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절 세 가지 교훈
1 어느 날 밤에 부처님은 기원정사 앞뜰에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부모를 존경하는 자제가 있는 가정은 범梵이 깃드는 가정이다. 또 선사가 머무는 곳, 응공자가 머무는 곳이다. 비구들이여, 바라문이나 선사나 응공자는 부모의 이름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식을 낳아 기르고, 이제 계의 착하고 악함을 그 자제에게 가르쳐 주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반달마다 여드레째 만에, 사천왕의 신하들은, 이 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살펴본다. 인간 세계에 있어서 얼마만큼 사람들이 부모나 사문이나 바라문을 섬기며 어른에게 순종하는가? 또 포살 날에 팔계를 지키고, 그 앞 뒷날에는 삼가며 얼마나 공덕을 쌓는가를 살펴본다. 비구들이여, 또 반달마다의 열나흘 째는 사천왕의 왕자가 이 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살펴본다. 이 인간 세계에 있어서 얼마만큼 사람이, 부모나 사문이나 바라문을 섬기고 어른에게 순종하는가, 또 포살 날에는 팔계를 지키고, 그 앞 날에는 삼가며 얼마나 공덕을 쌓는가를 살펴본다. 또 비구들이여, 반달마다의 보름날에는 사천왕 자신이 이 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위와 같이 살펴본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해서, 만일 덕을 쌓는 사람이 적을 때에는 사천왕은 선법강당에 모여 있는 여러 도리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인간 세계에는 부모나 사문과 바라문을 섬기고, 어른을 존경하며 또 포살 날에는 팔계를 지키고, 그 앞뒷날에는 삼가며 덕을 쌓는 사람이 적다'고, 여러 도리천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슬퍼한다.
'아아, 하늘의 대중을 줄어들고, 아수라의 무리는 불어 가는구나.'
비구들이여, 그러나 만일 인간 세계에 덕을 쌓는 사람이 많을 때에는, 사천왕이 그 사실을 보고하면 여러 도리천은 기뻐한다. '아아, 하늘의 대중은 불어 가고 아수라의 무리는 줄어든다'고.
비구들이여, 아주 먼 옛날의 일이다. 모든 하늘의 임금인 제석은 여러 도리천의 무리들을 불러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른 일이 있다.
나와 같이 되려고 생각하거든 반달마다 여드레 열나흘 보름날 또 파테하리야의 때에는 여덟 가지 계를 부디 지켜라.
비구들이여, 제석천의 이 노래는 좋은 노래가 아니다. 왜냐하면, 제 스스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나지 못하고 또 나고 늙고 죽기와, 근심ㆍ슬픔ㆍ고통 ㆍ번민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면서 '나와 같이 되려고 원한다면' 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번뇌를 없애기를 다하고, 깨끗한 행을 닦아 마치고, 할 일을 다 마치고, 죄의 짐을 내려놓고, 자기의 목적을 끝내서, 바르게 해탈한 아라한의 비구라야, 비로소 이런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비구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떠났고, 나고 늙고 죽기와, 근심ㆍ슬픔ㆍ고통ㆍ번민에서 해탈했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믿는 마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세 가지 일이 있으면 많은 공덕을 지을 수 있다. 첫째는 믿는 마음이 있을 것, 둘째는 보시할 만한 물건이 있을 것, 셋째는 보시를 받을 만한 사람이 있을 것, 이 세 가지를 갖추어 가면 많은 공덕을 지을 수 있다.
비구들이여, 속인으로서 믿음이 있다고 불리는 데는, 세 가지 일로서 알 수 있다. 첫째는 계를 가지는 바른 사람을 보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을 것, 둘째는 바른 법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을 것, 셋째는 아까워하는 마음이 없이 깨끗한 손으로써 널리 보시하고 보시를 바라는 사람에게 둘러싸여 보시하기를 즐기는 이 세 가지를 갖추어야, 비로소 믿는 마음이 있는 사람인 줄 알게 되는 것이다."
