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엔 안동호텔에서 부페로 조식후 9시에 출발 영주 부석사로 ~~~
모닝인사로 호텔앞에서 버스를 타기전에 간밤의 즐건일들로 환담후~~~영주 부석사로~~~출발
부석사입구 연못엔 철쭉이 만발한 경치를~~~
부석사로 오르는 길이 소백산 맑은 공기에 발길은 가벼웠지만 오르막길이 장난이 아니네???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676년(신라 문무왕 16) 의상(義湘)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대교(大敎)를 펴던 곳으로, 창건에 얽힌 의상과 선묘(善妙) 아가씨의 애틋한 사랑의 설화는 유명하다. 1016년(고려 현종 7)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1376년(우왕 2)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그 후 여러 차례 중수와 개연(改椽)을 거쳐 1916년에는 무량수전을 해체 수리하였다.
아~이구~~~똥고개가 은근히 힘드네~~~
인진이가 동무들의 추억을 담느라 동분서주하며 수고 많았소이~~~
부석사의 아름다운 풍경이~~~
자~아 멋쟁이들 똥폼 한번 찰각후~~~
왼쪽앞줄부터(양인진,채병화,권욱찬,박영규,황의만,조상현,서상영,김인렬,박종래,김도,권영목,김영선)과
뒷줄왼쪽부터(김우곤,,임종태,윤대경,이일석,공재환,남윤면,김정원,이원규,최병권,이창경,이형철,윤태병,안상철,김종욱,현철,,나승우(재미),강의열,이동기,이창식,정인수,임복규(재미),박찬희,신일택,이충선,황상천)이상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 18)·조사당(국보 19)·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 45)·조사당 벽화(국보 46)·무량수전 앞 석등(국보 17) 등의 국보와 3층석탑·석조여래좌상·당간지주(幢竿支柱) 등의 보물, 원융국사비·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취현암(醉玄庵)·범종루(梵鐘樓)·안양문(安養門)·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무량수전은 교리적 재현이라는 상징성 말고도, 고려 주심포식 건물의 전형으로도 가치가 높다. 꼭 필요한 부재들만으로 이루어진 공포와 서까래를 노출시킨 내부의 연등천장에서 고려 건축이 추구했던 구조미가 잘 나타난다. 그 외에도 뚜렷한 곡선의 배흘림기둥, 솟음과 쏠림 등의 섬세한 조절 기법, 완벽한 비례를 가진 입면과 내부공간 등 가히 한국 목조건물의 고전이요,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국보 제 45호. 높이 2.78m.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며 조성(造成)하는 것을 소조 불상이라 하는데, 부석사 아미타불은 우리나라 소조 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이다.
조사당
국보 제19호. 정면 3칸, 측면 1칸의 주심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뒤지붕이 더긴것은 비바람과 낙석을 방지하기 위해 더 길었다는 특이한 지붕입니다.
선묘도
의상이 이 곳에 부석사를 창건하려고 하자 터를 잡고 있던 다른 신앙의 무리들이 격렬히 저항했으나, 중국에 유학할 때부터 의상을 흠모했던 선묘낭자의 화신이 나타나 절을 세울 수 있게 도왔다는 유명한 '선묘설화'가 전한다. 부석사의 이름은 이 설화에서 유래되었다.
선묘에 대한 러브스토리는
의상(義相)이 당나라에 가서 공부할 때 양주성에 있는 어느 신도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집주인의 딸 선묘가 의상을 깊이 사모하였다. 의상이 귀국할 때 바다에 몸을 던지며 '용으로 변하여 대사를 모시고 불도를 이루겠다'고 원을 세웠다. 이후 용이 된 선묘는 의상이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 돕는다. 대표적인 일화로, 676년 경북 영주에서 절을 짓던 의상이 산적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선묘룡이 나타나 번갯불을 일으키고 봉황이 나타나 큰 바위를 세차례나 공중에 들었다 놓았다. 이에 놀란 산적들이 굴복하고 모두 의상의 제자가 되어 불사를 도왔다. 돌이 공중에 떴다고 해서 절 이름을 부석사(浮石寺)이라 짓고, 봉황이 나타났다 해서 산 이름을 봉황산(鳳凰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현재 부석사에 조사당에는 선묘의 진영이 있으며, 무량수전 뒤에 선묘각(善妙閣)이 있다.
