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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대덕구 일대는 조선시대의 회덕현 지역인데, 회덕현은 사방이 30리에 이르지 못할 만큼 작은 고을이었지만 은진 송씨 후손인 우암 송시열을 비롯한 수많은 고관대작을 배출한 고을로서 회덕 송씨라고 할 만큼 송씨들이 번창했었다.
각 고을마다 중심으로 삼는 회덕현의 진산은 계족산(鷄足山; 423m)인데, 계족산은 산세가 마치 항아리 같다고 해서 삼국시대에는 ‘옹산(甕山)’이라고 부르다가 신라의 삼국통일 이후 산줄기가 닭의 발과 비슷하게 갈라졌다고 해서 계족산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계족산이란 지명은 고려사, 조선 세종실록 지리지 회덕현조에도 기록되어 있으나, 원래는 봉황산(鳳凰山)이라고 부르던 것을 봉황산 밑에 은진 송씨가 정착한 후 과거급제자가 많이 나오자 이것을 시기한 사람들이 봉황산을 격하시켜서 계족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도 하고, 지금의 회덕 일대인 송촌에 지네가 들끓자 닭을 상징화하여 지네를 없애기 위해서 붙인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전해오는 이야기는 가뭄이 심할 때 이 산이 울면 비가 온다고 해서 '비수리' 또는 '백달산'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는데, 대전시의 영역이 크게 넓혀진 지금 동구와 대덕구에 걸쳐서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계족산은 닭의 발 중 정강이 부분은 동구에 걸쳐 있고, 발 부분은 대덕구에 걸쳐있는 셈이다. 산 정상에는 팔각정인 봉황정이 있고, 건너편 금강호 쪽 능선에는 백제시대에 쌓은 계족산성이 있다(2013.01.09. 대전, 산성의 나라 백제의 전시장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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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에서 본 대청댐(왼쪽)과 황톳길 모습. |
계족산 동쪽은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나, 대청댐 건설로 추동~효평동~이현동~무수동 일대가 수몰되어 버렸다. 서쪽의 비래동, 가양동, 송촌동, 읍내동 일대는 대도시로 성장한 한밭 대전에 편승해서 크게 발전했지만, 북쪽 계곡인 장동 일대는 개발제한구역으로 묶여서 옛 모습 그대로이다.
예부터 골짜기가 좁고 깊어서 긴 골짜기마을(長洞)이라는 지명을 갖게 된 장동은 용호동, 하용호에 이르는 일대를 12산디라고도 하는데, ‘산디’란 산 뒤 즉, 계족산 뒤에 있는 마을이라는 사투리이다. 특히 산디 중 징골(진골)·욕골·새골(색골)·터골(턱골)·새뜸·산디 등 여섯 산디 중에서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산디마을은 계단식으로 한층 한층 올라가면서 집들이 벌집처럼 붙어 있다고 해서 ‘벌 터’라고도 하는데, 마을입구 탑거리에는 옥천 전씨 세거지를 알리는 ‘애각’과 ‘옥천전공종한조림불망비’가 있다.
매년 음력 10월 추수가 끝나면 산신제를 올리는 등 민속이 잘 보존되어 있는 장동 일대는 아이러니컬하게도 1959년부터 1991년까지 30년 이상 미군 미사일부대인 CAMP AMES가 주둔하면서 미군을 상대로 한 술집, 음식점, 숙박업소 등 이른바 기지촌으로 제법 흥청대기도 했으나, 미군이 철수한 이후에도 육군 탄약지원사령부와 제1탄약창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여전히 개발은 제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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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족산 맨발 마사지코스. |
1989년 대전시로 흡수된 계족산 일대는 시민들의 레저를 위한 산책로, 휴양림, 등산코스 등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했는데, 특히 1995년 6월 울창한 숲속에 장동산림욕장이 개장되었다.
장동산림욕장은 체육모험 놀이시설 20여 종, 물놀이장, 잔디광장, 숲속 문고 이외에 계절별로 꽃을 관찰할 수 있도록 20여 종의 야생화, 산벚나무 등을 심어서 각종 공연과 문화체험행사를 열고 있지만, 숙박시설은 없다. 다만, 계족산성까지 약2.2km의 등산코스가 학교, 직장 등에서 극기 훈련, 단체 산행연수 등으로 많이 이용되고 있으나, 실질적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는 이익은 거의 없다.
그런 장동휴양림이 근래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2006년 모 소주 제조회사에서 계족산의 산불방지와 간벌작업 등에 필요한 임도 40㎞중 약14.5㎞ 구간에 산길의 절반을 황토로 깔아서 맨발로 걸을 수 있게 한 이후부터인데, 계족산성을 한 바퀴 돌아서 장동산림욕장으로 돌아오는 황톳길은 도시의 오염과 인공적인 생활환경에 지친 시민들에게 큰 인기여서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새벽부터 줄을 잇고 있다.
