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장 天寶莊의 暗雲 <취의청(趣意聽). > 사마장현과 사희영은 옷깃을 가다듬으며 취의청 앞에 이르렀다. 사마천의 부름이 있었던 것이다. 아버님 부르셨습니까? 사마장현이 공손한 어조로 말하자, 취의청 안에서 위엄있는 음성이 들려왔다. 들어 오너라. 네......! 취의청 안, 조심스럽게 들어서던 사마장현은 한 노인의 모습을 발견하고 흠칫 놀랐다. 약간 뚱뚱한 체구에 온화한 인상, 화려한 금색화복을 걸친 노인이었다. 이때, 사희영의 전음이 들려왔다. 아우님 아는 분이예요? 사마장현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전음으로 대답했다. 저 분이 바로 중원제일거부라는 왕전산입니다. 왕전산! 사희영은 나직이 경호성을 흘렸다. 천보장주(天寶莊主) 왕전산(王錢山). 당대 최고의 거부(巨富). 중원 전체를 사고도 남음이 있는 재산을 가졌다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천보장이 여기서 멀지않아 몇번 저분과 면식이 있었습니다. 지독한 수전노(守錢奴)지요. 사마장현은 그녀에게 전음을 보내고 왕전산에게 가볍게 수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동안 별래무양 하셨는지요. 금색화복의 노인, 왕전산의 얼굴에 반가운 웃음이 떠올랐다. 허허, 한 일년 못본 사이에 더욱 늠름해지셨구려. 경사(景師) 제일의 기재가 그동안 멀리 떠나있어 수많은 규중처자들이 상사병으로 누웠다는 사실을 아시는가? ........! 자리에 앉던 사희영의 봉목에 짧은 이채가 번뜩였다. 하나, 사마장현은 웃음짓는 왕전산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왕전산은 예의 사람좋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이분 소저께서는 뉘신지.....? 사마천이 부드러운 음성으로 대답했다. 허허, 장현이와 의남매를 맺은 사희영이라는 아입니다. ......! 사희영은 왕전산을 향해 가볍게 예를 취했다. 사희영이라 하옵니다. 문득, 그녀의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왕전산은 너털웃음을 흘렸다. 헛허... 제독이 부럽습니다. 장현같은 뛰어난 아드님을 두시고, 이렇게 훌륭한 자부(子婦)감까지 얻으시니..... 순간, 사마장현과 사희영은 동시에 얼굴을 붉혔다. 허허허.......! 허........ 두 사람의 태도에 사마천과 왕전산은 호탕한 웃음을 흘렸다. 이윽고, 웃음을 그친 왕전산은 문득, 정색을 하며 나직한 한숨을 흘렸다. 휴... 지금까지 말씀드린 대로 이 늙은이는 느지막이 얻은 딸 아이를 잃으니 걱정이 태산같습니다. ........? 사마장현은 흠칫했다. (왕전산의 딸이라면.. 오십이 다 되어서야 첩의 몸에서 얻은 왕혜령 소저가 아닌가? ) 왕혜령(王慧令). 미(美)와 재덕(才德)을 갖춘 경사 일대에 소문난 미녀였다. 황실을 비롯하여 곳곳에서 혼담이 들어왔으나 일언지하에 거절할 정도로 그녀의 성품은 도도했다. 한데, 지독한 수전노가 자신의 재산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금지옥엽을 잃다니...? 사마장현은 의아한 기색으로 물었다. 혹시 왕소저의 신변에 무슨 흉사라도....? .........! 사마천이 침중한 어조로 대신 설명했다. 그렇다. 그 아이가 위험한 처지에 빠진 것 같구나. 도대체 어떤 일이기에.....? 왕전산이 침통한 표정으로 붉은배첩을 내밀었다. 이걸 보시게. .........? 섬뜻한 살기가 서린 붉은배첩!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져 있었다. <이렇게 서신으로 대함을 용서하시오. 장주의 금지옥엽은 본인이 편히 모시고 있소이다. 약(略)하고----- 본인은 일천만량의 황금(黃金)이 필요하오. 무례한 짓 미리 깊이 사뢰드리며 자세한 것은 추후 연락드리겠소이다. > 서명조차 없는 간략한 글이었다. 문득, 사마장현의 검미가 치켜졌다. 어떤 자들이 감히 경사에서 이같은 겁없는 짓을 저질렀습니까? 왕전산은 깊은 탄식을 흘렸다. 휴우... 알 수 없는 일이네. 이틀 전, 시녀들과 함께 용황묘(龍皇廟) 참배를 떠났다가 소식이 끊겨 초조했었는데 돌연, 이같은 배첩이 날아오지 않았겠는가? 엄밀하게 암중호위는 하셨겠지요? 물론이네. 