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만남
*국이형과의 첫 만남은 2년전 이 맘때이다. 북한 출신의 사람을 만난다고 하니 긴장이 많이 되었다. 마음의 감정이 설레임인지, 두려움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만남의 장소에는 남자 셋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세 사람 중 누가 북한에서 왔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유난히 키가 작고 피부가 거친 한 사람. 같은 생김새이지만 이 곳이 낯설어 새로운 세상에 두려운 눈빛을 보내는 저 사람. '저 사람이 *국씨구나! 옆에 있는 사람은 신변보호관 경찰일테고 이 사람이 하나센터의 이대리?‘
“안녕하세요. 정착도우미 봉사하러온 정혁구입니다.” “정선생님이시군요. 잘 오셨습니다. 지금 막 전입신고 마치고, 핸드폰을 개통하러 가는 길입니다. 가시면서 인사하시죠. **국님 이분이 정혁구 선생님이세요. 앞으로 *국님의 정착을 도와주실 분이시죠." “**국이라고 함네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갓시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정착도우미는 남북하나재단에 등록된 봉사자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돕는 일을 한다. 탈북한 사람이 대한민국에 들어오게 되면 국정원과 하나원을 거친 후 지역에 전입하게 되는데 이때부터 정착도우미의 역할이 시작된다. 정착도우미는 매칭된 북한이탈주민이 지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역안내와 물품구입에 도움을 주는 일들을 한다. 이들은 탈북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첫 번째 민간인이기도 하다. # 양평해장국 둘 “오늘은 일이 일찍 끝났네요. **국님은 남한의 사회에서 맞는 첫날인데, 오늘 저녁 뭐하실거예요?” “*국씨, 다른 것 하지말고 앞으로 남한에서 어떻게 잘살지 생각해 봐요. 여기까지 온 것에 대해 감사하고." “정선생님, 오늘 *국님과 저녁 같이 드실 수 있으세요? 저는 지금 사무실 들어가 봐야 하는데, 선생님 괜찮으시면 같이 식사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 그렇게 해 주시면 좋겠다. 저도 경찰서에 들어가봐야 해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대리의 추천으로 들어간 양평해장국집… 이동네의 맛집이라고 한다. 이름도 절묘하다. 내 앞에는 평양에서 온 남자가 있고, 식당 이름은 평양이 아닌 양평이다. 이제 둘만의 어색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6개월 동안 난 이 사람의 정착을 도와야 한다. 소통이 쉽지 않다. 윗동네 사람들은 외래어를 쓰지 않는다. 영어로 된 외래어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말 한마디 하면, 그 말에 대한 해석을 해줘야 한다. 이 사람의 말도 알아듣기 힘들다. 아내가 거창 두메산골 사람이라 그래도 방언에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평안도 말씨는 또 다른 신세계이다. 어디 말뿐이겠는가? 그 생각과 사고도 다르겠지… 모든 것이 조심스럽다. “선생님, 오늘 도와줘서 고맙습네다. 덕분에 마음이 편햇슴다.” “*국님, 나이가 저보다 많은데, 그냥 형, 동생 하시죠.” “그래두, 어떻게 그렇게 함까? 나를 도와주는 선상님인데.” “그래야 빨리 친해 지죠?” “기래요? 그럼 그렇게 하겠슴다. 선상님, 여기서는 무얼 먹어야 함까?” “네 저기 메뉴판을 보시면 되요” ‘아차차, 메뉴판을 모르겠구나' “아 저거이 안내표이구나, 양평이 무엇 이디요?” “네 양평은 지역 이름이예요. 이 음식이 양평의 스타일로 만든, 아니 양평의 방식으로 만든 음식입니다. 한번 먹어 보지요.” “기럽시다. 나는 잘 모르니, 동상이 시켜 둬” “네, 사장님, 여기 양평해장국 둘이요." # 경평축구 오랜 동안 침묵이 흐렀다. '무엇을 이야기를 하지? 북한 이야기를 해도 되나? 가족 이야기를 하면 **씨가 많이 힘들까?' 생각이 어지러운데, 마침 TV에서 북한에 대한 소식이 계속 나오고 있다. “아이고 오늘 축구 중계 좀 해주지! 