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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라를 회복하여 예슈아를 닮아가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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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슈아께서 상속자이시다
저번 시간에 이어 히브리서를 계속 공부하자. 예슈아께서는 상속자이시며 그를 위하여('말미암아'로 번역된 헬라어 뜻은 '위하여, 때문에'이다) 여호와께서 친히 모든 세계를 창조하셨다. 자신이 창조한 것을 상속받는 사람은 없다. '상속하다'의 사전적 의미도 '아버지의 재산을 아들이 물려받는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아들 예슈아께서 상속받는 것이 '상속자'의 의미이다.
2 예슈아께서는 빛이시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2절에서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를 많은 성경이 다르게 해석하는 것에 대해 전 시간에 나누었다. 한번 더 공부해보자. 여기서 '그가'는 헬라어로 '후토스'이다. 그 뜻은 '이것, 저것, 그것, 그이, 그녀, 동일한 것,'등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그'라고 번역해야 할까? '그것'이라고 번역해야 할까? 또는 '동일한 것'이라고 번역해야 할까? 이 단어를 많은 성경은 '말씀 또는 동일한 것'으로 번역했다. BBE성경은 '태초부터 말씀은 하나님과 관계가 있었다', KJV, KJVLite, WEB 성경은 '동일한 것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NET성경은 '말씀이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있었다'로 번역했다. 이외에 많은 성경이 이처럼 번역했다. 여기서 '동일한 것'은 물론 1절에서 말하는 '말씀'을 뜻한다. 이처럼 많은 성경들이 '그'가 아니라 '말씀(그것)'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요1: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요1:1,2)
세례 요한은 말씀을 증언하러 이 땅에 왔는가? 빛을 증언하러 왔는가? 분명 말씀은 그가 빛을 증언하기 위해 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말씀과 빛은 같은 것일까?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시니 빛이 있었다(창1:3). 말씀하시니까 빛이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과 빛은 다르다. 태양과 빛이 같은가? 다르다. 태양이 있기에 빛이 있다. 물론 빛을 먼저 창조하셨기에 빛이 있으니까 태양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어쨋든 다르다. 마찬가지로 빛이 있는 것은 말씀이 있기 때문이고 말씀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말씀과 빛은 분명 다르다. 그러므로 요한이 증언하는 것처럼 빛이 예슈아시라면 말씀은 욥과 선지자들이 고백한 것처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여호와시다.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라는 말씀도, 말씀 안에 생명이 있고 그 생명의 빛이 예슈아라고 이해해야 한다(요1:1-7).
하나님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창1:3)
3 말씀이 낳으신 예슈아
요한복음 1장 2절에서 '그'가 '예슈아'가 아니라, '말씀'이라는 것을 이해했지만 14절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말에서 또 다시 헷갈릴 수 있다. 이 말씀을 보면 '말씀이 곧 육신으로 오신 예슈아'가 아닌가 생각할 수 있다. 여기서 '되어'의 사전적 의미는 '낳다', '발생하게 되는 원인이 되다' '일어나게 되다' '스스로 행하는 자'등이다. 즉 '말씀이 육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말씀이 낳은 육신' 또는 '말씀으로 인해 일어난 육신'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말씀과 육신을 동일시하여 해석해서는 안된다. 앞 구절과 같이 육신이 있는 이유는 말씀이다. 말씀 때문에 육신이 일어났고 발생한 것으로 말씀이 낳은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이신 여호와께서 예슈아를 낳았고 그 영광을 보니 독생자, firstborn(장자)의 영광이 충만하다고 말하는 것이다(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1:14)
4 예슈아께서 만물보다 먼저 나셨다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에서 ‘나셨다’는 무슨 뜻일까? '낳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환경이나 상황의 영향으로 어떤 인물이 나타나도록 하다'이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에게 아비가 있느냐 이슬방울은 누가 낳았느냐 얼음은 누구의 태에서 났느냐 공중의 서리는 누가 낳았느냐”(욥38:28,29) 이 말씀을 통해 ‘낳다’라는 뜻은 ‘창조하다’의 의미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라는 뜻은 여호와께서 가장 먼저 창조하신 분이 예슈아라는 뜻이다. 그래서 영어로 'firstborn' 장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예슈아는 죽은 자들 중에서도 'firstborn' 이시다. 왜냐하면 가장 먼저 부활하시고 부활채를 입으셨기 때문이다. 부활채도 여호와께서 창조하셨으므로 가장 먼저 새창조를 입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슈아는 창조물들 중에 으뜸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만물은 물론이고 예슈아께서도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로 부터 창조된(나신) 분이시며 다시 새창조에 속할 때에도 가장 먼저 창조된(나신) 분이시고 우리도 그분을 따라 새창조에 속하게 될 것이다. 또한 예슈아는 교회의 머리이시다. 교회는 여호와를 예배하고 섬기기 위해 존재한다. 또한 아버지와 우리를 영원히 중보하는 대제사장이시다. 그러므로 교회와 여호와를 동일시 할 수 없다. 예슈아께서는 교회이시고 교회의 머리이시다. 자신이 여호와로서 스스로를 예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은 말도 안되고 상식적이지도 않다. 예슈아는 유일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장자이시고 상속자이시다(골1:15-18).
