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장 마(魔)의 하늘 소림사의 혈풍은 하루도 되지 않아 가라앉았다. 축공부가 이끌고 왔던 자들은 하나도 남김없이 사로잡혔다. 축공부는 뇌옥에 갇혔으며, 혈도가 풀리는 순간 이빨 사이에 숨겨 둔 독약 을 깨물어 자결을 했다. 그의 측근 휘하 천여 명 역시 자결을 했다. 그들이 자결을 한 이유는, 잡히게 되면 어차피 살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만성독약을 먹어야만 하고, 그것의 해약은 패엽혼에게만 있다. 결국 그들은 독약이 발작해 몸이 썩어 죽는 고통을 겪기보다는, 독단을 깨 물어 일찍 죽는 길을 택한 것이다. "우라질! 패엽혼이라는 자가 뭐 강하다고 겁을 내는지 모르겠군. 내가 무옥 과 더불어 나서기만 한다면, 패엽혼이라는 자가 수천 명이라도 반나절이면 도륙을 낼 수 있거늘…!" 천마무후는 그렇게 소리쳤고. "아미타불… 무후의 초극어검(超剋御劍)은 빠르기에서 천하제일이고, 주인 의 심검류(心劍流)는 완벽함에서 천하절정이나… 패엽혼의 절대마검류(絶代 魔劍流) 역시 마도 사상 가장 완벽하다는 검법입니다." 불은 고뇌천불은 미소를 잃고 있었다. 그는 패엽혼을 본 바 있는 사람이었 다. 그는 합장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더욱이 그가 마교의 금기를 깨고 삼혼(三魂)과 사몽(四夢), 오잔(五殘)을 깨운다면… 그리고 다 죽었다고 소문난 삼혈마겁병(三血魔劫兵)이 건재하고 있다면…!" 삼혼(三魂), 사몽(四夢), 오잔(五殘), 삼혈마겁병(三血魔劫兵)! 그것은 악마의 마지막 전설이다. 그것은 가장 잔혹하고, 공포스러운 전설이 다. 그 전설은 깨어나지 않아야 한다. 깨어난다면… 아무도 이후의 일을 알지 못할 것이다. "핫핫… 선사답지 않게 걱정을 하시는군요?" 천마무후 달단양은 웃음을 터뜨리는데. "그들은 죽지 않소! 그래서 두렵소!" 불은 고뇌천불의 표정이 미묘했다. 그리고 그의 다음 말은 천마무후를 입다 물게 했다. "왜냐하면, 이미 영혼(靈魂)을 마계(魔界)에 팔아 먹은 자들이기에…" 만뇌전 안. 무옥은 예운령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눈에서 기이한 빛을 뿌렸다. 예운령은 무옥의 야릇한 눈빛을 받고 몸을 움츠렸다. "왜… 그러한 눈으로 저를 보시나요?" 예운령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운령을 안고 싶소!" "으음…!" "바로 지금!" 무옥은 손을 예운령 쪽으로 내밀었다. 순간, 예운령의 눈에서 샛별의 빛이 반짝 일어났다. "소녀는 언제나 이사형의 것입니다. 하나, 지금 소녀를 안으실 수는 없습니 다!" "왜?" "아직… 아니되십니다!" "어째서?" "이사형은 백도제일이기는 하나, 천하제일은 아니십니다!" "…" "그리고 고금제일은 더욱 아니십니다! 저는 이사형이 그러한 경지에 이르는 때에야 이사형에게 안기겠습니다!" "머나먼 길을 요구하는군!" 무옥이 조금 섭섭해 하자. "저를 사랑하십니까, 이사형?" 예운령의 눈빛은 동경에 가득 찬 사슴의 눈빛이었다. 두 사람은 정신적으로 사랑을 하는 사이였다. "물론… 사랑하오!" "저를 위해 천하제일이 되시겠습니까?" "바란다면…!" 무옥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럼 되었습니다. 그 말씀 한 마디로… 소녀는 이제 영원히 이사형의 여자 가 될 것입니다." 예운령은 눈에서 이슬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무옥은 그녀의 눈물을 보며 미소를 던졌다. "바보같이 울기는…!" "이사형! 차라리 무림인이 아니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예운령의 마음은 허물어지고 있었다. 무옥이 끌어당긴다면 그녀는 저항을 하지 않고 무옥의 품으로 들어올 것이 다. 