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장 男과 女 1 촤르르…… 촤륵……! 맑은 물소리가 들리고 뿌연 수증기가 가득 서린 이곳은 욕실(慾室)이었다. 그것도 은은한 비향(秘香)이 감도는 여인의 욕실, 지금 한 여인이 욕탕에 몸을 담근 채 전신에 물을 뿌리고 있었다. 등 뒤로 넘긴 긴 머리칼은 촉촉히 물기에 젖어 흑단처럼 빛나고 물방울이 송송 맺혀있는 그 살결…… 아! 옥(玉)인들 이보다 더 희고 투명할까? 여인이 앞으로 흘러내린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고개를 젖혔다. 순간, 드러나는 얼굴을 보라. 아아! 이는 분명 신(神)의 걸작품이리라. 단아한 이마 아래 콧날은 오똑하니 매끈한 선(線)을 이루었다. 초승달처럼 가늘게 뻗은 긴 아미 아래로 사람의 마음을 통째로 빨아들일 듯 매혹적인 봉목(鳳目)이 빛나고 있고 깨물면 터질 듯 도톰하고 육감적인 입술은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아! 진정 아름다운 옥용이었다. 하나 그 뿐이면 더 이상 찬탄할 것도 없었다. 그녀의 물 밖으로 드러난 반나(半裸)를 보라! 명공(名工)이 평생을 걸쳐 깎고 다듬은 듯 고혹적인 그 몸매를…… 턱에서 몸으로 흐르는 선은 완벽할 만큼 섬세하고 미려했다. 그 아래, 사내로 하여금 보호 본능을 일으키게 하는 작고 가녀린 어깨, 그리고 크지고 작지도 않게 알맞게 부푼 가슴엔 분홍빛 유실이 부끄러운 듯 숨어있다. 매끄럽고 탄력있는 아랫배 아래는 맑은 물 속에 잠겨 있었다. 하나 흔들리는 물결 속에서 수초(水草)처럼 일렁이는 비림이 모두 내비쳤다. 실로 보는 이로 하여금 숨도 못쉬게 할만큼 뇌쇄적인 모습이었다. …… 챠르르…… 챠륵……! 여인은 연신 맑은 물을 뿌려가며 전신을 닦았다. 이윽고 그녀는 몹시 고혹적인 자태로 물 밖을 나왔다. 희디 흰 한쪽 발을 욕조 밖으로 내미는 순간 벌어진 허벅지의 방초 사이로 여인의 춘궁이 언뜻 보였다. 물기 탓일까? 그녀의 비처는 촉촉히 젖어있었다. 곧 그녀의 몸이 욕조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뜨거운 물에 담겨져서 발갛게 도화빛으로 물든 나신(裸身)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여체야말로 가장 훌륭한 예술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진정 그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여인은 곧 수건으로 전신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욕실을 나왔다. 2 여인의 규방에선 항상 은밀하고도 향긋한 방향(芳香)이 풍긴다. 문득 한쪽에 세워진 동경(銅鏡) 속으로 한 인영의 모습이 환상처럼 떠올랐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전라(全裸)의 여인이었다. 방금 욕실에서 나온 그 미녀였다. (……!) 여인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룬 자신의 나신을 동경을 통해 보았다. 자신이 보아도 아름답고 황홀한 몸이다. 평생 그 누구에게도 보인 적이 없는 몸매였다. 그 수줍고도 황홀한 자태에 그녀는 스스로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아……!) 여인은 내심 야릇한 탄성을 뿜으며 가만히 자신의 가슴을 더듬어 보았다. 작년까지만 해도 느끼지 못한 성숙함을 부풀어 오른 육봉(肉峯)에서 그녀는 느꼈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은 점차 아랫 쪽을 향했다. 풍염한 둔부 아래 물을 차고 오를 듯 매끄럽고 탄력있는 허벅지, 스스로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를 삼각지대…… (……!) 여인은 자신의 몸매에 도취된 듯 스르르 눈을 감았다. 그녀는 대체 누구인가? 헌원경(軒轅慶)! 그렇다! 이 소녀가 바로 헌원륭의 금지옥엽인 헌원경이었다. 또한 그녀는 삼월천에서 으뜸가는 절세미녀이기도 했다. 이때 헌원경은 문득 눈을 뜨며 배시시 고혹적인 미소를 떠올렸다. "단목진이라고 했지……? 훗!" 뭐가 그리 우스운지, 그녀는 웃음속에 천천히 의복을 갖추었다. 진홍빛의 화사한 궁장이었다. 그리고 긴 흑발은 뒤로 틀어 올려 나비 모양의 취옥접(翠玉蝶)으로 꽂았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눈부셨다. 그 누가 보아도 진정 눈이 멀 정도였다. 헌원경은 그런 채로 다시 동경 속에 자신의 모습을 이리 저리 비추어 보았다. 불현듯 그녀의 뇌리 속엔 부친 헌원륭이 한 말이 떠오르고 있었다. -단목진…… 놈의 무공은 예상외로 강하다. 이 아비가 필승의 자신이 없어질 정도다. 비록 견주어 보지는 않았으나 상당히 벅찬 상대임엔 틀림없어. 하나 놈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놈이 여인(女人)이라는 사실이니라. 놈은 아비가 그 사실을 모르는 줄 알고있지. 때문에 아비는 너와 단목진을 혼인시키려는 것이다. 