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0장 패업(覇業)의 길 구월(九月)로 접어들 때. 마교총림의 십만 고수를 잇따라 격파한 대사건으로 인해 흥분이 되었던 백 도무림계에 격동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 그것은 암흑시대의 시작이고, 수천 년을 지배해 온 강호계의 모든 율법과 전통에 대한 일대도전이었다. 천하 칠십이로(七十二路)에서 마병들이 일제히 일어났으며, 이들은 지옥사 령 패엽혼의 명에 따라 삼산오악(三山五嶽) 구주팔황(九州八荒)으로 흩어져 나아가기 시작했다. 두우- 두두- 두두-! 칠십이로의 마군(魔軍)은 대륙(大陸)을 칠십이방(七十二方)으로 나누어 각 기 일방(一方)을 받았다. 남칠성(南七省) 북육성(北六省)과 그 이외의 지역들에서, 일제히 마번(魔 幡)이 일어났고, 혈운(血雲)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우… 그것은 바로 천 년의 혈겁(血劫)이었다. - 저항하는 방파는 무림사(武林史)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들은 단 하나의 기치만을 내걸었다. 그들은 칠십이 처에서 동시에 나타났고, 철저한 안배(按配)에 따라서 동일 한 시각에 첫 번째 방파(幇派)를 찾아가 일거에 포위했다. 봇물 터지듯 밀려드는 악마의 제자들. 이들은 오랫동안 이 날을 위해서 마공을 수련해 왔고, 독검(毒劍)의 새파란 날을 갈아 왔다. 이들 가운데에는 새외변황(塞外邊荒)의 마도인(魔道人)들이 부지기수로 끼 여 있었다. 가장 가공스러운 것은 이들 가운데 천하백도계의 반역자들이 끼여 있고, 그 들이 바로 자신이 잔뼈를 굵힌 방파로 혈천마병(血天魔兵)이라 불리는 마교 총림의 혈겁무사들을 인도한는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백도계의 무수한 방파 안에는 마교총림이 뿌려 둔 밀첩(密諜)들이 수없이 숨어 있었다. 그들은 마교총림이 혈겁대계를 시작하는 찰나, 각 파의 장로명숙(長老名宿) 을 독으로 쓰러뜨렸다. 이것이야말로 완벽한 혈겁이었다. 호연세가(浩然世家). 사천(四天) 청의강(靑衣江)가에서 자리잡고 있는 강호의 명가이다. 그 곳은 제일 먼저 뜨거운 피에 씻기었다. 호연세가는 이십사대에 걸쳐 이룩했던 명예로운 전통을 한 시진 만에 모조 리 잃어버리고 말았다. 호연세가의 노고수들은 어처구니없게 척살(擲殺)이 되었고, 여제자들은 윤 간당한 채 벌판에 버려졌다. 호연세가의 그림처럼 아름답던 대전(大殿)은 불붙어 타올랐고, 청의강가에 는 시산(屍山)이 이룩되었다. 이유는 단 하나, 호연세가주가 마교총림에 굴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호연세가가 무너지던 그 날, 천하의 일흔한 곳에서 거의 비슷한 일이 벌어 졌다. 천태산(天台山)의 난향전(蘭香殿)에서 오십칠 인이 모조리 죽는 일이 벌어 졌고, 십만대산(十萬大山)의 신수곡(神獸谷)에서는 이십사 인의 세외은현 (世外隱賢)이 죽고, 수천 마리 비응(飛鷹)이 불타 죽는 일이 벌어졌다. 검주(黔州)의 웅풍방(雄風幇)도 피에 씻기었고, 무창성(武昌城) 북쪽의 능 운산장(凌雲山莊) 역시 완전히 무너졌다. 그 다음 날. 또다시 칠십이 처에서 피보라가 일어났다. 종리검가(鐘里劍家), 표향신궁(飄香神宮), 자하선원(紫霞仙院), 북천무관(北天武關), 음양곡(陰陽谷), 사일신전(射日神殿), 패검천리방(覇劍千里幇), 강호야월궁(江湖夜月宮)… 우우… 십팔만 리 전역에서 일어나는 가공할 혈풍. 그것은 무림 사상 유례가 없는 가장 잔혹한 피의 폭풍이었다. 일 일마다 칠십이 파가 무너졌다. 물론, 무너지는 방파는 강호대세와는 관련이 없는 군소방파(群少幇派)이다. 