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 도덕경』
제 33 장. 知人者智(지인자지)
- 백서본 77장
남회근 : 자신을 아는 현명함
장치청 :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
주춘재 :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강한 사람이다
톨스토이 : 자신을 아는 자는 현명하다
오강남 : 자기를 아는 것이 밝음 – 참 자아의 발견
도올 김용옥 : 자기를 아는 자야 밝은 것이다
여운 이준호 : 진정한 앎이란?
33. 知人者智, 自知者明。勝人者有力, 自勝者強。知足者富。強行者有志。不失其所者久。死而不亡者, 壽。
사람의 됨됨이를 아는 것은(知人者) 지혜롭고(智), 스스로 아는 것을(自知者) 밝다고 한다(明). 사람을 이기는 것은(勝人者) 힘이 있어야 하지만(有力),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야말로(自勝者) 진정 강한 것이다(强).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아는 것이(知足者) 진정한 부자이다(富). 지치지 않고 힘써 행하는 것이(强行者) 뜻을 이룰 수 있음이다(有志). 그(其) 맡은 소임을(所) 잃지 않는(不失) 자야말로(者) 오래 갈 수 있다(久).죽어도(死而) 사라지지 않는 자야말로(不亡者) 오래 남는 것이다(壽).
He who knows other men is discerning; he who knows himself is intelligent.
He who overcomes others is strong; he who overcomes himself is mighty.
He who is satisfied with his lot is rich; he who goes on acting with energy has a (firm) will.
He who does not fail in the requirements of his position, continues long; he who dies and yet does not perish, has longevity.
知人者智(지인자지), 自知者明(자지자명)。
남 : 다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
장 :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고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밝다.
주 :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지혜로운 사람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참된 의미에서 총명한 사람이다.
톨 : 사람들을 아는 자는 이성적이고, 자신을 아는 자는 현명하다.
오 : 남을 아는 것이 지혜智라면, 자기를 아는 것은 밝음明입니다.
김 : 타인을 아는 자를 지혜롭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아는 자야말로 밝은 것이다.
여운 : 사람의 됨됨이를 아는 것은(知人者) 지혜롭고(智), 스스로 아는 것을(自知者) 밝다고 한다(明).
知(알지) - 알다, 알리다, 나타내다, 맡다, 대접하다, 사귀다, 친한 친구, 짝, 슬기, 지식, 앎.
人(사람 인) - 사람, 인간, 타인, 남자, 여자, 백성, 인격, 품성.
者(놈 자) - 놈, 사람, 타인, 물건, 것, 곳, 허락하는 소리, 여러, 무리, ~와 같다, 적다.
智(슬기 지) - 지혜(智慧ㆍ知慧), 재능(才能), 꾀, 기지(奇智), 모략(謀略).
自(스스로 자) - 스스로, 몸소, 저절로, 자연히, 진실로, 본연히, 처음, 시초.
知(알지) - 알다, 알리다, 알게 하다, 맡다, 주관하다, 사귀다, 슬기, 지혜, 지식, 앎.
明(밝을 명) - 밝다, 밝히다, 날이 새다, 명료하다, 똑똑하다, 깨끗하다, 희다.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 역시 나를 도서관이라는 감옥으로, 스스로 들어가게 만든 이유다. 지식은 무엇이고 지성 또는 지혜는 무엇이 다른가? 지식이 있으면 당연히 지혜롭지 않은가?
스스로 끊임없이 묻고 답을 찾았으나 쉬이 찾지 못했다. 그러다 알라딘 인터넷 중고 서점에서 무료배송 조건을 채우는 중에 일본 다마(多摩)대학 대학원 원자력 공학과 다사카 히로시(田坂広志, たさか ひろし1951~) 교수의 『슈퍼 제너럴리스트, SUPER GENERALIST : 지성을 연마하다』를 사서 단숨에 읽었다. 이 책은 지식에 대한 질문에 대한 어려운 문제를 쉽게 설명해준다. “왜 고학력자에게 지성이 느껴지지 않는가?”란 부제가 있다.
일본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그렇다. 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도쿄대나 서울대를 나와도 인간미와 지성미가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히로시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성이란 갈고 닦는 것이다.’ ‘지성과 사이비 지성이 공존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 학력은 일류, 명문대 졸업에 박사학위까지 있는 사람이 있다. 두뇌는 명석하고 논리적 사고에 능하다. 두뇌 회전도 빠르고 말재주도 여간 아니다. 데이터에도 강하고 책도 열심히 읽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사고에 깊이가 없다. 우리 주위에 ‘머리는 좋으나 사고에 깊이가 없는’ 사람은 나이와 상관없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고에 깊이가 없’기 때문에 이런 사람으로부터는 ‘지성적’인 분위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단적으로, ‘고학력’인데도 깊은 지성이 안 느껴지는 사람이 있는 이유는 지능과 지성의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인지하는 ‘지능(知能)’이란 답이 정해져 있는 물음에 대해 재빨리 정확한 답을 내놓는 능력이고, ‘지성(知性)’이란 답이 없는 물음에 대해 그 물음을 계속 되묻는 능력이다. 즉, 지성이란 좀처럼 답을 찾을 수 없는 것에 대해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물어가는 능력이다. 때로는 생애를 걸고 궁구해도 답을 얻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꾸준히 되묻는 능력이다. 지능이 높은 것과 지성과 지혜는 아무 관련 없는, 더더구나 서로 상반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지능은 오로지 ‘사지선다’의 답이 정해진 질문에 재빠르게 답하는 능력이라 한다. 그리고 일본의 관료 사회 역시 시험만 잘 치르는 능력을 보는 지능 주도형 사람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학력자일수록 지성과 지혜를 체득하기 전에 시험 치는 능력만 중시하다 보니 엘리트 직업을 독점하는 이유라고 밝히고 있다. 지혜란 지능이 아닌 지성인이 풍부한 삶의 경험을 통해 획득하는 고도의 능력이라고 한다.