그것을 기화로 놈이 여인임을 밝혀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놈과 이 아비는 아예 싸울 필요조차 없게 되느니라. 경아……! 모든 것을 너에게 맡긴다. "풋!" 헌원경은 또 다시 웃음을 참기 힘든 듯 실소했다. "여인…… 그가 여인이란 말이지?" 생긋! 그녀는 꽃이 만개하듯 활짝 웃었다. "호호호…… 상당히 재미 있겠어. 호호호……" 헌원경은 사뿐히 걸음을 옮겨 규방을 나갔다. 그렇다. 확실히 그것은 재미있는 일이었다. 하나 최소한 헌원경에게만은 절대로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다. 3 어느덧 백리강이 삼월천에 온 지 엿새(六日)가 흘렀다. 그리고 드디어 운명(?)의 날은 닥쳐 왔으니 바로 헌원경과의 혼례날이 된 것이다. 헌원가의 가주인 헌원륭의 만면엔 종일 미소가 떠날 줄 몰랐다. 그는 내심 이번 일이 우습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했다. (만약…… 놈이 여인임이 발각된다면……) 생각만 해도 어깨춤이 절로 추어질 노릇이 아닌가? 그는 이미 헌원경에게 신신당부를 해놓고 있었다. 또한 그는 헌원경의 총명을 믿기에 안심이 되었다. (흐흥…… 제놈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아마 그렇게는 안될 것이다!) 그는 약간 침울해 보이는 단목소의 모습을 보며 내심 득의에 차 있었다. (삼월천…… 내일이면 내 손에 들어온다……!) 마침내 몇몇 사람들이 기다리고 고대(?)하던 화촉동방의 밤이 되었다. 삼월천의 전 고수들은 영문도 모른 채 마냥 기쁨에 들떠 먹고 마시고 즐겼다. 그러는 사이 밤(夜)은 점점 깊어가고 드디어 그 시간(?)이 왔다. 4 붉은 휘장이 드리워진 신방(新房)은 매우 화려했다. 단목가문의 후계자인 단목진과 헌원가문의 금지옥엽인 헌원경의 혼례답게 신방은 최고로 치장되어 있었다. 그윽한 촛불 아래 혼례복을 입고 있는 백리강의 모습은 실로 인중용봉(人中龍鳳)이요,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또한 헌원경은 어떠한가? 이 순간 그녀는 천하의 요조숙녀였다. 화려한 혼례복 차림의 그녀의 모습은 아예 눈이 현란할 지경이었다. (……!) 백리강은 눈이 부심을 느끼며 그녀를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다. 그는 신부가 미처 이 정도의 절세가녀(絶世佳女)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상상외다……! 헌원경 이 소녀의 미모는 결코 주상아나 주여설의 아래가 아니다!) 그는 풋풋한 처녀의 내음새에 정신까지 혼란해짐을 느꼈다. 비록 두 남녀는 모두 서로를 상대키 위해 의도적인 신방을 꾸몄다 하나 들뜨고 야릇한 기분은 여늬 신랑 신부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헌원경, 그녀 역시 야릇한 기분 속에 암암리 백리강을 살피고 있었다. (정말…… 이 사람이 여인이라고는 믿어지지가 않아. 하긴 남자치고는 너무 섬세한 미모를 지닌 듯해서 이상하긴 하지만……) 그녀는 내심 고개를 갸웃했다. (행동이나…… 그밖의 모든 면은 여인 같지가 않으니…… 미리 얘기를 듣지 않았다면 도저히 여인이란 사실을 믿기 힘들었을 거야……!) 눈앞의 상대를 여자로 생각하고 있으니 헌원경 그녀에게 수줍음 따위가 있을 리 없다. 신혼 초야의 긴장은 아예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그녀의 생각은 오직 하나, 상대가 여인임을 빨리 밝혀내고자 하는 마음 뿐이었다. 말이 혼인이지 실상 그녀에게 있어선 관심 밖의 일이었던 것이었다. 지금 그녀의 머리 속엔 부친이 일러준 말이 생생히 떠오르고 있었다. -단목진은 분명 너와 동침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여인임을 밝히고 싶진 않을 테니까. 너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말고 그와 동침하여 그의 진정한 정체를 밝혀야 하느니라……! (풋! 마치 장난같아……) 헌원경은 금시라도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이어 그녀는 한껏 공손한 어조로 수줍은 듯 입을 열었다. "밤이…… 깊었사옵니다. 진랑." 그렇다. 밤은 이미 자시(子時)를 넘기고 있었다. 이맘 때면 으례히 신부의 의관을 벗기고 자리에 들 시간이었다. "험……" 백리강은 짐짓 어색하게 헛기침을 터뜨렸다. 동시에 천천히 헌원경에게 다가와 그녀의 의관을 풀기 시작했다. 서투른 손길 아래 헌원경의 의관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갔다. 잠시 후 헌원경은 속옷 하나만을 걸친 모습이 되었다. 전신이 환히 내비치는 은은한 망사의 속으로 드러난 두 어깨가 너무도 희었다. 그리고 옥(玉)으로 빚은 듯한 미끈한 팔과 다리, 미(美)의 극치를 이룬 헌원경의 속옷 차림은 아찔할 만큼 고혹적이었다. "……!" 백리강은 부지중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헌원경이 살포시 고개를 들며 수줍게 꽃잎 입술을 떼었다. "천첩이…… 진랑의 의관을 벗겨…… 드리겠사옵니다." 