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1221)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왕하 5:26~27).
탐심의 결과~~~~아람 장군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려 엘리사를 찾아와 고침을 받자, 엘리사를 찾아와 감사의 표현으로 자신이 가지고 갔던 은 십 달란트를 비롯해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받을 것을 강권한다. 하지만 엘리사는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동시에 나아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가 값없이 주어지는 것을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기에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이를 거절한다. 즉 여호와만이 진정한 치료자이시고 자신은 단지 그 분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과 하나님의 능력은 결코 돈으로 살 수 없음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정당한 은사의 활용은 거저 주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마 10:8)고 말씀하셨듯이 은사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기에 돈으로 매매되는 것은 비성경적인 행위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행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거나 기도해 준다는 명목으로 결코 돈을 요구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오로지 하나님께만 모든 영광을 돌리기 위해 나아만의 감사예물을 받지 아니한 엘리사의 태도와는 달리 나아만이 주는 엄청난 예물(은 343kg, 금 68.4kg)을 거절하는 것을 본 사환 게하시는 엘리사의 이러한 태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아만 일행을 급히 뒤따라가서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들을 돌보고 있는 사실을 이용하여 그들을 준다는 명분으로 나아만을 속이고 은 한 달란트와 옷 두벌을 달라하자 마음이 찜찜했던 나아만은 은 두 달란트와 옷 두벌을 주게 된다. 탐심에 눈이 어두워진 인간의 교활함이 나타난다. 인간의 탐심은 순간 우리의 양심을 마비시킬 뿐 아니라, 하나님조차 인식치 못하게 만든다. 결국 자신의 집에 물건을 감춘 게하시는 엘리사의 추궁과 책망에도 계속해서 시치미를 떼다가 나아만이 고침을 받은 바로 그 징벌인 '나병'에 걸리게 된다.
인간의 물질에 대한 탐심은 사람을 속이는 거짓말로, 남의 것을 부당하게 취하는 도둑질로, 하나님의 선지자를 기만하는 죄악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결국 게하시는 본인은 물론이고 자손들까지도 영영토록 나병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 1:15)는 성경 말씀을 되새겨 보아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우리 주변에 기도원이나 교회 지도자들이 병을 고쳐준다며 소위 헌금의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는데, 게하시의 경우를 상기하며 절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일이 없기를 기도하며, 성도들도 이러한 데 미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