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번스-프리차드의 종교이론 1. 에번스-프리차드(Edward Evans-Prichard, 1902년∼1973년)의 종교이론 요약 에번스-프리차드의 지적 배경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빅토리아 시대의 인류학(낡은 인류학)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인류학은 인간 사건의 과학에 대한 비전의 영감을 받아 생겨난 것으로 과학적, 진화론적 입장을 취하는 한편, 성향으로는 주지주의 적이고 개인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에번스-프리차드는 빅토리아 시대 인류학의 과학성은 수용하는 한편, 그것의 진화론적 사고에 대해서는 의심했다. 고대에서 현대로의 기술적 발전은 명백하지만 그것이 문화적 발전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기원추구에 대한 경도는 ‘기록’이 없다는 점에서 논거의 위태로움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편 빅토리아 시대 인류학의 개인주의 역시 항상 사회 속에 존재하는 인간 실존을 비추어 볼 때 적절치 못한 태도이며, 주지주의 역시 일면적이라는 점에서 제한적이라는 점을 비판했다. 두 번째는 프랑스 사회학 전통이다. 프랑스 사회학의 계보에서 에번스-프리차드는 뒤르껭(David Émile Durkheim, 1858년∼1917년), 그리고 특히 레비 브륄(Lucien Lévy-Bruhl, 1857년∼1939년)의 영향을 받았다. 뒤르껭으로부터는 사회적 삶의 중요성을 확인했으며, 레비 브륄에게서는 원시인의 사고가 현대인보다 우둔하거나 미숙한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사회 체제를 반영한 것일 뿐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그는 문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의 관념과 태도는 그 ‘전체 세계’의 맥락 안에서 이해해야만 한다는 점을 확인함으로써, 고대인, 원시인에 대한 현대적 폄하를 극복할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새롭게 전개된 영국 경험주의적 인류학 전통이다. 래드클리프 브라운(Alfred Reginald Radcliffe-Brown, 1881년∼1955년)은 뒤르껭의 이론을 사회 기능주의 이론으로 발전시켰는데, 이 이론은 원시종교를 원시인의 계급분화, 경제적 필요등과 연관지어 이해하는 것이었고, 자연히 한 사회의 사회 기능을 분석하는 현지조사를 강조하게 되었다. 이에 영향을 받은 에번스-프리차드는 도서실이 아니라 현장에서 그리고 특수한 다양한 사회를 연구함에 있어서도 종교만이 아니라 그 사회의 법, 경제, 계급구조와 친족구조 이해를 포함하는 방법을 택하게 된다. 이러한 이론적 배경에 따라 에번스-프리차드는 원시부족의 현장에서 자신의 인류학적 작업을 수행했다. 그 첫 결실은 아잔데의 마법, 신탁, 그리고 주술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Witchcraft among the Azande](1937년)는 아잔데 사회의 주술적 사유를 분석한 것이었다. 서구 현대인에게 주술은 전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여겨지지만 에번스-프리차드는 왜 아잔데 부족이 그것을 여전히 믿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서 출발했다. 매우 상세한 이 연구를 통해 에번스-프리차드는 아잔데인들이 미개하고 우둔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히려 매우 지적이고, 세련되며, 진보적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현대인들에게 이상해 보이는 마법과 주술을 그 문화 안에서 보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라는 점, 그리고 아잔데인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마법에만 달라붙어 지내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심각한 긴장이나 갈등 상황에 처할 때 마법을 찾는다는 점, 그리고 이 마법이 철저히 사회적 구조와 연관되어 존재한다는 점을 밝혀낸 것이다. 에번스-프리차드는 그의 유명한 ‘독물 신탁(poision oracles)’의 예를 들면서 그것이 사회적 삶에서 중심적 역할을 차지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독물신탁은 사회적 목적으로 사용되며, 마법, 주술은 법적 도덕적 차원을 갖는 것이다. 따라서 마법이란 아잔데 사람들에게 일종의 자연철학이며 가치체계로서 합리적인 것이며 그것은 그들에게 과학과 주술, 종교는 전혀 대립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다음으로 에번스-프리차드는 누어인의 종교를 연구했다. 그때까지 흔히 누어인은 제도종교의 면모를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여겼지만, 에번스-프리차드는 이들의 종교성이 문화속에, 그리고 숨겨진 형태로 작용한다는 점을 밝혀냈다. 실제 누어인들은 최고신(Kwoth)과 신령의 위계성(공중의 신령들과 땅의 신령들의 구분),인간이해 (육체, 호흡(생명), 영혼(지성)) 등의 개념과 사회적 기능을 하는 예언자 등을 잘 갖추고 있었다. 