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안전한가? 김건희 여사 팬클럽 통해 유출된 尹 대외비 일정 조갑제닷컴
윤석열 대통령의 대외비 일정이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 팬클럽을 통해 유출된 것으로 확인됐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24일 오후 “(이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최선의 조치를 하겠다”며 “거듭 죄송하다”고 밝혔다.
김 여사 팬클럽 ‘건희 사랑’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게시물에 최근 한 이용자가 댓글로 윤 대통령의 오는 26일 지역 일정을 공개했다. 이 이용자는 댓글에 “공지합니다. 윤석열 대통령, 대구 서문시장 8월26일 12시 방문입니다. 많은 참석, 홍보 부탁드립니다. 공용 주차장으로 오세요”라고 적었다.
대통령 외부 일정은 경호상의 이유로 통상 행사 종료 시점까지 일정 자체가 기밀이다. 대통령실은 앞서 출입기자단에 비보도(경호엠바고) 조건으로 지역 일정 중 ‘현장 방문’이 이뤄진다고 공지했으나 장소를 특정하지 않았다. 경호를 위해 비공개에 부쳐진 일정이 김 여사 팬클럽을 통해 구체적 일시와 장소까지 공개됐다.
*2022년 7월 8일 아베 전 총리 암살도 결국은 동선 노출이 주된 원인이었다. 범인은 고인(故人)이 나라(奈良)에서 지원유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동선 노출 자체가 가장 큰 암살동기를 제공한 것이다. 암살자에게 요인의 동선이 노출되면 쇠파이프로 만든 허술한 사제총에도 당할 수 있다는 교훈을 꼭 알아야 할 사람은 김건희 여사일 것이다. 5년간 남편이 하루에 두 번 같은 동선을 따라 출퇴근하도록 격려한 책임을 지게 되는 사태는 나라의 불행이다. 안보, 안보 하지만 최고의 안보는 국군통수권자와 국가원수직을 겸하고 있는 대통령의 안전이다.
*1963년 11월 리 하비 오스왈드는 미국 대통령 케네디가 텍사스 달라스를 방문, 딜리 플라자 거리를 지나가게 될 것이란 기사를 현지신문에서 읽는다. 해병대 출신으로 사격에 능한 그는 마침 이 거리에 면해 있는 교과서 창고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소련에 가서 살 정도로 親蘇的이고 정서가 불안정한 그는 11월22일 낮 망원경이 달린 이탈리아제 카빈 소총을 들고 6층 창가에서 기다리다가 81m 떨어진 거리를 지나가는 차량에 탄 케네디를 저격, 두 발을 명중시켰다. 그중 한 발이 머리를 맞혀 케네디는 사망했다. 動線 노출이 치명적이었다. *1981년 3월 28일 미국 청년 존 힝클리는 워싱턴에 갔다가 이튿날 30일에 레이건 대통령이 힐턴 호텔에 가서 미국 노동계 인사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게 되었다. 그는 여배우 조디 포스터를 일방적으로 좋아하며 편지를 써보내고 있었는데 미국 대통령을 쏘면 냉담한 포스터가 자신에게 관심을 줄 것이라 생각했다. 3월30일 오후 그는 호텔 앞에서 레이건을 기다렸다. 연설을 마치고 나온 레이건이 대기중인 리무진으로 다가가는데 5m 앞을 지나갔다. 그를 향해서 권총 여섯 발을 쏘았는데 측근들이 피격당하고 레이건은 맞지 않았다. 경호원들이 대통령을 자동차 안으로 밀어넣는 것을 향해 쏜 총탄이 차체를 맞고 튕겨서 레이건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아슬아슬하게 심장을 피해가 레이건은 수술을 받고 회복했다. 동선 노출이 힝클리의 암살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1962년 8월22일 오후 파리에서 드골 대통령 부부가 탄 시트로엔 승용차가 암살단의 기관단총 집중사격을 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있던 경호원 두 명은 사살되었지만 드골 부부는 살았다. 대통령 승용차는 14발을 맞고 타이어가 터졌지만 노련한 운전자가 가속하고 시트로엔의 서스펜션 시스템이 뛰어나 死地탈출에 성공했다. 드골의 알제리 독립방침에 분노한 군인들이 12 명의 암살단을 조직, 넉 대의 차량에 타고 파리 중심부 길가에서 기다렸다. 그들은 엘리제 궁 내부의 협력자로부터 드골의 동선을 파악했다. 저녁 8시10분, 대통령 일행이 군사박물관 앵발리드 앞을 지나는 도로를 이용, 공항으로 갈 것이란 정보를 입수한 암살단은 길목을 지키다가 100발 넘게 퍼부었다. 조수석에 타고 있던 드골의 사위가 "숙이세요"라고 외쳤고 뒷 창문을 뚫은 총탄은 드골의 숙인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드골 부부는 깨진 유리조각 세례를 받았다. 드골이 목숨을 잃을 뻔한 것도 動線이 노출된 때문이었다. *1992년 5월23일 토요일 오후, 시칠리아 팔레르모 근교 고속도로. 마피아 수사담당 지오바니 팔코네 판사 부부가 탄 차량과 경호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망을 보던 마피아 행동대가 원격조종 단추를 눌렀다. 도로 밑 수로(水路) 위에 묻어두었던 수백kg의 폭약이 터져 그 위를 지나던 차량 두 대가 날아갔다. 판사 부부와 경호경찰관 3명이 즉사했다. 팔코네 판사가 수백 명의 마피아 범죄자들을 잡아가두는 데 복수를 한 것이다. 팔코네 판사가 주말에 정기적으로 지나는 동선을 추척, 폭약을 묻어둔 것이다. 이 또한 동선노출이 암살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북한공작원 두 명은 1970년 6월22일 국립현충원의 현충문 지붕에 올라가 폭탄을 설치하던중 터져 실패하고 달아났다가 사살되었다. 6월25일 남침기념일에 참석하는 박정희 대통령을 노린 암살기도였다. 암살이 동선을 따라서 계획된다는 이야기이다. *북한공작원들은 1983년 10월9일에 미얀마를 방문한 전두환 대통령 일행이 아웅산 묘소에 참배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묘소 지붕에 폭탄을 장치, 원격조종으로 폭파시켜 한국방문단의 장차관급 17명이 죽었다. 이기백 함참의장이 중상을 입었다. 만약 대통령과 합참의장이 동시에 무력화되었더라면 안보공백이 생길 뻔했다.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 집무실로 쓰면 합참 건물과 가까워 북한의 공격으로 국가 및 군사 지휘부가 동시에 무력화될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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