그러한 연유로 지능만 뛰어난 사람은 “사람의 됨됨이를 아는 것 같은(知人者) 지혜가(智) 있을 수” 없다. 지혜가 없기에 스스로 아는 것을(自知者) 밝다고(明) 하는 경지에는 더더욱 다다를 수 없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아라! 함은 자기를 객관화할 수 있는 성찰과 반성의 능력이다. 성찰과 반성은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은 상태에서는 불가하다. 왜냐면 내 탓은 하나도 없고 세상 탓이 관성화, 습관화되었기에 그렇다. 내가 이렇게 된 까닭은 부모를 잘 못 만나서, 시대를 잘 못 만나서, 친구를 잘 못 만났기 때문이다. 내 탓은 없고 모두 남 탓으로만 돌린다. 남 탓으로 돌리기에 그것은 성찰과 반성이 될 수 없다. 그러니 나를 안다는 것은, 나와 만물과의 비교를 통해 얻은 정보와 엄청난 깨달음이 있는 지명(知明)의 경지이다. 욕망과 탐욕이 지배하는 좁은 시각을 갖고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인 것이다. 노자는 자지(自知), 자승(自勝), 지족(知足), 강행(强行)을 통한 지혜를 얻으라 한다.
勝人者有力(승인자유력), 自勝者強(자승자강)。
남 : 다른 사람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뜻이 강하다.
장 :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고,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주 :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 분명하지만, 자기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진정 강한 사람이다.
톨 : 다른 사람을 이기는 자는 강하고, 자신을 이기는 자는 강력하다.
오 : 남을 이김이 힘 있음有力이라면, 자기를 이김은 정말로 강함强입니다.
김 : 타인을 이기는 자를 힘세다 할지 모르지만 자기를 이기는 자야말로 강한 것이다.
여운 : 사람을 이기는 것은(勝人者) 힘이 있어야 하지만(有力),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야말로(自勝者) 진정 강한 것이다(强).
勝(이길 승) - 이기다, 뛰어나다, 훌륭하다, 넘치다, 지나치다, 바르다, 곧다, 이김.
有(있을 유) - 있다, 존재하다, 가지다, 독차지하다, 많다, 넉넉하다, 소유.
力(힘 역) - 힘, 하인, 일꾼, 인부, 군사, 힘쓰다, 심하다, 힘주다, 애써.
強(강할 강) - 강하다, 굳세다, 힘쓰다, 굳다, 거스르다, 세파다, 권하다, 세도, 억지로.
경쟁(競爭, competition)은 대상과 목표가 있어야 가능하다. 경제학은 자원은 한정되어있고, 이걸 차지하는 사람은 많기에 경쟁은 필수 불가결한 문제라고 정의한다. ‘A’라는 재화를 차지하기 위해 그걸 똑같이 욕망하고 갈구하는 누군가와 나는 경쟁해야만 쟁취할 수 있다. 시장을 구분하는 방식으로 경쟁을 설명하는 경제학에서 가장 대표적인 건 완전경쟁시장과 불완전경쟁시장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불완전경쟁시장의 경우 다시 독점적경쟁시장, 과점시장, 독점시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독점을 막기 위해서는 완전경쟁시장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시장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독점시장을 추구하는 국영기업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경제학을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했다면 끔찍했을 것이다. 경제학은 인간은 이기적인 호모 에코노미쿠스(Homo-economicus)를 전제한다고 했다.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은 전부 침팬지만 있다는 가정하에서 성립한다. 나는 골프라는 운동을 싫어한다. 알다시피 골프는 개인과 개인의 경쟁이다. 내가 잘하는 것도 있지만, 남이 잘 못 돼야만 통쾌하다. 상대방이 OB(out of bounce)가 나고, 해저드에 빠져야 통쾌하다. 그리고 꼭 돈 내기를 한다.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행위가 놀음이다. OB가 나고 해저드에 빠져 양파가 났는데 돈까지 줘야 한다. 그러면서 골프는 매너가 생명인 게임이라고 강조한다. 내가 늘 자본주의가 유일하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신용(Credit)을 지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경제학의 경쟁은 자발적 행위에 의한 무위가 아니라 이기적인 선택과 결정을 막기 위한 수단으로 작동한다. 중요 국가사업을 국영화하는 이유는 사회복지가 지향하는 서비스의 개념이다. 완전경쟁시장에 맞기는 민영화는 침팬지에게 바나나를 갖다 바치는 것이다. 공공개념과 사유 개념의 구분이야말로 침팬지와 인간을 구분하는 요인이다. 침팬지는 공공재라는 개념이 없다. 이기적인 인간은 공공재와 사적재를 구분하지 않는다. 공공재는 오로지 사적재에 지나지 않는다. 독점욕은 침팬지들이 가지는 동물적 본능이다. 힘과 에너지를 통해서 시장이라는 밀림에서 경쟁하여 이기는 것이 합법화된 제도가 자본주의이다. “사람을 이기는 것은(勝人者) 힘이 있어야 하지만(有力), 스스로 이겨내는 것이야말로(自勝者) 진정 강한 것이다(强).” 스스로 욕망을 억누르고 탐욕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 그것이 노자는 진정 강한 것이라 한다. 그러나 내가 가진 욕망과 탐욕만 누르고 무임승차자만 이익을 본다면 그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욕망과 탐욕을 누르고 사는 사람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갖춰져야만 한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쳐 독립운동 했던 분들은 삼대가 가난하다.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들이 세상을 지배한다면 공멸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노자는 선자(善者)와 불선자(不善者)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기와 탐욕에 찌든 털 없는 침팬지를 구분하여 처벌하고 응징하는 것이야말로 정의가 힘이 되는 진정한 강함이다.
