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시민 불복종(1)
쉐퍼는 당대의 미국 사회가 시민의 자유의 문이 어느 정도는 열려 있는 상태이며, 이 문이 가능한 한 닫히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유물론적인 세계관의 지배를 받기 시작한 미국 사회에서 이 자유의 문이 닫힐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다. 이 가능성은 유물론적 세계관 그 자체가 가지는 특성에 불가피하게 뒤따라온다. 유물론적 세계관은 현존하는 물질-에너지 이외에는 어떤 상위의 권위나 규범도 인정하지 않는다. 따라서 유물론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들은 국가에 대하여 복종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이들이 국가에 복종하는 유일한 이유는 국가가 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이들이 국가에 복종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국가에 복종하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면 기독교적 세계관은 국가가 내리는 어떤 형태의 명령에도 무조건 복종할 것을 명령하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마태복음 22:21에서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명령한다. 이 본문이 바침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는 하나님과 가이사는 병렬시켜서는 안 된다. 하나님과 가이사는 수직적 관계 곧 하나님이 위에 있고 그 밑에 가이사가 있는 관계로 이해되어야 한다. 시민 정부는 하나님의 법 아래에 있다. 하나님은 타락한 세상 안에 일정한 직분을 두셔서 타락으로부터 나오는 자연적인 결과인 혼란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신다. 그러나 직분자가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나는 것을 명령하면 그의 권위는 박탈되어야 하며, 그의 말에 순종해서는 안 된다.
국가에 대한 순종을 명령하고 있는 로마서 13:1-4과 베드로전서 2:13-17의 말씀은 국가의 권위가 자율적 권위가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대리적으로 위임된 권위이며, 위임된 직무는 정의의 집행자가 되는 것, 곧 행악자를 처벌함으로써 악을 통제하고, 사회의 선을 보호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그러면 국가가 국가에 주어진 합법적인 기능을 범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때는 국가에 대하여 불순종할 권리와 의무가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다.
로마제국에 대한 초대교회 기독교인들의 태도 영국 정부와 국교회에 대한 윌리엄 틴데일(William Tyndale, 1490-1536)과 존 번연(John Bunyan, 1628-88)의 태도, 스페인의 가톨릭 통치에 반발한 네덜란드 개신교도들의 투쟁, 루터 교인이었던 구스타부스 아돌푸스(Gustavus Adolphus)의 독일 황제에 대한 무력대결, 가톨릭과 독일 개신교도들 사이에서 벌어진 30년 전쟁, 보드 칸톤을 무력으로 통제한 베른시의 프로테스탄트 교도들, 스코틀랜드에 장로교회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투쟁했던 존 낙스(John Knox) 등의 사례들은 기독교인들이 국가에 대하여 적절한 불복종을 시행함으로써 성공적으로 교회를 보존할 수 있었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헝가리,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에서는 기독교인들이 불복종을 적절하게 시행하지 못함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존속시키는 데 실패한 사례들을 보여 준다.
~이상원, 《프란시스 쉐퍼의 기독교 변증》, p.169~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