첫날 밤을 맞는 신부치고는 진정 대담한 언행이 아닐 수 없다. 순간 백리강은 급히 손을 저어 그녀를 저지했다. "아…… 아니오, 내가 벗겠소." "……!" 헌원경은 지그시 그를 바라보며 내심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역시…… 예상대로 몹시 당황하는군. 호호……) 백리강은 대강 겉옷을 벗었다. 헌원경은 사뭇 수줍은 듯이 고개를 숙였다. 한데 백리강에게선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다. 헌원경은 살며시 고개를 들어 백리강의 동정을 살폈다. 그러자 얼굴 가득 난색을 띤 채 서성거리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킥!) 헌원경은 또다시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눌러 참았다. 이어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진랑! 불을 끄시고…… 소녀의 옷을 마저……" 순간, "아……!" 백리강은 당혹스런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촛불을 껐다. 이건 주객이 바뀌어도 이만저만 전도된 것이 아니었다. 어둠이 삽시에 신방을 삼키고 초야가 시작되었다. 백리강은 천천히 헌원경에게 다가왔다. 그에게 있어서 어둠 따위가 문제될 리 없었다. 그의 안력으로는 이 칠흑같은 어둠도 대낮처럼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는 헌원경의 속옷마저 모조리 벗겨 내었다. 완벽에 가까운 여체(女體)가 숨김없이 드러났다. 백리강은 또 다시 눈 앞이 아찔함을 느끼고 슬며시 시선을 돌렸다. 하나 헌원경은 달랐다. 상대를 여인으로 알고 있는 그녀에게 백리강은 도마 위의 생선처럼 보였다. (훗, 이제부터 슬슬…… 정체를 벗겨 볼까?) 요리를 시작하기 위해선 소매를 걷어 부치고 나서야 한다. "진랑, 소녀가……" 그와 동시에 헌원경은 백리강의 속옷을 벗겨갔다. 백리강은 기겁을 하며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아…… 아니오, 속옷은 천천히……" "……?" "어서 침상에 듭시다." 이어 백리강은 헌원경의 나신을 번쩍 안아들고 침상으로 향했다. 비단처럼 부드럽고 매끈한 여체의 감촉이 아찔하게 전해왔다. (기막힌…… 촉감이군!) 백리강은 표면과는 달리 내심 은근히 헌원경의 나신의 감촉을 즐 겼다. 이때 헌원경 역시 그의 품에 안긴 순간 기분이 야릇함을 느꼈다. 왠지 이 순간 만큼은 그가 여인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나 침상에 내려지면서 그런 그녀의 감정은 다시 깨끗이 사라졌다. 백리강은 그녀 옆에 누운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런 채로 시간이 소리없이 흘렀다. 과연 헌원경의 예상대로 백리강은 그녀의 몸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자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음인지 헌원경이 백리강을 향해 누웠다. "진랑……" 그녀는 백리강의 손을 살그머니 잡으며 말했다. "소녀…… 진랑을 처음 뵙는 순간…… 가슴이 뛰었답니다." 달착지근한 그 음성을 들으며 백리강은 내심 고소를 지었다. (슬슬…… 시작하는군!) 하나 그는 시치미를 뗀 채 가만히 헌원경에게 손을 내맡기고 있었다. 헌원경의 솜사탕처럼 달콤한 유혹이 계속되었다. "지금도…… 소녀의 가슴은 뛰고 있어요. 만져보세요. 소녀 평생 이런 기분은 처음이예요……" 그녀는 백리강의 손을 이끌어 자신의 가슴에 얹었다. 순간, 풍만한 가슴의 감촉이 뭉클하며 백리강의 손아귀에 전해졌다. 백리강은 입 안이 마르는 갈증을 느꼈다. 그는 가슴이 서서히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 역시 더운 피를 지닌 청년이 아닌가? (헌원경…… 너는 실수한 거다. 그리고 너의 부친도……!) 그는 부드럽게 헌원경의 가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흡사 애무를 하듯 그의 손길은 집요하고도 뜨거웠다. 손가락으로 그녀의 조그만 젖꼭지를 매만졌다. 그러자 금시 젖꼭지가 딱딱하게 발기되었다. (……!) 헌원경은 난생처음 내부에서 꿈틀거리는 야릇한 쾌감을 느꼈다. 동시에 그녀는 내심 짙은 의혹을 품었다. (아버님 말씀대로라면…… 이 사람은 절대 나와 접촉하지 않으리라 했는데…… 설마…… 이 사람에게 여인과 즐기는 그런 괴벽이……) 그녀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기이한 눈빛을 뿌렸다. (어쩌면 그럴지도 몰라. 평생 남자 행세를 하다보니…… 자신이 여인임을 잊을 수도……!) 그 사이에 백리강의 손길은 그녀의 배를 지나 하체로 향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헌원경의 은밀한 비림을 움켜쥘 듯 쓰다듬었다. "아아……" 순간 헌원경의 몸이 벼락을 맞은 듯 바르르 경련했다. 