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야니는 그의 머리속에서 음악이 들렸고 그것을 피아노로 연주해서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주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그는 음악의 확실한 자유를 위해서 기존의 음악 교육 방식을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음악만이 야니의 유일한 재능은 아니었다. 1969년 14살때 야니는 남자 50미터 자유형 수영경기에서 국가 신기록을 수립했다. 수영선수의 길을 갈 수 있었지만 다른 길을 가기로 했다. 그것은 야니의 음악적 선물을 세계와 함께 나누는 길이었다.
그리스에서의 어린시절과 국가와 고향에 대한 야니의 사랑은 산토리니(Santorini), 노스텔지아(Nostalgia), 아크로얄리(Acroyali)와 같은 음악을 작곡하는데 영감을 주었다. 1972년 부모님의 격려를 받으며 야니는 고향을 떠나 미국에 있는 미네소타(Minnesota) 대학을 다니게 된다. 그 당시 지역의 락앤롤 밴드에서 연주를 했으며 피아노와신디사이저를 이용함으로써 창조되는 새로운 사운드를 통해 그의 음악적 스타일을 발전시켜 나갔다.
새로운 문화와 환경 그리고 언어에도 불구하고 야니는 1976년 미네소타(Minnesota) 대학에서 심리학 학사로 졸업을 하게된다. 졸업 후 그는 일년동안 그의 모든 것을 음악에 전념하게 되며 이 시기에 음악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기게 된다. 야니는 "카멜레온" 락앤롤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했고 이제 야니는 자신의 미래가 음악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다사이저를 통한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작곡을 시작하게 된다.
"Optimystique"는 그의 첫번째 솔로 앨범이며 1980년도에 발매되었다. 야니는 일념으로 음악을 작곡하는데 정열을 불태웠다. 전세계의 전자음악, 새로운 사운드와 악기를 연구하며 작곡했다. 이 시기가 야니에게는 매우 생산적이며 바쁜 때였다. 1990년 야니의 콘서트에 달라스(Dallas)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협연했으며, 그의 독특한 스타일에 새로운 차원을 더하게 되었고 새로운 서곡이 열렸다.
그는 피아니스이며 작곡가이자 신디사이저 연주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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