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3차 산행] ♣ 낙동정맥 양산 천성산 (1)
▶ 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 [산행 코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부면 대석리 ▶ 홍룡사 주차장(11:40)→ 홍룡사[홍룡폭포]→ <오름길>→ 능선→ 화엄벌 억새밭→ 천성산[원효봉, 922m]→ 원효암→ 편백나무숲→ 원효암 계곡→ 주차장(원점회귀, 16:40)→ 상경→ 귀경(오후 10시)
* [프롤로그] — 2018년 가을, 멀쩡한 하늘 아래 염치없이 벌이는 굿판
시월,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연일 깨끗하고 청정(淸淨)한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파란 하늘, 물고운 단풍이 그윽한 계절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하늘은 티 없이 맑은 기운으로 충만하고 눈부신 햇살은 대지의 결실을 알차게 한다. 비록 세상이 온전하지 않아도 자연의 운행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늘 사람이다!
작금 주사파가 장악한 대한민국의 정치상황은 너무나 야비하고 독선적이다. 제 정신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국정의 난맥상이 벌어지고 있다. 정권의 코드가 아니면 별 볼일이 없는 국회와 국민, 유엔과 국제사회의 분위기와는 반대로 가고 있는 북핵 문제, 국가와 국민 자존의 정체성을 외면하고, 오직 김정은에게 충성을 다하는 종북주의, 그래서 돌아 온 건 "아니, 지금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 갑네까?" 반강제로 평양에 끌려간 재벌 총수들의 수모(受侮)…, 국가와 국민생존의 안전핀을 뽑아낸 남북군사합의, 그리고 제조업의 부진, 주가 하락, 수출 부진 등 암울하게 추락하는 국가경제, 소위 소득주도경제정책으로 말미암아 더욱 심화된 양극화현상과 늘어나는 젊은 실업자들, 권력의 아류 집단이 장악한 통속 언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것만 내세우는 여론과 통계, 가짜뉴스로 세상을 농단하면서 바른 소리도 가짜뉴스의 굴레를 뒤집어 씌우는 후안무치, 권력의 비호(庇護) 아래 오직 ‘우리만’의 욕심을 채워나가는 노조 집단, 나라(기업)의 배는 자꾸 기울어 가는데, 이 가을 그 흔들리는 배 위에서 ‘우리들의 천국’을 구가하며 자기들의 이욕만을 챙기기 위해 갖은 행패를 부리고 있다. 그 욕망의 비린내가 진동을 한다. 그리고 살벌하다. 검찰과 경찰, 사법부까지 치밀하게 조직된 권력의 ‘갑질’이 도처에서 칼날을 번뜩이고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영국의 사회학자 ‘존 에머릭 액턴’의 말이다. 권력의 칼을 잡은 칼 막스의 철 지난 후예들, 무소불위의 칼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칼에는 양날이 있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고, 절대 부패는 절대 패망한다는 사실이다.
* [끊임없는 도전과 열정의 산악인 김창호 대장] — 그리고 그와 함께 희말라야의 넋이 된 사람들 …
아아, 그런데 이 아름다운 시월, 가슴 아픈 비보(悲報)가 날아들었다. 대한민국의 위대한 산악인 김창호(金昌浩) 대장이 희말라야에서 조난을 당한 것이다. 지난 2013년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 무산소 등정에 성공한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한국인 히말라야 원정대 5명이 며칠 전 10월 12일 밤(네팔 현지시각) 해발 3500미터 베이스캠프에서 갑자기 몰아친 눈폭풍에 휩쓸려 사망했다. 지난 10월 13일 대한산악연맹과 AFP에 따르면, 네팔 다울라기리 구르자히말(해발 7,193m) 등반에 나선 김창호 대장을 비롯한 한국인 원정대 5명과 같은 베이스캠프에 있던 네팔인 4명을 포함, 모두 9명이 희생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지난 10월 13일 네팔 신문에 실린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의 모습.
왼쪽부터 임일진 감독, 김창호 대장, 이재훈 대원, 유영직 대원
김창호 대장은 히말라야 무산소 알파인 스타일로 산에 오른, 아시아 최고의 알피니스트이다. 김 대장이 이끄는 이번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는 지난달 28일부터 구르자히말 남벽 직등 신(新)루트 개척에 나섰다. 다음 달 11월 11일까지 45일 일정으로 출정했다. 네팔의 서북쪽에 위치한 다울라기리, 구르자히말 남벽은 수직고도가 3,000m가 넘는다. 아직 단 한 번도 인간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은 난벽(難壁)이다. 김창호 대장은 이곳에 한국인의 힘으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다 유영직(51) 장비담당, 이재훈(24) 식량의료담당, 임일진(49) 다큐영화 촬영감독 등 대원 3명과 정준모(54) 한국산악회 이사가 함께 생(生)을 마감했다.