知足者富(지족자부), 強行者有志(강행자유지)。
남 : 만족함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강하다.
장 :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다.
주 : 만족할 줄 알아야 넉넉한 사람이지만,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뜻을 이룰 수 있다.
톨 : 자신에게 만족하는 자는 부유하다. 자신의 행동에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오 : 족하기를 아는 것이 부함富입니다. 강행하는 것이 뜻있음有志입니다.
김 : 족함을 아는 자래야 부유한 것이요, 행함을 관철하는 자래야 뜻이 있는 것이다.
여운 : 분수를 지켜 만족할 줄 아는 것이(知足者) 진정한 부자이다(富). 지치지 않고 힘써 행하는 것이(强行者) 뜻을 이룰 수 있음이다(有志).
足(발 족) - 발, 뿌리, 근원, 산기슭, 그치다, 머무르다, 가다, 넉넉하다, 족하다, 이루다.
富(부유할 부) - 부유하다, 가멸다, 성하다, 풍성하다, 부자, 행복.
行(다닐 행/항) - 다니다, 가다, 행하다, 보다, 유행하다, 돌다, 길, 도로, 여행, 일, 먼저,
志(뜻 지/치) - 뜻, 마음, 본심, 사사로운 생각, 감정, 뜻하다, 절개가 있다.
주역의 계사전에 窮卽變, 變卽通, 通卽久(궁즉변, 변즉통. 통즉구)라는 말이 나온다. 궁색(窮塞)해지면 변화(變化)하여야 한다. 변화해야만 숨통(通)이 트이게 되는 것이다. 숨통이 통하니 오래(久)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자연의 이치는 에너지를 많이 쓸수록 일찍 죽는 법이다. 태양 같은 주계열성은 100억 년을 살다 간다.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질량이 큰 별은 R136a1이라는 별이다. R136a1은 태양보다 315배에 이르는 질량을 갖고 있으며 밝기는 태양보다 무려 900만 배다. 하지만 질량과 밝기에 비해 크기 차이는 작고 R136a1은 태양보다 30배 정도 크기다. 수명은 수백만 년 정도면 끝난다. 크고 많고를 추구하면 끝이 없다. 왜냐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경제학 이론에서 소비의 비가역성은 소득이 증가함에 따라 높아진 소비 수준이 소득이 감소할 때 이전의 소비 수준으로 낮아지지 않는 성질을 말한다. 한 번 과소비 또는 과시 소비에 중독되어 습관화되면 쉽게 소비를 줄일 수 없는 현상이다. 내가 체득한 방법 역시 만족하는 것이다. 특히, 남과 비교하는 습관을 버려야 한다. 비참한 감정은 누군가와 나와의 격차를 비교해서 열등하다고 느낄 때 생기는 감정이다. 우리의 친 사회성의 단점 중 하나는 남과의 비교를 통해 스스로 불행을 즐기는 행위이다. 비교하지 않음으로써 불행하지 않다. 행불행 역시 남과의 비교를 통해 전달되는 감정이다. 만족은 나와의 승리이다. 오로지 “지치지 않고 힘써 행하는 것이(强行者) 뜻을 이룰 수 있기(有志).” 때문이다. 안분지족(安分知足)하면 안빈낙도(安貧樂道)할 수 있다. 그게 자연의 이치이자 섭리이다.
不失其所者久(부실기소자구)。死而不亡者壽(사이불망자수)。
남 : 그 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 가고, 죽어도 망하지 않는 사람은 장수한다.
장 : 자신의 자리를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가고, 죽어서도 잊혀지지 않는 사람은 오래 산다.
주 : 절제를 잃지 않는 사람은 무슨 일이든 오래 지속할 수 있다. 도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그 정신이 영원하다.
톨 : 자신의 목적에서 물러나지 않는 자는 오래 산다. 죽음 이후에도 파괴되지 않는 자는 영원하다.
오 : 제자리를 잃지 않음이 영원久입니다. 죽으나 멸망하지 않는 것아 수壽를 누리는 것입니다.
김 : 바른 자리를 잃지 않는 자래야 오래가는 것이요. 죽어도 없어지지 않는 자래야 수壽하다 할 것이다.
여운 : 그(其) 맡은 소임을(所) 잃지 않는(不失) 자야말로(者) 오래 갈 수 있다(久).죽어도(死而) 사라지지 않는 자야말로(不亡者) 오래 남는 것이다(壽).