그녀는 문득 백리강의 행동을 제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나 그것은 그녀의 생각에 불과할 뿐이었다. 점차 헌원경은 전신이 흥분 속에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스스로 자제를 하려해도 되지 않는 야릇한 열기였다. 일단 붙은 불을 꺼버리기란 그리 쉽지 않는 일이었던 것이다. 여체의 본능이란 그런 것이었을까? 헌원경은 주체치 못할 열기에 전신을 꿈틀거렸다. 그리곤 눈을 감은 채 두 팔을 뻗어 백리강을 안았다. 백리강은 하복부가 돌덩어리처럼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의 손가락이 헌원경의 방초 사이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어느새 그녀의 그곳은 촉촉히 젖어 있었다. 헌원경은 뜨겁게 타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그 무엇인가를 갈망했다. 그녀는 백리강을 휘감으며 하체를 밀착시켰다. 백리강은 헌원경의 젖무덤을 와락 이즈러뜨리며 뜨겁게 여체를 내리 눌렀다. (헌원소저…… 미안하오. 헌원륭을 제압하여 삼월천을 평정시키려면…… 반드시 당신이 필요하오!) 그는 신형을 움직여 헌원경의 나신 위로 올랐다. 그리고 뜨겁게 그녀의 입술을 찍어 눌렀다. 보드랍고 달콤한 입술의 감촉이 백리강의 본능에 불을 붙였다. "으음……" 백리강은 부지중 뜨거운 열기를 토하며 더욱 집요히 헌원경의 입술을 탐했다. 헌원경은 아예 이성을 송두리째 빼앗겨 버렸다. (아……!) 전신이 촛농처럼 녹아 내리는 황홀경…… 헌원경은 마치 구름을 탄 듯한 쾌락에 전신을 내맡겼다. 그녀의 샘은 이제 넘쳐 흐르고 있었다. 백리강은 어느새 나신이 되어 있었으나 그녀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헌원경의 두 눈이 크게 뜨이며 동공이 확대되었다. 무엇인가? 하체 속으로 무언가 들어오면서 뿌듯해지는 이 기이한 느낌은……? 다음 찰나, 그녀는 하체가 통째로 찢기는 고통에 부지중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아아아아악!" 그녀의 아름다운 옥용이 처연할 정도로 일그러졌다. 고통을 못이겨 그녀의 몸이 파르르 떨었다. 그녀의 허벅지가 빳빳하게 경직되었다. 난생 처음 느껴지는 극렬한 고통이었다. "나…… 남자……!" 그렇다. 그녀는 그 순간 깨달아야 했다. 상대가 여자가 아닌 남자란 사실을…… 하나 이미 모든 것은 늦어 있었다. 상대의 남성은 이미 자신의 몸 속으로 들어와 있었고 사내는 자신의 몸 위에서 거칠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팔다리를 움직일 힘도 없이 전신에 맥이 풀려 버렸다. (다…… 당한 거야. 모두……) 왈칵! 표현할 수 없는 진한 감정이 복받쳤으나 헌원경은 곧 그러한 감정마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고통……! 그것이 어느새 다시 주체할 수 없는 쾌감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백리강의 몸이 파도처럼 요동쳤다. 그 파도에 휘말린 헌원경의 흰 육체가 파르르 경련했다. 극도의 쾌감이 그녀의 몸 속에서 요동쳤다. 그녀의 사지는 뱀같이 백리강을 휘어감았다. 하체와 하체가 진퇴를 거듭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두 사람의 입에서 쾌락의 신음이 동시에 흘러나왔다. 뜨겁게 분출하는 환희의 폭발 속에서 백리강은 헌원경 몸 속 깊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5 한편 헌원경이 이렇듯 당하고 있는 그 시각에 헌원륭은 자신의 처소에서 자음자작하고 있었다. 문득 그는 주기(酒氣)오른 얼굴로 유쾌히 대소했다. "핫핫핫……! 지금쯤 단목진…… 놈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 있을거다. 핫핫핫……" 통쾌한 밤이었다. 최소한 헌원륭에게 있어서만은 평생 오늘처럼 통쾌한 밤이 없었다. 밤(夜)에 역사가 이뤄진다고 했던가? 그렇다. 어떤 식으로든 역사는 분명히 이루어지고 있었다. 6 다음날 아침, 뾰롱…… 뾰로롱……! 창 밖에선 상큼한 야조(野鳥)의 지저귐이 들려오고 있었다. 여인(女人)이라면 새소리에 즐거워하지 않을 리 없다. 특히 첫날밤을 보내고 난 병아리 신부(新婦)라면 더욱 그러했다. 하나 여기 무겁게 한숨 짓는 미모의 신부가 있었다. 헌원경, "……!" 그녀는 침상 끝에 걸터앉은 채 멍하니 넋을 놓고 있었다. 이미 완벽하게(?) 의복을 갖춘 모습이었다. 왜……? 첫날밤을 보낸 신부가 이토록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는걸까? …… (그럴 수가 없어…… 그가 남자였다니……!) 지난 밤은 그녀에겐 마치 악몽(惡夢)과 같았다. 전신엔 초야의 고통이 아직도 은은히 남아 있었다. (이미…… 나는 순결을 잃었고……)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헌원경은 흡사 머리 속이 텅 빈 것이 백치가 되버린 듯했다. 