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9장 젊은 승부사들 고안애(孤雁崖). 하늘 위에서부터 거대한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 내린 듯한 모습을 하고 있 는 기암거봉이다. 일대에는 폭우(暴雨)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쏴아아… 쏴아아…! 만학천봉을 휘감는 습기 찬 먹장구름과 구질구질하게 퍼부어지는 장마비 가 운데, 그는 서 있었다. 손에는 나뭇조각을 하나 들고 있는데, 그것은 오른손에 쥐어져 있고 왼손은 비수처럼 세워진 상태였다. 팟- 팟-! 손이 내리쳐질 때마다 나뭇조각이 튀어올랐다. 나뭇가지는 차츰차츰 하나의 형상을 이룩하기 시작했다. 옥같이 흰 사내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한 자루 검(劍)이었다. 백포를 걸친 미청년, 그는 고안애 정봉(頂峯)에 서서 일대를 둘러보고 있었 다. 하나의 석상(石像)처럼 서 있는 청년의 눈빛은 지극히 유심(幽深)해 보였 다. 깊이를 모를 연(淵)처럼, 그의 눈에는 너무나도 많은 의미가 침잠되어 있었 다. 하나 맑고 아름다운 눈빛인지라, 세월의 앙금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검황성(劍皇城)이 위태롭다. 아아, 그러나 지금 중요한 것은… 이 곳에서 의 싸움이다! 나는 돌아갈 수 없다. 쌍마류(雙魔流)를 깨기 전에는!" 그는 입술을 가볍게 달싹거렸다. 겉보기는 온화한 기질이나, 목소리에는 강한 패기가 서리어 있었다. "류(流), 그 녀석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을 할 사람 은 그 사람이다!" 무옥은 한 사람의 얼굴을 허공에 그렸다. 아주 어렸을 때에는 작은 아저씨처럼 여겨졌고, 청년이 되면서부터는 의형 으로 여겨졌으며, 약관 나이에 이르러서는 경쟁자로 여겨졌던 한 사람이 있 다. "대사형은 강호에 빚을 많이 졌소. 그리고 내게도 사적으로 너무나도 많은 빚을 지고 있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는 힘이 실리어 있다. 쏴아아… 쏴아아…! 비가 드세게 뿌려진다. 빗소리, 그리고 청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어우러진다. "대사형은 자신의 손으로 빚을 갚아야 하오. 나는 대사형에게 빚을 갚을 기 회를 마련했소. 남은 것은 대사형이 하느냐, 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오. 한 다면, 나는 대사형에게 미소를 보일 것이고하지 못한다면, 미루었던 일 검 (劍)을 대사형의 가슴에 들이박을 것이오!" 쏴아아… 쏴아아…! 빗소리가 애달프다. 그리고 비가 세차지는 가운데, 자야(子夜)로 다가가고 있었다. "그는 올 것이다. 내가 본 그는… 위대한 승부사의 기질을 갖고 있다는 데 에서 나와 비슷했다." 문득 눈길이 허공으로 던져졌다. '그도 나와 같은 심정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그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잔(盞)에 술을 받아 주겠다.' 쏴아아… 쏴아아…! 고안에는 비에 젖는다. '일단은… 그의 곁에 있는 마교의 첩자를 잡아 내야 한다. 그것이 중요하 다.' 한순간, 그의 입가에 신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자시가 임박해졌다는 것을 그는 이미 무사 특유의 시간 감각으로 느끼고 있 었다. 지금, 너무나도 경미한 기운이 근처로 다가서고 있었다. '대단한 은신술이다. 후후… 그 자는 빗물에 자신의 몸을 감춰 가면서 바짝 다가서고 있다.' 미소를 짓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그는 팔짱을 낀 채 먼 하늘만 바라봤다. 쓰으으… 쓰으으…! 