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과 벚꽃의 선운산 산행
1. 산행일자 : 2006년 4월 16일 (일요일)
2. 산 행 지 : 전북 고창, 선운산(336m)
3. 날 씨 : 바람이 다소 심하게 불었으나 맑고 화창한 날씨였음
4. 산행 참가자 : 강동규, 김창호, 김미환, 김인기, 김찬석, 박기양내외, 박봉하내외, 박상호, 신광철, 유선만, 윤희원, 이용준, 이태인, 조병환 외 1인, 최세원 내외(19명)
5. 산행일정 계획 및 소요시간 : 총산행 약 8km, 5시간 정도 소요
[1] 수원(05:10)~기흥TG~경부, 천안논산, 호남고속도로~정읍TG(07:30)~22번국도~흥덕~선운산 주차장, 산장식당(08:00/아침식사/08:25)
[2] 관리사무소(08:30)→경수산(09:30)→마이재(10:20)→선운산(도솔산 10:35)→개이빨산(11:25)→소리재(11:45)→낙조대(12:15)→도솔암(12:30)→도솔계곡→휴게소(13:05)→선운사(13:30)→주차장(13:45)
[3] 풍천만가(14:00/점심/15:00) ~ 정읍TG ~ 호남, 천안논산, 경부고속도로 ~ 수원(19:00)
★ 산장식당(063-562-1563), 풍천만가(063-563-3420), 사정에 의해 일정이 변경될 수 있음.
6. 산행기
[1] 산 행 전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서도 창 밖 세상이 자꾸만 궁금해지는 것은 봄만이 가진 색과 향과 맛과 바람의 감미로움이 유혹을 하기 때문이리라.
4월 15일에 동백과 벚꽃이 어우러진 전북 고창의 禪雲寺와 禪雲山 山行을 한다고 한다. 수학여행 때 한 번 가본 곳이기는 해도 짧은 시간에 走馬看山으로 선운사 경내를 둘러보고 온 터라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이번에는 동백과 벚꽃과 산행에 더하여 風川장어에 覆盆子로 전북 고창의 향토 맛까지 보여 준다고 하니 빠질 수 없는 絶好의 산행이라 집사람과 동료직원(행정실장 내외)까지 참가 신청(4월 11일)을 해 놓고 산행 일을 지루하게 기다렸다.
禪雲山(336m)은 호남의 내금강으로 불리는 명승지로서 1979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一名 兜率山이라고도 하는데 禪雲이란 구름 속에서 參禪을 한다는 뜻이고 兜率은 彌勒佛이 있는 兜率天宮의 뜻으로 禪雲山이나 兜率山이나 모두 佛道를 닦는 山이라는 뜻이다. 곳곳에 기암괴석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어 경관이 빼어나고 숲이 울창한 가운데, 千年古刹 禪雲寺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 출 발
새벽 04시 40분, 서둘러 배낭을 챙겨 밖을 나오니 예상보다 날씨가 차다. 훈훈한 봄 날씨를 생각하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온 것이 다소 걱정이 된다.
04 : 55분, 송죽 파출소 앞 도착. 김찬석, 박상호, 윤희원사장 나와 있고 버스(관광객으로 우리가 처음 타는 차라고 함)도 대기하고 있다. 행정실장 내외분이 보이지 않는다. 어제 04 : 50분까지 나와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늦나보다 생각하며 5분여(05 : 00)를 기다리고 또 5분을 더 지체했으나 나타나지 않아 핸드폰 번호를 눌러본다. 없는 번호란다. 번호 입력이 잘못 됐다. 조바심을 하며 5분여를 더 기다리니 내외분이 나타났다.
05 : 10분, 송죽파출소를 출발 수원성 東門이서 김미환 사장, 동수원 사거리에서 박기양 장학사 내외 승차하고 05 : 30분, 권선고등학교 정문에 도착하니 대기하고 있던 대원들 일시에 차에 오른다. 강동규사장, 친구 김창호, 김인기, 조병환 사장과 그 친구 한 분, 그리고 신광철, 유선만 교장, 이용준 산악대장, 이태인 총무. 모두 오랜만에 보는 대원들이다. 오늘 19명이 산행에 참가했다.
권선고 정문 출발. 약속 시간을 맞추느라 설 잠을 잦는지 소란하던 차안이 이내 조용해진다. 차창으로 비쳐드는 아침 햇살에 눈을 떠보니 차가 홍성 휴게소를 지나고(06 : 40분경) 있다. 눈을 뜨고 감기를 몇 차례, 김제 평야지대를 지나고 정읍 TG를 통과한 것이 08 : 02분. 선운산 입구에는 예정보다 30분을 지체하여 도착(08 : 30분)을 했다.
[3] 선운사 입구
차에서 내려보니 길을 따라 핀 벚꽃은 滿開하여 마치 함박눈이 내려 가지마다 소복소복 쌓인 것 같고 집집마다 붙어 있는 간판은 하나같이 風川장어요 覆盆子다. 아마도 오늘 산행은 분에 넘치는 봄날의 饗應을 받을 것 같다.
공원 관리사무소를 지나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찾은 곳이 전라북도지정 향토음식점『산장회관(장어요리 14-1호점, 전북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386-8 ☎(063) 563 - 3434, 562-1563)』이다. 각자 취향에 따라 우거지, 콩나물 해장국으로 식사를 하고 산행 채비(差備)를 하여(08 : 50분경) 오늘 산행의 첫 경유지 『경수산』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4] 경수산 오르는 길
개천을 따라 산 속으로 접어드는 대열이 거창하다. 늘 열 명을 전후한 인원의 참여였는데 20명에 하나 빠진 인원이라 산행 대열이 족히 20m는 됨직하다. 앞으로 산행에도 한배 산악회 회원들이 적극 참여하여 성황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산자락으로 들어서니 산색도 더 선명해 진다. 양지바른 곳에 돋아난 쑥은 하얀 솜털을 털어 낸지가 오랜 것 같고 나무 가지에는 연한 연두색 잎이 돋아 손톱만큼 자랐으며 여기 저기 땅을 헤집고 돋아나는 山草는 서로 키 재기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아 앙증스럽고. 무리지어 피어 있는 두견화와 골짜기의 경사면을 따라 드문드문 핀 벚꽃이 바위와 어우러져 이른 봄의 정취가 그대로 녹아든 듯 하다.
