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도서관에서 매 주 수요일에 실시하는 문학강좌에서는
단임골에 사는 소설가 강기희씨가 강사를 맡아
수업이 끝날 시간이 되면 다음 주에 가져오는 숙제를 준다.
첫 주엔 누구라도 글을 보고 집으로 찾아 갈 수 있도록 써보라 하였고
다음 주엔 한 인생의 연대기를 써오라 한다.
그리고는 그 글을 놓고 잘 된 점과 미흡한 점을 일목요연하게 평해주니
아둔한 머리로도 이해할 수 있어 좋은 일이다.
아래 글은 숙제로 써서 제출한 글이니...
집으로 가는 길
동서울터미널엔 유월의 화창한 날을 맞아 산으로 들로 나가는 이들로 붐빈다.
정선행버스는 1번 승강장에 있다 하나 강릉이나 속초행버스에 밀려
뒷쪽으로 가야 찾을 수 있고,
그 많은 인파는 어디로 가는지 출발시간을 앞둔 버스는 한산하여
너른 창을 골라 편안하게 앉아가는 호사 아닌 호사를 누린다.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달리는 버스의 창 밖으로는 초여름의 녹음이 온 산에 가득하고
모내기도 모두 끝나 논에는 푸르름이 짙어지고
영동고속도로에 들어서니 차량은 더욱 한산하여 거침없이 달리는데
여주지나 멀리 치악산 봉우리가 옅은 구름 속에 아스라하다.
문막 새말을 지나 산은 높아지고 골은 깊어지며
아름드리 소나무의 군락으로 보아 강원 땅이 예로구나 알 수 있고
횡성휴게소에서 맡는 바람은 서울의 바람과는 달리
풀냄새도 들어있고 솔향기도 풍겨온다.
봉평 평창이 갈라지는 작은 마을 장평을 들어서니 영동고속도로는 끝이라
대화를 바라고 내륙으로 들어서니
길 가의 밭이나 멀리 산 속의 밭이나 그저 보이느니 옥수수 감자라
옥수수는 두어 자나 되게 자랐고 감자는 하얀 꽃이 많이도 피었다.
대화 평창지나 미탄으로 들어서니 물은 맑고 산은 깊어
보이는 매 순간이 한 폭의 그림이고
인가 또한 드무니 인적이란 찾을 수가 없다.
장엄한 높은 뼝대와 휘돌아 흐르는 조양강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광하마을을 지난 버스는
푸르른 소나무가 가득한 솔치재를 넘는다.
한 도시의 입구에 이토록 깨끗한 소나무의 군락이 있다는 것은 정선의 행운이라
이 소나무숲이 있어 정선을 찾는지 모를 일이다.
이윽고 도착한 정선터미널은 그저 그런 작은 시골의 버스정류장이지만
사방이 산으로 둘러쌓여 마치 항아리 속에 들은 듯 하니
하늘은 항아리 속에서 바라보는 둥근 모습이라,
봉화 땅 어느 작은 마을이 땅도 세 평 하늘도 세 평이라 하더니
정선도 이와 같아 올려다보는 하늘은 크지 않다.
여량가는 길목의 북평초등학교 운동장 옆이 집이라
여량행 버스를 타고 초등학교 정문에 내리면 솔밭 속에 집이 바로 보이나
여량가는 버스시간은 많이도 남았는데
나전을 거쳐 진부가는 버스는 이내 떠난다 하여
북평터미널이라 부르는 나전에서 집이 있는 초등학교는 걸어 십 분밖에 걸리지 않으매
진부행버스를 탄다.
정선읍내를 가로질러 오일장이 열리는 시장을 지나 버스는
이내 푸른 물이 유유한 조양강을 따라 오른다.
반점재 정상에선 발 밑으로 문곡가는 길이 강과 더불어 구불거리고
강을 따라 깍아지른 절벽은 백두대간으로 이어진다.
반점재를 내려서니 강과 더불어 평지는 넓어 여량까지 이어지는 평야라
강원 땅에서는 보기 드문 논이 많아 곡식이 남는다 하여 餘糧이라 하겠다.
그 옛날 탄광이 번성하던 시절의 나전엔 탄광사택들이 줄지어 있었고
그 때의 사택들은 이제는 허물어지고 많이도 없어졌으나
아직도 동네 한 귀퉁이에 그 때의 홋수가 숫자로 적힌 낡은 집들을 본다.
길 옆의 집들은 오륙십년 대의 모습으로 지붕을 가린 높다란 담에
하나 밖에 없는 약방이며 방앗간 철물점 등 이런저런 간판들이 붙어있다.
작은 버스정류장 북평터미널은 꼬마기차가 하루 두 번 오르고내리는 철길 옆에 있어
터미널에서 올려다보면 역원없는 나전역이 보인다.
철로가 지나는 굴다리를 지나 이내 오른쪽 작은 길로 들어서면
아우라지 강물을 끌어대는 농수로를 만나니 맑은 물은 언제나 세차게 흐르고
이 물을 받아 어린 모가 튼실하게 자라는 논이 양 옆으로 펼쳐지며,
울긋불긋 간판이 이쁜 식당 라선옥을 지나 길은 작은 절을 앞에 두니
절의 돌탑은 한낮의 뜨거운 햇살에 깊은 잠에 들었다.
