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7장 우물(尤物)의 최후 대체 어디서 들이닥치는 것일까? 하늘 위에서 수천 마리의 거조(巨鳥)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끄으으윽- 끄으으윽-! 일대를 새까맣게 뒤덮으며 날아 내리는 거조들의 등에는 각 이 인(人)씩이 타고 있었다. 거조는 울음소리를 내며 검황성의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었고, 검황성을 향 해 몰려가던 오만 마병(魔兵)은 돌연한 풍운에 넋을 잃고 말았다. "아, 아니? 저… 저들은…?" "으으…!" 꾸역꾸역 몰려가던 무사들, 이들은 이백 년의 한을 풀기 위해 갈고 닦은 마 병들이다. 이들은 검황성을 파괴하여 백도의 맥을 끊고, 마도의 세상이 왔음을 알리려 는 자들이다. 거조떼가 나타난 시기는 이들이 화탄으로 검황성 외곽 진세를 뚫고 성내를 향해 진군하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마병들은 허공에서부터 떨어져 내리는 수많은 무사들을 보며 입을 딱 벌리 고 말았다. 훌훌 날아 내리는 사람들. 이들은 이 인(人) 일 조(租)를 이루고 있는데… 봉황천의 후신(後身)인 영웅천(英雄天)의 한 사람과 야월화 휘하 살수(殺 手)가 한 사람씩이었다. "두더지들!" "네놈들이 감히 우리들을 농락하려 하다니…?" "쳐라!" 휘휙- 휙- 휙-! 산야(山野)를 뒤덮으며 날아 내리는 사람들의 수는 거의 일만오천(一萬五 千)에 달했다. 만오천 무사들은 팔로(八路)로 다가서는 마교총림의 마검수(魔劍手)들을 허 공에서 덮쳐 내렸다. 차앙- 창-! 수만 자루의 검이 일제히 뽑히며, 일대는 현란한 검광(劍光)에 뒤덮였다. 검파가 쏟아져 내린다. 피비가 내리며 산하를 붉게 물들인다. 파파팟- 팟-! "크으으윽…!" "저들은… 야월화의 살수들이다!" "우우욱… 너… 너무나도 강하다!" 천하제일의 살수집단 야월화. 그들의 검은 너무도 빠르고, 정확하다. 이들 은 가장 빠르게 적을 제압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영웅천으로 변신한 대해의 영웅들. 이들은 새로운 주인 무옥에게 용맹성을 보이기라도 하는 듯, 비장의 절초를 발휘하며 마병들을 베어 나갔다. 마교총림 무사들은 십 초도 대항하지 못하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허리가 끊어져 쓰러지는 자, 그 자의 몸 위로 목이 잘려 쓰러지는 자가 눕 고… 그 위로 피보라가 뿌리어지며 일대가 자욱한 혈무에 휘감겼다. 풍운제검대. 이들은 오랜만에 검을 쥘 수 있었다. 무옥은 이들을 위해 팔천 개의 영단을 갖고 왔다. 그것은 봉황천령단(鳳凰 天靈丹)이라는 것으로, 봉황천녀 단장화 감옥교가 기증한 것이었다. 풍운제검대는 검황성을 위대한 대지로 만든 주역들인 바, 이들은 하나같이 일당 백의 검수들이며 위대한 백도의 영웅들이다. 풍운제검대는 사검대주와 더불어 질풍노도처럼 성문 네 개를 부수며 성 밖 으로 몰려 나갔다. "우우… 우우…!" "쳐라! 이제 검황성의 하늘이 높다는 것을 알려 주자!" "와아아…!" 휘휙- 휙-! 너무나도 오랫동안 포위상태에서 번뇌했던 팔천(八千) 풍운제검대는 둑이 터지며 강물이 범람하는 듯, 사방으로 몰려 나갔다. 그들의 사나운 기세는 무옥이라 하더라도 막지 못할 정도였다. 흑사검대(黑獅劍隊), 풍비검대(風飛劍隊), 용행검대(龍行劍隊), 뇌궁검대(雷弓劍隊). 난전에 능하며, 마도고수들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알고 있는 백전노장들 이다. 야월화와 영웅천의 고수들을 만난 자들은 오히려 행운아라 할 수 있었다. 혈풍야(血風夜). 팔월 십오야는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가장 활약이 큰 사람은 무숙아였다. 그는 측근 수하들과 더불어 오십여 리 를 종횡하며 칠천여 명을 검하고혼(劍下孤魂)으로 만들었다. 