아주 가벼운 소리가 흐르고 있으나, 그 소리는 드세게 퍼부어지는 빗소리 가운데 묻히고 있었다. 일순 청년은 입술을 나직이 달싹거렸고, 감정이 별로 없는 목소리가 우중 (雨中)에 메아리쳐 나갔다. "본인(本人)은 아닌 듯하군. 천하의 천마무후가 경쟁자가 두려워, 숨어 다 가서지 않을 테니까!" 대체 누구에게 하는 목소리일까? 그 소리에는 가공할 진기의 힘이 실리어 있었다. 한순간. "모, 모를 일이군. 중원대륙 어디에 그대와 같은 절정고수가 있었단 말인 가?" 서투른 한어가 들려 오며. 휘리리리링-! 비의 장막을 찢으며 덮쳐 드는 그림자가 하나 있었다. 천마행공보(天馬行空步)라는 유가경신술(瑜伽輕身術)을 시전해서 다가서는 사람은 흑포를 걸치고 있었다. 흑포자락은 아주 길어, 서 있기만 해도 옷자락이 땅을 쓸 정도이다. 그런데 흑포인의 옷자락에는 티끌 하나 묻어 있지 않았고, 빗속을 뚫고 다가섰는 데에도 물방울이 묻어 있지 않았다. 눈빛이 흑적색(黑赤色)인 홍안 백발노인. 그의 가슴에는 예도(銳刀)가 한 자루 안기어 있었다. 그는 청년의 위아래를 훑어본 다음, 입을 열었다. "그대가 무후(武侯)를 초빙한 사람인가?" "그렇다." "으음, 생각보다 젊군. 무후의 여정(旅程)을 바꿀 정도로 고강한 자인지라, 백 세 이상이라 여겼는데…" 중얼거리는 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안애 위에 우뚝 서 있는 백의청년은 아주 기이한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첫째, 그의 눈빛은 매우 흐릿해서 무공을 익힌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다. 보통 무공을 익힌 사람은 내공을 갖게 됨에 따라 양쪽 태양혈(太陽穴)이 두 드러지고, 두 눈에서 신광(神光)이 폭사되기 마련이다. 한데, 기다리고 있는 청년의 눈빛은 아주 고요했다. '설마, 내공이 초범입성(超凡入聖)의 경지에 이르러 신광(神光)이 안으로 갈무리지는 오기조원(五氣朝元)의 경지란 말인가?' 흑포인은 거푸 마른침을 삼켰다. 둘째로 기이한 점은, 청년이 목검을 쥐고 있는 자세였다. 그것은 어떠한 검 결(劍訣)도 아니었다. 보통 검을 시전할 때에는 특정한 기수식(起手式)을 쓰기 마련이다. 그리고 무사들은 그러한 검결을 보고 상대의 문파를 추측하게 된다. 한데, 청년이 검을 끌어안고 있는 자세에는 어떠한 특징도 없었다. 마치 검을 모르는 사람이 장신구로 검을 안고 있듯이, 청년은 조금 권태로 워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목검을 끌어안고 있었다. '검법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는 자이거나, 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를 데 가 없이 연마한 자이거나… 둘 중 하나이다.' 흑포인, 그는 새북십삼천(塞北十三天)의 한 사람이었다. 새북서열(塞北序列) 십삼 위(位) 비천수라(飛天修羅). 비천수라는 나이 백이십 세에 달한 자였다. 천마무후에게 한 번 패했고, 마라무존(魔羅武尊) 겁사(劫邪)라는 자에게 한 번 패해 보았다. 그 이외에는 패한 경험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다. 그가 새북서열 십삼 위에 오른 이유는, 무공이 열세 번째이기 때문이 아니 라 나이가 가장 어리기 때문이었다. 쏴아아… 쏴아아…! 빗소리가 커진다. 비천수라는 천천히 입술을 떼어 냈다. "노부는 무후의 명을 받고 온 사람이다!" "…" "무후는… 알아보라 하셨다!" "…" "기다리고 있는 자가 무후가 직접 상대한 자인지 아닌지를!" "훗훗… 달단양이라는 자는 의심이 많은 자로군?" 청년은 웃었고, 그의 웃음은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비천수라는 또 한 번 움찔하고 말았다. '무사라면 많건 적건 냉기를 흘리기 마련인데, 저 청년은 일 점의 냉기도 흘리고 있지 않다.' 