 검황성에 대한 충혼이 조금만 부족했더라도, 무옥에 대한 충정이 조금만 약 했더라도… 이들은 벌써 발검을 했을 것이다. 무옥. 그는 꽤 오랫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팔짱을 낀 채 창(窓)을 보고 있었다. 바람이 유난히 강하게 불고 있고, 다시 한 번 폭풍우가 들이닥칠 듯이 허공 은 먹장구름에 뒤덮여 가고 있었다. '대사형은 무모한 불장난을 하고 계시오.' 무옥은 입술을 악물었다. '아마도 대사형은 내가 검을 거꾸로 들기를 바랄 것이오. 내가 그렇게 하기 를 기다렸다가, 나를 반역자(叛逆者)로 몰아 척살(擲殺)할 예정일 것이오.' 무옥의 호흡 소리는 더욱 차분해졌다. '하나, 그러한 치기 어린 계략은 이행되지 않을 것이오. 왜냐하면, 어떠한 경우에도 중원(中原)이 살아남아야 하기에…' 무옥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유난히도 힘차게 보였다. 풍운제검대원들의 시선은 무옥을 향해 고정되어 있다. 무옥이 어떠한 명을 내리든, 그것은 어김없이 시행될 것이다. 한순간 숨이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졌고, 그것은 곧 무옥의 음성으로 인해 깨어졌다. "자네들은… 검황성의 무사법(武士法)을 알고 있는가?" 차고, 나직하고, 멀리 있는 사람들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그러한 목소리 였다. "물론 알고 있습니다!" "무사법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중원을 위해 모인 저희들입니다, 총검대주!" 사검대주가 무옥을 바라볼 때, 무옥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힘있게 내뱉었다. "알고 있다면, 그대로 하게!" 저벅… 저벅…! 그는 큰 걸음걸이로 취의청 바닥을 지나쳐 갔다. 사검대주는 꽤나 원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참으란 말이시오?" "아아… 해도 너무하시오, 총검대주!" "저들은 우리들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소. 우리도 그것은 아나, 정녕 참을 수 없게 되었소이다!" "무옥대주, 도대체 당신은 어떠한 분이시오?" 사대검주는 꽤나 안타깝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이미 무옥의 명이 떨어 지지 않았는가? 풍운대전은 암중에 포위가 되어 있었다. 무옥은 호위무사도 없이 걷는 가운 데,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츠으으- 츠으으-! 이전에는 없던 기세가 흐르고 있었다. 풍운대전 주위를 빙빙 감아 도는 세 줄기 기세는 지난밤 사이에 은밀히 설 치된 세 가지 포박진세에 의해 일어나고 있었다. '너무하군.' 무옥은 가공할 힘을 느끼며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무옥의 전신을 압박해 오는 기운은 풍운제검대의 사대검주가 느끼던 기운과 는 질적으로 달랐다. 대전 일대를 포위하고 있던 자들은 무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가공할 진 세를 발동시킨 것이다. 그것은 다시 말해, 포위망이 전적으로 무옥을 노리고 설치된 진세였던 것이 다. 하나, 무옥의 걸음걸이는 조금도 늦춰지지 않았다. '완벽한 천라지망이다. 충돌한다면, 어느 한쪽이 몰살하기 전에는 멈춰지지 않는다.' 무옥은 계속 걸어 나갔고, 진세는 보이지 않는 오랏줄이 되어 그의 전신을 강하게 휘감아 들었다. 첫째의 기운. 그것은 풍운대전 북방(北方)의 매화림(梅花林) 일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일어나는 요사스러운 기운. 아름다운 꽃송이 가운데, 잔혹한 마(魔)의 기운이 뿜어지고 있었다. 한 여인(女人). "저 자가… 무옥(武玉)이다." 그녀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 서서 무옥을 보고 있었다. 무옥과의 거리는 일백 장(丈) 남짓. 지극히 먼 거리이나, 두 사람의 시선은 정면으로 마주치고 있었다. "저 자는 중원에서 가장 강한 남자이다." 자색 궁장으로 몸을 감싸고 백면사(白面絲)로 얼굴을 가린 여인. 그녀의 전 신에선 요요(妖妖)한 기운이 쉬지 않고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답다. 매혹될 정도로." 여인은 무옥이 풍운대전을 나서는 것을 보며 입술을 잘강잘강 깨물었다. '과연… 미끈하다. 검황성의 삼룡이봉(三龍二鳳) 가운데 비룡(飛龍)이 최고 라는 말대로다.' 나이 갓 스물 되었을까? 풋풋한 가운데도 농익은 맛을 풍기는 우물(尤物). 