그 사이 그는 십여 군데 검상을 입었으나 그의 검은 시간이 갈수록 빨라졌 고, 호통 소리 또한 점점 커져 갔다. 검신(劍身)이 무디어질 정도로 베고, 그는 피로 젖는 옷자락에 처음으로 기 쁨의 눈물을 떨어뜨렸다. "네놈은 본시 용(龍)이었다!" 파파팟- 팟-! 무숙아는 마교총림의 혈천마검대(血天魔劍隊)를 단신으로 도륙내며 길게 부 르짖었다. "그래, 네놈은 본시 그런 놈이었지. 푸핫핫…!" 파팟- 팟-! 그의 검이 수천 개의 검화를 피울 때마다 수십 명이 피보라를 뿌리며 널브 러졌다. 여명(黎明)이 시작될 때. 마교총림의 무사 가운데 이만사천(二萬四千)이 검각(劍閣)의 땅을 피로 물 들이며 쓰러졌다. 무옥 휘하의 희생은 실로 미세했다. 무옥을 따르는 사람들은 싸움으로 단련 이 된 사람들이었다. 더욱이 그들은 무옥의 병법에 따라 움직이고 있는지라, 극히 작은 희생만으 로도 대승을 이룰 수가 있었다. "육, 육합지존이라고…?" 검난향은 사지에서 경련을 일으켰다. 늘 향유(香油)로 몸을 세척하는 우물(尤物). 그녀는 검황성을 파괴하는 것 을 식은 죽 먹기로 여기고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 세력의 반을 잃고 만 것 이다. "무숙아 배후에 신비인이 있다는 눈치는 차렸으나… 으으, 그 자가 무수한 수하를 거느리고 당도할 줄이야!" 검난향의 입술은 파랗게 질리고 있었다. '이 일이 실패하면, 나는 마교율법에 따라 능지처참되고 만다. 으으, 절대 로 실패할 수는 없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칼날처럼 빳빳이 일어났다. "육합지존… 그는 사내이냐? 여인이냐?" 그녀가 몸을 떨며 말하자. "남자입니다. 자세한 모습은 모르나 멀리서 보았을 때, 그는… 청년으로 보 였습니다." 말하는 자는 피로 옷을 적시고 있었다. 그는 혈마검대의 우두머리였다. 그는 과거 천마십팔존(天魔十八尊) 중의 한 사람이다. 검황성에 잡혀 있다가 검난향 덕에 자유를 찾은 자. 지금 그는 뇌옥 밖에 있다는 것을 오히려 후회하고 있었다. 검난향은 돌연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혼비백산하여 도망칠 구멍만 찾던 검난향. 그녀는 육합지존이 청년이라는 말을 듣고는 잃어버렸던 웃음을 찾을 수 있었다. "남자라고? 청년이라고? 호호… 그렇다면 되었다. 호호… 그것을 진작 알았 다면 일이 쉬워졌을 텐데…" 검난향은 까르르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남자라면… 십 세 소년에서 구십 할아범까지 모조리 유혹(誘惑)할 자신이 있다.' 검난향은 방중학(房中學)의 대가였다. 그녀가 비찰 가운에서도 총애를 받은 이유는, 침상 위에서 몸을 굴리는 재 간이 비상했기 때문이었다. "호호호… 한 시진이면 된다. 그 자가 남자이기만 하다면… 호호… 일순간 에 대세를 역전시킬 수가 있다." 검난향은 까르르 웃으며 위로 떠올랐다. 그녀는 달콤하고 비릿한 사향 내음을 풍기며 위로 날아올랐다. 아침은 세우(細雨)와 더불어 찾아왔다. 촉촉이 내리는 빗줄기, 그 비는 가을이 깊어지는 것을 천하에 알리는 찬비 였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비는 뿌연 안개와 더불어 풍운이 일어나는 검각 일대를 휘어 감았다. 밤사이 수만 명이 죽었으나, 근처는 여전히 기암(奇岩)의 절경이었다. 검황성의 문이란 문은 모두 다 열려 있었다. 외곽을 굳건히 지키던 각종 기문진세도 어찌 된 연유인지 모두 철수되었다. 그러나 성문을 향해 돌진하는 마교총림의 무사들은 보이지 않았다. 검황성을 치기에 역부족임을 알고 줄행랑을 친 것일까? 아니면 간밤의 혈전에 회복 불능의 피해를 입었기 때문일까? 하여간 성은 새벽 안개 속에서 예전의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검황성 깊은 곳, 한 잔(盞)의 용정차(龍井茶)와 더불어 아침을 시작하는 사 람이 있었다. 