산은
구강산
보랏빛 석산
산도화
두어 송이
송이 버는데
봄눈 녹아 흐르는
옥같은
물에
사슴은
암사슴
발을 씻는다. < 박목월의 산도화 중에서 >
[5] 『경수산』과 『마이재』분기점 안부
산색의 변화와 조화를 玩賞하며 쉬엄쉬엄 오른 곳이 『경수산』과 『마이재』가는 분기점 안부에 도착(09 : 32분경) 했다. 앞서 오르던 중간 팀(김미환, 조병환 등)이 휴식을 취하며 후미로 오는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산악 대장, 이태인 총무는 경수산으로 향했고 선두로 온 윤희원, 유선만 교장 등은 『마이재』로 갔다며 산행 經路가 바뀌었다고 한다. 이정표에는 「←경수봉1.0km ---<분기점 안부 ● 관리소 1.0km ↓>--- 마이재0.7km →」라 표시 되 있다.
분기점에서 경수산 까지는 1시간은 족히 걸리기 때문에 오늘 참여한 대원들의 산행 行步와 時間을 감안하여 勘案하여 당초 계획을 변경한 모양이다.
『경수산 또는 안경봉, 444m』은 禪雲山의 줄기로 선운산 산줄기 안에 있는 봉우리(도솔산<336m>, 개이빨산<345m>, 청룡산<314m>, 비학산<307m>, 천마봉, 장군봉, 구황봉<298m>, 수리봉 등 300m를 조금 넘는 산 임) 중 제일 높은 산이라고 한다. 경수산은 서쪽으로 드넓은 서해에 면해 있고, 북쪽으로는 곰소만 건너 변산반도를 바라보고 있어 여름철 산과 바다를 함께 찾을 수 있는 곳으로 호남의 내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비경을 간직하고 있는 산이라고 하는데 아쉬웠지만 『마이재』로 방향을 잡았다.
안부를 출발하여 10여분 걸어 작은 암봉에 오르니 또 하나의 이정표(마이재 0.7km / 관리사무소 1.0km)가 세워져 있고 나무 가지 사이로 바다와 산 아래 마을이 보이기는 하나 주변 경관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아마도 황사가 視界를 가린 탓인 모양이다.
[6] 선운산 오르는 길
1) 마이재
09 : 54분, 마이재 도착. 이정표(←경수산1.7km, 수리봉0.7km→ / 석상암 0.8km)와 또 하나의 표지판(←경수봉 1.7km , 참당암 1.7km → / 심원면 2.5km)이 세워져 있다. 경수산으로 갔던 이태인 총무, 경수산을 언제 둘러보고 왔는지 우리 뒤로 따라 붙는다. 가다 중도에서 되돌아 왔다고 한다.
2) 선운산 정상
마이재를 출발하여 13분, 10 : 17분에 오늘 산행의 主山 『禪雲山(도솔산, 수리봉, 336m)』에 올랐다. 산나물을 뜯으며 천천히 오겠다던 김찬석, 박상호 사장, 박장학사 선운산 정상에 도착하도록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내일 아침에는 향긋한 봄 향기가 밥상에 가득할 것 같다.
[7] 犬齒山에의 眺望
산 정상에 세워 놓은 이정표(←마이재 0.7km ● 견치산 2.4km → / 참당암 1.0km)도 확인하고 주변 경관도 살피며 잠시 휴식을 가진 뒤 견치산(犬齒山, 개이빨산)으로 걸음을 옮겼다. 산악대장도 후미로 가고 있는 우리(조사장, 친구분, 집사람, 박장학사 사모님)를 따라 붙었다. 아마도 우리가 너무 여유를 부리며 걸음을 더디 한 것 같다.
완만한 내림 길로 들어서니 春蘭이 至賤으로 깔렸고 10여cm 대에 꽃이 피어 있는 모습이 너무 소담스럽다.
견치산, 참당암 분기점을 지나면서부터 지금까지 여유를 부리며 왔던 길이 급하게 오름 길로 이어진다. 몇 번이고 이마의 땀을 훔치며 암봉(견치산 직전의 전망대?)에 오르니「←수리봉, 견치산 0.7km / 소리재 0.8km →」라 표시된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잠시 숨 한 번 몰아쉬고 다시 된 경사를 20여분 오르니(11 : 09분경) 사방이 막힘없이 툭 터진 『견치산』 정상이다.
정상에는 삼각점이 있고 3, 40cm 정도의 板石이 넓게 깔려 있다. 마이재에서 이곳까지 오는 도중 가장 전망이 좋은 곳인 듯 하다. 산 능선을 따라 계속 이어지던 바다와 산 아래 마을, 해안으로 나가는 굽이진 길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고 파도에 밀려오는 물거품은 흰 천으로 띠를 두른 듯 해안을 따라 포물선을 그리고 있다.
간식도 하고 단체 사진 촬영도 하며 후미 팀을 기다리는데 핸드폰 소리가 울린다. 兜率峰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도솔봉까지 2.4km, 2, 30분은 기다려야 상봉할 것 같다. 다른 산행 팀 15, 6명이 일시에 몰려든다. 더 지체하기 어려워 “견치산에서 출발 한다” 연락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견치산 정상에서 7분여를 내려오면 옛 집터인 듯한 대나무 숲이 나오고 이곳을 지나면서부터 산행 길이라기에는 너무 사치스러운 넓은 길이 나온다.
[8] 大長今의 撮影地 落照臺
11 : 39분, 소리재 도착. 「← 견치산 0.7km, 해리면 2km ↑, 참당암 1km ↓, 낙조대1.0km →」라 표시된 이정표를 지나고 15분 정도를 더 걸어 나가니 또 하나의 이정표가 나온다. 「↓용문굴 0.1km, 낙조대 0.4km →」. 이곳에서 아래로 100m를 내려가면 『용문굴』이 된다.
용문굴(龍門窟)은 기출굴(起出窟)이라고도 하는데,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선사가 절을 짓기 위해서 도솔암 서쪽 용태에 살고 있던 용을 몰아낼 때 龍이 가로놓인 바위를 뚫고 나간 구멍이라 하며 그 터[址]가 내원암 남쪽에 남아 있다고 한다.
100m거리라 조금만 여유를 부리면 쉬 다녀 올 수 있는데 이미 앞서간 대원들이 이곳을 지나갔고 산행 방향이 직진하여 『낙조대』로 가야하기 때문에 『용문굴』은 후일로 미루는 수밖에 없었다.