하나, 그들이 어이없이 붕괴됐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천하에 혈풍이 일어나기 십 일. 처음으로 굴복을 하는 방파가 나타났고, 처음으로 백도의 연맹(聯盟)을 욕 하는 소리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은 마교총림이 안배한 대로 되어 갔다. 백도는 철저히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교총림의 세력은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 곳은 바로 황산(黃山). 삼십육봉(三十六峰)이 석고(石鼓), 천도(天都), 시신(始信)의 삼대봉(三大 峰)을 연화(蓮花)마냥 휘어감고 있는 중원의 황악(黃嶽). 칠십이로에서 일어난 마도고수들은 그 곳으로 서서히 이동해 갔고, 황산의 시신봉(始信峯)에는 언제 세워졌는지 모를 하나의 마성(魔城)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무서운 속도로 세워지는 대마성(大魔城). 그 곳은 천하무림계에 군림할 마 교총림의 위대한 악마의 아성(牙城)이었다. 산상(山上). 깎아지른 단애는 당장 허물어질 듯 위태롭다. 저 높은 하늘에는 노룡이 웅 크리고 있는 듯한 먹장구름이 뒤엉켜 있고, 당장이라도 빗발이 뿌려질 듯하 다. 칼이 꽂혀진 듯한 침봉(尖峰) 위, 언제부터인가 그가 서 있었다. 뒷짐을 지고 있는 혈포인, 그는 허공을 우러르며 묘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 다. "아무도 본좌를 막지 못할 것이다. 훗훗… 본좌는 백 일 안에 고금대마종 (古今大魔宗)으로 등극하리라!" 두 눈에서 혈광을 흘리는 자, 그는 바로 마교총림의 지옥사령이고 마교대총 사(魔敎大總師)인 패엽혼이었다. "하늘! 아무도 저 하늘에 도전하지 못했다. 저 하늘 아래 자신보다 높은 자 를 두지 않겠다고 맹세한 자는 무수했으되… 후훗훗… 그것을 실현한 사람 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이제 본좌는 실현하리라!" 패엽혼은 음사하게 말하다가 천천히 뒤돌아섰다. 그의 뒤쪽, 일각 이전에 와서 꿇어앉아 있는 십여 명의 복면인들이 있었다. 이들은 바로 마교순찰(魔敎巡察)들이다. 이들은 패엽혼에게 칠십이로에서 벌어지는 혈겁에 대한 것을 알리는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었다. 이백 년 간 저력을 기른 마교총림. 이들은 지난 여름의 혈사(血事)로 인해 천하백도계의 판도에 대해 정확히 알게 되었다. 예운령이 우려했던 대로 비찰들이 일으킨 혈겁은 이번의 혈겁을 위한 준비 에 불과했던 것이다. 패엽혼이 신형을 돌릴 때, 마교순찰 중 하나가 이마를 땅에 대며 큰 소리로 외쳤다. "북무림도상(北武林道上)의 일은 하나도 어김없이 완수되고 있음을 아룁니 다, 대총사!" 그의 말이 여운을 맺기 전, 또 한 사람의 마교순찰이 이마를 땅에 대었다. "남무림도상(南武林道上)의 일 역시 계획대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다시 한 사람의 마교순찰이 절을 하며 외쳤다. "천하백도계의 거목(巨木)들은 일십이로에서 일어난 혈병(血兵)들이 혈세를 시작하기 이전, 은밀히 파견된 칠십이마왕(七十二魔王) 휘하 선풍마군(旋風 魔軍)에 의해 거처에서 포위가 되었습니다. 비록 그들 가운데 몇 명이 그 싸움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항차 그들은 자파로 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 고 말 것입니다!" "검황성(劍皇城)은… 조금 의외입니다!" 