또한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그 뜻은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 보이지 않는것, 왕권들, 주권들, 통치자들, 권세들 그리고 만물이 예슈아를 위해서 예슈아 때문에('말미암아'로 번역된 단어의 헬라어 뜻은 '때문에, 위하여'이다.) 창조되었다는 뜻이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골1:15-18)
5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
예슈아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즉 여호와의 형상이시다. 여호와께서는 '보이지 않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보이지 않는 분일까? 모습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 분일까? 여기서 '보이지 아니하는'의 헬라어 원어는 '보이지 않는'이 아니라 '볼 수 없는'이다. 비슷한 것 같으나 비슷하지 않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분의 어떠함과 상관이 있다. 보고 싶어도 형체가 없어서 보이지 않는 분이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어떠함과 상관이 있을 수 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를 직접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모세를 통해 말씀하셨고 지금도 여호와를 직접 볼 수 없기 때문에 대리자인 예슈아를 통해 말씀하신다. 이 모든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여호와의 임재를 두려워 견디지 못하고 주께 구한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 보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두려움과 죄악으로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것과 볼 수 없는 것의 의미는 큰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그분이 모습(형체)이 없어서 볼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죄인이라서 볼 수 없는 것일까? 생각해보자(골1: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개역한글 골1:15)
6 피조물인가? 창조물인가?
개역 개정이 ‘피조물’로 번역한 헬라어 ‘크티시스’는 최초의 창조를 의미한다. 그리고 같은 단어를 킹 제임스 성경은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로서 ‘창조물’이라고 번역했다. 그럼 창조물과 피조물은 같은 뜻인가? ‘창조물’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우주만물’을 일컫는 말이다. 즉 없던 것을 처음으로 있게 한 것이 창조이다. 그러나 ‘피조물’이라는 단어는 ‘만들다, 짓다, 이루다’의 의미로 창조의 의미가 없다. 만든 것을 창조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즉 창조물과 피조물은 엄격히 말하면 다른 단어이다. 그러므로 '피조물'보다는 ‘창조물’이 ‘creation’으로 창조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올바른 번역이라 할 수 있다. 놀라운 것은 네이버 사전에서 '특이하게도 창조물이라는 단어가 개역개정 성경에서 사라졌다‘라고 나온다! 모두 창조의 의미가 없는 ‘피조물’이라고 바꿔 번역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나온 성경에 창조의 뜻을 가진 단어가 사라진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다! 물론 지금은 피조물을 창조물과 같은 단어라고 설명하지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았다.
7 예슈아는 하나님의 형상이시다.