선운사에서 낙조대로 바로 오르는 사람이 많은지 낙조대 오르는 계단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있다. 봄나들이 인파가 선운사, 선운산으로 일시에 몰려 든 모양이다.
12 : 00시, 20m 높이가 됨직한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MBC 인기드라마 『大長今』중의 최상궁이 投身한 장면을 撮影한 곳이라는 『落照臺』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원래는 낙조대(落照臺)에서 서해의 일몰광경을 바라보던 장소로 이름이 난 곳인데 드라마 촬영 장소로 인지도가 바뀐 것 같다. 최상궁이 투신 했다는 落照臺가 어떤 곳인가 직접 확인하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며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그리도 많은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렇고 보면 우리의 오늘 산행은 不勞所得의 행운을 얻은 셈이다.
[9] 천마봉에서의 조망
낙조대에서 단체로 사진 촬영을 하고 산악 대장으로부터 남은 구간의 산행 안내를 받은 다음 낙조대를 돌아나가 도솔암 , 천마봉, 배면바위로 가는 분기점에 도착했다. 人山人海가 따로 없다. 낙조대, 천마봉에 올랐다 내려가는 사람, 선운사, 도솔암을 거쳐 오르는 사람들이 뒤엉켜 금방 앞서간 대원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없다.
이정표에는 도솔암은 진행 방향에서 좌측 아래로 내려 가도록 되 있고 천마봉(0.2km)은 직진, 우측 철 계단이 설치된 거대한 바위가 배면바위(1.1km)로 표시되 있다. 욕심 같아서는 지척에 있는 배면바위 철 계단을 올랐다가 천마봉을 거쳐 도솔암으로 내려가고 싶었으나 산악대장의 嚴命이 있어 200m 떨어진 천마봉으로 향했다.
천마봉은 나무도 거의 없는 거대한 바위덩어리로 서쪽 낙조대에서 방향을 제외하고는 거의 수직에 가까운 절벽으로 도솔암 전경과 도솔 계곡을 비롯한 선운산 전체가 한 눈에 조망된다. 한마디로 天然 展望臺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천마봉에서의 조망도 잠시, 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 도솔암 길로 들어섰다. 급경사로 오르고 내려가는 사람들로 기다리고 비켜가는 수고로움을 감내해야 했다. 10여분을 내려오면 족할 거리인데도 20여분이 더 걸려 도솔암(상세정보 : 참고자료)에 도착(12 : 33분경)을 했다.
[10] 장사송, 진흥굴
도솔암 입구 찻집을 지나 넓은 도로를 따라 내려오노라면 개천을 사이에 두고 차도와 산책로가 계곡을 따라 이어져 있다. 차도와 산책로를 넘나들며 쉬엄쉬엄 걸어 도착한 곳이 장사송(長沙松, 전붇 고창군 삼인리, 천년기념물 제 354호)이 우뚝 선 곳이다.
이 소나무는 수령이 약 6백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높이는 28m, 줄기 둘레가 3m에 이르는 크고 오래된 나무로서 地上 1.5m 되는 높이에서 8개의 가지가 사방으로 펼쳐져 멀리서는 큰 우산을 펼쳐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이 나무를 『長沙松』 혹은 『眞興松』이라 부르는데 장사송은 이곳의 옛 지명이 장사현이었던 사실에서 온 것이라 하며 진흥송이라는 이름은 이 나무 옆에 『진흥굴』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진흥굴(眞興窟)은 장사송에서 약 20여m 위에 있는 동굴로 굴의 깊이 10m, 높이 4m 정도가 되는 천연 동굴이다. 이 굴은 신라 제 24대 진흥왕이 왕위를 버리고 왕비 도솔과 공주 중애(重愛)를 데리고 수도한 장소란다. 어느 날 미륵 삼존이 바위를 가르고 나타나 현몽했다고 하여 열석굴(熱石窟)이라고도 하고 좌변굴(진흥왕을 좌변왕이라 불렀다)이라고도 하는 굴이다. 지금은 굴 안에 부처님을 모시고 불공을 드리는 불도의 道場(도량)으로 활용되고 있다.
[11] 선운사 동백꽃
長沙松과 眞興窟을 둘러보고 내려오면서 선운사 경내로 들어가기 직전 차밭과 사찰 뒤에 붉은 꽃망울을 달고 있는 동백나무 숲을 찾았다. 眞紅(꽃)과 眞靑(잎) 어우러져 한바탕 색의 조화를 이루고 동백나무 사이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있는 벚꽃은 群鷄一鶴처럼 돋보인다.
천년 사찰 선운사 뒤안
부처님 비호막으로 더불어 온 세월
하이얀 노목의 기품 속에서
빼어난 고운 자태 뽐내려
속살 빠알갛게
겨우내 잉태한 복스런 꽃망울
이른 봄 엷은 햇살 속에
피를 토하듯 검붉게 피어난다.
송이송이 맺힌 절규
붉디붉은 얼굴로 취하다
그 열정 넘쳐나
태산을 흔들어 꽃피우더니
갈 때는 쉼 없이 금방
송두리째 산화한다.
미처 못 피운
못내 아쉬운 그 꿈 되 피우고자
주먹만한 열매로
끝내 아름다운 여인의 머리 결에서
다시금 환생 한다
동백꽃도 낙화한 터엉 빈 자리
염불하는 불당 목탁 소리에 공허한 마음 달래려
가만히 내려앉는다.
<출처 : 박세근시인의 『선운산가 ---선운산 동백꽃』>
[12] 선운사(禪雲寺)
동백꽃과 벚꽃이 어우러진 幻想景을 둘러보고 선운사 경내로 들어섰다. 禪雲寺<상세정보 : 참고자료>는 김제의 금산사와 더불어 조계종의 도내 2대 본사로 한국의 명승 고찰로 유명하다. 선운사 창건은 557년 백제 위덕왕 24년에 검단선사와 신라의 국사이자 진흥왕의 왕사인 의운국사가 창건 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선운사에 보존되어 있는 사적기에 의하면 선운사는 창건 당시 한때 89암자에 3,000승려가 수도하는 국내 제일의 대가람 이었다고 한다.