한 사람이 주저했다. 그리고 패엽혼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의외라니?" 번쩍-! 그의 눈빛은 지극히 삼엄했다. 일대에 있는 사람들은 골수마저 얼어붙는 듯 한 한기를 느꼈다. 패엽혼이 이미 절대마경(絶大魔境)에 들었다. 그는 손을 쓰지 않고 무형마 경(無形魔經)만 일으키고도 삼십 장 안의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경지에 이 르러 있었다. "그, 그 곳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무너지지 않다니? 그 곳은 사실 용(龍)의 두 눈 중 하나이다. 칠십이로의 혈병은 사실 연극이고, 우리가 진짜 노리는 것은 중원(中原)이라는 거룡(巨 龍)의 쌍안(雙眼)이었다. 바로 검황성과 소림사(少林寺)!" 패엽혼의 몸이 서서히 떠올랐다. 중원! 드넓은 대륙의 심장이 되는 곳이다. 그 곳, 중원무림의 백도계에는 두 개의 눈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검황성과 소림사! 기실, 마교총림의 진짜 고수들은 두 곳에 힘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백도계의 고수들 역시 두 곳에 모여 있었다. 다른 곳의 싸움은 두 곳의 싸움에 비할 수 없다. 다른 모든 곳에서 이긴다 하더라도, 두 곳에 진다면 이길 수 없다. 그것이 바로 당금무림계의 정세였다. "검황성에는 연월성궁(燕月聖宮)의 무사들이 새롭게 모여들었습니다. 그들 의 우두머리는 철호접(鐵蝴蝶) 연월지(燕月芝)입니다." "…" "문제는 그 계집이 아니라, 그 계집이 글선생으로 섬기고 있는 한 명의 괴 인에게 있습니다. 그는 검황성의 무숙아와 환류라는 자를 돕고 있는 사사운 (史射雲)이라는 자의 벗이기도 한데, 그는 연월성궁의 고수들과 영웅천(英 雄天)의 고수들과 더불어 검황성 일대에 드넓고 치밀한 기문대진을 펼쳐 두 었습니다!" "기문진? 그것으로 인해 본좌가 사몽(四夢)과 십만(十萬)을 보냈는 데에도 그 작은 성이 무너지지 않았단 말인가?" 패엽혼이 화를 내자. "그… 그 곳은 작은 성이 아닙니다!" "아니라고?" "그… 그 곳은 소림사의 십 배 힘을 갖고 있습니다. 야월화(夜月花)와 봉황 천(鳳凰天)이 거기 있고, 무옥이라는 자의 측근들이 대부분 그 곳에 있습니 다. 더욱이 그들이 시전한 진세는 우리로서는 뚫기 지극히 힘든, 만리무화 대진(萬里霧花大陣)이었습니다!" 순간. "만… 만리무화대진이 다시 나타났다고? 그럼 으으… 화은(花隱) 천을술, 그 놈이 아직 살아 있단 말인가?" 패엽혼의 눈빛이 극강해졌다. 화은, 그는 이백 년 전 마교총림과 싸울 때 기문진을 펼쳤던 인물이었다. 그는 패엽혼의 휘하 고수들을 수없이 꺾은 바 있는 인물이었다. 화은이 기문육가를 도와 기문대진을 펼치지 않았더라면, 마교총림이 그렇게 무참히 패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패엽혼은 그가 죽었다 여기고, 그를 자신의 비밀 명단에서 제거시켰었다. 한데, 패엽혼이 세력을 일으킴과 동시에 그가 나타난 것이었다. "놈이… 놈이 나타나다니… 훗훗… 차라리 잘된 일이다. 이백 년 전의 복수 를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패엽혼은 입술을 악물었다. 그의 눈빛은 점점 더 흉흉해졌다. "병법(兵法)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 사람들은 현재 얼마나 남아 있는가?" 그가 차가운 소리로 내뱉자. "십사만(十四萬)이 있습니다. 그 중 일급(一級)은 삼만(三萬), 나머지는 앞 서서 싸우기에는 부족한 하오(下午)의 무리입니다!" 