不(아닐 불/부) - 아니다, 아니하다, 못하다, 없다, 말라
失(잃을 실) - 잃다, 잃어버리다, 달아나다, 도망치다, 남기다, 어긋나다, 잘못, 놓다.
其(그 기) - 그, 그것, 만약, 어찌, 이미, 이에, 마땅히.
所(바 소) - 바, 것, 곳, 처소, 지위, 자리, 위치, 기초, 도리, 경우, 얼마.
者(놈 자) - 놈, 것, 곳, 사람.
久(오랠 구) - 오래다, 길다, 오래 기다리다, 오래 머무르다, 가리다, 막다, 변하지 아니하다.
死(죽을 사) - 죽다, 생기가 없다, 활동력이 없다, 죽이다, 다하다, 목숨을 걸다.
而(말 이을 이) - 말을 잇다, 같다, 너, 자네, 만약, 따름, 그리고.
不(아니 불/부) - 아니다, 아니하다, 못하다, 없다, 말라, 아니하냐, 불통.
亡(망할 망) - 망하다, 멸망하다, 도망하다, 잃다, 없애다.
壽(목숨 수) - 목숨, 수명, 장수, 머리, 오래 살다.
그 맡은 소임은 자지(自知)의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사람, 자승(自勝)의 자기감정과 욕망을 다스리는 사람, 그리고 지족(知足)의 자기 분수를 알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오래 갈 수 있다. 한국의 정치 형태는 지금 그야말로 반대로 가고 있다.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국민을 섬겨야 할 자리에 있는 자들이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고 소수의 정치 깡패에게 놀아나고 있다. 법과 정의는 사라지고 오로지 자신들의 정치적 자리 유지에 급급하다. 망국의 길로 가고 있다. 자신들의 소임을 망각하고 스스로 생명을 단축하고 있다. 정치는 국민을 지배하는 침팬지가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을 섬기고 불의를 다스리라 국민의 권리를 대신 부여한 것이다. 자신들이 가진 지능을 맹신하여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국가 공권력을 무지막지하게 사적재로 사용하고 있다. 노자는 경고한다. 오래 갈 수가 없다(不久). 지성과 지혜가 있는 자는 지금을 잘사는 것뿐 아니라 오래 무탈하게 살아가는 법을 체득한 자이다. 그러기에 허물을 남기지 않는 법이다. 허물을 쌓고 그것을 힘으로 덮으려 하는 자는 어느 역사에서도,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교훈으로 남겨주었다.
한글비교역주 참고 문헌
남회근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 – 번역 설순남
남회근(Nan Huai-Chin, 南懷瑾, 1918~2012) 선생을 소개한다. 본문에는 [남 : ~ ]으로 표기되었다. 부·키 출판사에서 2012년 초판 출판되었다. 1987년 남회근 선생의 『노자타설(老子他說) 상·하』본으로 ‘남회근 저작선 5’의 시리즈물이다.
남회근 선생은 중국의 승려, 종교학자, 작가이다. 현대 중국에서 존경받는 영적 스승인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중국 불교 부흥의 주요 세력으로 여겨졌다. 1918년 절강성 온주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서당 교육울 받으며 사서오경을 읽었다. 17세에 중국 항주 국술원에 들어가 각 문파 고수들로부터 무예를 배우는 한편 문학, 서예, 의약, 천문 등을 익혔다.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자 사천(四川)으로 내려가 장개석이 교장으로 있던 중앙군관학교에서 교관을 맡으며 사회복지학을 공부하였다. 교관으로 일하던 시절 선생에게 영향을 준 스승 원환선(袁換仙, 1887~1966)을 만나 삶의 일대 전환을 맞는다.
1942년 25세에 원환선이 만든 ‘유마정사’에 합류하여 수석 제자가 되었고, 스승을 따라 근대 중국 불교계 중흥조로 알려진 허운(虛雲, 1840~1959) 선사(先師)의 가르침을 배웠다. 불법을 더 깊이 공부하기 위해 중국 불교 성지 아미산에서 폐관 수행하면서 대장경을 독파하였고, 이후 티베트로 가서 여러 종파 스승으로부터 밀교의 정수를 전수 받고 수행경지를 인증받았다. 1947년 고향으로 돌아가 절강성 성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던 문연각 사고전서와 백과사전인 고금도서집성을 열람하고, 이후 여산 천지사 곁에 오두막을 짓고 수행에 전념하였다. 전쟁이 끝난 후 1949년 봄 대만으로 건너가 문화대학, 보인대학 등과 사회단체에서 강의하면서 수련과 저술에 몰두하였다.
1985년 미국으로 건너가 동서학원을 창립하였고, 1988년 홍콩을 거주지를 옮겨 칠 일간 참선을 행하는 선칠 모임을 이끌며 교화사업을 하였다. 1950년대 대만으로 건너간 후부터 일반인과 전문가를 대상으로 유불도가 경전을 강의하며 수많은 제자를 길렀고, 강의 내용을 바탕으로 40여 권이 넘는 책을 출간하여 동서양 많은 독자들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선생의 강의는 유불도를 비롯한 동양사상과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깊은 수행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엄중한 가르침, 철저히 현실에 기초한 삶의 자세, 사람을 끌어당기는 유머를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있다. 2006년 이후 중국 강소성 오강시에 태호대학당을 만들어 교육사업에 힘을 쏟다가 2012년 9월 29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부키 – 2013년 1월 8일 초판
번역 - 설순남
서울대학교 중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사회과학원에서 방문학자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성결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다. 저서로 『황준헌 시선』이 있고, 옮긴 책으로 『대학 강의』 『맹자와 공손추』 『노자타설』 『맹자와 양혜왕』 『약사경 강의』 등이 있다.
