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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과 저수는 그 지략에 있어, 누구도 따르지 못할 만큼 뛰어났던 당대의 탁월한 모사 들이었다.
동탁이 제거되고 한나라 천지가 혼란에 휩싸였을 때, 순욱은 조조에게 이렇게 권했다.
"천자를 옆에 모시어 인망을 얻는 것이야말로 주군의 운명을 개척하는 대사입니다. 다른 사람이 착수하기 전에 어서 서두르십시오"
조조는 순욱의 말을 듣자, 즉시 헌제를 모시고 허도로 천도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조조는 언제나 조정을 받들고 있다는 대의 명분을 지녔었으며, 그것이 그가 성공한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저수도 순욱과 똑같은 의견을 원소에게 말했지만, 우유부단한 원소는 우물쭈물하다가 그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 때부터 당대 최고의 명문 출신인 원소는 한낱 지방 세력으로 전락하고 만다.
순욱은 어렸을 때부터 그의 스승으로부터,
"임금을 보좌할 재주가 있다."
라는 칭찬을 들어 왔는데, 조조를 한 번 보자 그의 인간성에 매혹되어 조조의 참모가 되었던 것이다.
조조도 순욱을 얻게 되었음을 크게 기뻐하여,
"그대는 나의 자방 (중국 전한의 건국 공신 장량의 자) 이오! "
하고 말하곤 하였다.
그로부터 순욱은 조조를 도와 맹활약을 하는데, 조조의 천하제패는 순욱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는지도 모른다.
조조는 항상 자신이 진두에 서서 최전선에 나갔는데, 이 떄 후방의 정치를 맡아 백성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 사람이 순욱이었다.
허도를 중심으로 둔전병(屯田法)을 채용하여 농경을 크게 장려하였으므로, 전쟁 중에 있으면서도 산업은 진흥되었고 산물 생산량은 해마다 증가되었다. 조조가 아무 걱정 없이 전투에만 신경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런 뒷받침이 있었기 떄문이다.
조조는 한떄 워소의 강력한 세력에 눌려 기가 죽어 있었는데, 원소의 단점과 조조의 장점을 조목조목 설명하여 조조에게 용기를 심어 준 것도 순욱이었다.
관도의 싸움 떄 조조는 군량이 부족하여 일단 철수할 것을 고려하여 있었는데, 이 때도 순욱은 편지로 조조를 격려하여 이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게 하였다.
저수도 원소를 보좌하면서 숱한 천하 통일책을 건의하였으나, 불행하게도 하나도 받아 들여지지 못했다.
관도의 싸움 때만 해도 그랬다. 싸움이 중반전으로 접어들었을 때, 저수는 이렇게 진언하였다.
"아군은 병력으로는 적보다 우세하나 용맹은 적을 따르지 못합니다. 적에게는 군량이 딸리고 있으나, 우리는 풍부한 물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적으로서는 속전이 유리하고, 우리로서는 지구전이 유리합니다. 여기서는 가만히 움직이지 않고, 적을 자꾸 지치게 하면 쉽게 승이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당시의 전황을 정확히 꿰뚫어본 참으로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원고가 그 때 저수의 말을 들었더라면 분명히 승리하여 북중국의 패권을 잡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뛰어난 두 사람의 모사는 결국 비극적인 최후를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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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 조명희, 편집 : 조운
첫댓글 굿
안타까운 두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