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2416653C5350BE1D1A)
2014.04.19(토) 삼일등산회 영천시 자양댐 주변 문화재 탐방
1.영천임고서원(臨皐書院)/대구에서 37kM, 49분 소요.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항리 462. 시도기념물 제62호 기타 다수 문화재. 포은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다. 정몽주(1337∼1392)는 공민왕 9년(1360)에 과거에 급제하여 지금의 국무총리격인 정승 자리에까지 오른 문신이다. 왜구 토벌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당시 긴장상태에 있던 명나라에 건너가 뛰어난 외교술을 발휘하기도 했다. 성리학에 뛰어나 동방이학의 시조로 불리며 시와 글, 그림에도 탁월했다. 특히 시조 단심가는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다는 그의 충절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유명하다. 기울어가는 국운을 걱정하며 고려를 끝까지 지키려 했지만 이방원(조선 태종)이 살해하였다. 임고서원은 조선 명종 8년(1553)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세웠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에 다시 지었으며, 이 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인조 21년(1643)에는 여헌 장현광을, 영조 3년(1727)에는 지봉 황보인을 추가로 모셨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으나 1965년에 정몽주의 위패만을 모시고 복원하였다. 2012년 5월 성역화사업 준공-주차장, 선죽교, 숭모기념비, 포은유물관 기타.
2. 오천정씨 선원(仙源)마을[navi-함계정사]/임고서원에서 4KM, 9분-아름다운 학산이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도연명의 무릉도원(武陵桃源)에 비교하여 선원(仙源)이라 불렀다는 임고면 선원마을은 2009년도에 농촌진흥청에서 “살고 싶고 가보고 싶은 농촌마을 100”에 선정된 아름다운 마을이다. 마을의 동쪽과 남쪽으로 자호천이 흐르고 선원들의 남쪽 자호천 건너편 들판에 “정, 김, 이” 세 성씨의 3가구가 동네를 형성했는데, 자연부락 명칭은 세각단이라 한다. 선원동 마을의 뒷산 언덕이 고리 모양으로 마을을 감고 있다고 하여 환고(環皐) 또는 대환(大環)이라 하는데, 예로부터 영천 지역에서 살기 좋은 세 곳, “자천(慈川), 환고(環皐), 평호(坪湖)” 중에 속한다. 이 마을에는 국가지정문화재인 연정고택(蓮亭古宅, 정용준가옥, 중요민속문화재 107호)과 지방문화재인 함계정사(涵溪精舍, 문화재자료 230호)가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고 격조 있는 고택들이 즐비하니 살고 싶고 가보고 싶고‘ 꼭 한 번 걸어보기를 권하고 싶은 마을이다. 이 마을의 기타 주요 문화재는 연정(蓮亭), 동연정(東淵亭), 경궤정(경궤정), 학파정(학파정), 송원재(松源齋), 환구세덕사(環丘世德祠), 선정사(仙定寺)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 등
3. 영천시 자양면(紫陽面) 성곡리(城谷里) 오천정씨 문화재/[navi-오회당/지양면사무소]/선원리에서 10KM, 16분 소요-하천재(夏泉齋, 湖叟 鄭世雅를 추모하는 재실), 강호정(江湖亭, 호수(湖叟) 추모 정자, 경북유형문화재 제71호) 오회공종택(五懷公宗宅. 호수 제4자 鄭守藩이 지은 종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2호), 사의당(四宜堂, 정씨 강학당, 경북 유형문화재 제74호), 오회당(五懷堂.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76호), 하천묘지[(夏泉墓地-정효자 노촌(魯村) 정윤량(鄭允良)이 아버지 정차근(鄭且謹, 宣務郞)의 장례를 위한 효심 전설의 묘지, 호수(湖叟) 정세아(鄭世雅) 묘소와 아들, 노비의 시총(詩塚)]
4. 중식/하천묘지에서 수 백M, 2분-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자양면사무소소재지)-<식당맞편 파출소 마당 주차> 자양식당(054-336-9014/054-331-8014), 붕어매운탕
