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마음 피조개 /조 춘 호
화정동 세이브존 어패류 코너에서 며칠 전 피조개를 한 트레이 사 왔다. 남편은 평소 육식보다 조개구이나 생선을 즐겨 먹는다. 그래서 화정역에서 전철을 내리게 되면 지하에 연결되어 있는 세이브존 어패류코너에 들르게 된다.
그 날 사 온 피조개는 개흙이 많이 묻어있었다. 여러 번 깨끗이 씻어서 덮개 프라이팬에 나란히 줄맞춰 놓고 가스 불을 세게 지폈다.
‘오늘도 남편이 좋아하며 맛있게 먹겠지.’
아내의 기쁨을 섞어 조개를 굽기 시작했다. 그런데 맛있게 조개 익는 냄새가 나야 할 무렵 뜻 밖에 프라이팬 틈사이로 고릿한 냄새가 코를 기분 상하게 자극해 왔다.
‘이걸 어째, 분명히 조개가 상한거야.’
그러나 조개 모두가 상할 리는 없을 것 같았다. 상한 조개 한 개가 같이 묻혀 와 이렇게 고린 냄새를 온통 풍겨댈 거라고 믿었다.
‘상한 것 만 골라내자. 그럼 괜찮을 거야.’
팬 뚜껑을 열고 들여다보아도 알 수 없었다. 한 개 씩 뒹굴리며 찾아보아도 상했을 것 같은 조개를 구별할 길이 없어 하는 수 없이 저녁상에 군 조개 모두를 올렸다.
“상한 것 사 왔나 봐”
아니나 다를까 조개를 먹던 남편은 곯은 냄새가 난다며 달갑잖은 눈치였다.
“다 상한 것은 아닐 거예요. 어물전 망신 꼴뚜기가 시킨다고 썩은 것 한 개가 있는 것 같은데 못 찾아냈어요. 그냥 먹어봐요.”
자기 좋아하는 것 위해 화정에서까지 시장 보아 더운 여름날 불 앞에서 수고해 준 아내의 말이라서인지 더 군말 없이 먹었다. 그러나 서 너 개 먹어보고는 아무래도 조개 맛이 미끈미끈하고 이상하다며 한 개가 아니라 모두 싱싱하지 않다고, 날더러 잘 못 사왔다고 했다.
‘정말 상한 조개 사온 것이구나. 겉보기엔 멀쩡했는데......’
마음이 클클해졌다.
“그렇다면 버려야 해요, 조개 상한 것은 몸에 안 좋아!”
조개 담은 접시를 집어 들고 속이 상한 채 일어섰다. 남편은 일어서는 나를 만류했다. 버리는 게 아깝지 않느냐며 조개의 비브리오 균은 섭씨 7~80도면 죽는다면서 상했다 해도 바짝 구워 익혔으니 균은 없을 거라고 그냥 먹겠다고 했다. 그럼 깨끗이 씻어서라도 먹어 보자며 나는 이미 구어진 조갯살을 모두 빼서 흐르는 수돗물에 대고 뽀독뽀독 비벼 씻었다. 간간하고 맛있는 조개 맛을 물에 흘려보내는 것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고린내를 없애자니 별 수 없었다.
상에 올려 다시 먹었다. 짭짤한 조개 간도 없어진데다 그 상한 냄새와 싱싱하지 않은 맛은 조갯살 세포마다 깊이 박혔는지 씻기 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고약한 냄새를 풍겼다. 아무래도 먹지 않는 게 좋겠다고 남편에게 권했다. 그래도 그냥 먹겠다며 의무처럼 먹어 줬고, 나는 더 이상 먹기 싫어 맛만 보고 말았다.
식사 후, 설거지를 하는데 거실에서 TV를 시청하던 남편이 소리쳤다.
“여보, 내 입안에서 거시침이 올라와.”