누군가 겁먹은 소리로 말했다. "삼만이라… 좋아, 그들을 모두 검황성에 보내라. 그리고 총림의 기재들을 모두 그 곳에 보내라!" "마학림(魔學林)의 학사 전원을?" "그렇다. 으음, 사실 마뇌황이 아직 살아 있다면… 화은, 그 늙은 놈이 펼 친 기문진은 간단히 뚫을 것이나… 그가 없는 이상 마학림의 학사들이 모두 나서서 진세를 푸는 방법을 알아내야만 한다!" 패엽혼은 묘한 눈빛을 던지고 있었다. 패기만만하던 패엽혼, 그는 처음으로 기이한 마음에 사로잡혔다. - 지금은 아니됩니다! 절규를 하며 죽어 갔던 사람이 있다. 바로 패엽혼의 손 아래 죽어 간 사람. 그는 패엽혼의 친구였고, 수하였으 며, 마교총림에서는 가장 뛰어난 기문술사였다. 마뇌황(魔腦皇). 패엽혼은 그의 이름을 입 안으로 중얼거리며 눈빛을 흩뜨렸다. '너의 말이 맞는지 모른다. 하나 변수(變數)란 늘 있는 것이고, 내겐 그것 을 무시할 힘이 있다.' 그는 다시 눈에서 혈광을 쏘아 냈다. 마지막 마교순찰, 그는 무엇이 그리 겁나는지 감히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 다. 그는 말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더듬거렸다. "그, 그 일은… 그 일은…!" 더듬는 자, 기실 그는 순찰제일호법(巡察第一護法)의 지위에 있는 자였다. 그리고 그가 보고해야 하는 말은 패엽혼이 가장 기다리는 말이기도 했다. 순찰제일호법, 그가 보고해야 하는 일은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마교총림이 이기느냐 지느냐 하는 일에 칠 성(成)의 영향을 끼치는 것이기도 했다. 그는 용의 두 눈 중 한 눈을 도맡고 있었다. 가장 유심하고, 가장 신비한 눈. 중원의 눈! 그 눈은 바로 무옥(武玉)이라는 눈이었다. 여름 가운데 천마맹주로 인정받게 된 젊은 풍운아. 그는 현재 소림사(少林 寺)에 있다. 패엽혼은 그를 암살하기 위해 삼만 고수를 보냈다. 그들은 축공부가 이끌었 던 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진짜 고수들이다. 더욱이 그들은 삼혼(三魂)과 더불어 갔다. 어디 그뿐이랴? 패엽혼이 친히 기른 마검표향대(魔劍飄香隊)의 일백팔살(一百八煞), 잔풍척살대(殘風擲殺隊)의 천이백마검수(千二百魔劍手), 능운신풍대(凌雲神風隊)의 삼천암살대(三千暗殺隊)… 소림사에는 패엽혼 휘하에서 강하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오대세력이 간 바 있다. 한데, 소림사 쪽의 정세를 말해야 하는 자는 이상하게도 말을 시작하지 못 했다. 그는 감히 패엽혼의 발도 바라보지 못했다. "대총사! 속하, 이 일을 어찌 말씀드려야 할지…!" "말하라!" "소림사에 들어가 무옥을 척살하는 일은 아직 시작도 아니되고 있습니다!" "시작도 아니되다니…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 패엽혼의 어깨가 흔들렸다. "말씀드리기 송구스러운 일이나, 삼혼 나으리가 이끄는 고수들은 무옥의 얼 굴도 보지 못한 상태라 합니다!" "뭐… 뭐라고? 그를 보지도 못했다고?" "무옥의 거처 일대에는 천마무후를 비롯한 뭇고수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그 들은 무옥을 위해 호법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근처를 지키는 지라, 저희들 측은 잇따라 사 상자만 내는 상태입니다!" "방, 방자한 것들!" 패엽혼의 손이 쳐들려졌다. 그는 끓어오르는 마성을 이기지 못하는 듯, 몸 에서 한기를 뿜어 냈다. 사기(死氣), 죽음의 기운이 흩어져 나간다. 