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실전무예(實戰武藝) 손가락을 퉁기면 푸른 유리 조각으로 부서져 내릴 듯 맑은 겨울 하늘 아래, 무옥은 검은 비스듬히 떨어뜨린 채 서 있었다. 깊은 겨울. 무옥은 벌써 백 일 넘게 눈을 가린 상태로 생활을 했다. 그러는 가운데 그의 감각은 초인적인 수준으로 발달을 해서, 오랫동안 걸어 다녀도 돌부리에도 걸리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고련(苦練). 하나의 검을 얻기 위한 길은 너무나도 멀고 힘들었다. 웃음(笑). 무옥은 입가에 잔잔한 웃음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리고 십검풍백은 몹시 곤 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노부의 밑천이 벌써 다 떨어졌단 말인가?" 그는 중얼거리며 손을 떨쳤다. 피이이잉-! 무엇인가가 허공을 꿰뚫었고. "후후… 그것은 건(巾)이군요. 애써 힘을 가해 쇳조각처럼 느끼게 하시나, 저는 속지 않습니다." 무옥은 빙그레 웃으며 상체를 슬쩍 꺾었다. 순간, 빠른 속도로 날아들던 흑건(黑巾) 하나는 그의 상반신이 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가 눈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무옥은 전에 없던 어떠한 감각을 갖고 있었다. 마음의 눈(心眼)이 열렸다고나 할까? 그는 안력도 청력도 아닌, 어떠한 느낌으로 자신에게 다가서는 것을 정확하 게 깨달아 내고 있었다. 핑-! 또 무엇인가가 던져졌다. 그리고 무옥은 지체없이 손을 쳐들었고, 허공에서는 쇠구슬 하나가 눈덩어 리가 바위에 맞으며 부수어지는 듯이 박살이 나고 있었다. 핑- 핑- 핑-! 다섯 가지 물건이 연달아 허공을 갈랐고, 무옥은 빙글빙글 웃으며 검을 간 단히 떨쳐 냈다. 팟- 팟-! 그의 목검은 정확하게 한 가지만을 골라서 파괴했다. 목검이 흔들릴 때마다 쇠구슬이 철사(鐵砂)로 화해 허공에 흩어졌다. 무옥은 마음의 눈으로 물체를 골라 베는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그것은 바 로 십검풍백이 원하던 경지. 무옥은 결국 해낸 것이다. 무옥은 어두운 방에서 안대를 풀렀다. 그가 제일 처음 느낄 수 있는 것은 앞이 너무나도 밝다는 것인데, 기실 방 안에는 어떠한 발광체(發光體)도 없었다. 바로 앞에서는 십검풍백이 있는데, 그는 수 개월 사이 백 살은 더 늙어 버 렸고… 죽기 직전의 병자처럼 앙상히 말랐다. 그는 무옥에게 십검풍을 전수하기 위해 진원지기를 모조리 소모시켜 버린 것이다. "장하다. 일 년이 걸려도 힘든 것을 백여 일 만에 해내다니… 허허… 너야 말로 중원제일인(中原第一人)이다." 십검풍백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울다니…? 고집쟁이 십검풍백이 울다니…? "너는 노부에게 배울 것을 다 배운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네 자신의 끈 질긴 연무뿐이다." "아아…!" "그리고… 노부는 이제 쉬어야겠고, 네녀석은 너를 간절히 보기 원하고 있 는 다른 아우들과 더불어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전수할 것은, 무예(武藝)라기보다 지혜(智慧)이다. 그것은 무예 이상으로 귀중한 것이 다." 십검풍백은 자신의 죽음을 알고 있었다. 죽음이란 한 인간에게 있어 가장 귀중하고 가공할 사건이다. 하나, 그는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제는 죽을 수 있지 않는 가? 바로 눈앞에 자기 자신도 이루지 못한 완벽한 검을 얻은 청년이 있는데, 무 엇이 아쉽겠는가? 다음날. 무옥은 여량후(呂梁侯)의 거처로 갔다. 여량후는 무옥을 탈태환골시켜 준 사람이고, 무옥과는 이미 백 일 이상 같은 장소에서 지낸 바 있는 인물이었 다. 그는 십검풍백의 검을 얻고, 자신을 찾아온 무옥을 힐끗 보며 키득 웃었다. "큭큭… 살인법(殺人法)을 얻어 재미가 나는 게로구나!" "예?" "세상에는 생도(生道)가 있고, 사도(死道)가 있다. 너는 그 중 사도에 있어 서는 중원제일의 전문가가 되었다. 네가 팔에서 쇳덩이를 떼어 내는 순간, 천지가 발칵 뒤집혀질 것이다." 무옥의 팔. 그 팔에는 여전히 철환 서른 개가 차여져 있다. 한철은 보통 철에 비해 백 배 무겁다. 무옥은 팔소매가 긴 옷을 걸치고 있 는지라,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옥의 팔뚝에 철환이 차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의 무게가 수레 다섯 개에 가득 찬 무쇠 정도라는 것도… 강호제일의(江湖第一醫) 여량후. 그는 인체 제조술에 심취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옥의 신체야말로 그의 걸 작이라 할 수 있었다. "큭큭… 더욱이 네놈으로 인해 강호의 조개(?)들이 울겠는데? 네놈은 천살 (天煞)에다가 도화살(桃花煞)이거든? 큭큭…!" 여량후의 웃음소리는 지극히 껄끄러웠다. 하나, 그의 마음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다 할 수 있었다. 