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레터/장이지-
그 영화에서 제가 공감한 쪽은 오히려 와타나베 히로코예요 그녀가 죽은 애인의
옛집 주소를 팔뚝에 옮겨 적을 때 저는 슬픔의 냄새를 맡았죠 히로코는 죽은 애인
에게 편지를 써요 그 편지는 후지이 이츠키(♀)에게 전해지고 이츠키는 또 다른 후
지이 이츠키(♂)를 떠올리게 되죠 이츠키에게는 플래시백이 있고 과거에서 잃어버
린 시간을 되찾아요 히로코에게는 플래시백이 없고 몸 위에 주소를 옮겨적는 욕망
이 있어요 엽서에 상처를 내면서 잘 지내십니까, 저는 잘 지냅니다 하고 쓰죠 저에
게는 플래시백이 없고, 그러니까 되찾을 기억이 없고, 당신과의 추억이 없고, 지금
당장 제가 몸에 당신 이름을 쓰면 당신이 제 앞에 나타나는 동굴벽화의 요술 같은
것이 필요해요 슬픈 엽서 같은 게 말이죠
<감상>
이와이 슌지 감독의 그 유명한 영화 ‘러브레터’(1999). 극장에서도 보고 DVD로도 여러 번 봤지만 벌써 오래전 일이다. 히로코가 죽
은 애인의 집 주소를 팔뚝에 옮겨 적었던가? 어렴풋하다. 이 의미심장한 장면을 일찍이 포착했다면 나 역시 시인처럼 퍽 진한 “슬픔의
냄새”를 맡았을 것 같다. 지금 내 머릿속에는 두 후지이 이츠키가 서로를 막 의식해 가던 어린 날의 알싸한 설렘만이 드문드문 남아 있
다. 히로코, 그녀의 사랑은 어쩔 수 없는 조연인가 보다.
추억이란 대개 처치 곤란으로 여겨진다. 이별한 뒤라면 더욱.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는 추억 때문에 괴롭기 십상이다. 그러나 추억마
저 없다면 지난 시간을, 지난 사람을, 지난 ‘나’를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모두 변하고 떠나고 죽고 그러는 동안에도 홀로 건재한
추억. 이제는 알겠다. 결국 추억이 이긴다는 것. 남겨진 자는 오직 추억으로 계속 살아간다는 것.
-박소란(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