하나, 무옥은 대장부(大丈夫)이기에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을 눌러 참았다. "내가 무엇을 해 주어야 사매가 울지 않을까? 이 나이가 되어 사매 앞에서 재롱을 떨기도 뭣하고…!" "이사형은 좋은 분이십니다!" 예운령은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닦아 냈다. 그녀는 애써 방긋 웃으며 몸을 일으켰다. "저를 따라오십시오!" "어디로 가는 것이지?" "호호… 소녀는 처녀 귀신이 되고 싶지 않은 맹랑한 여아(女兒)랍니다! 호 호… 그러하기에, 부처님 앞에 빌어서라도 사형을 천하제일로 만들어야 합 니다!" 예운령은 웃으며 밖으로 걸어나갔다. 예운령이 무옥을 안내한 장소는 삼층대루(三層大樓)이고, 소림사 안에서는 금지(禁地)로 소문이 난 곳이었다. 바람에 풍경 하나가 울고 있다. 무옥은 고색창연한 거대 누각 앞으로 다가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설마, 나더러 고리타분한 불경(佛經)을 외우라는 말은 아니겠지?" 무옥이 다가가는 곳, 그 곳은 바로 소림사의 장경각(藏經閣)이었다. 천하에서 가장 많은 서적이 비장되어 있는 곳이며, 무공기서(武功奇書)가 수도 없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달마대사가 육필로 적은 기서(奇書), 소림에서 득도한 고승들의 심득이 담 겨 있는 무공비급, 외지에서 소림으로 흘러 들어온 천하의 심오막측한 무공 비급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는 곳이 바로 소림의 장경각이다. 예운령은 장경각의 거대한 문 앞에 섰다. "소림은 언제나 무적(無敵)이었습니다. 그것은 사형도 아실 것입니다!" "…" "소림의 모든 것은 장경각 안에 있습니다. 저 안에 있는 서적은 너무나도 방대해, 한 인간으로서는 평생을 장경각 안에서 보낸다 하더라도 장서의 백 분지 일도 읽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으음…!" "저 안에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천광선사라 하더라도!" 예운령은 입술을 질겅질겅 씹으며 무옥을 바라봤다. 그녀는 매우 간절한 눈 빛을 던지며 말을 이었다. "저 안에 없는 것이라면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세상에 있는 것이라면 저 안에 있을 것입니다!" "사매는 내가 저 안에서 어떠한 것을 얻기 바라는가?" "제가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천하가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소림사가 바라고 있습니다. 이 일을 안배 하신 분은 바로 천광선사입니다!" 천광선사는 소림사의 방장이다. 그는 살계를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는 강호계에는 한 번도 내려가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강호계의 오대고수 안에 끼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나, 사형은 그것을 얻으셔야 합니다!" 예운령은 천천히 뒷걸음질쳐 나갔다. 그리고 우레치는 소리가 나며 장경각의 정문이 활짝 열렸다. 장경각 안에는 아홉 명의 고승이 있었다. 이들은 무술승(武術僧)이 아니라, 학승(學僧)으로 일생을 장경각 안에서만 보낸 인물들이었다. 천서구존자(天書九尊者). 이들은 장경각 안의 장서를 아홉으로 나누어 관장하고 있었다. 이들이 하는 일은, 파본을 수선하고, 서적을 정리하는 일이었다. 장경각 안에는 수천 개의 서가(書架)가 있다. 그 가운데에 오백 개 정도가 무공비급이 차곡차곡 쌓인 서가였다. 무옥은 장경각의 문을 보며 예운령을 향해 말했다. "내가 얼마나 강해져야 사매를 안을 수 있지?" 