진정 그녀는 자신이 악몽을 꾸고있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하나…… 하나……! 이 모든 것은 분명한 현실이 아니던가? (당한거야…… 그에게…… 그에게……) 헌원경은 설움이 복받쳐 오름을 느끼며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아버님과 나…… 모두가 그에게 우롱당하고 말았어……!) 그때 방문이 열리며 백리강이 성큼 들어섰다. 산뜻한 백의차림의 그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헌칠한 모습이었다. 그는 헌원경에게 다가오며 싱긋 매력적인 미소를 떠올렸다. "잘잤소? 헌원소저!" 그런 그의 모습이 헌원경에겐 양가죽을 쓴 이리처럼 보였다. 그녀는 두 눈에 표독스런 독기를 피워올리며 그를 똑바로 쏘아보았다. "가증스러운 사람……!" "가증……?" 백리강의 검미가 꿈틀 모아졌다. 하나 그는 곧 다시 미소를 띄우며 그녀와 마주 자리했다. "무엇이 가증스럽단 말이오?" "나를 속이다니……" "내가……? 무엇을……?" "여인도 아니면서 여인인 척 하지 않았느냐?" 헌원경의 지금 모습은 잔뜩 독 오른 암표범처럼 표독스런 것이었다. "음?" 백리강은 적이 안색을 굳혔다. "내가 언제 내 몸이 여인이라고 했소?" "……!" 헌원경은 그만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렇다. 그것은 단순히 헌원륭을 비롯한 헌원가문의 생각일 뿐 결코 단목소나 단목진은 여인이라고 밝힌 적이 없지 않은가? "나는 헌원가주, 아니…… 장인 어른의 청혼을 받아들였을 뿐이 오. 또한 내가 여인이었다면 어찌 청혼을 수락할 수 있었겠소?" 백리강이 정색을 하며 되물었으나 헌원경은 진정 할 말이 없었다. 문득 그녀는 끓어 오르는 설움에 왈칵 눈물을 쏟고 말았다. "흑!" 결국 자신은 삼월천 세력 다툼의 한 희생물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헌원경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섧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 백리강은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 천천히 그녀곁에 다가가 앉았다. "소저……" 그는 한 손을 가볍게 그녀의 파도치는 어깨에 올려 놓았다. 순간, "치워!" 헌원경은 몹시 화난 음성으로 소리쳤다. 하나 백리강은 손을 치우지 않았다. 이어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녀를 타일렀다. "소저,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제 우리는 부부요." 그러자, (부부……?) 헌원경은 왠지 그 말에 가슴이 찡하니 울려오는 것을 느꼈다. 백리강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결코 나는 장난으로 소저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오. 비록 삼월천의 평화 때문에 이 혼인을 수락했으나 소저와 나는 분명 부부지간 인 것이오." "……" 어느새 헌원경은 울음을 그치고 있었다. 이어 그녀는 고개를 들어 눈물에 얼룩진 얼굴로 백리강을 응시했다. 아! 비에 젖은 배꽃처럼 처연한 그 아름다움이여…… (……!) 백리강은 새삼 그녀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손을 들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견디기 힘들 것이오. 그것은 나도 이해하오." "……!" "하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우리의 벽이 무너지고 원만한 부부지간이 될 수 있을 것이오." "……!" 그 순간 헌원경은 깨달았다. 그의 말이 진실임을…… 그의 진솔한 두 눈빛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이때 백리강의 표정은 더욱 엄중해지고 있었다. "소저의 부친은 삼월천의 패권을 잡은 후 삼월천의 전세력을 중원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소. 결국 그렇게 되면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소. 오직 피(血)와 죽음(死) 뿐……!" "……" 헌원경은 그저 얌전히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문득 백리강은 두 눈에 미세한 신광을 떠올리며 그녀를 향했다. "소저, 소저는 내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소?" "……?" "사실…… 나는 진정한 단목진이 아니오." 순간, 헌원경은 아연실색 창백하게 질리고 말았다. "다…… 당신은 그럼 누구……?" "나는 백리강…… 마교(魔敎)의 대지존이오." "……!" 헌원경, 그녀는 아예 망연자실했다. 백리강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설명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런 일엔 솔직이 털어놓는 것이 나을 듯 싶었던 것이다. 