비천수라는 조심스레 진결을 외우기 시작했다. 일순, 그의 두 눈의 핏빛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두 개의 혈등(血燈)이 빗속에서 떠오르듯이, 비천수라의 두 눈에서는 무서운 광채가 폭사되어 나 오기 시작했다. 혈광탈백마안(血光奪魄魔眼). 비천수라가 터득하고 있는 안공 중 하나이다. 내공이 약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눈을 보는 찰나 쓰러지고 만다. 번쩍-! 무섭게 폭사되어 나오는 혈광탈백마안. 비천수라는 내공을 구 성(成) 정도까지 끌어올리고, 그의 두 눈은 두 개의 핏빛 야광주로 달아올랐다. 한데, 청년의 눈망울에는 그 어떤 동요도 없었다. 그의 눈빛은 처음부터 끝까지 담담할 뿐이었다. 깊이를 모를 유심함을 가진 심연(深淵)의 두 눈. 비천수라는 그 눈을 오랫동안 직시했다. 그리고. "으으… 으으…!" 그는 언제부터인가 강렬한 심령상의 흔들림을 맛보고 말았다. '눈빛이… 빨아들인다.' 미천수라의 등에는 땀방울이 축축이 맺히기 시작했다. 청년은 흐릿한 눈빛만으로 비천수라의 혈광탈백마안을 제압해 버린 것이다. 일다경(一茶頃). 비천수라는 머리카락이 곤두서게 되었다. '눈알이 타 버리는 듯 뜨겁다.' 비천수라는 눈알이 화끈거림을 느꼈다. 호흡 소리가 거칠어졌고, 모발이 곤두 일어났다. 눈을 감고 싶지만, 이상하 게도 눈까풀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그물에 걸려든 고기 마냥 비천수라는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 었다. 청년의 입가에 다시 미소가 떠올랐다. "그대들의 승부욕을 탓하지는 않는다. 무사라면 누구든 천하제일인좌(天下 第一人座)에 도전해 보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기에!" "으으… 으으…!" "하나, 그대들은 죄를 지었다. 대중원(大中原)에!" "…" "그대들로 인해 천하백도계는 지리멸렬되고 있다!" 청년의 목소리는 매우 강했다. 그의 목소리는 퍼부어지는 빗속을 뚫고 멀리 까지 퍼져 나갔다. "그대들은 알아야 한다. 중원무림계에도 사람이 있다는 것을! 훗훗… 그 말 을 달단양이라는 친구(親舊)에게 전하라!" 청년은 그렇게 말하며 눈에서 신기(神氣)를 흩뜨렸다. 바로 그 순간. 쿵- 쿵- 쿵-! 비천수라는 뒤로 삼 보 물러나며 몸을 바로잡았다. 그는 절정고수와 일 주야(晝夜) 쉬지 않고 겨룬 듯한 내공의 허탈을 맛봤 다. "그대는… 중원의 누구시오?" 비천수라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숙이고 있었다. "나는… 무옥(武玉)이라 한다!" 청년의 입가에는 미소가 다시 화사하게 번졌다. 기나긴 겨울을 인고(忍苦)한 후에야 피어나는 목련화(木蓮花)의 화사함과도 같은 아름다운 미소. 비천수라는 영원히 그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다. 천마무후 달단양. 그는 의자에 앉아 있다. 그의 등 뒤에는 혈천유성(血天流星)이 서 있는데, 그는 커다란 금산(金傘)을 펼쳐 들고 있었다. 천축의 천마무후는 무림계의 인물인 동시에, 남천축(南天竺) 왕가(王家)의 왕자(王子)이다. 혈천유성은 천마무후의 소싯적부터 천마무후를 따랐던 사람이었다. 혈천유성 뒤에는 십일 인(人)이 일렬로 서 있다. 그리고 천마무후 앞에는 비천수라가 무릎 꿇고 앉아 있었다. 비천수라의 얼굴색은 밀랍처럼 창백했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천마 무후의 얼굴빛 또한 희어져 가고 있었다. "놀랍군. 중원에 그러한 무공이 남아 있다는 것이…!" 천마무후의 입가가 일그러진다. 그는 비천수라의 얼굴만 보고도 비천수라가 어떠한 수법에 제압당했다는 것 을 알아차리는 듯했다. "그는 이혼대정진결(離魂大靜眞訣)이라는 것을 썼다. 그것은 너무나도 오랫 동안 실전되었던 절학이다!" 