그녀는 고혹스러운 자태를 짓고 있는데, 전율스러운 기운은 그녀가 서 있는 곳 근처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윤회연환진도(輪廻連環陣道). 신비여인 일대에는 그러한 진세가 매설되어 있었다. 그것은 또 다른 진세와 더불어 풍운대전을 엄밀히 차단하고 있었다. 축융마라대진(祝融魔羅大陣), 변환폭풍형진도(變幻暴風形陣圖). 강호계에는 흔치 않은 세 가지 진세. 그것은 신비여인의 뒤쪽에 서 있는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의 사악한 머리 에서 나타난 것이었다. 손에 낡은 섭선을 든 자, 퇴폐적인 지적 용모를 지니고 있는 낙척문사(落拓 文士). 만박서생(萬博書生) 백리목(百里木). 출신이 불분명한 사도제일뇌(邪道第一腦)이다. 만 권의 서적을 섭렵하고 우주의 이치마저 꿰뚫고 있다고 소문난 자이지만 … 지금껏 단 한 번도 옳은 일에 그 머리를 쓰지 않았다. 그의 진가는 남을 죽일 때 나타난다. 만박서생의 기문진학은 당세의 쌍절(雙絶) 중 하나인 바, 그와 더불어 기문 진을 겨룰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검황성의 탄금화 예운령(芮雲玲)이다. 무옥이 걸어가고 있는 길 끝에는 예운령이 머무는 곳이 있다. 무옥은 현재 그녀를 만나러 가고 있는 중이다. 만박서생이 흐릿한 눈길로 무옥을 바라볼 때, 그 곁에 거만한 자세로 팔장 을 끼고 서 있는 자의 눈에선 형형한 정광이 뿜어지고 있었다. 축공부(祝公夫). 키가 구 척(尺)에 달하는 장대한 체격, 고리눈에 주먹코, 사자의 갈기털 같 은 구레나룻의 중년인. 교어피(鮫魚皮)의 회색 전포에, 등에 걸고 있는 사 척 장검이 하나의 철탑 (鐵塔)을 연상케 한다. 이들은 신비여인의 좌우위(左右衛)였다. 요염한 자태로 서 있는 신비여인이 누구인지를 무옥은 이미 알고 있었다. 무림달기(武林獺己) 검난향(劍蘭香). 색비(色秘)로 알려진 그녀는 환우사요(環宇四妖)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는 여인이다. 그리고 사악한 아름다움보다 더한 사악한 지혜로, 그 어떠한 불가능한 청부 (請負)라도 가능케 한다는 무림의 비밀인사였다. '멋진 자. 죽이기에는 아깝다.' 무림달기는 사타구니 사이가 더워짐을 느끼고 몸을 야릇하게 꼬았다. 온갓 방중술(房中術)에 정통하다는 일대우물. 지난 일 년 간 그녀는 비밀리에 일을 처리하고자 하는 강호대인(江湖大人) 들을 찾아다니며 서른여섯 가지의 사건을 처리했고, 그 결과 강호에서는 야 월화(夜月花)에 버금 가는 청부자객(請負刺客)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촉촉이 젖은 눈망울, 너무나도 아름답고 신비한 눈빛이다. 그녀의 외모만 보고는 그녀가 무림달기라는 것을 알 수가 없으리라. 그녀의 눈빛이 보석처럼 빛을 발할 때, 무옥의 눈길이 힐끗 무림달기 검난 향을 향했다. "눈(眼)이 더러워지겠군." 무옥은 마치 더러운 무엇을 본 듯, 비웃음을 입가에 던지며 휘어이 휘어이 걸어갔다. 그는 아침 안개와 햇살의 막을 깨고 표화궁(飄花宮) 쪽으로 갔고, 이 때 무 림달기는 입술을 잘강잘강 씹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걸물(傑物)인데? 나를 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다니? 무숙아란 자 는 나를 보고 입 안 가득 침을 고이며 사지를 벌벌 떨었거늘…!" 검난향은 무옥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돌리지 않았다. "천하의 검난향이 사내에게 무시를 당하다니… 그것도 바로 눈앞에서!" 진득한 열기를 뿜어 내던 눈에선 어느새 새파란 섬광이 피어 오르고 있었 다. "지독히도 오만한 인간! 하나 오늘 밤, 내게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호호 … 천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이라는 검황성은, 사형제지간의 내분으로 인해 나의 서랍 안으로 굴러 떨어지게 될 것이다!" 검난향이 까르르 웃는데… "흠…!" 누군가 그녀 뒤쪽에서 낮게 중얼거렸다. "뭔가 다른 자(者) 같소. 눈빛이 특히 이상하오. 내가 알기에 저런 눈빛을 가진 자는, 가장 다루기가 힘들다고 알고 있소." 중얼거리는 자는 낙척문사 차림의 만박서생이었다. "아마도… 최고 단계의 수법이 있어야만 할 거외다." 그는 너무도 낮게 중얼거렸고, 그 덕에 그의 목소리는 검난향의 웃음소리에 파묻히고 말았다. 하여간 좋은 아침이고, 화향(花香)은 유독히 감미(甘味)로웠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
즐독 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