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회 전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몸 담론에 대한 공방전은 이제 비로소 우리 사회가 정신의 허울 좋은 껍데기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의 몸을 진실 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육체에 대한 진정한 탐구를 통해 존재의 본질적 요소에 다가가는 것보다는, 찰나적이며 쾌락적 요소에 함몰될 우려를 많이 갖고 있다. 상업주의적 과대포장과 위험한 함정 또한 만만치 않게 도처에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스크린 세대들에게 번지고 있는 피어싱이나 문신 등도 몸 담론의 연장선상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육체에 구멍을 뚫는 피어싱은 자기학대의 표현이 아니라 답답한 기존 질서에 자신의 몸으로 저항감을 표시하는 최소한의 저항수단이다. 자기 몸에 그려진 문신이야말로 죽음까지 함께 간다. 그 이상의 절친한 친구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문신이나 피어싱 등에 담겨 있는 소극적 체제저항적 요소와 자유스러운 영혼의 추구는 우리 사회가 마땅히 수용해야 한다. 그것은 범죄가 아니다.
올 여름 해변이나 수영장에 간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수많은 문신을 보았을 것이다. 이제 문신은 조폭들만이 하는 게 아니다. 상대에게 위압감을 주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외적 드러냄의 수단이었던 문신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대중들의 미학적 표현으로 바뀌고 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인위적으로 신체를 변형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신체를 소중히 여겨, 머리도 자르지 않고 상투를 틀었던 우리 조상들은 문신은 물론 몸에 구멍을 뚫고 장식하는 것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유교가 들어오기 전으로 거슬러 가면,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마한 남자들이 때때로 문신을 하였다><변한 진한의 남녀가 왜와 같이 문신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문신을 했을 것이라 짐작된다. 같은 책 왜인전을 보면 일본에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문신 풍습이 성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는 문신을 생각하면 당장 조폭들이 떠오를 정도로 거부감이 심하다. [조폭마누라]에서 여자 조폭 보스 역할을 한 신은경 등에도 커다란 용문신이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스포츠 스타들이나 연예인들 중 상당수의 몸에서 문신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도 문신을 자신의 상징으로 생각할 정도로 사고가 많이 바뀌고 있다. 문신을 하는 부위도 등이나 가슴 등 옷을 입으면 차단되는 곳이 아니라 손등이나 발목 혹은 어깨 등 늘 타인의 시선에 노출되는 부위로 바뀌고 있다. 특히 노출이 심한 여름철에는 자신만의 강한 개성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문신은 주목을 끌고 있다.
아직도 피부에 직접 새겨 넣는 영구문신의 거부감은 여전하지만 그것도 많이 희석되고 있다. 바늘로 찌르거나 살갗에 상처를 내고 물감이나 먹물로 글씨, 그림, 무늬를 새겨 넣는 것을 문신이라고 한다. 스티커나 붓으로 그려 넣는 일회용 문신은 파티에서 많이 활용된다. 영어로 타투(Tatto)라는 단어가 타히티 어에서 비롯된 데서 알 수 있듯이 오세아니아와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문신이 성행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필리핀 미얀마 인도 등 동남아 지역에서 많이 하는데 원시부족에서는 성인식 통과의례에서 행해지거나 악귀를 물리치는 주술적 의미로 행해졌고, 로마 시대나 조선시대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징벌의 표시로 문신을 했다.
몸에 구멍을 뚫고 장식을 하는 피어싱(piercing) 역시 문신과 같은 이유로 우리들에게는 오랫동안 금기의 대상이었지만 서구 사회에서는 오래 전부터 피어싱이 성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지금도 남아 있는 세익스피어의 초상화를 유심히 보면 왼쪽 귀에 동그란 귀걸이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현대 문명이 들어오면서는 여성들이 귀걸이를 하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지만, 남자들이 귀를 뚫는 것은 금기시했었다. 귀걸이를 하거나 머리에 염색을 한 남자 연예인들이 방송출연에 제약을 받았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러나 요즘 남자들의 귀는 상당수가 뚫려 있다. 코와 눈썹 심지어 혀나 배꼽에 구멍을 뚫고 다니며 젖꼭지나 성기에 구멍을 뚫기도 한다. 피어싱 마니아들은 인체의 어느 부분이든 피어싱이 불가능한 곳은 없다고 생각한다.
모양을 내기 위해 신체에 구멍을 뚫고 장식을 하는 피어싱과 문신은 이제 젊은 세대의 새로운 몸짓 언어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만의 개성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문신이나 피어싱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노출되는 귀나 눈썹 주위뿐만 아니라, 자신이나 가장 가까운 연인들만이 볼 수 있는 신체의 은밀한 부위에 문신이나 피어싱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원시부족 사회에서의 피어싱은 신분을 강조하거나 주술적 의미를 가졌다. 원래 귀걸이는 악령들이 사람의 몸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호신용으로 걸던 것이었고, 중세에는 남녀가 각각 한 쌍의 귀걸이를 하나씩 차고 있으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다시 결합할 수 있다고 믿어서 특히 뱃사람들 사이에 유행했었다. 해적들은 바다에 빠져 죽은 뒤 시신이 떠올랐을 때 금 귀걸이를 하고 있으면 발견한 사람이 비참하지 않게 매장 해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성체제에 반항적인 펑크 록(Punk Rock)이 70년대에 등장하면서, 귀를 뚫고 그곳에 면도칼이나 전구 등 온갖 물건들을 매달고 다니는 피어싱이 유행했다. 이제 피어싱은 고대의 장식적 차원에서 반항적인 정신을 표현하는 시대정신의 상징으로 변모된 것이다. 80년대에는 피어싱이 더욱 폭넓게 확산되었으며 그 부위도 귀에서부터 코, 눈썹, 배꼽 등 인체의 다양한 분위로 전이되었다. 또 여러 개의 구멍을 한꺼번에 뚫는 멀티 피어싱(multi-piercing)으로 정교한 몸 장식을 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피어싱 문화를 새디즘-매저키즘의 형태로 치부하는 것보다는, 모든 단정한 형태의 제도권 문화에 저항하는 펑크 록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도시에 살고 있는 현대판 원시족들은 고도로 발달된 체계에 순응하기보다는 저항을 한다. 고대의 타투나 피어싱이 장식적이거나 신분표시, 혹은 주술의 의미였던데 비해 최근의 타투나 피어싱은 육체의 자신 있는 부분을 강조하고 성적 섹시함을 드러낸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기성세대 눈에는 상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육체의 의도적 개방으로 체험된다. 또 벽을 그어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힙합문화의 그래피티처럼 자기 몸에 영토 표시를 해놓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펑크 문화가 젊음의 분노를 외향적으로 폭발시키며 표출하는 것이었다면 문신이나 피어싱은 세계에 대한 절망을 안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영속적으로 남게 되는 문신은 의례적 성격이 강하다. 자신의 몸을 변형시키고자 하는 욕망은, 자신의 신체야말로 자신의 의지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는 절망적 세계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피어싱과 문신이 유행하는 시대, 그것은 기성세대의 가치관이나 주류 질서로부터 더 이상 희망적인 미래를 발견할 수 없는 젊은 세대들의 절망감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불행한 시대이다. 모든 문화에는 숨겨진 의미가 있다.
육체는 결국 정신의 그릇이다. 정신은 육체와 실핏줄로 연결되어 있는 육체의 또 다른 연장선이다. 몸은 이제 단순히 한 인간을 표현하는 대상인 것뿐만이 아니라, 부르디외의 말대로 [육체자산]이다. 문신이나 피어싱으로 자신의 개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차별성을 몸으로 강하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