일대에 있는 사람들은 공포를 느낀 나머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어떤 자는 두려운 나머지, 눈을 감기까지 했다. 패엽혼, 그는 군림은 하되 존경은 받지 못하고 있는 자였다. 어쩌면 그야말로 무림에서 가장 고독한 자라고 할 수 있었다. 마교제일순찰, 그는 죽음을 각오하고 말을 이었다. "한 가지… 활로는 있습니다!" "무엇이냐?" "무옥이 아닌 다른 자로 무옥을 끌어 내는 방법이 있습니다!" "…" "하나의 계집이 있습니다! 그 계집은 무옥의 첫사랑입니다!" "으음, 누구냐?" "예운령이라 합니다!" "…" "그 계집에게 삼혼을 보내어 그 계집을 먼저 쓰러뜨린다면, 무옥은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조호이산지계(調虎移山之計)를 쓰자는 것이군?" "예." "훗훗… 흥미있는 계략이군!" 패엽혼은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서 흘러 나오는 죽음의 빛은 여전했다. "그럼 그렇게 하게 하라!" "예… 에!" 마교제일순찰이 절하고 일어나려 할 때. "잠깐! 너는 갈 필요가 없다." "예?" "너는 실패의 보고를 했다. 그런 이상, 너의 역할은 끝이 난 것이다. 그것 은 바로 마교율법(魔敎律法)이다." 패엽혼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스으으으읏-! 핏빛 기운이 뿌려지며, 처절한 단말마의 비명 소리와 함께 마교제일순찰의 몸뚱이는 정수리에서 발끝까지 피모래로 부서져 내렸다. 절대마강(絶代魔剛). 그것은 이미 완전 이상의 경지에 이르렀다. "약자(弱者)는 휘하에 있을 필요가 없다!" 패엽혼은 천천히 신형을 틀었다. 그는 하늘을 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옥… 그 자가 누구이기에 중원인이면 누구든 그를 위해 목숨을 초개처럼 버린단 말인가? 그는 무엇으로 수하들을 다스린단 말인가? 무옥… 왠지 그 애송이가 부럽군. 본좌가 이백 년 간 이룩한 마도패업(魔道覇業)에 버금가 는 대패업(大覇業)을 이룩한 풍운아! 훗훗… 그가 웬지 보고 싶군. 그도 나 처럼 고독감을 느끼고 있을 테지.' 패엽혼, 그는 이미 하늘이 된 듯했다. 하나, 그의 머리 위에는 분명 하늘이 있었다. 먹장구름에 뒤덮인 장공(長 空). 그 하늘은 점점 격하게 찌푸려져 갔고, 결국은 찬 비를 뿌리기 시작했 다. 폭우가 퍼부어지는 숭산의 하늘 위, 이상하게도 두 가지 다른 기운이 떠오 르고 있었다. 그 중 하나의 기운은 시뻘건 빛으로 폐부를 저미는 가공할 죽음의 기운이었 다. 그 기운은 소실(少室), 태실(太室), 준극(峻極)의 삼대고봉과 삼십육봉 일대에서 자욱이 일어나고 있었다. 한데, 숭산 소림사의 하늘만은 달랐다. 그 곳의 하늘만은 기이한 칠채광(七彩光)에 뒤덮여 있었다. 마기(魔氣)를 사그러뜨리며 일어나는 신비스러운 기운, 그것은 숭산 소림사 의 한 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바로 장경각(藏經閣)에서 그 찬란한 보기(寶氣)는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장경각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그리도 찬란한 보기가 폭사 되어 오르는 것일까? 그는 마지막 서고(書庫)에 이르러 있었다. 머리카락은 봉두난발이고, 옷자 락에서는 곰팡내가 풍기고 있었다. 수천 권의 무공기서(武功奇書)를 쉬지 않고 읽었으며, 역대소림사 방장들이 쓴 참수기(參修記)를 모두 외웠다. 어디 그뿐이랴? 강호계를 독보(獨步)했던 전대의 거성(巨星)들이 죽기 전, 소림사에 기증한 무공 서적도 수없이 봤다. 그러나 그 어떠한 것도 그가 이제껏 터득한 절기 를 능가하지는 않았다. 