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천재교육 | BY-NC-ND
강감찬 장군과 귀주 대첩거란의 2차, 3차 침입
*1010년 거란의 왕 성종은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고려로 쳐들어왔어요. 거란의 2차 침입이 시작된 거예요.
*그러나 흥화진을 지키고 있는 양규, 이수화 장군에 의해 발목이 잡히고 말았어요. 아무리 공격해도 고려군은 끄떡도 하지 않고 오히려 거란군의 시체만 늘어날 뿐이었어요.
*결국 거란은 흥화진을 비켜 개경으로 직접 쳐들어갔어요. 한편 30만 대군을 이끌고 거란군과 맞서 싸워야 할 강조는 통주에서 거란군에 잡혀 죽고 말았어요. 통주를 무너뜨린 거란군은 개경을 향해 쳐들어갔어요. 개경을 지키는 군사가 적었기 때문에 현종은 개경을 버리고 전라도 나주까지 피난을 가야 했어요.
*개경을 차지한 거란군은 고려 백성들을 죽이고, 집을 불태우고 물건을 빼앗는 등 온갖 나쁜 짓을 저질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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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종은 거란에 사신을 보내 자신이 곧 찾아가 신하의 예를 올리겠다는 약속을 했어요. 그러자 거란의 성종은 군사를 거느리고 물러났어요. 이로써 거란의 2차 침입이 끝났어요.
*하지만 고려의 왕이 거란을 직접 찾아간다는 것은 너무나 *굴욕적인 일이었어요. 현종은 몸이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어요.
▶ 소배압은 거란의 1차 침입 때 서희와 담판을 했던 소손녕의 형이에요.
*그러자 다시 거란의 소배압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략했어요. 1018년 거란의 3차 침입이 시작된 거예요. 그러나 이번만큼은 고려도 호락호락 당하지 않았어요.
별이 떨어진 곳에서 태어난 아이
강감찬 장군의 탄생에 별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요. 어떤 사신이 큰 별이 어느집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 찾아갔더니 그 집 부인이 아기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강감찬이었지요. 그래서 강감찬 장군이 태어난 곳을 ‘낙성대’라고해요. 훗날 중국 송나라 사신이 고려에 왔다가 강감찬을 보고 절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문곡성을 못 본지 오래더니 여기에 있었구나.” 문곡성이라는 별이 강감찬 장군 몸으로 들어왔다는 뜻이지요. 문곡성은 학문이나 예술을 맡아서 관리하는 별을 뜻해요.
낙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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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성대 : 강감찬이 태어난 곳이다. 하늘에서 큰 별이 떨어졌다고 해서 낙성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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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감찬을 *상원수로 임명하니, 전군을 지휘해 거란군을 막으라.”
*현종의 명령을 받은 70세의 강감찬 장군은 20만 대군을 이끌고 적에 맞설 작전을 세웠어요. 강감찬 장군은 압록강변에 위치한 흥화진(의주)에서 1차 결전을 준비했어요. 거란군은 이 흥화진을 거쳐야만 남쪽으로 갈 수 있었으니까요. 강감찬 장군은 흥화진성 동쪽에 있는 강, 대천의 상류를 막아 놓고 1만 2천 명의 군사를 숨어 있게 했어요.
*거란군은 고려군을 깔보고 있었어요. 소배압은 고려군을 향해 총공격 명령을 내렸지요. 고려군은 거란군과 맞서 싸우는 척하다가 흥화진 동쪽에 있는 대천 쪽으로 *유인했어요. 거란군은 아무것도 모른 채 고려군을 쫓다가 대천 한가운데로 들어섰어요. 그러자 강감찬 장군이 신호를 주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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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커다란 북소리가 울렸고 위쪽에서부터 산더미 같은 강물이 갑자기 소용돌이치며 쏟아져 내렸어요. 막아 놓았던 상류의 강물을 튼 거예요. 강을 건너던 거란군은 말머리를 돌리려고 했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거센 물결 속으로 파묻혀 버렸어요. 이 때 산기슭에 숨어 있던 1만 2천 명의 고려 군사들이 일제히 공격을 시작했어요.
*“화살을 쏘아라!”
*겨우 물살을 헤치고 나온 거란군 앞에 또 다시 고려군의 화살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소배압은 살아 남은 군사를 이끌고 개경으로 향했어요. 강감찬 장군은 이미 부하 김종현에게 1만 명의 군사로 개경을 지키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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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배압이 이끄는 거란군은 개경으로 가는 길에 고려군의 기습을 받아 많은 군사를 잃었어요. 소배압은 고려군과 싸울 때마다 패배를 당하자, 고려의 왕을 사로잡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러나 1만 명의 군사가 *철통같이 지키는 개경을 점령할 수 없었어요. 결국 개경 전투에서 많은 군사를 잃고 후퇴를 해야 했어요. 하지만 돌아가는 길도 결코 편하지 않았어요.