삼십 명의 본장 호원무사들이 암행했는데... 그들마저 소식이 끊기고 말았네. .......! 사마장현은 흠칫하며 내심 생각에 잠겼다. (천보장 호원무사들이라면 강호에 나가도 손색이 없는 절정고수들인데... 삼십 명씩이나 사라지고 왕소저가 납치되었다면....? ) 문득 그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렇다면... 가공할 힘을 가진, 범상치않은 무리! ) 사마장현은 이내 차분한 신색을 회복하며 물었다. 황금 천만량이면 몇 개 성을 살 수 있는 엄청난 금액인데.... 그것을 요구한 것을 보면 예사 무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황금이 대수겠는가? 령아만 무사하다면 내 재산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네. 왕전산의 노안(老眼)이 문득 부옇게 흐려졌다. (으음.... 왕전산같은 소문난 수전노에게도 저토록 깊은 부성애(父性愛)가 있을 줄이야... ) 사마장현이 감탄할 때, 왕전산은 침통한 어조로 말했다. 그래서 제독을 찾아뵌 것입니다. 제독께서 힘을 써주시면 딸 아이의 신변이...... 그러자, 사마천의 안색이 굳어졌다. 장주께서 영애의 신변에 걱정이 크심은 능히 짐작하오이다. 하나 본인은 중임이 있으므로 함부로 경사를 떠날 수 없소이다. 물론 그러시겠지요. 하지만.... 왕전산의 표정은 매우 불안했다. 천군제독 사마천! 그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공사(公私)가 뚜렷한 인물이 아닌가? 제독께서 친히 거동하시는 것은 불가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독휘하의 자밀위사(紫密衛士)를 한두 명 정도만 내어주신다면..... 자밀위사를......? 사마천도 신중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자밀어위대! 단 한 명이라도 중원무림을 발칵 뒤집어 놓을만하니 이정도 사건이야 능히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황실보호라는 중임이 있지 않은가? ) 자밀어위대------ 개개인의 무공도 경인지경(驚人之境)일 뿐만 아니라 제갈량(諸葛亮)을 능가하는 지모(智謀)를 갖춘 초절정고수들이었다. 흐흠.... 장주께서 심려가 크신데 방관할 수만은 없지. 오늘 중으로 자밀위사 세 사람을 차출해 천보장으로 보내드리겠소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깊으신 은혜 백골난망이옵니다. 왕전산은 눈물까지 글썽이며 노구(老軀)를 굽신거렸다. 이때, 문득 사마장현의 두 눈이 번뜩 신광을 발했다. .......! 그의 귓가에 사희영의 전음성이 들려왔다. 설마... 동생이 이번 사건을 맡으려는 것은 아니겠죠? ..........! 사마장현은 걱정하는 그녀에게 묵묵히 미소를 보내고는 이내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버님, 왕소저의 일을 소자가 한번 맡아보는 것이 어떻습니까? ........! 그 말에 사마천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자신 있느냐? 사마장현은 묵묵히 미소를 머금었다. 미소, 그 하나만으로도 천 마디 말을 능가하는 설득력이 있지 않은가? 사마천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녀석......! 많이 컸구나......! ) 대견하다는 듯 내심 이렇게 중얼거리던 사마천은 이내 단호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좋다! 이번 일은 네가 맞도록 해라. 순간, ..........? 왕전산은 경악의 표정으로 두 부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사마현질이 어떻게 위험한 일을.....? 문(文)이 높은줄은 익히 알고 있었으나 무학은.....? 불안한 그의 음성에 사마천은 호탕한 웃음을 흘렸다. 헛허허... 이 아이는 본 가문의 대를 이를 종손이외다. 어찌 무공을 모르겠소? 아마 본인을 능가할 거외다. 자부심에 찬 음성! ........?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왕전산의 기름기가 흐르는 얼굴이 기괴하게 일그러졌다. (사마현질은 만권서생(萬卷書生)에 서치(書痴)... 