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장 소림사의 저력 우중(雨中)의 숭산(嵩山)은 비경이다. 세우발은 삼십육봉(三十六峯) 골고루 뿌리어지고 있었다. 세우와 함께 피어 오른 물안개는 봉우리들을 절해의 고도로 만들어 버린 지 오래이다. 소리도 없이 내리는 빗속. 언제부터일까? 붉게 물들어 가는 나무숲 사이로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었다. 무수한 사람들이 움직이는데,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꾸역꾸역 모여드는 자들. 이들은 사농공상(士農工商)… 지극히 색다른 복장 을 걸치고 있고, 말씨 또한 각기 달랐다. 수는 삼만(三萬) 가량, 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숭산의 준극봉(峻極峯) 쪽으 로 조심스레 모여들고 있었다. "오늘 밤을 택해 소림을 장악한다는 명령이 내렸다!" "소림사는 지금쯤 파란에 휩싸였을 것이다. 천마무후가 드디어 소림사로 들 어갔다! 그의 포악함을 미루어 볼 때, 소림사는 지금쯤 폭풍에 휘말렸을 것 이다. 놈이 떠난 후, 우리가 들어가리라." 쓰으으… 쓰으으…! 빠른 속도로 모여드는 자들은 지극히 조심스럽게 태동을 시작한 마교총림의 대강이북 육개단(六個壇) 십팔향(十八香) 휘하의 무사들이었다. 지하에서 세력을 길러 온 자들 가운데에는 놀랍게도 백도인들도 끼여 있었 다. 백도에 숨어 본색을 감추고 있던 자들이 혈겁의 막이 열리면서 본연의 모습 으로 돌아간 것이다. 백도의 무공을 버리고 마도의 무공으로 돌아선 자들, 친구를 베고 사랑하는 여인을 베고 마도로 회귀한 자들… 마도 칠십이류가 뭉쳐 만들어 낸 가공의 집단, 마교총림. 그들의 무서운 점은 끝없는 탐욕에 있다. 이들은 대를 이어 가며 끈질긴 집 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마도천하! 그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마교총림의 무사들은 은밀한 가운데, 난석곡(亂石谷) 일대로 모여들었다. 그 곳, 며칠 전부터 소림사 쪽을 감시하고 있는 일천여 마도인들이 있었다. 비찰사호(秘察四號). 그는 팔짱을 끼고 있고, 그의 등 뒤에는 체격이 거대한 무사들이 삼엄한 기 세로 서 있었다. 그 중에는 몸에서 한기를 일으키는 자들도 끼여 있었다. 전신에서 극음지기(極陰之氣)를 일으키는 자들은 금기로 여겨지는 강시마공 (疆屍魔功)을 익힌 자들이었다. 비찰사호는 지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다. "후후후… 그 멍청한 천축 놈으로 인해 우리는 피 흘리지 않고 소림사를 얻 게 되리라!" 잔혹한 목소리는 일대에 메아리를 만들었다. "큭큭… 그리고 나는 강호쌍화(江湖雙花) 가운데 하나를 힘들이지 않고 꺾 게 될 것이다!" 입을 벌리고 웃는 자, 그는 축공부(祝公夫)라는 이름으로 천하에 알려져 있 는 자였다. 그의 앞, 세 명의 복면인이 시립해 있었다. 이들은 소림사 쪽에 갔다가 온 자들로, 경공술이 지극히 뛰어난 비천삼마 (飛天三魔)들이었다. "천마무후는 정문을 통해 소림사로 들어갔습니다. 아마도 소림사 쪽에서는 이미 굴복을 한 듯합니다!" "한바탕 피보라가 일어날 것입니다!" "새북십삼천 중 월하(月下)라는 사람이 은밀히 기호를 남기며 소림사로 들 어갔는데, 그것은 바로 저희들의 독문표식이었습니다!" 세 사람은 웃고 있었다. 대소림사(大少林寺). 천 년을 두고 무림계의 태두(泰斗)로 군림해 온 곳이다. 무수한 검협(劍俠)이 숭산 소림사에서 배출되었고, 소림사의 무공으로 천하 를 평정한 이도 부지기수이다. 하나, 정작 소림사는 무림계와 인연을 닫고 지내는 곳이었다. 