5. 벽진이씨(碧珍李氏) 생육신 경은(耕隱) 이맹전(李孟專) 용계서원(龍溪書院)/자양면사무소에서 2KM, 7분-영천시 자양면 용산리. 영천에서 국도를 따라 포항 방면으로 4분 쯤 가노라면 왼쪽으로 들어가는 지방도로가 나온다. 이 길로 15분 따라 올라가면 눈앞이 탁 트이는 바다같은 자양댐이 나타난다. 영천시 임고면 삼매 뒷산과 건너편의 산을 연결하여 건설된 이 댐으로 자양면의 6개리가 수몰되었다 한다. 상류에 산업시설이나 민가가 없으므로 물이 맑고 깨끗하기로 유명하다. 어디서 쳐다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고 골짝마다 절경인 자양댐의 초입에서 휘적휘적 구비구비 돌며 가다보면 용산마을 좌측편에 "용계서원(龍溪書院)"의 푯말이 보인다. 벽진이씨 이맹전 선생을 모신 서원이다. 용계서원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이맹전 선생의 학덕과 충의를 추모하기 위하여 정조 6년(1782)에 왕명으로 토곡동(土谷洞)에 건립된 것이다. 이맹전은 세종9년(1427)에 친시문과(親試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子)를 거쳐 정언(正言), 거창현감 등을 역임했다. 수양대군이 어린 단종의 왕위를 탐내자 벼슬을 사퇴하고 선산에 내려가 학문을 닦으며 일생을 보냈다. 후에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이건물은 고종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노항동(魯巷洞)으로 옮겨 서당으로 사용하다가 1976년 7월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하여 현 위치로 옮겨젔다.6. 오천정씨 충효재(忠孝齋)/용계서원에서 6KM, 12분 소요-영천시 자양면 충효리 626. 시도기념물 제81호. 조선 후기 의병대장인 정환직(鄭煥直, 1843∼1907)과 그의 큰아들인 정용기(鄭鏞基, 1862∼1907)의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묘 근처에 세운 재실이다. 정환직은 고종 25년(1888) 의금부 의금도사를 지냈으며 광무 3년(1899) 시찰사, 도찰사겸 도포사를 역임하고 그 뒤 중추원 의관을 지냈다. 그의 아들 용기는 혜민원 총무를 거쳐 민영환 등과 함께 독립회와 만민회에 참여하고 보안회 국채보상운동에 회장으로서 적극 참여하였다. 그러나 광무 9년(1905) 불법적인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정환직은 고종의 밀지를 받고 관직을 사직한 뒤, 그의 아들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영해, 의흥, 청송, 영양 등지에서 왜군과 전투를 벌여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 뒤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는데 회유에도 끝까지 반일의 뜻을 굽히지 않다가 죽음을 당했다. 정용기는 영천수비대와 전투를 벌이다가 아버지와 같은 해 전사하였으며,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에 추서되었다. 이들 두 부자의 애국정신과 효행을 기리기 위해 마을 이름을 충효동으로 바꾸고 1923년 이 재실을 세웠고, 1987년 새로 보수·정화하였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으로 꾸몄으며 정원에는 유허비가 있다.
7. 별빛마을/충효재에서 10kM, 19분 소요-영천시 화북면 정각리는 보현산 남쪽에 자리잡은 산골마을로 보현산 천문대 입구에 있다 하여 최근에는 천문대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정각 (正覺 : 바르게 깨달음)이라는 이름이 말해 주듯이 절골, 삼층석탑 등 불교와 관련한 역사 유적이 분포되어 있는 마을이기도 합니다. 이 마을 보현산천문과학관에서는 해마다 영천시가 ‘별과 꿈, 과학을 내품에’를 주제로 보현산 별빛 축제’를 열고 갖가지 전시ㆍ체험 행사를 한다.
★ 별빛마을에서-대구 대공원역까지 63KM, 1시간 소요, 북영천IC에서 고속도료 진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