과연 헌원경은 그의 이야기 속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7 날벼락! 그것은 그야말로 맑은 하늘에 난데없는 날벼락이 아닐 수 없었다. 헌원륭, 그는 혼백이 통째로 빠져나갈 듯 넋을 잃었다. 즐겁고 통쾌한 마음으로 아침을 맞은 그에게 헌원경이 찾아와 들려준 말은 진정 엄청난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단목진, 그가 진짜 남자(男)라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그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던 딸이 그에게 당해 부부관계를 맺었다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헌원륭은 복장이 터져 죽을 노릇이었다. 한데, 엎친데 덮친 격으로 헌원경이 하는 말이 그의 속을 완전히 뒤집어 놓고 말았다. -아버님…… 그분과 싸우지 마시고 제발 모든 것을 양보하세요. 그리고 지옥부와는 영원히 손을 끊어 주세요. 헌원륭은 그만 어이가 없었다. 하나 그것은 곧 엄청난 분노와 살기(殺氣)로 화했다. 그는 그 즉시 검(劍)을 꼬나쥐고 백리강의 처소로 달려갔다. 이미 그의 두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단목가문과 헌원가문의 이십년 지약을 위해 만들어놓은 비무대(比武臺). 그 위에서 지금 두 명의 인물이 서로 마주본 채 대치를 이루고 있었다. 바로 단목진으로 변신한 백리강과 노기충천한 헌원륭이었다. 비무대 주위엔 수십 명의 인물들이 둘러서 있었다. 그들은 세 가문에서 추출된 참관인겸 증인들이었다. 그들은 사뭇 긴장된 신색으로 비무대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의 승자가 장차 삼월천을 이끌어 나갈 천주(天主)가 되는 것이 아닌가? 진정 귀추가 주목되는 순간이었다. 백리강은 담담히 헌원륭을 응시하며 말문을 열고 있었다. "장인 어른께서 사흘이나 앞당겨 비무를 신청하시다니 너무나 뜻밖의 일입니다." "……" "저로서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긴 했으나…… 아무래도 너무 빠른 것 같습니다." "빠르다고……?" 헌원륭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 오르는 것을 가까스로 억제했다. (당장…… 네놈을 요절내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한데 그런 그의 속을 더욱 뒤집어 놓으려는 듯 백리강은 멋적게 음성을 잇고 있었다. "더욱이…… 신혼초인데 단꿈도 깨기 전에 장인어른과 무공을 겨루자니…… 왠지 기분이 이상하군요." 순간 번득! 하며 헌원륭의 부리부리한 두 눈에 짙은 살기가 떠올랐다. (이놈의 새끼가…… 점점……?) 하나 그는 삼월천 내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깊은 심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는 짐짓 담담한 신색으로 입을 열었다. "모든 일은 빨리 해치워야 시원하지 않겠나? 그만큼 삼월천의 평정도 빠를 것이고……" 제법 그럴싸한 말이었다. 백리강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기사…… 그런 면도 있군요." 이어 그는 정색을 하며 헌원륭을 똑바로 응시했다. "하나…… 아무래도 모든 면에서 제가 부족하니 장인 어른께선 손에 사정을 두어 주십시오." 헌원륭은 짐짓 껄껄 웃었다. "허허…… 그야 이를 말이 있겠나만…… 공(公)과 사(私)는 분명히 해야하지 않겠나?" 이렇게 웃고 있지만 실상 그는 내심 이를 갈고 있었다. (사정……? 웃기는 소리! 틈만 보이면 네놈의 머리통을 두부처럼 으깨버리고 말 것이다!) 그때 공손의붕이 비무대 위로 올라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 이어 정중히 두 사람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제…… 두 분이 무공을 겨루어 승자가 본 삼월천의 천주가 되시는 것이오." "……" "하나 되도록 승패만 가리도록 하고 피를 흘리는 경우가 없도록 해주었으면 하오." 말을 마침과 동시에 공손의붕은 다시 비무대 아래로 내려갔다. 드디어 천주를 가리기 위한 정식비무가 막을 올렸다. 백리강이 빙긋 헌원륭을 향해 웃어 보였다. "공격하십시오, 장인어른!" 그것은 헌원륭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바, "조심하게!" 그와 동시에 헌원륭은 지면을 박차고 허공으로 붕 떠올랐다. 다음 순간, "자---- 가네!" 위이이이잉----! 그의 일성과 함께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허공을 짓잡아 뜯었다. 동시에 엄청난 핏빛 강기( 氣)의 회오리가 노도처럼 덮쳐오는 것이 아닌가? 진정 무섭게 패도적이었다. 백리강의 안색은 적이 굳어 들었다. (이것은…… 삼월천의 무공이 결코 아니다!) 