천마무후는 중얼거렸고, 이혼대정진결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을 경악케 했 다. 그것은 바로 불가정종수법(佛家正宗手法) 중 하나이다. 그것을 제대로 익힌 사람은, 소림사의 극소수 선대고승뿐이었다. 한데, 중원계에 그것을 익힌 사람이 나타나다니…? 쏴아아… 쏴아아…! 퍼부어지는 빗속, 비천수라가 오랜만에 입술을 열었다. "그는… 무옥(武玉)이라 했습니다!" "무… 무옥?" "오오, 그럼… 그가 다시 나타났단 말인가?" "그는 우리가 꺾기로 생각했던 사람 중 하나였는데… 우리가 중토로 들어서 기 이전, 강호계를 떠났다고 알려졌었다!" 쏴아아…! 빗발이 장대로 내리꽂힌다. 천마무후는 오랜만에 얼굴에 웃음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 친구에 대한 이야기는 몇 번 들었지. 중원에서 만날 수 없게 되어 실망 했는데, 그 친구를 곧 보게 되다니…!" 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가 신법을 시전하며 떠오르 려 할 때였다. 슷-! 뒷줄에 있던 사람 하나가 급히 천마무후 앞으로 다가섰다. "무후시여! 무옥이 아니라 소림달마(少林達磨) 무당삼풍(武當三豊)이라 하 더라도, 어찌 무후의 적이 되겠습니까?" 긴장된 어조로 말하는 자, 그는 가장 음침한 낯색을 갖고 있는 자였다. 그는 한 쪽 무릎을 세우고 앉아 말을 했고, 천마무후는 일어서려다 말고 주 저앉으며 그를 힐끗 봤다. "월하(月下)! 그럼 자네가 다시 한 번 그를 시험해 보겠는가?" "예!" 힘있게 대답하는 자는 월하였다. 그는 오랫동안 천마왕부(天魔王府)의 충신이었다. 천마무후에 대한 충성심이 가장 강한 사람은 월하였다. "무옥이란 자는 죽었다고 소문이 난 자입니다. 그리고 살아 있다 하더라도, 비천수라를 격파할 정도로 강한 자는 되지 못합니다!" "흠…!" "그는 가짜일지도 모릅니다!" "가짜?" "예, 어떤 자가 그의 무명을 빌리고 있을지 모릅니다!" "…" "속하, 가서 그에게 도전해 보겠습니다. 무후의 거보(巨步)는 그 후 옮기어 져도 괜찮을 것입니다!" "하긴…!" 천마무후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월하는 승낙을 받은 것이 기쁜 듯, 입을 활짝 벌리고 웃었다. "속하, 곧 돌아오겠습니다!" 그는 오체투지(五體投地)했고, 한순간 위로 날아올랐다. 그는 비룡재천무(飛龍在天舞)라는 수법을 발휘해 비에 젖은 허공을 뚫고 날 아올랐다. 하나의 핏빛 선이 그어지듯이, 그는 거의 탄지지간에 중인의 망막에서 자취 를 감췄다. "월하! 그의 무공이 갈수록 느는군." 천마무후는 부하의 무공 수위가 높아지는 것이 기쁜 듯, 고개를 끄덕거렸 다. 월하, 그는 일다경이 지났는 데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이 비는 그쳤고, 비로 인해 감추어졌던 달이 떠올랐다. 이지러진 달이다. 새북의 고수들은 달을 바라보며 눈에서 살광을 흘리기 시 작했다. "설마… 월하가 죽었단 말인가?" "산상(山上)에서는 검기(劍氣)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모를 일이군." 사람들이 긴장할 때. "무옥… 건방진 자로군. 감히 나를 농락하려 하다니…!" 천마무후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는 감정의 기복을 일으키고 있었다. 중원에 나온 후 이렇게 흥분하기는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그가 노여움을 일으키다니…?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그가 감정이 없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다. 한데, 그가 처음으로 수하들 앞에서 희노애락을 표출시키는 것이었다. "좋아, 죽겠다면… 죽여 주지!" 