북한은 왜 저런데"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남자 둘 있는 우릴 의식했는지, 큰 소리로 말한다. 우리 분위기가 그렇게 어색했나? TV에서는 손흥민도 보이고, 요즘 뜨는 이강인, 황희찬도 보인다. '아 오늘이 월드컵 축구 예선전이 있는 날이구나! 어! 평양에서 하네?' 오랜만에 남북축구가 있는 날이다. 그래서 그런지 남북축구의 역사에 대해 방송들이 다루고 있다. '경평축구' 일제 식민 시절 민족의식의 고취를 위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벌인 오랜된 더비전이다. 이 더비는 해방후 46년을 마지막으로 더는 열리지 않았다. 그리고 90년도 남북 교류를 위한 통일축구대회가 열리고, 이후 29년만에 평양에서 남북이 축구로 붙는다. 한참 손흥민도, 다른 한국선수들도 해외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터라 내심 북한과 붙는것을 보고 싶었다. 그런데… 왠걸, 시간이 되었는데 축구중계를 안 한다고 한다. 북한에서 축구중계를 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축구가 뭐라고… 여기서도 지고 이기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인가? “형, 고향이 어디인지? 물어봐도 돼요?" “어, 괜찮아. 나는 저기서 왔서!” “어디요?" “저기, 뗄레비죤에 나오는 곳, 능라도에서 왔디”. 맞다. 내 앞에 있는 형은 북한에서 왔지! 참 절묘했다. 이럴 때 TV에서 경평축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니. 마음이 복잡해 진다. 서울과 평양이 고향인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한 명은 정착을 시키고, 한명은 정착을 해야하는 입장에서 협업이 필요하다. 경쟁이 아닌 통합을 위한 상생을 해야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질적 문화에 대한 반감으로 마치 경평축구를 하듯 서로를 탐색해야 했다. # 첫날 밤 고단한 하루가 지나갔다. 생전 처음 만나는 북한이탈주민과 하루종일 같이 다니자니 온 몸이 안 쑤시는데가 없다. 긴장을 많이 했나보다. 북한사람이 누구인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왠지 멀리 해야 할 사람이 아닌가? 그들은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이고, 우리의 부모님 세대의 가정을 파괴한 사람들이다. 그들그들과 같이 있으면 빨갱이라고 낙인이 찍힐 것만 같던 존재, 그들이 북한사람이다. 해외에서 그들을 만난다면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성으로 왠지 끌리는 존재들이지만, 반면 혹시 나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두려움을 갖게 하는 존재들이기도 하다. 그런데 하루 종일 북한사람, 아니 몇 달 전까지만해도 평양사람이었던 *국씨와 함께 했다. 처음 북한사람을 만난 여러 감정의 흥분으로 잠을 뒤척이며 *국씨를 생각한다. 낯선 곳, 적국이라 불렀던 이 곳에서 보내는 그의 첫날 밤. 탈북민들에게 이 시간이 가장 힘든 시간이다. 탈북과정과 국정원, 하나원에서의 시간들… 필사적으로 자신의 모든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세계에 대해 전적으로 받아 들이는 시간. 자아의 균열과 긴장의 연속에서 이제 새로운 세계에 들어올 수 있다고 승인이 떨어진, 이제 안도감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그들의 첫날 밤이다. 처음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이 시간, 잠시 한 숨 돌리고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어떻게 행동했는가를 직면할 수 있는 시간이다. 많이 울고, 많이 아파하고, 많이 후회하고, 그래서 사고가 많이 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낮에 신변보호관이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이야기했는가 보다. 오늘 내게 새로운 형이 생겼다. 그는 평양에서 온 남자이다. 형제가 된 첫날 밤, 그도 나만큼 잠못 이루는 밤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