소림사 승려들은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하산(下山)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가람을 지키며 불도에 정진하고 있고, 무림인이기보다는 승려로 안주하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나, 마도인들에게 소림사란 영원한 적이다. 소림은 단 한 번도 마도세력에 의해 굴복당하지 않은 무림의 성지이다. 그 것은 달마 이래로 변하지 않은 무림의 불문율과도 같은 것이었다. 마도가 기승을 부리면 무사들은 소림으로 달려간다. 그 곳에 가면 힘을 얻 을 수 있기에… 정의가 도탄에 빠지게 되면 사람들은 소림으로 간다. 그 곳에 가면 잃어버 린 의기를 되찾을 수 있기에… 백도의 실세인 검황성은 당금의 세력일 뿐이다. 진정한 백도 제일지는 바로 숭산 소림사였다. 소림을 얻는다면 백도는 무너졌다 할 수 있다. "소림사는 내일 새벽부터 마교총림의 숭산분타로 전락이 될 것이다. 후후후 …!" 비찰사호 축공부는 잔혹히 웃으며 붉은 깃발을 천천히 쳐들었다. 드디어 혈풍이 시작되는 것인가? 소림사 최초로 시산혈해의 참경이 만들어지는 것인가? 일만오천은 태실봉(太室峯) 쪽으로 움직였다. 나머지 일만오천은 소실봉(少 室峯)을 향해 갔고, 상위 천여 고수는 제일 앞에 서서 빠른 속도로 이동하 기 시작했다. 검은 장막이 드넓게 펼쳐지듯이 소림사 일대는 새까맣게 뒤덮이기 시작했 고, 그러는 가운데 뇌우(雷雨)가 퍼부어지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 쾅-! 뇌정이 떨어지며 천지가 진동한다. 우우, 소림사! 이제 소림사는 무림에서 제명이 되고 말 것인가? 소림하원(少林下院) 일대는 매우 적막했다. 지극히 많은 승려들이 오가고 있었으나, 옷자락 스치는 소리조차 나지 않았다. 비가 퍼부어지는 소리만이 요란했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만이 애달프게 울려 퍼졌다. "자네는 억세게도 운이 좋은 사람이야!" 전포(戰袍)을 걸친 쾌남아(快男兒). 그의 손가락에는 소림사의 승려들이 직 접 기른 차로 끓인 향차(香茶)의 잔이 들려 있었다. "곰곰이 생각할수록 자네가 부럽네. 훗훗… 내가 어쩌다가 자네에게 홀리 어, 자네를 위해 보수도 받지 않고 수천 리를 떠돌며 피라미잡이 미끼가 되 고 말았는지 모르겠네! 물론, 재미는 있었지!" 웃는 사람, 그는 가공할 소문과 더불어 소림사를 찾은 천마무후 달단양이었 다. 한데, 그는 소문과는 달리 귀빈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천마무후의 면전에는 기질이 온유해 보이는 서생풍의 청년 하나가 앉아 있 었다. 두 시진 전에 새를 타고 소림사 대웅보전 앞에 날아 내린 사람, 그는 바로 폭풍의 눈과 같은 풍운아 무옥이었다. "자네 덕에 이 곳에서의 일은 쉽게 풀리게 되었네." 무옥이 미소로 응답하자. "자네 일이 어찌 되었건, 이후로는 나를 종놈처럼 부릴 수는 없을 걸세!" 달단양의 눈빛이 파랗게 반짝거렸다. 그는 무옥의 친구가 되고 나서 세상 사는 권태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는 정녕 내 식대로 떠돌아다닐 걸세. 자네가 하라는 대로 마교총림을 꼬이는 일은 더 이상 안 하겠네. 물론, 자네 대신 피보라를 뿌리는 일이라 면 구태여 사양하지 않겠네!" "자네는 천군만마보다 더한 응원군이네!" "핫핫… 자네를 돕는 것이 아니네. 나는 중원이 좋아 중원을 위해 이런 짓 을 하고 있는 걸세!" 달단양은 환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이 특히 환한 이유는, 이 곳 소림사에 와서 상상도 하지 못하는 즐거움을 맛봤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림사의 장경각에서 자파의 진경을 세 권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안에 는 천마왕부(天魔王府)에서 실전된 절기가 적혀 있었다. 