사실 허준이 저술한 동의보감(東醫寶鑑)에도 황토는 성질이 평이하고 독이 없고 부작용이 없으며, 약리적으로도 이질·설사를 멈추게 하여 설사 전에 배가 꼬일 듯이 복통이 있으면 황토를 사용하고, 또 약물중독이나 독버섯, 고기 먹고 탈이 난 경우에 아주 효과가 있다고 한다.
또, 노란색은 5행 중 토(土), 즉 흙에 속하며, 삼라만상 중 한 가운데를 뜻한다고 하는데, 콘크리트 숲 생활에 익숙해진 현대인들이 자연림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맨발로 흙길을 거닐면서 향수와 더불어 황토가 안겨주는 힐링 효과에 매혹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어른들은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면서 어렸을 적 시골에서 뛰놀던 추억을 회상하고, 어린이들은 체험해보지 못한 미지의 경험을, 그리고 현대문물에 찌든 외국인들에게는 잠시나마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을 갖게 함으로서 보령 대천해수욕장의 머드 축제와 같은 매력을 갖게 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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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계족산성, 계족산 조형물 모습, 장동산림욕장. |
계족산 황톳길축제는 2006년부터 맨발 마사이마라톤대회라는 이색행사를 벌이면서 국내는 물론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찾는 ‘지구촌 유일의 맨발축제’로 발전했는데, 2007년부터는 봄부터 가을까지 산속 음악회를 여는 등 장동산림욕장과 함께 3대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문화공연과 체험행사를 벌이고 있다.
2009년 한국관광공사에서 ‘5월에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선정되기도 했는데, 올해도 지난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 동안 계족산 맨발축제가 열렸다.
황톳길 축제는 에코힐링을 주제로 사람(맨발 체험)과 자연(숲속 황톳길), 문학(북 콘서트), 문화예술(공연·전시)이 어우러지는 문화예술제로서 첫날에는 참가자들이 계족산 황톳길을 맨발로 걸으면서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솔방울, 폐목 등으로 자신만의 예술작품을 만들어 전시할 수 있는 체험을 하고, 둘째 날에는 황톳길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마사이마라톤이 열려, 황톳길 7㎞를 맨발로 걷는 맨발걷기와 13㎞를 달리는 마사이마라톤으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대전시에서는 ‘맨발축제’를 대전의 우수축제로 선정하여 더욱 널리 확대하기로 했지만, 평소 계족산 등산로와 관리 상태는 방임한다고 할 정도로 한심해서 등산코스와 임도를 확장한 황톳길을 구분한 안내지도가 너무 형식적이고, 또 둘레산길 이정표와 등산로 거리숫자를 알려주는 안내판도 헷갈려서 차라리 없애느니만 못하다는 비판이 많다.
또, 장동에서 절 고개까지 산불진화를 위한 임도의 절반가량을 황톳길로 만들어서 매년 맨발 걷기대회를 열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자연보호가 아니라, 산을 파헤친 환경파괴라며 비판하는 시민들도 적지 않은데, 명칭도 계족산 황토맨발숲길, 계족산맨발황톳길, 계족산맨발공원, 계족산공원 에코힐링맨발코스 등 통일되지 않고 혼란스럽다고 한다.
대전시와 스폰서 회사에서는 계족산 숲속 황톳길이 국내 어느 곳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자연이 주는 건강을 경험할 수없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자랑하지만, 고작 등산로 한쪽에 황토를 깔아놓은 황톳길은 행사 후에는 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것은 물론 비나 눈이 내리면 질퍽거리기 일쑤이고, 바닥도 롤러 같은 것으로 잘 다듬지 않아서 불편한 점도 적지 않다.
첫댓글 회장님! 안녕하셨습니까? 계절의 여왕 5월의 입니다, 햇볕이 따사로운 스승의 날입니다.
정년퇴임후 10년이 지난 오늘 간간히 들려 오는 사랑스런 제자들의 목소리에 눈시울이 젖습니다.
아마도 늙음의 징표 인듯합니다.
어제는 대구. 경북 실버넷뉴스 기자 13명이 주위 고적을 찾아 다니며 공동 취재를 하였답니다.
매우 보람이 있는 날을 보냈습니다
오늘도 즐거움 가득하시고 행 복 하십시오~~~
안녕하세요?
이젠 봄날씨가 아니라 여름날씨입니다. 제도 출장다닐때에는 간간히 에어컨을 켜는데, 긴소매서츠가 더워서 반소매를 입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근래 필명으로 글을 올리시는 분들의 실명을 알지 못해서 답글 달기가 망설여집니다. 예명 옆에 실명을 병기해주면 좋을텐데. 너무 개성을 강조하시는 분들 같아서 부담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