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에 많이 익은 라임이죠? 여기에 나오는 이름 또한 낯설지 않은 것입니다. ‘잭과 질’은 ‘콩쥐, 팥쥐’나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짝을 이루는 이름으로 많이 쓰이거든요. 저는 예전에 이 라임을 읽으면서 어쩌자고 우물이 언덕 위에 있을까 궁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언덕 위에서 우물을 파자면 더 힘들었을텐데 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조사를 하다보니 그 위문점이 좀 풀리는 구절이 있었어요. 이 라임은 그 유래에 대해서도 구구절절 설명이 많습니다. 영국, 프랑스, 스칸디나비아까지 그 배경도 다양하네요. 그럼 한번 여기서 하나하나 보따리를 풀어보겠습니다.
먼저 영국에서는 이 라임이 자기네 역사에 나온 사건을 풍자한 것이라고 합니다. 17세기, 찰스 1세는 액량, 즉 액체의 양에 매겨지는 세금을 더 매기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의회에 의해 거부당했죠. 같은 돈을 내고도 맥주를 덜 마시게 된 시민들의 반발도 거셌겠지요? 그러자 왕은 머리를 써서 Jack(1/2 파인트 혹은 반컵)만큼의 양을 줄이되 세금은 그대로 내도록 했답니다. 왕이 의회의 비토에도 불구하고 자기 뜻대로 세금을 올린 셈이죠. 영국의 1 파인트 맥주잔은 아직도 1/2 파인트를 나타내는 선 위에 crown(왕관)이 새겨져 있습니다. “Jack fell down and broke his crown"이란 액체의 양이 줄었음을 나타냅니다. "and Jill came tumbling after"에 나오는 Jill은 사실 gill로 1/4 파인트를 나타냅니다. 1/2 파인트를 나타내는 Jack의 양이 줄었으니 당연히 1/4 파인트를 나타내는 gill의 양도 줄었겠죠? 그래서 Jill도 같이 굴러 떨어졌다는 구절이 나온 것입니다. 찰스 1세가 결국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사형을 당함으로써 왕권이 약해졌음을 생각해본다면 굴러 떨어진 것은 왕권 역시 마찬가지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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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다이크가 그린 찰스 1세의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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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는 또다른 유래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15세기, 영국 남서부에 있는 서머싯 주(Somerset) Kilmersdon에는 잭과 질이라는 커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연인들이 둘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으면 즐겨 찾던 언덕이 있었다고 하죠. 질은 잭의 아기를 가졌는데 몇 개월 후 잭은 사고로 커다랗고 둥근 돌에 부딪혀 죽고 말았답니다. 충격을 받은 질도 잭이 죽은지 이틀만에 아기를 낳고 죽고 말았답니다. 이 마을에 가보면 그 두 젊은 연인이 즐겨찾던 언덕과 우물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언덕 길에는 라임이 한줄씩 새겨진 표석이 줄지어 서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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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and Jill 언덕>
북유럽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를 보세요.
1765년판 “Mother Goose's Melody"에 나오는 목판인쇄 그림을 보면 소년과 소녀가 아니라 두 소년이 언덕을 올라가고 있답니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의 전설에 따르면, 한 아버지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Vidfinn이었습니다. 그에게는 Hjuki와 Bil이라는 두 아이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아이들을 벌꿀술이 나오는 분수로 심부름을 보냈습니다. 혹은 우물에 가서 물을 길어오라고 시켰다는 설도 있답니다. 그런데 달의 신이 이 아이들을 납치하는 바람에 달이 만월이 되면 이 아이들과 장대 끝에 달린 통이 보인다고 합니다. Hjuki란 고대 노르웨이어 인데 'Juki'로 발음된답니다. 이 이름이 변해서 Jack이 되었고, Bil은 Jill로 변했다는 주장이죠.
1947년 출판된 “신화와 제례의식(Myth and Ritual)”을 쓴 루이스 스펜스(Lewis Spence)에 의하면 이 라임에선 고대의 신비로운 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고 합니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물을 길어오려고 언덕 꼭대기까지 기어오르진 않을 거라는 겁니다. 그렇다면 그런 수고를 감수하고 길어오는 물이라면 특별한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물임에 틀림없겠죠? 바로 이슬처럼요. 우리 민간신앙에서도 이슬을 모아 차를 끓이거나 세숫물로 쓰는 이야기가 있는데 서양에서도 이슬의 신비한 힘을 믿었나 봅니다.
프랑스에서는 또 다른 이야기를 기원으로 내세웁니다. Jack은 프랑스 대혁명으로 단두대에서 사라져간 루이 16세를, Jill은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라는 설입니다. Jack이 아래로 넘어져서 머리(crown: 왕관)가 깨졌다는 말은 루이 16세가 왕위에서 쫓겨났음을 의미하며, 질이 따라서 굴러왔다는 것은 마리 앙투아네트도 남편과 같은 상황에 처했음을 가리킨다는 것이죠.
좀더 자세히 설명을 해볼까요?