책벌레로 소문났던 서생이 무공을? ) 그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이때, 그의 내심을 간파한 사마천이 호탕한 웃음을 흘렸다. 헛허, 현아! 장주께 한번 네 솜씨를 보여드려야겠구나. ........! 사마장현은 담담히 미소지었다. 하나, 그 속에 감추어진 비범을 뉘라서 알지 못하랴! 왕전산은 반신반의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현질! 노부의 견식을 넓혀 주시게. 부탁드리네. 하하..... 그럼 미거하나마 밖으로 걸음을 옮기시지요..... 취의청 뒤, 화원(花園). 이십여 장의 넓은 연못이 있고, 건너편으로는 정교하게 만들어진 가산(假山)이 보였다. 사마장현, 그는 취의청에서 가져온 보검을 뽑아들고 진기를 조절하고 있었다. ........! 침묵, 사마천을 비롯한 세 사람은 숨을 죽이며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사희영은 익히 그의 심오한 무학을 견식하였는지라 옥용에 미소마저 띄우고 있었으나, 사마천으로서는 내심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나,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직한 탄성이 흘러 나왔다. 아....... 보라! 검신을 수평으로 누이고 수십 장 밖 가산의 암석을 응시하는 사마장현의 비범한 기도를! (대... 대단하다! 현아의 무학 수준이 저런 경지일 줄이야... 저 녀석의 기도를 마주했다가는 노부도 질식하겠구나.....! ) 사마천이 내심 이러한 탄성을 흐릴 때, 하----- 얍! 의연한 기세로 우뚝 서 있던 사마장현의 입에서 대갈이 터졌다. 파---- 앗----! 검신에서 일섬검광(一閃劍光)이 작열했다. 쾅! 콰르르-----! 가공할 폭음이 터져 나오며, 아--------! 수십 장 밖의 암석이 흔적도 없이 부서져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검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는데 말이다. 순간, 음..... 검강(劍 )! 사마천의 입에서 경악에 찬 음성이 터져 나왔다. 현아가 검도(劍道) 최상승공부(最上乘功夫)을 연성했다니......! 놀란 것은 왕전산도 마찬가지였다. ........! 그는 아예 입을 딱 벌린 채 탄성조차 발하지 못했다. 이때, 사마장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한 신색으로 검을 거두었다. 공연히 추태를 부렸습니다. 겸허한 음성, 문득, 왕전산의 놀란 눈에 한 줄기 감탄의 빛이 스쳐갔다. 놀랍네, 놀라워. 과연 현질은 문무(文武)을 겸전한 신인(神人)이시네. 연신 감격에 찬 음성을 발하며 그는 사마장현의 손을 덥썩 잡았다. 부탁하이! 꼭 노부를 도와주시게.... 소생 최선을 다해 왕소저를 무사히 돌아오도록 힘쓰겠습니다. 고마우이! 정말 고마우이! 왕전산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인다. (역시 부정(父情)은 황금을 능가하는 구나..... ) 사마천은 흐뭇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허허, 이제 그만 취의청으로 들어 갑시다. .......! 그의 말에 네 사람은 다시 취의청으로 향했다. 하나, 왕전산은 여전히 사마장현의 손을 붙잡고 있었다. 네 사람이 취의청에 자리를 잡을 때, 천보장의 총관께서 오셨사옵니다. 하는 시녀의 음성이 들려왔다. 왕전산은 흠칫했다. 총관이 무슨 일로 예까지.....? 이때, 사마천이 위엄있는 어조로 말했다. 들어 오시라 일러라. 네. 잠시 후, 화려한 금의를 걸친 중년인 하나가 취의청으로 들어오며 허리를 굽혔다. 제독께 인사드립니다. 어서 오시오. 한데 무슨 일로......? 그러자, 금의중년인은 왕전산에게 한 장의 배첩을 내밀었다. 장주님! 아가씨를 납치한 자들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어디.... 왕전산은 빼앗듯 황급히 받아들며 배첩을 읽었다. 문득, ........!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리며 배첩을 탁자에 내려 놓았다. 두 분께서도 읽어 보십시오. .......! 