여량후가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죽이지 않았다는 것은 무옥 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는 활술(活術)을 지니고 있고, 그것을 무옥에게 전수했다. "영약(靈藥)을 쓰면, 명의(名醫)가 아니다!" "아…!" "영약이 있다면, 삼척동자라 하더라도 의원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명의 는 약을 쓰되 지극히 값싸고 흔한 것을 써야 한다. 그리고 신의(神醫)라면 약이 없이도 사람을 살릴 수 있고, 성의(聖醫)라고 한다면… 큭큭… 죽어 가는 자가 사마외도(邪魔外道)라도 기꺼히 그를 구해야 한다. 네놈은 성의 는 되지 못한다 하더라도, 신의 정도는 되어야 한다." 여량후의 뇌리에는 고금의 의학기록이 빽빽이 들어 있었다. 그는 의도(醫道) 이외에는 외도(外道)를 몰랐던 사람이었다. 그는 무옥과 보름을 지냈다. 그 사이, 무옥은 그에게서 혈법(穴法)과 의술(醫術)을 터득할 수 있었다. 무옥이 여량세가의 의학 서적을 줄줄 외우는 것을 확인한 여량후는 십검풍 백과 술을 마시러 갔고, 무옥은 눈발을 맞으며 터덜터덜 걸어 삼의 교두(敎 頭)가 있는 곳으로 갔다. 환단공(桓丹公). 그는 철가(鐵家)로 알려진 환단세가(桓丹世家)의 인물이었다. 체구가 장대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으며, 오른쪽 팔이 없는 불구의 노인이 었다. 그의 팔을 자른 사람은 패엽혼(貝葉魂). 그가 아니었더라면, 환단공은 팔을 잃지 않았을 것이다. 환단공의 내력(內力)은 기문육가주 가운데 최고 절정이었다. 더욱이 그는 내가진기(內家眞氣)를 이용해 투명강기(透明剛氣)를 발하는 데 정통한지라, 도검(刀劍)으로도 그의 신체는 훼손이 되지 않는다. 하나, 패엽혼의 마검(魔劍)은 그의 팔을 간단히 잘라 버렸다. 환단공은 마교총림(魔敎總林)의 수십 가지 마공에 대한 것을 무옥에게 상세 히 이야기했다. 마공을 판별하는 법과 격파하는 법. 그는 마교의 무공에 대해 연구를 하며 이백여 년을 보냈다. 결과, 그는 마교의 마공 가운데 정종신공으로 시전할 수 있는 것을 아홉 가 지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그것과 자신의 비전절기를 합해, 십천환술(十天幻術)이라는 유례가 없 는 수법을 창안해 냈다. 무옥이 전수받아야 할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네놈의 살인술은 초인의 경지에 이르렀다. 너는 강호의 그 누구라도 살해 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하나, 방심해서는 아니된다. 강자(强者)에게 는 적이 많은 법이고, 네게는 운명적으로 절대의 적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 이다." "…!" "따라서 너는 빨라야만 한다!" "예?" "멍청한 녀석! 죽지 않으려면 싸우는 데에도 제일인자가 되어야 하고, 도망 가는 데에도 초일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부가 네게 전수해 줄 것은 사 마외도(邪魔外道)에서 유래가 되기는 했으나, 그 위력이 지극히 빼어난 열 가지 탈출술(脫出術)이고… 그것이 바로 십천환(十天幻)이다!" 환단공은 말하며 서적 한 권을 내밀었다. <환단십천환공(桓丹十天幻功)> 환단공은 비급을 무옥에게 쥐어 주며 빙그레 웃었다. "읽고 모르는 것만 물어 봐라. 아는 것마저 물어 보면 귀찮으니까. 사실, 노부는 하던 일을 마저 해야 하는 상태이기에 지극히 바쁘다. 해서, 하루 중 네게 교훈을 줄 시간은 일개 시진에 불과하다. 그 안의 것은 노부가 이 론적으로만 깨우친 것이기에 실현할 수 없으니, 그리 알도록 해라!" 환단공은 무뚝뚝해 보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 속에는 불길이 일어나고 있었 다. 그것은 무옥의 가슴 속에서 타오르고 있는 이름모를 불과 비슷한 것이 었다. 무옥은 쭈욱 글을 읽으며 지냈다. 그리고 환단공은 대장간에 들어가 하나의 검(劍)을 만들기 시작했다. 십천환(十天幻). 훗날 강호에 무수한 신비를 뿌릴 열 가지 경공술이다. 무옥이 알고 있는 구파일방의 정종경공술과는 품격이 다른 것이나, 그 뿌리 는 분명 정종비기에 있었다. 우환(雨幻). 퍼부어지는 빗속에서 잠신(潛身)하는 수법이다. 폭우(暴雨)일수록 위력이 배가되고, 이슬비가 내릴 때에도 능히 시전할 수 가 있다. 그 위력은 내공이 늘수록 배가된다. 풍환(風幻). 바람이 강하게 부는 것을 이용해 몸을 감추는 수법이다. 어떤 때에는 모래(沙) 속에, 어떤 때에는 나뭇잎이 휘말아 오르는 가운데에 … 어떤 때에는 흔들리는 갈대숲에 몸을 감추게 된다. 위급한 경우에는 장력으로 땅을 후려쳐 황토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풍환 술을 시전할 수가 있다. 영환(影幻). 상대의 그림자 속에 숨을 수 있고, 건물의 그림자에 은잠(隱潛)하거나 숲그 늘에 몸을 감출 수 있다. 수환(水幻). 물이 있는 곳에서는 어떠한 자세로든 시전할 수 있는 익수잠환(溺水潛幻)의 비기이다. 물이 혼탁할수록 위력이 배가되나, 내공이 극강해진다면 물이 맑다 하더라 도 능히 몸을 감출 수 있다. 화환(花幻), 비환(飛幻), 묘환(妙幻), 잔환(殘幻), 수라환(修羅幻), 무환(霧幻). 