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9월 19일 울지마 톤즈'수단의 슈바이처 쫄리(John Lee) 이태석(李泰錫) 세례자 요한 신부 탄생일
부산을 빛낸 인물 14명에 이태석 신부님이 선정됐다.
부산교육청은 “부산지역 위인들의 일대기를 담은 유아교육용 자료, ‘부산을 빛낸 인물’ 12권을 제작, 배포 중”이다.
자료집은 12권이지만 실린 인물은 14명이다.
측우기·자격루 등을 만든 세종대왕 시대의 천재과학자 장영실,
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로 왜군에 맞서 초개처럼 목숨을 버린 ‘전사이 가도난’(戰死易 假道難)의 동래부사 송상현,
숙종대의 독도 수호자 안용복,
일본에서 들여온 고구마를 길러 전국에 보급하고 동래 온천을 번성시킨 영조시대의 동래부사 강필리 등 조선시대 인물로부터 시작된다.
장영실, 안용복은 부산이 고향이고 송상현, 강필리는 부산을 무대로 역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
동래 출신인 일제시대의 여성독립운동가 박차정 여사, 6·25 전쟁통에 동구 좌천동 일신여성병원(현 일신기독병원)을 지어 지역 여성과 아이들을 치료한 호주인 매혜란·혜영 자매 등은 근대의 부산을 빛낸 인물로 뽑혔다. 매혜란 자매는 일제시대에 부산서 태어났다.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세계적 육종학자로 동래에 있었던 한국농업과학연구소를 이끈 우장춘도 ‘부산을 빛낸 인물’로 선정됐다.
현대로 넘어와선 한국의 신발왕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가곡 ‘그네’ 작곡자로 이름난 금수현, 순간과 인간을 찍은 사진작가 최민식, 1984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서 완투 4승의 신화를 쓰면서 롯데자이언츠 우승을 일궈낸 최동원 등이 이름을 올렸다.
한국의 슈바이처로 유명한 장기려 박사, 아프리카 남수단의 ‘톤즈’에서 인술을 베풀며 모든 것을 나누어준 이태석 신부도 포함됐다.
부산교육청은 개학·입학해 야구 개막을 기다리는 달 3월 최동원, 학교 갈 준비를 하며 운동화를 챙기는 달 2월 양정모 등 매월 1명씩 이들 인물을 기릴 계획이다. 6·25 전쟁이 일어났던 6월엔 매혜란·혜영 자매, 농작물을 수확하기 좋은 달인 11월엔 강필리·우장춘 등으로 이 두 달은 2명을 기념 인물로 하고 있다.
1962년 9월 19일 부산시 서구 남부민동에서 아버지 이봉하와 어머니 신명남의 4남 6녀 중 아홉 번째로 태어났다. 고 이태석 신부의 형 이태영도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신부이다.
어릴 때부터 열심인 부모의 신앙 교육을 받으면서 송도성당을 다녔다. 세례명은 요한이다. 1981년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 인제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987년 졸업하였다.
의사가 된 뒤 군의관으로 입대하여 1991년 4월 전역하였다. 어릴 때부터 꿈꾸어 왔던 성소(聖召)의 길을 걷고자 그해 8월 살레시오 수도회에 입회하였다.1992년 광주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1992년 광주가톨릭대학교 신학과에 편입하여 사제 양성 교육을 받았다. 1994년 1월 30일 살레시오회의 수도자로서 첫 서원을 받았다.
1995년부터 2년간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동 살레시오 청소년 센터에서 불우 청소년을 위한 사목 실습을 하였다. 1997년 1월 로마 교황청 설립 살레시오대학교에 유학하였다.
유학 도중인 2000년 4월 27일 이탈리아 토리노에 있는 살레시오수도회에서 종신 서원을 받았다. 곧이어 6월 28일 로마의 예수성심성당에서 부제서품을 받았다. 2001년 6월 살레시오대학교를 수료하고 한국으로 귀국하여, 6월 24일 서울 구로3동성당에서 오랫동안 꿈꾸어 왔던 사제 서품을 받았다.