천마천수환(天魔千手幻)! 한 번의 움직임으로 천 개의 환영을 만들어 내는 극상의 운신법이다. 그것 으로 인해 달단양의 초극어검류(超克御劍流)는 한 단계 상승할 수 있었다. 소림사 방장 천광(天匡)이 그에게 그것을 기증한 이유는, 그가 무옥의 벗임 을 인정했기 때문이었다. 무옥, 그의 무공 중 많은 부분은 소림사에서 기원한다. 따지고 보면 무옥은 소림사의 속가제자(俗家弟子)라고 할 수 있었다. 검황성의 후견인 중 하나가 천광선사였다. 그는 무옥과 십여 차례 만나 이 야기해 본 바 있는 사람으로, 무옥은 그를 존경하고 있었다. 무옥을 풍운제검대의 총검대주로 극구 천거한 사람이 바로 천광선사였다는 것은 검황성 사람이라면 다 아는 일이었다. 바람이 강하게 불 때, 천마무후는 옷자락으로 입가를 닦으며 일어섰다. "하여간 자네는 이 일에 끼여들지 말게!" "무슨 소리인가? 쉴 사람은 자네일세!" "후후… 자네가 나서지 않아도 만사는 해결이 될 걸세. 자네는 운이 좋은 사람이야!" "아…!" "예소저(芮少姐)는 좋은 여인이네. 그녀와 면담을 하고 나서… 훗훗… 나는 천축에 돌아가는 대로 나의 처첩(妻妾)들에게 학문을 일러 주리라 작정하게 되었다네!" 천마무후는 검을 들고 일어났다. 그는 검신을 매만지며 빙그레 웃었다. "내가 자네 대신 검무(劍舞)를 출 테니, 자네는 예소저를 찾아가게! 그녀는 나의 말을 듣고는 자네가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네. 아마도 내가 자네와 너무 오래 이야기한다고 몹시 섭섭해 할걸세!" 천마무후는 천천히 밖으로 걸어나갔다. 뜨락에는 십칠 인(人)이 서서 그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새북십삼천(塞北十三天) 가운데 월하(月下)를 제외한 십이 인(人). 이들은 오랫동안 진짜 싸움에 굶주려 있었다. 어은(漁隱)에서 불은(佛隱)으로 이름을 바꾼 고뇌천불, 그도 이미 정체를 밝힌 상태였다. 그리고 이제까지 월하 행세를 했던 야월화의 강북단주… 그 외 속세인 차림의 장포중년인, 그는 소림사 장문인 금강신협(金剛神俠) 등표(登豹)라는 사람이었다. 그 이외에 두 명의 고승이 있는데, 그들은 오랫동안 은거에 들었던 천외쌍 불(天外雙佛)이었다. 자미천불(紫眉天佛), 혈미천불(血眉天佛). 이들은 각기 일천 나한(羅漢)을 이끌고 있다. 도합 십칠 인, 이들은 한 시진 동안 천마무후를 기다리고 있었다. 천마무후는 뜨락에 서며 싱긋 웃었다. "이제부터 나는 무옥의 대리인이외다. 물론 무옥… 자네처럼 멋지게 하지는 못할 것이나, 실수하지 않을 자신은 있소!" 그의 한어는 꽤나 능숙했다. 무림에 폭풍을 일으키며 나타난 천마무후는 중원무림계에 많은 고뇌를 안겨 준 바 있다. 그는 패엽혼의 마계에 휘말려 백도의 명숙들을 무차별로 꺾은 과거가 있다. 혈겁이 도처에서 일어나는 이 때, 백도가 나서지 못하는 데에는 그의 역할 이 상당히 작용했음을 부인하지 못할 일이었다. 지금은 그가 빚을 갚을 때였다. 그는 무옥 대신 만사를 처리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무옥이라 하더라도 꺾지 못할 그의 고집이었다. 무옥은 도합 십팔 인이 사라져 가는 것을 멋쩍게 바라봤다. "쉬지도 않고 새를 타고 왔는데 사람들로부터 거절을 당하다니! 하긴 천마 무후가 정면으로 나서는 이상 내가 끼여들 필요도 없지!" 무옥이 중얼거릴 때였다. 그의 귓속으로 창노한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주인! 어서 예운령 소저를 찾아가십시오." 말을 하는 사람은 불은이었다. 그는 화은 천을술에게 배운 솜씨로 일대에 백목련화를 피운 장본인이었다. 그는 천마무후를 따라 몸을 날리며 전음으로 말을 건네고 있었다. "그분은 만뇌전(萬惱殿)에 계십니다. 