무환, 그것은 가장 신묘한 것으로… 모공에서 유형환무(有形幻霧)를 발휘해 몸을 은잠하는 방법이다. 땅- 땅-! 강철음이 요란하다. 환단공은 이십 일 동안 비지땀을 흘리며 한 자루 병기(兵器)를 담금질하고 있었다. 길이가 사 척(尺). 검(劍)도 아니고 도(刀)도 아닌, 끝이 뭉툭한 쇠붙이. 그것은 환단공의 혼(魂)으로 연철되고 있었다. 환단세가는 철을 다루는 데에 있어서는 고금제일의 수단을 가지고 있었다. 환단공은 가문의 모든 재간을 발휘해서 하나의 검을 만들고 있었다. 신기(神氣)가 안으로 감추어지고, 볼품없는 모양 가운데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하나의 물건. 환단공은 이백 년 간 쇠를 끓였고, 무옥을 창랑점 낭인곡으로 데려오는 찰 나 쇳물을 주형에 부었으며, 무옥에게 십천환을 전수해 준 직후부터 그것을 병기로 당금질하기 시작했다. 십만 번의 담금질. 지극한 정성과 신성한 기법 아래 쇳덩어리는 생명력을 갖기 시작했다. "좋아, 이 정도라면… 영웅혼(英雄魂)이라 불릴 만하지!" 환단공은 길쭉한 쇠막대를 손에 쥐고 미소를 지었다. 아아, 영웅의 혼! 그것은 환단세가의 최후 비전에 따라 만들어진 지상 최강의 신병이기(神兵 異器)였다. "이것이 만들어지기 위해 보검(寶劍) 백 자루가 녹았다. 후후… 녀석, 모두 네놈 때문이다!" 환단공은 웃으며 옆을 봤다. 오 장 밖에 한 채의 석옥(石屋)이 있다. 그 곳은 바로 무옥의 거처이다. 그 안은 텅텅 비어 있었다. "아… 아니? 녀석이 어디로 갔단 말인가?" 환단공은 깜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석옥이 텅 비어 있다니…? '이 녀석이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쳐 나갔단 말인가? 그럴 수는 없는 데? 이 근처는 기문진으로 인해 폐쇄가 되었는데?' 환단공은 머리카락을 꼿꼿이 세울 정도로 경악했다. 무옥, 그는 어디로 간 것일까? 그는 사라져 버린 것일까? "제가 너무했습니다. 이리 놀라실 줄 모르고…!" 무옥은 나무 그림자 속에서 불쑥 걸어나왔다. 환단공이 빤히 보고 있는 노송 아래에서 그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걸어나 왔다. "영환(影幻)을 시전해 본 것인데…!" "녀, 녀석! 벌써 다 깨우쳤단 말이냐?" 환단공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용(龍)이다, 용! 한 마리 용이다.' 환단공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옥은 그가 이론적으로 깨우친 십천환을 모조리 터득한 것이다. 그는 가장 빠른 사내가 된 것이다. 드넓은 중원에서…! 네 번째 늙은이, 구장충(九章忠). 그는 수(數)와 더불어 평생을 살았다. 그리고 산반(算盤)을 쥔 채 평생을 살았다. "노부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숫자는 세 가지이다. 첫째는 상수(商數)이고, 둘째는 병수(兵數)이다. 셋째는 묘수(妙數)이다!" 구장세가(九章世家)의 노야. 그는 시간이 아깝다는 듯, 지극히 빨리 말을 이어 나갔다. "수란 만물의 원리이다. 그것은 금전이 돌아가는 이치이기도 하고, 무사들 이 이동하는 원칙이기도 하며,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해 서 그것은 생수(生數)가 될 수 있고, 사수(死數)가 될 수 있다!" 구장충 노인은 무공이 약하다. 그는 수를 터득하기 위해 무공마저 등한히했 던 것이다. 구장대수(九章大數). 그것은 상업(商業)의 이치가 되는 수이다. 구장대수는 상업을 하는 데 이용 이 되는 수였다. 천병대수(天兵大數). 병가칠서(兵家七書)를 능가하는 희대의 병법이고… 귀곡자(鬼谷子), 황석공 (黃石公), 제갈무후(諸葛武侯) 같은 고대의 현자들이 깨우친 신산귀계(神算 鬼計)에 버금 가는 기문둔갑(奇門遁甲)의 수이기도 하다. 묘묘대수(妙妙大數). 구장충이 최후에 발견한 것으로… 어떠한 적, 어떠한 상황에서든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상대를 쓰러뜨릴 수 있는 사수학(死數學)이었다. "적과 나를 동시에 아는 것이 모든 싸움에서 중요하다. 그것은 바로 삼십육 계(三十六計)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적의 강약(强弱), 나의 강약을 완전히 안다면… 후후… 이 세상의 어떠한 싸움에서든 지지 않을 것이다!" 구장충은 이빨이 하나도 없다. 그는 패엽혼 무리와 싸우느라 만신창이가 되었다. 여량후가 그를 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이백 년 전 마교와의 대접전에서 죽어 버렸을 것이다. "너는 생수(生數)와 사수(死數)를 모두 앎으로, 생검(生劍)과 사검(死劍)의 도(道)를 터득할 것이다!" "한 가지 물을 것이 있습니다!" "뭐냐?" "현재 제가 갖고 있는 승수(勝數)는 얼마입니까?" "큭큭… 벌써 계산이냐?" "배운 것은 실천해야 하지 않습니까?" "큭큭… 좋아, 한 번 셈을 해 보자!" 구장충은 산반을 무릎 위에 놓았다. 그는 산반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가끔 수판알을 하나씩 퉁겼다. 탁-! "단장화(斷腸花)가 제일 먼저 쳐들어오면 승수는 적어진다. 마교총림이 그 것을 이용할 테니까?" 