무옥은 숨을 들이마시고 있다. "글쎄요!" "훗훗… 내가 저 높은 하늘을 검으로 벨 수 있게 된다면, 사매를 안을 수 있을까?" "아,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좋아, 그럼 도전해 보겠다. 사매를 위해 검의 하늘에 도전해 보겠다! 저 안에서 십 년을 썩는 한이 있더라도!" 무옥은 뒤돌아보지 않고 걸음을 내딛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어 장경각의 문 안으로 들어섰고, 문은 곧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무옥은 없다. 예운령은 또다시 기다리는 여인이 된 것이다. 그녀의 흰 목덜미로 햇살이 작살처럼 떨어져 내릴 때,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는 가없는 한숨 소리가 흘 러 나왔다. "사형은… 이미 저의 하늘이십니다!" 그녀는 속삭이듯 말하며 손을 하나로 합했다. '언제까지라도 기다리겠습니다. 언제까지라도…!' 그녀가 속으로 중얼거릴 때, 일대에는 기이한 진풍(陣風)이 일어났다. 무옥이 장경각 안으로 들어감과 더불어, 장경각 일대는 기문대진으로 철저 히 차단이 되는 것이다. 무옥이 나타나는 날까지, 기문대진은 계속될 것이다. 일 년이든, 이 년이든… 백 년이든 간에… - 그가 돌아왔다! 무옥(武玉), 그가 검황성에 돌아왔다. 강호천하가 한 인물로 인해 발칵 뒤집혔다. 낭인이 되어 실종되었던 고독한 청년검사 무옥. 그가 홀연히 나타나 사해팔 황(四海八荒)의 폭풍을 진정시켰다는 것은, 대강남북 전역에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다. 그는 강호맹주로 여기어졌으며, 은거에 들었던 백도인들이 무수히 나타나 다시 검황성을 찾기 시작했다. 검황성은 과거의 검황성이 아니었다. 검황성의 문 앞에는 하루 십이 시진 가운데 십 시진을 성문의 호법 노릇을 하는 데 쓰는 한 명의 무인이 있었다. 놀랍게도 그는 과거의 검황성 제일인 무숙아였다. 그는 스스로 백의종군을 자처했고, 늘 웃는 얼굴로 검황성을 찾는 사람들에 게 무옥 이야기를 했다. 어디일까? 시뻘건 안개가 스물스물 일어나고 있다. 차가운 기운이 폐부를 뻣뻣이 얼리 게 하고, 육합에서 다가서는 전율스러운 마기(魔氣)가 숨을 콱콱 막히게 한 다. 두 개의 눈, 그 눈은 혈등(血燈)처럼 번쩍거리고 있었다. "애송이 하나로 인해 십만(十萬)이 쓰러졌다고?" 고드름이 매달린 지하혈부(地下血府) 깊은 곳, 두 개의 눈은 전율스러운 마 광을 뿌리며 전면을 쓸어 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사 인이 엎드려 있었다. 전신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네 명의 복면인. 이들의 손에는 비둘기가 한 마 리씩 쥐어져 있었다. 비둘기 다리에는 쪽지가 묶여 있었고, 그것은 얼마 전에 활짝 펼쳐져 바닥 에 놓여져 있었다. 첫 번째 쪽지, 그 위에는 흘려 쓴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검황성 정복은 초토화되었음을 알립니다. 비찰삼호 휘하 전 제자가 그 곳 에서 최후를 마쳤습니다! 적의 우두머리는 무옥(武玉)! 그는 야월화(夜月花)의 주인이고, 봉황천이 변화한 영웅천(英雄天)의 주인 이며, 검황성 전 무사의 신임을 받고 있습니다! 자세한 것은…!> 두 번째 밀지, 그것은 소림사에서 보내어졌다. 그 안에도 비슷한 내용의 글 이 적혀 있었다. 세 번째 밀지가 보내진 곳은 연월성궁이었다. 그 안에도 참담한 패배의 내 용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밀지, 그 안에는 묘한 내용의 글이 있었다. <무옥… 그는 백팔화(百八花)를 얻었고, 십삼천(十三天) 위에 군림했으며, 팔십팔해(八十八海)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으며, 십파지존(十派至尊)으로 인 정을 받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육가(六家)의 후예인 듯합니다! 