에번스-프리차드는 이 연구를 통해 비록 누어인들의 삶이 단순하다 할지라도 동시에 추상적이며 세련된 일종의 신학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어떤 점에서 누어인의 신학(nuer theology)은 유대교 유일신론이나 그리스도교 신비주의와 유사한 성격을 보이고 있다. 에번스-프리차드는 누어인의 신의 이해, 인간 이해의 ‘합리적’ 측면을 상징, 죄, 희생의례 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잘 보여주었다. 상징의 예를 들면 누어인들이 새를 보고 ‘kwoth’ 혹은 신령이라고 하는데, 이 ‘이다’(is)의 상징은 새는 공중을 날기 때문에 신령에 가깝다고 하는 논리에 근거하고 있으며, 따라서 “쌍둥이는 새 이다.” 라는 말도 쌍둥이는 신령이 특별한 형식으로 나타난 것이라 여겨지므로 충분한 논리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한편 죄의 관념과 희생제의도 누어 종교의 인간적 측면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사람들은 사회 안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금기를 범했을 때 죄의식을 느끼고 그 결과는 질병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질병은 도덕적 질서의 수호자인 신에게 희생의례를 드리지 않는다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심각성을 갖는다. 그런데 이것이 개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차원을 갖는다는 것이 누어인들의 죄 관념의 특징이다. 결국 누어인 개인이 상호간에 짓는 죄는 ‘신에게 저지르는 것’이고 따라서 신의 분노를 초래해 공동체에게 악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을 정화시키는 희생제의에는 개인적 의례와 집단적 의례가 있는데 누어인들이 더 심각하고 중요하게 다루는 것은 개인적 희생의례이다. 이 의례는 창으로 소의 심장을 찔러 죽이는 것인데, 여기서 소는 ‘두 번째 자아’를 상징하고 창은 ‘전체적 자아’로 부족의 단결과 힘을 상징한다. 에번스-프리차드는 이 의례 분석에서 ‘증여이론(gift theory)’과 ‘공동체이론(communion)’을 언급한다. 전자는 신과 인간의 일종의 ‘교환’개념으로, 죄를 지은 인간의 참회와 희생제물이 신의 태도를 바꿔 가족, 씨족, 부족으로 하여금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준다는 것이고 후자는 토테미즘(Totemism, 自然信仰)과 관련된 것으로 동물을 죽이고 먹는 것은 사람들이 사회적 공동체 혹은 연대에 참여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에번스-프리차드는 누어인의 종교가 갖는 합리성과 체계성을 규명했지만 그것이 그의 고유한 목적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가 관심 가졌던 측면은 누어인의 종교가 갖는 사회적 성격이었다. 그에 따르면 앞서 언급한 신령의 위계성의 경우 정치적 차원을 보여주며 신에 대한 숭배 역시 혈족, 씨족, 사회적 집단과 연합된 것이었다. 즉 누어인들이 믿는 신, 신령은 사회적 집단을 반영하는 구조적 맥락을 갖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번스-프리차드는 사회적 성격의 규명만으로 충분하다고는 여기지 않았다. 즉 “사회적 구조의 용어로 해석하는 것은 단지 신령의 관념이 사회적 삶의 부문에 일치하는 여러 형태를 취한다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것은 (종교)관념 그 자체의 본질적 성격을 더 잘 이해하게 할 수 없다.”고 지적한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환원주의에 대해 전면적으로 반대하는 것이며, 종교 연구에 있어서 누어인들이 보는 방식대로 보아야 한다는 방법론적 전제를 창출한다. 에번스-프리차드가 1965년에 한 강연을 모은 [Theories of Primitive Religion]는 그의 종교 이해의 원숙함을 잘 보여준다. 그는 여기에서 종교에 대한 심리학적, 사회학적 설명의 내용과 그 한계를 상세하게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우선 종교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은 주로 ‘추측’에 근거한 이론 작업 다시 말해 “내가 만일 말이라면”과 같은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을 원시종교에 적용했을 때는 근거를 확인할 수 없는 추측만으로 수 천년전의 원시종교를 재구성하는 결과만을 가져올 뿐이다. 한편 사회학적 접근도 심리학적 접근의 추측적 작업보다 덜하지 않다. 뒤르껭 등의 작업은 호주나 다른 어떤 곳에서 유통되는 토테미즘, 희생, 혹은 습관의 파편을 모아 상상한 것일 뿐이다. 결국 사회학적 이론은 심리학적인 설명과 약간의 차이만을 보이는 것이며, 같은 오류를 또한 반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접근에 대한 비판에서 에번스-프리차드는 레비 브륄(Lucien Lévy-Bruhl, 1857년∼1939년) 비판으로 나아간다. 물론 에번스-프리차드는 우리와 매우 다른 원시인들의 세계를 인정하기 전에는 원시인의 문화 종교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의' 기능을 이해하기 전에는 그 세계를 적절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결정적 원리를 레비 브륄이 밝혔다는 점은 인정했다. 