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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프의 기원 ]
골프는 다른 스포츠와는 달리 창시자나 그 기원이 확실하지 않다. 골프가 언제부터 시작
되었는지는 정확한 역사적 자료가 없어 그 유래를 상세히 알 수는 없다.
네델란드에서 아이스하키 비슷한 놀이가 스코틀랜드로 건너가 그것이 골프로 변화되었다고
하는 설과, 스코틀랜드의 양치는 목동들이 돌맹이를 던지고 놀던 것이 점차 영국에 보급되
기 시작 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역사적 근거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지금 현재로서는 스코
틀랜드 기원설이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 들여지고 있다.
스코틀랜드 기원설
스코틀랜드의 양치기 소년들이 양떼를 돌보면서 스틱으로 돌을 쳐서 들토끼의 구멍에 넣으
며 즐긴것이 골프의 시초라고 흔히 말한다. 하지만 이 양치기 소년의 골프 설(說)은 사실(史
實)에 그 근거를 찾기는 힘들다. 네덜란드 기원설도 있지만, 유럽대륙에 유사한 놀이는 있었
고 그것에 영향을 받아 스코틀랜드에서 독자적으로 육성되었다는 견해가 유력하다. 그런 의
미에서 골프는 스코틀랜드에서 생긴 구희(球戱)라는 설(說)이 유력하다.
13세기말 스코틀랜드의 양모상인(洋毛商人)들은 네덜란드와 교역을 했었는데 당시네덜란드
에서는 얼음 위에서 '롱 노즈(long nose)' 라고 부리우는 스틱을 사용을 하여 볼을 치는 게
임 즉 '숄(chole)' 이라는 게임이 있었으며 '롱 노즈'가 초기의 골프 스틱과 비슷하다여 네
덜란드 기원설이 주장되고 있다.
즉 이 '롱 노즈'를 스코틀랜드 상인들이 고국에 갖고 들어가 공치기 라는 게임을 했고 이것
이 체계화되어 오늘의 골프로 탄생됐다는 주장이다. 네덜란드의 '숄'은 빙상에서만이 아니라
마을의 큰 길이나 교회 울타리 안에서 행해졌다.
그러다가 위험스럽다는 이유로 차츰 시외로 쫓겨나 마침내는 성벽 밖으로까지 밀려난 끝에
16세기에는 소멸되고 말았다고 한다.
골프란 스코틀랜드의 고어(古語)로 '치다'의 고프(Gouft) 가 그 어원(語源)인데다가 스코틀
랜드의 지형이 골프장으로 적격이었다. 스코틀랜드 북방(北方)쪽 해안에는 기복이 다양하고
많은 언덕이 있었고 멋진 잔디와 잡목이 우거진 작은 언덕으로 이어진 지형이 골프코스로
안성맞춤이었다. 더우기 이것이 공유지(公有地)여서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었다.
들토끼가 많이 서식하여 그들이 잔디를 깎아 먹어 평탄하게 된 곳을 그린(Green) 이라고 불
렀으며 그린과 그린을 연결하는, 양떼들이 밟아 평탄해진 넓은 길을 페어웨이 (Fair way)로
불렀다. 이 그린이 오늘의 퍼팅그린이고 양떼의 길이 페어에이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재미난 것은 페어에이란 항해용어로"바다의 안전한 길"즉 "바위 사이의 안전한 항로"의 뜻
이라는 사실이다.골프의 안전한 플레이 지대(地帶)를 항해(航海)용어로 명명한 것은 바다를
통한 무역과 골프와는 밀접한 관계라는 것을 증명한다.
해변가의 초사지(草砂地) 즉 링크스(Links)라는 자연조건이 골프장으로서의 최적 조건을 제
대로 완비했다라는 점 말고도 클럽 즉 롱 노즈 등을 만드는데 쓰이는 재료인 나목(羅木)들
이 스코틀랜드에서 생산 되었다는 점도 스코틀랜드에서 골프가 융성하게되는 증거가 된다.
스코틀랜드에 러시아 등에서 히코리목이 수입되어 클럽의 '샤프트(shaft)'로 쓰였고 클럽제
조 직인(職人)들도 많이 나와 높은 가공기술을 자랑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와 교
전상태에 있어 활(弓)등 무기를 만드는 직인(職人)들이 골프클럽도 만들어 많은 부수입을
올렸다.