그는 이미 절정(絶頂)에 도달했고…> 핏빛 눈빛을 던지는 자, 그는 패엽혼이었다. 그의 살색은 전과 달리 우윳빛이었다. 그리고 그의 은발(銀髮)은 흑발(黑 髮)이 되어 있었다. 얼핏 보아 그는 서른 살 정도로 보였다. 그는 최후의 폐관에 들어 천 가지 마공을 연성한 결과, 다시 한 차례 반노 환동지경에 접어든 것이다. "애송이 하나에게 십만을 잃다니…!" 우두둑- 우둑-! 패엽혼의 손이 쥐어지며 강철 의자 모서리가 우그러 들었다. "게다가… 놈이 바로 기문육가의 후예라고? 으드득!" 패엽혼의 눈에서는 살망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이백 년 전, 천하대권에 도 전했다가 실패를 한 바 있다. 당시 기문육가 사람들은 백도인들과 더불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바쳐서 마 교총림을 저지했었다. 그 후 이백 년, 마교총림은 과거를 능가하는 규모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 데, 다시 한 번 실패를 하고 말다니! 침묵… 그것은 마뇌황(魔腦皇) 곡사(曲邪)의 말로 깨어졌다. 그는 마교총림의 대군사였다. 그는 무옥을 경계하라고 말을 한 바 있던 사 람이었다. 결국 그의 말은 들어맞은 셈이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무옥이란 자에 대해 보다 소상히 알아 내는 것입니다, 대총사여!" 마뇌황은 무릎을 꿇은 채 말했다. 그는 일반 마도인과는 달리 눈에서 혜광을 흘리고 있었다. 비록 마도인이기는 하나, 그의 지혜와 학문은 극치에 도달해 있었다. "어쩌면… 일 년 정도 강호계의 정세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할지 모릅니다. 이런 상태로 예정대로 진군하신다면, 막대한 희생이 있을 것입니다!" "일 년을 기다리자고?" "예!" "훗훗… 그럼 군사는 본좌가 무옥만 못하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 그것은 아닙니다. 다만 만사를 신중히 처리하자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이백 년을 참았다! 그런데도 내게 더 기다리란 말을 하다니…" "으음…!" "더욱이 최근에는 긴 잠에 빠져들었던 마계(魔界)의 십이존(十二尊)이 깨어 나는 경사가 생겼다!" "…!" "한데, 쥐새끼 한 마리 때문에 모든 것을 뒤로 미루자고?" 번쩍-! 패엽혼의 안광은 더욱 흉흉해졌다. 하나, 마뇌황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천기(天機)가 불안합니다. 지금 십이존(十二尊)을 부활시킨다는 것은 말도 아니되는 결정이십니다. 백도인들의 사기는 무림 사상 가장 고양되었으며, 우리가 획책한 일이 드러나면서 마교총림은 공적으로 화하고 있습니다. 이 런 때 세력을 일으키신다면…!" 마뇌황의 말이 거기에 이를 때였다. "자네는 너무 말이 많다. 과거에도, 지금에도…!" 패엽혼의 오른손이 천천히 쳐들려졌다. 그의 손은 완전한 투명옥수(透明玉手)였다. 흰 뼈가 들여다보일 정도로 투 명해진 흰 손. 그 손이 쳐들리는 찰나, 마뇌황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오오, 대총사시여! 드디어… 절대마경(絶代魔境)에 드신 것입니까?" 절대마경. 아무도 이르지 못한 가공할 마왕의 경지이다. 패엽혼은 이백 년 마공참수 결과, 드디어 절대마경에 들어선 것이다. "훗훗… 이 손을 믿는가?" "…!" "믿는가?" "믿… 믿습니다!" 마뇌황은 사지를 부들부들 떨었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이제… 노부는 짐밖에 되지 못하는 존재란 말인가?' 