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장 대지(大地)의 일인(人) - 속하는 이만이천 무사들을 야월화비전 백팔추쇄로(百八追殺路)로 분산시 켰습니다. 그 정도라면, 대라신선이라 하더라도 도망하지 못할 것이외다. 게다가 영웅천 비전봉황표묘진(鳳凰飄妙陣)도 펼쳐져 있소이다! - 노야답지 않게 절묘한 병세요! - 살다 보면, 가끔 머리가 좋아질 때도 있나 보외다! - 고맙소이다, 노야! - 헛헛… 어서 가 보십시오. 마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지체하시면 아니 됩니다. 그리고 신호 소리를 일러 주십시오! - 신호는 나의 검(劍)이 우는 소리요! 마성의 궁정에는 눈이 세 치 뒤덮였다. 둥- 둥- 둥-! 악마신고(惡魔神鼓) 소리가 천 곳에서 동시에 울려 퍼지고 있다. 피를 들끓 게 하고, 마성을 격발시키는 악마의 북 소리. 그리고 북 소리와 함께 마도의 거마들이 빠르게 하나의 탑 주위로 몰려들고 있었다. 꾸역꾸역 몰려드는 마도의 거마들. 이들은 하나의 탑(塔) 주위로 몰려들어 수백 겹의 원형진을 펼치기 시작했다. "우우… 위대하신 대총사시여!" "카카카-!" 포효하는 마도인들의 함성 소리가 황산을 들썩거렸다. 삼산오악에서 모여든 마도의 거인들. 이들은 십 리를 인산인해(人山人海)로 만들 정도로 숫자가 많았다. 군림탑(君臨塔)이라 불리는 십층 대탑. 군림탑은 마성의 중심지였고, 패엽혼이 강호계를 정복한 후 제왕전(帝王殿) 으로 삼으려 한 곳이었다. 상아로 만든 난간이 화려하다. 구룡혈전포(九龍血戰袍)로 몸을 휘감은 패엽혼의 몸 주위에서는 절대마혼으 로 인한 혈무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전신 모공에서 자욱이 일어나는 핏빛 안개 가운데, 얼굴 부위에서 두 개의 혈등(血燈)이 번쩍거리고 있었다. "이제… 세상은 알게 되리라. 본좌에게 도전하려 했던 것이 얼마나 치졸한 일이었는지를!" 패엽혼의 눈빛은 강해졌다. 그의 등 뒤, 다섯 명의 거한이 장검을 가슴에 안은 자세로 서 있는데… 다 섯 모두 밀랍처럼 흰 얼굴을 갖고 있었다. 바로 마교오잔(魔敎五殘). 패엽혼의 오검시위(五劍侍衛)이고, 마교이십존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이었 다. 잔화(殘花), 잔검(殘劍), 잔사(殘死), 잔영(殘影), 잔마(殘魔). 다섯의 눈빛은 칙칙한 죽음의 빛이었다. 그 눈은 들여다보기만 하더라도 평범한 사람은 의식을 잃고, 내공이 있는 사람은 내공이 흐트러짐을 느낄 정도로 마기가 강했다. 뼛속으로 저미어 드는 마기가 흐르는 곳. 패엽혼은 꾸역꾸역 몰려드는 휘하 고수들을 향해 자신의 두 손을 천천히 쳐 들어 보였다. "악마의 영웅들! 이제 천하에 알려 주어야 한다. 마교총림의 진짜 힘을!" "와아아아… 와아……!" "대총사 만만세(萬萬歲)! 마교총림 일대군림(一代君臨)!" 환호하는 소리가 뒤따르고, 패엽혼의 입가에 잔혹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 다. "우리는 이백 년을 참았다! 바로 이 날을 위해서!" 꽈르르릉-! 그의 목소리는 마음신후(魔吟神吼)인지라, 일대의 고루대전은 뿌리째 뒤흔 들리기 시작했다. 눈보라가 하늘로 거꾸로 치솟기 시작했고, 수천 개의 가산이 뒤흔들리며 인 공호수에서 파랑이 일어났다. 패엽혼이 또다시 말을 하려 할 때였다. 쩌리리리릿-! 어디에서 흘러드는 기운일까? 패엽혼의 전신 모공 안으로 스미어 드는 특이한 기운이 있었다. 하늘 위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대지에서 스물스물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한 가공할 기운. 그것은 패엽혼이 난생 처음 경험하는 우주류(宇宙流)의 힘이었다. 하늘이 내려앉은 듯이, 자욱한 신무(神霧)가 패엽혼의 몸뚱이를 덮쳐 누르 고 있었다. 