이들은 클럽의 헤드에 무게를 더하기 위하여 납을 넣는 기술을 사용했다. 또 볼을 맞히는
클럽헤드의 면(面)을 보호하기 위하여 양(羊)의 뿔을 깎아 만든 인서트로 끼어놓기까지 했
다.
한편 스코틀랜드인들은 여가에 무술보다는 골프나 축구에 열을 쏟게 되자 마침내 1457년 스
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는 골프 및 축구를 금지하는 법령을 공포하였다. 귀족들은 국민 건
강에 유익한 스포츠를 금지시키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했으나 왕은 스포츠는 힘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데 골프는 이런 요소가 없으므로 스포츠로 간주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들은 왕이 직접 시험해 보기를 권하여 왕은 몇 번 스윙해 보았지만 잘 맞지 않아 공은 불
과 몇 미터를 굴러갈 뿐이었다. 화가 난 왕은 다시 이튿날 코스에 나가 샷을 성공시키려고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왕은 그후부터 열렬한 골퍼가 되었다. 따라서 법은 아무 의미 없
이 사문화되었으며 골프인구는 점점 늘어나 왕족을 비롯하여 귀족, 상인, 평민 등 각 계층에
널리 보급되었다.
현대의 골프의 역사의 기원은 16세기 중반의 스코틀랜드의 Mary여왕으로 부터 시작된다.
메리공주는 파리의 유학시절에도 공을 쳤다. 공주가 골프를 칠 때 학생들은 클럽을 어깨에
메고 공주의 시중을 들었는데 메리공주는 그들을 'Cadets'(아우, 생도라는 뜻) 불어 발음은
Cad day라고 불렀으며 현재의 Caddy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그 후로 주로 영국의 황실과 귀족이 즐기는 고급 스포츠로 사랑을 받아온 골프는 19세기 말
경에 와서야 "Gutta Percha"라고 불리는 공이 양산 되면서 여러나라로 퍼져나가 대중화가
시작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네덜란드 기원설
일반적으로 스코틀랜드가 골프의 발상지라고 인정되고 있으나 애초에 골프가 크게 성행하
던 곳은 베네룩스 3국 일대이었다는 설도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15세기에 유행되기 시작
했는데 네델란드에서 15세기 훨씬 이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몇 점의 회화가 발견되었
다. 이 그림 가운데 초기의 클럽과 매우 흡사한 모양의 구부러진 스틱에 기대고 서 있는 네
델란드인의 그림과 헤드가 큰 클럽을 팔에 안고 서 있는 소녀의 그림이 있다.
스코틀랜드에서 골프가 정식으로 선을 보이기 이전에 북부 프랑스 및 네델란드에 골프와 아
주 비슷한 게임이 있었다는 것은 틀림 없어 보인다. 지금도 이곳의 원주민들이 이 게임을
하는 것을 간간이 볼 수 있는데 골프보다 당구나 하키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네델란드인들 사이에서 "KOLF"불린 이 게임은 2피트 높이에 둘러싸여 가로가 25피트 세로
가 60피트 되는 지면이 평평한 장방형 구역 내에서 행하는 것이었는데 이 장방형 구역의 한
편 담벽에서 10피트 떨어진 위치에 직경 5인치 기둥을 좌우에 세우고 반대편에 공을 타구해
봉을 쳐서 맞추는 게임이었다.
경기자는 놋쇠의 무거운 헤드를 붙인 4피트 길이의 클럽과 철사로 꿰맨 야구 공만한 크기의
탄력 있는 공을 사용하였다. 두 개의 기둥을 가장 적은 횟수로 맞춘 자가 승자가 되었다. 비
겼을 경우에는 공의 위치와 암벽과의 근접거리로 판정하였다.
따라서 힘보다는 기술과 섬세한 터치가 요구되는 게임이었다. 이점은 당구나 크로케와 같다.
중국 기원설
골프가 유럽에서 시작되었다는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골프와 유사한 경기가 중국에서 먼저
시작되었다는 흥미로운 기록이 있다.
1991년 중국 감숙성(甘肅省)의 한 사범대학 체육학부 교수, '링홍링'(凌弘嶸)교수가 호주의
학회지에발표한 글이 "골프의 원조는 중국" 이라는 물의를 일으키게 하고 있다.
본래 중국에서는 골프를 '츠이완'이라 불렀는데 이미 기원 943년에 간행된 남당(南唐)의 사
서(史書)에 이 사실이 쓰여 있다는 주장이다.