김창호 대장은 한국의 대표적인 '등로주의(登路主義)' 산악인이다. 이미 개척된 루트를 따라 정상에 오르는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달리,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는 것에 의미를 뒀다. 김 대장은 히말라야 14좌 무산소 완등에 도전하는 과정에서도 틈틈이 사람의 발이 한 번도 닿지 않은 미답봉(未踏峯)에 눈을 돌렸다. 파키스탄 바투라2봉(7762m, 2008년), 네팔 힘중(7140m, 2012년) 등은 김 대장이 세계 최초로 정상을 밟은 산이다. 그가 세계 최초로 오른 산만 3곳이고 8개의 새 루트를 개척했다.
김 대장은 2012년 네팔의 ‘힘중’을 등정해 '산악계의 오스카'로 불리는 ‘황금피켈상 아시아’ 부문상을 받았다. 지난해엔 강가푸르나 남벽 새 루트 개척으로 ‘황금피켈상 심사위원 특별상’도 받았다. 그는 2006년 가셔브룸 1봉(8,068m)부터 2013년 에베레스트(8,848m)까지 히말라야 8,000m급 14곳을 무산소로 완등(完登)했다. 특히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Everest) 등정 때는 해발 0m인 뱅골만 바닷가에서 150km 카약을 타고 시작해, 자전거로 인도와 네팔의 험로 1,000여㎞를 달렸다. 그리고 베이스캠프까지 150km 걸어서 이동한 다음, 산소통 없이 정상에 올랐다. 이런 여정은 에베레스트 등정의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내 첫 기록이자 세계 등반사에서 흔치 않은 쾌거였다. 하지만 다음 날 새벽 함께 내려오던 후배가 정상 아래 7950m 캠프에서 숨졌다.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고 버티다 목숨을 잃은 것이다. 그 높이에선 산소량이 평지의 40%밖에 안 된다. 그는 무산소 등정을 지키려는 후배를 못 말린 죄책감에 내내 시달렸다. 올해 마흔 아홉의 김창호는 명예와 상업성에 눈을 돌리지 않는 그야말로 '순수한 산사나이'였다. 높이 오를수록 더욱 겸허한 삶을 살아온 김창호는 참으로 진정한 산악인이다.
김창호는 2007년에도 에베레스트 정상 직전 캠프에 있었다. 무전기에서 근처 캠프에서 자던 박영석 원정대의 대원 둘이 추락사했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김 대장은 정상 공격을 포기하고 시신 수습을 돕기 위해 철수했다. 2011년 10월 한 해전에 안나푸르나에서 실종된 박영석 대장을 찾기 위해 에베레스트 도전을 늦추고 네팔 행을 자원하기도 했다. 박영석은 2001년 히말라야 14좌(座)를 완등한 한국 산악계의 전설이었다. 수색 작업에 나선 김창호는 절벽을 오르다 로프가 빠지는 바람에 큰 사고까지 당할 뻔했다. 시신을 찾지 못한 박영석, 강기석, 신동민은 아직 안나푸르나 깊은 설곡(雪谷)에 잠들어 있다. 세 사람의 영혼을 기리는 추모비가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ABC)에 있다.
이번 원정에서 장비를 담당한 유영직(51)씨는 김창호 대장과 같은 고향, 경북 예천 출신이다. 그는 지난달 추석 당일인 24일 자기 페이스북에 근황을 알렸다. 유 씨는 “도전하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즐겁고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라고 적었다. 이 메시지는 유 씨의 마지막 인사가 됐다. 이번 원정대 중 최연장자인 유씨는 지난 2008년 인도 쉬블링(6,543m), 2011년 네팔 마칼루(8,463m), 2013년 네팔 아마다블람(6,859m) 동벽 신루트를 개척 등반한 베테랑 산악인이다. 올해 5월엔 히말라야 임자체(6,189m, 일명 아일랜드피크) 등반에 성공하기도 했다. 유 씨는 늘 그렇게 도전하는 산악인이었다. 2남3녀 중 셋째인 유 씨는 미혼으로, 거동이 불편한 80대 어머니를 홀로 모셔왔다. 작년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뒤부터는 주말마다 산에 오르는 것이 그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한다. 평소엔 목공 일을 다니며 어머니 생계를 책임졌다.
1969년 경북 예천에서 태어난 김창호 대장은 서울시립대 무역학과 입학 후 우연히 산악부에 입회하며 '산사나이'가 됐다. 김 대장은 뛰어난 친화력으로 선후배 산악인의 존경을 받았다. 그는 받은 상금이나 후원금은 늘 후배들 원정기금으로 쾌척했다. 그는 서울시립대 산악부 4년 후배인 아내와 세 살짜리 딸(단아)을 두고 있다. 김 대장은 이번 원정에 앞서, 유라시아 원정을 함께 한 대원들과 만나 단아 사진을 보여주며 "내 가장 큰 행복이다. 돌아오면 가족 셋이 '캐나다 유콘강으로 카약 타러가자'고 약속했다"고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 그 꿈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포기를 모르던 '영원한 개척자'는 결국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히말라야의 별이 되었다. 김창호 대장과 그리고 함께 유명을 달리한 분들! 삼가 명복을 빈다!