탁-! "흠, 천마무후가 새북(塞北) 십삼천(十三天)을 완전히 일통했다면… 쯧쯧, 차라리 강호로 나가지 않는 것이 낫겠군!" 탁-! "하나, 초야삼은(草野三隱)이 아직 건재하다면… 후후… 해 볼 만한 싸움이 다!" 구장충은 오랫동안 계산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진물이 뚝뚝 떨어지는 눈. 얼핏 보면 지극히 추하고 공포스러우나, 그것을 꽤 오랫동안 보게 된 무옥에게는 친할아버지의 눈처럼 자애스럽고 다정하기 만 했다. "초야삼은이 변수(變數)다!" "초야삼은이오?" "검은(劍隱), 어은(漁隱), 화은(花隱)! 훗훗… 그들은 바로 기문육가의 수 호신들이다!" "아…!" "과거의 싸움에서도 그들이 있었기에, 백도는 죽지 않았다. 훗훗…그들이 우리와의 약속대로 아직까지 살아 있을는지 모르겠구나!" 초야삼은(草野三隱). 그 이름은 이백 년 만에 처음으로 불리워지는 이름이었다. 검은(劍隱). 검만을 익힌 희대의 살수(殺手)이다. 그는 야월화를 능가하는 위대한 청부 사(請負士)였고, 기문육가와 오랫동안 경쟁을 하다가 기문육가의 수호신이 되었던 특이한 사연을 갖고 있다. 화은(花隱). 천하제일지(天下第一智)이고, 중원제일뇌(中原第一腦)이다. 그는 만사무불통지(萬事無不通知)이고, 고집이 강하다. 그리고 인간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인간을 혐오한다. 그래서 꽃 속에 숨었고, 곁에서 누가 죽더라도 전혀 상관을 하지 않는다. 어은(漁隱). 외공(外功)에 있어서는 전대미문의 능력을 갖고 있는 자이다. 일명 철탑(鐵塔). 천생신력을 지니고 있고, 막강한 내공을 겸비하고 있다. "그들은 기문육가와 경쟁심을 지니고 있는 정사(正邪) 중간(中間)의 인물들 이다. 과거 그들이 기문육가를 도왔던 이유는, 기문육가를 좋아했기 때문이 아니라 마교총림을 혐오했기 때문이다!" "아…!" "후후… 강호에 나가는 대로 그들은 찾아라. 그들을 거둘 수 있다면, 너는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는 것과 같다!" 구장충 노인은 웃고 있으나,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신비 속의 세 사람, 초야삼은. 그들에게 중원천하의 운명이 걸려 있다는 것은, 무옥이 지금 이 순간에서야 처음으로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들은 가공할 무사들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지 않다면 이 괴팍하고 자신 에 찬 노인이 땀을 흘리며 말하지는 않을 테니까.' 구장충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초야삼은, 그들이 구장충을 땀나게 하는 것이다. 사십여 일 내내 무옥은 수(數)를 터득했다. 다섯 번째 노인. 백리노선(百里老仙)! 지혜(智慧)에 있어서는 누구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노인이다. 그는 지혜를 넓히는 것을 하나의 취미로 여기고 있는 사람이고, 최근에도 하루에 열 권의 책을 보며 매일같이 새로운 것을 외우고 이해하는 독서광이 었다. 머릿속에 든 것은 아무도 훔쳐가지 못한다는 것이 백리세가(百里世家)의 가 훈이고, 그 덕에 백리세가는 기문육가 중 가장 빈한했다. 백리노선이 무옥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말을 통한 지혜뿐이었다. 하나, 그 가 전하는 것은 가장 원대한 것이었다. 무옥은 백리노선과 두 달 넘게 쉬지 않고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서적 오천 권에 기록된 지식을 모조리 습득할 수 있었다. 천하지리(天下地理)와 각지의 풍속은 물론이고, 동서고금의 사(史)와 비사 (秘事), 그리고 강호계의 제반사항과 서적에도 없는 신비한 일들… 백리노선은 무옥을 자신의 화신(化身)으로 만든 후에야 무옥에게 마지막 노 선생을 알려 주었다. 유황귀자(幽皇鬼子). 독(毒)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다. 그는 음침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사람이고, 이상하게도 무옥보다도 훨씬 나 이 어려 보였다. 갓 십칠 세처럼 반노환동이 된 노인. 독신(毒神)의 경지를 넘어 독성(毒聖)에 이른 유황귀자. 그의 방에는 천하각지의 독극물이 가득하리라 여기고 그를 찾은 무옥은 방 안에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단 하나, 화분(花盆)이 하나 보였고… 화분에 피어난 일주일엽(一柱一葉)의 묘한 화초가 눈길을 끌었다. 피를 먹고 자란 듯이 붉은 꽃. 유항귀자는 지금 그것을 완성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녀석은 흡혈화(吸血花)다. 피를 먹고 꽃을 피웠기 때문에 흡혈화라고 불리는 것이다. 훗훗… 노부는 매일 세 차례씩 이 녀석의 뿌리에 독혈(毒 血)을 주고 있다. 노부의 신선한 피를!" 유황귀자(幽皇鬼子)는 나이 십칠 세 정도로 보였다. 그는 독성지경(毒聖之境)에 이르렀고, 그로 인해 반노환동(返老還童)의 상 태로 돌입할 수 있었다. "흡혈화란 녀석은… 큭큭… 노부가 패엽혼(貝葉魂)이란 자를 독술(毒術)로 녹이지 못한 것이 분한 나머지, 새롭게 닦은 독공(毒功) 가운데의 일백정화 (一百精華)로 만들어졌다!" 