날씨가 좋은날 무량수전 기둥에서 앞을 바라보면 저 멀리 산세풍경이 마치 파도를 타듯 밀려오는 풍경이랍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최순우 선생의 책 271페이지에서 인용)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안양문?조사당?응향각 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무량수전은 고려 중기의 건축이지만 우리 민족이 보존해온 목조 건축 중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가장 오래된 건물임이 틀림없다.
기둥 높이와 굵기, 사뿐히 고개를 든 지붕 추녀의 곡선과 그 기둥이 주는 조화, 간결하면서도 역학적이며
기능에 충실한 주심포의 아름다움, 이것은 꼭 갖출 것만을 갖춘 필요미이며
문창살 하나 문지방 하나에도 나타나 있는 비례의 상쾌함이 이를 데가 없다.
멀찍이서 바라봐도 가까이서 쓰다듬어봐도 무량수전은 의젓하고도 너그러운 자태이며
근시안적인 신경질이나 거드름이 없다.
무량수전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지체야말로 석굴암 건축이나 불국사 돌계단의 구조와 함께
우리 건축이 지니는 참멋, 즉 조상들의 안목과 그 미덕이 어떠하다는 실증을 보여주는 본보기라 할 수밖에 없다.
무량수전 앞 안양문에 올라앉아 먼 산을 바라보면 산 뒤에 또 산, 그 뒤에 또 산마루,
눈길이 가는 데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릿속에 빙빙 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
이 무량수전 앞에서부터 당간지주가 서 있는 절 밖, 그 넓은 터전을 여러 층단으로 닦으면서
그 마무리로 쌓아 놓은 긴 석축들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이뤄진 것은 아마도 먼 안산이 지니는
겹겹한 능선의 각도와 조화시키기 위해 풍수사상에서 계산된 계획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석축들의 짜임새를 바라보고 있으면 신라나 고려 사람들이 지녔던 자연과 건조물의 조화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을 것 같고,
그것은 순리의 아름다움이라고 이름 짓고 싶다.
크고 작은 자연석을 섞어서 높고 긴 석축을 쌓아 올리는 일은 자칫 잔재주에 기울기 마련이지만,
이 부석사 석축들을 돌아보고 있으면 이끼 낀 크고 작은 돌들의 모습이 모두 그 석축 속에서 편안하게 자리 잡고 있어서
희한한 구성을 이루고 있다.
중식은 김도박사가 추천한 맛집 순흥전통묵집에서 영주 모두부에 묵밥과 선비주로~~~
선비촌에 왔으면 선비주 막걸리 한잔 해야지!!!
특히 큼직하게 썰은 따끈한 모두부맛이 선비주가 목구명으로 설설 잘 들어가네!!!
창경이가 가장 많이 마셔 혈색이 좋으니 술값은 창경이가 내야지!!!ㅋㅋㅋ
소수서원으로~~ 숲길을 걸어면서~~~
1542년(중종 37)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고려의 유현(儒賢) 안향(安珦)의 사묘(祠廟)를 세우고 1543년(중종 38)에 학사(學舍)를 이건(移建)하여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설립한 것이 이 서원의 시초이다. 그후 1544년 여기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1633년(인조 11)에는 주세붕을 추배(追配)하였다. 1550년(명종 5)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부임해 와서 조정에 상주하여 소수서원이라는 사액(賜額)과 《사서오경(四書五經)》 《성리대전(性理大全)》 등의 내사(內賜)를 받게 되어 최초의 사액서원이자 공인된 사학(私學)이 되었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철폐를 면한 47서원 가운데 하나로 지금도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백운동!!!
아주 붉은 작약꽃
선비촌을 끝으로 풍기인삼주에 파전으로 즐건 추억의 관광을 마치고~~~맛 좋소이다!!!
귀경길에 곤지암에서 맛집 소머리 수육과 국밥으로 이번 여행행사를 마쳤습니다.
동무들 건강하게 잘 지내세요!!!
첫댓글 잘 감상했어
사진으로 보니 경치나 인물들이 더 좋네 그려 !!!
도박사 좋은곳으로 인도해 주고 멋진 해설에 공부 잘 했소이~~~
저 뻐쓰는 목조냐? 마루가 깔렸네?
특우등고속관광버스로 별5개 버스이란다. 늙은이들 잘 모실려구 신경썼나봐~~~쿠션도 좋고 발걸이도 푹신해~~~
안내여자가이드가 문화해설도 하구 간식도 주더라~~~ㅎㅎㅎ
지중해 최고급 크루즈급 이였다니까 !!!!ㅎㅎㅎㅎㅎ
@김도 저 뻐스는 신발 벗고 타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