走馬看山으로 경내를 둘러보고 一柱門을 벗어나니 길 양쪽으로 먹거리 장터가 열려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이곳이 불교의 道場(도량)인가 할 정도로 極樂과 俗世를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人生事, 世上事가 참으로 妙하다는 생각이 든다.
장터의 이 가게 저 가게를 기웃거리며 覆盆子 한 잔에 전어 구이 안주로 입맛을 다시니 이 또한 산행 끝 무렵의 운치를 더한다(윤사장님 曰).
장터의 끝자락(주차장)에 오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볼거리가 있다. 고창 삼인리의 『송악(천연기념물 제367호)』이다. 개울 건너 암벽을 타고 오른 송악이 너무 푸르다.
[13] 송 악
일본이 패망되기 직전 다른 것보다도 선운사의 송악을 가져가고 싶었으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생장습성 때문에 바위와 함께 가져가지 않는 한 생존 가능성이 없어 포기했다는 얘기가 전해질 정도로 크기와 진귀함을 더해 주는 것이다. 선운사 송악은 줄기 둘레가 80cm에 이르고 나무의 높이도 약 15m나 되는 거목이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내륙에 자생하고 있는 송악 중에서 가장 큰 나무이고 꽃은 10-11월 에 황록색으로 피는데 짧은 가지 끝에 여러 개가 둥글게 모여서 달려있다. 송악은 본래 따뜻한 지역에서만 자라는 늘 푸른 넝쿨 식물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남부의 섬이나 해안 지역의 숲속에서 주로 자라지만 동해안쪽으로는 울릉도까지 서해안쪽으로는 인천 앞바다의 섬까지도 퍼져있다. 그러나 내륙에는 이곳이 송악이 자랄수 있는 가장 북쪽이 된다. 남부지방에서는 송악을 가리켜 소가 잘 먹는 식물이라고 해서 소밥이라고도 한다.
<출처 : 선운사 홈페이지>
[14] 풍천장어와 복분자
기대하고 기다리던 고창의 특산물, 풍천장어, 覆盆子의 진미를 맛보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차에 올랐다. 안내된 곳은 『풍천만가(風川鰻家 * 鰻 : 뱀장어만)』. 방송으로 입 소문이 난 집이다. 풍천 장어회관, 풍천 장어요리 전문점, 舊 뚝배기 식당, 우리나라 3대 방송사가 한 번씩 다녀간 집이다(수상 및 방송 소개 : * 2005년 3월 7일 6시 내고향 ‘백년가약’ 코너 방영, * 2003, 2004년 2년 연속 장어요리 경연대회 수상, * 2003년 일간스포츠 선정 장어요리 최고 맛집, 브랜드 선정, * KBS 2TV ‘좋은 아침입니다’ / MBC TV ‘화제집중 / SBS TV '모닝와이드’, ‘내고향 좋을씨고’ 소개)
禪雲寺 고랑으로
禪雲寺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백이 가락에
작년것만 오히려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 쉬여 남았습니다
<풍천만가의 벽에 걸린 미당 서정주 시인의 『선운사 동구』의 전문>
풍천장어에 복분자 한 병씩 각 상에 놓이고 덤으로 나온 상추, 절인 김치, 멸치젓갈, 된장, 우거지 뚝배기를 내 놓으니 상이 그득하다. 앞에 놓인 잔에 覆盆子 한 잔씩을 따르고 “좋은 산행”으로 건배를 하니 걸쭉한 산행 뒤풀이가 시작된다.
옛날에 어떤 노인이 땔감을 장만하기 위하여 산중으로 들어갔다가, 탐스럽고 먹음직스러운 열매를 발견하여 한껏 따먹고 집에 와 지내보니, 노경(老頃)에 잦던 요의(尿意)가 가셔지고 젊었을 때의 정력이 되살아나며, 또한 소변에 힘이 있어 변기(便器)인 항아리가 넘어져 버렸으니, 이로써 『覆뒤집힐복 盆동이분 子』란 이름이 붙어졌다고 하며, 또 그 형태가 항아리 같다고 하여 『覆盆子』란 이름이 붙어졌다고 한다.
전래 이야기대로면 올라갈 때의 버스 안이 온전치 못할 것 같다. 더하여 풍천장어까지 가세를 했으니 버스가 뒤집힐까 걱정이다.
인천강 하류에
밀물이 들면
강변이 벙벙하고
썰물 때면 강바닥엔
풍천장어 숨었는데
고관 나으리 부임할작시면
풍천장어 먹는다고
한다하는 유지들이
선운산 복분자
술병들고 몰려들어
"아글씨 거시기에는
요, 풍천장어가
최고랑께
<조화훈 시인의 풍천장어>
[15] 마 무 리
오늘 동백꽃과 벚꽃의 선운산 산행은 이런 산행이었다.
이른 아침 만개한 벚꽃을 보는 것으로 시작하여 300여m 높이의 경수산 안부 분기점에 올라 3, 40m의 산봉을 오르내리며 해안을 따라 흰 띠를 이룬 파도를 보며 선운산, 견치산에 올라 크게 숨 한번 몰아쉬고 쉬엄쉬엄 여유를 부리며 소리재를 지나 낙조대에 올라 단체로 기념 촬영 찰칵 하고 천마봉에서 도솔암을 굽어보고 선운산이 품고 있는 산들을 한 눈에 담는 것으로 산 오르내림을 마치고 선홍색 동백 꽃 향기에 취해 풍천장어, 복분자로 뒤풀이를 마무리 한 만남의 산행, 봄의 정취에 흠뻑 빠져 본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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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자료 1 > 禪雲寺
선운사(禪雲寺)는 조계종 제24교구 본사로,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이 창건했다는 설과 위덕왕 24년(577년) 백제의 승려 검단(檢旦, 黔丹)이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모두 진흥왕이 창건하고, 검단이 중건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707년 쓰여진 '도솔산선운사 창수승적기(創修勝蹟記)'에 선운사의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진흥왕은 왕위를 버린 첫 날 밤에 좌변굴(左邊窟 진흥굴)에서 잠을 잤다. 꿈속에서 彌勒三尊佛이 바위를 가르고 나오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중애사」를 창건하고 다시 이를 크게 일으켰는데, 이것이 선운사의 시초라고 한다. 한창 때는 암자 89개, 당우 189채, 수행처 24개소 그리고 승려 3천여 명을 거느린 대찰이었다고 한다.