* [오늘의 산행지 ; 양산 천성산] — 낙동정맥의 끝자락, 양산의 북동쪽에 있다
오늘의 산행지 양산(梁山)의 천성산(千聖山)은 낙동정맥의 끝자락에 있다.『산경표(山經表)』에는 원적산(圓寂山)으로 표기되어 있다. 낙동정맥은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백두대간의 태백 구봉산(九峰山:太白弟)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와 저 부산 다대포(多大浦)의 몰운대(沒芸臺)에 이르는, 총 길이는 370km 산줄기를 말한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낙동정맥은 백병산(白屛山)· 백령산(白嶺山)·청송 주왕산(周王山)·주사산(朱砂山)·운주산(雲柱山)·사룡산(四龍山)·단석산(斷石山)·가지산(加智山)·취서산(鷲捿山)·양산의 원적산(圓寂山)을 경유하여 부산의 금정산(金井山)을 거쳐, 몰운대로 이어진다. 그 산줄기는 낙동강(洛東江) 동쪽에 위치하는데, 그 산맥의 동쪽으로 동해안의 울진·영덕·포항·경주·울산·부산이 있고, 서쪽은 태백·봉화·영양·청송·영천·경산·밀양·양산·김해 지역이다.
* [가을 ; 양산 천성산] — 화엄벌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는 …
오늘의 산행지 천성산(千聖山)은 ‘영남의 알프스’로 알려진 <가지산도립공원> 구역 내에 있는 해발 922m의 부드러운 토산(土山)이다. 천성산은 예로부터 깊은 계곡과 폭포가 많고, 또한 경치가 빼어나 금강산의 축소판이라고 불리었다. 천성산의 유래는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천 명의 대중을 이끌고 이곳에 이르러 89암자를 건립하고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하여 천 명의 대중을 모두 득도하게 한 곳이라 하여 천성산(千聖산, 천 명의 성인)이라 전해진다.
양산시 중앙부를 남북으로 뻗은 정족산(鼎足山) 줄기의 지맥에 해당하는 데, 이 산줄기에 따라 양산시가 동·서로 갈리며, 회야강(回夜江)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남서쪽 골짜기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는 산을 원효산(元曉山)이라 하였는데, 양산시에서 이전의 원효산을 천성산 주봉(主峰)으로 하고, 이전의 천성산을 천성산 제2봉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가지산, 운문산, 신불산, 영축산과 함께 영남 알프스 산군에 속한다. 원효암을 비롯하여 홍룡사(虹龍寺), 성불사(成佛寺), 혈수폭포(血水瀑布) 등의 명승지가 있다. 제2봉의 북서쪽 사면에는 통도사의 말사(末寺)인 내원사(內院寺)가 있다.
또한 천성산에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화엄늪과 밀밭늪이 있다. 이곳은 희귀한 꽃과 식물(끈끈이 주걱)등 곤충들의 생태가 아직 잘 보존되어 있어 생태계의 보고를 이루고 있다. 또한,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꽃이 만산홍을 이루고, 가을이면 긴 억새가 온 산을 뒤덮어 환상의 등산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그리고 이곳 정상은 한반도에서 동해의 일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여, 전국에서도 해돋이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 [산으로 가는 길] — 경부고속도로 청주I.C-영천고속도로를 타고, 양산에 이르다
‘이른 아침’ (07:00), 서울의 군자역(능동)을 출발했다. 오늘의 산행지는 멀리 경상남도 양산의 천성산(千聖山), 그 산의 바로 남쪽에 있는 금정산 아래가 바로 부산이니 그야말로 경부간의 장거리 여정이다. 우리의 ‘드림관광버스’는 경부고속도로[1]를 이용하여 일로 남으로 질주했다. 경부고속도로 청주I.C에서 새로 난 당진-영덕간 고속도로[30]를 타고 가다가, 상주J.C에서 영천 방향의 고속도로를 이용, 팔공산이 가까운 동군위I.C를 경유하여 영천J.C에서 다시 경부선에 합류하여 양산I.C에 도착하였다. 상주에서 낙동강을 건너 위치한, 한적한 ‘낙동강의성휴게소’에 잠시 휴식을 취기도 했다.