그는 웬일인지 죽립(竹立)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올 때가 되었는데…" 아래턱이 매우 희다. 그는 단아한 자세로 서서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일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서 있었다. 이들은 검황성 사람이라기보다 무옥 의 수하들이었다. 이들은 무옥과 마찬가지로 죽립을 하나씩 쓰고 있어, 검황성의 전통적 무사 들과는 쉽게 대조가 되었다. 차향이 맑다. 무옥은 찻물에 자신의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는 마교총림의 무사 들을 격파하는 데에는 끼여들지 않았다. '이 싸움은 큰 싸움이 아니다. 이 싸움은 작은 싸움이다. 그리고 이 싸움은 마지막 싸움이 아니다. 이 싸움은 첫 번째 혈전에 불과하다.' 무옥은 차 한 모금을 마셨다. 그는 밤새 환류와 더불어 이야기를 했는데도 피로한 기색이 아니었다. 그는 봉황천의 기연을 얻은 후, 더욱 강해졌다. 그러나 그는 얼굴 한구석에 암영(暗影)을 드리우고 있었다. '마교총림은 여전히 강하다. 그들은 천하를 경시하고 있기에, 하부세력만 일으킨 것이다. 그들은 여전히 거대하다. 아아, 자칫하다가는… 무수한 백 도인이 희생될지 모른다.' 무옥은 눈길을 허공에 담았다. '저 하늘을 편하게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무옥은 먼 길을 떠날 사람으로 보였다. 사실, 그는 이 새벽이 가기 전에 떠나갈 예정이었다. 차를 다시 한 잔 마셨을 때. "오는 듯합니다." 여인의 목소리가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꿈결같이 낭랑한 목소리. 바로 야월화에서 여인으로 탈바꿈한 초산랑(楚山 娘)의 목소리였다. 여인은 꿈을 먹고 산다. 특히, 초산랑 같은 미인은 더욱더 그러하다. 그녀는 아직도 무옥이 얼굴을 가렸던 면구를 떼어 내던 그 날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녀는 무옥이 단장화를 얻었다는 것을 알고 약간 상심했었으나 단장화가 그녀를 언니로 대접하자, 밤사이 기분이 꽤나 즐거운 상태였다. 한데, 누가 오고 있다는 것일까? "역시 짐작하신 대로였습니다. 도망가지 않고, 암도(暗道)를 통해 다가서고 있습니다. "산랑, 고맙소. 그럼 이제 물러가도 좋소." "호호… 그냥 가기가 불안한데요? 그 계집이 워낙 아름다운지라, 게다가 꼬 리를 흔드는 재간도 좋고… 더욱이 옥랑(玉郞)은 전과 달리 여자를 호리는 재간도 늘어난 상태이니…" 초산랑의 목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그녀는 전음으로 말을 한 다음,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이다. '좋은 여인. 장차 운령(雲玲)과 지(芝)도 저 여인을 다정히 받아들이리라.' 무옥은 입술을 찻잔에 댔다. 뜨겁고 향기로운 차가 입 안을 적시는 찰나, 그는 차가운 기운이 다가서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기운은 다른 기운과는 달리, 습습하고 음침했다. 소리도 없이 다가서는 야릇한 기운 가운데, 무옥의 입가에는 미소가 떠오르 고 있었다. '편한 마음으로 숭산(嵩山)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는 차를 한 번에 다 마셔 버렸다. "차향(茶香)이 좋군!" 그는 찻잔을 창틀 위에 올려놓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의 본래 목소리와는 조금 다른 걸찍한 목소리였다. 그의 목소리가 여운을 맺을 때였다. "차를 마시다니… 마음이 깨끗하신 분이시군요? 한데, 어이해 흑과 백을 가 리지 못하십니까?" 