천마무후는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허공은 사다리 디디듯 디뎌 밟으며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안애 위. 그 위에서는 매우 기묘한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타탁- 탁- 탁-! 불똥이 튀어올랐고, 매운 연기가 낮게 퍼지고 있다. 빗물에 축축이 젖은 생 나무 가지들이 검은 연기를 피우며 타오르고 있다. 모닥불 위에는 나뭇가지가 걸쳐져 있고, 가지에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꿰어져 잘 익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 한 사람은 무옥이고, 한 사람은 월하였다. "자네 비둘기를 불에 굽게 되어 미안하군." 무옥은 편한 자세로 앉아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월하는 점혈당한 상태였다. 기이한 것은 그의 옷자락에 비둘기털로 보이는 새털이 묻어 있다는 것이었다. 월하는 점혈되었으나 의식은 잃지 않은 듯 눈을 떼굴떼굴 굴리고 있는데, 겁먹어 떨고 있었다. "제발… 죽여 주시오. 그가 오기 전에…!" 그는 무옥을 보고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글쎄…!" 무옥은 딴청을 부리고 홍소구(紅燒鳩)를 만들고 있었다. 잘 구어지는 비둘기 고기, 그것은 전서구용(傳書鳩用)으로 길러진 몸집이 크고 날개의 힘이 강인한 비합(飛哈)의 고기였다. 무옥의 손에는 철통(鐵筒)이 하나 쥐어져 있다. 그는 그것을 공깃돌을 갖고 장난치듯이 허공에 툭툭 던져 대고 있고, 월하 는 그 때마다 자지러지고 있었다. "오오, 제발… 무후가 오기 전에 나를 죽여 주시오!" 월하, 그는 어이해 몸을 경련시키는 것일까? 구어지는 비둘기와 땀에 젖어 가는 월하의 얼굴, 그리고 허공에는 달이 하 나 휘영청 걸려 있었다. 화려한 달빛은 그의 탄탄해 보이는 두 어깨 위로 떨어져 내렸다. 어딘지 모르게 고독해 보이는 입매가 매력적인 청년. 낭인의 숙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일 년 넘게 천하를 떠돌아다니고 있는 풍운 아. 그는 바로, 검황성의 무옥이었다. 그는 홍소구(紅燒鳩)를 굽다가 피식 웃고 만다. "훗훗… 사람에게는 묘한 특징이 있지. 그것은 텃세라는 것이다. 월하(月 下)라는 늙은 괴물! 그대는 중원을 너무도 조롱했다. 그리고… 꼬리가 너무 길었다." "제… 제발… 나를 죽여 다오!" 월하는 애절히 외치고 있었다. 왜 이리도 겁을 집어먹은 것일까? 월하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 속에서 몸을 떨고 있었다. 천마무후의 충실한 가신(家臣). 그는 천마왕부(天魔王府)라고 불리워지는 천마무후의 고향에서 잔뼈를 굵힌 인물이었다. 천마무후가 총애하고 있는 사람으로, 그는 천마승상(天魔承相)이라는 외호 를 갖고 있을 정도로 천마무후 달단양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다. "나는 그를 안다! 그는 무자비하다. 그는 나를 갈기갈기 찢어 죽일 것이 다!" 월하의 얼굴은 비지땀에 뒤덮였다. 그는 혀를 깨물고 자결을 하려 했으나, 묘하게도 말은 할 수 있으되 혀를 깨물고 자결할 정도로 힘이 남아 있지는 않았다. 무옥은 연환쇄혈수(連環鎖穴手) 절기를 발휘했다. 그것은 기문육가의 절기 도 아니고, 강호백도계의 절기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야월화의 절기였다. 무옥은 야월이 전한 비급을 이미 외운 후였고, 그 중 몇 가지는 능숙히 시 전할 수 있을 정도로 터득한 상태였다. 무옥의 무공은 일취월장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오른팔에서 쇳덩어리를 떼어 낸 후, 그의 잠력(潛力)은 자신도 측량하 지 못할 정도로 깊어져 갔다. "제발… 나를 죽여 주시오! 그가 오기 전에… 제발…!" 