그는 마교총림의 대소사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백 수십 년 간 지척에서 받들어 모신 패엽혼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투명한 마수(魔手), 그것은 바로 죽음(死)을 뜻하는 것이다. 이제는 지혜로운 자가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피의 길이 끝없이 뻗어 나갈 것이다. "대군사, 자네는 아는 것이 너무 많다!" "대, 대총사! 속하는 마교총림의 영원한 충신입니다. 그것은 대총사께서 누 구보다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마뇌황의 얼굴에 땀이 가득하다. "훗훗… 자네 덕에 칠십이마도(七十二魔道)는 백도의 저항없이 일통될 수 있었네! 그 공은 인정하네! 그래서 자네에게 고통없는 죽음을 주려 하네!" "으으… 불가(不可)하오!" "아니된다고? 본좌의 권능을 부정하는가?" "그… 그것은 아닙니다!" "그럼… 더 살고 싶은가?" "그것도 아닙니다!" "그럼…?" "아직도 속하가 필요합니다. 절대마경에 들었다고 해서 승리한 것으로 생각 하시면 아니되십니다!" "그럴까?" "속하는 더 오래 살아 있어야 합니다. 속하 이상 마교총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총사께서는 속하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땀방울이 굵어졌다. 마뇌황, 그는 마교총림의 제이인자와 다름이 없다. 그는 온갖 회유책을 써서 마도인들을 규합했다. 그는 온화한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라, 패도적인 패엽혼의 좋은 방조자가 될 수 있었다. 하나, 너무나도 뛰어나다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니다. "자네는 좋은 친구였지. 그리고 본좌의 오랜 동반자였지! 마교총림이 오늘 날같이 되는 데에는, 자네를 비롯한 마학자(魔學者)들의 공이 컸다. 그것은 인정한다." 패엽혼의 눈에서 흉광이 번들거리며 피어 올랐다. "하나 아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은, 슬프게도 상전을 겁먹게 하는 일이지!" "대총사! 자신을 맹신하지 마십시오. 무공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은 너 무나도 많습니다. 속하들을 죽이시면 후회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마뇌황의 말이 거기에 이를 때, 투명옥수(透明玉手)가 펼쳐지며 무수한 백 색(白色) 환(環)이 나타났다. 수없이 떠오르는 흰 고리들, 그것은 점점 커졌고 마뇌황의 몸뚱이를 휘어 감았다. "오오, 제발…!" 마뇌황은 입을 따악 벌리는데. 치리리릿-! 흰 고리가 정수리에서부터 허리를 지나 발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그의 몸은 순간적으로 피모래로 문드러졌다. 거의 일순간에 마뇌황의 몸뚱이는 사그러졌다. 그는 아는 것이 너무나도 많 았기에,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는 패엽혼이 어떻게 마공을 고강하게 했는지를 안다. 그가 산 사람의 피를 빨아 먹었으며, 보기에도 흉칙한 독물을 수없이 깨물 어 먹으며 마공을 익혔음을 안다. 그리고 그는 패엽혼이 이백 년 전에 패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피비린내가 번질 때. "본좌는 이제… 마(魔)다. 본좌가 인간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있어서는 아니된다!" 패엽혼의 시선은 다른 곳으로 돌리어졌다. 네 명의 복면인, 이들은 옷자락을 땀으로 축축이 적시고 있었다. 