문화재로는 대웅전(보물 제290호), 금동보살좌상(보물 제279호), 도솔암 내원궁(內院宮)의 지장보살좌상(보물 제280호), 참당암 대웅전(보물 제803호) 등이 있다. 현재 선운사에는 만세루, 대웅전, 육층석탑, 영산전, 팔상전, 산신각, 명부전, 관음전, 향운전 등이 있고, 동운암, 석상암, 참당암, 도솔암 등의 부속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선운사는 주변의 동백나무숲으로도 유명하다. 5천여 평에 이르는 선운사 동백 숲은 수령이 약 500년으로 천연기념물 184호이다. 매년 3~4월이면 붉고 탐스러운 동백꽃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선운사를 찾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에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 선운사 인근에는 동백꽃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이 있는데, 바로 상사화이다. 상사화는 석산 또는 꽃무릇이라 불리기도 하는 수선화과의 꽃으로 그 붉기가 동백꽃에 뒤지지 않는다. 8~9월이면 선운사일대와 마애불이 있는 도솔암까지 3km에 이르는 골짜기 주변에서 피어 장관을 이루는 선운산의 또 하나의 명물이다. 이 상사화에는 애절한 사연이 담겨 있다. 옛날 한 여인이 선운사에 며칠 불공을 드리러 왔다가 스님 한 분에게 연모의 정을 느껴 그만 상사병에 걸리고 말았다. 시름시름 앓던 그 여인은 결국 죽고 말았고, 그 죽은 여인이 상사화로 다시 피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이야기야 어디선가 한 번쯤은 들어본 듯한 흔한 이야기지만, 가는 대공 위에 붉게 매달려 있는 상사화를 보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측은한 느낌이 든다.
< 참고자료 2 > 선운사의 참당암
선운사의 여러개 암자 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암자이며, 지금은 산내암자로 사격(寺格)이 위축되었지만 본래 참당사 또는 대참사(大懺寺)로 불리었던 거찰(巨刹)이었다. 삼국시대 의운(義雲)스님에 의해 설립되었는데, 창건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의운스님이 도솔산 법화굴(法花窟)에 살고 있을 때 산 아래 죽포 포구에 돌배 한척이 들어왔다. 이 배는 속인들이 보려고 다가가면 바다로 멀어지곤 하다가, 의운스님이 제자들을 이끌고 포구로 나가서야 저절로 다가왔다. 이윽고 배에서 노를 젓던 한 금인(金人)이 나타나 여러 불상과 경전과 보인(寶印)을 스님에게 전해주고 떠났다. 그날 밤 스님의 꿈에 금인이 나타나서 "나는 우전국의 왕인데 불상을 모신 곳을 찾아 해동의 여러 산천을 두루 돌아다니넌 중, 도솔사에 대참(大懺)의 신령스러운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 이 곳으로 왔으니, 청컨대 집을 짓고 편안히 모시도록 하시오"라고 당부하였다.
이에 스님은 산 가운데 터를 잡고 진흥왕의 도움으로 절을 세우고 '대참사'라 하였으니, 이때는 581년(백제 위덕왕 28)이었다. 이 절이 삼국시대 의운스님이 세운 것이라 하더라도, 당시 이곳은 신라와 세력다툼이 치열했던 백제의 영토였기 때문에 신라의 진흥왕이 시주한 것은 후일에 첨가된 내용일 가능성이 크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전하지 않고 고려시대에 1328년(충숙왕 15)부터 이듬해까지 중수가 있었으며, 1346년(충목왕 2)부터 1398년(태조 7)까지 약 52년에 걸쳐 점찰신앙(点察信仰) 법회의 하나인 생회(?會)가 개설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의 중건이 있었는데 먼저 1530년(중종 25)에 재중수하였고, 이어서 1614년(광해군 6), 병자호란 뒤인 1642년(인조 20), 1794년(정조 18)등 4차에 걸친 중수가 있었다. 당시는 법당 동쪽에 승당, 서쪽에 미륵전, 위로는 약사전, 아래로는 명부전등 여러 전각을 갖추어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독립된 사찰로서 번성하였으나, 성종대(1469~1494)이후 선운사가 산중의 중심도량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차츰 사세가 약화되었다. 현재 참당암의 전각은 대웅전과 약사전(藥師殿)․응진전(應眞殿)․명부전(冥府殿)․도솔선원 ․요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참당암 대웅전은 보물 제803호이며, 약사전에 봉안되어있는 약사여래불상(실제로는 지장보살상으로 보아야 함)과 참당암 동종은 전북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있다
< 참고자료 3 > 선운사의 도솔암
깍아지른 기암 절벽의 절경사이에 자리잡은 도솔암에는 두채의 요사가 딸려있고 뒤편 산길위에는 나한전이, 오른쪽으로 바위계단을 100여개 올라가면 내원궁이 암벽위에 날아갈 듯이 걸쳐있다. 바위틈으로 나있는 내원궁을 오르는 계단은, 오르면서 저절로 속세를 잊게 하는 신비함이 있다. 내원궁을 끼고 우측 바위틈을 오르면 도솔암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고 마주보이는 천마봉, 장군봉 그리고 용문굴쪽의 도솔계곡이 장관이다
선운사의 창건 설화중 하나로서 검단선사가 본래 연못이었던 절터를 메우는데 천년묵은 이무기가 방해하니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고 그때 이무기가 서해안으로 도망치면서 생긴 용문굴 과 기암석 숲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한편 절을 세울당시 계곡에는 도적들이 들끊었는데 검단선사는 이들을 교화하고 소금 굽는 법을 가르쳐서 생계를 꾸리게 했는데 이에 반성한 도적들이 소금을 구우며 살면서 해마다 봄, 가을에 報恩鹽이라 하여 선운사에 소금을 보냈다 하기도 하고, 비를 내려 염전을 망치게 하는 이무기를 퇴치한 보은으로 그랬다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 해방 전까지도 그 일대 염전사람들은 선운사에 소금을 보냈다.
