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술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외워뒀다가 가끔 술 자리에서 장난 삼아 지인들끼리 주거니 받거니 하던 시이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삼국지라든가 수호지 같은 영웅호걸이 등장하는 이야기에는 문무를 겸비한 장수가 술 또한 즐길 줄 아는 모습으로도 많이 묘사됩니다. 다만 시기가 동계 올림픽 시즌인지라 TV로 내내 눈과 빙판을 보던 차에, 추우면 보드카 마신다는 러시아 사람들 얘기가 생각났고 그런 참에 '격투기와 술' 이라는 소재를 떠올려 봤습니다. 술과 음주를 아무리 멋있게 포장한다 한들 그 사실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라비아 광고에서 남자 모델이 와이셔츠의 소매를 깔끔히 걷어 올리고선 깨끗한 얼음이 담겨진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이든, 아니면 친구들과 함께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즐거운 자리에서의 소주를 마시는 장면이든 스포츠 선수, 특히 격투기 선수에게 술은 독입니다. 독이라고 단언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얼핏 생각했을 때 안주 안 먹고 술만 마시면 살이 안 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술 자체의 칼로리가 상당히 높습니다. 지방과 맞먹을 정도로 칼로리가 높은데다 다른 영양소는 없기 때문에 Empty Calorie라고도 합니다. 의미는 간단합니다. 아무 것도 없이 오로지 칼로리만 높다는 의미인데 칼로리가 높은 음식은 상대적으로 다른 영양소가 어느 정도는 들어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술은 일체의 단백질이나 비타민 등이 없습니다. 행여 있다고 하더라도 술 자체의 칼로리가 너무 높기 때문에 감량해야 하는 종목의 선수 입장에서는 피해야 합니다. 술 자체도 고 칼로리인데 함께 먹는 안주가 있다면 그야말로 몸에 그대로 지방을 쌓아가는 셈이지요. 여기까지 하면 그나마 낫습니다만 술이 들어가면 그 때부터는 비타민과 미네랄 등의 흡수를 오히려 방해합니다. 스포츠 활동은 왠지 심장이라든가 근육이 가장 크게 관계될 것 같지만 몸의 피로를 해독하는 간의 기능은 결코 빠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술은 이 간을 공격하게 되어 결국 지방간부터 시작해 알코올성 간염 및 간경변, 심지어 간암으로까지 진행될 수 도 있습니다. 물론 운동 선수들이야 대부분 젊은 나이고 운동으로 심신이 단련되어 있으므로 상당히 버틸 수 있지만 그것도 한 때입니다. 20대의 청년과 40대의 장년이 측정 체력이 동일하다고 해도 ‘회복력’ 에서는 차이가 납니다. K-1의 어네스토 호스트도 UFC의 랜디 커투어도 동일하게 말하는 것이 바로 회복력입니다. 청년기에는 그 회복력이 좋기 때문에 부상이나 강훈련에 대한 회복 뿐 아니라 혹시 전날 과음을 한다 하더라도 다음 날 훈련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두주불사해도 거뜬하게 다음 날 로드웍을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쯤 되면 청년기에서 관리를 어떻게 했느냐가 장년기의 시즌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술을 입에 안대는 것이 낫고 그게 안된다면 술을 즐기되 적당한 선에서 절제하고 여운을 남길 줄 아는 지혜를 함께 배우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관대하느냐? 예를 들어 형사 사건마저 술에 만취하여 사고를 친 경우에도 알콜로 인해 인지 상황이 좋지 않아서, 라는 식으로 처벌을 조금 경감해주기도 합니다. 물론 최근 이것에 관해 법 적용을 달리 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어서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옆 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밤 11시가 되면 거의 대부분의 술집들은 문을 닫습니다. 긴자니 가부키초니 하는 우리에게 알려진 번화가들을 가봐도 마찮가지인데, 고급 쿠라부(클럽)도 2시가 되면 모두 폐장합니다. 간단하게 마실 수 있는 술집들은 모두 11시 정도면 문을 닫지요. 지하철 시간에 맞춰 마시고 일어나는 문화도 있지만 주택가에 있는 선술집도 빨리 문을 닫는 건 마찮가지입니다. 물론 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있긴 합니다만 우리나라처럼 주택가에 술집이 즐비한 정도는 결코 아닙니다. 게다가 일단 술을 살 수 있는 가게 자체가 10시나 11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나중에는 맥주 한 병을 사려고 해도 살 곳이 없습니다. 결국 더 마시려면 굳이 멀리까지 나가던가 아니면 미리 사뒀다가 집에서 마실 수 밖에 없지요. 또 고기집을 가든 회집을 가든 술은 무조건 있고 어지간한 식당들은 저녁이면 대부분 안주류를 판매하기 때문에 술을 마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끝나면 그냥 ‘술을 많이 마시는 국민이겠거니’ 하겠습니다만 술을 파는 식당이 아니라 본격적인 술집이 또 많습니다.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하는 일본 사람들은 밤늦게까지 왁자지껄한 술문화에 대해서는 대부분 깜짝 놀랍니다. 그 정도로 우리 사회가 술에 관대하며 술과 가깝고 술을 마시는 사람이 많습니다. 운명적으로 격투기 선수라는 존재는 좋은 이유에서건 나쁜 이유에서건 그를 가까이 두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으며 그 실력을 동경하는 이도 많아 흔히 말하는 회식 자리에 초대받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격투기는 야구나 농구 같은 팀 스포츠가 아니므로 결국 자신의 몸은 자신이 돌봐야 하고 자신이 알코올로부터 지켜야 합니다. 격투기 선수에게 있어서 가장 최악의 이웃은 다름 아니라 선수에게 술을 마구 권하고 술자리에 자주 부르며 함께 있으면 선수를 믿고선 타인들과 트러블을 일으키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격투기 선수는 언제나 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조절할 줄 알고 절제할 줄 아는 술의 즐김은 긴 인생의 낭만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단지 자신의 건강과 미래를 축내고 때론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맹독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