기이하게 다가서는 기운은 갈수록 강해졌다. 빛도 없고 소리도 없으나, 분명 느낄 수 있는 기이한 기운. "누… 누군가 다가선다." 패엽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한 곳을 바라봤다. 머나먼 곳에서부터, 흰빛 하나가 다가서고 있었다. 소리도 없이 허공을 꿰뚫으며 다가서는 자. 그는 점점 빠른 속도로 설막(雪 幕)을 찢으며 다가섰고, 패엽혼의 눈빛도 점점 강해졌다. 눈과 눈. 백도의 절대자와 마도의 절대자의 눈은 오 리 먼 거리를 격하며 허공에서 부딪치고 있었다. 유심한 두 눈과 핏빛으로 불타오르는 두 눈. 번쩍-! 패엽혼의 눈빛은 극한 수준의 빛을 뿜어 내기 시작했고, 그의 몸 주위로 혈 무 또한 더욱 짙어졌다. '거대한 기운이 저 눈에 스미어 있다. 으음, 휘하 무사들이 참패한 것도 무 리는 아니었다.' 패엽혼은 주먹을 거머쥐고 있었다. "마뇌황… 그의 말이 맞는 듯하군. 훗훗… 무옥이라는 애송이에 대해 보다 연구를 해야만 했었다." 패엽혼은 야릇하게 웃었다. 군림의 제왕이기 이전, 그는 한 사람의 무인이다. 무인에게 중요한 것은, 군림의 보좌보다도 한 번의 승부이다. 인생의 기나긴 여정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승부! 패엽혼은 그것이 가까워졌음을 느끼고 웃음을 흘렸다. "오만할 만하군, 무옥(武玉)!" 무옥이라니? 나타나는 흰 그림자가 바로 무옥이란 말인가? 츠으으으-! 무옥은 빛살처럼 허공을 가로질러 가며 역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패엽혼… 고금에서 가장 강한 마도인! 훗훗… 그대가 나를 알 듯, 나도 그 대를 알겠군!" 그는 흰 무지개가 눈보라 사이를 찢으며 허공을 가로긋듯이 군림탑 위로 표 표히 날아들었다. "프핫핫핫… 이 하늘 아래에 본좌의 적이 있었을 줄이야! 프핫핫……!" 패엽혼은 앙천대소를 터뜨리며 손 하나를 쳐들었다. 부르르르……! 그의 손은 떨리는 가운데, 이상하게도 붉은 연기 기둥이 만들어져서 손 주 위로 치솟아 올랐다. "기문육가의 후예라니… 소문대로군. 좋아, 젊은 나이에 그 정도라는 것은 가히 기적이다." 패엽혼이 크게 외치는데, 한순간 그의 뒤쪽에서 다섯 줄기 그림자가 떠올랐 다. "카아아- 카아아-!" "저, 저 놈의 눈이 저주스럽다. 눈을 빼어야 한다." "크크-!"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다섯 개의 그림자는 바로 오잔이었다. 오잔이 무옥 쪽으로 치솟아 오를 때. "방자한 것들! 감히 명도 없는데, 떠오르다니……." 패엽혼은 수하들이 위로 떠오르자, 자존심이 상한 듯 발을 구르며 우수를 비스듬히 쳐냈다. 치리리릿-! 절대혈마수(絶代血魔手)의 힘이 시전되며. 펑펑펑-! 거의 동시에 다섯 군데에서 폭음이 일어나며, 오잔의 몸은 찰나적으로 재가 되어 쓰러졌다. 모든 것은 거의 일순간에 벌어졌다. "훗훗… 네놈의 몸에서 일어나는 신기가 본좌의 수하들을 분노케 한 듯하 군. 하나 본좌의 손으로 처단했으니, 귀빈에 대한 접대로 부족함이 없으리 라." 패엽혼은 히죽 웃으며 무옥을 바라봤다. 그는 무옥이 경악하리라 여겼으나, 무옥은 늘 그렇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패엽혼은 무옥의 신비한 기도에 약간 압도당한 듯했다. 하나, 그는 역시 전 마도의 종사다웠다. "무옥… 듣자니, 출신이 천하다던데… 제일인이 되었군?" "잘못 말했소." "뭐?" "출신이 천했기에, 오늘날처럼 되었다고 말해야만 했소." "훗훗… 묘한 매력이 있는 놈이군. 진작에 만났더라면, 본좌는 너를 후계자 로 선택했을 것이다." "훗훗……!" 무옥은 표표히 떨어져 내리며 손을 쳐들었다. 하나의 검, 삼십칠 근짜리 철검의 검자루가 오른손에 불끈 쥐어졌다. 