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복권
허정 정성록
“준비하시고, 쏘세요!”
일억 원 주택복권. 매주 토요일 저녁 7시에 추첨을 한다. 일주일 동안 애인을 만나는 날처럼 토요일을 기다린다. 복권의 동그란 숫자판 앞에 몸과 마음을 모아 화면을 뚫어져라 침을 삼키며 본다. 사랑의 큐피드가 가슴에 박혀주길 기다리는 처녀의 마음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는 듯, 사회자의 말이 곧바로 나온다. "준비하시고". 복권의 동그란 과녁판에는 1에서 0까지 숫자가 나뉘어져 있다. 손으로 힘껏 돌린 판은 정신없이 빨리빨리 돌아간다. 이때, "쏘세요!" 라는 멘토가 나온다. 활을 쏠 준비를 한 가수나 개그맨들은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곧바로 돌아가는 판을 향해 활을 잽싸기 쏜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단위 여섯 개 판과 조가 결정되는 숫자판까지 일곱 개를 동시에 쏜다. 화살이 꽂힌 숫자순으로 당첨번호가 결정된다.
1969년부터 복권이 시작되었지만 73년 3월부터 매주 추첨하는 주택 복권이 당연히 인기가 높았다. 산업화 물결로 도시로 유입된 인구의 팽창으로 서울의 주택이 턱없이 부족했다. 일부의 이익금은 원호 대상자의 주택 증설과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주택 조성기금으로 쓰인다고 한다. 나 역시도 남편의 직장이 서울로 발령 날까 봐 희망지를 D도시를 택했지만, 서울로 오게 되었다. 관사가 있어서 우선 집 없는 설움을 당하지 않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집값을 보면서 남편이 가끔 사 오는 복권으로 TV가 환하다가 어두웠다. 매주 맞을 리 없는 복권이지만, 허탈한 마음을 안고 다음 주를 기다리며 다시 또 복권을 산다. 행운의 화살이 나에게 날아 오기를 기다리는 몇 분 동안은 스릴 만점이다.
복권의 기원은 2200년 전 중국 만리장성 축조 기금 마련할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니 역사는 꽤 긴 편이다, 우리나라에는 복권이 나오기 전, 여자들이 모여 하는 계 모임의 일종인 산통계가 복권과 비슷하고 한다. 목돈을 마련하기 위해 계원들이 각각 돈을 각출하고 이름을 적어 넣은 통에서 번호를 추첨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이라고 한다, 가끔 산통 다 깨졌다는 말을 어릴 때 들은 적 있다. 다음에 타야 할 곗돈을 계주가 가지고 달아난 것을 산통이 깨졌다고 했다. 주택복권은 나에겐 깨진 산통처럼 느껴졌다.
그 후 이십 년이 지난 지금은 연금복권이 생겼다. 요즘은 젊은이들 사이에 가장 인기가 있는 복권이다. 월 500만 원씩 20년을 매달 봉급처럼 연금처럼 지급된다. 로또 복권한 장 맞아서 금방 돈을 다 써버리고 오히려 불상사가 일어 종종 보도되는 사례들이 있다, 불확실한 시대에 매달 오백만 원이라는 안정된 돈이 들어오는 것이 매력이다.
주택복권, 연금복권 로또복권은 한 번도 맞지 않았지만, 이런 복권보다 더 좋은 복권을 딱 하나 맞은 것이 있다. 지급 기간은 눈꺼풀에 흙이 들어가지 않는 한 나온다. 평생 공무원 박봉으로 가계를 부도 내지 않아 잘살아주었다고 공무원연금 복권을 당첨시켜 준 것이다.
“준비하시고, 쏘셔요!”
복권 판처럼 천 각시 만 서방 시절 정신없이 빙빙 도는 내 마음에다, 조 단위까지 정중으로 맞춘 남편의 화살. 내 가슴에 꽂혀 있어 평생 행복하다. 크게 한번 운 좋게 맞은 복권은 남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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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습니다. 재미도 있고. 결미에 남편이 보내신 화살이 가슴에 꽂혔다는 표현이 압권입니다. 이제 조금만 퇴고하시면 더욱 좋은 글이 될 듯합니다.
감사합니다. 3박4일 진도섬 구석구석 지심을 밟다가 와서 정신이 몽룡한 상태로 쓴 글입니다 . 아무튼 숙제니까 했어요
허정 정성록님, 들꽃님의 수필을 지난번에 왜 못 읽었는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정말 감칠나게 수필을 쓰시는 에세이스트시네요. 계돈 복권이야기를 보여주시니,
어릴적 부모님이 계 타시고 계돈 부으시던 스토리가 생각나서 가슴이 뭉클합니다.
부도내지 않는, 평생 공무원연금 복권에 당첨 주셨다는 부군(남편분)의 비유는 절묘하십니다.
생활 수필을 쉽고 이해하기 편하게 전개하시니 읽는 독자도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깊은 사유가 없고 그냥 스토리 텔링입니다 , 안선생님의 글은 생각하게 하는데 저는 그냥 읽어 내려 가는글인 듯 해요 . 깊이 있는 글이 안되요. 성격대로 그냥 후딱 쓰는 버릇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