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와논점 1021호-20150625)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 이후의 의회절차: 미국의 사례.pdf
1. 들어가며
행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의 시정요구권을 내용으로 하는 「국회법」 개정안(의안번호 1915336)이 2015년 5월 29일 국회에서 의결되어 정부에 이송되어 있는 상태이다. 대통령의 거부권행사로 해당 법안이 국회로 환부되어 올 경우에 국회가 취할 수 있는 절차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이 글은 대통령제 정부형태를 대표하는 미국에서 대통령이 법안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해당 안건의 처리와 관련된 의회절차를 살펴보고, 그 의미를 검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미국 대통령은 헌법 제1장제7조제2항에 따라 연방의회가 의결한 법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는다. 법안이 상·하 양원을 통과하여 대통령에게 송부되면, 대통령은 10일 이내에 이에 서명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의회가 회기 중일 경우 대통령이 10일 이내에 법안에 서명하지도, 거부권을 행사하지도 않는다면 해당 법안은 대통령의 서명 없이도 법률로 확정된다. 그러나 의회가 휴회(adjourn) 중이어서 법안의 의회송부가 불가능할 경우에는 10일 이내에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으면, 해당법안은 유보거부(pocket veto)로 사장됭다. 일반거부(regular veto)와 달리 유보거부의 경우에는 의회가 해당법안을 재의결할 기회는 없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이하 비토법안)은 애초에 발의된 원(院)으로 대통령의이의서(veto message; 대통령이 왜 해당 법안에 사인하지 않았는지를 상세히 기록한 사유서)와 함께 송부된다.
2. 하원의 절차
비토법안이 하원으로 환부되어 오면, 하원은 해당 법안을 재의결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해당 법안에 대한 토론에는 시간제한이 있으며, 소관위원회 위원에게 토론시간이 배정된다. 하원 과반수의 의결로 해당 법안에 대한 심의를 끝낼 수 있다. 비토법안을 재의결하기 위해서는 의사정족수(218인)가 충족된 가운데 재석의원 3분의 2의 찬성이 필요하다.
(1) 비토법안에 대한 재심의 시작
비토법안과 대통령의 이의서가 의회에 접수되면, 하원의장은 대통령의 이의서를 하원에 상정하여 낭독하고, 의사록(House Journal)에 게재한다. 이때 비토법안에 대한 하원의원의 재심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만약 이의서 낭독 이후 발언을 원하는 의
원이 없다면 하원의장은 비토법안의 재심의를 의사일정에 상정할 수 있다.
비토법안이 하원에 송부되면 즉시 하원 본회의에서 재심의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하원은 우선동의(preferential motions)나 만장일치동의를 통해서 재심의를 특정일로 연기하거나, 비토법안을 소관 위원회로 회부할 수 있다. 재심의 연기나 소관위 회부를 내용으로
하는 동의안에 대한 토론은 1시간 규칙의 적용을 받는다. 또한 하원은 비토법안 상정을 위해서 토론이 허용되지 않는 동의안을 제출할 수도 있다. 비토법안에 대한 수정은 본회의와 위원회에서 모두 허용되지 않는다.
(2) 비토법안에 대한 토론
비토법안의 재심의 의제에 대한 토론은 1시간규칙의 적용을 받는다. 관례상 하원의장은 해당 법안의 소관위원회 위원장에게 1시간 토론을 주재하도록 하고, 위원장은 다시 이 중 30분을 소수당 간사(ranking minority)에게 양보한다. 이 시간은 토론의 목적으로만 사용해야 한다. 비토법안의 소관위원회 위원장과 간사는 발언을 원하는 의원들에게 발언시간을 배정하는 본회의 간사(floor manager) 역할을 한다.
(3) 하원 본회의 표결
비토법안에 대한 본회의 표결에서 재석의원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해당법안은 재의결되어 법률로 확정된다. 연방헌법은 재의
결을 위한 표결을 찬반투표(yeas and nays)로 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현대적 의미에서 이는 전자표결을 통한 기록표결을 의미한다. 다른 안건에 대한 표결과 달리, 비토법안의 재의결을 위한 표결은 의사일정에 재차 상정될 수 없다.
비토법안이 하원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지 못해서 재의결에 실패하면, 하원은 상원에 이 사실을 알리고, 통상 해당 법안과 대통령의 이의서를 하원 소관위원회에 회부한다. 반면, 비토법안이 하원에서 재의결되면, 하원은 이를 상원으로 송부한다. 이 법안이 상원에서도 재의결되면 해당 법안은 법률로 확정된다.
3. 상원의 절차
상원이 비토법안을 재심의할 경우, 통상적으로 상원은 만장일치동의(unanimous consentagreement)4)하에 대통령의 이의서를 읽고,의회의사록에 게재하며, 상원의사록(SenateJournal)에 기록한다. 또한 상원의원들은 만장 일치동의에 의해서 해당법안에 대한 토론시간을 제한할 것을 의결한다. 비토법안이 대통령이나 하원으로부터 송부되면, 상원은 바로 재심의에 착수하는 것이 아니라, 재심의에 대한 만장일치동의가 이루어질 때까지 수 일간 “보류되는 것(held atthe desk”이 일반적이다. 재의결을 위한 표결은 기록표결이어야 하며, 재석의원 3분의 2이상의 상원의원의 찬성을 필요로 한다.