오늘, 멀리 양산으로 향하는 우리의 버스(드림관광 김복태 기사님)에는 조인규 부회장, 민창우 기획, 박은배 총무를 비롯하여 호산아·장병국·남정균 고문, 김의락 자문위원, 유형상·김재철 대장이 포진하고, 오수정·허향순 님, 언제나 한결같은 전진국·안상규·강재훈 님, 문리버 강완식 님과 오늘 처음 나온 윤종선 님, 그리고 늘 씩씩한 류경 님, 장영서·이명자·이경숙 님이 동행했다. 특히 오늘 농암 권순식 님과 노을비 조희우 님, 그리고 고종길 님이 오랜 만에 나오고, 화양리의 오재곤 님, 두꺼비 고문의 지기 두 분이 처음으로 참석했다. 그리고 보름달 님이 오랜만에 나와서 모두 반가워했다.
우리의 산행지 천성산이 있는 양산(梁山)은 필자에게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다. 지난 유월에 유명(幽明)을 달리하신 누님 오남희 여사 살았던 곳으로 개인적으로 생전 누님을 자주 찾아와 뵙던 곳이다. 지금은 신불산 자락의 공원묘원에 유택(幽宅)이 있어, 천성산으로 내려오는 차 안에서 내내 생전 지극했던 누님을 생각 했다. 그리고 양산은 히말리스트 이상배 대장이 있는 곳이다. 이 대장은 세 차례에 걸친 필자의 히말라야트레킹에 가이드를 한 장본인이다. 이 대장은 에베레스트와 초오유, 로체, 가셔브롬2봉 둥 8,000m급 고봉을 비롯한 히말라야의 수많은 설산거봉을 등정한 베테랑 산악인이다. 애초, 오늘 천성산 산행에 우리와 함께 동행하면서 우리 대원들과 만남의 시간을 갖고자 했는데, 아쉽게도 오늘 설악산 산행이 잡혀있어 조우하지 못했다.
* [산행 들머리, 홍룡사 주차장]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오전 11시 55분, 홍룡사로 들어가는 초입의 주차장에서 산행이 시작되었다. 날씨는 아주 쾌청했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무궁한 청자빛, 따사로운 시월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기온도 비교적 포근하여 산행하기에는 아주 쾌적한 날씨이다. 주차장에서 홍룡사(虹龍寺)까지는 아스팔트 길, 대원들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일주문[千聖山 虹龍寺]을 지나, 절의 초입에 정자가 있다. 지금은 수선 중인 ‘가홍정(嘉虹亭)’이다. 가홍정은 양산 대석리에 살던 가선대부 석은(石隱) 이재영(李宰榮)이 노병을 치유하고 난 1918년 홍룡폭포 아래 자신의 소유지인 이곳에 정자를 지어 풍광을 즐기며 여생을 보냈다는 곳이다. 거기를 지나 고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무지개 모양의 ‘반야교(般若橋)’를 건너야 한다. 반야교 위쪽에 규모가 큰 2단의 폭포가 있다. 이곳이 명소 홍룡폭포(虹龍瀑布)이다. 최근에 비가 오지 않았는지 수량이 많지 않았다. 홍룡폭포는 옛날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虹]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하여 ‘홍룡(虹龍)’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 [관음성지, 천 년 고찰 홍룡사] — 천수관음상을 모신 관음도량
홍룡사(虹龍寺)는 문무왕 때(661∼681)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하였다. 원효가 당나라의 승려 1천 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華嚴經)》을 설법할 때 낙수사(落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당시 승려들이 이 절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들었다. 또 산 이름은 본래 원적산(圓寂山)이었으나, 1천 명이 모두 득도하여 성인(聖人)이 되었다 하여 천성산(千聖山)이 되었다. 원효는 산내에 89암자를 지어 1천 명의 대중을 가르쳤으며, 당시 각 암자에 흩어져 있는 대중을 모으기 위해 큰 북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 북을 매달아 두었던 집북재, 그리고 《화엄경》을 설법하던 화엄벌이 오늘 우리가 올라가는 명소이다.
폭포 옆에 옥당(玉堂)이 있고 반야교(般若橋)를 건너서 경내로 들어서니 장중한 ‘大雄殿’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마당 건너편에 있는 범종각은 대숲에 싸여 있으며 대웅전 옆 깊숙하게 올라간 산록에 ‘無說殿’(무설전)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은 천수관음상(千手觀音像)을 모셔놓은 관음전이다. 천수관음(千手觀音)은 천 개의 손과 천 개 얼굴을 지니고 있는 관세음보살로 중생의 아픔을 그 손길로 구제하시므로 그 영험함이 남다르다고 한다. 오직 지극한 마음으로 관음보살에 의지할 뿐, 말이 필요 없는 곳이라 하여 '無說殿'이라고 했다. 그래서 홍룡사는 ‘관음성지’로 알려져 있다. ‘無說殿’ 현판의 글씨가 고졸한 예서(隸書)로 쓰여져 있어, 일반인들은 그 연유를 모르고 지나치기 일쑤다.
<계 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