그러나 레비 브륄이 원시인들의 마음은 '전논리적'이고 현대인은 그렇지 않다고 한 것은 오류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앞선 이론들에서 배워야 할 것은 있다. 종교가 지적인 것을 포함한다는 것, 감정을 끌어들인다는 것, 사회적 조직(구조)과 밀접히 연관된다는 것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요소 중 어느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에번스-프리차드에 따르면 종교에 대한 설명은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하며 일정한 사회에서의 모든 다른 요소들과 행위들의 관련 속에서 설명되어야만 한다. 한편 비록 과거의 추측적 작업이 현대 인류학으로 하여금 특수한 문화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도록 만들었지만, 해석자는 특수화된 작업을 넘어설 필요가 있다. 어떤 점에서는 이론가들에게는 단지 원시종교만이 아니라 모든 종교를 고려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과학과 종교는 상보성의 차원에서 공존해야 한다. 왜냐하면 과학과 종교와 같은 것을 갖지 않고서 지속될 수 있는 사회는 없기 때문이며 모든 문화는 항상 과학의 ‘정신의 산물(construct of mind)’과 종교의 ‘마음의 산물(construct of the heart)’ 양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끝으로 에번스-프리차드는 종교에 대한 연구에서 보통 사람들의 살아있는 종교적 신앙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과, 종교를 종교인의 눈으로 보아야 할 필요성을 제시했다. 인격적 종교심 없이 연구하는 학자는 가망이 없으며, 종교를 거부하는 학자들은 필연적으로 생물학적 사회적, 혹은 심리학적인 설명으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이상의 내용에 대해 팔즈(Daniel Pals)는 우선 에번스-프리차드는 기능주의적 해석과 환원주의적 해석에 대해 반기를 들며 원시종교 연구에 임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평가한다. 원시사회의 주술적, 종교적 체계가 그들에게는 합리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왜 그들이 부적절한 것을 믿는가 설명하는데 있어서 환원주의 이론을 사용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편 에번스-프리차드는 사회적 결정론도 반대했다. 에번스-프리차드는 모든 것을 포용하는 거대한 보편체계를 기대하지 않았으며 그의 입장에서 볼 때 사회학 이론들 역시 "내가 말이었다면"의 다른 사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비판적 태도와 함께 에번스-프리차드가 강조하는 것은 현지조사 연구의 중요성이다. 진정한 작업은 도서관과 신학적 문헌 바깥에서 수행되어야만 하며 종교를 설명하는 유효한 이론은 보통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해에 기반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일종의 종교에 대한 '미시이론'이라 할 수 있으며 그것은 종교가 어떻게 특수한 사회, 특수한 사람들, 특수한 시점에서의미를 만드는가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다. 에번스-프리차드가 아잔데, 그리고 누어라는 사회를 중심으로 문화적으로 연구한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한 평가화 함께 팔즈는 에번스-프리차드에 대해 세 가지 점에서 비판한다. 첫째는 다른 이론들에 대한 그의 평가와 관련된다. 에번스-프리차드는 루돌프 오토가 두려움 혹은 장엄한 감정으로 종교의 기원을 찾는 것을 비판하지만 그 역시 개인적 희생제의를 논의할 때는 오토가 종교라고 부르는 감정과 전혀 다르다고 할 수 없는 신실성과 엄숙성을 언급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팔즈는 에번스-프리차드가 "내가 만일 말이었다면"의 오류를 자주 비판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아무개였다면" 이라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의 동기와 행동을 이해하는 방법일 수 있지 않겠는가 반문한다. 두 번째는 원시적 심성(mind)과 관계된 것이다. 에번스-프리차드는 원시 심성의 '정상성'을 주장하며, 그들의 심성이 현대인의 심성과 전혀 이질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서는 같은 사회라 할지라도 다른 심성 혹은 태도가 존재하는 반면, 잔데 문화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에번스-프리차드의 개념에 의문을 갖게 한다. 세 번째는 이론의 문제이다. 팔즈는 에번스-프리차드가 종교에 대한, 또는 심지어 원시 종교에 대한 충분한 이론을 형성하지 않았으며 단지 다양한 종교(아잔데, 혹은 누어)에 대한 이론을 제시했을 뿐이라는 점을 비판한다. 