2 또 어느 날 밤,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말하는 '부모도 모르고 자식도 모른다'는 경우가 셋이 있다. 첫째는 큰 불이 일어났을 때다. 무서운 불꽃 속에서, 어미는 자식을 돌 볼 수 없고 자식은 어미를 도울 수 없다. 둘째는 큰 물이 났을 때다. 거센 물결에 휩쓸려, 어미는 자식을 돌볼 수 없고 자식은 어미를 도울 수 없다. 셋째는 숲 속에서 도둑을 만났을 때다. 아무도 사람이 없을 때, 어미는 자식을 돌볼 수 없고 자식은 어미를 도울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상에서 말하는 '부모도 모르고 자식도 모른다'는 세 가지 경우다.
비구들이여, 이 세 가지 경우에 있어서는, 그래도 때로는 모자가 서로 도울 기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밖에, 참으로 모자가 제각기 갈리어, 어미는 자식을 모르고 자식은 어미를 모르는 세 가지 경우가 있다. 그것은 곧 늙음의 두려움과 병의 두려움과 죽음의 두려움이 덮쳐 온 때다. 아들이 늙어 가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내가 아들 대신 늙었으면' 해도, 될 수 없는 일이다. 어머니가 늙어가는 것을 보고, 아들이 '어머니 대신 내가 늙겠다' 고 해도 될수 없는 일이다. 또 아들의 병을 보고 어머니가 '내가 대신 앓겠다' 고 해도 될 수 없는 일이다. 또 아들 죽는 것을 보고, 어머니가 '내가 죽고 아들이 살아났으면' 해도 돌릴 수 없는 일이요, 어머니 죽는 것을 보고 아들이 '내가 대신 죽고 어머니가 살아났으면' 해도 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실로 '부모도 모르고 자식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앞의 세 가지 경우나 뒤의 세 가지나 이 여섯 가지 두려움을 벗어나는 길이 있다. 그것은 곧 팔정도다. 바른 소견ㆍ바른 생각ㆍ바른 말ㆍ바른 행동ㆍ바른 생활ㆍ바른 노력 ㆍ바른 관찰ㆍ바른 정이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떠한 두려움도 그것은 어리석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또 어떠한 곤란이나, 어떠한 불행도 모두 어리석음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이를테면 짚으로 인 집도, 안팎으로 칠을 해서 바람을 막고, 창이나 문을 굳게 닫은 큰 다락집도, 집이란 집은 모두 다 불에 타는 것과 같이 어떠한 두려움도, 곤란도, 불행도 모두 어리석음에서 오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러한 불행 따위는 모두 어리석은 이가 가질 것으로서, 지혜로운 이가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어리석은 이라 불리는 세 가지 법을 떠나 지혜로운 이라 불리는 세 가지 법을 얻도록 힘쓰지 않으면 안된다. 비구들이여,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는 그 행위를 보아 알 수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이의 세 가지 법이란,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악한 업이요, 지혜로운 이의 세 가지 법이란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착한 업이다. 이 몸과 말과 뜻의 세 가지 악한 업은 어리석은 이의 모습이요, 그 세 가지 착한 업은 지혜로운 이의 모습이다.
비구들이여, 또 어리석은 이와 지혜로운 이의 세 가지 법이 있다. 어리석은 이의 세 가지 법이란, 죄를 죄인 줄 모르는 것과, 죄를 죄인 줄 알면서도 법다이 고치지 않는 것과, 남이 자기의 죄를 알려 주어도 그것을 법다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또 지혜로운 이의 세 가지 법이란 죄를 죄인 줄 알고, 죄인줄 알아 법다이 고치고, 자기의 죄를 알려 주는 남의 말을 법다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어리석고 악한 사람은, 그 악한 세 가지 법으로써 자기의 덕을 뿌리째로 뽑아, 아는 이의 비난과 웃을을 받고, 자기의 부덕을 쌓는 것이다. 또 지혜로운 착한 사람은 그 세 가지 법으로써 자기의 덕을 지킬 뿐 아니라, 아는 이의 비난이나 웃음을 받는 일이 없이 스스로 많은 덕을 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