모르긴 해도 지극히 중대한 일인 듯합 니다. 두 분이 만나시는 이상의 어떤 중대한 비밀이 있는 듯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빠르게 작아졌다. 파아아앗- 팟-! 열여덟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제일 강한 사람은 천마무후 달단양. 하늘마저 가른다는 초극어검을 받아 낼 사람은 무옥과 패엽혼뿐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조금 전 무옥에게 슬쩍 전음으로 말을 했던 불은(佛隱) 고뇌천 불. 그의 무공 역시 소림에 와서 한 단계 상승한 상태였다. 그 다음은 마라무존(魔羅武尊) 겁사(劫邪). 그 다음의 고수는 혈미천불(血眉天佛)이었다. 그 이외의 사람들은 거의 비슷한 무공을 갖고 있는데, 가장 약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축공부보다는 한 수 위였다. 천외천(天外天)의 고수들, 이들을 막을 자는 없다. 쏴아아… 쏴아아…! 빗발이 드세다. 무옥은 퍼부어지는 비에 대고 중얼거렸다. "지금의 풍운 정도는 간단히 해결이 된다. 하나, 진짜 폭풍은… 아아, 나라 하더라도 거둘 자신이 없다. 이것은 진심이다!" 무옥은 처음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는 타인이 보는 앞에서 절대로 한숨을 쉬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강했고, 언제나 당당했다. 사람들은 그를 철인(鐵人)이라 했 고, 그의 투혼을 존경했다. 그러나 무옥의 내면마저 강철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섬약한 청년이었다. 무사가 되지 않았더라면 세상에서 가장 신바람 나게 마차를 모는 젊은 마부 가 되었을 것이다. 퍼부어지는 빗속. 데에에앵… 데에에엥…! 돌연 종 소리가 시작되고 있다. 종 소리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나는 이미 죽은 사람들의 극락 왕생(極樂往生)을 비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이제부터 죽어 갈 마도인들의 극 락왕생을 비는 것이었다. 축공부. 그는 석상처럼 경직되고 말았다. 삼만 휘하 무사들과 더불어 질풍노도처럼 소림사를 향해 짓쳐 들어가던 축 공부의 기세는 찰나적으로 사그라들고 말았다. 보라! 산문이 일제히 열리며 소림사에서 수많은 승려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 을. "아미타불… 삶은 고해니라! 아미타불…!" "소림사는 누구든 환영하도다. 아미타불… 칼을 버리는 자, 이제부터라도 부처가 될 수 있다!" "혈겁은 벌어지지 않는다." 하나같이 눈에서 강렬한 안광을 뿌리는 승려들. 이들의 눈에서 폭사되는 빛 은 살광이 아니라, 마를 누그러뜨리는 복마성광(伏魔聖光)이었다. 일천탕마승(一千蕩魔僧). 소림방장 천광법사가 언제고 닥쳐 올 겁난에 대비해 감추어 둔 소림의 저력 이다. 일천탕마승은 소림칠십이종절기 중 다섯 가지 이상을 완벽하게 익혔으며, 어떠한 마공에도 견디어 내는 부동호심공(不動護心功)을 터득했다. 아수라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는 열혈의 무승들. 이들이 뿜어 내는 기세는 마교총림의 무사들을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일천탕마승은 일제히 항마법창(降魔法唱)을 토해 내며 일천연화대불진(一千 蓮花大佛陣)을 펼치기 시작했다. 한순간 소림사 일대에 동장철벽이 만들어지며 항마기류가 노도 같은 기세로 퍼져 나갔다. "항마무적(降魔無敵)-!" "세존지로(世尊之路)-!" "제행무상(諸行無常)-!" 