2001년 10월 아프리카 케냐 관구 소속으로 아프리카 선교 길에 올라, 12월 7일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에 선교 사제로 부임하였다. 톤즈는 아프리카에서 가장 오지로 불리는 곳이며, 오랫동안 수단의 내전으로 폐허가 된 지역이었다. 이태석 신부는 하느님의 제자로서 사명을 펼치는 선교 활동을 시작하였다.
아프리카 남수단은 면적은 한반도와 일본을 합친 크기로 인구의 90%가 절대 빈곤에 처해 있을 정도로 아프리카 최빈국이다. 독립하자마자 국제연합에 가입한 193번째 UN회원국이며 북수단 남수단의 39년 내전으로 전쟁고아들이 흘러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우선 의사 활동을 위해 말라리아와 콜레라로 죽어 가는 주민들과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 흙담과 짚풀로 지붕을 엮어 병원을 세웠다. 또한 병원을 찾아오지 못하는 더 깊은 오지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 순회 진료를 하였다.
이태석의 열성과 노력으로 병원이 알려지면서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이들을 수용하기 위해 원주민들과 함께 벽돌을 만들어 병원 건물을 지어 확장하였다.
톤즈의 아이들과 원주민들을 계몽하기 위해 학교를 세웠다. 처음 초등학교로 시작한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을 차례로 개설하였다. 그리고 유능한 교사들을 영입하였다.
얼마 되지 않아 이태석 신부가 세운 돈 보스코 초·중·고등학교는 수단 남부에서 가장 실력 있는 학교로 알려졌다. 특히 어릴 때부터 기타를 치고 작곡을 하며 음악을 좋아한 이태석은 총과 칼을 들고 노는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악기를 가르쳐 브라스 밴드(brass band)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서로 갈등하지 않고 아름다운 하모니를 만들어 내며 서로 화합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아이들의 브라스 밴드는 뛰어난 실력으로 유명세를 떨치며 정부 행사를 비롯한 각종 행사에 초청되어 공연을 하였다.
2003년 12월 KBS 방송을 통해 이태석의 톤즈에서의 활동이 세상에 알려졌고, 그를 후원하는 다음 카페[cafe.daum.net/WithLeeTaeSuk]가 개설되었다.
이를 통해 후원금이 들어오면서 병원과 학교에 큰 도움이 되었다. 2008년 11월 휴가차 한국에 돌아온 이태석은 검진 결과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자신이 의사이지만, 몸을 돌보지 않는 헌신적인 봉사로 병을 얻은 것이다. 이후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투병 생활을 하던 중 암세포가 전이되어 2010년 1월 14일 서울성모병원에서 48세의 나이로 선종하였다.
톤즈의 사람들은 이태석 신부를 ‘수단의 슈바이처’라고 부른다. 톤즈의 배고픈 아이들, 사흘간 꼬박 걸어서 찾아온 환자들, 같은 민족조차 외면하는 나병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바라보는 이태석의 선한 시선과 해맑은 미소를 보고 사람들을 그를 슈바이처라고 부른 것이다.
이태석은 사제이며 의사, 음악가, 건축가 등 다재다능한 업무 능력으로 톤즈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 그러나 많은 일을 하고 난 뒤에 이런 말을 남겼다.
“처음에는 워낙 가난하니까 여러 계획을 많이 세웠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같이 있어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그들을 저버리지 않고 함께 있어 주고 싶었다.”
여러 사업을 벌여 그들의 건강과 재능을 길러 주는 것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같이 있어 주는 것임을 깨달았다는 말이다. 이태석 신부는 사제로서, 의사로서 마지막까지 나눔과 봉사의 실천이 무엇인지를 우리들에게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저서로는 『친구가 되어 주실래요』[생활성서사, 2009], 『당신의 이름은 사랑』[다른우리, 2011]이 있다. 그리고 이태석을 추모하여 만든 다큐멘터리 「울지 마 톤즈」[KBS, 2010]가 있다.
묘소
전라남도 담양군 광주대교구 성직자 묘재 내 살레시오회 묘역에 묻혔다.
상훈과 추모
2005년 11월 제7회 인제 인성 대상 특별상, 2007년 3월 31일 제23회 보령 의료 봉사상, 2009년 12월 17일 제2회 한미 자랑스런 의사상을 받았고 2011년 7월 국민 훈장 무궁화장을 수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