등 뒤에서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쓰으으…! 경미한 바람 소리와 함께 하나의 그림자가 창을 통해 날아들었다. 환환표묘영(幻幻飄妙影)이라는 수법으로 들어서는 여인. 그녀는 낯색이 핼쓱했고, 표정이 우울해 보였다. 걸치고 있는 것은 소복(素服)이고, 그녀의 손에는 독비수(毒匕首)가 하나 들려 있었다. 힐끗 쳐다보기만 해도 처연한 정이 일어날 정도로 암울한 아름다움을 갖고 있는 여인은, 무옥을 향해 매우 격정적이고 자극적인 눈빛을 던졌다. "사실은… 자객(刺客)이 되려 했습니다. 한데 잠깐 숨어 보니, 말이 통할 분 같아서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소의미부(素衣美婦)는 천천히 무릎을 끓었다. 너무나도 유약한 몸매이다. 그녀는 끊어질 듯 가는 허리를 지녔고, 터질 듯 풍만하게 부풀어오른 둔부를 갖고 있었다. 물이 오를 대로 오른 버들강아지처럼 한들거리는 몸뚱이. 그녀는 색으로 뭉친 희대의 우물이었다. 그러나 짓고 있는 표정만은 순수하고, 우울해 보였다. "…!" 무옥은 그녀를 보며 입술을 가볍게 물었다. 소의미부는 눈에서 뜨거운 눈물을 펑펑 쏟으며 얼굴을 들었다. "어이해… 하늘과 땅을 잘못 판단하십니까? 아아, 이 곳의 무리들은 도와 줄 가치가 없는 자들입니다!" "왜?" 무옥은 조금 흥분하고 있었다. 예민한 여인이였다면 무옥의 숨결이 흐트러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 다. 소의미부는 그것을 아는 것일까? 모르는 것일까? 그녀의 눈은 더더욱 심연(深淵)으로 가라앉았다. 그녀의 옷자락에는 검흔이 무수했다. 그 덕에 그녀의 속살이 환히 들여다보이고 있었다. 특히 앞가슴 부위가 베어져, 투실거리는 젖가슴 두 개 가운데 하나가 삐죽 고개를 내밀고 있는 상태였다. 까아만 유실(乳實), 그것은 바람에 흔들리는 포도알처럼 파르르 떨리고 있 었다. 터질 듯 팽만한 몸뚱이에, 아주 슬픈 눈빛을 가진 여인. 그녀는 서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주루룩 쏟아 냈다. "신첩이 비수를 품고 여기 온 이유는… 흐흑… 천하거인(天下巨人)이신 육 합지존을 암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 여기 와 보고서는… 암살할 분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 "공사가 분명한 분임을 알았기에…!" "흠, 그런 편이지." "아아, 육합지존이시여! 신첩은 너무나도 억울합니다. 신첩은 바로… 무숙 아의 여인입니다!" "아…!" "흐흑… 지금 여기 있는 자는 진짜가 아닙니다. 그 자는 무숙아의 탈을 쓰 고 있는 가짜입니다!"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몸에서는 이상한 향기가 흐르고 있었다. 그 향기는 잠깐 마시기만 해도 혼백이 녹아 버릴 정도로 달콤했다. 최음제 중에서도 제일 지독하다는 섭백소녀향(攝魄素女香). 소의미부는 교묘한 몸짓으로 섭백소녀향을 뿌리고 있었다. "흐흑… 공사를 가리어 주십시오. 그렇게만 된다면, 신첩은 그 어떤 것이라 도 바치겠습니다!" 울부짖는 여인, 그녀는 사내의 동정심을 자극하는 모든 몸짓을 하고 있었 다. 무옥, 그의 입가가 기이하게 일그러졌다. "무엇이든 바치겠다고?" "예, 육합지존!" "흠, 무엇까지 바칠 수 있을런지 모르겠군?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지!" "바, 바라신다면… 저를…!" 여인은 천천히 얼굴을 들었다. 그녀는 이제 되었구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몸을 바치겠는가?" "바라신다면 영원한 첩이라도 되겠습니다!" "첩은 싫어." "그럼 바라는 한 곁에 머물겠습니다. 바라신다면, 지금 여기 누워 지존을 맞이하겠습니다!" "성질이 급하군!" "아닙니다. 마음이 급할 뿐입니다. 