연화대불진은 달마대사의 심득에서 유래한 완벽한 수비대형이다. 일종의 차륜대진으로 일천탕마승 모두가 쓰러지기 전에는 진세가 사라지지 않는다. 삼만의 마도무사들의 행진이 멈춰졌다. 소림의 저항은 이들의 계산에 없었 다. 이들은 천마무후가 쓸어 버린 소림을 밤톨 줍듯이 쉽게 함락시킬 요량 으로 쳐들어오지 않았던가! 삼만의 무사들이 돌변한 상황에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해 했다. 축공부, 그는 석고상처럼 굳어 가는 가운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우라질! 천마무후, 그 놈은 허깨비였단 말인가? 어이해, 소림사가 이렇듯 건재하단 말인가?" 그가 욕설을 할 때였다. "네놈이 감히… 무후를 욕하다니!" 돌연, 허공에서 호통 소리가 들렸다. 파앗-! 너무나도 빠르게 다가서는 하나의 혈수(血手). 바로 마라무존 겁사의 마라쾌풍수(魔羅快風手)였다. 그것은 번개처럼 빨리 다가섰고, 축공부가 그것을 발견하는 순간 축공부의 뺨에는 손도장 하나가 새겨졌다. 펑-! "크으으…!" 축공부는 허공에서 날아든 손바닥에 뺨이 피범벅이 되어 둥실 날아올랐다. "우… 우라질!" 그는 얼굴색이 똥색이 되어 욕설을 하며 손을 쳐들었다. "쳐라! 화탄으로 폭발시켜라!" 그가 악을 쓰며 손을 품에 넣어 화탄 주머니를 꺼낼 때였다. 또다시 하나의 그림자가 그의 곁으로 다가섰다. "폭죽놀이는 삼가한다!" 창노한 목소리의 주인공, 그는 섬전보다도 빨리 축공부 곁으로 다가섰다. 그는 먼저 축공부의 뺨을 때린 사람보다도 훨씬 빨랐다. 게다가 그의 수법 은 마교총림의 수법과 극성이 되는 것이었다. 팟-! 축공부는 또 한 번 허공으로 퉁겨 올라갔다. 누군가 그의 왼뺨을 후려쳤고, 그의 옷자락을 길게 찢고 그의 품에 들어 있던 화기 주머니를 갖고 갔다. 세 가지 동작은 거의 일순간에 벌어졌고, 당한 축공부라 하더라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쾌속했다. 보라! 허공에 열여덟 개의 그림자가 나타나고 있지 않은가! 몸에 무게가 없는 듯이 허공을 디디며 미끄러지는 십팔 인. 이들은 천마무후가 이끄는 소림의 임시 호법들이었다. 그들 가운데 한 사람, 그는 유황 냄새에 찌든 가죽 주머니 하나를 손에 쳐 들고 웃고 있었다. "훗훗… 이백 년 전 당시 노납은 속세인이었고, 당시 노납에게 맞아 죽은 마교총림의 마두 하나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축융마왕(祝融魔王)! 한데, 이것은 바로 그의 유물이로군!" 웃는 노승, 그는 지극히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이, 이백 년 전 돌아가신 상상조(上上祖)를 네가 죽였다고? 그럼… 바로 너는… 기… 기문육가(奇門六家)의 고수이더냐?" 축공부는 입을 따악 벌리고 말았다. 축융마왕은 축공부의 가문에서 배출한 무인 중 가장 강한 자이다. 축공부는 축융마왕의 진전 중 팔 성을 이어받았을 뿐이다. 이백 년 전 축융마왕은 기문육가의 고수 중 하나와 맞붙었으며, 불과 삼 초 를 나누기도 전에 육포로 화했다고 알려지지 않았던가! 그런데 눈앞의 노승이 바로 그 장본인이라니? 축공부는 너무도 공포에 질린 나머지, 달아나야 한다는 생각도 하지 못했 다. 축공부의 얼굴이 밀랍처럼 하얗게 변할 때. "너무 무서워 말거라! 소림 경내에서 노납이 어찌 살생을 저지르겠느냐?" 고뇌천불의 일지가 퉁겨졌으며, 축공부는 마혈이 찍혀진 채 석고상으로 변 하고 말았다. 십팔(十八) 대(對) 삼만(三萬). 숫자상으로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진짜 싸움이 되고 있 었다. 십팔 인은 일당만의 무공을 지니고 있었다. 축공부가 이끌고 온 자들은 단 일 장 일 검도 받아 내지 못하고 잇따라 쭈 욱쭉 드러눕고 말았다. 