물론 무수한 구결을 읽고 외우는 가운데, 그는 자신이 이제껏 시전했던 제 반절기를 더욱 능숙히 시전할 수 있었다. 기문육가(奇門六家), 야월화(夜月花), 봉황천(鳳凰天), 천마왕부(天魔王府), 구파일방(九派一幇)의 무공비급들… 그는 걸어다니는 장경고라 할 수 있었다. 무옥(武玉), 그는 수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무공비급을 읽어 나가며 서가 를 두루 돌다가 마지막 서가 앞에 이르렀다. 마지막 서고의 서가, 피진주라는 구슬로 인해 서가 일대에는 먼지조차 존재 하지 않았다. 서가에는 수천 권의 검경(劍經)이 꽂혀 있었다. 서가에는 백명지왕(百兵之王)이라는 검(劍)에 대한 것이 기록된 비급이 놓 여 있었다. 천하각파의 검학(劍學)을 논(論)한 것, 강호의 무수한 검법의 장단점을 기록한 것, 흑도계(黑道界)의 마검사초(魔劍邪招)를 파해하는 방법을 수록한 서적… 비급은 하나같이 두꺼웠다. 어떤 것은 손때가 많이 묻어 있고, 어떠한 것은 낡을 대로 낡았다. 무옥은 검경고(劍經庫)에서 이상한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검(劍), 그것은 그의 영원한 연인(戀人)이었다. 무옥은 검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정도였고, 검의 혼과 자신의 혼을 하나로 합하는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검에 대한 모든 것이 들어 있는 서고. 하나, 무옥의 눈길을 끄는 것은 무수한 검급(劍級) 가운데 오직 한 권의 소 책자(小冊子)에 불과했다. "다른 것은 두꺼운데, 이것은 가장 얇다. 그리고 다른 것은 많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었는데, 이것만은 손때가 묻지 않았다." 무옥의 눈에서는 정광이 일어났다. 그는 한 권의 책자를 유심히 바라봤다. 태원천일검보(太元天日劍譜)와 무극천신검급(無極天神劍級) 사이에 꽂혀 있 는 한 권의 소책자. 그것의 가장 큰 특징은, 얄팍하다는 것이었다. 다른 비급은 지극히 두꺼운데, 그것만이 아주 얇다니? 그리고 그 물건에는 손이 대어진 흔적이 없었다. 그것은 서가의 최하단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곳은 소림사 방장의 허락을 받은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다. 천 년 사이, 꽤 많은 사람들이 방장의 허락을 받고 여기 다녀갔다. 그들은 검의 원류(源流)를 알기 위해 여기 왔고, 나름대로의 심득(心得)을 얻고 미 소지으며 이 곳을 나갔다. 하나, 그 작고 얄팍한 비급에 손을 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무검참수기(無劍參修記)> 작은 책자는 그러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무옥은 무슨 작정인지 다른 것은 손대지 않고 그것을 손에 쥐었다. 그 책은 다섯 장으로 되어 있었다. 첫째 장에는 지극히 단순하게 여겨지는 운기토납법(運氣吐納法)이 적혀 있 었다. 둘째 장에는 목도(木刀)를 쥔 동자승(童子僧)의 그림이 그려져 있고, 셋째 장에는 목검(木劍)을 쥔 세존(世尊)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네 번째 장에는 범어(梵語)로 기이한 경문이 적혀 있고, 마지막 장에는 작 은 글씨로 이러한 글이 적혀 있었다. <무검지로(無劍之路)에 드는 자는 바로 극검지로(極劍之路)에 이르는 자이 리라! 무검지로는 이심제검(以心制劍)의 경지이고, 그 경지는 바로…> 무옥의 눈은 언제부터인가 태양처럼 달아오르고 있었다. <노납은 이것을 이해하는 자가 없기를 바란다. 