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옛이야기에 여러 말들이 나왔는데, 익숙하지 않은 말들이 있어서 확인하며 이야기 열었어요.
- 군불: 밥 따위를 짓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만 따뜻하게 하려고 때는 불. ‘군’, ‘필요 없는’, ‘가외의’
- 행랑채: 대문간에 붙어 있는 방. 하인들이 거했고, 밖에서 누가 부르면 급히 나가 문 열어주었다. 머슴 살러 오면 거기서 지냈다.
- 새경: 머슴이 일한 대가로 주인에게 받는 돈.
- 소죽: 옛날에는 사람들은 굶어도 소는 먹였다고 한다. 볏단이랑 고구마줄기 따위 가져다 작두로 잘라 솥에 넣고, 쌀뜨물, 설거지물 모아둔 것 부어 넣고, 아궁이에 불 붙여 끓였다.
- 떠꺼머리: 혼인할 나이가 지난 총각이나 처녀의 길게 땋아 늘인 머리. 혼인하면 여자는 머리를 올리고, 남자는 상투를 틀었다.
- 못자리: 모 키우는 곳. 모판을 따로 두어 모를 키우기도 하고, 논 한 자리에 모를 키우기도 했다.
- 낟가리: 낟알 붙은 곡식을 그냥 쌓은 것, 또는 나무, 풀, 짚 따위를 그냥 쌓은 것
어느 마을에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단 둘이 살았어. 둘은 하늘땅살이하며 살았지. 어느 해엔가는 겨울에 눈이 너무 많이 와서 산에 눈이 가득 쌓였어. 사람들이 나무하러 산에 갈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 한겨울에는 날이 추우니 군불을 잔잔히 때야 추위를 견딜 수 있거든. 그런데 뗄 감이 없으니 온 마을이 오들오들 떨었어. 큰일이었지. 젊은이들은 마을 가운데 있는 느티나무라도 베어야겠다며 도끼며 톱이며 죄 들고 모여들었어. 이걸 본 할아버지는,
“여보게들 마을을 위하는 이 나무를 베면 어쩌겠나. 그리 하지들 말게.” 하니,
“그럼 우린 다 어쩌란 말입니까? 가족들이 추위에 모두 떨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 집 행랑을 내줄테니, 가져다 나눠서 떼게.”하니,
할머니가 듣다가 걱정이 되어 나오셨어.
“봄 되어 모내기 하려면 머슴을 들여야 하는데, 행랑을 떼가면 어쩌란 말이우?”
야단이셨지. 그래도 할아버지는,
“이 나무가 없으면 무더운 여름에 마을 사람들이 어느 그늘에서 쉬겠나?”
하며 행랑을 내주셨지. 젊은이들은 기둥이며 서까래며 모두 가져다가 나누어 불을 떼어 겨울을 났어.
모내기철이 돌아오자 마을이 바빠졌어. 그러나 할머니는 행랑이 없으니 머슴을 들이지 못해 야단이었지. 할아버지는
“우리가 모내기하면 되지”
하고 허허 웃을 뿐이었어. 어느 저녁,
할아버지는 소죽을 끓이다가 들어가 밥을 먹었어. 그런데 왠 떠꺼머리 총각이 와서 소죽을 마저 끓이고 부지런히 마당을 쓰는 거야.
“무슨 일로 와서 그러고 있나?”하니,
“예 저 이 집에서 머슴 살러 왔습니다”하네?
반가운 소리지.
“그런데 우리 집엔 행랑이 없네.”
“낮에는 일하다가, 저녁에는 우리 집 가서 자고 오면 되지요.”
“그럼 새경은 얼마나 쳐주면 되겠나?”
“저는 일을 잘 못합니다. 일 배우는 셈치고 그냥 일하겠습니다.”했어.
다음날부터 총각이 와서 일을 하는데, 일을 곧 잘 하는 거야. 못자리 할 때가 되었는데, 이 총각이 좋은 논 놔두고 찬물이 솟아나는 샘가에 못자리를 하네?
“자네 좋은 땅 두고 왜 거기 못자리를 하나?”하니,
“예 올해는 왠지 가물 것 같아서 그럽니다.”했어.
그런데 못자리를 하고 난 뒤 정말 가물기 시작했어. 다른 논의 모는 다 말라 죽는데, 이 모들은 참 잘 자랐지. 모 심을 때가 되어 할아버지네 모는 다 심고도 남아, 온 마을에 다 나눠줬대. 할머니가 늙어서 자꾸 팔다리가 쑤시고 아프니, 총각이 여기 저기 주물러 드리니 쑤신 데가 싹 나았어. 또 할아버지는 이가 아프고 빠져서 음식을 잘 못 먹으니, 총각이 잇몸을 살살 만져드렸지. 그랬더니만 새 이가 쏙 나왔어.
그럭저럭 가을걷이를 마치고 나니, 총각이 인사를 했어.
“그간 일 잘 배우고 갑니다.”
“그동안 우리가 고마웠네. 새경을 받아가게.”
“저는 새경 안 받습니다. 그저 은혜 갚으려 한 일일 뿐입니다. 앞으로 이 집 농사도 잘 되고, 할머니 할아버지 안 아프고 튼튼할 겁니다.”
하고 돌아갔어. 이 총각이 바로 느티나무였나봐. 옛날에 오래 묵은 나무는 신통한 힘이 있어서 사람으로 둔갑하기도 했대. 그 후로 마을 사람들은 느티나무를 더 위하고 농사도 잘 되어 잘들 살았대.
마을에서 느티나무를 보러 다녀왔어요. 의외로 숲에서는 느티나무를 보기 어렵고, 놀이터에 느티나무가 있어서 보고 왔어요. 어린 동생들도 놀고 있어서 반가이 인사했습니다.
선생님. 나무를 보고 와서 그리니까 더 잘 그려져요.
잎사귀가 뾰족뾰족해요.
나무가 두꺼워요.
잎사귀에 혹이 있어요.
나이가 들어갈수록 이기적인 처세가 늘어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이야기 속 할아버지 모습은 참 달랐어요. 너른 품으로 마을 모두를 살피고 더 멀리 볼 수 있는 지혜, 당장 눈의 일을 넘어 나중까지 생각하는 슬기와 현명함을 지녔습니다. 그런 모습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우리 곁에 그런 어른은 없을까? 마을 이모 삼촌들, 어른이 그런 어른으로 곁에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우리도 그런 슬기를 가진 현명한 사람으로 자라가자고 이야기 나눴습니다.
놀이터 윗길에서는 느티나무 높은 가지가 가까워요.
"자 이제 나무도 보았겠다, 한 번 그려볼까!"
첫댓글 늘 보던 느티나무도 이렇게 보니 듬직하고 새롭게 보이네요.
학생들에게 큰 나무는 품 넓은 놀이터처럼 여겨지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