마교총림은 검황성, 연월성궁에 이어 다시 한 번 철저하게 패배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의 패배는 너무도 완벽한 패배였다. 무옥, 그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암자 쪽으로 가고 있었다. 그답지 않게 흥분을 했고, 숨결을 흩뜨리는 이유는 암자의 문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이었다. 희대의 풍운아를 흥분하게 하는 여인. 그녀는 무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여인이자 친구이고, 사매인 탄금화(彈琴 花) 예운령(芮雲玲)이었다. 검황성의 군사(軍師). 그녀는 무옥의 첫사랑이 되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왜 호젓한 곳에서 무옥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만뇌전(萬惱殿). 그 곳은 소림하원(少林下院)의 북쪽 십 리(里) 되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소림본사(少林本寺)의 남쪽 금역(禁域)에 자리잡고 있다. 본시 그 곳은 달마조사(達磨祖士)가 참선(參禪)하던 곳으로, 장문인의 허락 이 없다면 원로승이라 하더라도 발을 들이지 못하는 곳이었다. 예운령에게 그 곳을 내준 것만 봐도, 소림에서 무옥을 어떻게 대접하는지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세우(細雨)가 고색찬연한 기와지붕에 뿌리어지고 있다. 무옥은 걸음을 내디디다가는 언제부터인가 인상을 경직시키고 있었다. '가공할 기세(氣勢)가 존재하고 있다.' 무옥은 골수(骨髓) 속으로 저미어 드는 어떠한 기운이 있음을 느꼈다. 대지(大地)에서부터 뻗쳐 오는 가공할 기운, 그것은 지극히 패도(覇道)적이 고 잔폭한 기운이었다. '설마… 나를 노리는 자들이 숨어 있단 말인가?' 무옥은 천천히 걸음을 내딛었다. 만뇌전의 내정(內庭)으로 접어드는 순간, 돌연. 콰아아- 콰아아-! 등 뒤쪽의 허공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시커먼 물체가 무옥의 등판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섰다. 절대절명(絶代絶命)의 순간! 무옥은 기다리고 있다는 듯, 신형을 비스듬히 틀며 손을 쳐들었다. "누구의 희롱인지 모르나, 그런 것은 위험하다!" 무옥의 흰 손은 우아한 동작으로 쳐들리는 가운데, 허공 가득 옥수화(玉手 花)를 뿌리어 댔다. 삼백육십 방위가 한순간 강기(剛氣)의 폭풍에 휘말려 들었고. 파팟- 팟! 둔탁한 소리가 잇따라 터져 나오는 가운데. "크으으… 자네, 정말… 대단하군!" 신음 소리가 들리며 검은 그림자는 위로 치솟아 올랐다. 시커먼 철포(鐵袍)를 걸치고 있는 사람. 그는 칠 장이나 날아오른 후에야 겨우 신형을 바로잡았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철포로 휘어 감고 있는 사람. 그의 목소리가 무옥을 당황하게 했다. "방… 방장(方丈)!" 무옥은 어이없다는 듯 입을 가볍게 벌렸다. 훌훌 날아올랐다가 떨어져 내리는 암습자는 놀랍게도 대소림사의 방장인 천 광선사(天匡禪師)였다. 그가 무옥을 암살하려 하다니? 천광선사는 달마역근경(達磨易筋經)을 완전히 터득한 사람이다. 그는 중원 사성(中原四聖)중 하나인 고해불(苦海佛)의 사제이고, 소림사가 배출한 승 려 가운데 서열 팔 위 안에 들 정도로 막강했다. 그는 소림칠십이종절기(少林七十二種絶技) 가운데 사십오 가지를 터득하고 있으며… 그 중 금강북호권(金剛伏虎券)과 십단금(十段金), 달마삼검(達磨 三劍), 대금강진기(大金剛眞氣)에 있어서는 역대의 어떠한 고승도 이룩하지 못한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 있었다. 