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텐인텐[10년 10억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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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맞벌이 부부의삶 민족의 얼을 빼는 얼치기 역사는 가라
소금인형33 추천 5 조회 829 23.09.03 22:13 댓글 16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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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09.03 22:42

    첫댓글 일본 앞잡이는 정말 싫다 !

  • 작성자 23.09.03 22:45

    거국적으로 반대여론이 일어나서 다시 제자리를 찾아갔으면 하는 맘이 간절합니다

  • 작성자 23.09.03 22:53

    편향적 인지왜곡 현상...

    어디 꼭 미쳐서 생기는 게 아니라
    한마디로 지식이 짧거나 고집불통이 세어도
    흔하게 생길 수 있는 현상에 불과

    수십년 횡행한 반공 빨갱이 예가 대표적

  • 23.09.03 23:01

    이 나라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대통령을 하고 있을 이유는 없으니 미친짓 그만하고 자리에서 내려오길.

  • 작성자 23.09.03 23:01

    k샤머니즘의 예언에라도 기대고픈 심정임다...

  • 23.09.04 05:37

    우리나라대통령이 우리나라의 거룩한 독립운동의 역사를 훼손시키지 말았으면 합니다

  • 작성자 23.09.04 09:14

    얼빠진 통에 얼빠진 하수들이 득시글...

  • 작성자 23.09.04 09:19

    백선엽이 자신의 책에서 자백한 것도 지워주는 꼼꼼하게 얼빠진 자들입니다

  • 작성자 23.09.04 10:16

    ✔  "백선엽은 가짜 영웅"

     
    "백선엽을 왜 한국전쟁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일"

    "백선엽은 한국전쟁 초기 제1사단의 붕괴에 직접적인 책임을 져야 하는 사단장이었다. 부대를 버려두고 농부옷으로 갈아입고 사라졌다 3일 만에 나타난 사람"이라고 비판했다.

    한국전쟁 초기 단계에서 부대가 철수하고 무너지는 상황에서 백 장군이 자신이 지휘해야 할 1사단을 버리고 혼자 도망쳤다는 것이다.


    백 장군의 최대 전공으로 꼽는 다부동 전투에 대해서도 한 장군은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다부동 전투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킨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원래 다부동 전투는 실패한 전투"라면서

    "백선엽의 제1사단이 방어를 잘못해서 북한군이 낙동강 전선 종심 깊게 들어와서 위기가 발생했다.

    결국 그 해결은 미군이 했다.

    그런데 실패한 전투가 한국을 위기에서 구한 전투로 탈바꿈을 했다"고...

    그러면서 "한국전쟁 당시에 백선엽은 조소의 대상이었지 영웅이 아니었다"면서

    "백선엽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이승만의 친일파 비호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니고 있다"고 짚었다.

    ㅡ 한설 예비역 준장

  • 23.09.04 08:01

    공산주의자라서 안되면... 옛소련인 우크라는 왜 도와줬냐구...민족의 역사적 아픈사실을...다시 재건국하여
    일본한테 깔아주려는 심뽀~

  • 23.09.04 09:14

    맞습니다

  • 작성자 23.09.04 09:15

    조삼모사 원숭이같은 족속들

  • 작성자 23.09.04 09:17

    박정희는 괜찮고??

  • 작성자 23.09.04 09:32

    백선엽은 괜찮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택한 소련공산당
    선택의 자유를 누리며 들어간 만주군 장교

  • 작성자 23.09.04 10:18

    개검 출신 박민식

  • 작성자 23.09.04 10:17

    ✔ 백선엽 창씨개명

    백선엽의 창씨명이 밝혀진 것은 <한겨레> 대기자를 지낸 김효순이 2014년 저서 <간도특설대>를 펴낸 뒤에서였다.......

    ‘백천의칙’을 일본어 이름을 읽는 관행대로 읽으면, ‘시라카와 요시노리’가 됩니다. 시라카와 요시노리….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닌가요?

    시라카와 요시노리는 1932년 4월 상하이 훙커우(홍구, 지금은 루쉰)공원에서 윤봉길 의사가 던진 폭탄에 맞아 죽은 상하이파견군 사령관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1920년에 태어나 평양사범학교를 나온 ‘영명한’ 백선엽이 당시 동아시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윤봉길의 의거와 그 희생자의 이름을 몰랐을 리 만무합니다.

    ✔ 백선엽이 왜 자신의 이름을 백천의칙으로 바꿨는지 너무 궁금하지만...

    100살의 나이로 숨지는 순간까지 백선엽은 자신의 창씨명은 물론, 창씨명을 그렇게 정한 이유에 대해 철저히 침묵을 지켰습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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