그렇다! 헌원륭이 펼친 무공, 그것은 너무도 사이(邪異)했으며 음독잔인하기 그지 없었다. (분명 지옥부(地獄府)의 무공이 틀림없다!) 백리강은 내심 심증을 굳혔다. 헌원륭은 단숨에 백리강을 척살할 듯 처음부터 악랄한 수법을 펼치고 있다. 하나 백리강이 누군가? 그는 마교의 대지존! 당금 천하…… 아니 고금을 통틀어 사상최강의 절대고수(絶大高手)가 아닌가? 결코 지옥부의 무공 따위로 어찌될 그가 아니었다. (후후후…… 한바탕 몸을 풀어 볼까?) 백리강은 내심 의미심장한 고소를 머금었다. 이어 보법을 펼쳐 가볍게 헌원륭의 공세를 젖혔다. 순간, 쾅----! 헌원륭이 펼친 핏빛 강기는 애매한 비무대 한쪽을 박살내고 말았다. 그 광경을 관전하고 있던 중인들은 새삼 경악을 떠올리고 있었다. (아……!) (과연…… 삼월천 최고의 고수답다!) 하나 헌원륭은 더욱 노기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붉으락 푸르락하고 있었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어디 이번에도 미꾸라지처럼 빠져 나가나 두고 보자!) 다음 순간, "타---- 앗!" 헌원륭은 한소리 기합성과 함께 빙글 신형을 회전시켰다. 찰나, 휘류르르르릉----! 엄청난 파공성이 일며 돌연 사위가 캄캄한 암흑에 휩싸였다. 동시에 갑자기 모골이 송연한 귀곡성(鬼哭聲)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 백리강은 더욱 침중히 안색을 굳혔다. (으음…… 대단한 마음공(魔音功)이다!) 진정 그것은 웬만한 고수라면 피를 토하고 고꾸라질 가공할 음공이었다. 또한 상대의 심기를 흐트러뜨리는 무서운 효과를 나타내기도 했으니…… 일순, 쐐---- 액! 한 가닥 섬광이 암흑을 가르며 백리강의 정수리를 쪼개 들었다. 일도양단(一刀兩斷)의 무섭고도 가히 패도적인 수법! (……!) 백리강은 급히 정신을 추스르며 재차 보법을 펼쳐서 피했다. 헌원륭은 또다시 그의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내심 흠칫했다. 하나 그는 다시 인정사정없이 공세를 퍼붓기 시작했다. 휘---- 우우우우우웅----! 꽝----! 꽈릉-----! 갖가지 파공음과 충돌음, 그리고 금속성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헌원륭은 실로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쉴새없이 자신의 절학(絶學)을 펼쳐내고 있었다. 실로 눈이 팽팽 돌 지경이었다. 하나 백리강은 뒷짐까지 진 채 유유히 전권(戰圈)안을 활보하고 있었다. 그는 마치 정원을 거닐 듯 여유자적하게 헌원륭의 공세를 젖혀내고 있었다. 그런 그의 입가엔 한가닥 미소마저 가볍게 머물러 있었다. 그 광경에 단목소를 제외한 삼월천의 전고수들은 대경실색하고 말았다. 단목진의 무공이 그 정도일 줄은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백여 초가 흘렀다. 헌원륭은 시간이 갈 수록 적잖이 불안해짐을 금치 못했다. 그가 전심전력으로 펼쳐낸 무공은 모두 백리강의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더욱이 백리강은 이제껏 단 일 초도 무학을 전개하지 않고 있었다. 헌원륭은 급기야 한 줄기 서늘한 냉기가 가슴을 스침을 느꼈다. (으…… 이럴 수가……! 이놈의 무공이 이토록 높다니…… 어쩌면 사부(師父)보다도 강할지도 모른다!) 무언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하하하……! 장인어른…… 벌써 백초(百招)가 지났으니…… 이번엔 제가 공격하겠습니다." "……!" 백리강은 신형을 세우며 그를 향해 빙긋 웃어 보였다. "자, 조심하십시오!" 이어, 챙----! 날카로운 금속성과 함께 그는 등 뒤에서 한 자루 검을 뽑았다. 그것은 한낱 평범한 청강검(靑鋼劍)이었다. 헌원륭은 우뚝 신형을 멈추며 잔뜩 긴장을 돋구었다. 동시에 극히 신중한 자세로 방어 자세를 취했다. (후후…… 지옥부주(地獄府主)가 무공을 가르쳐 주긴 한 모양인데…… 정수(精髓)는 모조리 빼놓았군!) 백리강은 내심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 정도의 무공은 사마공(邪魔功)의 기초라고나 할까? 마교의 대지존인 내 눈엔 그저 우습게 보일 뿐이다!) 그의 눈빛이 야릇하게 변했다. (헌원륭같은 성격은 아예 넋을 빼놔야 자신의 야망을 포기한다. 단 일초로 끝장을 내자!) 백리강은 결심했다. 그와 동시에, "ㅊ----!" 짤막한 일성과 함께 그의 신형은 허공으로 비쾌히 솟구쳤다. 다음 순간 그의 입에선 한 소리 낭랑한 대갈성이 터졌다. "향기는 바람(風)을 타고 찾아오며 검(劍)의 비(雨)는 천하를 뒤 덮는다. 표향검우(飄香劍雨)----! 아아…… 표향검우! 그것은 살인을 예술로 승화시킨 마검살인십삼예(魔劍殺人十三藝)의 단 일식이 아닌가? 찰나, 번---- 쩍! 번쩍! 번쩍----! 찬연한 은광(銀光)이 검끝에서 쏟아져 나와 사위로 부챗살처럼 폭사했다. (으헉----!) 헌원륭, 그는 내심 대경한 다급성을 삼켰다. 오오…… 보라! 백리강의 검이 돌연 수천 수만 개로 나뉘며 폭우처럼 덮쳐오지 않는가? 