*1019년 2월 진눈깨비가 종일토록 쏟아지던 날, 거란군은 멀리 도망가지 못하고는 귀주(지금의 평안 북도 구성) 부근에 이르렀어요. 귀주 또한 서희가 빼앗은 강동 6주에 속한 곳이었지요. 강감찬 장군이 이끄는 고려의 부대와 거란의 부대가 맞붙게 된 거예요. 고려군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어요. 막다른 길에 몰린 거란군도 죽음을 각오하고 싸워야 했지요.
*귀주 동쪽 벌판에서 싸움이 시작되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싸움은 치열해졌고, 어느 나라가 이길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지요.
*이 때 개경을 지키고 있던 김종현의 고려군이 합세했어요. 강감찬 장군은 최후의 결전을 준비했어요. 겨울비가 쏟아지는 날 강감찬 장군은 공격 명령을 내렸어요. 고려군은 적진을 향해 *돌격했어요. 마침내 죽기를 각오하고 끝까지 버티던 거란군도 기세가 꺾여 후퇴하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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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배압은 투구와 갑옷을 벗어 던지고 산으로 도망쳤어요. 강감찬 장군은 맞은편 산봉우리에 올라 도망치는 거란군에게 외쳤어요.
*“이제 침략군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 똑똑히 알겠느냐? 살아 돌아가면 똑똑히 전하거라. 고려를 절대로 침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에게 크게 승리한 것을 ‘귀주 대첩’이라고 해요. 10만 대군의 거란군 중 살아 돌아간 군사는 수천 명에 불과했어요. 25년 동안 반복된 거란과의 전쟁은 고려의 승리로 막을 내렸어요.
▶ 귀주 대첩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 대첩, 조선 이순신 장군의 한산도 대첩과 더불어 우리 나라가 크게 승리한 3대 대첩 중 하나예요.
잠깐 퀴즈
거란의 3차 침입 때 큰 승리를 거둔 고려의 장수는 누구인가요?
정답 : 강감찬
*마침내 고려에 평화가 찾아왔어요. 강감찬 장군은 북방 민족의 침략에 대비해 개경 주위에 *나성을 쌓고 국경 주변에 천리장성을 쌓자고 주장했어요. 현종 때 천리장성을 쌓는 공사를 시작했는데, 이후 10여 년이 지난 뒤에 천리장성이 완성되었지요.
▶ 천리장성은 압록강 서쪽 끝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곳부터 지금의 함경 남도 영흥의 도련포까지 쌓았어요. 총 길이가 천리 쯤 된다 하여 천리장성이에요.
*굴욕(굽을 屈, 욕되게할 辱) : 남에게 억눌리어 업신여김을 받음
*상원수(上元帥) : 고려 시대에 출정하는 군대를 통솔하던 대장
*유인(誘引) : 주의나 흥미를 일으켜 꾀어 냄
*철통같다 : 준비나 대책이 튼튼하고 치밀하여 허점이 없다
*돌격(갑자기 突, 칠 擊) : 공격 전투의 마지막 단계에 적진으로 돌진하여 공격함
*나성(羅城) : 성의 외곽
1. 거란은 강동 6주를 고려에 내준 것을 후회하고 있다가 강조가 목종을 몰아 낸 것을 핑계삼아 1010년 거란의 성종이 4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고려를 공격하였습니다. 이것이 거란의 2차 침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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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고려의 현종이 거란을 찾아가 신하의 예를 올리지 않자, 거란의 성종이 군사를 보내 고려를 침략하도록 했습니다. 이것이 거란의 3차 침입으로, 이 때 귀주에서 강감찬 장군에 의해 거란은 크게 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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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란과 25년에 걸친 전쟁을 치른 뒤에야 고려에는 평화가 찾아왔고, 고려는 천리장성을 쌓아 북쪽 세력의 침입에 대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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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대군의 거란군과 싸워 승리한 고려의 장군은 누구인가요?
강감찬
강감찬 장군이 3차 침입한 거란군을 크게 물리친 장소는 어디인가요?
귀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해요.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을 보고 강감찬 장군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세요.
군사력은 많은 수의 군사와 발달된 무기, 풍부한 물자 등을 갖추고 있으면 강하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전쟁에서의 승리는 꼭 강한 군사력으로 얻어지지는 않아요.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에서와 같이 군사들의 사기나 지휘자의 지혜 등 군사력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승패가 달라지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