지금까지 공인된 골프에 관한 최고(最古)의 기록은 1457년에 스코틀랜드 의회가 결정한 '골
프 금지령' 인데, 중국의 기록은 이보다 514년이나 앞선다.
그런가 하면 원(元)나라 때 그려진 '추환도벽화(推丸圖壁畵)'만 보아도 그것이 영락없는 오
늘의 골프임을 입증한다.
나지막한 작은 언덕 사이에 '해저드(hazard)'라고 할 수 있는 냇물이 흐르는 들판에서 네명
의 사나이가 게임을 즐기는데, 세사람은 이미 홀컵 어프로치에 성공한듯 표정에 여유가 있
고, 저만큼 떨어져 있는 '비기너(beginner)' 하나는 허리를 굽히고 열심히 '라이(lie)'를 살피
는 그림이라고 한다.
이것을 본 골프의 종주국 영국 사람들의 심기가 불편할 것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일찌기 고
대 로마에서 행해진 골프의 사촌'파가니카'의 경우는 목표까지의 초소타수를 겨루는 경기였
는데 기원 10세기의 중국에서는 볼을 땅구멍(地孔)에다 집어넣는 시합을 하였음이 분명하다.
또 명대(明代)에 그려진 '선종행락도(宣宗行樂圖)'라는 그림은 이같은 사실을 더욱 확실하게
입증한다. 건장한 체구의 선종(宣宗)이 양손에 클럽을 쥔 채 몇번채로 샷을 할까 망설이며
전방을 응시하고 있다. 길 한복판에 심어진 나무들은 줄기의 중간에서 인위적으로 굽혀져
마치 창문처럼 둥근 공간을 이루는데 그 높이는 지상 10미터 가량에 위치한다.
한 타로써 그 공간으로 공을 날릴 모양이다. 이 그림의 한 쪽 구석에는 클럽을 들고 달려
오는 지금의 캐디,구동(球童)의 모습도 보인다.
'추환'은 본래 중국대륙에서 행해진 '보타구(步打球)'라는 경기가 발전한 것이라고 한다. 그
러나 그것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가는 분명하지 않지만, 943년 까지는 문헌으로 고증되고
있다. 12세기 부터 15세기 사이에 중국에서 는 당시 성행하던 추환을 '환경(丸經)'이라는 골
프룰 북에 해당하는 책이 만들어졌다. 볼은 단단한 나무의 공이를 깍아 '권(權)'이라 불렀으
며 클럽은 '구봉(毬棒)'이라 했다. 따라서 제 1타는 '초봉(初棒)'제2타는 '이봉(二棒)'이다.
그 룰에 의하면, 첫 타구는 볼을 안정시킬 수가 있다. 말하자면 '티'위에 공을 올려놓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봉'이후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샷을 해야 되고, 홀아웃할 때까지 공에 손을
댈 수 없도록 노 터치 플레이를 지킨 것이다. '환경(丸經)'은 또 한술 더 떠서 공이 놓여진
상태, '라이'를 10가지로 분류하였는데, 그 중 '평(平)'은 평지,'요(凹)''철(凸)'은 글자 모양
그대로이고, '앙(仰)'은 어게인스트, '준(峻)'은 다운 힐, '외'는 아마 OB로 짐작된다.
한 홀의 기준타수는 홀 공히 파 3인데, 한 타 적게 쳐서 홀 아웃할 경우'일주(一籌)'를 얻게
된다. 말하자면 '버디'를 해야만 이길 수가 있고'홀 인원'은 '이주'인 것이다.
또한, '추환'도 때로는 경기가 백중하여 그날 해가 저물도록 승부가 나지 않을 때는 다음 날
다시 재경기를 했다고 한다.
'환경'에 쓰여 있기를, 플레이어가 서로 장시간에 걸쳐 한 타의 승패를 겨루는 지라 선수들
은 예의를 존중하였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플레이를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룰의 해석은 엄격히 금하였다고 한다.
골프가 어디서 부터 시작이 되었는지는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동서를 불문하고 골프라는
것이 신사의 게임이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첫댓글 다는 외울수 없고 골프의 기원은 스코틀랜드 목동들의 돌 던지는 데서부터 시작 영국으로 건너갔다,![~](https://t1.daumcdn.net/cafe_image/pie2/texticon/ttc/texticon28.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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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만 알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