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전은 봉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남호 영기 스님이 부처님의 말씀을 판각하고 펴낸 81권의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서 지어진 건물인데 추사가 봉은사에 머무르고 계실 때, 인연이 있던 영기스님이 부탁을 하여 추사가 죽기 3일 전에 붓을 잡고 쓴 편액으로 유명합니다.
현재까지 확인된 추사의 마지막 글씨(절필)가 봉은사에 남아 있는 것입니다.
판전의 글씨를 탁본한 것을 찾아 올리니 연휴의 끝자락에 한가로움을 즐기시며 여유있을 때 들여다 보시길 바랍니다.
트ㆍ롯ㆍ여ㆍ신
신ㆍ미ㆍ래ㆍ님
'좋은 계절에', '우아한 사랑'과 함께 하시면 더욱 좋습니다.
진자 님께서 말씀하시는 무릉도원을 경험하실 수도...^^
판전 글씨 왼편에
‘七十一果病中作’ 추사의 나이 71세에 병든 중에 쓴 글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특히, ‘果’자는 그가 노년에 썼던 별호인 '과로(果老)·노과(老果)ㅡ과천사는 노인'을 줄인 말입니다.
추사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이 판전의 편액 글씨는 추사체의 완결판으로 불계 공졸(不計工拙, 잘 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는다)도 뛰어넘는, 무심의 경지를 보여주고 있으며 추사가 병중임에도 사력을 다해 어린애 몸통만한 대자, ‘판전(板殿)’의 두 글자를 욕심 없는 필치로 완성한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리숙하면서도 꾸밈이 없는, 동자체 같으면서도 지팡이로 땅바닥에 쓴 것 같은 천진난만한 글씨라고 합니다.
도올 김용옥은 “판전이라는 글씨를 보면, 거기 봉은사의 판전이라는 글씨를 보면, 완벽하게 해탈한 글씨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전 문화재 청장 유홍준 님은 ‘추사체의 졸함이 극치에 달한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추사 연구의 최고 권위자인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장 최완수 님은 ‘군더더기를 티끌만큼도 용납하지 않은 순박한 필획에서 천진한 필의가 엿보이니 진정 무구동진체라 이름지을 만하다’고 했습니다.
특히 "노숙한 추사의 신필 경지가 이런 것이 아닌가 생각되고, 특히 ‘전’자의 왼삐침을 곧게 내려 누른 점은 천진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고 했습니다.
유홍준은 판전 글씨를 보고 자신의 저서 『완당평전』에서 다음과 같은 감회를 남겼습니다.
"근 20년의 일이다. 어느날 틈을 내어 봉은사에 다시 이 글씨를 보러갔는데 그날은 ‘판전’ 글씨가 아주 어린애처럼 보였다. 왠지 완당이 여덟살 때 부친에게 보낸 편지 글씨와 닮았다는 느낌을 받 았다. 글자의 구성도 그렇거니와 획의 삐침도 그렇게 느껴졌다. 참으로 신기한 느낌이었다."
"여덟살 때 글씨와 일흔한 살 때 절필은 모두 순진무구한 천진스러움이 공통점이지만 여덟살 때 글씨가 미숙한 천진스러움이라면 일흔한 살 때 글씨는 단련된 천진스러움이었다. 다르다면 그것이 다를 뿐이다."
전문가들은 이 글씨를 보고 ‘大直若屈 大巧若拙’이라고 평했습니다. 노자 도덕경에 나오는 말로 ‘크나큰 곧음은 오히려 굽은 것 같고 크나큰 기교는 오히려 유치한 것 같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판전의 편액 글씨는 졸박미(拙樸美:공교함의 극을 넘어 다시 서툰 듯 천진스런 경계에 든 아름다움)의 극치에 달하여 마치 어린 아이 같은 천진무구함이 넘치는 작품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이 작품에 대해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문가들의 칭송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의 예술적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들여다 봐도 필획에 힘도 없고 글씨도 뭉뚱그러졌으며 결자와 장법도 예전 작품들에 비해 못 미치는 것 같고 따라서 기세도 약하게만 느껴집니다.
저의 형편없는 안목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ㅠㅠㅠ
아직 갈 길이 너무나 먼 데 세월은 덧없이 흐르고...ㅎㅎㅎ
아! 아직 젊어서 저는 알 수가 없는 것일지도 ...^^
가능성이 희박하기는 하지만 지금 모르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수도!!
첫댓글 일반인이 저리 썼으면 논평조차 아까운 수준이하 글씨라 했을지도.. ㅋ
그래서 관념이 중요한가 합니다 ㅎ °°
추사는 시쳇말로 절친인 권돈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칠십 평생 벼루 열 장을 밑창 내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고 자신의 峻烈한 노력을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돌 벼루 한 장도 구멍 내려면 얼마나 많은 먹을 갈아야 할까요?
저도 추사가 일부러 모든 書法을 초월하여 마지막 글씨를 썼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제가 아직은 볼 줄 모르고 느낄 줄 몰라서...ㅠㅠㅠ ㅠㅠㅠ
오장군님의 강연 술한잔 했다 한들 머리속에 들어오니 신기합니다..
완전한것은 없다 했습니다 .
또한 완벽한 것은 없습니다..
마음가는대로 .
오로지 우주의 순리에 연기된것을 이해할수만 있다면
무릉도원에 이르를수 있지만..