월하는 애절히 말하는데, 일순 무옥의 눈빛이 야릇하게 흐트러졌다. '누군가… 가까운 곳까지 다가섰다.' 그는 경미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 조금 거친 호흡 소리이다. 그 소리는 놀랍게도 오 장 안쪽에서 들리고 있었다. '놀랍군. 초감각을 발휘하여 일대를 살피고 있었는데, 나의 이목을 숨기고 이리도 가까이 다가선 자가 있다니…' 무옥은 숨을 천천히 멈추었다. '천하에서 나의 이목을 속일 수 있는 자는 단 셋이다. 패엽혼과 단장화, 그 리고… 바로 천마무후!' 무옥은 힐끗 한 곳을 바라봤다. 주홍색(朱紅色) 전포(戰袍) 자락이 보였다. 대체 언제 날아든 것일까? 탐스러운 흑발을 어깨 뒤쪽으로 드리우고 있는 이십 칠팔 세 가량의 벽안미공자(碧眼美公子) 하나가 서 있었다. 가슴에는 검을 한 자루 안고 있는데, 기도가 특이했다. 부드러운 자세인데, 허점은 전무했다. 그리고 시선(視線)의 방향이 일정한 데에도, 주위에 있는 사람은 그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듯한 묘한 압박감 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다. 바로 천마무후 달단양. 그는 입가를 잔혹하게 일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그답지 않은 일이었다. 월하는 그가 왔다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바로 뒤 쪽에 다가섰다는 것도 모르고 애절하게 외쳐 댔다. "제발… 제발…!" 그의 눈에서는 눈물방울이 굴러 떨어졌다. 순간, 무옥의 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하나의 산(山)이었다. 허 물어질래야 허물어질 수 없는! "후후… 사람인 이상, 죽고 싶지는 않을 텐데?" 그는 천마무후가 나타났다는 것을 모르는 체했다. "물… 물론, 살고 싶소. 하나, 살 길은 없소. 그것을 알기에, 기왕이면 고 통 없이 죽고자 하는 것이오!" "솔직해서 좋군, 월하!" "으으… 그대는 모를 것이오. 천마왕부에 비전(秘傳)되어지는 탄지마혼(彈 指魔魂)의 고문술을!" 탄지마혼의 고문. 그것은 전신 근골을 가닥가닥 쪼개고, 근육을 갈기갈기 찢어 버리는 고문을 말한다. 분근착골(分筋錯骨)이나 착골수혼(錯骨搜魂)을 능가하는 악랄한 고문술로, 그것을 익히고 있는 사람은 천마무후 한 사람이다. 천축무림계의 율법은 중원의 율법에 비해 엄숙하다. 그 곳의 무림계에서는 주종지간의 도리를 지극히 존귀하게 여긴다. "무옥! 그대가 어찌 내가 마교비찰단(魔敎秘察團)에 속하는 사람인지 알았 는지 모르나, 제발… 나를 죽여 주오!" 그는 애절히 말했고, 바로 그 순간. "으드득! 자네가 마교의 사람이라고? 네가…?" 일순, 차디찬 목소리가 달빛마저 얼릴 기세로 울려 퍼졌다. 순간, 월하의 얼굴색은 하얗게 물들고 말았다. 그는 이제서야 천마무후가 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뚜벅… 뚜벅…! 천마무후 달단양은 큰 걸음걸이로 다가섰다. 이십팔 세 승부사, 달단양. 그는 자파의 전통에 대해 지극히 강한 자존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낯색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분노해 있었다. "어쩐지 이상하다 했었다. 최근 들어 무공이 급증한 것도 그러하고, 간간이 내 곁을 뜨는 것도! 그리고 비둘기를 품고 다니는 것도!" 뚜벅… 뚜벅…! 그는 다가섰고, 월하는 멈추고 말았다. 월하, 그는 이중신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마교총림의 한 인물이었다. 비찰이호(秘察二號). 월하는 바로 비찰이호라고 불리는 자였다. 그는 백십 년 전에 천축으로 건너갔다. 당시 그는 소년이었고, 이미 마교총 림에 영원한 충성을 맹세한 상태였다. 그가 맡은 일은 두 가지. 