절을 지나 두어 집 앞의 계단을 오르면 강릉가는 국도를 만나니
인도와 차도는 잘 분리되어 걷기는 수월하나
차량은 쏜살같이 달려 한적함은 사라진다.
길 밑으로 또 두어 집을 지나면 묵은 밭 속에 어슴프레 옛날의 집 모습이 나타나니
탄광 시절의 선술집이라 아직도 윤곽을 알 수 있고
또 길 밑으로 작은 동네치고는 커다란 지붕이 있으니 어느 공장이라
이 공장을 지나면 소나무숲이 있고 북평초등학교가 있다.
초등학교 입간판을 이십 메터쯤 앞두고 들어서는 소롯길은 울창한 소나무숲 속이라
오십보 쯤 걸으면 왼 편으로는 빨간 우체통이 반기고
오른 편으로는 둥근 외등이 마주 선 소나무숲 속의 작은 통나무집으로
마당엔 누렁이와 하얀 진도견 두 마리가 집을 지키며
나무그늘이 미치지 않는 집 오른 편의 작은 텃밭에는 옥수수가 많기도 하고
감자는 하얀 꽃을 피웠다.
그리고 집 뒤로는 초등학교 운동장이 맞닿았다.
첫댓글 실제지도위를 시간의 흐름과 시야에 들어오는 풍경묘사를 점철시켜나가는 글쓰기 공부법이 있었군요. 그 고장 그 마을을 한번도 가본적 없더라도 들어 본 적있으면 그곳의 상징성을 기대하게 되는것 같아요.(저는 순전히 그저 읽어보는 여행자로써...)잘 보고 갑니다. 수고하세요.
잘 보셨다니 감사드립니다.
약간 상상을 하면서 찿으면 나그네집을 찿을 수 있겠군요......ㅎㅎ.....누구라도 반길 것 같은 나그네님의 마음을 읽을수 있어 좋았습니다......
일교차가 큰 날씨에 감기 조심하세요~
오늘도 덕분에 잘 머물며 하루를 시작 하네요.
건강 하시고 기쁜날 되세요.
감사 합니다.
님께서도 좋은 날 되세요~
마음이 맑아지는 글 입니다 즐감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세요~
항상 가꾸어 나가는 생활들이 글을 읽는 제가 더 감사하게 느껴집니다^^
언제나 격려의 말씀주시어 감사드립니다.
잘 읽고 갑니다
역시 감사드립니다.
무심히 다니던 길이 글로 표현하니 작품이되었네요~
자세하게 주변의 이야기가 첫길이라도 찾아갈 수있네요 ~
작품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많이 부족한 듯...
길안내를 이토록 쉽게 묘사해서 설명해주니 아무리 모르는 사람도 눈으로는 찾아갈수 있겠습니다.
요즘은 네비게이션으로 쉽게 길을 찾다보니 창밖의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다니지요.
더러는 편안하게 버스로 바깥구경하며 지나치는 풍경을 눈으로 마음으로 감상하며
길을 나서는것도 사색의 시간이 되는것 같습니다.
늘 아름다운 글을 선사해주니 감사한 마음이네요..... 평화가 깃든 정선마을을 상상해봅니다.
네비를 쓰는 분들의 공통점은 한번 간 길도 못 찾겠다 하더군요. ㅎ
길안내를 작가님의 느낌과 더불어 섬세하게 표현 하셨네요,
아직 작가라는 호칭은 이른 듯 합니다.ㅎ
이 글을 프린트해서 찾아 갈까요???ㅎㅎㅎ
그러면 정선님표 감성 네비게이션...ㅎ
프린트 안 해도 될거 같은디...ㅎ
이렇게 선상님께 숙제를 제출하니~~~ 선상님 화들짝 놀라셨겠네여...ㅎㅎ
지두 신선님 코드를 닮으려 하는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ㅋㅋ
웬걸요, 어디가 잘못되었네 어디가 이상하네 많은 지적을 받았다는...ㅎ
일주일에 두번씩 눈이 불편하신분 길안내를 하며, 같은길을 걷는데 불어오는 바람에도, 길가에 피어있는 꽃한포기에도 다른모습이있기에 어떤마음으로 다가가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정감이 묻어있는 멋진길을 따라가봅니다.
매일 걷는 길도 날마다 다른 느낌이 들지요. 마음에 따라...
아름다운 정선에 언제한번 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길안내를 자세하게 안내해주셔서 쉽게 찾아갈수가 있겠네요.
다음에 갈일 있을때 이글을 찾아서 적어가면 되겠습니다.......그런데 만천하에 길안내를 상세하게 하셔서
많은 분들이 찾아가겠습니다.. 기왕이면 이쁜아짐들을 좋아하신다 하셨으니
이쁜분들이 모두 찾아가면 나그네님의 심기를 흔들어 놓는건 아닌지요? ㅎㅎ 신선에서 탈락할지도..
그렇게 되나요? ㅎㅎ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래도 안 올 사람은 안 와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