유황귀자는 무옥이 들어서는 것을 쓰윽 훑어봤다. 순간. 번쩍-! 두 눈에서는 새파란 빛이 폭사되어 나왔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 번쩍거리는 독지주(毒蜘蛛)의 눈알에서 흘러 나오는 빛깔과 다를 바 없었다. 무옥은 눈알이 빠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으나, 표정을 조금도 변화시키지 않 았다. "좋은데? 큭큭… 하긴, 기문육가(奇門六家)의 의발전인이라면 그 정도는 되 어야지!" 유황귀자는 무옥의 근골을 훑어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이가 들면 오히려 어려진다던가? 그의 웃음소리에는 치기가 섞여 있었다. "하나, 한 가지 흠이 있다!" "흠이오?" 무옥이 반문하자. "네놈은… 너무 잘생겼다!" 유황귀자는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예?" 무옥의 양 볼은 오랜만에 붉게 달아올랐다. "큭큭… 네놈은 천품이 좋고, 암기력과 오성이 좋다. 게다가 미끈하게 생겼 으니, 만인이 시샘하는 것이 당연하다!" "아아…!" "어떠한 계집이 너를 보고 반하지 않겠느냐? 큭큭… 그리고 어떠한 사내 녀 석이 너를 보고 질투를 느끼지 않겠느냐?" 유황귀자는 웃음 가운데 칼을 숨기고 있었다. 그가 하는 말 가운데에는 깊 은 뜻이 실려 있었다. '이 놈이 그 뜻을 알는지…' 유황귀자는 무옥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 무옥은 얼떨떨해 하다가 빙그레 웃기 시작했다. "훗훗… 어르신네는 제게 한 사람을 용서하라 말씀하시는군요?" "…" 유황귀자는 긴장했고. "훗훗… 어르신네는 저를 낭인(浪人)으로 쫓은 옹졸한 무숙아(武叔牙)를 용 서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지요?" 무옥의 미소는 더욱 환해졌다. 그리고 유황귀자의 입가에도 미소가 떠올랐 다. 그것은 바로 부처가 연화(蓮花)를 꺾어 들었을 때, 마하가섭(摩詞迦葉)만이 지었다는 염화시중(拈華示衆)의 미소와 같은 것이었다. "맞다, 네놈의 말은! 훗훗… 그리고 네놈은 말을 잘한 덕에 노부가 생혈(生 血)을 거름 삼아 주어 기른 흡혈화(吸血花)를 먹을 자격을 갖게 되었다. 말 을 잘못했더라면, 네놈에게 흡혈화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유황귀자는 기문육가의 여섯 기인 가운에 두 번째로 강했다. 가장 강한 사람은 십검풍백(十劍風伯)이고, 그 다음이 유황귀자였다. 유황귀자의 본래 출신은, 사마외도(邪魔外道) 쪽이었다. 그가 사마외도를 걸을 때, 강호의 모든 사람이 그를 만나는 것을 두려워했 다.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유황귀자만은 대결 상대로 꺼려했다. 왜냐하면, 그의 호흡(呼吸)마저 맹독(猛毒)이었기에. 무옥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방 안에는 지독한 독향이 가득 배어 있었다. 무옥은 여량후 덕에 만독불침 지신이었기에, 독향에 가득 찬 방 안에서도 독기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네놈은 도량이 크다. 좋아, 네놈은 중원인(中原人) 중의 중원인이다. 해서 네놈에게 독화(毒花)를 줄 뿐 아니라, 독술(毒術)도 일러 주겠다. 그뿐이 아니라, 과거 노부의 독에 녹아 죽은 강호거마(江湖巨魔)들이 터득하고 있 었던 이십팔(二十八) 초무예(超武藝)도 일러 주겠다!" 유황귀자는 강호의 거대한 그릇을 앞에 두고 있는 것이 몹시 흡족한 모양이 었다. 기실 강호의 노년고수에게 있어 가장 기쁜 것이라면, 명예보다는 하나의 뛰 어난 기재를 전인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초무예란… 큭큭… 십검풍 늙은이의 살인검법(殺人劍法)에 필적하는 가공 할 무공이다. 그것은 바로 실전무예(實戰武藝)이다!" "실… 전… 무… 예?" 무옥의 입술이 가볍게 벌어졌다. 실전무예라는 말은 처음 듣는 말이다. 무옥은 백도의 절기를 두루 알고 있 으나, 실전무예라는 것은 용어조차도 알고 있지 못했다. "후후… 그것은 가식이 없는 것이다. 내공을 키우기 위해 익히는 것도 아니 고, 즐기기 위해 익히는 것도 아니다. 단 하나, 타인을 살상(殺傷)하기 위 해 익히는 것으로… 강호의 고집스러운 방파는 그것을 익히는 것조차 꺼려 한다!" "아…!" "하나, 그 위력은 대단하다. 그리고 네놈이 이미 익힌 십천환(十天幻)과 함 께 시전한다면… 후후… 변황의 어떠한 절대자(絶代者)도 중원을 업신여기 지 못하게 될 것이고… 뿌득! 가장 가공할 숙적(宿敵) 패엽혼(貝葉魂)이 비 록 오십만 마졸(魔卒)을 거느리고 있다 하더라도, 중원을 정복하지 못할 것 이다!" 유황귀자의 눈빛이 유난히도 강하다. 마교총림(魔敎總林). 대총사(大總師) 패엽혼(貝葉魂). 이미 신화(神話)가 된 이름이다. 하나, 그는 살아 있었다. 그는 오백 년 이래 가장 강한 자였다. 그는 색마(色魔)였고 폭군이었으나, 탁월한 영도력을 지니고 있어… 휘하에 기라성 같은 고수들을 대거 모을 수 있었다. 이백 년 전 그는 정복하기 위해 일어났고, 십 파는 지리멸렬이 되었었다. 