2. 장치청 『도덕경 완전해석』 - 번역 오수현
두 번째로 소개할 장치청(張其成장기성, Zhang-Qicheng, 1959~) 교수로 본문에는 [장 : ~ ]으로 표기되었다. 중국 고전 연구의 권위자이자 역학과 중의학 분야의 석학이자 대중적인 양생 전문가로도 유명하다. 북경중역국학원 원장과 북경중의약대학 경영대학원 원장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북경대학·청화대학 특별 초빙교수로 강의하고 있으며, 중국 관영 방송 CCTV, 북경 TV 등에서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학문의 대중화 작업에도 힘쓰고 있다.
국가급 무형문화 유산 명의 ‘북송의 장일첩(張一帖, 1130~1200)’ 가문의 제15대 계승자로, 훈고학의 대가 베이징중의학대학 교수 첸차오천(錢超塵, 1036~2022)과 역학의 대가 베이징대학 철학과 주보쿤(朱伯崑, 1923~) 교수에게 사사했다. 1992년 중국 최초로 『역학대사전』, 『역경응용대백과』 등을 편찬했고, 《역도주간》을 창간하여 유교, 도교, 불교, 의학과의 융합적인 차원에서 ‘역(易)’에 접근하고자 했다. 2003년부터 북경대학에서 기업인들을 대상으로 고전 강의를 시작했으며, 멘토제 서원을 세워 ‘중국학의 지혜를 적용한 경영모델’ ‘오행을 통한 인재관리 시스템’을 제시했다. 국가급 석사 교재 『중국전통문화개론』을 편찬하는 등 현재까지도 국학 5대 경전 『주역』, 『논어』, 『도덕경』, 『육조단경』,『황제내경』을 강연하는 ‘고전멘토’로 활동 중이다. 2009년에는 “현대 국학의 선두 주자” 중 하나로 선정되어 “국학 연구의 일인자”로 칭송받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주역 완전 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논어 완전 해석』, 『육조단경 완전 해석』, 『황제내경 완전 해석』, 『역경 양생 대도』, 『유가 양생대도』, 『불가 양생대도』, 『도가 양생대도』, 『주역 인생 지혜』 등 다수가 있다. (yes 24 작가소개)
판미동 - 2022년 2월 7일 1판 1쇄 찍음
옮긴이 - 오수현
숙명여대 중어중문과를 졸업하고, 중국 산동과기 직업전문대학 한국어과 교사, ㈜효성, KELLEY ASSOCIATES를 거쳐 현재는 바른번역 소속 출판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주역 완전해석』, 『황제내경, 인간의 몸을 읽다』, 『자치통감: 천년의 이치를 담아낸 제왕의 책』, 『주역에서 경영을 만나다』, 『나의 최소주의 생활』, 『나는 왜 작은 일에도 상처받을까』, 『시의 격려』, 『세포가 팽팽해지면 병은 저절로 낫습니다』, 『오늘, 뺄셈』, 『중국은 무엇으로 세계를 움직이는가』, 『비즈니스 삼국지』 , 『똑똑한 리더의 공자 지혜』, 『똑똑한 리더의 노자 지혜』 외에도 다수가 있다.
3. 주춘재 『만화 도덕경』 - 번역 박영재
세 번째로 소개할 분은 저우춘차이(周春才 1957- ) 선생이다. 본문에는 [주 : ~]
1957년 중국 베이징에서 출생한 화가이자 작가로 오랫동안 중국문화의 연구와 대중화에 전념해왔다. 서양 문화와 비교를 통해 과학과 철학을 포함한 방법론적인 측면에서 새롭고 참신한 해석을 전개해 내외의 주목을 모았다. 만화를 넘어서는 풍부한 내용과 생동감 있는 작품 이미지로 광범위한 전문가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십여 개의 언어로 작품이 번역 출판되었다. 대표작으로는 《예기 : 모두들 알지만 아무도 안 본 사서오경》, 《만화 주역》, 《만화 논어》, 《만화 노자》, 《만화 장자》, 《화설 황제내경》 등이 있다. (yes 24 작가소개)
가갸날 - 2021년 8월 10일 초판
번역 박영재
고려대학교와 타이완 정치대학교 동아시아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다.
4. 러시아 최초의 완역본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 최재목 역주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러시아어: Лев Николаевич Толстой, 영어: Lev Nikolayevitch Tolstoy, 1828~1910) 러시아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이다. 본문에는 [톨 : ~ ]로 표기. 러시아의 소설가이자 시인이자 사상가이다. 도스토옙스키와 함께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손꼽힌다.
1828년 9월 9일, 러시아 남부의 야스나야 폴랴나에서 톨스토이 백작 집안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2살과 9살 때 각각 모친과 부친을 여의고, 이후 고모를 후견인으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교육을 받았고, 16세가 되던 1844년에 까잔 대학교 동양어 대학 아랍·터키어과에 입학하였으나 사교계를 출입하며 방탕한 생활을 일삼다 곧 자퇴해 1847년 고향으로 돌아갔다. 진보적인 지주로서 새로운 농업 경영과 농노 계몽을 위해 일하려 했으나 실패로 끝나고 이후 3년간 방탕하게 생활했다. 1851년 맏형이 있는 카프카스에서 군인으로 복무했다.