부족하여 .
우아한 사랑 .
반짝반짝 보석 좋지만.
나를 지켜줄 더 멋진 당신이 좋아.
무릉도원 진리를 노래하는 미래님 은 미륵불 이자 미래불이라 생각합니다 ..
어!!
오늘도 한잔술에 취하여 횡설수설 하고 있나니 ..
진정 저는,구제뷸능인가 합니다 ...
10월 8일 친구 아들 결혼식장에 다녀왔습니다.
국민학교 동창들 오랜만에 예식끝나고 별도 모임 한자리 함께 했습니다 ..
남자 동창 여자 동창 어율려 환담했습니다 .
예전 동창 카독에 술취하여
천상의 목소리 신미래님 알리려 .
불공한 세태에 희한을 담고 친구들이 나서 .
불공정에 대한 불의를 성토하자 일장연설 한적이
있는데 ..
답글이 쉬원치 않아 잊고 있었는데.
여자 친구가 .
헐 !!
저보고 글을 잘 쓴답니다..
세상에 횡설수설 글을 잘쓴다 느꼈다니 .
알수 없는 일입니다..
어쨌든 동창들이 신미래 님 이름 석자 기억해 주니 .
술취하여 횡설수설 한 것이
..
마냥 쓸모 없는 것이 아니구나 느껴지니 신기합니다 ㅎ°°
그래도 알수없는 것이 장윤정님 피알할때 호응이 좋았는데 .
다들 나이 먹어서 그런가 열열하자 않으니 ..
인생사 세옹지마인가 합니다..
아딸딸 하여 적당히 횡설수설 하고자 이만
후다닥 ========333
@진자 (서울 개봉) 추사는 그의 마지막 작품을 통해 그가 평소에 주장한 서예이론인 '書勢如孤松一枝' 즉 '글씨의 기세는 마치 외로운 소나무 한 가지와 같아야 한다.'는 것을 표현하고자 했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필획에서 소나무 가지를 느끼셨다면...
저도 기어이 소나무 가지가 느껴질 때까지 바라 보려고 합니다. 죽기 전까지...
@오장군(광주) 술취하여 횡설수설 댓글에 소중한 내시어 답글 주심에
영광이고 민망하고 부끄러워 몸들바를 모르겠습니다.
잊고 있었던것 기억을 되살려 주시어 ..
세상 살맛납니다 ..
점심에 반주하고 저녘에 한잔하고 .
이제 아딸딸하여 지금 보았습니다..
국민학교때 붓 글씨 배워 청양군 붓글씨 대회 나가
2등한 기억이 납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추사 김정희 추사체 강의 하신것 같은데 .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
추사체 의미는 나중에 나이 먹으면 알것이라 말씀하신것이 생각나니 오장군님 덕분인가 하니다 ..
추사체는,.
담임선생님께서 말씀 하시길 .
가을 바람신이 먼지를 쓸어낸 필체라 하신것 같은데.
기억아 맞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ㅎ°°
@진자 (서울 개봉)
아마도 기억이 맞으실 겁니다.
최완수 님께서 추사의 글씨는 잡스러운 것이 일체 섞이지 않아 티끌 한 점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셨으니...^^
@오장군(광주) 엉뚱한 기억이 났나 헷갈렸는데 ..
비슷하게 기억이 난것같아 다행입니다 ㅎ°°==^^^
오늘 오장군님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그먼 마시고 일찍 집에 들어가 꿀잠 자야겠습니다 ㅎㅎ °°^^
수고하셨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
오장군님 안목을 안타까워 하실 일은 아닌 듯 합니다.
저도 서예에 문외한이지만 쌍코피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추사가 썼다하니 유명세가 더해진 평가들이 아닌가…
혼신을 다해 쓴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입니다. ^^
혼신을 다해
사력을 다해
죽을 힘을 다해
쓰신 글씨가 분명합니다.^^
직접 수많은 예술품을 공부하고 판독하고 감정한 사학 전공자인 가헌 선생님 평가와, 다른 이의 평론과 감상을 공부한 미학 전공자 유홍준의 평과, 생물학, 철학, 한의학 전공자인 도올의 평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요!
다만 유학을 공부했던 추사가 썼던 대흥사 '무량수전' 현판과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몸을 의탁했던 봉은사 '판전' 현판은 한사람이 썼다고 보기에는 차이를 보입니다
대체로
최완수 님, 유홍준 님, 김용옥 님의 추사 작품에 대한 견해는 비슷합니다.
최완수 님, 유홍준 님이 추사 최고의 걸작 중의 걸작으로 꼽는 작품은 "명선"입니다.
그런데
근년에 추사 작품 中
세 작품(침계,대팽고회,차호호공)만 보물로 지정됐고 가장 유력했던 '명선'은 제외됐습니다.
문화재 전문위원(주로 대학교수)들의 반대에 부딪혀 보물 지정이 보류된 것입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관련 글을 올리겠습니다.
어쨌든 현재까지 추사 작품 중 국보로 1점, 보물 5점이 지정되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며, 앞으로 문화재로 지정되는 작품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니, 비록 말년은 불우했으나, 실로 대한민국의 정신 문화를 대표하는 걸작 중의 걸작들을 남기신 분이 바로 추사라는 데에 인식을 함께 합니다.
신미래 님께서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로 성장해 나가기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