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리면 / 이미산
여기는 적막한 내부 아직 판매되지 않은 미래의 놀이 상자는 부드럽게 나아간다 우주선처럼 나는 전송되는 동시에 전송받는 우주인 첫눈은 잠깐 내리다 그쳤다 머지않아 마트에서 눈송이를 판매할 것이다 눈송이로 만든 집 눈송이로 만든 딸기밭 한입 깨물면 달콤하게 스며드는 새로운 세상 한숨 자고 나면 예뻐지는 아이처럼 컨디션을 회복한 지구가 달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마트는 끝까지 살아남아 다녀온 지 닷새가 지났네 나는 제자리 뱅뱅 돌며 거울 속 저 늙은 여자는 누굴까 그렇지 마트는 매일 다녀왔어야지 미안해 마트 중얼거림이 상자의 실핏줄에 닿는다 덜컹! 상자 밖의 상자를 깨운다 웅웅웅 도착하는 메시지 나는 미지의 공간으로 더 깊이 47층 37층 17층…… 이곳 시간은 층마다 달라 벽과 벽 불빛과 불빛 CCTV와 CCTV 찰칵 또 찰칵 휘몰아치는 눈송이 딸기밭 딸기우유 엄마엄마…… 딩동! 상자가 잠의 세계로 떨어진다 엘리베이터 문이 활짝 열린다 여기 내 생을 남겨두고 폴짝! 상자 밖으로 나온다 나는 마트를 향해 걸어간다 ㅡ 웹진 《공정한시인의사회》 2024년 5월호 -------------------------
* 이미산 시인 1959년 경북 문경 출생.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2006년 《현대시》 등단. 시집 『아홉시 뉴스가 있는 풍경』 『저기, 분홍』『궁금했던 모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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