1852년 문학지 [동시대인]에 처녀작인 자전소설 중편 「유년 시절」을 발표하여 투르게네프로부터 문학성을 인정받기도 하였다. 1853년에는 『소년 시절』을, 1856년에는 『청년 시절』을 썼다. 1853년 크림전쟁이 발발하여 전쟁에 참여했다. 당시 전쟁 경험은 훗날 그의 비폭력주의에 영향을 끼쳤다. 크림전쟁에 참전한 경험을 토대로 『세바스토폴 이야기』(1855~1856)를 써서 작가로서의 명성을 확고히 했다.
이듬해 잡지 『소브레멘니크』에 익명으로 연재를 시작하면서 작가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작품 집필과 함께 농업 경영에 힘을 쏟는 한편, 농민의 열악한 교육 상태에 관심을 갖게 되어 학교를 세우고 1861년 교육 잡지 [야스나야 폴랴나]를 간행했다. 1862년 결혼한 후 문학에 전념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등 대작을 집필, 작가로서의 명성을 누렸다. 1859년에 고향인 야스나야 폴랴나에 농민학교를 세우는 등 농촌 계몽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으며 농민학교를 세웠다.
34세가 되던 1862년에 소피야 안드레예브나와 결혼하여 슬하에 모두 13명의 자녀를 두었다. 볼가스텝 지역에 있는 영지를 경영하며 농민들을 위한 교육사업을 계속해 나갔다. 1869년 5년에 걸쳐 집필한 대표작 『전쟁과 평화』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1873년에는 『안나 카레니나』의 집필을 시작해 1877년에 완성했으며, 1880년대는 톨스토이가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크로이체르 소나타』,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 등의 작품이 쓰인 시기도 바로 이때이다.
그러나 이 무렵 삶에 대한 회의에 시달리며 정신적 위기를 겪었다. 그리하여 1880년 이후 원시 기독교 사상에 몰두하면서 사유재산 제도와 러시아 정교에 비판을 가하고 『교의신학 비판』, 『고백』 등을 통해 ‘톨스토이즘’이라 불리는 자신의 사상을 체계화했다. 사십대 후반 정신적 위기를 겪으며 삶과 죽음 그리고 종교 문제를 천착하면서 작품세계의 분수령이 되는 『참회록』(1879)을 내놓았고, 정치, 사회, 종교, 사상적 문제들에 관해 계속해서 저술하고 활동했다. 또한 술과 담배를 끊고 손수 밭일을 하는 등 금욕적인 생활을 지향하며, 빈민 구제 활동도 했다.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고, 중편 『이반 일리치의 죽음』(1886)과 『크로이처 소나타』(1889)를 통해 깊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으며, 말년까지도 『예술이란 무엇인가』(1898)와 『부활』(1899)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인 작가로서의 면모를 과시했다.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그 자신은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이었으나, 『바보 이반과 그의 두 형제 이야기』,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에게 땅이 많이 필요한가?』, 『세 가지 질문』 등의 집필을 통해 러시아 귀족들이 너무 많은 재산을 갖고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민중들이 가난하게 살고 있음을 비판하는 문학 활동을 하여, 러시아 귀족들의 압력으로 『참회록』과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의 출판 금지를 당했다.
하지만 독자들은 필사본이나 등사본으로 책을 만들어서 몰래 읽었고, 유럽, 미국, 아시아에 있는 출판사들이 그의 작품을 출판하여 외국에서는 그의 작품이 유명한 베스트 셀러가 되었다. 극단적인 도덕가가 되어 1880년 이후에 낸 일련의 저술에서 국가와 교회를 부정하고, 육체의 나약함과 사유재산을 비난하는 의견을 발표했다. 저작물에서 개인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 부도덕하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저작권을 포기하는 선언을 했고(1891), 1899년 종교적인 전향 이후의 대표작 『부활』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러시아에서 출간되자마자 독일, 영국, 프랑스 등에서도 번역되었으며, 출판으로 인한 수익은 당국의 탄압을 받던 두호보르 교도를 캐나다로 이주시키는 데 쓰였다.
1901년 『부활』에 러시아 정교를 모독하는 표현이 들어 있다는 이유로 종무원(宗務院)으로부터 파문을 당했다. 노년에 접어들어서도 왕성한 집필 활동을 통해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1886), 『크로이처 소나타』(1889), 『예술이란 무엇인가』(1897), 『부활』(1899) 등을 계속해서 발표했다. 사유재산과 저작권 포기 문제로 시작된 아내와의 불화 등으로 고민하던 중 1910년 집을 떠나 폐렴을 앓다가 현재 톨스토이 역이 되어 있는 아스타포보 역장의 관사에서 82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임종 때 아내를 보기를 거부한 톨스토이의 마지막 말은 “진리를…… 나는 영원히 사랑한다…… 왜 사람들은……”이었다.