사마승상(四魔丞相)이라 불리는 자들, 이들 역시 마교총림의 창업공신들이 다. 마검폭풍(魔劍暴風) 혁천기(赫天奇), 혈사대제(血死大帝) 음무극(陰無極), 유계마종(幽界魔宗) 잔굉(殘宏), 중원인마(中原人魔) 사마극(司馬極). 네 사람은 마뇌황과 동배의 인물들이었다. 일파를 이루고 일지역의 패주로 군림하는 자들로, 능히 천하 무공서열 백 위 안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자들이다. 이들은 내공을 끌어올리지 않았다. 이들은 체념의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지금 이들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자신들이 이제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 다는 것을! "대총사! 후회하실 것이오. 구신(舊臣)을 죽인 것을!" "모… 모든 것이 피로 이루어지지는 않소이다." "힘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지는 않소이다!" "천하를 상대로 혈전을 일으킨다는 것은 바보 짓이오. 정면으로 나가다가는 패하기 쉽소이다. 이것은 그대를 주인으로 섬기며 백 수십 년을 보낸 늙은 하인의 마지막 충고요!" 네 사람은 울부짖듯 말하며 손을 쳐들었다. 한순간. 퍽- 퍽- 퍽- 퍽-! 네 사람의 손은 동시에 자신들의 천령개(天靈蓋)를 후려쳤다. 골이 바스러지며, 뇌수가 뿌려졌다. 패엽혼은 다섯 사람이 잇따라 죽었는 데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자네들은 좋은 동반자였지. 그것은 인정하네. 하나, 앞으로는 필요하지 않 는 자들이기에 마교율법에 따라 제거된 것이네!" 패엽혼, 그는 완전한 마인이 되어 있었다. 아니, 그는 자신이 이룩한 절대 마경을 너무도 믿고 있는 것이다. "무옥… 놈은 신(神)이라도 죽고 만다. 훗훗…!" 열두 개의 관(棺). 관은 얼음에 뒤덮여 있었다. 수정으로 만든 관이기에, 얼음을 통해 관 안의 물체가 들여다보였다. 세 자 두께의 얼음 가운데, 너무나도 놀랍게도 십이 인(人)이 머물러 있었 다. 전신에 자상(刺傷)이 가득한 마인(魔人)들. 어떤 자는 하체가 뭉그러진 상태이다. 어쩐 자의 몸에는 보검이 박혀 있었 다. "자네들을 이제 부활시킬 수 있게 되었네. 이백 년 전, 나와 더불어 천하를 피로 물들이다가 쓰러진 사람들! 후후… 자네들이야말로 진짜 강(强)하고, 진짜 포악한 마교총림의 열사(烈士)들이지!" 패엽혼은 얼음 덩어리 위에 서 있었다. 그는 몹시 흥분한 기색을 짓고 있었 다. 어쩌면, 그는 이 순간만을 이백 년 기다렸을지 모른다. "나의 위대한 부하들! 내 너희들에게 다시 한 번 천하패권(天下覇權)을 위 해 피비를 뿌릴 기회를 주겠다!" 우르르르릉-! 패엽혼의 몸 주위로 몽롱한 혈무가 일어났다. 핏빛 노을이 가라앉듯이 무궁무진한 마경(魔勁)이 일어나며, 일대가 시뻘건 장막에 휘어 감겼다. 핏물이 폭포수를 이루고 쏟아져 내리듯이, 무한한 힘을 지닌 혈무가 뻗어 나가며 얼음 덩어리가 흐물흐물 녹기 시작했다. 사악한 기운이 자욱이 퍼지며. 츠으으- 츠으으-! 우우, 혈해(血海)! 일대는 피의 바다로 화하기 시작했고, 수증기가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거 빙이 녹기 시작하며. "카아아- 카아아-!" "크으으- 크크-!" 핏빛 안개 가운데에서 괴성이 터져 나왔다. 콰앙- 콰쾅-! 폭음이 일어나며 돌조각이 튀어올랐고, 열두 개의 마영(魔影)이 한 덩어리 가 되어 패엽혼 앞으로 다가서기 시작했다. 만신창이 몸으로 가사상태에 빠져 냉동(冷凍)이 된 자들. 이들은 이백 년 전, 패엽혼의 십이비위(十二臂衛)들이었다. 혈혼(血魂), 사혼(死魂), 흑혼(黑魂). 일컬어 삼혼(三魂)으로 불렸던 자들. 마교총림에서 패엽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들 삼 인 중 하나가 마교총림 의 지옥사령이 되었을 것이다. 