천광선사. 그는 금강불괴지신에 가까운 데에도 울상이 되었다. 하나, 그의 입가에는 단아한 미소가 맴돌고 있었다. "헛헛… 놀랄 것 없네. 시험이었으니까!" 그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철포를 벗었다. 그가 걸치고 있던 철포는 한철편(寒鐵片) 천여 개를 꿰어 맞추어 만든 것이 었다. 놀라운 것은 천광선사가 철포 아래 두 종류의 보의 (寶衣)를 걸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나의 천잠사의(天蠶絲衣). 그것은 천 년 간 실을 토하지 않다가 천 년에 단 한 번 천사(天絲)를 토하 고 죽는다는 천잠의 실로 직조한 보의이다. 빛은 은은한 유백색이고, 신축이 자유로와 체격이 어떠한 사람이든 그것을 걸칠 수 있다. 또 하나는 금루의(金縷衣). 그것은 무림에서 만들어진 보의 중에서 가장 뛰어난 물건이었다. 그것을 걸 치게 되면 보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내가강기를 맞아도 육 체를 온전히 보전할 수 있게 된다. "어… 어찌 된 일입니까?" 무옥이 놀라 물을 때였다. "훗훗… 자네를 정확히 알기 위해 예시주와 노납이 머리를 짜내어 이런 일 을 한 것이라네!" 천광선사는 세 가지 호신의를 땅에 펼쳐 놓았다. 철포와 천잠사의와 금루의. 금옥을 두부처럼 잘라 내는 보검에도 견디어 낸다는 세 가지 보의에는 놀랍 게도 긁힌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매우 미세한 원호(圓弧). 그것은 무려 백팔 개(個)나 두루 찍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옥의 장초(掌 招)로 인해 만들어진 자국이었다. 찰나지간에 격출한 무옥의 강기가 세 종류 보의에 똑같은 흔적을 남긴 것이 다. 천광선사가 세 종류 보의를 걸치지 않았더라면, 그의 육신은 제 모습을 유 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흠, 과거에 비한다면 칠 배 성장했군. 하나, 조금 모자라네." 천광선사는 합장을 하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나, 그는 무옥을 절대적 무 사로 보는 눈치는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이백 년 전 패엽혼(貝葉魂)보다 한 수 위이네. 하나, 패엽혼 이 이백 년 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리는 만무할 테이니… 현재로서는 자 네 쪽이 불리하다고 할 수 있네!" "아, 그럼 대사는 저의 무공과 패엽혼의 무공을 비교하신 것입니까?"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네. 하여간 만뇌전 안으로 들어가게!" 천광선사의 얼굴은 어느새 경직돼 있었다. 만뇌전 안. 그 안에서는 사원에서는 있을 수 없는 묘향(妙香)이 떠돌고 있었다. 꺾어질 듯 가는 허리에, 상큼한 미소를 입가에 짓고 있는 백의여인. 습관적으로 소금(小琴) 하나를 가슴에 안고 있는 묘령의 미인은 바로 탄금 화(彈琴花) 예운령(芮雲玲)이었다. 그녀는 잡동사니 같은 물건을 아주 많이 갖고 있었다. 수백 개의 봉서(封書)며, 수십 개의 양피(羊皮) 두루마리, 그리고, 쇳조각 과 나뭇조각들… 예운령은 전에 비해 한결 건강해 보였다. 소림사에 와서 생활하는 동안 그 녀는 건강을 회복한 것이다. 시선(視線)과 시선(視線). 그리운 사람들끼리의 시선에는 의미가 많다. 무옥은 멋쩍은 표정을 지었고, 예운령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 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이렇게 오실 줄 알았습니다!" "운령, 고초가 많았소!" "그렇지 않습니다. 