흐흑… 몸을 바치고서라도… 흐흑… 해 야 할 일이 있기에, 요녀 행세라도 하는 것입니다!" 여인은 다시 울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빛은 묘하게 일그러졌다. 탱탱히 부풀어오르던 육봉이 움츠러들고, 아랫배에 힘히 확 들어가는 가운 데 사타구니 사이에서 묘한 전율감이 흐르기 시작했다. 무옥은 천천히 죽립을 벗고 있었다. 느릿느릿… 그는 죽립을 벗어 앞에 내 려놓았다. "대사형 무숙아를 위해 그리도 슬프게 울어 주다니… 고맙소!" "으으… 으으… 너… 너는?" 소부의 머리카락이 빳빳해졌다. 입이 따악 벌어지고, 눈이 화등잔만 해진 다. 터질 듯 물이 오른 육체를 지닌 여인. 그녀는 바로 비찰삼호(秘察三號) 검 난향(劍蘭香)이었다. 색으로 검황성을 휘어 잡았던 여인, 그녀의 얼굴은 추악하게 일그러지고 있 었다. "너… 너였느냐? 육합지존이 바로 네놈… 무옥…으으…가짜 남자란 말이냐? 나를 여자로 보지 않는 미친 놈! 어이해… 네놈이냐?" 검난향은 울부짖으며 손을 쳐들었다. 피이이잉-! 그녀의 손에 쥐어졌던 비수가 허공을 뚫고 무옥 쪽으로 다가섰다. 무옥은 비수가 다가서는 것을 노려보다가 입술을 약간 벌렸다. "합-!" 짧고 맑은 기합 소리, 그 소리에는 가공할 진기의 힘이 실리어 있었다. 치리리리릿-! 비수가 찰나의 순간, 허공에서 쇳가루가 되어 부서져 내렸다. 그것은 무옥이 봉황천의 기연으로 새로 터득한 겁후성(劫吼聲) 가운데 한 가지였다. 비수가 부서질 때, 검난향은 꽁지 빠진 암탉마냥 화급하게 창을 뚫고 도망 쳐 나갔다. 한 사내, 그는 검을 두 손으로 잡고 서 있었다. 검난향이 날아 나오는 그 하늘을 향해 쳐들려진 검극(劍極)은 파르르 떨리 고 있었다. 검난향은 도망치다가는 그를 보고 입을 다시 한 번 딱 벌렸다. "무… 무숙아… 정녕 너냐?" 검난향은 울상이 되었다. 순간 사내의 손은 내리쳐졌고, 번개 같은 검기가 수직으로 떨어져 내렸다. 검난향은 허공에서 정지했고. "검황성의 사내놈들은 모두… 바보다. 그러나… 그러나 다시 한 번 여자로 태어난다면… 네놈들 같은 사내를 고르겠다!" 검난향은 눈을 질끈 감았는데, 무숙아의 일 검은 그녀의 몸을 쪼개는 것이 아니라 땅바닥으로 푸욱 박는 것이었다. "나는… 너를 죽일 자격이 없다. 너는… 류(流)의 손에 죽으리라!" 무숙아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왜… 왜 나를 죽이지 않지?" 검난향은 울상이 되어 무숙아를 봤다. 두 사람은 거의 일 년 간 부부처럼 지내 왔다. 검난향은 무숙아를 농락하기 위해 거짓 웃음을 뿌렸었다. 하나, 무숙아에게는 그렇지 않았었다. 그는 검난향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것 이다. 그는 빗속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환류가 수하들을 대동하고 나타나 검난향 주위를 완전히 에워쌌다. "후후… 이제부터 매우 긴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무림달기(武林獺己)!" "으으… 으으…!" "물론 너는 마교총림의 충신이니, 마교총림의 비밀을 입 밖으로 누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 "그러나… 말해야 할 것이다. 내 손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서라 도!" 환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검난향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으려 하는 것 인데, 이상하게도 검난향은 표독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표정은 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녀는 무숙아가 땅에 꽂고 간 검 을 바라보고 있었다. 