패엽혼은 그것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이 곳은 본좌의 대지이다. 온 것은 가상하나, 검을 뽑게 되면 오만 명이 솟구쳐 오른다." "글쎄, 일은… 해 봐야 아는 것이외다." 무옥은 다시 미소를 지었다. 끝없는 유혹을 던지는 미소, 그 미소에는 인간의 혼이 스미어 있었다. 너무나도 밝은 미소이고, 세월의 진한 아픔을 오랫동안 경험한 사람만이 깨 달을 수 있는 영웅의 웃음이었다. 우우웅……! 검은 살기에 울었고, 한순간 용이 우는 듯한 긴 울부짖음 소리와 함께 검은 찬란한 빛줄기를 뿌리며 검집을 빠져 나왔다. 우르르르르릉-! 검의 울음소리와 더불어 일대가 뒤흔들리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와아아… 시작하라!" "야월화의 살수들이여! 최후의 살인 절기를 마음대로 발휘하라!" "영웅천의 제자들이여! 이제 시작하라!" 휙- 휙- 휙-! 도처에서 그림자들이 치솟아 올랐다. 수천 개의 그림자가 마성 안쪽에서 솟아올랐고, 바로 그 순간 사방에서 수 만 개의 그림자가 떠오르고 있었다. "와아아… 중원을 비웃지 말아야 했다!" "우우…!" 환호성을 발하며 몰려드는 사람들은 시신봉 전역을 드넓게 포위하고도 남음 이 있었다. 야월화와 영웅천 이외에도 수만 명이 있었다. 눈보라를 뚫고 날아오르는 무림고수들. 구파일방(九派一幇)의 전대고수들도 무수했고 이름모를 강호검사(江湖劍士)도 끼여 있었다. 차창- 창- 창- 창-! 장검이 뽑히는 강철음이 팔 합을 휘어 감았고, 눈보라 사이로 수만 줄기의 검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을 끊어 버리는 절대의 기세. 삼만여 마도인들은 가공할 무공을 지니고 있으나, 그 엄청난 기세 앞에서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중… 중원은… 죽은 것이 아니다. 살아 있었다. 이… 이제야 그것을 알겠 다." "으으… 의혼(義魂)을 무시한 것이 실수였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사 이, 이 곳이 완전히 포위될 줄이야!"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리는 파란 가운데, 번천지복할 굉음이 일어나며 십 층 높이의 군림탑이 패엽혼의 발 아래서 허물어지고 있었다. 집채만한 돌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는 가운데, 패엽혼은 핏빛 머리카락을 창 끝같이 빳빳이 일어나게 하며 떠오르고 있었다. "무옥… 네놈의 간을 씹어먹겠다!" 패엽혼은 분노를 이기지 못하고, 만근추(萬斤錘)로 군림탑을 허물어뜨리고 위로 날아오르는 것이다. 보라! 허공이 일순 혈막에 휘어 감기는 것을. 고오오- 고오오-! 환환표묘(幻幻飄妙), 무중생유(無中生有), 천마무적(天魔無敵), 통천열지(通天裂地), 구천마영(九天魔影)… 마교의 절대검식 백팔 가지가 허무마강(虛無魔剛)이라는 가공할 수법에 의 해 동시에 펼쳐졌다. 수만 개의 검이 바다를 이루고 산을 이룬다. 검산도림(劍山刀林)에 뒤덮인 허공은 선혈보다도 붉은 악마강기의 장막에 뒤덮이고 있었다. 산을 허물어뜨리고 바다를 밀어 내는 기세로 일어나는 절대마검도(絶代魔劍 道)! 쩌어어억-! 땅바닥이 지진을 만난 듯 갈라지는 가운데, 광풍이 일어나 십 리 안을 시커 멓게 물들이기 시작했다. 허공에서 번지어 내리는 혈우(血雨). 하늘과 땅이 절대마혈기(絶代魔血氣)에 젖는 가운데, 패엽혼의 몸뚱이는 거 대한 검으로 화하고 있었다. 대지에서 시작해서 구천(九天)을 가로끊는 거검(巨劍) 하나. 쩌어어억-! 오악(五嶽)을 일거에 허물어뜨릴 듯한 가공할 마강이 일어나며 팔만사천(八 萬四千)의 방위(方位)마다 뇌정(雷霆)이 떨어져 내렸다. 이십 리 안의 혼전을 압도해 버리는 절대마검도! "천지인(天地人)- 절대참(絶代斬)-!" 콰아아- 콰아아-! 