하지만 에번스-프리차드도 [Teories of Primitive Religion]의 결론에서 지난 세기 동안에 진화론적, 심리학적, 그리고 사회학적 가설로 일반적 진술이 실제로 시도되었지만, 이 시도들을 인류학자들이 포기하였기 때문에 인류학의 주제는 일반적 목적과 방법의 상실에 의해 고통받았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러나 이것을 에번스-프리차드가 실제 수행했다고는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에번스-프리차드가 아프리카에서 필드워크를 수행하던 시기는 서구 식민주의의 종교적, 경제적, 군사적 패턴이 침략적으로 전개되고 있을 때였다. 당시의 인류학자들 중에는 일종의 '정부 인류학자'로서 기능하던 이들도 상당 수 있었다. 이 점에서 에반스 에번스-프리차드는 중립적이라는 인상을 풍기지만 실제로는 상당히 식민정책에 반기를 들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원인은 그의 인간적 연민, 혹은 도덕적 책임성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실상 아잔데 연구를 중간에 그만 두고 누어인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 이유는 영국에 의해 누어인들이 무참히 학살된 것에 대한 연민이었다고 후에 회고했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의 식민 책임자들은 식민정책에 비판적이었던 에번스-프리차드를 '과격한 인류학자'라고 명명했던 점 등을 볼 때(John W. Burton, "식민지 인류학의 재검토", 최석영 편역, [인류학과 식민지], 서경문화사, 1994, p.158-159) 그의 연구가 아프리카 부족 사회에 대한 호의적, 공감적 태도에 기반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그가 아잔데의 마법, 누어인의 '종교'를 하나의 체계로서 사회적 합리성을 가진 것으로 부각시킨 이면에는 미개인,야만인은 '노예처럼' 부려도 된다는 식민주의에 대한 반발이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인류학, 상징인류학, 혹은 해석인류학이 이론적 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않았던 시기에 사회인류학자인 에번스-프리차드가 기존의 사회결정론적, 기능주의적 환원론을 극복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할만 하다. 물론 에번스-프리차드가 종교현상의 분석에 있어서 사회구조에 대한 이해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것은 분명하다. 종교가 사회속에 존재하며, 사회구조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에서 그의 방법론은 적합한 의의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점이 그가 사회구조로 모든 것을 '환원'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게 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설령 그의 아잔데 연구와 누어 연구가 그러한 구조, 기능적 측면에 중심점을 두었다 할지라도 동시에 그가 추구한 바, 즉 사회구조적 맥락의 강조를 넘어 ‘원주민의 눈으로’, 혹은 ‘믿는 자의 눈으로’ 종교를 이해해야 한다는 방법론적 시각을 제시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그가 충분히 작업을 수행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종교 연구와 사회 연구의 상보적 관계성을 인식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팔즈는 에번스-프리차드가 종교에 대한 일반이론의 필요성을 자각하면서도 그는 실제 다양한 종교('원시종교'라고 하는 분야도 아닌) 연구에 국한되었다는 점을 비판했다. 이는 일반적 종교이론의 필요성을 제시한 바 있는 에번스-프리차드의 태도와 모순된다는 점에서도 타당한 지적처럼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일반적 종교이론의 수립이 어떻게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에번스-프리차드는 ‘경전’의 비교, 혹은 종교 엘리트들의 이념체계와 수행체계를 연구하는 것이 실제 종교의 본질을 밝혀내는데 무능함을 비판했다.즉 그는 살아있는 민중의 신앙과 행위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며, 그로부터 종교현상을 규명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일반적 종교이론이란 하나의 관념체계 전통을 구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양한 '실제' 종교현상의 이해, 해석과 그것의 비교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 종교이론 수립을 위한 다양한 종교의 연구는 의미가 있는 것이며 다양한 종교를 연구하는 인류학자, 종교학자들의 작업이 통합될 때 비로서 종교에 대한 일반이론은 수립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이론의 수립과 다양한 종교의 연구는 에번스-프리차드의 태도에서는 모순적이지 않은 것이다. [종교학사 연구](2000.10.19), 지도교수 : 배국원, 제출자 : 정경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