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나무
Common Camellia , 山茶 , ツバキ椿
분류학명
가지에 매달린 채 시든 꽃을 흔히 볼 수 있다. 화려하고 아름답던 시절의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탓이리라. 그러나 동백꽃은 이런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꽃으로서 주어진 임무를 다하면 새빨간 꽃잎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통째로 떨어져 버린다. 그 모습을 보고 옛사람들은 마치 남자에게 농락당하고 버려진 아름다운 여인과 비교했다.
동백꽃은 예부터 이루지 못한 사랑의 대명사였다. 멀리는 고려 말기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비롯하여 가까이는 미당 서정주의 〈선운사 동백꽃〉처럼 언제나 여인과 함께 등장한다. 동양의 꽃인 동백은 서양에 건너가서도 비련의 여인 이미지를 이어갔다. 동백은 프랑스 소설가 뒤마가 1848년에 발표한 소설 《동백꽃 부인(La Dame aux camlias)》의 주인공이 되었다. 원래 《동백꽃 부인》이 옳은 번역이나 일본 사람들이 《춘희(椿姬)》라고 해석한 것을 우리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창녀인 여주인공 마르그리트 고티에는 동백꽃을 매개로 순진한 청년 아르망 뒤발과 순수한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은 비극으로 끝나버린다는 줄거리다. 이 소설은 5년 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 각색되어 세계적인 선풍을 일으킨다.
동백이란 이름 외에 산다화(山茶花), 탐춘화(探春花)라고도 한다. 동백나무는 원래 따뜻한 기후를 좋아한다. 육지로는 서해안의 충남 서천에서부터 남부지방과 동해안의 울산에 걸쳐 자라고, 섬 지방은 대청도와 울릉도까지 육지보다는 더 북으로 올라온다.
동백나무는 늘푸른잎을 달고 있는 굵기 한 뼘 남짓 크기의 아담한 나무다. 주위의 다른 나무들은 활동을 멈추고 겨울잠 준비에 여념이 없는 늦가을부터 조금씩 꽃봉오리를 만들어 간다. 차츰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이 깊어가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 둘씩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하여 봄의 끝자락에 이를 때까지 꽃이 이어진다. 윤이 반지르르한 초록빛 잎사귀를 캔버스 삼아 진한 붉은 꽃으로 수놓은 아름다운 수채화를 그려 놓는다.
너도 나도 꽃 피우기에 여념이 없는 좋은 계절을 마다하다가 왜 하필이면 한겨울에 꽃을 피우는 것일까? 동백나무 나름대로의 계산이 있어서다. 엄청난 정력을 쏟아부어야 하는 꽃 피우기에서 경쟁자를 따돌리고 종족보존의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함이다. 문제는 벌도 나비도 없는 겨울날에 어떻게 꽃가루받이를 할 것인가이다. 이 어려운 숙제를 아주 작고 귀여운 동박새와 ‘전략적인 제휴’를 함으로써 슬기롭게 해결했다.
우선 잎사귀 크기에 버금가는 큰 꽃에서 많은 양의 꿀을 생산하도록 만들었다. 꽃통의 맨 아래에 꿀 창고를 배치하고 위에는 노란 꽃술로 덮어두었다. 동박새로서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하여 열량이 높은 동백나무의 꿀을 열심히 따먹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 공짜는 없다. 꿀을 가져갈 때는 깃털과 부리에 꽃밥을 잔뜩 묻혀 여기저기 옮겨 달라는 주문이다. 동백꽃의 진한 붉은 꽃잎과 샛노란 꽃술도 그냥 만든 것이 아니다. 새는 색채 인식 체계가 사람과 비슷하여 붉은색에 특히 강한 인상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가 초록 바탕에 펼쳐지는 강렬한 붉은 색깔의 동백꽃을 금세 알아보듯이 동박새도 쉽게 눈에 띄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렇게 새에게 꿀을 제공하고 꽃가루받이하는 꽃을 조매화(鳥媒花)라고 한다. 겨울에 시작한 동백꽃 피우기는 봄까지 이어진다. 봄날에는 벌과 나비의 도움도 일부 받겠다는 계산이다.
동백나무는 외톨이로 자라기보다 여럿이 모여 숲을 이룬다. 고창 선운사, 강진 백련사, 광양 옥룡사 터 등 유난히 절 주변에 동백나무가 많다.
잎이 두꺼워 살이 많으며, 늘푸른나무라 우선은 산불이 절로 번지는 것을 막아준다. 아울러 동백기름은 등유로 쓰고 남는 것은 내다 팔아 절의 재정에 도움을 주며, 관청에서 요구하는 기름 공출을 댈 수 있다. 그 외에도 여수 오동도, 서천 마량리, 보길도 윤선도 유적지 등은 대표적인 동백나무 숲이다.
서남해안 지방은 물론 섬 지방 어디를 찾아가더라도 겨울 동백꽃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동백꽃은 꽃이 필 때뿐만 아니라 질 때의 모습도 장관이다. 동백꽃이 하나둘 떨어지는 날, 동백나무 아래는 맨발로 사뿐사뿐 걸어가고 싶을 만큼 보드라운 붉은 카펫이 깔린다. 이래저래 동백꽃은 우리에게 겨울의 낭만을 안겨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꽃으로서의 임무가 끝나면 밤톨 굵기만 한 열매가 열린다. 익은 씨앗을 발라 기름을 짜면 고급 머릿기름이 된다. 이 머릿기름은 옛 여인들의 삼단 같은 머릿결을 윤기 나고 단정히 하는 데 필수품이었다.
우리의 토종 동백꽃은 모두 붉은 홑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돌연변이를 일으킨 분홍동백과 흰동백은 아주 드물게 만날 수 있을 따름이다. 겹꽃잎에 여러 가지 색깔을 갖는 동백이 널리 퍼져 있지만, 이는 자연산이 아니라 일본인들이 만든 고급 원예품종이 대부분이다. 품격으로 따진다면 토종 홑동백이 한 수 위다. 또 일본 원산의 애기동백도 널리 심는다. 이들은 꽃잎이 뒤로 넘어갈 만큼 활짝 피며, 꽃이 질 때는 벚꽃처럼 꽃잎이 한 장씩 떨어져 나가는 것이 동백꽃과의 차이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