도솔천이라는 하늘나라는 수미산 꼭대기에서 약 12만 유순(由旬,약 6.5Km길이) 위에 있다고 한다. 그 나라에는 칠보(七寶)로 만든 아름다운 궁전이 가운데에 있고, 궁전 주위에는 사계절 아름다운 꽃이 피며 온갖 새와 동물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고 한다. 또 거기에는 내원궁(內院宮)과 외원궁의 두 궁전이 있는데 외원궁은 하늘나라 일반중생이 살고 있는 곳이고, 내원궁은 미륵보살의 정토(淨土)이다. 내원궁을 오르는 돌계단은 오르면서 저절로 속세를 잊게하며 한가지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 진다고 한다
<출처 : 선운사 홈페이지>
이 이야기는 선운사 두솔암 창건에 얽혀있는 전설의 낙수를 엮어본 것이다.
옛날 도솔산 참담에 불량배가 살고 있어 근동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이 많았다 한다.
그때 검단선사와 의운선사께서 선도하여 제염 방법을 지도하고 심원면 검당리에서 소금을 만들도록 한 결과 그 소금이 희고 맛이 좋아서 많이 팔리게 되자 세금을 바치어 그 돈으로 참당사라는 큰 절을 창건하였으나 선운산와 참당사가 같은 곳에 있을 수 없다 하여서 참당사를 '참당암'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한다.
용문암에 사룡이라는 이무기가 살고 있었는데 검단선사와 의운선사께서 도력으로 그를 쫓아내자 이무기가 쫓겨가면서 구부를 쳐서 바위를 뚫고 나갔으며 그 뒤에 보니 이 바위가 남북으로 큰 문이 뚫어져서 지금도 용문암이라 부르고 있다.
두 선사께서 도력으로 이무기를 쫓아내시고 도솔암을 지었다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장연강 죽도 포구에 돌배가 들어 왔는데 배 안에서 음악 소리가 구슬프게 들려와 사람들이 달려가 보면 배가 스스로 퇴거하여 궁금하기에 의논하여 두 선사에게 말씀 드리니 검단선사와 의운선사께서 그 돌배가 있는 곳에 가보니 배가 스스로 언덕 가까이에 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두 선사가 배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니 옥축대장경과 지장보살상 금동관음보살상 금동좌상께서 계시고 석불이 계시는데 그 석불은 창담암에 관음보살상은 선운사에 지장보살상은 암석위에 모시게 되어 현존하고 있다고 한다.
검단선사와 의운선사께서는 여든 아홉 개의 암자를 짓고 선운사를 창건하시고 영원히 보호하기 위하여 두 선사께서 죽으시면 산신이 되어 지키겠다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시자 지금도 두 분의 선사 그림을 모시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금은 이 많은 암자들이 모두 없어지고 참담암 도솔암 석상암등 몇 개의 암자만이 남아 보호되고 있다.
- 최원주(남,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500번지) -
< 참고자료 4 > 선운사 동백나무 숲
선운사 대웅전 위의 약 16,500㎡에 있는 동백나무 숲은 수령이 약 500년으로 추정되고 천연기념물 제 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봄이면 꽃이 만발하여 사찰 뒤에 꽃병풍을 펼쳐 놓은 것같은 장관을 이룬다. 해마다 이 무렵이면 사찰 뒤뜰에서 문화행사인 동백연(冬柏燕)이 펼쳐진다.
< 참고자료 5 >신비의 배맨 바위
해리면 소재지에서 북쪽에 뻗어 있는 산등성이를 바라 보면 밋밋한 산정에 우뚝 솟아 있는 신비롭고도 괴이하게 거대한 게선암이라는 바위가 놓여 있다.
이 바위는 높이 20여미터 둘레 100미터나 되는 퇴적암 무더기로 민둥한 산등성이에 위치하여 있어 멀리서도 쉽게 시야에 들어오게 된다.
주변에는 희귀한 산새들이 서식하고 있고 수풀도 없어 우람하게 거대한 모습이 신비하고 거의 외경을 느끼게까지 하는데 멀리서 보기에는 아기를 업고 있는 사람 모양 같기도 하고 배를 정박하여 밧줄로 묶인 자리가 파멸되어 있는 것 같게도 보인다.
이 곳을 '배맨 바위'라고 부르는데 그 연유는 다음과 같다.지금은 이 곳에서 십여리 떨어진 곳에 서해와 해안선이 접하여 있으나 예년에는 이 산 정상까지 바닷물이 들어와서 배를 이 바위에 매어 달았다고 하는데서 '배맨 바위'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곳까지 배가 들어왔다니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이 들려 수긍할 수는 없으나 주변 산 계곡에서는 가끔 조개 껍질도 발견되고 바위가 모두 퇴적암으로 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연유를 증명해 주기도 한다.
그동안 지각의 변화가 수억년을 통해 변화했다는 일면을 보여주는 증거의 바위이기도 하다.
자료제공 : 이기엽(남, 고창군 해리면 광촌리 677번지) -
< 참고자료 6 > 覆盆子
[1] 맛좋은 복분자 열매만으로 빚은 술이 복분자 주이며 복분자는 나무 딸기의 일종으로 사전에는 장미과의 낙엽활엽교목으로 적혀 있다. 선운산의 명물인 복분자술은 부녀자들이 깊은 산중에서 공해를 모르고 자생한 복분자 열매를 6-9월께 채취하여 만든 술이다.
공기가 들어가지 않도록 옹기그릇에 잘 밀봉하여 2-3년을 경과해야 그린미를 느낄수 있므며 술빛 색깔은 아침에 함초롬이 핀 해당화처럼 맑고 빨갛게 물들어 있어 일찍부터 정력제로 각광을 받아왔다.
복분자 열매를 따고 술을 빚는 작업을 할때는 금남의 구역으로 통제된 상태에서 부녀자들만의 정성으로 이루어져야 했으며 음양의 이치에 따라 남정네들에게 보양이 되었다는 말이 전해온다
[2] 성분 및 약효 - 성분 : 구연산, 사과산, 당분, 섬유질, 회분, 비타민 등
강장성 수림약으로 남성의 경우 낭습이 유난히 많고 정력이 감퇴되는 음위증에 크게 활용되며, 신경안정
내지 보강의 약효가 있어 유정(조루)에 효과적이다. 그리고 소변의 절제를 원활히 하는 한편, 여성의 경우 정신쇠약으로 인한 불임증에 크게 활용되는 묘미를 지녔으며, 피부를 윤택하게 하는 식물로 알려져있다.
신경쇠약으로 인한 시력감퇴와 야맹증에 효과적이며, 또한 속을 덥게하여 간을 보호하고 소변을 줄이고 정력과 양기를 강하게 한다.