삼백 육십 방위가 모조리 차단되었다. 어디고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또한 어디를 어떻게 막고 대처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 챙강----! 헌원륭의 검이 거센 충격에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와 동시에 사위를 휩쌌던 은빛 검광(劍光)이 씻은 듯 사라졌다. "……!" 헌원륭은 멍하니 넋을 잃고 서있었다. 그의 앞가슴은 수백 개의 검흔(劍痕)으로 겉옷이 갈가리 찢겨 있었다. (이…… 이럴 수가……) 헌원륭은 짙은 경악과 절망에 탄식하고 말았다. (천하에 이토록 무서운 검법(劍法)이 있다니……!)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하나 그가 어찌 짐작이나 했을까? 백리강은 이번 검법에 겨우 오성(五成)의 내공만을 사용했을 뿐이었다. 또한 마검살인십삼예의 열 세 가지 변화 중 세 가지만 전개했을 뿐이니 실상 표향검우의 총 변화의 사분지 일도 채 전개되지 않은 것이었다. 하나 그 정도 만으로도 헌원륭의 예기는 무참히 꺾였다. 헌원륭이 이를 꽉 물며 두 눈을 내리 감았다. "저…… 졌다!" 백리강은 정중히 그 앞에 포권을 취했다. "장인 어른, 죄송합니다." 이어 그는 진중한 음성을 이었다. "그리고…… 장인 어른께선 염려놓도록 하십시오." "……?" "장인어른이 삼월천을 장악하지 못했어도 지옥부에서는 장인어른을 감히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 순간 헌원륭은 흠칫 놀라고 말았다. (이…… 이놈이…… 지옥부와 나와의 관계를 모두 알고 있었단 말인가……?) 그때, 백리강은 그를 지그시 응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장인어른을 감시하던 지옥부의 고수들은 이미…… 제 손에 모두 제거되었습니다. 또한…… 저는 삼월천의 천주엔 애당초 흥미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장인어른께 천주의 신분을 양보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단지…… 경매와 삼월천을 위해 지옥부와의 관계를 끊어 주신다면 말입니다." "……" 헌원륭은 또 다시 망연자실해졌다. 이윽고 그는 허탈한 음성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네는…… 지옥부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아는가?" 백리강은 의연한 신색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지옥부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어 그는 전음으로 헌원륭에게 무어라 설명했다. 찰나, 헌원륭의 만면 가득 대경의 기색이 떠올랐다. "자…… 자네가…… 마교의……" 백리강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헌원륭의 안색은 수시로 급변을 일으켰다. 한동안 갈등을 계속하는 듯했다. 잠시 후 그는 불현듯 탄식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네. 자네에게 완전히 굴복하고 말았네." 백리강은 밝은 미소를 떠올렸다. 그러자 헌원륭은 문득 생각난 듯 물었다. "자네…… 진정으로 경아를 맞아주겠나?" "물론입니다." 백리강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자 헌원륭은 다시 한숨을 불어냈다. "이 순간부터…… 노부는 모든 것을 포기하기로 하겠네." 이어 그는 비무대 주위를 돌아보며 천천히 소리쳤다. "이 순간부터 삼월천의 주인은 단목진 공자임을 포고하오!" 순간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와---- 아----!" "단목진 공자 만세----!" "삼월천(三月天) 만세----!" "……" 헌원경, 한쪽에서 내내 가슴을 졸이고 있던 그녀는 헌원륭과 백리강이 손을 잡고 나란히 내려오는 모습에 그만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아버님! 진랑……!" 여인(女人), 슬퍼서 울고, 기뻐서 울고…… 진정 눈물이 많은 존재인가 보다. 사흘 후, 백리강은 삼월천을 떠났다. 역시 헌원경의 애틋한 눈물 속에…… 아쉬웠지만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그를 보내야 했다. 사소한 감정으로 그의 대의(大意)를 그르칠 수는 없는 까닭이다. 그리고 그녀를 포함한 삼월천의 전 고수들도 은밀히 천궁산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당분간 지옥부의 무서운 손길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백리강! 삼월천을 떠난 그는 사천성을 향해 가고 있었다. 바로 천금마옥을 노리고…… 3권으로 이어집니다. |
첫댓글 잼 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재미있습니다.