하나는 언제고 천마왕부를 중원으로 불러 내리는 것이고, 또 하나는 천마왕부의 비전무공을 마교총림에 빼돌리는 것이었다. 무옥이 고안애를 택해 천마무후를 부른 이유는, 천마무후 근처에 마교총림 의 첩자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그를 찾아 내기 위함이었다. 월하는 덫에 걸린 셈이었다. 뚜벅… 뚜벅…! 천마무후는 몸에서 살기를 흘리며 다가섰다. "너를 찢어 죽이겠다. 새북의 율법에 따라서! 아니, 나의 율법에 따라서!" 그의 눈에서는 마광이 용솟음쳐 나왔다. "제… 제발…!" 월하는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천마무후의 몸에서 일어나는 한기(寒氣)는 그의 더러운 영혼을 꽁꽁 얼려 버렸다. 월하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낼 때. "후후… 월하는 내 것이다, 달단양!" 갑자기 한 곳에서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무옥의 목소리였다. 그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달단양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되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마교총림의 비찰을 잡기 위해서… 후후… 이 일대에 나의 수하(手下) 천 명을 풀어 놓았다. 그들은 숨도 쉬지 못하고 숨어서, 누군가 전서구(傳 書鳩)를 날리기만을 기다렸었다." 무옥의 손바닥에는 철통이 쥐어져 있다. 그것은 일순 쇳소리를 내며 깨어졌 다. 팟-! 철통이 부서지며 쪽지 하나가 굴러 떨어졌다. 그것은 무옥의 손바닥 위에서 펼쳐졌다. <급히 알립니다, 대총사! 예정대로 남하(南下)하던 천마무후의 여정(旅程)이 돌연한 방해자에 의해 계획에서 변화되었습니다. 뜻밖의 인물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그는 바로 무옥(武玉). 아직 본인인지 확인하지는 못했으나, 그는 자신을 무옥이라고 밝히고 있습 니다.> 아직 먹물도 마르지 않았다. 월하는 무옥과 싸우러 간다며 천마무후 곁을 떠난 직후, 비합전서구를 날렸 다. 그리고 그것도 즉시 화살에 맞아 떨어져 내렸다. 화살을 쏜 사람은 바로 야월화의 살수(煞手). 이들은 이 일대에 드넓게 포 진(布陣)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무공은 새북십삼천에 비해 뒤지나, 그들의 은잠술(隱潛術)과 암 기술(暗器術)은 타파의 추종을 불허한다. 무옥은 천하에서 가장 신비하다는 비찰 중의 하나인 비찰이호를 지극히 치 밀한 함정으로 잡아 버린 것이다. 모든 것은 이미 낙양(洛陽)에서 계획되었다. "나의 수하들과 나는 고생을 많이 했다. 너희들의 꽁무니를 따라다니며 금 은자(金銀子)도 많이 썼고…후후… 시간도 많이 축냈다." "으음…!" 천마무후는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그러나 그도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그의 안색은 빠른 속도로 정상을 회복 하고 있었다. "그럼… 본인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그의 한어(漢語)는 뜻밖에도 뚜렷했다. 그는 왕족다운 기품을 지니고 있는 자였다. 어렸을 때부터 절대자로 길러진 인물. 그는 무옥과는 지극히 대조적인 과정 을 밟아 오늘에 이르렀다. 한데, 두 사람의 눈빛은 묘하게도 비슷했다. 유심(幽深)하고 흐릿하다는 데에서… 달빛이 천마무후의 목소리로 인해 깨어진다. "황금을 바라는가? 바란다면 백만 냥(兩)을 지금 지불하겠다." "천만에, 그 정도 소액은 내 주머니에도 있다." "거만하군? 백만 냥을 소액이라니?" "후후… 거만한 것은 아니다. 