[3] 복분자 열매
복분자라고 하는 나무딸기는 산야에 자생하는데 높이가 3m 정도이며, 굽은 가지와 곧은가시들이 나있다. 열매는 붉은 알로 뭉쳐있고, 한방에서는 옛부터 약재로 쓰여왔다. 우리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지방과 일본, 중국에서 야생하며, 전북 고창 재배 단지에서 유기농법으로 생산되는 복분자가 품질 및 약재로서의 가치가 높다. 과실근은 6-7월에 검붉게 익는데 맛은 새콤하고 달며 과실은 복분자라 한다. 복분자는 옛부터 한방에서 발효주에 주침(酒沈)하여 약재화 하거나, 발효주와 혼합술로 복용하여 왔다.
< 참고자료 7 > 풍천장어
[1] 풍천장어는 강물과 바닷물이 어울리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구경할수있는 뱀장어의 일종이지만 식도락가들이 선운산 풍천장어만을 애써 찾는것은 그맛이 달리 담백하고 구수하기 때문이며 일찍부터 작설차, 복분자술과 함께 3대 특산물의 하나로 널리 알려져 왔다. 특히 선운산 풍천장어는 그 생태계가 실로 끈질기고 기구할 뿐더러 천신만고를 거치며 살아남는 것이 오직 애주가들의 주안상에 오르고자 하는데 있었던 것처럼 느껴져 더욱 군침을 삼키게 하는 것이다.
[2] 특성
선운산 어귀 바닷물과 밀물이 합해지는 인천강지역을 풍천이라한다. 실뱀장어가 민물에 올라와 7~9년 이상 성장하다가 산란을 위해 태평양 깊은 곳으로 회유하기 전 바닷물과 밀물이 합해지는 지역에 머물게 되는데, 이때 잡힌 장어를 풍천장어라고 하는데 지명이름과 함께 불려져 왔다.
선운산에는 일찍부터 작설차, 복분자술과 함께 풍천장어가 3대 특산물의하나로 회자되어왔다. 고창군 특산품하면 고창수박, 복분자술, 풍천장어의 고장으로도 유명한 곳이며, 특히 이글거리는 숯불에 구운 풍천장어에 그 맛의 심오함이란 먹어본 사람이 아니고는 알 수 없으며, 옥황상제가 고창에서 온사람들에게 풍천장어의 맛에 대하여 물어본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산업사회의 발달로 오폐수 및 자원남획으로 자원량의 고갈로 인하여 풍천장어를 찾는 사람들의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던 중 고창군에서 특수시책사업 풍천장어의 옛 명성을 되찾고자 갯벌풍천장어를 개발하게 되었다. 갯벌풍천장어는 일반 양식장어를 자연상태의 축제식양식장에 바닷물로 최소한 6개월 동안 사료 급이없이 자연상태 그대로 성장토록 하였는데 색깔, 맛, 육질등이 풍천장어와 큰차이가 없으며, 그 맛 또한 최고로 고창갯벌풍천장어를 상표등록하였다.
[3] 풍천장어의 주요성분
열량 수분 단백질 지질 회분 칼슘 인 철 Na 칼륨 비타민 니아신
270㎈ 61.1g 16.4g 21.3g 1.1g 95㎎ 230㎎ 1.0㎎ 65㎎ 250㎎ 2.2㎎ 3.7㎎
- 장어구이(100g)는 비타민A가 5,000IU(비타민단위)로 쇠고기 125배 돼지고기의 295배나 된다.
- 뱀장어 지방에는 DHC 1332㎎, EPA 274㎎과 레시친이 풍부하게 포함되어 있어 노화예방, 피부미용, 고혈압, 시력보호와 특히, 레시친은 뇌세포를 형성하는 주성분이다.
- 뱀장어 피에는 Ichthyotoxin(이크티오톡신)이라는 독소가 있어 결막염 및 피부에 염증을 일으킬 수 있어 장어의 피를 마시거나 피부에 닿는 것은 조심하여야 한다.
- DHA계열의 지방산은 유방암, 폐암, 췌장암, 치매등의 예방 효과가 있다고 세계 DHA심포지엄, 일본아키다대학 의료의학 보고서, 일본동경대학 와다교수 논문을 통해 학계에 보고 되었으며 뱀장어에는 다량의 DHA가 함유된 것으로 나타났다.
- 동의보감을 보면 빈혈증에 특효하고, 뱀장어 또는 칠선공어와 녹용외 15가지 생약을 첨가하여 만든 반룡보전환은 회춘비방에 효험이 있으며, 몸에 좁쌀같은 것이돋고 붉은점이 크거나 많이나서 가렵고 부스럼이 되어 진물이날 때, 근육마비문둥병, 부인들의 수족이나 허리가 굳어질 때, 피부에 흰 어우러기가 생겨 퍼질때등 위 질환에 대해서는 뱀장어, 백화사 및 계란과 24종의 약초를 혼합하여 환으로 만들어서 1회 30개씩 1일 2회 복용한다고 적혀있다.
< 참고자료 8 >상사화 [선운사 입구의 계곡주위의 꽃무릇]
옛날 선운사에 멋있게 생긴 젊은 스님이 한분 계셨습니다 며칠간 불공드리러 온 젊은 처녀는 어느덧 그 스님을 연모하게되었습니다. 스님을 연모한 처녀는 애틋한 사랑을 나름데로 표현을 했지만 스님은 처녀의 마음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스님을 연모하는 마음은 커져가고 끝내 병이되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그녀가 묻힌 무덤에 핀꽃이 상사화라고 합니다.
< 참고자료 9 > 선운산, 선운사 관련 시 모음
♣♣♣ [ 선운사 동백 ] ♣♣♣
이병헌 지음
1
이른 봄
황사 딛고
남도로 향하다가
가슴속에
살아있는
동백수풀 생각나
살며시
다가가는 길
꽃샘추위 춤추네
2
대웅전 비껴 돌아
몇 발자국 지나치니
연 초록빛 새 봄 사이
꽃 봉우리 솟는 오후
찬바람 호령소리로
상처 입은 붉은 빛
3
동백수풀 돌고 돌며
잃어버린 봄을 셀 때
혼자 우는 풍경소리
가슴속 파고들어
말없이
휑한 가슴에
눈물 되어 흐르네
시마을 2005.3월의 시조부문 우수작
♣♣♣ [ 질마재의 노래 ] ♣♣♣
- 서정주 -
세상일 고단해서 지칠 때마다
댓잎으로 말아 부는 피리 소리로
앳되고도 싱싱히는 나를 부르는
질마재. 질마재. 고향 질마재.