만균뇌정(萬鈞雷霆)이 떨어지는 듯한 폭음이 일어나며, 사위(四圍)는 가공 할 혈강에 휘어 감겼다. 치리리릿-! 지축을 끊을 듯한 기세로 뻗어 나가는 초극혈마검(超剋血魔劍). 광풍질우가 일어나는 가운데, 수천 군데에서 폭음이 일어났다. 콰앙- 우르르르릉-! 우레 소리와 함께 흙기둥이 쭈욱쭉 일어나 대지를 휘어감았고, 십 리 안에 있던 모든 지형지물이 뒤흔들렸다. 혼전에 돌입하던 사람들의 몸뚱이마저 흙바람에 휘말려 날아올랐고, 고루거 각이 뿌리째 뒤흔들렸다. "연환참극(蓮環斬極)- 마라패업(魔羅貝業)-!" 우우웅…! 패엽혼의 마검은 가히 예술(藝術)이었다. 그가 시전하는 마검술은 단 하나 의 허점도 보이지 않는 완전무결한 검초이다. 장공(長空)이 악마의 검기 아래 난도질당하는데, 이상하게도 마검초를 시전 하는 패엽혼만은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피… 피하다니? 허점이 없었는데… 피하다니? 설마… 너의 신법이… 소리 보다 빠르단 말이냐?" 패엽혼은 이십 장 허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흰빛 줄기가 아스라한 안개와 더불어 허공으로 떠오르는 가운데, 미 소짓는 청년의 모습이 나타났다. 바로 무옥. 그는 패엽혼이 일으킨 검기(劍氣)를 타고 허공을 자유롭게 미끄러지는 십천 환공(十天幻功)을 발휘한 것이다. "패엽혼! 이제 중원을 알게 하겠다. 너를 죽이려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세월이다!" 그가 중얼거릴 때. "팔만사천(八萬四千) 천마류(天魔流)-!" 패엽혼은 또다시 혈거검(血巨劍)으로 화하며 전신에서부터 극대한의 마공진 기를 일으켜 올렸다. 쩌어어억- 쩍-! 땅거죽이 찢어지기 시작하고, 광풍이 일어나 하늘을 휘어 감았다. 순간. 무옥은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승부욕을 버리는 것이… 최후의 승부수이다. 이제 천검류(天劍流)를 깨달 았다!' 그는 허공에 뜬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핏빛이 팔만사천 방위에서 동시에 일어나며 하나의 점(點)을 향해 화살무리처럼 파고 들어갔다. 보라! 하늘에 걸린 무림의 하늘을. 움직이지도 않고 절대마검도 가운데 정지해 있는 두 개의 눈과, 너무나도 우아하고 수려한 자세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장부의 옥수(玉手). 느린 듯 보이나 극쾌(極快)하고, 움직이지 않는 듯한 가운데 십방(十方)을 두루 회전하며 일어나는 소리도 없는 검기(劍氣). 무옥은 눈을 반개하며 마음의 검(心劍)을 초월하는 대지(大地)와 창천(蒼 天)의 무검류(無劍流)를 일으켰다. 하나의 손, 하나의 검… 빛도 나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는 가운데 일어난 무검류의 검강과 더불어 거대한 혈막이 반으로 끊어지고 있었다. 붉은 천이 쭈욱 찢어지듯이 피의 장막은 세로로 갈라졌고, 절대마혼을 일으 키며 거검으로 화신하여 날아오르던 패엽혼의 입가에 처음으로 회의의 빛이 떠올랐다. "하늘은… 무옥, 너를 통해 살아났는가?" 그는 거대한 검이 다가섬을 느꼈다. 그의 심령(心靈) 깊이 파고드는 최절정검도(最絶頂劍道) 심령제마무검(心靈 制魔無劍), 파천결(破天訣)에 이어 흡결(吸訣)이 일어났고… 그 뒤를 이어 천지결(天地訣)이 시전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절정천검류(絶頂天劍流)였다. 소리보다 빠르게 허공을 끊으며 다가서는 심령제마무검 가운데, 패엽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이해… 하늘이 나를 낳고, 또 너를…?" 그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빛 안에 사로잡히고 있었다. 