온갖 종류의 마공에 능하고, 하나같이 금강불괴의 경지에 이른 자들이다. 검몽(劍夢), 화몽(花夢), 비몽(飛夢), 취몽(醉夢). 사몽(四夢)이라 불리던 이들은 독자적으로 세력을 넓히다가 패엽혼을 만나 휘하에 흡수된 자들이다. 하나같이 일당 만의 경지에 이른 자들로, 이들의 마명(魔名)은 패엽혼을 능 가할 지경이다. 잔화(殘花), 잔검(殘劍), 잔사(殘死), 잔영(殘影), 잔마(殘魔). 일컬어 오잔(五殘). 마교 사상 가장 잔혹하고 난폭한 자들이다. 이들 손에는 백도인의 피가 가장 많이 묻어 있다. 도합 십이 인. 이들이 있었기에 패엽혼은 중원천하를 향해 승부를 걸 수 있 었고, 이들을 잃었기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마교십이존은 기문육가와 싸우다가 몸이 뭉그러졌다. 이들은 죽기 전 얼음덩이 속으로 들어갔고, 그 순간 몸이 얼어붙고 말았다. 이들은 이미 죽은 상태였고, 살아남았다는 것은 마백(魔魄)에 불과했다. 눈이 불덩이처럼 시뻘겋고,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진 악마의 무리들. 이들을 깨운다는 것은 마교율법에도 저촉이 되는 것이다. 패엽혼이 마뇌황을 죽인 이유, 그것은 바로 마뇌황만이 이들을 죽이는 방법 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뇌황은 평소에 이들을 살리는 것을 지 극히 꺼려왔었다. 깨어난 십이마존, 이들은 피에 굶주려 있는 듯했다. "카아아! 피… 피를!" "크크- 크크-!" "꺼어어- 꺼어어-!" 무릎을 굽히지 못하고 미끄러지며 다가서는 자들. 이들은 패엽혼과 영적으로 하나로 통하고 있었다. 패엽혼이 이백 년에 걸쳐 숨어 지낸 이유는, 이들을 되살릴 만한 마공을 터 득하기 위함이었단 말인가? "이제 애송이들은 필요 없다. 훗훗… 너희 열둘만 있다면, 대륙을 쪼갤 수 가 있으니까! 프핫핫…!" 패엽혼은 앙천대소를 터뜨렸고. "카카- 카아아-!" "끄으으- 끄으으- 끄으으-!" 정신은 살아나지 않고 몸만 부활한 마인들은 포효를 지르며 패엽혼 둘레로 모여들었다. 팔월(八月) 이십사 일(日) 자시(子時). 이 날은 악마의 날이고, 죽음의 날이었다. "피가 그립구나? 하긴 너무나도 오랫동안 참았지. 훗훗… 좋아, 너희들에게 기회를 주겠다!" "카아아- 카아아-!" "크크- 크으으- 크크-!" "삼혼(三魂)! 너희들은 소림(少林)으로 가라. 너희들 뒤로 진짜 강한 자들 이 따라갈 것이나, 혈로는 너희들이 뚫어야겠다. 가서 그를 죽여라! 무옥이 란 자를!" "크으으- 크으으-!" "꺼어어- 꺼어어-!" "사몽(四夢)! 너희들은 검황성에 가라! 가서 무조건 죽이고, 무조건 파괴시 켜라!" "크크- 크으으-!" "카아아- 카아아-!" "오잔(五殘)! 너희들은 나를 따르라. 훗훗… 칠십이로(七十二路)에서 일어 날 악마의 제자들의 용기를 격려하기 위해 너희들은 대혈무(大血舞)를 추어 야겠다. 아마도 불나비들이 무수히 날아들 것이다. 푸핫핫…!" 패엽혼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그의 눈은 타오르는 피의 등잔이었다. '이제… 나의 역사가 시작된다.' 패엽혼은 허공으로 둥둥 떠오르고 있었다. "아무도 하지 못한… 대륙일통(大陸一統)이 본좌의 손 아래서 이룩되리라!" 그는 수직상승했고, 열두 개의 그림자들이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패엽혼을 따라 치솟아 올랐다.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떠오르는 죽음의 사자들. 이들은 패엽혼의 손 아래 에서 부활해서 지축을 뒤흔드는 포효성을 지르며 사라져 갔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즐독 ㄳ
잼 납니다
재미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