중원천하를 떠돌며 낭인생활을 하신 사형의 고초에 비한 다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지요. 하나, 소녀는 검황성의 군사 자격으로 이 사형의 패도적 병법에 대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운령의 목소리는 진지해졌다. 그녀의 눈에서는 늘 혜기(慧氣)가 흘러 나왔다. 아마도 천하에서 가장 많은 고서(古書)를 암기하고 있는 사람들은 본시 천 재로 태어난 예운령일 것이다. "사형은 그들을 너무도 철저하게 처단했습니다. 그들이 자존심을 잃어버릴 정도로!" 예운령은 봉서 한 무더기를 무옥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개방도(蓋幇徒)의 통신망을 통해서 예운령에게 전해진 것이었다. 봉 서 하나마다 가공할 사연이 기록되어 있었다. <천하칠십이로(天下七十二路)에서 마교총림이 일대준동(一代蠢動)!> <자세한 인원은 알지 못하나, 오십만(五十萬)이 넘는다는 것만은 명확한 사 실입니다!> <무수한 강호명가(江湖名家) 후예가 신비하게 실종을 하기 시작했는데, 필 경 마교총림이 강호세력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인질계를 쓰는 듯합 니다!> <새외변황(塞外邊荒)의 마도세력이 마교총림과 하나로 합류하기 위해 중토 로 들어서고 있으며… 묘강(苗疆) 일대의 독교(毒敎)와 낭산(狼山)의 적신 교(赤身敎), 청해 성숙해의 운중마부(雲中魔府)를 비롯한 세상을 떠났던 마 도세력이 속속 모습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예운령은 봉서를 펼치며 쓴웃음을 지었다. "비찰들을 이용한 계략은 혼란계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혼… 혼란계?" "패엽혼으로서는 두 번 다시 실수를 하지 않아야 할 욕심이 있었고, 그러하 기에 그로서는 다수의 수하를 희생하더라도 중원천하에 자신의 진짜 적이 누구인가를 정확히 알아볼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으음…!" 무옥의 표정도 굳어졌다. 이백 년 전, 천하를 피로 씻었던 인물 패엽혼. 그는 아직까지 진정한 모습 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무옥의 모든 것은 그들에게 완전히 밝혀진 셈이었다. "우려했던 대로군." 무옥이 중얼거릴 때. "가장 두려운 것은…" 예운령의 눈에 물막이 떠올랐다. 그녀는 무옥의 아름다운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그녀의 눈에서는 아련한 빛 이 떠올랐다. 눈은 마음의 창(窓)이다. 눈을 통해서는 거짓이 없는 밀어(密語)가 떠오른 다. 무옥은 예운령의 자극적인 눈빛을 받자, 입가의 경직을 풀고 예의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렇습니다! 이사형은 이제 천하맹주(天下盟主)나 다름없으십니다. 패엽혼 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사형을 암살(暗殺)하려 할 것입니다!" 예운령은 결국 영롱한 눈물을 뺨 위에 떨어뜨렸다. 순간, 무옥은 피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 목은 질긴 편이지. 훗훗… 사매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내 목을 잃어버리 지 않을 테니, 내 앞에서 울음을 보이지 마오!" 무옥은 싱긋 웃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