노납은 이것이 영원히 묻히 기를 바란다. 이것을 깨우치는 자가 없기를… 그러나 깨우치는 자는 언제고 나타나리라. 노납이 최후로 깨우친 무검지로의 길에 들어서는 사람은 바로 검(劍)을 버 릴 수 있는 사람이고, 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할 것이 없는 사람이리라! 예(藝)도 아니고, 기(技)도 아니며, 술(術)도 아니리라. 그것은 심(心)의 굴레에서도 벗어나며, 형(形)의 속박에서도 초월을 한다. 무검지로통어극(無劍之路通於極), 만묘자강허무해(萬妙自强虛無解), 심극범천무상해(心極梵天無相解), 만류귀종일자해(萬流歸宗一字解), 만검지종무검귀(萬劍之終無劍歸)…> 무옥은 글을 보며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이… 이것이다! 지상(地上) 최후(最後)의 수법은!" 짤막한 구결, 그 안에는 너무나도 깊고 심오한 뜻이 심어져 있었다. 무검참수기를 남긴 사람, 그는 바로 대소림의 문을 연 달마(達磨)였다. 몇 날 몇 밤이 지난 것일까? 무옥은 아주 기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그림 한 장을 보고 있었다. 검을 쥐고 있는 세존의 형상이 거기 있다. 검은 양 손바닥 위에 올려져 있었다. 검초와는 거리가 먼 동작으로 보이는 데, 그 안에는 타인이 상상하지 못할 심오한 비결이 들어 있었다. '누군가 이러한 검초를 쓰다면, 나의 심검도(心劍道)는 일 초도 되지 않아 파해된다.' 무옥의 뺨이 푸들푸들 떨리고 있었다. 이어, 그는 또 하나의 그림을 바라봤다. 목도를 엉성히 쥐고 있는 동자승의 그림. 동자승은 목도를 쟁기로 안은 듯, 그것을 대지에 꽂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검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보고 코웃음을 치리라. 하나 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보고 조금 당황해 할 것이고, 검과 하나로 합쳐진 사람이라면 그것을 보는 찰나 사지가 뻣뻣해짐을 느낄 것이다. "가… 가장 완벽한 검초이다. 이것이야말로… 이것이야말로 최후(最後)의 검결(劍訣)이다!" 무옥의 얼굴은 숯불처럼 달아올랐다. 절대로 격파되지 않을 듯 여겨졌던 심검류(心劍流)는 두 장의 그림으로 인 해 격파가 되었다. 달마가 직접 그린 두 장의 그림에는 두 가지의 파해검이 숨겨져 있었다. 하나는 심검(心劍)의 극검(剋劍)이었다. 극검이란 말은 꺾는 검초라는 것을 뜻한다. 달마는 심검과 극패검에 달통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두 장의 그림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보라! 무옥의 몸 주위에서 서기(瑞氣)가 일어나고 있지 않는가? 우우웅…! 그의 몸에서 환무(幻霧)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의 표정은 격동의 표정에 서부터 무위(無爲)한 표정으로 변화해 갔다. 소림사 장경각 하늘 위의 서기, 그것은 밤이 깊어질 때 갑자기 사라졌다. 일곱 빛깔의 서기가 찰나적으로 사라지자, 일대에 있던 사람들은 허망해 하 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소림사 일대에 모여 있던 선풍마군(旋風魔軍)들은 형언하지 못할 공 포감에서 벗어나 환호성을 지를 수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즐독 ㄳ
잼 납니다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