무상심심지혜검(無相心心智慧劍). 완벽 이상의 완벽으로 모든 방위를 끊으며 파고드는 절대검기(絶代劍氣). "어… 어이해… 네가 무림에… 으으… 그것이 바로 진짜 하늘의 뜻이었나?" 그의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는 가운데. 쩌어어억-! 그의 정수리로 빛이 스미어들며 미간(眉間) 사이가 쭈욱 끊어지기 시작했 다. 핏빛 선은 목젖 가운데를 타고 내려갔고, 구룡혈전포(九龍血戰袍)가 반으로 쪼개지며 패엽혼의 몸뚱이는 일순 반으로 쪼개어졌다. 그리고 그가 최후로 남긴 말이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무사(武士)로… 최후의 너의 검을 본 것만은 영광이다. 진심으로…!" 패엽혼의 목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무옥은 탈진한 표정으로 날 아 내리고 있었다. 전신의 잠재력을 일순 격발시켰기 때문인지 그는 몸을 휘청이며 날아 내렸 고,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검은 떨어질 듯 흔들거렸고, 어깨 위로는 눈발이 떨어져 내렸다. 일순, 무옥은 검을 깊숙히 꽂으며 손을 내렸다. 그는 흰 눈을 헤집었고, 그 속에서 검은 흙을 집어 올렸다. "다시는 인간의 피가 대지(大地)에 젖지 않기를…!" 지금 그는 영웅(英雄)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그는 풍운의 세월을 떠도 는 영원한 낭인(浪人)이었고, 풍운이 사라지게 되면 대지로 귀거래(歸去來) 할 순수한 젊은이였다. 일대의 싸움은 빠른 속도로 정리가 되었다. 마교총림의 거마들은 패엽혼이 죽자, 기가 죽어 초식도 제대로 시전하지 못하고 푹푹 쓰러졌다. 시산혈해(屍山血海). 눈발은 피에 뒤덮였고, 피 위로 흰 눈이 떨어져 내렸다. 눈은 모든 것을 희게 뒤덮는다. 인간의 욕망과 탐욕, 그리고 야망마저도… 눈은 모든 것을 덮고, 또 덮는다. "눈이 많이 오게 되면, 다음 해 농사(農士)가 잘 되지요." 야월노인, 그는 무옥 바로 곁을 따르고 있었다. 무옥이 어느 쪽으로 가든 무옥을 뒤따랐다. 무옥이 종적도 없이 사라질까 두려운 것이고, 또 하나의 이유는 허탈해 하 는 무옥에게 약간이나마 위로를 주기 위함이었다. "눈이 더 많이 오면 좋겠습니다!" "…" "그나저나… 산랑(山娘)이가 걱정입니다. 싸우는 것은 알아도, 자수(刺繡) 를 뜨는 것은 잘 모르는데! 내년 여름이면 소주(少主)를 낳게 생겼으니!" 소주(少主). 그 말에 무옥은 조금 멍해졌다. 초산랑(楚山娘), 그녀는 무옥의 아이를 배고 있었다. 야월노인은 이제 그것을 말하는 것이 쑥스러운 듯, 고개를 기웃거렸다. "눈이 좋습니다. 물론, 산랑이가 있는 강남(江南)에는 눈이 오지 않을 것입 니다. 그 곳은 따뜻한 곳이니까요!" "어떻습니까? 총수, 이 기회에 슬쩍 빠져 나가서 강호춘(江湖春)으로 가 지 난번 마시다 만 화주(火酒)를 마저 마시는 것이…" ▣ 후기(後記) 한 잔의 술이 아니라, 한 잔의 차(茶)로 독자(讀者)들을 만나고 싶었다. 늘 고색(古色)에 젖어 사는 서모(徐某)는 이제야 무옥(武玉)의 그림자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는 그도 자유로울 수 있으리라! 독자(讀賢)들의 서재(書齋)에 목련화(木蓮花)를 보낸다. 귓가에는 송뢰(松賴) 바람 소리가 들리어야 하고, 눈에는 창천(蒼天)의 그 빛이 떨어져 내리기를… <완결> |
첫댓글 그동안 잘 보았습니다. 감사.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잼 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씨에 시에에
즐독 ㄳ
감사히 읽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