아연 긴장하고 있던 사마천이 천천히 배첩을 살폈다. <거듭 무례함을 사죄드리며----- 신중히 생각하셨으리라 믿소이다. 내일 인시(寅時) 말에 용황묘로 우리가 요구한 것을 보내주시오. 하시라도 하자가 있을 때에는 장주 금지옥엽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소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것으로 사료되오만..... > 역시 서명이 없는 서찰! 약간 살기(殺氣)가 짙어진 것이 처음과 다른 점일까? 문득, 서찰을 읽어보던 사마장현의 눈에 검날같은 신광이 스쳐갔다. 후후,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리겠군. 무슨 뜻인가......? 왕전산이 초조한 음성으로 묻자, 그는 자신에 찬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장주께서는 저들이 요구한 것을 준비하여 주십시오. 소생이 혼자서 직접 그들을 찾아 가겠습니다. ........? 장주께서는 심려 놓으십시오. 이 서찰대로라면 그들의 행동이 너무 허술하군요. 무슨 뜻인지 자세히 설명해 주시게. 문득, 사마장현의 얼굴에 신비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 두고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그자들이 제법 허허실실(虛虛實實)의 묘(妙)를 구사하나... 정공법(正攻法)에는 당할 수 없지...... 마지막 그의 음성은 너무 작아 바로 곁에 앉은 사희영조차 들을 수 없었다. 문득, 휴........ 왕전산은 깊은 탄식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만 노부는 현질만 믿겠네. 아무쪼록 령아가 안전해야 할텐데... 심려 마십시오. 왕전산은 불안한, 그러나 한 가닥 믿음을 가지고 사마장현을 바라보았다. 이어, 사마천을 향해 예를 표하고는 이내 취의청을 떠났다. 잠시 후, 풍연소축으로 걸음을 옮기며 사마장현은 나직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누님! 누님께서도 암중으로 소제의 뒤를 따라주십시오. 사희영은 현기가 반짝이는 눈으로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 동생의 생각은.. 왕소저를 구할 뿐만 아니라 그자들의 정체도 밝히려는 것이지요? 하하... 그렇습니다. 소제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면. 아마 그들은 당금 강호정세에 파란을 일으킬만한 세력일 것입니다. 혹시.. 천룡세가의 멸겁과 관계있는......?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들은 분명 중원에 발판이 없는 세력일테니까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죠? 사마장현은 날카로운 이지를 번뜩이며 말했다. 황금 천만량! 이것이 어디에 필요할까요? 천룡세가의 멸문과 관계있는 세력이라면 새삼스럽게 이러한 일을 벌일 까닭이 없지요? 그렇다면.. 새로운 세력이 중원무림에 침투하기 위해 필요한 재력(財力)? .......! 사마장현은 그녀의 봉목을 주시하며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누님의 은신술은 강호일절(江湖一絶)이라 할만하니 소제의 주위를 은밀히 따라주십시오. 누님의 도움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희영의 옥용에 해사한 미소가 피어 올랐다. 알겠어요. 아우님이 위험한 일을 하는데 혼자 보낼 수야 없지요. 묵린보의가 좀 더 빨리 완성되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하하... 누님, 고맙습니다. 풍연소축에서는 난운 혼자서 정신없이 묵린보의를 만들고 있었다. 살짝 눈을 내리깔고 묵린 위를 오가는 자그마한 섬섬옥수(纖纖玉手)! 문득, ......! .......! 풍연소축에 도착한 사마장현과 사희영은 그녀의 모습에서 심원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었다. |
첫댓글 잘 보고 갑니다.
잼 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