거시침? 어릴 적 쓰던 사투리로 수십 년 만에 들어보는 소리였다. 거시는 기생충인 회충, 거위를 이르는 방언이다. 1950~60년대, 가난했던 우리나라 온 국민이 회충을 뱃속에 넣고 살았을 때 그 벌레로 인하여 생기는 느끼하고 미끈한 그 침은 다 경험했다. 사람들은 그 회충 때문에 생기는 침이 아닐지라도 음식에 탈이 있어 비위가 상하고 느끼한 침이 입안에 돌면 거시침이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 이 저녁 난데없는 그 침이라니 분명 상한 조개를 먹은 탓인 것 같았다. 다른 식품도 아니고 조개 상한 것은 지독한 식중독을 일으킬 것이 뻔 한 일인데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독성을 다소라도 중화시킬 요량으로 신선한 참외 토마토, 오이를 많이 깎아 후식으로 내 놓으며 신경을 썼다. 그래서인지 그 저녁 무사히 탈나지 않고 넘어갔다. 염려가 컸었는데 참 다행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닷새가 지나 나는 또 화정역에서 전철을 내리게 되었고 관성처럼 세이브존 어패류코너에 갔다. 상한 조개구이 이후, 여름철에는 조개를 사지 않기로 마음먹었기에 갈치, 고등어, 오징어 생선 쪽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어패류코너 주인이 어느 결에 내 옆에 다가와 제주갈치 싱싱한 것 세일한다며 말을 걸어왔다. 순간, 며칠 전 사간 피조개는 싱싱하지 않았었다고 말 하고 싶었다. 그래서 다른 소비자들도 나 같은 경험을 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 지난 1일에 제가 피조개를 사갔는데요. 여름철 조개는 조심해서 파 셔야 할 것 같아요.”
마침 손님이 없어서, 여기서 사간 피조개가 고약한 냄새를 풍겼고 그냥 먹었더니 거시침 이 올라왔다는 남편 이야기까지, 쭉 그 저녁 상황을 다 말할 수 있었다. 주인은 의외로 잘 들어줬다. 그러니까 더 생생한 어투로 표현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그냥 다소곳하게 수긍을 하는 것이었다. 그 태도를 보면서 그날 피조개를 사간 다른 소비자들은 이미 항의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그의 공손한 태도에 어쩐지 미안한 감이 들었다. 그런 일이 있어 속은 상했었지만 지난 이야기이고 그 걸 굳이 따질 심산으로 온 것도 아니어서 목소리를 한껏 부드럽게 하면서 말했다.
“그냥 그랬었다고 말씀드리는 거예요.”
그런데 뜻밖에 아저씨는 그날 사간 영수증이 있느냐고 물으며 영수증이 있으면 환불을 해 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놀라서 그런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고 했다. 더구나 며칠 전 일이라 영수증도 없었다.
그래도 그는 구매날짜만 알면 영수증을 재발급 할 수 있으니 카운터에 가서 다시 해 달래 가져 오라고 했다. 정말이지 태클 걸자고 온 것이 아니고 더더구나 환불을 받으려는 마음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은 일인데 막상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순간 슬그머니 갈등이 생겼다.
‘그래 볼까? 그래 봐?’
그러나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럴 마음으로 말씀드린 것이 아녜요!”
“아니요, 해 오세요!”
그 말을 재차 들으니 못 이긴 척 내 마음은 영수증을 재 발급받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카운터로 발걸음을 했고 생선코너에서 해 오랬다며 계산원에게 변명처럼 설명을 했다. 계산원 아가씨는 볼펜으로 영수증의 피조개라고 찍힌 글씨위에 친절히 동그라미까지 쳐 주었다.
“환불해드릴까요? 피조개를 대신 드릴까요?”
묻는 말에 너무도 계면쩍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다고 또 한 번 말했다. 진심이었다. 그런데 내 속 마음에는 다른 무엇이 더 크게 작용한 것이 틀림없다. 실제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면서 영수증은 왜 재 출력해왔을까? 재발급해 갖다 주면서까지 그럴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하는 내 자신은 실로 표리부동이었다. 환불은 안 받겠다고 했더니, 그럼 냉장고에 진열되어 있는 피조개보다 더 싱싱한 것으로, 오늘 아침 들어온 것을 대신 주겠다면서 주인은 안으로 들어갔다. 한참 후에 조개를 트레이에 담아 와 랩으로 싸주면서 먼저 산 것보다 많이 담았다고 했다. 솔직히 손 내밀어 받기가 멋쩍고 편안치 않았다. 그래도 두 손은 나가고 있었다.
집에 오면서, 정신은 온통 피조개에만 있었다. 말과는 전혀 다른 행동을 선택한 나는 과연 어떤 사람인가?
‘나는 나쁜 사람, 고린내 나는 피조개 같은 사람….
조춘호, 넌 아직 멀었어!’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이걸 죄라곤 할 수 없어. 내가 먼저 달라 한 것 도 아니고 준다고 해서 받은 것뿐이잖아.’
실로 두 마음 모두 내 마음이었다.
첫댓글 '두마음 피조개'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선생님과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게 요리한 아내를 생각하는 남편분의 마음이 따뜻하십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히 환불을 요구할 수 있는 상황에 상대방이 손해볼까 말하지 못하는
작가의 따뜻한 인정도 느껴지고요.
그래도 저는 환불할래요.
다시 가지 않으면 굳이 말하지 않겠지만 피조개 주인을 만나면 저라도 말할 것 같네요.더 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요.
잘 읽었습니다.
고우신 심성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