루이 16세는 그의 조상이었던 위대한 왕들에 비해 약하고, 무지하며, 산만한 경향이 있었습니다. 1770년 그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주 마리 앙투아네트와 결혼했는데 그의 왕비는 왕의 결정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4년 뒤인 1774년 이 부부는 프랑스의 왕과 왕비로 즉위합니다. 바로 ‘went up the hill'을 나타내는 부분입니다.
1770년대 중반, 프랑스는 경제적인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무거운 세금으로 인해 왕가에 대한 불만이 대단했지요. 민중의 노여움을 달래기 위해 루이 16세는 가장 반대가 심한 세금은 줄이고 재정적, 사법적 개혁을 시작했습니다. 불길을 끄기 위한 물 한 동이를 길어온 셈입니다. 바로 ‘to fetch a pail of water'에 해당된답니다.
하지만 프랑스 부르조아 계급은 여기에 반대했고, 1789년 7월 파리 시민들은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왕과 왕비를 비롯한 왕족을 튈르리 궁전에 가둡니다. 바로 ‘Jack fell down'에 해당하는 대목이죠.
1792년, 국민 공회(National Convention)는 프랑스를 공화국으로 선포하고 왕은 반역죄로 기소되어 사형판결을 받습니다. 그리고 1793년 1월 21일 단두대에서 사형당했습니다. 바로 ‘and broke his crown'에 해당되는 사건입니다.
<루이 16세 처형장면>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사형선고를 받습니다. 그녀는 1793년 10월 16일에 처형되었죠. 바로 'and Jill came tumbling after'란 구절처럼 루이 16세의 뒤를 따라간 것입니다. 잘려진 머리가 굴러가는게 연상되서 좀 끔찍하네요.
아하, 그런데 이 그럴듯한 설명에는 아쉽게도 빠진 나사가 있습니다. 바로 1760년대 중반, 존 뉴베리가 전해 내려오는 시를 모아 “Mother Goose's Melody"를 출판했는데 그중에 Jack and Jill이 있었다는 거죠. 프랑스 대 혁명이 1789년에 벌어진 일이니 이건 도저히 루이 16세의 이야기일수가 없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Jack and Jill 이야기는 프랑스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을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1697년 샤를 페로(Charles Perrault: 프랑스의 유명작가이자 비평가)는 8개의 유명한 전래동화를 모은 "거위 아주머니 이야기(Contes de ma mEre l'Oye)"를 발표했습니다. 영어로 번역하자면 바로 "Mother Goose 이야기”가 됩니다. 이 책은 1729년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존 뉴베리가 같은 제목(Mother Goose)를 쓴 것으로 보아 Jack and Jill 이야기도 프랑스에서 온 것일수 있다는 것이죠. 비록 루이 16세는 시기적으로 나중이라 이 라임의 유래가 될 수는 없겠지만요.
이 라임은 19세기 초기에 15절까지 늘어났습니다. 2절과 3절도 감상해 보세요.
Up Jack got, and home did trot, 잭은 일어나 집으로 뛰어갔네. As fast as he could caper, 가능한 한 빨리. To old Dame Dob, who patched his nob 돕 부인은 잭의 머리에 붙였지. With vinegar and brown paper. 식초와 갈색 종이를. When Jill came in, how she did grin, 질이 들어와선 웃어버렸지 To see Jack's paper plaster; 잭이 종이 붙인 모습을 보고서, Dame Dob, vexed, did whip her next 성이 난 돕 부인은 질을 매질했네. For causing Jack's disaster. 잭을 다치게 했다고.
이런, 같이 언덕을 구른 것도 억울한데 웃었다고 매까지 맞았으니 질 기분이 영 별로였겠네요.
그건 그렇고 치료에 왜 식초와 갈색 종이를 썼을까요? 식초와 갈색종이는 DMSO(dimethyl sulfoxide)라는 물질을 만들어내는데 이 DMSO는 빠른 진통제 역할을 하면서 두통을 멈추게 하고, 삔 곳이나 화상의 신속한 회복을 돕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식초와 갈색종이를 '기적의 약'으로 믿는 사람도 있었다네요.
이 짧은 라임속에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있다는 것이 참 흥미롭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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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스칸디나비아의 신화에서 Hjuki와 Bill 이라는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는 동요는 보름달의 특징을 다루고 있습니다. 두 소년이 우물에 물을 길러 올라 갔다가 Mani라는 달의 신에게 잡혀, 보름달이 뜨면 양동이를 들고 있는 두 아이가 양쪽에 보인다는 이야기입니다. |
Sylvia Long's Mother Goos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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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영국의 Henry 8세 때 막강한 힘을 가진 두 사제의 이야기라고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1518년 추기경과 주교인 두 사람은 프랑스와 로마 사이에 일어난 분쟁을 평정하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하여 전쟁이 일어났고, 추기경은 프랑스와 싸우기 위해 영국의 군대를 보내면서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한다는 명목으로 세금을 올리게 되었습니다.두 지도자를 싫어했던 영국 백성들이 그들을 비꼬기 위해 만들어 낸 동요라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