귀족의 아들이었으나 왜곡된 사상과 이질적인 현실에 회의를 느껴 실천하는 지식인의 삶을 추구했다. 그는 고귀한 인생 성찰을 통해 러시아 문학과 정치, 종교관에 놀라운 영향을 끼쳤고, 인간 내면과 삶의 참 진리를 담은 수많은 걸작을 남겨 지금까지도 러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다. 인간과 진리를 사랑했던 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세계 문학의 역사를 바꾼 걸작들을 남긴 소설가이자 인도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에까지 영향을 준 ‘무소유, 무저항’의 철학을 남긴 사상가였다. 톨스토이의 작품만이 지닌 문체와 서사적 힘은 지금 보아도 여전하다. 특히 소설 속 아름다운 풍경 묘사와 이야기의 서사성, 섬세한 인물 심리 묘사 등이 돋보이며, 오늘날까지도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세계적 문호로 인정받고 있다. (yes 24 작가소개)
그러나 그가 『노자, 도덕경』에 관심이 많았고, 또한 최초로 러시아어 완역서『노자, 도덕경』을 남겼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거의 없다. 톨스토이는 말년에 부처와 불교, 노자와 공자에 심취하였다. 특히 그는 『노자, 도덕경』의 ‘도道’와 ‘무위(無爲)’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무위사상은 바로 그의 무저항, 박애, 비폭력 평화주의와 공명하는 것이었다.
톨스토이는 러시아어로 된 『노자, 도덕경』 완역본을 희망한지라 여러 차례 번역을 시도하였다. 마침 모스코바 대학에 유학 와 있던 일본인 고니시 마스터로를, 그의 지도교수인 그로트(톨스토이 친구)를 통해서 만나, 1892년 11월부터 1893년 3월에 걸쳐서 『노자, 도덕경』의 러시아 역을 완성한다. 이것이 러시아 최초 완역 『노자 도덕경』이다. (본문 중)
21세기문화원 - 2021년 1월 20일 1쇄 인쇄
역주 - 최재목
영남대 철학과 교수. 일본 츠쿠바筑波대학원에서 문학석사·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동안 하버드대 · 도쿄대 · 베이징대 · 라이덴대 등에서 연구하였다.
‘한국양명학회장’ 및 ‘한국일본사상사학회장’을 지냈다. 전공은 동아시아 양명학 비교(동아시아사상사비교)이며, 저·역서와 감수한 책으로는 『톨스토이가 번역한 노자, 도덕경』, 『근대 일본의 양명학』, 『나는 나대로 살았다 어쩔래』(제8시집), 『풍수 환경학』, 『불교 도상학』 등 50여 권이 있다.
5. 『오강남 풀이 도덕경』
종교학자 오강남(1941~) 교수님이시다. 82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계신 존경하는 스승이시기도 하다. 본문에는 [오 : ~ ]로 표기.
현재 캐나다 리자이나 대학교(University of Regina) 비교종교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북미와 한국을 오가며 집필과 강연을 하고 있다. 더불어 ‘종교너머, 아하!’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서울대학교 종교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캐나다 맥매스터(McMaster) 대학교에서 「화엄華嚴 법계연기法界緣起 사상에 관한 연구」로 종교학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그동안 북미 여러 대학과 서울대·서강대 등에서 객원교수, 북미한인종교학회 회장, 미국종교학회(AAR) 한국종교분과 공동의장을 역임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노장사상을 풀이한 『도덕경』, 『장자』, 종교의 이해와 분석을 담은 『예수는 없다』, 『세계종교 둘러보기』 『불교, 이웃 종교로 읽다』, 『종교 너머, 아하!』가 있으며, 최근 인생과 종교에서의 깨달음을 담은 『움켜쥔 손을 펴라』, 『오강남의 그리스도교 이야기』를 펴냈다. 번역서로서는 『종교다원주의와 세계종교』, 『살아계신 붓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귀향』, 『예언자』, 『예수 하버드에 오다』, 등이 있다.
현암사 – 개정판 2010년 3월 15일
6. 도올 김용옥 역주 『노자가 옳았다』
도올 김용옥(金容沃, 1948~)선생은 대한민국의 철학자, 종교학자, 사상가, 한의사, 대학 교수이다. 본관은 광산. 호는 도올(檮杌)이다. 본문 [김 : ]으로 표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천안 대흥동에서 광제의원을 운영한 집안의 6남매 중 막내로 자랐다. 초등학교를 천안에서 졸업하고, 보성중·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고려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하였고, 한국신학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한 후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72년 9월 중화민국으로 가서 국립 타이완 대학 철학연구소에서 2년간 수학하면서 〈노자 "자연" 철학에서의 "무위" 의 기능(老子「自然」哲學中「無爲」之功能)〉이라는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4년 일본으로 가서 1977년까지 도쿄 대학 대학원 중국철학과에서 수학하며 〈왕선산의 동론(王船山の動論)〉이라는 논문을 발표하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7년에 미국으로 가서 펜실베니아 대학교 동방학과 대학원과 하버드 대학교 동아시아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는데, 하버드에서 〈왕부지王夫之의 철학, The Philosophy of Wang Fu-zhi(1616~1692)〉이라는 제목의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90년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학과에 입학하여 한의학사학위도 취득하였다.
대학교수, 철학자, 사상가, 언론인, 한의사, 연출가, 시나리오 작가, 희곡 작가, 극단의 단원 등 다양한 정체성으로 활동하였다. 동, 서양 철학과 종교사상까지 다양한 학문적 탐구와 저작 활동을 벌였다. 1982년 9월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철학과 부교수가 되고 1985년 9월에는 동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1986년 양심선언(‘한국의 오늘을 사는 한 지성인의 양심선언’)을 하며 고려대학교 교수직을 사퇴한 후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문학 등을 강의했다. 1988년 무렵부터 방송 강연에 출강하였다.