(1) 비토법안에 대한 재심의 시작
상원에서 비토법안이 만장일치동의에서 정한 조건 하에 재심의된다고 해서 비토법안의 재심의가 상원의원 전원의 지지를 반드시 보
장받는 것은 아니다. 대통령의 이의서 접수를 보류해야 한다는 합의가 없으면 상원에 접수된 대통령의 이의서가 상원의사록에 등재된다. 그런데 토론이 허용되는 다른 동의안(debatable motions)이 심의 중일 경우 대통령의 이의서를 즉각 심의하기가 어렵다.5) 이 경우 상원은 이의서를 소관위원회에 회부하거나 특정일로 심의를 연기한다. 또 다른 방안은 다수당 원내대표가 대통령 이의서의 즉각적 심의를 내용으로 하는 토론불허동의(nondebatable motion)를 제안해서 상원의원 전원 또는 과반수의 찬성을 통해서 비토 법안의 재의결 안건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것이다.
비토법안의 재의결 안건이 상원 본회의에 회부되면, 의사일정에 상정될 수도 있고 무기한 연기될 수도 있다. 무기한 연기는 곧 해당
안건에 대한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2) 비토법안에 대한 토론
비토법안의 재의결 안건은 상원의 일반적인 의사규칙 하에서 토론가능하다. 즉, 해당 안건은 상원의원이 토론하기를 원하는 한 계속해서 토론(filibuster)이 가능하다. 다만 만장일치 동의나 토론종결동의(cloture)가 있을 경우에 재의결 안건에 대한 토론은 제한된다. 토론종결 동의에 따라 토론을 끝내기 위해서는 상원 재적의원 5분의 3(상원에 결원이 없을경우 60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그러나 비토법안에 대한 토론을 끝내기 위해서 토론종결동의가 이용되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토론을 종결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의원 수(60인)는 비토법안을 재의결하기 위해서 필요한 의원 수(67인)보다 적다.
(3) 상원 본회의 표결
상원이 비토법안을 재의결하기 위해서는 의사정족수(51인)의 3분의 2 이상 상원의원의찬성이 필요하다. 헌법의 규정에 따라 하원과
마찬가지로 표결방식은 구두표결이 아니라 반드시 기록표결이어야 한다. 상원이 비토법안의 재의결에 실패할 경우, 비토법안 표결에
대한 재심의동의를 제출할 수 있다. 상원이 상원에서 발의된 법안의 재의결에 실패할 경우, 해당 안건은 하원으로 송부될 수 없다. 상원은 단지 해당 안건의 재의결이 부결되었음을 하원에 알리기만 한다.
상원에서 발의된 법안이 재의결된다면, 해당안건과 대통령의 이의서는 하원으로 송부되어서 하원의 재심의를 받게 된다.
4. 비토법안에 대한 의회의 재의결 현황
미국 제헌의회 이래 현재까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사례는 총 2,566건이다.
비토법안을 재의결한 경우는 110건에 불과해서, 제헌의회 이래로 비토법안의 재의결율은 4.3%이다. 반면 세출법안의 경우 제헌의회 이래 총 83건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였고, 이 중 12건을 의회가 재의결하여 14.5%의 높은 재의결율을 보인다.
[표 1]에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이후로 대통령 거부권의 재의결 현황이 나타나 있다.
네 대통령의 재임기간동안 비토법안의 재의결 비율은 11.5%로, 제헌의회 이래 전체 재의결비율과 비교할 때 2배 이상 높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이래 총 4건의 거부권을 행사하였는데, 이 중에 의회가 재의결한 안건은 1건도 없는 반면, 조지 부시 대통령의 경우에는 재의결 비율이 33%에 이른다. 전체적으로 비토법안의 재의결 비율이 낮은 이유는 의회로 환부되어 온 법안을 의회가 재의결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의회가 재의결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정당지도부 차원에서 재의결 성공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거나 정치적 여건이 재의결 성공에 우호적이지 않을 경
우, 앞에서 살펴본 절차들을 통해서 의회는비토법안의 재의결을 포기할 수 있다.
5. 나가며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은 의회의 입법권에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정치적수단이다. 대통령은 거부권을 반드시 행사하
지 않더라도 거부권 행사의 위협만으로도 의회가 법안의 내용을 수정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소속정당이 의회에서 소수당인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 상황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은 자신의 정책의제를 추진하는데 유용한 수단이 된다. 예를 들어 총선이 다가오면 대통령은 자신의 정책과 반대당 정책간의 차별성을 강조함으로써 유권자의 신뢰를 얻기 위해서 반대당이 집권하고 있는 의회에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한다. 미국 연방헌법은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양원에서 ‘재심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재심의의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규정하고 있지 않다. 연방의회의 의사절차와 선례(전통)에 따르면, 재심의는 대통령의 이의서를 양원 의사록에 게재한 이후에 아무런 추가조처를 취하지 않거나, 소관 위원회에 회부하거나, 특정일로 심의를 연기하거나, 재의결 표결에 부치는 것을 모두 포함한다.
결국 양원에서 모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에 대한 재심의는 우선권을 갖지만, 반드시 본회의 표결에 회부되는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비토법안이 의회에 환부된 이후의 절차는 헌법의 테두리 내에서 전적으로 의회의 결정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