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운서 조지훈까지…발 닿는 거리마다 문인들의 옛이야기
[메트로 스트리트] 성북동 문화예술길
서울 성북구 성북동 문화예술길에 있는 ‘심우장’. 만해 한용운 선생이 말년을 지냈던 곳이다. 그는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 이곳을 북향으로 지었다고 전해진다. 2019년 사적 제550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김동주 기자
‘님의 침묵’을 지은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용운과 청록파 시인 조지훈. 예술에 크게 관심이 없어도 교과서에서 들어본 이름들이다. 일제강점기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지켜 온 문인들이 모여 살았던 흔적이 한 거리 곳곳에 아직 남아 있다. 바로 1930년대 문인촌으로 불렸던 ‘성북동’ 얘기다.
○ 거리마다 예술인의 흔적
성북동 문화예술길은 4호선 한성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어가면 나타나는 ‘최순우 옛집’에서부터 성북동 꼭대기에 있는 우리옛돌박물관까지 가는 약 1.6km 길이의 거리다. 최순우 옛집은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로 잘 알려진 미술사학자 혜곡 최순우 선생이 인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다.
16일 오후 낡은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자동차 소리는 모두 끊기고, 1930년대 지어진 근대 한옥과 혜곡이 직접 가꿨다는 정원이 펼쳐졌다. 재건축될 뻔한 적도 있었지만 2002년 시민들이 모금운동을 통해 지켜낸 ‘시민문화유산 1호’라 의미가 더 크다. 길 건너편에는 조지훈 시인의 집터를 기념한 조형물 ‘방우산장’이 있다.
조금 더 걸으면 조선시대 누에농사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왕비가 제사를 지냈던 ‘선잠단지’(사적 제38호)와 성북선잠박물관이 나온다. 그 옆엔 일제강점기 때 우리 문화재를 사들여 해외 반출을 막았던 간송 전형필 선생이 세운 ‘간송미술관’이 있다. 혜곡도 간송의 추천으로 성북동으로 이사 왔다고 한다.
미술관에서 8분 더 올라간 곳에 있는 인기 한옥카페 ‘수연산방’은 소설가 이태준의 고택이다. 20세기 초 한옥과 정원이 잘 보존돼 있다. 달밤 등 그의 대표작이 여기서 탄생했다. 그가 김기림, 정지용 등 문인들과 모여 문학을 논했던 장소이기도 하다. 길 건너편 덕수교회에는 조선 말 부호이자 보인학원의 설립자인 이종석이 지은 별장이 있다.
별장을 나와 왼쪽으로 가면 서울에 몇 남지 않은 달동네 ‘북정마을’이 나온다. 마을 골목길을 따라가면 만해 한용운 선생이 거주했다는 ‘심우장’이 당시 모습을 간직한 채 남아 있다. 박수진 성북문화원 부장은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이 자주 모여 ‘마지막 남은 조선 땅’으로 불렸을 정도로 뜻깊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종석 별장에서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길상사가 나온다. 원래는 최고급 요정 ‘대원각’이었던 이곳을 기생 김영한이 법정 스님에게 시주하면서 지금의 길상사로 탈바꿈하게 됐다. 그는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밝히기도 했다.
길상사 위에는 2014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특별 오찬을 가졌던 한국가구박물관이 있다. 브래드 피트도 방문했던 곳으로 외국인에게 더 유명한 명소다. 실제 옛 한옥 10채를 옮겨서 만들어 한국의 아름다움을 뽐낸다. 옆에는 국내외로 흩어져 있던 한국 석조 유물을 모아 지은 세계 유일의 석조 전문 박물관인 ‘우리옛돌박물관’이 있다. 일본에서 환수한 문화재와 석탑, 불상 등 다양한 돌조각이 있다.
○ ‘뷰 맛집’ 카페와 노포의 공존
북악산 줄기와 한양도성을 끼고 있다 보니 곳곳에 멋진 경치를 볼 수 있는 카페들도 생겨나고 있다. 조선시대 양반과 부호들의 별장이 있었다는 말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풍경이다.
우리옛돌박물관 옥상과 야외에 마련된 ‘돌의 정원’은 주민들의 단골 출사 장소다. 성북동 꼭대기에 있어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을 역사가 오래된 만큼 노포들도 많다. 한성대입구역에서 수연산방에 이르는 길에는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골집으로 유명한 ‘국시집’을 비롯해 국수집 27곳이 모여 있는 ‘누들거리’가 있다. 이 밖에도 50년이 넘는 업력을 자랑하는 ‘쌍다리돼지불백’ 기사식당, 1987년에 생긴 ‘금왕돈까스’, 한국 초창기 제과점인 ‘나폴레옹 제과점’ 등도 유명하다.
이청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