당시 기문육가가 휘하 제자 모두를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백도를 돕지 않았 더라면, 백도는 멸망했을 것이다. "패엽혼은 무수한 비찰(秘察)을 갖고 있다. 놈은 악마의 촉수로서 십팔만 리(里)의 동정을 낱낱이 살피고 있고, 전승(全勝)할 승산이 있어야 나타난 다!" "아…!" "놈은 이백 년 전, 기문육가를 계산에 넣지 못했기에 실패했다." "…" "그리고 다시 나타난다면, 아마도 놈의 뇌리에는 기문육가가 백도와 함께 자신을 막으리라는 계산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놈은 기문육가가 나타난다 하더라도, 이길 자신이 있어야 나타날 것이다. 결국 천하는 그를 막을 방도 가 없는 셈이고, 네놈만이 마지막 희망이다!" 유황귀자의 표정은 절박했다. 백이 년 전 그는 아내를 잃었고, 아들을 잃었으며, 제자들을 잃었다. 그 때 의 원한이 목숨보다 철저하지 않았더라면, 그는 벌써 오래 전에 늙어 죽었 을 것이다. 손과 손. 늙은이와 젊은이의 손이 하나로 뭉치어졌다. "옥아(玉兒), 네 눈을 크게 떠 봐라!" "예?" "너의 눈에는 아련한 빛이 있다. 그 빛이 완성되어야 한다. 너를 위해, 우 리들을 위해서!" 번쩍-! 유황귀자의 눈빛은 더욱 강해졌다. 그리고 무옥은 푸른 눈빛을 바라보는 가운데, 정신이 혼미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이것은 바로 섭백안(攝魂眼)이다.' 무옥은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끼고 부동대법을 시전하려 했다. 그가 심기를 일전시켜 마음을 바로잡으려 할 때. "거부하지 마라! 노부는 급한 상태다. 멀지 않아 죽는다. 그리고 네게 전수 해야 할 것은 너무나도 많다. 그래서 속성술(速成術)을 쓰고자 하는 것이 다." 유황귀자의 목소리가 이상하게도 귀를 통해 들리지 않고, 마음의 깊은 바닥 에서부터 강하게 떠올랐다. 의어전성(議語傳聲)의 극치라는 대혜인어(大慧印語). 유황귀자는 대혜인어의 방법을 써서 마음에서 마음으로, 언어를 심어 넣는 것이다. "이 방법을 쓰는 이유는, 노부가 네게 전수할 유황세가(幽皇世家)의 독술이 지극히 난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얻는 데에는 적어도 이 년이 걸리 는데, 노부는 그렇게 오래 살 수 없다. 그래서 대혜인어로 네게 노부가 알 고 있는 모든 독경(毒經)을 고스란히 심어 주고자 하는 것이다! 이십오 주 야(晝夜) 안에!" 유황귀자의 눈빛은 더욱 강해졌다. 치리리릿-! 푸르른 빛은 무옥의 안면을 환하게 밝혔다. "…" 무옥은 눈도 껌벅이지 않고 그를 바라봤다. 무념무상경(無念無想境). 그는 아무런 저항도 없이 유황귀자의 심어(心語)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뜨락(庭). 눈(雪)이 내리고 있고, 다섯 노인이 서성이고 있었다. 십검풍백(十劍風伯), 여량후(呂梁侯), 환단공(桓丹公), 구장충(九章忠), 백리노선(百里老仙). 다섯 노인 모두 기쁜 낯색들이었다. "후후… 가장 괴팍한 유황 늙은이마저 옥아게게 절기를 전수한 이상, 이제 우리는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소이다그려!" "아아, 저 아이에게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매력이 있나 보오. 유황귀자가 실 전무예마저 아낌없이 전수할 줄이야." "허허… 실전무예야말로 가장 크게 쓰일 것이외다." "자아, 이제 우리가 할 바는 다했구려! 나머지는 옥아의 건장한 어깨 위에 걸려 있소이다!" "문제는 삼은(三隱)이오. 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옥아는 거익(巨翼)을 세 개나 얻게 되는 것이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겠지 만!" 눈이 내리고 있다. 겨울은 이렇게 깊어 가고 있었다. 유황세가의 독술은 지극히 특이했다. 첫째, 그것은 발출하기 위한 보조 도구가 필요하지 않는 독공이었다. 타파의 독공은 환약(幻藥)이나 독물(毒物)을 갖고 독공을 쓰는 데 비해, 유 황세가의 독공은 순전한 내공의 힘을 빌어 쓰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둘째, 유황세가의 독공은 다른 무공과 더불어 시전을 할 수가 있다. 셋째, 유황독술은 내공에 전혀 장애를 주지 않는다. 그리고 독성(毒聖)의 경지를 넘어서 독혼(毒魂)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독 기를 골수 속으로 완전히 감출 수 있고, 호흡할 때에도 정사를 할 때에도 독기를 외부로 흘리지 않는다. 일컬어 기환대독술(奇幻大毒術). 유황귀자는 그것의 마지막 전수자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무옥에게 고스란히 전수해 주었다. "너는 강하다는 수준으로 중단해서는 아니되는 특이한 숙명이다. 너는… 운 명적으로 가장 강해져야 한다!" 스무닷새째 되는 날, 유황귀자는 독공구결을 모조리 전수한 다음 의자에 앉 아 무옥을 바라보고 있었다. 무옥의 낯색은 푸르스름했다. 인광을 덕지덕지 바른 듯한 낯색은 그가 이미 독신(毒神)의 경지에 이르렀 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유황귀자는 무옥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제 보니, 그의 머리는 백발로 회 해 있지 않은가? 