예슈아는 하나님의 광채시고 본체의 형상이시다. 여기서 ‘형상’이라는 말은 ‘여호와의 모습을 닮은 분’ 영어로는 ‘image’ 이다. 사과 이미지가 사과는 아니다. 그저 사과를 떠올리게 하는 이미지일 뿐이다. 우상의 형상이 신 자체는 아니다. 그것은 특정 신을 나타내는 형상일 뿐이다. 다시 말해 예슈아께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여호와의 이미지를 가지셨다는 뜻이지 여호와 자체라는 뜻이 아니다. 또한 여호와께서 만약 모습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 분이라면 어떻게 그분을 닮은 형상을 가지고 예슈아께서 오실 수 있겠는가? 아버지가 형체가 없는데 어떻게 아들이 아버지를 닮을 수 있겠느냐 말이다. 우리는 아버지를 봐야 아들이 아버지 형상인지 아닌지 아버지를 닮았는지 안닮았는지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 형체가 없는 영이기만 하다면 우린 결코 그분의 형상(닮은 모습, 이미지)을 가질 수 없다.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히1:3)
그러나 만약 여호와께서 모습이 있으시지만, 우리가 죄인이라서 볼 수 없다면 예슈아께서 그분을 닮으실 수 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골1:15)이라는 말씀으로 어떤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모습 자체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만약 여호와께서 모습이 없고 예슈아만 모습을 가지고 있다면 어떻게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창1:26)라고 복수형을 사용하실 수 있겠는가? 또한 바로 다음 구절에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창1:27)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자기 형상이 곧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자기'는 누구시겠는가? 바로 창조주 여호와시다. 만약 여호와께서 자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너의 형상' 또는 '나의 형상'이라고 쓰고 '우리의 형상'이라고 쓰지 않으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형상대로 예슈아를 창조하셨고 그리고 그분들의 형상대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이다. 결국 모든 시작은 여호와의 형상인 것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1:26,27)
8 여호와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그분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이고 그분의 이름이 우리 이마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계22:4). 요한은 이미 예슈아의 얼굴을 보았다. "예슈아의 머리와 머리털이 양털같이 희고 두 눈은 불꽃같고 입에서 날선 검이 나오며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계2:14). 그러므로 영원한 나라에서 보게 될 얼굴은 여호와 하나님의 모습이다. 왜냐하면 예슈아의 얼굴을 이미 보았는데 굳이 그 날에 그의 얼굴을 볼 것이라는 미래형을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그날에 '다시는 저주가 없다'는 말을 통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죄가 존재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불법이 없는 영원히 거룩한 나라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때 죄성이 존재하지 않는 거룩한 존재들일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하신 여호와를 볼 수 있고 스스로 계신 여호와의 이름이 영원한 존재가 된 우리 이마에 있을 수 있는 것이다(계22:3,4).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계22:3,4)
9 예슈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다.’(빌2:6)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 예슈아의 근본은 하나님의 본체이지만 동등됨을 취하지 않으셨다. 그러면 예슈아께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뜻일까? 여기서 예슈아의 본체인 '하나님'이라는 단어의 원어를 알아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אלוהים엘로힘이다. 엘로힘(하나님)은 세가지 경우에 쓰였다. '여호와'를 대신해서 사용하기도 했고 '신'이나 '신성'을 의미하기도 했고 '다른 신들 즉 우상'을 의미하기도 했다. 심지어 존경받는 지위에 있는 재판장도 '신'이라고 불렀다. 그러므로 말씀에서 '하나님'이 '여호와'를 나타내는지 '신성'을 나타내는지 '우상'을 나타내는지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결코 여호와의 이름이 아니다. '신'이라는 보통 명사이다. 다시 말해 아버지께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님(신)이시고 그분의 아들은 예슈아라는 이름을 가진 하나님(신)이시다. 그리고 다른 신들이나 천사들도 히브리어로는 엘로힘(하나님)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마치 여호와의 이름처럼 생각하면 큰 오해가 생긴다.
오늘날까지도 유대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그저 ‘엘로힘’(신,하나님) 또는 ‘아도나이’(주,주인)라고 부른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고 말씀하셨고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반드시 죽이라는 토라를 알고 그분을 경외하기 때문이다(출20:7 레24:16).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출20:7)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돌로 그를 칠 것이니라 거류민이든지 본토인이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하면 그를 죽일지니라 (레24:16)
사도 시대에도 여호와를 하나님이라고 불렀고 예슈아의 신성(하나님됨)을 의미하거나 천사들, 우상들도 모두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다보니 사도들이 부르는 '하나님'이 '여호와'이신지 '예슈아의 신성'인지 헷갈리는 것이다. 이처럼 예슈아는 신성(하나님)을 가지셨지만 사람으로 오셨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일 뿐이다. 물론 죽으면 천사와 같이 신성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예슈아께서는 태초부터 신성을 가지진 하나님의 아들, 창조의 시작, 으뜸 창조물이시다. 이처럼 예슈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로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지만 스스로 종의 형체를 가진 사람이 되셔서 자신을 겸손히 낮추어 아버지께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그러므로 모든 이름보다 뛰어난 이름을 얻으셨고 모든 입으로 여호와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만드셨다(빌2:6-11).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2:6-11)
샤밧 예배: 토요일 11시
대전시 동구 가양동 39-11 2층 레올람 토라 하우스
깃발 재작 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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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레올람토라 #미라클조 #하나님의형상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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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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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한 밤 되세요
샬롬 🇮🇱 🕎😃
예수그리스도는 피조물이 아니고 "스스로 있는자" 입니다.
그러면 여호와는요?
@자유하라 여호와라는 칭호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의 공동칭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