그는 문화계에서도 몇 가지 활동을 했다. 악서고회(樂書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국악을 콘템포러리 뮤직으로 승화시키는 다양한 기초작업을 하였다. (1984년 3월~1987년 12월). 한국의 전통음악을 이끄는 대표적 주자, 백대웅, 김혜숙, 박범훈, 송방송, 이성천, 권오성, 최종민, 이보형, 양승희 등이 참여했다. 이후 한대수와 록 콘서트를 가지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도도회(檮濤會)라는 모임을 만들어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한국화 교수들과 그 대학 출신 화가들(이종상, 김병종, 김호득, 장상의, 심현희, 장혜용, 이민주 등)과 정기적인 활동을 했다. (1988년 6월~1999년 6월)
영화와 연극 활동도 했는데 대중의 사랑을 받는 마당극으로 유명한 극단 ‘미추’를 손진책, 김성녀와 함께 창단(1986년 8월)하여 전통과 현대를 접목시키는 많은 연극 작업을 했다. 《시간의 그림자》, 《그 불》 등을 직접 연출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잠시 영화인 심포지움을 만들어 유현목, 김수용, 임권택, 이장호, 김호선, 하명중, 정지영, 박광수, 이두용, 황기성 등과 활동했다. 이후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 《개벽》, 《취화선》의 대본을 썼고, 특히 《취화선》은 2002년 55회 깐느영화제 감독상을 획득하였으며 《개벽》에서 타이틀롤을 맡은 이덕화는 본인(김용옥)이 진행자로 활동 중인 KBS 2TV 《도올학당 수다승철》에 게스트로 출연했다. 《취화선》과 《왕의 남자》의 자막은 직접 영역했다.
유기화학자 친형 김용준과 함께 신과학운동 세미나를 주도하고, 대우재단지원 과학사상연구회(科學思想硏究會)를 설립했다. (1984년 3월~1990년 2월) 한국의 대표적인 과학자, 과학사상가들(조순탁, 이성범, 장회익, 김두철, 서정선, 신중섭, 이봉재 등)이 참여했으며 이후 꾸준히 과학과 철학이라는 학술지를 출간했다.
1989년에는 한국사상사연구소(Korean Institute of Classical Studies)를 세워 한국고전 최초의 일자색인인 《삼국유사인득》을 출간했다. 이 작업은 후에 제자 김현 교수의 방대한 《조선왕조실록》 전체 한글번역 프로그램인 CD-ROM작업으로 이어져 한국학의 신기원을 세웠을 뿐 아니라, 한류의 원류인 사극 드라마들의 희곡작업의 근간을 이루었다.
1993년에는 도올서원을 세워 15기에 걸쳐 3,000여 명의 학생을 배출해 한학의 배경을 가진 우수한 인재들이 이 사회에서 활약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민족문화추진회의 한국고전국역사업을 지원하였고, 그 기관은 이후 한국고전번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에는 태권도철학세미나를 개최하여 무술의 본질과 태권도 문화의 세계화를 논하였다. 유병관, 양진방, 김영선, 김용범, 최의정, 임신자, 바비 클레이튼(Bobby Clayton), 스티븐 카프너(Steven D. Capener) 등이 참여했고 이 세미나의 결과물로 《태권도철학의 구성원리》를 집필, 출간했다. 이 작업의 정신과 성과는 이후 무주 태권도공원으로 이어졌다.
한의대 졸업 후 ‘도올한의원’을 개원하여 2년간 활동하기도 하였다. 또 언론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는데 중앙일보에는 《도올고함(檮杌孤喊)》이라는 칼럼을, 중앙선데이에는 《도올의 도마복음 이야기》(신발굴 성서자료)를 연재하였다. (위키피아)
통나무 – 2020년 10월 9일 출간
마지막으로 영어 번역본을 실었다. 아마도 그의 번역본을 영국의 위대한 철학자인 화이트헤드와 그의 제자인 노벨 문학상 수상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읽었다. 러셀은 1920년 북경대학에서 1년간 철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리고 독일의 실존철학자 카를 야스퍼스(1883~1969), 마르틴 하이데거(1889~1976) 등이 읽었다. 아마 수많은 서양의 지식인들이 작은 분량의 동양고전을 접하고 충격에 휩싸였을 것이다.
청나라 말에 선교사로 왔다가 중국 고전의 깊은 뜻에 놀라 일부 청나라인들의 도움을 받아 중국 고전을 영문으로 번역한 제임스 레게의 영문본을 찾아 옮겨 보았다.
제임스 레게(James Legge, 1815~1897)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영국의 언어학자, 선교사, 생물학자, 번역가이다. 그는 중국 고전 텍스트를 영어로 번역한 초기 번역가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Legge는 말라카와 홍콩에서 런던 선교사 협회 (1876-1897)의 대표로 봉사했으며 영국 옥스퍼드대학 최초의 중국학과 교수 (1875-1879)였다. Max Müller와 함께 그는 기념비적인 동양의 신성한 책 시리즈를 썼다. (위키피아)
첫댓글 오늘 새벽부터 책임감 없는 침팬지들이 내 잠을 깨웠다! 그리고 실수라고 한다!
이게 짐승만도 못한 새끼들이 늘 하던 짓이다! 제발! 도덕경을 제대로 읽고 침팬지를 구분해야 공동체의 폭망을 막는다! 무지하면 다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