어디 그뿐이랴? 소년같던 얼굴에는 주름살이 닭벼슬같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무옥을 가르치는 가운데, 주안술을 잊고 만 것이다. 그가 골수에 지니 고 있던 독기는 무옥의 몸 안으로 태반 전해졌다. 다시 말해, 무옥은 독공을 사 갑자 익힌 사람과 같은 수준의 독기를 기경팔 맥에 간직하게 된 상태인 것이다. "이제… 네게 흡혈화를 전한다! 이것은 바로 노부에게 생명화(生命花)이다. 너는 이것을 복용하면, 노부에게 구결로만 배운 모든 독술을 시전할 수 있 게 된다! 자아!" 무옥이 주저하자. "멍청한 녀석! 노부는 이미 살만큼 살았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복용하 라.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서이다!" 유황귀자는 퉁명스레 말했으나, 그의 어투에는 지극한 정(情)이 담겨 있었 다. 흡혈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독을 품고 있는 한 송이 꽃이다. 독공에 능한 자가 아니라면, 그 향내를 맡는 순간 녹아 버리고 만다. 그 안에는 일만 명을 독살할 분량의 독이 들어 있다. 그것은 독이기도 하 고, 약이기도 하여, 먹고 죽지만 않는다면 내공의 힘으로 소화할 수가 있 다. "어서 먹어라. 계집아이같이 마음이 약한 녀석. 그래, 여기가 어디라고 눈 에서 눈물을 비친단 말이냐? 응석은 그만 부리고, 냉큼 그것을 먹어라!" 유황귀자는 사납게 욕설을 뿌렸다. 눈물. 무옥은 수년 만에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기실, 그는 정은 모르고 살아왔다. 그는 고아로, 마부로, 거대한 방파의 무 사로서 무정하게만 살아왔다. 한데, 지금 그의 눈에서는 그가 잊은 눈물이 굴러 떨어지고 있었다. "사내의 눈물은 용의 눈물이다. 아느냐? 용은 눈물을 보이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유황귀자는 화를 벌컥 내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는 킁킁 콧소리를 해대며 곁방으로 건너갔다. "고약한 녀석! 좋으면 좋다고 할 것이지, 계집처럼 울기는!" 툴툴거리며 다른 방으로 건너가는 유황귀자의 눈에서도 눈물은 흐르고 있었 다. 하나의 혈화(血花). 그것은 입에 들어가는 순간, 끓은 기름이 되었다. 혀를 태우고, 목젖을 태우고, 급기야 그것은 오장육부를 화르르 불사르기 시작했다. "지, 지독하군! 으으…!" 인내력이 인간의 한계 이상인 무옥이라 하더라도, 흡혈화를 복용한 고통만 큼은 참을 수가 없었다. 그는 얼굴이 시꺼멓게 물든 채 뒤로 벌렁 넘어졌고, 일순 그의 몸 주위로 검은 안개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쉬이이이익-! 독무(毒霧). 지독한 독을 품은 독무는 방바닥을 일순 시꺼멓게 태워 버렸다. 돌이건, 나무건, 쇠건, 독무에 닿기만 하면 검게 타 버렸다. 하루… 이틀… 무옥은 꽤 오랫동안 의식을 잃고 있다가는 스르르 정신을 찾을 수 있었다. 제일 먼저 느끼는 것은, 오른팔이 지극히 가볍다는 것이었다. 한철환은 그대로 끼워져 있는 데에도 팔은 지극히 가볍게 느껴졌다. 한철환은 독무에도 녹지를 않았다. 그것의 무게 또한 과거와 마찬가지였다. 하나, 무옥은 정녕 오랜만에 팔의 무게를 느낄 수 없었다. "아아, 나의 내공이 또다시 증가했다!" 무옥은 오른손을 번쩍 쳐들었다. 그의 손바닥은 정말 희고 아름다웠다. 흡혈화의 독은 유황귀자가 직접 전수 한 독기를 모두 불태웠고, 그 덕에 무옥의 용모는 과거의 상태로 돌아온 것 이다. 무옥이 마지막으로 터득해야 하는 절기. 실전무예(實戰武藝)라 불리는 이십팔종절기는 하나하나 가공할 살기를 지니 고 있었다. 이백 년 전, 당시의 거마두들이 중원천하를 피로 휩쓸고 다니며 독보천하 (獨步天下)를 구가할 때 사용하던 절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모든 것은 하나로 통한다. 그것은… 죽음(死)이다!" 유황귀자는 의자에 등을 묻고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진물이 떨어지고 있었 다. 그는 급속도로 늙어 가고 있었다. 무옥의 의지가 강하지 않았더라면, 그에 대한 연민의 정을 느낀 나머지 무 공 수련을 혼란케 되었을 것이다. 실전무예(實戰武藝). 사상 유례가 없는 절기들이다. 본시 중화인(中華人)들은 이익(利益)에 밝은 민족이다. 해서 강호일각의 거두들은 호신(護身)이나 대의(大義)를 위한 무공이 아니 라, 자기 자신의 목적 달성만을 위한 무공을 창안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실전무예. 초식의 구분도 희미하고, 무공의 원류가 무엇인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 나, 그 위력만은 무옥이 알고 있는 백도명문거파의 어떠한 절기보다도 가공 했다. 뇌권참혼(雷拳斬魂). 장(掌)도, 권(拳)도, 수식(手式)도 아니다. 상대는 기수자의 손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벽력으로 파고드는 장기에 가슴이 으스러지고 만다. 