환류는 그녀의 시선을 쫓으며, 코웃음을 날렸다. "딴 수작 마라. 네가 강하다는 것은 아나, 나의 손도 만만치 않다. 지난밤, 이사형에게 일 검을 배웠다. 섬(閃)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너의 모든 마공 초식을 일 도에 자를 수 있다. 이사형의 말은 무엇이든 맞다. 훗훗… 그것 은 너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웃을 때, 검난향은 슬픈 눈빛을 일대에 던졌다. "이 곳은… 좋은 곳이다. 마교총림과는 다른 아름다운 곳이다." "미염술(美艶術)을 시작하는 것이냐?" "좋도록 생각해라!" 검난향은 쓴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하늘을 우러렀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그녀는 회한의 눈빛을 허공에 던졌다. "소녀 시절에는 꿈이 많았지. 한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물론, 후회 같은 것은 없다!" "…" "내가 죽더라도 그분은 이길 것이다. 그분은 최후(最後) 폐관(廢關)에서 곧 나오실 것이다!" "그분이라니…?" "패엽혼(貝葉魂)… 그분은 다시 나타나실 것이다. 그분은 살아 있는 마왕 (魔王)이시다. 아무도 그분을 거역하지 못한다. 너희들은 그것을 알아야 한 다. 너희들에게 충고를 하겠다. 무림(武林)을 떠나라고!" 검난향의 얼굴은 시꺼매졌다. 그녀는 코에서 검은 핏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독단(毒丹)을 깨물었군?" 환류는 발을 쿵! 굴렀다. 순간 검난향은 앞으로 고꾸라졌고, 얼굴이 추악하게 썩어 가는 가운데 칠공 에서 고름을 흘렸다. "우리들은 하수인에 불과하다. 으음, 마계서열(魔界序列)에서도 최하위이 지. 비찰들이란… 희생물일 뿐이다. 그분은 이런 실패마저도 계산에 두고 계실 것이다!" "…!" "그를 막을 길은 그보다 강해지는 길뿐이나, 그런 길이 있었다면 누군가 그 일을 했을 것이다. 하나, 길은 없다. 그것이 너희들에 대한 최후의 충고이 다!" 검난향은 그런 말을 남기며 숨을 떨어뜨렸다. 그녀의 살은 순간적으로 썩었 고, 검은 연기를 뿜으며 해골로 녹아 버렸다. 그녀가 이빨 사이에 끼여 물고 있던 독은 지극히 강했다. "잘 묻어 주시랍니다!" 사사운은 환류 뒤에 서 있었다. 그는 밤사이, 혼자서 수천 명을 베었다. 그는 강자들을 골라 죽였는 데에도 전혀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무숙아 나으리도 그것을 바랄 것이라고… 주인님은 비봉을 타고 떠오르시 며 말하셨습니다!" 사사운은 허공을 바라본다. 하늘 위, 한 마리 거조가 빠른 속도로 떠오르고 있었다. 그 위에는 흰 옷을 걸친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는 아주 빠른 속도로 사라 져 갔고, 사사운의 시선은 그가 사라져 간 하늘에 오랫동안 머물렀다. 검황성에서 풍운이 거두어질 무렵, 파촉의 땅 한 곳에서도 마풍이 조용히 가라앉고 있었다. 황진(黃塵)이 앞을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하늘도 대지도 모든 것이 그 안에 잠겨 있다. 그 안, 벌써 십 일째 먼지 바람 속에서 한 치 앞도 전진하지 못하고 갇혀 있는 무리가 있다. 낯빛이 창백한 자, 그의 몸뚱이는 땀으로 젖어 있었고 나뭇가지로 바닥에 무수한 선을 그으며 신음하고 있었다. "분명 환상미혼진(幻想迷魂陣)이 분명한데… 어이해 사문(死門)과 휴문(休 門)이 뒤바뀌었단 말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생문(生門)은 무슨 까닭으로 존재하지 않는단 말인가?" 나뭇가지가 정신 없이 그어지며 무수한 선들이 다시 그려진다. 벌써 수천 번이다. 선을 긋고 지우고, 다시 긋기를 반복한 지도. 