월하라는 자를 잡기 위해 내가 투자한 것이 너무나도 거대하다는 말을 하고 싶을 뿐이다." "그럼… 월하의 몸의 대가로 무엇을 바라지?" "그것은 한 가지 약속이다." "약속?" "그것은… 그대가 내게 꺾인 후, 말해 주겠다." 순간. "푸하하… 본인을 꺾은 후 이야기하겠다고? 그럼 그대의 말은 영영 들어 보 지 못하겠군!" 천마무후는 앙천대소를 터뜨렸고. "내가 월하를 몇 초에 제압했는지 안다면, 그렇게 크게 웃지 못할 텐데?" 무옥은 여전히 빈정거렸다. "…!" 천마무후는 웃음소리를 멈춘 다음, 월하를 바라봤다. "나를 보고 말하라!" 그의 눈에서는 새파란 섬망(閃芒)이 강하게 뻗쳐 나왔다. 다른 사람은 몰라 도, 월하는 그 눈빛을 안다. 마교총림의 제자라고는 하나, 인생의 대부분을 천축에서 보낸 월하는 천마 무후의 기질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눈빛을 받자, 고개를 푹 떨구며 입술을 열었다. "속하는… 여기 내려서는 순간, 제압당했습니다." "어떻게?" "모릅니다." "모, 모르다니…?" "대체 어떤 초식으로 제압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여간 내려서는 순간, 이런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럼 일 초(招)도 되지 않는단 말이로군?" "예." 월하는 구슬땀을 흘렸다. 그는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다. 구파일방의 장로급 고수도 월하 의 이십 초를 막기 힘들다. 그리고 그는 경공이 지극히 뛰어난지라, 그보다 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를 일 초 안에 제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데, 그는 상대의 손도 보지 못하고 제압을 당한 것이다. 천마무후는 매우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웃지도, 찡그리지도 않았 다. "중원의 하늘(天)은 역시… 높군?" 그의 입가에 번지는 신비한 파문은 무옥의 그것과 비슷했다. "중원에 오기 전, 중원의 무공에 대한 것을 연구했었다. 결과, 중원의 무공 중 가장 강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천 년 전에 실전된 것으 로, 심극검도(心極劍道)라 했다." 그의 입매가 묘하게 풀어진다. 그는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후후… 드디어 그것을 보는 행운을 만났단 말인가?" 그는 역시 뛰어난 자다. 그는 월하가 일 초도 받아 내지 못하고 제압당했다 는 한 가지의 사실만 갖고도, 무옥의 무공 비밀을 정확하게 알아봤다. 심극검도는 심검류(心劍流)의 일원이라 할 수가 있었다. 그것은 천 년 넘게 실전이 되었다가, 무옥으로 인해 세상에 나타났다. 무옥은 천마무후의 말을 듣고는 피식 웃었다. "만에 하나, 그대가 지금 내 앞에 있는 괴팍하고 무정한 천재가 아니라 시 시한 자였다면… 나는 실망했을 것이다. 중원이 너무나도 허술하게 패했다 는 사실 아래." "칭찬치고는 묘하군." "그대는 뛰어난 무사다. 그 점에 그대를 존경한다. 하나, 중원을 찾은 시기 가 잘못되었다. 그대는 적어도 나를 생각했어야만 했다. 그대보다 고집에 있어서는 뒤지는 바가 없는 무옥이라는 자를!" 무옥의 미소는 인간적이었다. 천마무후 역시 인간적인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묘하게도 두 사람은 하나로 통하고 있었다. '적이나, 아끼고 싶은 자다.' '아아, 이런 자를 이제야 본다는 것이 애석한 일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용(龍)이 용을 알아보듯, 기질이 비슷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심령적으로 하나로 통할 수 있었다. |
첫댓글 재미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