그것은 시전되는 찰나, 상대에게 죽음을 준다. 미간흔(眉間痕). 하오문 무사들도 치를 떠는 금단의 무공이다. 그 어떠한 자세로도 시전을 할 수 있고, 한 번 시전이 되면 상대가 죽어야만 거두어진다. 상대는 눈썹 가운데 아주 작은 흔적 하나를 찍힌 채 죽게 된다. 월광혈무도(月光血舞刀). 달빛이 강할수록 위력도 강해지는 살인술이다. 인검인혼(引劍引魂). 기이한 흡물접인수(吸物接引手)로 상대의 병기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상대 의 사혈을 상대의 병기로 파괴하여 상대를 필사시키는 수법이다. 상대를 죽이는 데에는 단 일 장(掌)이 필요할 뿐이다. 상대는 자신이 왜 죽는지도 모르고 죽게 되고, 그의 몸에는 그가 아끼던 그 의 애병(愛兵)이 푹 박혀 있게 된다. 지옥소(地獄笑). 한 번의 아름다운 미소로 상대의 넋을 아득하게 하고, 그 찰나의 순간에 상 대의 목젖에 오리알만한 구멍 하나가 파인다. 허무참백인(虛無斬魄印), 다라비도(茶羅飛刀), 염왕십팔지(閻王十八指)… 이십팔 종의 실전무예, 그것은 지극히 가공할 살인수법이다. 하나, 그 모든 것은 무옥의 우수(右手)에 실려 있는 무궁무진한 잠력(潛力) 이상일 수는 없었다. 봄이 될 때, 무옥은 아무것도 전수받지 않게 되었다. 그는 기관학도해(機關學圖解)와 기문병서(奇門兵書) 이십여 권을 읽어야 했 고… 비(雨)가 처음으로 오던 날, 육은자(六隱者)는 무옥이 보는 앞에서 조 용히 눈을 감았다. 백여 장의 황지(黃紙). 무옥은 그것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기문육가의 절대자들이 죽기 전 그에게 남긴 것은… 수백 권의 서적과 하나 의 검(劍), 그리고 무옥이 쥐고 있는 수백 권의 황지였다. 누런 종이 다발 위에는 문자(文字)와 수자(數字)가 적혀 있었다. <천진(天津) 만보은장(萬寶銀莊), 일백만(一百萬)> <연경(燕京) 천하상행(天下商行) 오십만(五十萬)> <남창(南昌) 무진대표행(武振大 行) 사십육만(四十六萬)> <낙양(洛陽) 건위전방(建威錢房) 이백오십만(二百五十萬)> … 오오, 그것은 바로 전표(錢票)가 아닌가? 천하에서 가장 신용이 좋다는 십오 개 은장의 낙관이 찍힌 전표들은 기문육 가의 전재산이기도 했고, 천하 십오 개 은장이 사실은 기문육가의 소유지라 는 것을 밝히고 있는 증서이기도 했다. 전표 다발 가운데 숫자가 없는 것도 있었다. 그것은 단 하나, 그것은 바로 파천서(破天書)였다. <네게 모든 것을 맡긴다. 네놈은 우리에게 큰 빚을 진 셈이다. 우리들이 네게 바란 것은, 도합 두 가 지이다. 하나는 사대마류(四大魔流)를 없애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언제고 기문육가 를 통합한 하나의 세가… 육합세가(六合世家)를 맡아 우리들의 절기를 대대 손손 이어지게 해 달라는 것이다. 너의 신체는 중원제일의 비밀이고, 중원제일의 병기이다. 제일 먼저 삼은(三隱)을 찾아 봐라. 그들이 살아 있다면 거두고, 그들이 거 둠당하지 않겠다면 가차없이 죽여라! 마교총림 역시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다. 만에 하나, 그들이 마교총림과 연 수(連手)한다면… 중원의 장래가 위태롭다. 검황성은 물론, 천하에 너의 존재를 빨리 알려서는 타초경사(打草驚蛇)의 화근이 된다. 사대마류가 마각(馬脚)을 드러내기 전에는 절대로 너의 모든 것을 밝히지 마라! 그리고 사대마류 중 야월화(夜月花), 단장화(斷腸花), 새북십삼천(塞北十三 天)을 다 합한다 해도 마교총림 이하라는 것을 잊어서는 아니된다. 그들은 가공할 저력(底力)을 지니고 있다. 그들은 패엽혼 휘하에 일 호(號), 이 호(號), 삼 호(號), 비찰(秘察)이 있 고… 그 아래 가공할 점조직이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약하다 여기면 절대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그들과의 싸움에서는 철저한 비밀 유지가 중요하다. 세상은 많이 변화했다. 하나, 피의 윤회만은 변화하지 않았다. 이제 모든 것을 네게 맡긴다. 너는 우리들의 화신(化身)이고, 너는 바로 중 원의 마지막 혼백(魂魄)이다.> 쏴아아… 쏴아아…! 비 뿌리는 소리가 애달프다. 봄비는 사람을 애상(哀傷)에 젖게 한다. 무옥 은 비 가운데에 묵묵히 서 있었다. 그리고 비 가운데에서 장작더미가 타올랐고, 검은 연기가 우막(雨幕) 속으 로 낮게 깔려 가고 있었다. 이백 년 간을 기다리며 살아왔던 중원육혼(中原六魂). 그들은 할 일을 다한 듯, 조용히 타서 재로 화해 가고 있었다. "피의 세월은 너무나도 많은 사람에게 굴복을 강요하게 했다. 그리고 이제 … 세월(歲月)은 내 손에서 조롱받으리라!" 무옥은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쏴아아… 쏴아아…! 눈물처럼 떨어지는 봄날의 이슬비. 장작더미는 새벽이 되어서야 완전히 타 버렸고, 무옥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하늘(天)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황하(黃河)의 상류 지역에서 신광(神光)이 충천(庶天)해 놀랐다던가? 뭇 별이 유성이 되어 떨어져 내렸고, 사람들은 그 모든 것이 혈우천하(血雨 天下)의 조짐이라고 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