소나무에 바람소리 바로 그대로
한숨 쉬다 돌아가신 할머님 마을
지붕 우에 바가지꽃 그 하얀 웃음
나를 부르네. 나를 부르네.
도라지꽃 모양으로 가서 살리요?
칡넌출 뻗어가듯 가서 살리요?
솔바람에 이 숨결로 포개어 살다
질마재 그 하늘에 푸르를리요?
♣♣♣ [ 선운산 가 ] ♣♣♣
박세근 시인
선운사 범종 소리에 선잠을 깨우고
법당 삼존불 앞에 옷깃을 여며 합장한다.
선운 골바람에 막히 가슴 확 트이고
환불 백파율사 먼 눈을 뜨게한다.
동백향기에 취해 홀연히 시심(詩心)을 일구고
상사초 열애 앞에 사랑을 띄운다.
[선운산가]에서 박세근 시인
♣♣♣ [ 선운산가 --- 낙 조 대 ] ♣♣♣
박세근 시인
서해 낙조 곱게 핀
도솔산 하늘 길
천연색색 비단 봉우리 거느린
쌍둥이 조망대
바람도 쉬지 않고
휘돌아 가 버리면
선운 망부석 슬피 울까부다.
♣♣♣ [선운산가 --- 도솔산 가는 길 ] ♣♣♣
박세근 시인
호남의 내금강
도솔산 오르는 길에
상사초를 만났다.
천길 하늘 길
천마봉 길목 용문 등 넘어
비상하는 용마 천마봉.
낙조대 문턱에서
서해 용왕 기침 소리 요란하고
마애불 깍아지른 절벽에
석가 세존을 염송한다.
속세를 등진 도솔 암자엔
성불을 구망하는
이승 보살 즐비한데
아미타불 염불 속에
스스로를 구원하려
길을 찾는다.
풍천을 거슬러
오르는 길손마다
속마음 비우니
부처님의 자비가
듬뿍 듬뿍
♣♣♣ [선운산가 --- 복분자 술 ] ♣♣♣
박세근 시인
선운산 동구
산자락 끝 밭이랑
서해 갯바람 소금기에
작열하는 유월의 햇살을 머금고
어느 명창의 못다 부른 절규가
운무속에서 몸부림친다.
붉디붉은 산딸기
꽃으로 피어나고
터질 듯 터질 듯
가시 돋힌 검붉은 열매
알알이 배 불러 오면
아낙네들 집집마다
항아리 가득
정성담아
동네방네 복분자술 냄새로 진동한다.
그대는
선운의 높은 정기
불타는 정열
선홍색 핏자국으로
진한 향기 토해내는 거친 숨결은
요강 단지 뒤엎는 복분자주(覆盆子酒)
남녀 궁합 화합술
♣♣♣ [ 선운사에서 ] ♣♣♣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건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최영미시인<서른, 잔치는 끝났다>에서
♣♣♣ [ 모 양 성 ] ♣♣♣
조화훈 시인
모양부리 보리밭 한가운데
흑룡 한 마리 웅장한
똬리 틀고
공북루 북을
향해
거친 바람 호흡하며
흰옷 입은 농부들의
애환을 지켜 주며
징개맹경 너른 곡창
노략질 일삼는
왜구를 응징하여
만백성 괴로운 심사
성자락에 휘두르고
왜적을 미리막아
모양부리 착한 백성
보리밭 일구고
산자 수려한 고창 땅에
모양성 바로 세워
착한 후손 남기셨네
♣♣♣ [ 깨진 바위 전설 ] ♣♣♣
조화훈 시인
깨진 바위 틈으로
시집가는 가마가
지나갔습니다.
인천강 중류
봇물 터지고 또 터져
용왕님께 제사 지내려고
어린아이 구했습니다.
가난한 소금장사 어미가
등에 업힌 자기 딸을
엽전 받고 팔았습니다.
학전마을 어귀
큰 바위 밑에 앉아
자식 판 돈에 취해
선잠에 빠진 사이
마른 하늘 날벼락 치더니
큰 바위 깨지고
겁먹은 어미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놓았습니다.
♣♣♣ [ 삼 호 정 ] ♣♣♣
조화훈 시인
물 맑고 산 좋은 고창 산내에
인천강, 덕천강, 석천강가에
삼형제가 함께 살아
인호,덕호,석호라 이름하여
달밤이면 호연지기로
자연을 노래하며
우애로 다져진 강 언덕에
인호,덕호,석호 기념하여
아담한 정자 짓고
담 두르고 문 내어
삼호정이라 하였더라
고풍 현판
당대 선비들의
싯귀가 정취 담아
멋 아는 이는
풍류 생각하며
옛 생각에 젖어 들면
강가에 무심히 노니는
철새는 세월을 망각한 채
물 위에 선경으로 남는다
♣♣♣ [ 병 바 위 ] ♣♣♣
조화훈 시인
호암을 휘감는 강물에
큰 몽을 담그신 이여
콘 바위 얼굴로
근엄하게 묵상하며
이 고장의 큰 인물이
언젠가는 오리라 믿어
인고의 세월을 사는
눈썹 흰, 고집의 어른이시여
♣♣♣ [ 선운사 동백 ] ♣♣♣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바람불어 설운 날에 말이예요
동백꽃을 보신 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후두둑 지는 꽃 말이예요
나를 두고 가시려는 님아 선운사 동백꽃으로 와요
떨어지는 꽃송이가 내 맘처럼 하도 슬퍼서
당신은 그만 당신은 그만 못 떠나실거예요
선운사에 가신적이 있나요
눈물처럼 동백꽃 지는 그곳 말이예요
[가수 송창식 "선운사"]
첫댓글 회장님! 역시 이번 산행기도 맛있게 읽고 느꼈습니다. 지난 가을에 보았던 단풍으로 물든 낙조대와 도솔암이 정말 멋졌었는데 연두색 나무 이파리와 하얀 벛꽃, 선홍의 동백이 어우러진 봄 산은 더 멋진 것 같네요.회장님 덕분에 시인들이 예찬한 선운사를 볼 수 있어 더욱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