폭풍처럼 일어났다가는 잠잠해지고, 잠잠했다가는 다시 해일 같은 기세로 일어나는 먼지 바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그것을 일으키는 진세의 이름이 떠오르질 않는다. 무림삼비 중 하나인 만박서생 백리목. 아니, 그는 마교총림의 비찰오호로 불리워야 할 것이다. 그는 패엽혼의 친명에 따라 마병 일만오천을 이끌고 연월성궁(燕月聖宮)에 왔고, 기이한 기문진세에 발목이 잡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황진에 휘말린 일대만 벗어나면 천하에서 가장 부유하다는 연월성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백리목은 천하패권에 욕심이 없다. 그는 연월성궁의 보물들과 미인들에게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연월성궁을 차지하고 제황처럼 살려던 그가 먼지 바람으로 인해 한 걸음도 움직이지 못하는 신세가 될 줄이야… 백리목은 심한 당혹감과 낭패감으로 인해 이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었 다. 담장처럼 밀려오는 먼지 구름을 보며 자신의 지혜가 너무도 얕음을 한 탄하는 수밖에 없었다. 격류처럼 흐르는 황사 속에 그윽한 꽃내음이 흐르고 있음을 그는 알지 못했 다. 화은 천을술, 그는 연월성궁 외곽을 휘감고 있는 먼지 구름을 바라보며 연 신 곰방대를 빨고 있었다. "화류몽몽진(花流夢夢陣)을 네가 어찌 알겠느냐? 마뇌황이 온다면 모를까… 그가 오지 않는 이상, 너는 그 안에서 백 년 동안 갇혀 있어야 한다." 마교총림의 무사 일만오천을 가둔 진세. 당금천하에서 그것을 풀 사람은 단 셋에 불과할 것이다. 진세를 펼친 화은, 풍운아 무옥, 그리고 마도의 모든 기문진에 통달했다고 알려진 마뇌황. 이들 삼 인 외에 화류몽몽진을 풀 사람은 없다. 화은, 그는 이백 년 전에도 삼십육 개의 진세를 동시에 펼쳐 마교총림의 무 사 삼만을 가둔 적이 있었다. 그 때에 비한다면 지금의 일은 오히려 수월한 편이었다. 화은은 볼을 오목히 만들었다가는 연무를 길게 뿜어 냈다. 이상하게도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유혈의 승리가 아닌 무혈의 승리를 거뒀는데도, 그는 기쁜 기색이 아니었다. "이제 시작일 뿐이다. 이제부터는 마교총림의 진짜 강자들이 나타날 것이 다. 마성이 골수에 박힌 진짜 마인(魔人)들이…" 격동강호(激動江湖)! 천하각지에서는 가공할 전운이 일어나고 있었다. 검황성과 연월성궁에서의 파란은 빙산일각(氷山一角)에 지나지 않았다. 언 제부터인가 강호전역에는 사기(邪氣)가 팽배해 있었다. 그리고 가을이 깊어 가는 가운데, 그것은 무시무시한 혈사(血事)로 하나둘 실현이 되었다. 제자가 사부를 죽이고, 사형제지간에 혈전이 일어나 무수한 사람이 죽고, 평소에 교분이 투터웠던 가문 사이에 혈전이 벌어졌다. 혈겁(血劫). 최후의 겁이라고 일컬어지는 마겁(魔劫). 드디어 그것이 이백 년 만에 모습 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교의 무리들은 천하도처에 세력을 뻗치고 있다. 그들은 하명이 있기만을 기다리며 세력을 키우고 있다가는, 서서히 준동하고 있었다. 무당산(武當山) 일대에서, 곤륜산(崑崙山) 일대에서, 점창산(點蒼山), 공동산(供桐山), 북망산(北邙山) 일대에서… 마교총림의 세력은 중원 십팔만 리에 걸쳐 비등해 오르기 시작했다. 이백 년 간 참아 왔던 마도의 힘은 너무도 강하고 은밀했다. 곧 터질 듯한 무엇이 천하의 도처에서 비밀리에 시작되는 가운데, 혈겁의 기운이 드세게 강호전역에 휘몰아쳤다. 무수히 떠도는 소문들… 그러나 무옥, 그가 무림계에 돌아왔다는 것은 아직 소문나지 않았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잼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